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향촌동에서 막걸리를 마셨다…'향촌동 소야곡'

대구 중구 향촌동(香村洞).

지금은 낡은 상가들이 밀집해 있고, 사람의 발길도 뜸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문인묵객들이 '향촌동 시대'를 풍미하던 거리다.

구상 시인이 단골로 묵던 화월여관 골목 앞에는 화가 이중섭이 드나들던 백록다방이 있고, 북성로 쪽 모퉁이에 이효상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모나미 다방이 있었다. 오상순 김팔봉 마해송 조지훈 박두진 정비석 최인욱 방기환 등 문인과 작곡가 김동진, 화가 이중섭 등 6·25 전란을 피해 온 피란작가들의 '기항지'였다.

전란의 여파와 가난과 피폐한 삶 속에서도 술이 익었고, 기인들의 일탈과, 불운한 시대에 대한 문인들의 항변이 술잔에서 출렁거렸다.

'향촌동 소야곡'(시와반시 펴냄)은 1950년 전란 속에서 꽃핀 화려한 대구 문단의 르네상스 시대부터 60년대, 70년대 질곡의 시대를 관류하는 문인들의 낭만일화를 그린 책이다. 자칫 잊힐 그 시대 귀중한 옛 사진을 발굴하고, 현장을 답사하고, 노(老) 작가들의 기억을 채록해 묶은 것이다.

선술집과 다방, 음악실, 골목에 스며든 그 시대 예술가들의 고뇌와 기행에 가까운 일화들이 추억을 넘어 하나의 역사로 다가온다.

후미진 골목에 서서 무상(無常)한 웃음소리를 터뜨리는 시인 구상, 전란으로 '국경의 밤'의 시인 김동환과 생이별을 한 소설가 최정희, 피 끓는 청년 장교 시인 전재수가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가 벌인 희대의 '권총사건', 술에 취해 신천교에서 떨어진 목인 전상렬 시인의 호주행보(好酒行步),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라는 애모의 시구를 읊는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의 애모, '깡패시인' 박용주의 활….그들의 예술과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 고뇌가 옛 사진들과 함께 흠뻑 녹아 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간 마해송 등 피란문인들은 대구의 석류나무집과 말대가리집에서 울리던 그리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명동의 문예살롱과 퇴계로의 포엠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낭만과 열정, 그리고 취흥으로 전란의 아픔을 달래던 향촌동 시대를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4·19 혁명을 거쳐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자 향촌동의 풍경도 달라졌다. 문인묵객들은 60년대의 고뇌를 안고 혹톨과 무랑루즈로, 그리고 동성로와 봉산동·삼덕동으로 흩어졌다. 70년대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문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무대는 더욱 분산되고, 문학의 기층도 그만큼 다변화됐다.

'향촌동 소야곡'은 지난해 매일신문 조향래 문화부장이 문화면에 인기리에 연재한 내용을 다듬고 보충해서 책으로 새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당시 문인들이 뿌려 놓은 일화는 한국문단사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다."며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적잖은 세월 문학판을 기웃거린 기자가 대구문단에 바치는 소야곡"이라고 말했다. 181쪽. 1만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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