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박천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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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이가 15~20살 정도 차이 나는 누나(?)에게 혼이 났던 적이 있다.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당시 '국민학교' 1~2학년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동네 슈퍼마켓에서 식료품 몇 가지를 사 오는 일이었다. 동네 슈퍼치고는 꽤 큰 규모여서 아르바이트생들도 있었다.

작은 쪽지에 적힌 심부름 목록들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계산대에 있던 '아줌마'는 역정을 냈다.

"얘! 넌 내가 아줌마로 보이니? 누나라고 해야지! 다시 말해봐!"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완수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였다.

"누나, 이거 얼마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부터는 어른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른=아줌마, 아저씨'라는 공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줌마'를 '누나'로 바꿔 호칭하고 난 몇 년 후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뀌었으며, '슈퍼마켓'은 사라지고 '편의점'과 '마트'가 생겨났다. 역할은 비슷하거나 그대로지만 호칭이 바뀌는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세대 간의 구분이 모호한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가까운 예로 한국에서 '청년'이라고 지칭하는 세대는 몇 살일까? 재미있게도 지역사회마다 구분하는 기준이 다르다.

통계적으로는 만 30세라고 말하지만, 지역에 따라 만 39세까지 적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세대 구분에 대한 문제는 개인의 인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소위 말하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청년, 중년, 노년의 역할과 수행능력이 변하면서 스스로의 세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50년 UN에서는 노년의 기준을 65세로 잡았었으나, 2015년에는 청년을 18~65세, 중년을 66~79세, 노년을 80세 이후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범세계적으로 고령사회에 접어들며 기존의 기준이 통용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예술계를 예로 들어보자. 정책적으로 예술계는 청년작가, 중견작가, 원로작가로 세대를 구분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에 지역별, 세대별 정책 또한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근래에는 청년작가에 대한 정책이나 공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나, 중장년층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아직도 미비하다. 하물며 중장년층 작가들은 청년작가 시기에도 정책적으로 소외되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나라의 경제성장과 관련된 불가피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정책적 측면에서는 세대 구분의 불분명한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통합적으로 세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종 계층에 따라 세대를 나누는 세밀한 기준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다. 먼저 이에 대한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효과적인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에 맞춰 적절한 기준에 대한 이름을 부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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