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죽도록 먹고 마시는 심리학 /알렉산드라 w. 로그 지음/ 행복한숲 펴냄

우리는 고칼로리, 고지방, 고염분, 고당도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걸 안다. 그런데도 한밤에 치킨을 먹고, 간식으로 떡볶이를 먹고, 짬뽕 국물을 들이킨다. 달콤과 짭짤함이 만난 '단짠'은 거부하기 어려운 강력한 맛이다. 건강하고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닌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을 찾는 심리는 무엇일까?행동과학자 알렉산드라 w. 로그는 '죽도록 먹고 마시는 심리학'에서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어떻게 먹어야 할까뉴욕시립대학원 교수인 지은이는 과학과 심리학을 접목한 연구로 명성을 쌓았다. 어린 시절 극도로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던 그는 맛을 매우 잘 느끼고, 특히 쓴맛에 유독 민감한 '초미각가'다.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에 대한 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뉴욕시립대에서 '먹고 마시는 심리학' 강의를 시작했고, 큰 인기를 끌면서 책으로 발간하게 됐다.이 책은 먹는 것과 관련된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다양한 실험 결과를 근거로 분석한 실험 심리서다. 먹는 것으로 체중 조절과 건강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책에서 분석된 행동 심리가 중요한 팁이 될 수 있다.다양한 음식이 넘쳐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동일하게 누리지는 못한다. 과거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과는 달리 먹거리에 대한 쉬운 접근성으로 오히려 과도하게 먹으며 비만과 질병을 낳고 있다. 먹을 것은 풍요로워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먹어야할지 고민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지은이는 '슈퍼테이스터'(초미각자)라는 특이한 이력을 바탕으로 먹는 것에 대한 행동 심리를 13가지 주제로 분석했다. 배고픔과 미각처럼 기본적인 먹고 마시는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이 폭식증, 거식증과 같은 섭식 장애, 비만, 과식, 알코올 중독, 당뇨병, 흡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장 최신의 과학적인 연구들을 책에 실었다. 또 까다로운 식성을 없앤다거나 체중 감량의 문제에 뻔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먹고 마시는 행동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것을 먹고 마셔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음식 선호는 유전될까 지은이는 먹고 마시는 것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배고픔, 포만감, 갈증, 미각과 후각, 음식 선호와 음식 혐오, 충동과 자제력 등 다양한 요인이라 설명한다.배고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여러가지다. 요리프로그램을 보면 갑자기 식욕이 발동하는 이유는 음식을 보면 침이 나오고,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인슐린은 혈당 수치를 낮추고 배고픔을 느끼게 한다. 배고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비단 인슐린뿐만 아니라 다양하다. 날씨가 추우면 체온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열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추울수록 많이 먹는다. 당도 높은 음식을 먹으면 인슐린 분비가 왕성해져 혈당이 낮아지고 배고픔을 더 느끼게 된다. 반대로 껌을 씹거나 음식을 입에서 더 많이 씹으면 배고픔을 덜 느끼게 된다.맛과 냄새는 우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려낼 때 인체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생존과 직결돼있다고 분석한다. 우리의 미각과 후각은 감정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더 좋은 맛이 기억에 남고, 나이가 들수록 후각 민감도가 떨어진다.또 음식 선호와 혐오가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과거 생존에 유익했던 고당도, 고칼로리, 고지방 음식을 선호했던 것을 들어 설명한다. 단맛이나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선호는 생존과 관련이 돼있다. 먹을 것이 풍요롭지 않았던 시절에는 칼로리를 마음껏 얻는 것이 불가능했던 만큼 태생적으로 단맛과 고칼로리를 선호했다. 짠맛도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던 염분 섭취가 자연환경에서는 소금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탓에 인간이 선호하는 맛이 됐다.책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다룬다. 폭식증, 거식증, 과식, 계절성 우울증, 야식증후군 같은 섭식 장애부터 비만, 당뇨, 심각한 알코올중독, 니코틴 중독, 그리고 여성의 생식과 섭식에 대해 다룬다. 372쪽. 1만8천원

2019-07-04 11:13:51

[반갑다 새책]그리고 나는 걸었다/조성순 지음/행복한책읽기 펴냄

'한 걸음/두 걸음/마음 낮추고/야고보께 나아갑니다(중략)고요하던 항아리에/물결이 소용돌이칩니다/흙탕물이 끓어오릅니다(중략)한 걸음/두 걸음/하루/또 하루/정화되기를 기원합니다'책은 시인 조성순의 산티아고 순례에 따른 세 번째 시집으로 2016년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을 메고 지구촌의 여러 오지와 고산을 다녀온 지은이의 경험이 녹아 있다. 프랑스에서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를 거쳐 대서양 북단 묵시아까지 920km남짓 걸었던 지은이의 경험은 길이 시인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와 시가 되고, 힘들게 옮겼던 걸음걸음들이 시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그렇게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으며 만났던 사람들, 자연과 생각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집에는 시뿐 아니라 시인이 직접 찍은 산티아고 순례 길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지은이의 시작노트도 함께 있어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들을 풍성하게 해준다.사실 길 위에서, 길을 걷다가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 행운이 행복과 직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은총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서서히, 점진적으로 구도자를 닮은 모습으로 변모해 간다.'저나 나나/알고 보면/집 나온 달팽이인데/뿔 내리고 조심조심/야고보께 나아가야했는데/뿔 두 개로 뻗대느라/마음의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구도자는 결코 타자의 도움조차 거부하는 그런 고집불통의 냉혈인간이 아니다. '작은 샘물'에도 만족하고 감사 드릴 줄 아는, 그리하여 타자를 만나면 그 타자가 곧 지인이 되고 은인이 되는 것을, 그래서 지은이는 지친 순례 길에서도 결코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더더욱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135쪽, 1만2천원

2019-07-04 11:09:15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서평]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나탈리 코프만 켈리파 지음/ 이원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여성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중요한 결정에서는 늘 배제되었다.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오직 자손을 낳아 기르는 것만이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길이 막혀 있었던 때, 지성과 천재성, 대담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여성들도 많다.이 책은 우리가 기억해야할 당당한 여성 100인에 대한 헌정서다. 프랑스의 예술사학자인 지은이 나탈린 코프만 켈리파는 최초의 여성 '루시'가 존재했던 320만년 전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시간을 살펴 유명 인물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빛난 삶을 산 여성 100인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신분의 장벽 넘어 자기 실현아그노디케는 역사상 최초의 산부인과 의사라 할 수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오로지 남성만이 산부인과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아그노디케는 남장을 하고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의술을 익혔다. 아그노디케는 의료행위를 하다 법을 어긴 죄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여성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법원은 여성에게도 의술의 문을 열도록 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여성 최초의 자연과학자다. 1699년 남성만이 예술과 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때다. 그녀는 유충과 성충 사이의 발육단계인 님프라고 불리우는 번데기를 관찰하는데 온통 관심이 많았다.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과 생활상을 그림으로 표현해 곤충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픽션 영화 '양배추 요정'을 찍은 알리스 기는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천 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고 제7 예술의 세계를 열었지만 영화계에서 잊혔다. 해변에서 몸에 붙이는 수영복을 입은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아네트 켈러먼 덕분에 여성들은 코르셋과 모직 드레스, 모자가 없이도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남성과 동등한 여성 위해 투쟁"가장 억압받는 남성도 아내라는 존재를 억압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아내는 프롤레타리아 중의 프롤레타리아다." 1830년 플로라 트리스탕은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권리보장이 대두되던 때, 여성 노동자는 '노동자'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모든 노동자가 연합할 것을 강조했던 플로라는 집회를 여는 등 활동하다 열병으로 사망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889년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여성이다. 과격한 방식으로 불을 지르고 건물을 박살내는 등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남편과 딸 둘도 모두 여성참정권 운동에 동참했던 대단한 가족이었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수품 공장에서 여성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보수 정치권의 여성참정권을 얻어냈다. 1921년, 마거릿 생어는 피임에 대해 알리며 여성의 신체 자유를 외쳤다. 여성의 몸이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는 때, 피임 클리닉을 열고 산아제한 연맹을 창설해 여성의 몸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게 도왔다. ◆비웃음 견디며 불태운 학구열계몽주의 과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는 1724년 웃음거리가 되면서도 뉴튼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시대의 요구에 맞춰 19세 나이로 결혼해 아이 셋을 낳은 뒤 의무를 다했다며 이혼했고, 이후 철학자 볼테르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며 지적 탐구에 매진했다. 여성이 지성을 지니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같은 여성도 비웃던 때, 그녀는 과학 논문을 쓰고 이태리 볼로냐 대학 교수가 됐다. 1832년, 오로르 뒤팽은 소설을 쓰기 위해 남성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해야 했다. 문학계에 들어가기 위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려야만 했던 때다. '앵디아나' '발랑틴' '렐리아' 등 명작을 남겼다. 1933년, 섹스 심벌 헤디 라마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개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수식어로 유명했던 그녀는 오늘날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발명했으나 세상이 그녀에게 기대한 것은 아름다운 외모였고, 기술 발명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1953년 남성 연구원들과 함께 DNA 구조를 알아냈다. 남성 연구원들이 훗날 노벨의학상을 받게 될 논문을 발표할 때, 그녀는 연구에서 손을 떼라는 편지를 받고 떠나야했다. ◆아름다운 세상 연 선한 마음들이레나 센들레로바는 전쟁 중인 1939년 바르샤바 게토에서 유대인 어린이 2천500명을 목숨 걸고 구해냈다. 이레나는 가짜 출생증명서를 만들어주거나 안전한 곳으로 아이들을 보내 보호했다. 구출한 아이들의 신원을 기록해두었다가 전후에 아이들이 실제 신원과 가족을 찾을 수 있게 있도록 했다. 로자 파크스는 'NO'라는 한마디로 세계적인 인권운동을 일으켰다. '흑인 인종분리법'과 'KKK단이 활개치던 1955년, 로자는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한 버스 운전사에게 "싫어요"라는 한마디를 한 것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녀가 던진 거부 한마디에 미국에서는 모든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1967년, 캐서린 스위처는 마라톤에 참가해 여성도 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성은 800m 이상 달릴 수 없다고 당연히 여기지던 때, 캐서린은 'K.V. 스위처'라는 이니셜로 참가해 주변의 쏟아지는 욕설을 참고 완주에 성공했다. 2009년 열한 살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탈레반 지하의 인권실태를 고발했다. 부르카 속에 갇혀 학교에 갈 권리도, 공부할 권리도 빼앗긴 현실을 옮긴 말랄라의 글이 주목받아 17세 나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344쪽 3만3천원.

