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1974-1979 대구현대미술제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대구현대미술제는 1974년을 시작으로 1979년까지 총 5번을 개최하였다. 첫번째와 두번째에는 각 7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였는데, 1977년 3회에 들어 196명의 전국 각지의 작가들이 참가하면서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3회 이후 각 회별 특징을 보여주는데, 1978년 3회에서는 강정 낙동강변에서 행위예술을 보여주었고, 1979년 4회 전시에서는 비디오, 필름 등 영상매체 부문을 만들었고, 마지막 전시인 1979년 제5회 현대미술제는 한국 50명, 일본의 작가 15명이 참여하여 이후 대구와 일본 예술가들의 교류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활동의 의의에 대해 '한국미술이 한국인 특유의 체질로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주목받았고, 대구의 현주소와 '경향 각지의 여러 참신한 작가가 참여해 기량 있는 작가의 발굴'에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였다. 특히 현대미술제는 대구 외에도 1975년 서울과 1976년 광주, 부산, 1977년 강원(춘천), 청주, 1978년 전북(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어 1970년대 지방 현대미술의 확산과 문화지형 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대구현대미술제는 기획 단계에서 새로운 예술언어를 수용하고 확장하기 위해 일정 부분 매체를 제시하고 작가들을 이끄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미술제에서 형식 또는 매체를 소개하는 데는 집단으로 출현하는 양상을 띤다. 그 예로 야외에서 펼쳐진 행위예술과 비디오 아트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행위예술은 1960년대 해프닝이나 이벤트와도 형식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자연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 자연을 하나의 재료로 장소성과 시간성을 담았다는 점이다. 행위예술은 1975년에 이미 대구의 미술가들 사이에서 '해프닝=야외전'이라는 이름으로 낙동강변에서 시도된 적이 있었고, 1970년대 초 이강소는 자신의 개인전에 낙동강변의 갈대를 가져다 전시장에 설치하기도 하는 등 낙동강변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장소이다. 1977년 대구현대미술제에 진행된 행위예술 역시 강정 일대 낙동강 백사장에서 진행되었다. 박현기는 횟가루로 포플러 나무의 그림자를 만들었고, 이강소는 모래바닥에 구두와 넥타이, 옷 등을 차례로 벗어놓고 모래 무덤을 만들어 올라앉아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연출했다. 행위예술은 대구현대미술제의 특징적인 행사로 1978년에는 가창 냉천 계곡에서, 1979년에는 다시 강정에서 열렸다.

작가들은 야외에서 펼친 행위에 대해 구체적인 의도나 배경을 설명하기보다는 상황을 노출하고 그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관람자에게 남겼다. 당황해하는 관람자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등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선문답과 같은 이러한 행위는 자연에서 이루어짐으로써 그 의미를 선명하게 남길 수 있었다. 물과 숲을 찾아 풍류를 즐기던 선인들이 자연을 통해 얻었던 자유와 치유, 예술적 감흥의 순간들처럼 그들은 인간이 속한 세계의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 드러나는 자연 속에서 예술적인 생각들을 자유롭게 노출시켰다. 그들은 자연을 통해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한 선명한 인식과 해석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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