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제4의 벽'을 넘어서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길고 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보이는 북한 신의주. 단교에 오르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다리가 보인다. 압록강단교(鴨綠江断桥)와 중조우의교(中朝友谊桥)다. 압록강단교는 1950년 미군이 중공군의 참전을 막기 위해 이 다리를 폭격하면서 중국 쪽 교각만 남고 다리가 끊어졌다. 그래서 현재 단동과 북한을 연결하는 다리는 중조우의교 하나다.

압록강단교 끝자락에서 분단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 길 위에 뿌려졌을 수많은 눈물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도 단절된 보이지 않는 가상의 벽이 존재한다. 이것을 연극 용어로 '제4의 벽'이라고 불렀다. 연극이론가 드니 디드로가 주창하였다.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는 허구가 아닌 현실의 세계라는 믿음을 주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연기자와 관객은 서로를 의식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되며, 현실 인 것처럼 연기해야 한다. 배우와 관객 사이에도 철저하게 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제4의 벽을 통해 연극을 관람하고, 영화와 관객 사이에는 스크린이, TV와 시청자 사이에는 화면이 제4의 벽 역할을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연기자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스크린을 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존재한다. 특히, 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에서 연기자는 진짜 범인을 직시하듯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연극 공연에서는 수동적이었던 관객을 공연에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과 교감하며 능동적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극 속의 역할에서 벗어나 또 다른 환경에서 흐름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배우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명확한 목적이 있다면 그 소통은 즐겁다.

그렇다. 결국 그 벽은 목적과 이유에서 비롯된 '관계' 속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 관계 가운데 결코 쉬울 수 없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이며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어떠한 벽이든 그 벽을 허물어 간다는 것. 그것 또한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목적의 중심에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 '너'가 아닌 '나'의 문제임을 알아차리는 힘이 있다면 그 벽을 조금씩 허물고 열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비밀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생각을 보완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인연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의미이며 행복이다. 하지만 관계에도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하다. 허물이 있더라도 관계를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며 채워 간다면 허물조차도 가려줄 수 있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풀어야 할 관계가 있다면 마음을 더 풀어보자. 만나지 못하는 혈족에 대한 그리움과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벽과 경계가 사라지고 꽃이 피는 날까지. 문을 활짝 열고 상쾌한 바람이 채워질 때 까지 환기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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