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어스 리뷰

영화 '어스' 영화 '어스'

'나는 누구인가?'

이 같은 근원적 물음을 다룬 공포영화들이 많았다. 평행이론과 도플갱어(닮은 분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 그랬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은 타자 또는 적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걸트영화의 걸작이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좀비들이 인간들을 공격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가옥에 피신한다. 철저한 공간의 구분. 밖은 공포와 절망의 공간이고, 내부는 안전한 울타리이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1960년대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매카시 선풍으로 인한 철저한 이분적 사고. 모르는 타자가 아닌 내가 잘 아는 이웃이고 친구가 전화(轉化)돼 나타났을 때 진정한 공포가 좀비의 배경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고립된 사람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갈등한다. 백인 부부는 더 깊이 지하실로 숨자고 고집하고, 흑인청년은 터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하로 가는 것은 소통이 불가능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반대한다. 당시 미국인들의 비이성적 불안과 공포를 은유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침이 되자 흑인은 창가에 서 있다가 진압하러 온 경찰의 총에 숨져버린다. 도대체 누가 적이란 말인가?

영화 '어스' 영화 '어스'

'우리는 누구인가?'

영화 '어스'의 광고카피다. 조던 필 감독은 영화 '겟 아웃'(2017)으로 큰 주목을 받은 코미디언 출신 감독이다. '겟 아웃'은 미국에 아직도 만연한 인종 차별을 공포영화로 기발하게 풀어내 격찬을 받았다. 여러 장치들을 통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신선함을 주었다.

'어스' 역시 여느 공포영화와 달리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품고 있으며 스타일은 세련되고 지적인 공포영화다.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 해변. 한 가족이 놀이공원에 온다. 어린 애들레이드는 아버지가 한 눈 파는 사이 '공포의 집'에 들어간다. '영혼의 여행, 당신을 찾으세요'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거울로 가득 찬 방에서 놀라운 소녀와 만난다. 바로 자신과 똑같이 닮은 도플갱어다.

현재로 넘어와 성인이 된 애들레이드(루피타 뇽)는 남편 게이브(윈스턴 듀크), 딸 조라(샤하디 라이트 조셉), 아들 제이슨(에반 알렉스)과 함께 산타 크루즈 해변 별장을 찾는다. 어린 시절 악몽이 되살아나 불안한 그녀 앞에 빨간 옷을 입은 한 가족이 나타난다.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그들 자신이었던 것이다.

우리(us)를 뜻하는 '어스'는 나를 공격하는 나가 아닌, 우리를 공격하는 우리로 진화된 공포영화다. 반응속도도 느리고, 전염성도 거친 좀비와 달리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이미 고도로 복제된 대상이 우리 가족을 공격하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적대적 시선과 외부에 대한 공포가 이미 선을 넘어 내부에 들어온 그들 자신이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

미국 사회의 부조리와 그들이 이미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을 은유한다. 애들레이드가 자신을 공격하는 그들에게 "누구냐?"고 묻자 "우리는 미국인이다"라고 답하는 것이나, 어스(US)가 미국(US, the United States)을 연상시키는 것도 그것이다.

영화 '어스' 영화 '어스'

1986년 또한 의미가 있는 시대 설정이다. "1천200만개의 눈과 9천200만개의 이빨을 가진 자"들이 산타 모니카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인간 띠 캠페인을 벌이던 해다. 빈곤 퇴치를 위한 것이지만, 영화는 신자유주의와 그때 초래된 불평등과 양극화를 현재의 공포로 꼬집기도 한다.

1986년 인간 띠 잇기로 시작해서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거대한 장벽을 그리며 끝난다. 외부를 모두 적으로 인식하고, 인공적 장벽을 세워 막으려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는 피할 집이 있지만, 이들은 갈 곳이 없다. 내가 곧 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몇 곳에 등장하는 성경 예레미아 11장 11절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에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은 이 재앙이 신을 거역한 10절의 대가로 필연적임을 강조한다.

'겟 아웃'처럼 인종 차별을 내세우지 않지만, 흑인 중심적인 시선은 엿보인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흑인이 죽어버리는 허무함(?)은 없다.

비교적 묵직함 함의들을 품고 있지만, '겟 아웃'처럼 연출의 세련미와 경쾌함도 잊지 않는다. 죽어가는 백인 여성이 음성인식 장치에게 "경찰을 불러줘"라고 하자 힙합그룹 N.W.A의 "'F**k The Police'(경찰 엿먹어)를 불러 드릴께요"라는 장면이나, 누가 더 많이 죽였는지를 가지고 운전대 실랑이 하는 모습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호두까기 인형'의 곡에 맞춰 발레하는 모습으로 둘을 극명하게 대비한 것도 애잔함을 자아내는 시퀀스다.

힙합과 합창, 음울한 사운드, 천정을 불안하게 두드리는 빗소리 등 음악과 결합된 사운드들이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블랙 팬서'의 루피타 뇽의 연기가 돋보인다. 공포에 저린 얼굴이 일순간 싸늘한 미소로 번질 때 관객을 경악하게 한다.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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