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우리가 코로나19를 기억하는 법

2020년 5월 24일자 뉴욕타임스 1면. 매일신문 DB 2020년 5월 24일자 뉴욕타임스 1면. 매일신문 DB
이상준 사회부 차장 이상준 사회부 차장

'잭 버틀러, 수잔 그레이, 웨스트 우드, 제임스 데이비드….' 2020년 5월 24일 자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이름'들이다.

이날 뉴욕타임스는 기사 한 줄 없이, 사진이나 그래픽 하나 없이 1천 명의 이름으로만 1면 전면을 촘촘히 채웠다.

이날 지면에 오른 이름들의 정체는 코로나19 사망자들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인터넷을 일일이 검색해 미국 사망자의 1%에 해당하는 1천 명을 선정하고, 이들의 삶을 숙연하면서도 위트 있게 표현했다.

'알란 룬드, 81, 워싱턴, 놀라운 귀를 가진 지휘자' '테레사 엘로이, 63, 뉴올리언스, 디테일한 꽃 장식으로 유명한 사업가' '마리 조 다비토, 82, 톨톤,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즐거워함'….

돌이켜보면 이날 뉴욕타임스 보도는 '코로나19 희생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전혀 달랐다.

대한민국 코로나19 사망자들은 온전한 이름으로 남지 못했다. '100번째 사망자' '76세 남성'….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번호와 나이, 성별이 다였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범정부 차원이 됐든, 지방정부 차원이 됐든 코로나19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에 너무나 소홀했다.

다른 재난 사고들에 대한 추모 열기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코로나19 희생자들만 비껴 갔다.

코로나19 희생자들에겐 죽음마저 가혹했다. 유족들은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희생자들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선 화장, 후 장례' 원칙에 따라 생을 마감했고, 개인 보호구를 착용한 최소한의 유족만 화장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지난 2월 18일 첫 환자 발생 이후 하루 741명까지 치솟았던 대구 확진자도 어느새 '0명'으로 가라앉았다. 13일 기준 41일 연속 0명(지역감염 기준)으로, 한때 전국 확진 환자의 90%를 차지했던 대구가 코로나19 대확산의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행히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제 대구도 '코로나19를 기억하는 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억하는 법은 '감사'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달 시청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대구로 달려와 주셨던 2천500명 이상의 전국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소방대원들이 아니었다면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하는 행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기억하는 법은 '추모'다. 코로나19 '영웅'들을 위한 감사의 자리뿐 아니라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도 함께 마련하자는 것이다.

지역사회 안팎에서는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역할을 다했던 대구 동산병원과 2025년 준공 예정의 대구시청 신청사(달서구 감삼동 옛 두류정수장 부지) 등에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영구히 기릴 수 있는 추모의 공간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숨진 대구 지역 사망자는 13일 기준 '187명'에 달한다. 전국 305명의 61.3%다.

단순 수치로 비교하면 미국 사망자의 0.0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희생자들이 남긴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까지 세계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바이러스에 가장 먼저 희생된 사람들…. 그들은 평범한 대구 시민이자,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다. 바로 '우리'였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