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서부전선의 참호예술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서양 중세의 전투가 공고한 성벽을 뚫는 공성전(攻城戰)이었다면 18세기 이후에는 넓게 펼쳐진 평원에서 양 진영의 대규모 병력이 마주하는 총력전이었다. 포격으로 기선을 제압한 후, 장총과 칼로 무장한 보병이 돌격하여 적진을 점령하는 방식이다. 칼을 든 지휘관이 앞장서서 돌격을 외치는 이러한 나폴레옹식 전투 장면은 기관총의 도입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 발 발사하고 재장전하던 장총들의 전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 살상력을 보여준 기관총의 등장은 엄청난 공포였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개틀링이 고안하고, 맥심이 개량한 기관총은 분당 600발을 발사할 수 있었기에 전장에서 병사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적의 사기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1893년 기관총을 도입한 영국군 700명은 남아프리카 마타벨레족 전사 10만 명을 몰살시켰다. 우금치전투에서 화승총과 창으로 무장한 2만 명의 동학군은 조일(朝日)연합군의 개틀링 기관총 몇 정에 의해 순식간에 1만5천 명이 희생되었으나, 관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기관총은 20세기 유럽 전장의 표준 무기 체계로 편입되었다. 1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은 전광석화처럼 서부로 진격했으나, 파리 근처 마른에서 영-프 연합군에 패배하며 4년에 걸친 악몽 같은 '서부전선의 참호전'이 이어지게 된다. 양측은 기관총을 피하기 위해 깊은 참호 속에서 대치 상태를 지속하며 의미 없는 총격전과 엄청난 포격전을 반복하여 매일 수천 명의 전사자를 발생시켰다.

전투 때마다 겨우 몇백m를 번갈아 점령할 뿐인 소모적인 참호전으로 전쟁은 교착 상태가 되었다. 참호는 철조망과 콘크리트로 점점 강화되었고, 승패도 없는 가운데 사상자만 계속 늘었다. 1916년 여름 프랑스 솜강 전투에서 연합군은 150만 발의 포격을 가한 뒤에 돌격을 개시했으나, 깊은 참호 속에 숨었던 독일군의 기관총 반격으로 단 하루 만에 영국군 2만 명이 전사하고 4만 명이 부상당했다.

기관총 총알로 만든 스푼 세트 기관총 총알로 만든 스푼 세트
1차대전시의 큰 대포 탄피로 만든 식탁 종 1차대전시의 큰 대포 탄피로 만든 식탁 종
기관총 총알로 만든 십자가 기관총 총알로 만든 십자가

이후 폭설로 전투가 중단될 때까지 4개월 반 동안 연합군이 겨우 10㎞를 전진하는 동안 프랑스, 영국, 독일군 144만 명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야산 하나를 두고 10개월간 싸웠던 베르됭 계곡의 전투에서도 양측 합하여 1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저지대 참호에 물이 차고 비가 내리자 젖은 발과 다리가 썩어가는 참호족(塹壕足)이 발생하여 10만 명의 병사가 사망하기도 했다.

전쟁은 역사를 바꾸고, 예술과 유행을 창조한다. 참호 주위에 널린 엄청난 양의 포탄과 총알, 그리고 물품들은 수거되어 생활용품, 장식품, 탁상종으로 재탄생되었다. 이것을 '참호예술'(trench art)이라 한다. 전선의 병사와 이송된 부상병, 포로와 점령지 주민들이 만들었다.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이것들은 일상에 매우 유용하였다.

참호예술품은 전쟁을 증언하고 어렵던 시절을 살던 인류의 처연한 감회를 담고 있다. 곤궁한 생활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절대자에게 구원을 청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한국전쟁 후 궁핍하던 시절, 우리도 탄피를 주워 소에게 워낭 종을 만들어 주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면 생각나는 우리의 참호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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