2019-07-03 16:55:22

소설가 조정래. 매일신문 DB

조정래 '천년의 질문' 발표…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5위

소설가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이 화제다.2일 오전 조정래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이날 그는 '천년의 질문,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했다.한편 조정래는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대표작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등이 있다. 신작 '천년의 질문'은 시사주간지 기자를 중심으로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되묻는 소설이다.'천년의 질문'은 지난달 21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2019-07-02 09:24:36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⑥]박영귀 작

"아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이것을 씹어 먹어"하며 나 보고 멸치를 집게로 집어 소포에 넣어 줄 수 없느냐고 집게를 나한테 내민다. 나는 화를 버럭 내며 "아니야! 이것은 내 일이 아니야!" 하며 거절했다. 급기야 완전무장(?)을 한 청소부가 그 소포를 처리했다.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여름에 수취인이 없어 우체부가 보관하고 있던 소포 하나가 터져 바닥에 흥건히 액체가 고여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우체국 전체가 난리가 났다. 한국 시골에서 김치를 비닐봉지에 넣어 소포로 보냈는데 높은 온도로 발효가 되어 비닐봉지가 터진 것이다.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 번도 이런 냄새가 없던 곳이었기에 더 했다. 한국에서 온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왔다. 괜스레 죄인이 된 기분이다. 이게 뭐냐고 직원들이 물었다. 한국에 갔다 온 직원은 독가스를 만드는 핵폭탄이라고 킬킬거린다.그들이 킬킬대는 것은 아무런 마음 없이 하는 장난이지만, 나와 집사람에게는 심각한 스트레스였다.내 앞에서는 말은 안 하지만 그들이 꾹 참고 있는 게 있다. 멸치 사건 때, 누가 뒤에서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격지심인가 하고 그냥 흘려버린 게 있다. 보신탕 이야기다.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과 TV 방송에서는 연일 톱기사로 떠들어 댔다. 동남 아시아 사람들이 옥수수 밭에서 개를 잡아먹은 사건이다. 이곳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있는데 개를 죽이고 먹기까지 했으니 살인사건보다 더 크게 취급했다. 그 불똥이 중국과 한국 사람에게 튀고, 조그마한 나라, 만만한 한국이 제물이 되었다. 개 목을 밧줄로 묶어 나무에 달고 몽둥이로 때려잡는 사진을 나한테 보여 주었다. 나도 개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한국 전쟁 때 먹을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먹었다고 했다.너의 들은 먹을 것이 풍부한데도 다람쥐도 잡아먹고, 말도 잡아먹고, 새도 잡아먹지 않느냐 먹는 것 가지고 더 이야기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나와 집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들을 한 두 사람씩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도 같이하고 수시로 있는 파티에는 김치와 멸치조림를 달곰하게 요리해서 항상 맛을 보였다.처음에는 사람들이 겁을 내어 김치 조각을 칼로 썰어 한 조각 먹고 콜라 한 모금 마시던 백인들이 지금은 나보다 더 잘 먹는다. 그런데 멸치는 죽었다 깨어나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백인들처럼 신사는 없다.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고 남을 존중해 준다. 다만 소수의 성질 나쁜 자들이 문제다. 어디 가나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런 나쁜 사람 때문에 우체국과 백인을 상대로, 인종 차별로 E E O(균등한 고용기회 위원회)에 제소를 했다.수개월의 심의 끝에 나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영어문제로, 하고 싶은 표현을 제대로 못 해서다. 그러나 여러 백인이 도움으로서 이겼다.우체국은 철저한 군대식이다. 모든 게 선임 순이였다. 수습 기간을 지나 정식 직원이 되는 것도, 휴가도, 선임 순이였다. 다음에 정식 직원이 되는 것은 내 차례였지만 엉뚱한 백인이 먼저 되었다. 우체국장, 상급 기관에 건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권리를 위해 싸워야만 했다. 그동안 미국 생활에서 익힌 경험에서다. 여기서는 울지 않으면 젖을 안 준다.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요트공장에 다닐 때, 수습 기간이 끝내면 진급하기로 했지만, 진급이 안 되어 물어보니 담당자가 "너는 진급을 안 해줘도 만족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진급해 주기를 원하느냐?"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그래서 수없이 싸웠다. 싸워서 이길 때마다 나는 집사람을 부둥켜안았다. 집사람은 울었다. 타국에서 사람도, 언어도, 풍습이 다른 이곳에서는부둥켜안을 것은 집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잘 사는 것은 그들이 잘못과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포용하는 신사도에 있었다. 그 후로 백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틀려졌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유학생들과 교민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태극기를 보며 목사님의 피아노 반주로 애국가를 불렀다.그리고 추석에는 한국을 알리기 위한 행사를 열었다. 목사님이 주도하여 종교 구분 없이 참가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카고에서 한국무용단을, 미시간주에서 태권도 시범단을 초빙해, 이곳 백인들을 위시한 타민족에게 한국을 보여 주었다. '나에게 준비된 미래는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해 보았더니 무언가 되더라' 얼마 전에 우리 부부는 은퇴했다.긴 우체국 근무였다. 막내가 미 육군 장교로 한국 비무장 지대에서 근무하다 제대했다. 내가 사는 집에는 에이커 땅에 한국 대추나무, 나주 배나무, 감나무, 밤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가 뿌리를 박고 살고 있고, 딸 하나와 아들 둘도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여기를 떠날 수 없다.해마다 채송화, 분꽃, 봉숭아, 활련화, 석류꽃, 벚꽃, 백일홍, 나팔꽃, 과꽃, 할미꽃이 피며, 상추, 한국애호박, 한국 찰옥수수, 배추, 무, 쑥갓, 푸추, 고추, 마늘, 한국오이, 들깨, 대파를 매년 재배한다.겨울에는 건강 때문에 구매한 콘도가 하와이주 와이키키에 있어서 거기서 지낸다.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다.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살다가 가족에게 부담 안 되게 멋있게 잠자는 훈련을 며칠 한 다음 죽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유언서를 변호사 앞에서 작성했다.첫째로, 생명 보조 장치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죽은 다음 우리의 몸을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 (이 사항은 운전 면허증에도 명시되어 있다. 운전 면허증 사본 첨부) 한다는 내용이다. 마음이 가볍다. 이것을 우리 부부는 행복이라 말한다.여기에는 고국에 없는 동물이 있다. 주머니쥐다. 재미나는 동물이다. 행동이 느리고 고양이 크기 정도며 새끼들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어릴 적, 우리 가족을 생각나게 한다. 자기보다 큰 동물이나 움직이는 물체 앞에서는 처음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공격할 것처럼 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피하거나 죽은 시늉을 한다. 그래서 도로에 많이 죽어 있다. 자동차가 오면 적으로 생각하고 차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죽은 척해서 라고 한다.집사람은 나와 달리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자랐지만 부족한 먹이를 위해 발 버둥댄, 나를 위해 한마디 군소리 없이 따라 준 노고에 더욱 사랑을 느낀다. 디아벨리 변주곡을 듣다가 짜증 나니 입을 벌리고 공격할 것 같은 주머니쥐를 보고무심코 "너 디아벨리 변주곡을 먹을 줄 아느냐" 고 했다(나는 종교가 없어 스테인드글라스에 여과되지 않은 서울이 불면증이다)지난날을 잊지 못해 벌린 입에 쌀알을 퍼부어도 다물지 못하고 죽어있는 모습의 거북스럽고 답답한 표현은 빙판길, 연탄재를 아무리 뿌려도 내려가기 어려운 산동네 엥겔계수였다장떡과 사카린을 넣은 밀기울 빵을 신기하게 여긴 문학소녀 애인의 언어는 '시'였다애인의 언어에는 그런 떡과 빵은 없었다 별과 달, 꽃과 나비, 사랑과 그리움, 바다와 등대 따위의 환상뿐이었다사랑은 영원하다 했고 사랑만 있으면 어떠한 부족함도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애인은 식도가 긴 달동네 목구멍까지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다가 도중에 주저앉아 버렸다산동네 정상에서 내려가기 위해 젊은 관악산 바람들은 같은 시간대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움직였다 후진 골목길을 휘돌아 설레발쳤다. 굼뜬 쥐는 없었다.애인들의 변주는 쉽게 아물었다.지금도 달동네 가로등은 헛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가?'먹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서울'안녕하십니까〈끝〉

2019-07-01 18:00:00

박기옥 수필가, 김규련 수필문학상 수상

박기옥 수필가는 지난달 28일 한국수필문학관(관장 홍억선)에서 제4회 김규련 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는 한국수필가협회 장호병 이사장, 대구문인협회 박방희 회장, 대구수필가협회 신노우 회장, 김상립·허창옥·손숙희·이동민 수필가, 김태엽 교수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2019-06-29 08:31:52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강인욱 지음/흐름출판 펴냄

