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태백에서 한라까지, 그들 죽음을 기리며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죄(罪)에 따른 벌(罰)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 죽음 즉 사형(死刑)이었다. 그래서 범법자를 가둔 감옥에서도 사형수가 입고 있는 수의에 붙은 번호의 색깔도 달리했다. 붉은 색깔이다. 사형수의 하루하루는 '언젠가 다시 돌아갈' 일상(日常)을 꿈꾸는 어떤 죄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번민의 날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들을 '대우'하라고 따로 구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는 같은 사형이라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맞았던 죽음의 인물도 많았다. 그랬기에 이들 죽음은 날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았고, 세월이 흐를수록 되레 기리고 추모하는 죽음이 되기에 이르렀다. 뒷사람들이 이들 죽음 앞에 당당히 '의(義)로운'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들이 바로 의병이요, 독립운동가 같은 이들이 아니던가.

일제가 한국인을 억지로 옭아매기 위해 만든 법을 어겼으니 분명 '범법'이요, '불법'이었다. 나라 찾기 위한 독립의 마땅한 행동을 했으나 일제 저들에겐 사형감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범법과 불법의 허울을 덮어쓴 채 형장에서 사라진, 의병과 독립운동가로서 의로운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은 한국인이 얼마인지는 알 수조차 없다.

마침 대구에서는 지난 2018년 '대구독립운동사' 발간(광복회 대구지부)과 함께 2019년 3·1운동 및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대구의 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다시 살펴 조명하고 기리는 일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올해 들어서 코로나19의 국가적 재난 속에서도 의로운 죽음에 처한 순국선열을 기리는 움직임도 조용히 이뤄져 다행스럽다.

하나는 지난 2월, 가칭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추진을 위한 민간 차원의 모임 출범이고, 이미 지난 5월 정부와 당국에 타당성 조사를 요청해 놓고 있다. 다른 하나는, 대구에서 순국한 의병과 독립운동가 등 180명의 행적 등을 처음으로 추적하여 조명한 책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를 지난달 세상에 내놓고 알리게 된 일이다.

특히 대한광복회 백산 우재룡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한 이 책에서는 대구감옥(형무소)에서 순국한 애국지사 180명의 출신지, 활동 분야 등을 분석했는데, 여기에는 영호남과 제주도는 물론 충청도와 강원도 인물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는 이들 지역까지 관할한 사법(재판) 제도 때문이었다. 대구는 바로 그들의 순국터였던 사실이 드러났다.

강원도 태백에서 제주도 한라에 이르기까지 이들 180명의 순국 애국지사와 그 유족들에게 대구는 잊을 수 없는 곳, 아니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현장이나 다름없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와 달리 대구감옥(형무소)은 지금 사라지고 잊혔으니 지난 2월 닻을 올린 민간 차원의 기념관 건립 추진과 같은 활동은 더욱 절실하다.

오는 20일 오후 전국의 생존 독립운동 지사와 여러 독립운동가 후손 등 300명 넘는 발기인들을 초청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가질 예정인 행사는 그래서 코로나19도 꺾을 수 없는, 뜻깊게 여기는 까닭이다. 비록 대구에서 열리지만 영호남과 충청, 강원, 제주까지 아우르는 만큼 삼남(三南)을 넘는 독립운동 기리기 모임 성격도 있다.

최근 며칠간은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백선엽 장군의 별세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논란으로 어수선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금 대구에서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순국자의 죽음을 기리는 일이 이뤄지고 있으니 죽음의 의미가 남다르게 와 닿는 요즘이다. 한 번뿐인 이승의 삶, 어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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