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민심도 도륙될 수 있다

제21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사진 왼쪽)와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가 29일 오후 서울 광진구 일대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사진 왼쪽)와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가 29일 오후 서울 광진구 일대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두진 편집부국장 조두진 편집부국장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3월 중순 실시한 서울 광진을 총선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43.3%) 후보가 미래통합당 오세훈(32.3%) 후보를 11%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3월 30일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조사,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은 52.6%를 기록했다. 이 조사대로라면 이번 4·15 총선에서 서울 지역은 여당인 민주당의 압승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내면은 좀 다르다. 서울 광진을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7%가 민주당·정의당 등 범여권 지지자였다. 반면, 통합당·국민의당 지지자는 29.2%였다. 여론조사에 범여권 지지자들이 야권 지지자들보다 2배 이상 참여한 것이다. 게다가 실제 민주당과 정의당의 지지율 합은 62.7% 근방에도 못 미친다.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은 41%였다. 하지만 거의 매주 실시되는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응답자의 약 60%가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표를 준 사람들이다. 문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여론조사에 훨씬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여론과 많이 다를 수 있다. 조사에 응하는 사람들의 표본에 따라 여론 왜곡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조사 결과 발표가 한쪽에는 전의를 불태우는 동기로 작용하고, 다른 한쪽에는 전의를 상실하는 요인이 됨으로써 사전 여론조사 결과가 투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투에서 승기를 잡고 적군을 몰아붙일 때 용감무쌍하지 않은 병사는 없다. 패해서 도망칠 때 기죽지 않는 병사도 없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이기고 있다고 믿는 쪽은 더욱 기세를 올리기 마련이고,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은 주눅이 들어 투표 의지를 잃기 십상이다. 국민 개개인은 실제 판세를 알기 어렵고, 결국 공표되는 여론조사 결과에 의해 한쪽은 전투 의지를 불태우고, 다른 한쪽은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창과 칼로 싸우는 고대 전투에서 전사자의 약 80%는 대군이 맞붙는 대회전(大會戰)이 아니라, 정면 격돌에서 밀려 후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대오가 무너진 군대는 흩어져 제각각 도망치고 그 과정에서 전열을 갖춘 상대에게 도륙되는 것이다.

현대 선거전도 이와 비슷하다. 이미 졌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은 투표 의지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실제는 백중세이거나 이기고 있음에도 '지고 있다' '졌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고,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지게 된다. 대오를 갖춘 소수 유권자들(여론조사 전화에 꼬박꼬박 응답하는 자들)이 각개로 흩어진 다수 유권자들을 도륙하는 것이다. 드루킹과 그 일당들이 여론 조작에 그토록 매달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조국 수호' 집회 때 주최 측과 친정부 언론들은 "100만 명, 200만 명이 모였다"고 예사로 말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분석한 자료들은 당시 집회 참가자가 적을 때는 2만여 명, 많을 때는 10만 명 안팎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여론조사나 시위에서는 흔히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의 목소리로 둔갑한다.

4월 15일, 만 가지 일을 제쳐두고라도 투표소로 나가야 한다. 투표하지 않는다면 진짜 민의(民意)는 제각각 흩어져 도륙될 뿐이다. 그렇게 되면 죄 지은 정치인들은 면죄부를 받고, 죄 없는 국민이 대신 벌을 받는다. 실직, 가난, 위험, 멸시, 불공정, 압제 같은 형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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