흔히 '고고학'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거나 어려운 학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혹은 흥미진진한 모험과 보물들이 가득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기도 한다.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은 막연한 고고학을 한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겪은 직접 체험과 그를 통해 깨달은 생생한 삶을 지혜가 녹여 풀어낸다.◆유물로부터 시작되는 인문학, 고고학고고학자 강인욱 교수가 지난 30여 년간 발굴해온 세계 유적들에 얽힌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폭넓은 시각을 가진 현장 고고학자'라는 유홍준 교수의 추천평처럼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직접 발굴을 주도해온 현장의 경험이 풍부한 고고학자다. 책은 지은이가 고고학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1990년대 벌교 조개무지의 발굴에서부터 발해 성터에서 발견된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갈색 토기, 시베리아의 움무덤에서 발굴한 자작나무로 뒤덮인 이름 없는 유해, 카자흐스탄의 황금인간에 이르기까지, 놀라우면서도 흥미롭고 때론 감동적이기까지 한 발굴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이 책 속에는 무덤, 불, 유물 위조, 고고학자의 실수, 전쟁, 황금유물 같은 고고학에서 익숙하게 다루어지는 테마들이 있는가 하면, 향기, 음악, 술, 색(色), 문신 같은 생소한 주제들도 포함돼 있다. 심지어 마약, 돼지고기, 젓갈 등은 짐작하기 힘든 주제들도 등장한다.동시에 고고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예술, 음악, 문학, 심지어 한의학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초월한 인문학적 사고를 펼친다. 지은이는 고고학이 단순히 유물의 진위 여부를 가리거나 연대를 밝히는 것에 국한된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학문이라 말한다. "고고학은 쉽게 설명하면, 유물을 연구해서 과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지식, 문화 등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그렇게 과거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건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하는 숙명에 기인한다." ◆차가운 유물에서 느끼는 살아있는 과거책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의 문제에 닿는다. '과거는 어떤 식으로 현재에 이어졌는가'라는 화두가 큰 줄기를 이루고, 이에 대한 질문과 대답들이 잔가지를 구성하고 있다.우리 인류가 이 세계에 출현해온 이후 줄곧 고민해온 질문들, 우리는 왜 무덤을 만들어 죽은 사람을 기리는가, 불, 술, 음악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색이 바랜 수천 년 전의 작은 토기 하나는 지금의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가 등은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삶에도 유효하다.지은이는 "역사는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이 쌓인 지층과도 같다"고 말한다. 유물은 과거만을 비추어 밝히지 않는다. 과거의 진실을 찾아냄으로써 현재를 밝히고 나아가 미래 세대가 더 현명하고 가치 있게 자신들의 시대를 만들어가도록 조언한다.과거의 인류도 현재의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숨결을 직접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고고학이 찾아내는 과거 사람들의 모습은 차가운 유물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눈으로만 봐서는 절대 그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없다. 유물에 숨어 있는 이야기, 아주 오래 전 그들이 살았던 모습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을 때, 고고학은 그들이 단순한 유물이 아닌 지금의 우리와 다를 것 없었던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추천사에서 "우리가 들어본 고고학 이야기 중에서 가장 상큼하게 지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책이다. 그동안 고고학의 발굴과 연구과정의 뒷이야기를 쓴 책들이 있었지만, 이 책은 유물에서 나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게 적었다"고 말한다. 320쪽, 1만6천원.▷지은이 강인욱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본과와 석사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분소 고고민족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고학자를 꿈꾸며 살아왔고, 지금도 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근무하며 고고학을 강의하고 있다.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매년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등을 다니며 새로운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하고, 신문에 칼럼을 다수 연재하는 등 고고학의 진짜 매력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주요 저서로 '유라시아 역사 기행', '진실은 유물에 있다', '북방 고고학 개론' 등이 있다.

2019-06-27 11:40:52

남박사의 행복 웃음경영

[책 체크] 남박사의 행복 웃음경영/ 남병웅 지음/ 도서출판 일일사 펴냄

'큰 소리로 웃어보자. 건강이 내게 온다. 길게 웃어보자. 심신이 행복해진다. 온몸으로 웃어보자. 행복에너지가 충전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된다. 힘들 때 박장대소를 하고나면 다시 일어설 용기도 생긴다. 웃기 시작하면 행복이 내게 온다. 웃음은 행복을 부르는 자기경영이다.'지은이는 실직의 아픔을 웃음으로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과 건강을 전하는 웃음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웰빙생활건강연구소 대표, 전래놀이교육협동조합 이사장, 대구경북흥사단 평생교육원장 등으로 있다.이 책에는 왜 웃어야 하는지, 마음껏 웃어보는 방법, 웃음으로 펀 경영하기, 웃다보니 행복이다 등 4장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지은이는 펀하게 살기 위한 웃음 10계명으로 ▷크게 웃어라 ▷억지라도 웃어라 ▷일어나자마자 웃어라 ▷시간을 정해놓고 웃으라 ▷마음까지 웃어라 ▷즐거운 생각을 하며 웃어라 ▷함께 웃어라 ▷힘들 때 더 웃어라 ▷한번 웃고 또 웃어라 ▷꿈을 이루었을 때를 상상하며 크게 웃어라고 말한다. 236쪽 1만5천원.

2019-06-26 17:19:26

부화를 꿈꾸며

[책 체크] 부화를 꿈꾸며/ 김임백 지음/ 해암 펴냄

'광야를 헤매다/ 살며시 발 들여놓는다/ 기다림에 지친 나무/ 두 팔 뻗으면/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 온몸으로 얼싸안는다/ 부끄러워 어둠 밟고 찾아온 너/ 구름이 놓아주지 않던가/ 바람이 갈 길 방해하던가/ 탕자 되어 돌아온 밤/ 지쳐 있던 마음과 마음/ 서로 끌어안는다'-김임백 시 '밤비'시인이자 시낭송가, 수필가인 김임백 작가가 13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다. 김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대구 문인협회, 달성문인협회 활동과 한국문학인협회 이사, 한국시낭송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시집에는 상생, 부화를 꿈꾸며, 겨울담쟁이, 거미줄, 꿈꾸는 인형, 나팔꽃의 독백 등 6개 주제로 나눠 서정적 감성을 자극하는 100여 편의 시가 녹아있다.김 작가는 서문에서 "각박한 세상일수록 그리워지는게 시였고, 막상 잡으려고 다가가면 무지개처럼 잡히지 않는 게 또한 시였다"면서 "적지 않은 세월 나와 함께 뒹군 시를 세상에 내놓으려니 여전히 낯설고 두렵다"고 밝혔다. 143쪽 1만원.

2019-06-26 17:18:54

[반갑다 새책]서양미술 이삭줍기/김찬호 지음/인문과 교양 펴냄

"예술을 하는 모든 이는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까닭에 소중하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조각이고, 음악이다."일본 작가 나츠메 소세키의 말이다.이 책은 어지럽게 섞여 헷갈렸던 미술 사조와 화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엮이며 깊이 있는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서양미술의 시기별 특징을 담고 있어 사조를 통해 시대적 의미를 알아볼 수 있고 작가를 통해 예술관을 이해할 수 있으며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창조성을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다. 독자는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면서 서양미술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지은이 김찬호는 동양미학을 전공했고 문학적 감성으로 동양과 서양미술에 대한 인문학을 담아내는 작가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그림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그림을 통해 그 시대의 현상을 읽어 내고 작가의 철학을 읽어내고 창조성을 보게 된다. 그림 속에는 작가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이 펼쳐져 있다. 그래서 그림은 자연과 사회가 유기적으로 만나고 움직이는 창조적 공간이며 시대를 읽어내는 소중한 자원이다."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은 사실주의나 극사실주의 등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가상현실은 외부 세계를 생생하게 모방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전성기 르네상스는 고전주의가 구축해 놓은 객관주의적 형식성을 타파하고 실제로 현실은 지각하는 인간의 주관적인 눈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예술의 길을 열게 된다."(본문 65쪽)이처럼 지은이는 시대별 사조별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을 예로 들어 서양미술의 역사 흐름을 간략하면서도 깊이 있게 요약하고 있다. 280쪽, 2만2천원

