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산은 산이고 …'와 '색즉시공 …'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문화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문화부

 

작고하신 지 제법 됐으나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큰스님으로 남아 있는 성철 스님께서 오랜 기간 수행하신 후 도달하신 큰 깨달음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정리하여 말씀하셨다. 당시 '그게 무슨 큰 깨달음이야?'라는 의문과 빈정거림의 경박한 말을 했던 사람도 다소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이 말씀은 큰 공감과 더불어 필요할 때마다 회자되고 있다.

지금도 창밖에 보이는 산은 산이고, 학교 옆 조산천을 흐르는 물은 물이다. 그런데 마음이 혼란하여 산을 산으로 못 보는 사람이 있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면목은 아니기에 성철 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말의 핵심은 '보이는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형성된 모습이다. 따라서 늘 생성 소멸되는 임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니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누구나 맑고 순수한 어린 시절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또렷하고 정확하게 보다가, 나이 들면서 육체적 정신적 욕망과 사회적 의무와 성취 욕구 때문에 점점 왜곡하여 보면서 혼란한 시기로 접어드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다가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의 원인을 찾는 노력을 하여 그 고통으로부터 차츰 벗어나면서 산과 물을 포함한 주변 모든 사물과 사람 그리고 사건을 다시 깊고 또렷하게 보게 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또한 산과 물의 표면만 보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단계를 거치면서 사물들과 사건들이 대단히 복잡한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성숙한 생각과 몸동작으로 매사를 신중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성공시켜 자신과 타인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도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문제는 결국 내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와 일치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각 종교의 경전에는 이런 인식의 문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원조로 삼아 오늘날까지 이어온 서양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서양철학의 두 큰 산맥인 관념론과 경험론을 종합한 것으로서,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외부 세계에 관한 감각 정보들이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 종합되어 인식되는 과정과 한계를 알려준다.

서양에서 발달시킨 자연과학이 우리의 인지 세계에 기여한 공로도 대단히 크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실제로는 둥글고,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며 해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인식의 대단한 전환이었다.

뉴튼의 만유인력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오감에 와 닿는 세계 안에 든, 오감을 초월한 원리에 대한 설명으로서 우리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누릴 수 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서는 인류가 아직 제대로 소화하지도 활용하지도 못 하고 있다.

오늘날 발달된 천체물리학과 관측 기구 덕분에 가시광선으로는 존재 사물의 4%밖에 볼 수 없고, 적외선이나 자외선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거나 이들로도 관측할 수 없는 암흑물질이 22%나 되며, 나머지 74%는 에너지 상태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오감으로 통교하면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참으로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란 말 그대로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보이는 사물 이면의 복잡성을 감안하면서도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인지하는 것을 존중해야 맑고 청아하게 진행될 것이다. 이래저래 정신을 차리고 겸손하게 살아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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