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보이저스

영화 '보이저스'의 한 장면 영화 '보이저스'의 한 장면

86년간 한 우주선에 지내기 위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26일 개봉한 '보이저스'(감독 닐 버거)는 이런 고민으로 설계된 봉인이 풀리면서 인간의 야만적 본성이 드러나는 SF영화다.

서기 2063년 지구는 온난화로 멸망의 위기를 맞는다. 인류의 새로운 이주지를 개척하기 위해 우성 인자로 태어난 아이 30명을 태운 우주선이 '제2의 지구' 행성으로 떠난다. 이 아이들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을 때 도착하는 86년의 긴 항해 기간이다.

아이들은 식사할 때 정체불명의 액체 '블루'를 마신다. 소화를 돕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감정과 성욕을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 자칫 무분별한 성관계로 우주선 내 인구가 늘어나 식량이 고갈되거나, 폭력성이 드러나 항해가 위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영화 '보이저스'의 한 장면 영화 '보이저스'의 한 장면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성숙한 청년 대원이 된다. 크리스토퍼(타이 셰리던)가 '블루'의 성분을 알게 된 후 잭(핀 화이트헤드)과 함께 마시지 않으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혈기 왕성한 젊은 두 청년의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보이저스'는 '리미트리스'(2011), '다이버전트'(2014)를 연출한 닐 버거 감독의 작품이다. 인간의 두뇌를 100% 가동시키면서 벌어지는 일('리미트리스')이나 분파로 나눠진 미래 세계('다이버전트') 등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 그가 우주선을 무대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실험을 한다.

아이들은 지구에 대한 향수나 전쟁과 약육강식 등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교육받았다. 동일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실험체들이 태초의 인간이 되었을 때 어떤 결정들을 내리는지를 SF 스릴러로 보여준다.

영화 '보이저스'의 한 장면 영화 '보이저스'의 한 장면

영화는 성욕의 봉인이 풀려버린 젊은 대원들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지만, 실제는 선상반란을 그린 정치성이 강한 영화다.

우주선의 유일한 성인 리처드(콜린 패럴)가 사고로 죽으면서 10대 대원들이 대장을 선출한다. 크리스토퍼가 대장이 되지만, 잭은 사사건건 그와 맞서면서 세력을 키운다. 그리고 추종자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킨다.

'보이저스'는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의 SF 버전이다.

'파리대왕'은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이 질서를 파괴하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폭력으로 치닫는 과정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원시 야만으로 퇴행하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의 랠프와 잭은 '보이저스'에서 크리스토퍼와 잭으로 나뉘어 대립한다. 크리스토퍼가 이성이 강한 선한 편이라면 잭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시키는 악의 화신이다.

특히 선동 정치의 모든 요소를 태생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바로 대중의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이다. 에일리언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폭력을 교묘하게 포장하고, 대중을 위해 무제한적인 선심을 풀면서 궁극적으로 그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토퍼의 대응은 한계가 명확하다. 일일이 대중을 이해시켜야 하는 절차는 극한 상황에서 무력할 뿐이다. 마치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것만큼이나 소모적이며 불필요한 일이다.

영화 '보이저스'의 한 장면 영화 '보이저스'의 한 장면

'보이저스'는 인간 내면의 사악한 본성과 이를 다스리는 이성의 대립이라는 인류사를 SF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 속에 우매한 군중심리도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리더의 자질에 대한 성찰도 함께 드러내주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인류사의 대립이지만, 그 묘사가 치밀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 흠이다. '파리대왕'은 생존이라는 극도의 환경을 상정하고 있다. 이는 랠프와 잭이 공통적으로 인지하는 위험이다. 그러나 '보이저스'는 이런 공통된 위험이 없다. 외계인의 존재 위협은 잭의 추종자들만 느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단의 무리들이 저지른 철없는 반란으로 설정되면서 '파리대왕'의 집단 광기와 생존의 처절함은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크리스토퍼의 무기력한 리더십은 관객의 '발암요소'로 작용해 보는 내내 답답하고 용이 쓰인다. 차라리 고답적인 정치성을 걷어내고, 성욕과 질투, 시기와 소유욕 등 인간의 사적인 욕망을 대립각으로 그려냈더라면 더 색다른 SF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108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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