2019-06-26 11:39:21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⑤]박영귀 작

1981년 8월 5일 집사람과 딸내미가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집사람은 딸내미를 업고 세탁소에서, 나는 식당에서 일했고 어느 정도 중국식당 운영을 파악하자, 인디애나주에 있는 일본 식당에 취직을 했다. 일본 식당을 알고 싶어서다. 그런데 휴가를 가서 자신을 생각해보니 사업을 해 본 적도 없고, 돈 버는 기술도 없고, 돈도 없고, 어떻게 식당을 할 것인가에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의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 집사람은 친정에 손을 벌려 보자고 했지만 죽으면 죽었지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다. 올바른 판단의 결론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사방을 헤아려 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밖에, 나에게 용기란 돈이 들어가면 안 되는 조건이 있다. 돈도 없고, 나올 구멍도 없으니깐.'아! 찾았다 하나 있다 그것은 두뇌다.' 학교는 올바르게 다니지 못했어도 학교 다닐 때 받았던 수십 장의 우등상장과 상장들, 육군 일등병이 해병대 장교가 된 용기와 두뇌, 동기생의 간부, 새마을운동 지도자, 전부가 빈손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한 경험이 나는 있다, '아! 나는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야 집사람도 그렇고.'나는 공부를 해서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했다. 집사람과 함께 식당 일을 하면서 뉴욕, 엘 에이, 시카고, 등 대도시 한인사회 지인과 신문을 통하여 우리 영어 수준과 공부해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았다. 시, 주 공무원, 연방 공무원, 가리지 않고 찾았다그 결과, 육군 군무원과 우체국 직업이다. 둘 다 연방 공무원으로 봉급도 은퇴 후 혜택도 좋았다. 유급 휴가와 병가도, 휴일도 많아 가족과 즐길 시간도 충분히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군무원은 우리 부부가 같이 근무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체국 시험을 보기로 했다. 영어도 그다지 많이 필요 없고 암기력을 위주로 한 시험이었다. 식당 퇴근 시간이 밤 10시, 매일 새벽 1시까지 시험공부를 하여 집사람은 인디애나주에서 만점을, 나는 99.8점을 받았지만, 응시자가 너무 많아 발령받기가 쉽지가 않았다.그때, 다니던 식당이 장사가 부진해서 우리는 미시간주로 가야 했다. 마침, 지방정부에서 실시하는 직업학교(요트 제작)가 있어 거기를 수료하고 요트 공장에 입사하여 회사에 다니면서 우리 부부는 다시 시험에 응시하여 또, 집사람은 만점, 나는 또 99.8점을 받았다.드디어 발령을 받아 상급 부서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임지로 왔다. 홀랜드시다. 더치페이로 유명한, 네덜란드 민족이 모여 사는, 식당에 가면 부부, 또는 가족끼리 손을 잡고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과 튤립 꽃, 풍차가 있는 인구 6만의 작은 도시다.주로 백인이 거주하고 개혁교회가 많다. 옷을 기워서 입고 다닐 정도의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자존심이 강한 민족 같다.집사람은 아이들 때문에 나만 먼저 우체국에 출근해서 우체국장에게 첫 인사했다. 또 한 명이 있었는데 백인 여자였다. 그 여자 시험 점수는 99.6점, 나는 99.8점으로 내가 우선권이 있었다. 우체국장은 백인으로 미 육군에서 부사관으로 오래 근무한 노인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3개월의 수습 기간 동안 시험에 통과해야만 한다고 엄숙하게 말하고, 시험방법은 1200개의 주소를 암기하고 거기서 무작위로 뽑은 100개의 주소를 우체부 번호로 만들어진 공간에 지정된 시간 내에 적중률 95% 이상을 집어넣는 시험이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는 나만 따로 불러 종이에다 그 시험에 합격해야만 연방정부 공무원법에 의한 급여를 주지만 불합격하면 합격할 때까지 시간당 $9.5를 주겠다며 $9.5라고 썼다. 나는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는가 하고 백인 여자한테 물어보니 자기에게는 아무 소리도 안 했다는 것이다. 노조위원장에게 얘기하니 그는 봉급 주는 날, 진짜 그렇게 주는가 보자고 했다.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1200개의 주소를 암기하기 시작했다.거의 백인인 우체국 안에는 노골적인 차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나가면 코를 막고, 내가 갖다 놓은 우편물을 집어던지고 내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코를 손으로 가리며 일어서 나갔다. 동양인과 같이 근무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고 마늘 냄새가 나고 더럽다는 것이다. 우체국장이 왜? 나에게만 $9.5라고 썼는지 알만했다.우체국에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직원도 있고, 미군으로 한국에 근무한 직원도 있고, 한국 고아를 입양한 직원도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보고 왔는가? 그것이 그들이 나한테 하는 행동이다. 측은하고 불쌍한 후진국 국민이 자기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속이 상한 것이다. '자! 그럼 나는 여기서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직분은 우편물을 판매, 접수, 분류, 관리, 우송, 그리고 우편배달을 제외한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일이다. 업무는 쉬운 것 같은데 직원과의 알력에 심각한 스트레스가 예상되었다.그러나 절대 낙오란 있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생각대로 후진국 사람처럼 불쌍한 시늉을 하여 동정받으며 지내야 하는가? 내가 그들보다 보수를 적게 받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들보다 더 받고 또, 그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나는 지금 막 시작했지만 나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 있었다. 임시직, 우편물 우송직, 청소직, 등 여러 백인이 있었다. 단 하나, 실력으로 하는 것 밖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나는 쫓기는 토끼가 될 것이다. 죽기 살기로 뛰는 토끼가 될 것이다. 백인들은 여기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지만 나는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다고 배수진을 칠 것이다.나는 1200개의 주소를 일주일 만에 암기하고 일주일 동안 속도 훈련을 한 후 시험을 봤다. 96% 적중률로 합격했다. 우체국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우체국장은 노조 위원장을 불러 다시 하면 어떠냐고 했고, 노조 위원장은 나한테 다시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했다. 다른 백인들도 보고 있었다. 시험관이 "시작" 하며 스톱워치를 눌렸다. 그리고 내가 분류한 것을 검사했다. 100%로 합격이다. 우체국장은 한동안 '멍' 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 우체국장은 전 직원들을 모이게 하고 내 이름을 호명한 후 '우체국 기록상' 2주일 만에 1200개의 주소를 암기하고 합격 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표창장을 주었다. 백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그 후에도 나는 표창장 10번, 집사람은 3번을 더 받았다. 상금 아니면 특별 호봉 승급도 같이 받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공짜는 없었다. 사냥개에 쫓기는, 목숨 걸고 달리는 토끼의 심정으로 쉬지 않고 노력했기에 있었다. 그 후 악질 우체국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미국 성당에서 영세을 받을 때, 내 대부가 되어 내 손을 잡고 신부님 앞으로 나갔다. 그는 나를 아들처럼 대했다. 집사람과 나는 백인들이 싫어하는 휴일 근무를 도맡아서 했다. 휴일은 2배의 돈을 받았다. 악착같이 일을 하고 재투자를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우리 부부는 정신병 진단을 받고 의사로부터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받아 유급 휴가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유급 병가를 이용해서 세계 여러 나라를 관광을 했다. 한국과 미국 48주 곳곳을 아이들과 캠핑을 갔다. 백인들이 우리 부부를 무시하고 시기하는 눈총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소포 분류하던 백인이 눈 보호 안경과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긴 집게를 들고 나한테 와서는 보여 줄 게 있다고 해서 가보았더니 한국에서 온 소포가 터져서 내용물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멸치였다. 백인들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나한테 물었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하니 나를 쳐다보는 눈이 아프리카 식인종을 보듯 했다.(7월2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6회가 게재됩니다)

2019-06-24 18:00:00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정우성 지음/원더박스 펴냄

잘생긴 영화배우의 대명사 '정우성'. 그가 언제가부터 우리 사회 난민 이슈의 중심에 서고 있다. 지난해 5월 자국의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온 500여명의 예멘인 난민 신청자의 수용 문제를 두고 찬반 논란이 있었을 때, 정우성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난민 보호에 힘써달라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난민이라는 다소 민감한 사안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정우성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을 하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난민 문제에 대한 생각을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으로 엮어냈다.◆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 난민정우성은 "난민을, 그리고 난민촌을 직접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다면, 그들을 돕는 문제에 대해, 그리고 유엔난민기구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소중히 쓰려 한다"며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한다.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연예인이 비영리기구 활동을 하는 사례는 적지 않지만 정우성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그가 어느 순간 우리 사회 난민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2014년 5월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된 정우성은 그해 11월 네팔로 첫 난민 캠프 미션을 떠났다. 그곳에서 난민 지위를 얻은 사람부터, 법률상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하고 유엔난민기구 보호 대상자가 된 사람들을 만났다. 2015년 5월에는 남수단에서 수단 출신 난민과 남수단의 국내 실향민을 만났고, 같은 해 6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11명 중 한 명으로 공식 임명됐다. 2016년 3월 레바논에서는 시리아 난민을, 2017년 6월에는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내 실향민과 시리아 난민을, 2018년 11월에는 지부티와 말레이시아에서 예멘 난민을 만나는 등 매해 한차례 이상 해외 난민촌을 찾았다.처음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됐을 때, 그는 난민 문제와 특별한 관계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제안을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배우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다른 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오던 그였다. 딱히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는 게 그의 소박한 수락 이유다. 그가 걱정한 것은 혹시라도 자신이 바쁘다는 핑계로 활동을 소홀히 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난민 문제를 위한 해결책은?정우성은 난민을 만날수록 이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내전이나 폭압 등의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임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난민촌이라고 웃음이 없을 리 없다"며,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아이들 교육 문제를 더 걱정하는 부모들을 마주하며 난민에 대한 이해가 확장돼 갔다고 고백한다.제주도를 찾아온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스마트폰을 쓰고 브랜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가짜 난민'으로 몰릴 때, 그가 단호히 '가짜 뉴스'에 맞서 이들을 비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정우성은 당시에 제주도에서 난민지위신청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고국에서 기자, 엔지니어, 셰프 등으로 활동했던 이들이었고, 내전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받던 탄압을 피해 이곳까지 온 상황이었다. 그들은 본국에서 입던 옷을 입고 이곳까지 왔을 뿐이고,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고 어느 나라에서든 값싼 심카드를 구해 바꿔 끼우기만 하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그는 난민 문제에 대해 온정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 차원에서 정치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 각국에서의 여론이 중요하며, 그러하기에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참여라고 이야기한다.인권, 평화, 사랑 등이 그가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키워드다.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이지만 난민 문제를 접하며 이 단어의 소중함에 대해 더욱 크게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나 역시 상상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는, 보다 나은 세상을"이라고 책의 끝을 맺는다. 216쪽, 1만3천500원.

2019-06-20 11:36:28

인간 뇌 속 해마

[서평] 해마를 찾아서/ 윌바 외스트뷔, 힐데 외스트뷔 지음/ 안미란 옮김/ 민음사 펴냄

사람들은 매일 기억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당시엔 분명 뇌리에 박혔다고 생각한 각종 정보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거나 다른 정보들과 뒤엉켜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다. 기억이 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누구도 반기지 않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기억에 대한 불안은 나이가 들면서 더 커진다. 도대체 기억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삶 곳곳에 침투해 영향을 미치는 걸까.지은이인 신경심리학자 윌바 외스트뷔와 언론인이자 작가인 힐데 외스트뷔 자매는 450여 년 전 해마의 발견에서 시작해 현대의 기억 연구에 위대한 기여를 한 실험과 연구 성과를 짚어 나가며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는지, 기억을 효과적으로 불러내기 위한 기억 훈련법은 무엇인지, 허위 기억과 망각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를 살피고 있다.◆인간 뇌 속에서 발견한 해마바다에 사는 생물과 우리 뇌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바다의 해마와 뇌의 해마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가지 있다. 새끼들이 바다에서 헤엄치는데 위험이 없고 그들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배에 알을 품는 해마 수컷처럼, 인간 뇌의 해마 역시 무언가를 품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억이다. 해마는 기억이 크고 강해져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꼭 붙잡아 둔다. 해마는 기억을 위하 인큐베이터인 것이다. 이탈리아 해부학자 율리우스 아란티우스는 1564년 뇌의 측두엽에 묻혀 있는 해마를 처음 발견했다. 바다의 해마와 비슷하게 생겨 '해마'라 이름을 붙였다. 이런 해마의 발견은 해마를 제거해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 헨리 몰레이슨과 그 반대편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 솔로몬 셰레셰프스를 연구함으로써 인간 기억의 작동 방식과 현대의 기억 연구가 본격 진행됐다. ◆ 기억은 인간의 뇌 어디에 있을까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자 덩컨 고든과 앨런 배들리는 1975년 기억이 어떻게 그물에 갇히는가를 보이기 위해 잠수부를 상대로 스코틀랜드의 해안에서 했던 잠수 실험을 오늘날에 재현했다. 당시 잠수부들은 다리 위와 수심 5m라는 서로 다른 조건에서 단어 목록을 암기했다. 그 결과 물 속에서 외운 단어는 물속에서 훨씬 더 잘 기억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억의 상황 의존적 성질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와 동일한 환경에서 꺼내기가 수월함을 알려 준다. 기억이 다른 무엇에도 관계없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다니는 일은 드물고, 다른 물고기와 함께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기억을 다시 꺼내야 한다면, 함께 묶여 있는 다른 기억 몇개를 함께 찾는 게 고기가 잡힐 가능성이 높다.◆ 허위 기억은 어떻게 들어오나우리가 가진 기억 하나하나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대부분의 기억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회상을 할 때마다 재구성이 되어야 한다. 뇌는 우리의 모든 경험을 영화 필름처럼 정확하게 저장할 필요가 없다. 대신 해마가 경험들을 꼭 붙잡아 주는 기억 망으로 엮여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공간이 생기고 우리의 생각이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허위 기억의 구성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관여한다. 우리가 겪은 일은 시간이 지날 수록 희미해져 허위 기억이 들어오기 쉽고, 일상적인 일은 적극적이고 이상한 일보다 쉽게 거짓 기억이 되어 파고 들어온다. 진짜 기억은 사실 상상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허위 기억은 환상에서 시작하여 기억을 거쳐 어느 순간 현실로 인식되는 것이다.◆기억, 얼마만큼 좋아질 수 있나런던 교수인 엘리너 매과이어는 런던 택시 기사의 뇌와 일반인의 뇌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검은색 런던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장소 기억 시험을 통과해야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이 시험에는 GPS의 도움 없이 2만5천개의 도로와 320개의 루트를 기억해야 한다. 런던은 단순히 오래된 도로와 새로운 도로, 큰길과 샛길의 미로일 뿐 아니라, 공간 기억을 극한까지 훈련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런 환경이다. 훈련 전 택시 기사 지망생들의 해마는 대부분 사람들의 것과 같은 크기였다. 그러나 매과이어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소 기억을 집중적으로 훈련한 택시 기사들의 경우 해마도 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 대부분 사람들보다 해마가 있는 뒤쪽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뇌가 훈련될 수 있다는 증거이다.◆미래에 대한 상상은 기억의 일부'미래에 대한 상상은 기억의 일부다.' 미래 연구자인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토머스 서든도프가 이 기능을 밝히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기억 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진화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뇌의 기억 체계에 포함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화적 이점 때문이라는 것. 생존에 관해서라면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유용할 뿐이다. 오류투성이이고 유연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의 기억은 살아 있고 유연한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기능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더라면 인간에게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기와 기차, 잠수함과 비행기.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먼저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이며, 꿈의 뿌리는 기억에 있다. 기억은 환상의 재료이다. 그리고 환상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에너지다. 388쪽 1만6천800원.

