[최재목의 아침놀] ‘텃새’보다 ‘철새’가 낫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계절 따라 이동하지 않고 그저 한곳에 1년 내내 머무는 새를 '텃새'라 한다. 텃새는 '텃세(勢)'를 부리기 마련이다. 까치, 갈매기 같은 텃새는 철새에게 조폭처럼 텃세를 부린다고 한다. 정치계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 어딘들 텃세가 없으랴만, 나는 텃새보다 철새가 좋다.

철새는 정해진 계절에 번식지와 월동지로 이동하는 새를 말한다.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이가 풍부하고 온도가 알맞은 서식지가 필요하다. 철새마다 이동의 횟수, 방향, 거리는 다르다. '이동'은 생명을 지속시키는 지혜이리라. 빛이나 바람은 이미 존재한다(Es gibt). 이것이 철새들에게는 자연의 증여물(선물)이며, 그들은 이에 감사히 기대며 살아가되 나그네, 유목민처럼 떠돈다.

저 노마드의 철새. 그렇게 먼 길을 잘도 찾아다닌다. 인간들보다 훨씬 영성적이다. 정주(定住)하며 온갖 텃세를 부리는 인간은 원자력 같은 영속적 에너지를 개발하는 등 스스로 신(神)인 양 얼마나 오만스러운가.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을 비하하는 동안 우리는 철새들의 명예를 훼손해왔다. 철새들이 보는 인간 세계는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정체성 없는 '철새 정치인'들은 '이득'만을 목표로 하나, 철새는 '생명의 자연'에 충실한 것이다.

철새에도 종류가 있다. 제비, 뻐꾸기와 같은 것을 '여름 철새'라 하고 두루미, 가창오리와 같은 것을 '겨울 철새'라 한다. 그리고 봄과 가을 두 번 월동지로 이동할 때 한 지역만을 지나가는 도요물떼새 같은 부류를 '통과 철새', 다른 말로 '나그네새'(여조·旅鳥)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겐 왜 세 종류의 철새가 모두 '나그네새'처럼 보일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떠나간/갈' 사랑을 철새에 비유하여 노래했다. 가수 박건은 '사랑은 계절 따라'에서 "가을에 만난 사람 겨울이면 떠나가네"라고, 가수 김부자는 '당신은 철새'에서 "그리우면 왔다가 싫어지면 가버리는/ 당신의 이름은 무정한 철새"라며 철새를 '무정한' 것이라 했다. 가수 펄 시스터즈가 부른 '철새'에서는 "철새를 따라 떠나는 사랑/ 아, 꽃 피던 사월 다시 오려나"처럼, 철새를 되돌아올 '희망'으로도 읊는다.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친다 해도/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이라는 가수 조영남의 노래 '제비'(번안곡)에는 여름 철새인 제비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에서는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라며, 설렘에서 시작하지만 떠날 것을 암시한다. 이처럼 '왔다 가고, 갔다가 다시 온다'는 믿음에서 철새는 호출되고, 인간사의 애증・애환을 담아 노래되었다. 그러나 '텃새'는 지겹기에 그리워지지도, 노래로 불러지지도 않는다.

철새는 오고 가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형기의 시 '낙화'에서처럼 결별할 때 결별하는 섭리를 따른다. 박목월이 '난'(蘭)이란 시에서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라고 했듯, 뒤도 안 돌아보고 뚝 떨어져 나가는 저 '하직'(下直)의 지혜를 철새는 터득하고 있다. 타이밍 맞춰 떠나는 단호함, 용기가 멋스럽다.

김수영이 시 '폭포'에서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라 했듯 떠날 때는 매몰차야 한다. 페루 민요 '철새는 날아가고'에서 "멀리 멀리 떠나고 싶어라/ 날아가 버린 백조처럼/ 인간은 땅에 얽매여 가장 슬픈 소리를 내고 있다네"라 했듯, 슬픈 텃세들의 땅을 떠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누군가 탈당을 하고 떠나더라도 '배신자'라며 비난하지는 말자. 얼마나 조직・패거리의 텃새가 심했으면 절망하고 떠나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철새일 수 있다. 이왕 철새이려면, 이익(利)・혜택(惠)에 골몰한 '소인・졸장부 철새'가 아닌 도덕(德)・정의(義)를 좇는 '군자・대장부 철새'로서 세상을 가로질러 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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