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양쪽 다리 마비 홍옥선 씨

7년간 외출 전혀 못해 "누가 나를 도와줄까"

양쪽 다리가 모두 마비된 홍옥선(가명·84) 씨 주변에는 작은 대야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움직일 수 없어 거실 한구석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홍 씨가 용변 처리, 설거지, 손 씻기 등 각각의 용도로 대야를 놓아둔 것이다. 평소에는 하의도 입지 않고 생활하고 바닥에는 온통 신문지를 깔아 둔다.

◆거동불편한 노모, 딸들은 우울증과 대인기피

홍 씨가 걷지 못하게 된 건 7년 전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려고 병원을 찾으면서부터다. 수술 전 골다공증 약을 먹었는데 고열과 심한 통증이 찾아왔고 그 후로 무릎 아래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과다투약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지만 책임소재를 제대로 가리지 못한 채 그때부터 집 안에서만 생활하게 됐다. 홍 씨는 "7년간 외출 한 번 한 적 없이 모든 걸 포기하고 집안에서만 있습니다. 누가 저를 도와주겠습니까"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때부터 병원에 대한 거부감은 극에 달했다.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됨에도 진단서를 떼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조차 거부해 도움을 못 받고 있다. 요양병원에 가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홍 씨는 저장강박증도 가지고 있다. 온갖 물건을 버리지 않고 집 안에 쌓아두는 문제 때문에 원래 살던 비가 새는 허름한 주택은 버려두다시피 한 채 임시 거처를 구했다. 이마저 옮겨 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어지러워지고 있다.

같이 살면서 홍 씨를 돌봐야 할 딸들도 정신건강이 좋지 않다. 홍 씨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였고 가족 모두가 끔찍한 폭력을 20여 년 동안 견디며 살았다. 홍 씨의 셋째 딸 박민주(가명·46) 씨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가정폭력에 늘 노출돼 있었다. 딸 넷 중 세 명이 성인이 되고 나서 하나둘 정신병이 발병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심각했던 건 첫째 딸 박금선(가명·50) 씨였다. 25년쯤 전부터 집에 있는 물건이나 창문 등을 모두 부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더니 나중에는 나체로 밖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뒤늦게 찾은 병원에서 심각한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을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둘째와 넷째 딸도 비슷한 시기에 우울증, 대인기피증, 강박장애 등이 생겨 은둔형 외톨이처럼 살고 있다.

◆오랜 기간 복지혜택 못 받은 채 셋째 딸 희생으로 생활

아픈 가족들을 돌보는 것은 홀로 정신이 온전한 민주 씨의 몫이었다. 민주 씨는 "너무 아픈 가정사를 남편이 알게 되는 것도 부담스러워 몰래 가족들을 도와준 지 19년째다. 5년 전까지 경제활동을 했지만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해 그 돈을 써본 적이 없다. 늘 남편 몰래 엄마에게 다 부쳐왔고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민주 씨는 "지난달 임시 거처로 마련한 주택도 남편 돈을 가져다 쓴 상황이라 곧 메워야 한다. 말 못할 스트레스 때문에 늘 어깨가 아프고 목도 좌우로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홍 씨 가족은 정신질환 등으로 20년 이상 힘겹게 살고 있지만 오랜 기간 사회복지망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민주 씨는 "정신병 같은 문제로도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그나마 10년 전 첫째 언니가 병원을 옮긴 게 계기가 되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인정받아 매월 50여만원을 받게 됐다. 거기에 내가 조금 보태주는 돈으로 최소한의 생활만 해왔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한 일은 지난 3월에 찾아왔다. 우울증 증세가 가장 심했던 금선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민주 씨는 "언니가 늘 돈 문제로 걱정이 많았고 가족들 간에 이로 인한 다툼도 잦았다. 내가 좀 더 손을 내밀어 주고 따듯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사건 이후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민주 씨는 "둘째 언니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고 넷째는 자해까지 했다.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가족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면 좋겠지만 금전적 문제 때문에 약만 먹고 있다"고 했다.

힘겨운 현실 탓에 가족들 간 다툼도 여전히 잦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선 씨가 사망하면서 기초생활수급이 중단됐고 현재 다시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당장은 홍 씨가 받는 기초연금 20만원이 소득의 전부다.

가정사를 담담히 얘기하던 민주 씨는 끝내 흐느끼며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이런 일까지 생기고 나니 내 힘으로는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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