2019-06-19 18:41:16

화장의 일본사

[책 체크] 화장의 일본사/ 야마무라 히로미 지음/ 강태웅 옮김/ 서해문집 펴냄

일본 전통 화장에 사용된 색은 고대부터 기본적으로 하양, 빨강, 검정 등 세 가지였다. 하양은 백분, 빨강은 입술연지나 볼연지, 검정은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오하구로와 눈썹 화장의 색으로 쓰였다. 이 세 가지 색은 서양 화장이 일본에 들어오기까지 1천년 이상에 걸쳐 일본 전통 화장의 기본색을 이루었다. 검정 화장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다.이 책은 헤이안 시대, 에도 시대, 메이지 시대, 쇼와 시대에 걸쳐 메이크업 중심으로 화장의 변천사를 풀어간다.헤이안 시대 중기 무렵은 귀족계급 여성에 의해 백분과 연지 사용, 오하구로 화장, 눈썹 화장 등 전통화장의 기초가 만들어졌고, 에도 시대에는 상류층에서 서민층으로 확대되면서 화장을 예의로 보는 교양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메이지 시대부터는 근대화로 전통화장이 무너지고 오하구로 화장과 눈썹 밀기가 사라졌고, 쇼와 시대 전까지는 서양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볼, 입술, 눈썹, 눈에도 서구식의 포인트 화장이 새롭게 유행했다. 256쪽 1만6천원.

2019-06-19 18:34:46

다산에게 배운다

[책 체크] 다산에게 배운다/ 박석무 지음/ 창비 펴냄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쓰는데 있고, 아껴 쓰는 것의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검소해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함이야말로 목민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할 일이다.'-다산 정약용 '목민심서'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50년간 천착해온 다산학 연구의 과정과 결실을 담은 역작을 냈다. 박 이사장은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 등 논문과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이 책에는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 조선 실학사상의 흐름, 다산학의 민중성 및 새 화이론 고찰, 다산의 공직윤리와 목민관상, 다산의 흠휼정신과 법의식, 다산의 농업대책 등 다산의 개인적인 삶에서부터 고차원적인 학문적 개념들에 이르는 '다산학' 연구의 전모를 만날 수 있다.지은이는 "다산학이 주자학을 뛰어넘는 조선의 유학사상이자 실학사상으로서, 중세의 학문에서 근대의 학문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그 다리를 놓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목적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404쪽 1만8천원.

2019-06-19 18:34:06

호국평화기념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관람객을 맞는 철모와 55발의 총탄. 55일간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이곳의 역할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흥]전쟁이 뭐꼬... 호국보훈의 고장 칠곡에서 되짚는 전쟁의 기억

'왜관역'이 호명되면 대구에 다 왔다는 신호였다. 무궁화와 비둘기에 몸을 싣던 시절이다. 대구가 코앞이다. 20km다. 대구로 기어이 들어오려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을 기필코 막으려 했던 이들이 있었다. 1950년 8월이다.군가 '최후의 5분'을 기억하는가. 왜관을 중심으로 한 칠곡군은 지금 대한민국의 버팀목이 된 곳이다. '우리가 밀려나면 모두가 쓰러져, 최후의 5분에 승리는 달렸다'는 가사처럼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선두에 있던 왜관에서 우리는 55일을 버텼다.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이후 69번째 6월 25일을 앞두고 찾은 칠곡이다. ◆다부동 전적기념관관람객을 맞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강렬하다. 오래된 기억 속 공간이다. 1981년 준공된 다부동 전적기념관이다. 40년 가까이 외형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탱크 모양을 형상화한 그곳이니 틀림없다.아이러니하게도 도로가 확장되고 교통이 편해지면서 찾는 이들의 발길이 줄었다. 관리를 맡은 한국자유총연맹 측도 변하는 세태를 인정한다. 방문객이 연인원 50만명 수준이라고 했다. 주변에 함께 둘러볼 곳도 마땅찮다. 일부러 이곳만 보러 와야 하는 곳이 됐다.유학산에 오르려는 이들이 산행 기점으로 삼기도 한다. 기념관에서 유학산이 바로 보인다. 중앙고속도로 다부터널을 지나면 위압적인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그 산이다. 해발고도 839m 정도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홀로 돋보인다. 매년 힐 클라이밍 대회가 열리는 자전거 마니아들의 성지다. 한 번 라이딩하고 나면 허벅지 두께가 2cm씩 늘어난다는 유학산에선 매년 한국전쟁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 다부동 전투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유학산은 살아 내려가기 힘든 곳이었다. 높은 산이었고 깊은 골이었다. 조지훈 시인의 '다부원에서'처럼 '彼我(피아) 공방의 화포가 한 달을 내리 부르짖던 곳'이었다.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을 만큼. ◆가산산성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을 만큼 오래된 요새다. 지금은 등산로로 고마운 가산산성이다. 팔공산 종주의 시작지로 선택되기도 하는 이곳은 한국전쟁에서 백병전으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1950년 8월 18 ~ 27일까지 전투가 있었다.백병전은 육박전이라고도 부른다. 총알로 싸우는 전투가 아니다. 코앞에서 목을 조르고 급소를 찌른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싸움이다. 살려달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측은지심에 경중이 있으랴만 '살려주시라요'와 '살리주이소'에는 차이가 생긴다. 북한군에 의용군으로 끌려간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서글픈 이야기가 있다. 가산산성에 있던 북한군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의용군에게만 가산산성 사수를 명령하고 도주했다고 한다. 국군이 "대구 출신은 손뼉을 치고 나오라"고 외치자 사방에서 38명의 의용군이 무기를 버리고 나왔다고 한다.가산산성 주변 치열했던 전투 현장은 70년 뒤 평화로운 마을이 됐다. 원당마을, 현방마을의 풍경은 최근 들어 크게 바뀌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도 계단식 논에 농가가 띄엄띄엄 있던 마을이었다. 분명 개별적으로 지은 집인데 어느새 전원마을처럼 모였다. 관광명소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호국평화기념관2015년 낙동강변 가까이에 호국평화기념관이란 게 생겼다. 어찌보면 다부동 전적기념관의 역할을 넘겨받은 곳이다. 호국정신을 지역 정체성으로 삼는 칠곡군의 랜드마크다. 그도 그럴 것이 낙동강 방어선 최전선으로 장장 55일간 버텨준 곳이다. 인천상륙작전의 토대가 됐다. 왜관의 낙동강이 인천의 바닷길을 연 셈이다.기념관에 들어선 관람객은 다소 충격적인 조형물을 마주한다. 총알이 후두둑 철모 위로 떨어지는 장면이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예비군들에겐 주지의 사실이겠지만 철모는 유탄 방지용이다. 정확히 머리로 날아온 총알을 철모는 막지 못한다. 철모의 주인은 분명 전사자다.1950년 8월과 9월 철모의 주인들은 쓰러졌다. 기념관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인근은 전장이었다. '폭풍'이라는 작전명처럼 북한군은 남쪽으로 휘몰아쳤다. 그러나 왜관을 넘지 못했다. 기념관은 시종일관 북한군이 왜관을 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왜관철교를 폭파하고 다부동, 가산산성 등지에서 버텨낸 기록들을 보여준다.호국전시관, 전투체험관, 어린이평화체험관 등으로 나뉘어 있다. 선혈이 낭자하는 전쟁의 참상을 아이들에게 과하게 전하지 않으려 애쓴다. 3세 남짓해 보이는 어린이집 원아들에서부터 현장체험에 나선 초등학생까지 평일에도 북적댄다. 성인 3천원, 청소년 2천원, 초등생 1천원의 입장료가 있다.주말 나들이 코스로도 추천할 만하다. 기념관 바로 옆에 소풍 장소로 적당한 벌꿀나라테마공원이 있다. 자전거 라이더들의 경유지 칠곡보, 관호산성 앞 낙동강역사너울길과 왜관철교까지 몽땅 걸어 이동할 수 있을 거리에 모여들 있다. ◆왜관철교, 호국의 다리왜관철교에는 '호국의 다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1950년 8월 3일 둘째 경간 63m가 끊긴 데서 붙은 훈장이다. 남하하는 북한군의 전차를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푹신하게 걷기 좋은 인도교다. 주로 걷는 이들이 오가지만 자전거를 타고 건너도 뭐라 눈치주진 않는다. 서로가 인사하며 지나는 시골에서 법령 운운하며 핏대 세울 사람도 없다. 평화롭다. 1905년 열차교량 용도로 준공됐다. 500m가 채 안 되는 길이다. 지탱하는 교각마다 버텨낸 세월만큼 색이 바래있다.자고 일어나보니 유명인사가 됐더라는 '칠곡 가시나들'의 시가 왜관철교 다리에 걸려있다. 한글을 깨친 이들이 정리해 가는 인생사 중 가장 아픈 곳 중 하나는 전쟁이었다. 자고 일어나보니 전쟁은 터져 있었고, 듣도 보도 못한 현실이었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 기억을 글로 풀어 왜관철교 두 번째 경간에 달았다. 1950년 8월, 그리고 한국전쟁이 재생된다. 이들의 표현 몇 줄을 그대로 옮긴다. '집에 폭탄 맞아서 다 탔다. 집은 좋은 집인데. 아무것도 없다. 먹을 것도 없다. 배급줘서 먹었다. 먹을 거 없어서 있는 집에서 얻어먹고 애 먹었다. 고상 마이 했다. 인민군들이 아이들 결혼할 때 쓸라고 정재 단지에 묻어 두었던 밍주, 삼베 다 파내서 발에 칭칭 감고 돌아다녔다. 생지랄... 끔찍하다. 피란 갔다 와서 애들이 수류탄, 대포 갖고 놀다가 마이 죽었다. 마카 안고 다 울었다' -고상 마이 했다 (박문임, 덕산댁)- '비행기 폭발해서 인민군이 못 건너오도록 왜관철교를 끊었다. 낮에는 폭탄이 터져서 산에 굴속에서 숨어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밤에는 각산 제실에서 잤다. 전쟁 끝났다고 미군들이 올라와서 손 둘고 북삼 율 2동 집으로 왔다. 옆 동네는 빨갱이 있다고 불질렀다. 지금도 비행기 보면 비행기가 머리우에 뱅뱅 돌고 있는 것 같다' -비행기 (송문자, 각산댁)- 정제됐거나 압축된 시어가 아니다. 전쟁을 겪은 이들의 감정이 시를 보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판다. 그 감정이 전해져 먹먹하다. 칠곡 할머니들이 써준 다큐멘터리다. 전전(戰前)세대들의 '배가 고파봤냐', '전쟁을 겪어봤냐'던 눈빛이 어른거린다. 긴 말 대신 한숨에 가까운 '어휴, 참'이라 하고 말았던 이유가 실감난다. ◆별미의 시간, 미군기지 앞 한국인 맛집왜관읍내에 캠프 캐럴이라는 미군 병참기지가 있다. 1960년 들어선 미군기지다. 농촌마을에 난데없이 미군기지가 왜 들어섰을까. 왜관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요충지였다. 지금이라도 거점 내륙 화물기지인 칠곡 물류 IC를 떠올리면 쉽다. 미군 입장에서도 왜관은 보급 창고로 최적지였다.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캠프 캐럴 주변은 별세계였다. 이곳 후문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형성된 상권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했다. 미군과 군속을 상대로 영업하던 식당은 이제 내국인에게 '맛집'이라는 표창장을 받고 영업중이다. 캠프 캐럴 후문에 줄지어 있는 경양식 식당들이다.각 식당별로 특색있는 메뉴가 있다. 몰려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 돈까스, 샌드위치, 햄버거 등이 조금씩 다른 모양과 맛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손님은 대개 내국인들이다. 칠곡군도 이 점을 간파했다. 캠프 캐럴 후문 일대를 2022년까지 푸드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줄을 서서 먹는 식당이 두 곳 보인다. 근자에 맛집 공증, 백종원 씨 사진이 보이는 식당을 고른다. 난생 처음 보는 메뉴에 당황할 찰나. 다른 테이블에 많이들 올라와 있는 메뉴를 훑는다. 코돈블루(Cordon blue), 시내소(슈니첼[Schnitzel]을 부르기 쉽게 바꾼 것), 햄버거다. 모두 고기가 듬뿍 들어간 음식이었고 손님 대부분은 먹는 도중 콜라를 주문한다.줄을 선 또 다른 식당도 염탐한다. 1980년대로 돌아간 인테리어다. 음식에 대한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다 싶었는데 테이블을 보니 돈까스 일색이다. 돈까스 크기가 한눈에 봐도 보통 성인용이 아니다. 역시나 내국인들로 바글바글하다.

