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회색예찬(II)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듬해 10월 3일 동독은 서독에 흡수되었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뒤이어 동구권과 소련까지 도미노처럼 무너지자 '역사의 종언'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로 역사는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종말이 좌파적 이념의 용도 폐기는 아니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부단히 진화·발전하고 있고, 좌파적 지평이 균형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2018년 칼 마르크스의 고향 트리어에서 필자는 그 점을 느꼈다. 마침 그의 탄생 200주년이었는데, 마르크스에 의거 자본주의 보완책을 모색하는 논의가 수도 없이 열리고 있었다.

독일 정치의 중도지향성은 정평이 나 있다. 이는 독일을 특징짓는 '사회국가'나 '사회적 시장경제'에 잘 나타난다. 여기서 '사회'나 '사회적'이란 사회주의와 무관하다. 좌파 사민당(SPD)은 이미 1959년 '바트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노동계급 정당이 아닌 국민정당임을 천명했고, 우파 기민/기사련(CDU/CSU)도 '사회적 시장경제'로 중도확장을 도모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시장을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김종인, '마이스터의 나라 독일')한다는 의미다. 2004년 사민당 슈뢰더 정권의 '어젠다 2010' 역시 중도지향성의 좋은 예이다. 통일 후유증으로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자 사민당은 지지기반인 노조의 반대에도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복지 축소 등 우파적인 '어젠다 2010'을 실행한다. 결국 국가는 살았고, 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이보다 더 큰 정치가 있을까?

대체로 보수·우파는 변화를 싫어한다. 영어 '라이트(right)'나 독일어 '레히트(recht)' 모두 '우파'와 '옳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스스로 옳으니 변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런 태도는 시대착오다. 지금 누가 오른손잡이는 옳고 왼손잡이는 그르다고 하겠는가. 오른쪽과 왼쪽은 서로 보완관계지 적대관계가 아니다. 우리 사회 얼치기 좌파의 창궐은 근원적으로는 일부 잘못된 우파 기득권층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유전무죄'니 '무전유죄'니 하는 부조리의 극치를 이루는 상황에 무방비상태로 내몰린 서민들의 절망감을 그들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깊이 헤아려본 적이 있을까. 보수우파로 자처하는 이들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일부 이성을 잃은 듯한 극렬파로 인해 자칫 자유 대한민국마저 위태로울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회색은 검은색과 흰색 모두를 아우르는 다양성을 가진 중도색이다. 검은색 쪽이 짙을수록 진회색, 흰색 쪽이 짙을수록 연회색이다. 검은색은 흰색 쪽으로, 흰색은 검은색 쪽을 향하지만 둘이 똑같지는 않다. 바로 '화이부동'이다. 이제 우리 정치지형도도 자기 색깔을 견지하면서 중도의 회색지대로 수렴했으면 좋겠다. 물론 도깨비 같은 괴상한 이름의 집단이나 위선에 찌든 강남좌파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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