2019-06-19 18:00:00

[반갑다 새책]이기적 유전자, 반격의 사피엔스/권행백 지음/아마존의 나비 펴냄

잠 못 이루고 건강을 해칠 정도로 현대인들에게 고통과 불안을 주는 것 중 하나가 걱정이다. 그러나 걱정을 잘 분석하면 전체 걱정의 40%는 기우(杞憂)다. '하늘이 무너질까'와 같은 쓸데없는 것이란 뜻이다. 또 나머지 40%는 과거의 반추에 따른 사고의 확대 재생산에 불과하며 12%는 사소한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런 남은 8% 중 4%는 통제 불능의 걱정이며 기껏 4%만이 통제가 가능한 걱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시시대부터 축적된 자연과의 투쟁에서 우리 인간 유전자에 심어진 하나의 경고체계가 걱정의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다.책의 부제가 '진화생물학에서 찾은 행복의 기원'이다.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결핍의 기원, 인간의 불행, 짝짓기 등을 지은이 특유의 말재주로 풀어내고 있어 글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그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유전자는 인간의 몸에 본능을 새겨두고 욕망에 직면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유전자의 요구에 충실한 삶은 인간 개체의 행복을 더 이상 담보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따라서 개체의 다양성 즉 '자기다움'을 찾는 것이 행복한 삶으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전자의 정체를 제대로 알면 본능에 새겨진 애정, 물질, 신념의 결핍으로부터 해방되어 자기다움을 펼치도록 돕는다는 것.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해 주인 된 삶을 개척할 무기로 삼는다면 개성의 깃발을 높이 올려 자기답게 살 수 있다.지은이는 한의원 개업의로 한때 '명의'소리를 들으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런 삶을 접고 십 여년의 세월을 돌아 이름마저 '행복한 백수'란 뜻의 '행백'으로 바꾸고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을 자처하고 나섰다. 368쪽, 1만4천500원

2019-06-19 11:48:31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 어느 낙엽의 시'④] 박영귀 작

해병대 대위 시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악몽이 다시 시작됐다. 새마을 운동이고 뭐고 다 집어치울까 말까? 새마을 운동이란 더 나은 삶의 비전이 보여야 한다.밥줄이 끊어질까 말까 하는 지금은 아니었다. 사양길에 들어선 활판 계의 주조, 문선, 식자, 등등 각 부서의 사람들은 나와 은밀하게 만나기를 원했다. 술집에서, 다방에서 또는 생일이라고, 장례식장에서 모임을 했다.그들의 노조 결성은 거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연판장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사주 측도 이미 알고 있었다. 주모자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살생부였다. 그들의 움직임이 겉으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탄의 도화선이 타고 있었다.나는 긴급 노사 협의회를 열 것을 사주한테 건의했다. 사주 측 K 사장은 선수를 친다. "연일 계속되는 새마을 사업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안타깝게도 시대 흐름이 활판계의 타격을 주어 상심이 크실 줄 알고 저희도 그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낙오자 한 사람도 없이 구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니 동요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잘 하신 대로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회장님께서 얼마 되지 않지만, 여러분 노고에 감사하다고 금일봉을 주셨습니다. 누구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그렇게 회의는 끝났다. 수군수군하면서도 선뜻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약하니까 약자다. 칼을 쥔 자가 나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는데 토를 달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은 안심하는 모양이다. 사주의 플라세보 처방이 약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월은 얼렁뚱땅,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가장 거북하고 지루한 시간이었다.그때, 기억과 망각의 혼돈 시절, 항상 어수선했던 날들. 한쪽 귀는 노동자의 소리를. 한쪽 귀는 사주의 소리를, 정부의 시책을 들어야 하는 야누스의 시간, 이미 혀는 굳어가고 내 자존심의 최후 마지노선은 귀머거리인 척하는 것 이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윗집에 살던 요시찰 인물이었던 김교수가 할 수 있는 말은 꽃 이야기뿐이었고 나는 술 이야기 이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왕대포집에 배수진을 친 나는 벽에 쓴 누군가의 낙서를 쳐다보며 게걸스럽게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어제도 오셨는데 오늘도 오셨군요. 내일 또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안주는 기분 더러워서 자신이 한심해서라는 이유가 안주였다.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사건으로 세상이 난리다. 신문 호외에 주먹만 한 활자가 대통령 유고를 알리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에 포기한 미국 비자의 유효기간을 살폈다. 아직 살아있다.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집사람에게는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1979년 11월 2일, $855를 가지고 김포 공항을 빠져 나갔다. 영어를 알아듣지도 못 하지만, 영어로 해도 미국 사람들은 이해를 못 했다. 부산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김 선생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영어교육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할 수 없다. 만국 공통어로 손짓, 발짓했다.처지가 비슷한, 부산 김 선생, 광주 이 검도 사범, S 대 사학과 출신 강군,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시카고 변두리, 싸구려 아파트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제일 나이가 많은 김 선생이 대장, 내가 부대장, 강군이 회계 담당 회장, 이 사범이 살림 담당 회장, 그래서 부를 때는 대장님, 부대장님, 강 회장, 이 회장으로 정했다.돈을 절약하기 위해 아침은 가까운 곳에 있는 커피가 공짜인 도넛 집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점심과 저녁은 밥(안남미)에 닭고기나 생선 통조림으로 하기로 했다. 계산해 보니 개나 고양이가 먹는 통조림보다 싸서다.우리가 사는 동네는 남미계와 흑인들이 많고 거리가 지저분했다. 그 대신 월세가 무척 쌌다. 밤에 전등을 껐다 켜면 바퀴벌레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기가 막히게 많았다. 대장이 아파트 사무실에 가서 얘기 하니 오히려 화를 내며, 이 바퀴벌레들이 아시안들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삿대질을 하며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지랄을 해서 혼났다고 한다.우리는 바퀴벌레와 6개월 동안 같이 살았다. 우리는 밤에는 공장이나 사무실 청소를 했고 낮에는 강 회장 지휘 아래 이력서를 작성 했다. 강 회장 정보에 의하면 코리안은 꾀 안 부리고 일 잘하는 불쌍한 후진국 사람으로 알고 있어 쓸데없는 거짓말이나 허풍을 떨지 않는 한 채용하니 잘난 척하는 것보다는 불쌍한 척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그들이 공장 근로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장거리 전화로 한국에 전화할 리도 없고, 한국에서 그 전화를 받고 답변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지금은 통신수단 발달로 확인이 쉽지만) 그렇지만 나중에라도 솔직하지 못한 것이 발견된다면 코리안 전체의 문제가 되니 거짓 행동은 하지 말자고 했다.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공장에 취직하는 것보다는 식당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과 중국요리를 배워 식당을 차리고 싶었다. 마침, 교포가 하는 중국집에서 침식 제공, 종업원을 구한다하여 가족들과 이별주를 마시고, 또 지긋지긋한 바퀴벌레와도 헤어졌다. 미시간주에서 제법 큰 식당을 하는 경상도 사나이와 그의 부인은 서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으로 서로 눈이 맞아 미국으로 튀었다 한다.교포사회에서 성공한 사례다. 그의 노래는 항상 "하루 해는 너무 짤 바요"였다. 무슨 노래의 토막인지 모르지만, 그 토막만 불렸다. 부지런하고 열성적이었다. 경상도 시골에서 남의 땅으로 농사를 짓던 소작농의 아들로서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떠돌아다녔다 한다. 나와 모양새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성장기였다.사장 집 지하방에서 4명의 새 식구가 나를 위해 환영 파티를 열었다. 서로 어떻게? 왜? 미국에 왔느냐라는 질문은 피했다. 육군 일등병 시절로 돌아갔다. 선임 순으로 업무가 주워 줬다. 나는 식당 청소, 설거지, 채소 다듬기를 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일했다. 고단한 하루였고, 지하실에 와서는 그냥 곯아떨어졌는데 중간에 잠에서 깼다.내 옆 침대에는 자갈길을 달리는 탱크 한 대와 트럭 한 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 나서는 탱크는 박 선생, 정 선생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투덜거렸다. 한국에 갈 여비가 생기자, 나는 서울로 날아갔다. 일 년 만에 온 서울, 집사람과 딸내미가 있는 영등포 처가 대문을 뚜드렸다. 모두 놀랬다. 집사람은 훌쩍훌쩍 울었다. 그동안 소식이 없어 미국에서 딴 살림을 차린 줄 알았다는 것이다.실제로 성당에 다니는 사람 중에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우리는 달동네를 갔다. 가슴 아팠다. 달동네는 나를 항상 괴롭혔다. 부모님은 더 늙어 보였고, 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말씀은 "돈 없이 객지에 나가서 얼마나 고생이 많냐"라고 하시며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 하시지만 미국에 가면 떼 돈을 버는 것으로 아는 달동네 인식은 동생들까지도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장남이 장남 노릇을 못 한다는 눈치는 내 가슴에 대못을 사정없이 꽝꽝 박았다.얼마 되지 않지만 용돈 하시라고 부모님에게 봉투를 드렸다. 동생들에게도 봉투 하나씩을 주었다. 그런데 남동생이 "형이나 형수랑 잘 살아" 하면서 봉투를 던지자 그 순간, 내 손은 남동생 뺨을 때리고 있었다. "형이 뭐 잘 한 게 있다고 때려" 하며 엉엉 운다. 나도 남동생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지만 집사람과 딸내미에게 잘해 주고 싶었다. 장난감도 사고 옷도 사고 식당에도 갔다. 그리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돈을 주고 미국에 올 절차를 받으라 하고 미시간주로 돌아왔다.(6월25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5회가 게재됩니다)

2019-06-17 15:30:00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책]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이정환 지음/고요아침 펴냄

이정환 시조시인이 시조선집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를 출간했다. 1978년 등단 이후 40여 년 동안 쓴 1000여 편의 작품 중에 100편을 선정해 묶었다.이 시집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남루의 시, 제2부 내 노래보다 먼저, 제3부 새와 수면, 제4부 꽃의 이해, 제5부 물망 등인데 시대별 구성이다.선집 제목은 한 줄 시인 '서시'에서 따왔다. 시대의 소리와 철학적 사유 세계를 함축한 제목이다.김상옥, 이호우 시인과 같은 선배세대 시인들은 역사성과 시대성을 적지 않게 노래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시조는 대체로 자연 서정이 주조를 이룬다.이정환 시인은 "시조는 전통적 기율에 충실하면서 시대적 요청에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단한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쓸 때마다 '천편일률'이 아니라 '천편천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이번 시조선집은 이 시인이 40여 년 동안 '또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온 결정판이다. 시인은 "보여줄 것은 다 내보여준 집약의 결과물이다."고 말한다.'제1부 남루의 시'는 초기 작품들로 자연 서정과 존재론적 성찰, 사랑의 영원성에 관한 탐구가 주조를 이룬다. 천년은 시간적 길이일 뿐만 아니라 깊이라는 인식 아래 고도 경주를 배경으로 '자목련 산비탈', '숯' 과 같은 작품을 썼다.'제2부 내 노래보다 먼저'에서는 '헌사', '에워쌌으니' 등을 통해 보다 심화된 사랑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노래한다. 또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존재의 근원에 대한 사색을 육화하고, 자연의 말과 소리와 빛깔에 귀 기울이고 따사로운 눈길을 주고받는 내적 교감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제3부 새와 수면'에서는 '원에 관하여'와 '상평통보'를 통해 우리 고유의 정서와 생활 습속인 원융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아울러 다채로운 자연 서정의 변주를 통해 심미성의 심화를 꾀한다. 역시 사랑에 관한 시편들이 이어져서 '봄의 자책'과 '너의 초상' 등을 통해 사랑의 지고지순함과 격한 슬픔을 체현하고 있다.'제4부 꽃의 이해'에서는 삶과 죽음, 사랑의 아픔, 씻을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은 일에 대한 소회를 노래한다. 시인이 여러 지역을 오고가며 마주친 정경을 통해 얻은 자연의 비의와 철학적 사유에 초점을 맞춘 시편들을 담고 있다. '어떤 저녁, 꽃의 이해, 삼강나루, 청산도' 등이 그런 작품이다.'제5부 물망'은 최근 작품으로 사람과 자연에 대한 경이를 담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안식을 노래한 '저녁 숲'과 관계의 소중함을 환기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누군가 불렀다, 흘림흘림 민흘림, 퍼펙트' 등이다. 무엇보다 시의 본질, 삶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쓴 시로 '생의 반역, 밤을 보려고, 시스루, 또 다시 블랙홀' 등이 독자의 감성을 울린다.이정환 시인은 "시인으로 산 지 40여 년, 내가 줄기차게 꿈꾸고 추구한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며 "나는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더불어 내가 쓴 시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영원불멸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이정환 시인은 "우리 시조도 이제 철학적 사유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시대적 요청에 답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147쪽, 1만2천원.▷ 이정환 시인1978년 시조문학 추천,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한국시조작품상, 대구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금복문화상과 황조근정훈장을 받았으며,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동시조 '친구야, 눈빛만 봐도' '혀 밑에 도끼' '공을 차다가' 등이 수록되어 있다.

2019-06-14 06:30:00

디지털 미니멀리즘/칼 뉴포트 지음/세종서적 펴냄

우리에게 스마트폰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SNS를 확인하고,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며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할애한다. '스마트폰 좀 줄여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하루라도 스마트폰 없이 지내라고 하면 '놓치는 연락이 있지는 않을까', '중요한 뉴스가 있진 않을까'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스마트폰의 유혹은 그만큼 강력하다.디지털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칼 뉴포트는 그의 저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통해 우리를 좀먹고 있는 디지털 과잉 환경에서 우리가 기술과 맺은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디지털시대, 나만의 속도 살아가기디지털 과잉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림음과 무한으로 연결되어 있는 온라인 세상과 정보들에 휩싸여 정작 몰입해야 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디지털 기기를 쓰는 데 소모하는 시간을 양질의 여가로 대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적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은 물론, 삶의 균형까지 잡을 수 있지 않을까?문제는 알림 기능을 끄거나, 가끔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 수준으로는 디지털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버리거나 모든 디지털 기기를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나에게 맞는 기술을 활용하되, 어떤 기술을 어떻게, 왜, 어떤 조건에서 활용할지 설정하고 그것을 일상화해야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선 깊은 가치에 뿌리를 둔 성숙한 기술 활용 철하기 필요하다. 이 철학은 어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공하고, 다른 모든 것을 확고하게 무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술 과부하에 걸린 현재 상황에서 잘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이 바로 '디지털 미니멀리즘'인 것이다.◆30일의 디지털 정돈 프로젝트스마트폰을 흘긋거리지 않고 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차분하고 행복한 사람들, 사진을 찍는 데 집착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뉴스나 SNS를 확인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다. 이들은 어떤 활동이 의미 있고 만족을 주는지 알기 때문에 디지털 도구와 멀어지면 '무언가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는다.지은이는 농부부터 실리콘 밸리의 프로그래머까지 수많은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들이 어떻게 소셜 미디어와 맺은 관계를 재고하고, 오프라인 세계의 즐거움을 재발견하며, 고독에 잠기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재회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술에 압도당하지 않고 생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도록 도와준 30일간의 '디지털 정돈' 과정과 함께 이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들을 구체적인 실천지침들을 제시해준다.책은 1부에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개념을 설명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디지털 미니멀리스트의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 이용에 따른 득실과 디지털 기술을 삶에 최적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준다. 여기에 지은이가 1천600명을 대상으로 직접 실시한 실험을 근거로 만든 '디지털 정돈' 과정을 소개하며, 독자 스스로 디지털 정돈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확실한 전략과 빠지기 쉬운 함정을 정리해 개개인에게 맞는 디지털 미니멀리즘 실천 방법을 제시해준다.2부에서는 지속가능한 디지털 미니멀리즘 생활방식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실천을 위한 확실한 전술을 열다섯 가지의 실천지침으로 정리해 각 장에 수록해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일상화하는 전략을 알려준다. 296쪽, 1만6천원.▷지은이는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부교수이며, 분산 알고리즘 이론을 연구한다. 다트머스대를 최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학습전문가로 다수의 TV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베스트셀러 '딥 워크'를 비롯한 6권의 책을 저술했고, 그의 TED 강연 '소셜 미디어를 끊어야 하는 이유'는 5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19-06-13 11:10:20

[반갑다 새책]소나무 향기 아래 어린 잣나무는 자라고/박용구 지음/만인사 펴냄 아껴둔 말/박용구 지음/한비CO 펴냄

경북대 임학과 명예교수이자 시인인 지은이가 수필집과 시집을 함께 냈다. 수필집 '소나무…'는 나무와 숲과 같이 살아온 지 60년 가까이 되는 지은이가 나무들이 때로는 서로 경쟁하기도 하지만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자연섭리를 갖고 있는 오묘한 생명집단임을 자각, 그 곳에서 삶의 많은 위안을 받게 되는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이 뿐 아니라 지은이는 한국과 중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면서 해박한 임학 지식과 풍부한 한시의 내공을 글 곳곳에 함께 실어 독서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아껴둔 말'은 지은이가 정년하고 8년이 지나 희수가 된 때 그 지난 세월이 아까워 그저 적어왔던 것을 정리해 엮은 시집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과 같이 항상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에게 시어는 숲의 언어와 같아, 힘들고 바쁜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고 안아주는 실체들이다.'지난 한 해/높이 자란 느티도/떡깔 물푸레 같은 사람도 만났다/열매 색 예쁜 작살나무도/세 밑 사랑 비목나무 열매도/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시 '새해'중에서)터무니없이 화려한 시절일수록 마음은 텅 비어 더 외로움을 타고 지나온 삶 속 아쉬움만 덧없이 쌓이는 노년에, 사춘기의 희열이 가슴을 적시고 또 다른 새 마음이 문을 여는 데 삶의 실존적 시간은 매정하기만 하다.지은이는 이를 시어로 승화하면서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자 시를 쓴다고 했다. 여기에 지은이는 또한 나무라는 전문지식을 시적 소재로 삼아 시를 창조해내고 있다. '소나무…' 231쪽, 1만5천원. '아껴둔 말' 142쪽, 1만원

2019-06-11 13:54:48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 어느 낙엽의 시'③] 박영귀 작

아버지도 나도 눈물을 보였다. 나는 해병대 소위 정복을 하고 육군에 있을 때 근무하던 부대의 대대장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중대장과 함께 내가 있던 내무반을 방문했다. 감개가 무량했다. 나를 몽둥이로 때리던 아이가 병장을 달고 최고 선임자가 되어 있었다. 나한테 미안했었다고 큰소리로 나한테 "충성" 하며 거수경례를 했다.건강하니 군 생활도 순탄했다. 그러나 대위로 진급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진로 문제였다. 솔직히 나 같이 고학력 출신도, 배경이 좋은 것도, 특출한 소질을 가지지 않은 자는 올라갈 자리가 애매했다. 운이 좋아 영관급으로 진급해 보았자, 그때 사회에 나오면 내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결혼도 해야 하는데 전세방이라도 얻을 돈이 생기는가? 그렇다고 지금 제대를 하면 취직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아! 머리가 아프다.더구나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되어 가야 할 길도 더 안 보이는데 이래도 저래도 답이 없다. 우물쭈물하는 공백은 술이 메꾸었다. '술! 많이도 퍼마셨다. 차라리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소연할 걸!' '선두에 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더불어 낙오할 생각도 아예 하지 않는다'. 1978년 백령도에서 해병대 대위 제대한다. 그리고 국립묘지에 있는 친구 김광오한테 제대 신고를 한다.부모님과 동생들은 서울대 앞, 신림동 달동네에 살고 있었다. 강제 철거된 판자촌 주민에게 구청에서 관악산 앞 작은 산에 한 가구당 택지 12(?) 평씩 분배해 주었다. 그것이 신림동 달동네다. 거기에 새로운 판자촌이 생겼다. 수도, 하수도, 전기도 없었다. 화장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관리자가 없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여름에는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고 겨울에는 똥과 오줌이 얼어붙어 산처럼 쌓여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집마다 땅을 파서 화장실과 우물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화장실과 우물 거리가 가까워 물에서 똥, 오줌 냄새가 났다. 그 우물과 화장실을 내가 만들었다.냄새가 지독해서 더 깊이 파고 파이프를 박고 펌프를 세우니 냄새가 덜 했다. 그러나 식수로는 적합하지 않았다.그때 생긴 것이 물지게꾼과 똥 퍼 가는 직업이다. 그들은 "똥 퍼, 똥 퍼" 하며 외치고 다녔고, 산 밑에 수도가 있어 산 위까지 가기가 힘이 들어 그들의 기세는 등등했다. 먹지는 못 해도 물은 있어야 했고 똥은 퍼야 했다. 또 한 가구당 한 사람씩 나 오라 해서 노역을 시키고 밀가루를 배급받았다. 얼마 후 전기가 들어왔지만, 전기료를 낼 돈이 없자, 사람들은 전선을 옷핀으로 찔러 사용하다가 감전 사고가 나기도 하고 밤에 똥을 퍼서 검지산 가는 산등성에 버리기 시작했다. 유독 진달래꽃이 많이 피던 산에 꽃은 많이 피어 있는데 똥 냄새가 지독했다.겨울이 문제였다. 똥이 얼자, 똥 퍼가는 사람이 오지 않아 집마다 도끼나 야전삽 또는 곡괭이로 깨트려 산에다 버렸다. 내가 주로 했는데, 옷이며 얼굴이 똥투성이였다. 또 하수도가 없으니 사람들이 사용한 물을 아무 데나 버린 물이 얼어 산 꼭대기에서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어려웠다. 눈이라도 오면 사고가 일어났다. 노인들이 많이 다쳤다. 사람들이 타고 남은 연탄재를 던지기 시작했다.달동네는 항상 싸우는 소리, 술 먹고 노래하는 소리, 웃는 소리, 그리고 이유 없이 고함지르고, 악을 쓰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다.그때 일급 뉴스는 남편이 목숨 걸고 월남에 가서 꼬박꼬박 보낸 돈으로 마누라는 춤바람이 나서 어느 놈팡이와 도망간 사건이다. 귀국해서 집에 오니 집까지 팔아 버린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달동네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관악산과 검지산(산 이름)은 각각 개울을 가지고 있었고 관악산에서 흐르는 개울이 더 컸다.어릴 적에는 목욕도 하고 가제와 송사리도 잡았고 두꺼비(개 이름)와 물장구치며 놀았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모여들자 더러운 시궁창이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내가 집에 오자, 외조모님은 결혼을, 아버지는 신림동 향토예비군 중대장을 하면 어떠냐고 떠보신다. 월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과외 수입이 있고 고정 수입이라 괜찮은가 보다고 하신다.결혼문제는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합세하셨다. 박씨 집안의 종손이고 나이도 32살이나 되었으니 너무 늦었다는 말씀이다.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대방동 성당 할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중매를 섰다. 영등포에 있는 한의원 집 둘째 딸이었다.선을 보고 교제를 시작했는데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 집과 너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다. 영등포 사거리 목 좋은 곳, 삼층 빌딩이 그의 집이었고, 언니와 형부는 명문대 출신이었다. 내가 졸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처가와의 불화가 보이는 것 같아 서다. 그리고 천주교를 믿어야 하고 결혼식도 천주교회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둘째 딸은 나를 죽자 사자 쫓아다녔다. 같이 도망가자고도 했다. 나는 웃었지만,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결혼했다. 마침, 도림동 성당 주임신부님이 해병대 출신이라 결혼식 준비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성당은 나중에 다니기로 신부님과 약속하고 신림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30년 후 나는 미국에서 영세를 받았다.)유일하게 민간인 출신으로 5·16 군사 쿠테타에 참여했던 R 씨의 회사 계열인 K 회사에 입사, 공장 새마을 지도자 선거에 출마 등록을 했다. 선거 연설문을 작성하여 녹음기를 놓고 집사람 앞에서 연설 예행연습을 했다. 얼마 후 노동자들은 나를 당선시켜 주었다.대전 서구 도마동 새마을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나는 새마을 지도자로서 온 힘을 다했다. 우선, 서울역 뒤 만리동 고개 도로 정화 작업부터 시작했다. 통금 해제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깨어 출근하여 통금 사이렌 직전에 집에 왔다. 사원들과 아침 일찍부터 도로변을 쓸고 닦았다. 휴지를 줍고 쓰레기를 치우고 담배 재떨이 겸 쓰레기통을 설계, 제작하여 거리 곳곳에 설치했다. 사원 복지를 위해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사주와 협의, 개선하는 데 노력하며 효율적인 생산성을 위해 품질관리, 개선, 능률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 수집, 우수한 사원의 포상 등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든든한 배경을 가진 사주는 막대한 외화로 독일제 다색 오프셋 인쇄기, 최신 사진식자기, 카메라, 등을 수입해서 인쇄방식의 현대화를 하다 보니 활판 계통에 몸담고 있던 수많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을 우려해, 노조를 만들 움직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시기였다. 그들은 나만을 의지했다.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다른 일자리로 대체 해 주기를 원했다. 정부와 사주는 이런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노사협의회 회장은 사장 또는 사주, 노사협의회 부회장은 새마을 실천본부장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감투는 두 개다. 새마을 실천본부장 겸 노사협의회 부회장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감투다. 쉽게 말하자면 어용 노조 위원장이고, 더 쉽게 말하자면 허수아비라는 말이다.나는 새마을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노조의 방패막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새마을 지도자가 되기 위해 출마했지, 노사협의회 부회장이 되기 위해 출마하지는 안 했다. 그것은 가진 자의 횡포다. 저녁이면 가진 자들은 나를 요정으로 모셔 갔다. 그리고 그들은 치즈 몇 조각, 양주 몇 잔에 내 봉급의 몇 배의 돈을 지급했다.이것도 강제다.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본부장 차 타시오" 하면 차를 타야 한다. 새마을 운동 지도자가, 달동네에 사는 내가 요정에서 술을 먹다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6월18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4회가 게재됩니다)

2019-06-10 17:30:00

서지 김윤식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 참석자들이 표지석 공개 순서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받은 고 김윤식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

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가 올해 제59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건국포장)을 받고 첫 독재저항 민주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고 서지(西芝) 김윤식(1928~1996) 시인(매일신문 4월 18일 27면 보도) 생가인 경산 용성면 덕천리에서 8일 생가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지부장 구자도)는 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23년 만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것을 기념하고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협 회원의 뜻을 모아 시인 생가에 표지석을 세웠다.생가 표지석에는 김 시인의 생전 대표 행적이 담겼다.우선 대한민국 최초 독재저항 민주운동인 1960년 2·28 대구학생의거 목격 후 쓴 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을 대구일보에 게재하고 3·15 김주열 열사 및 4·19혁명 관련 시를 대구매일신문 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는 등 민주화에 기여한 공적을 기록했다.아울러 올해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첫 독재저항 민주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과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와 경산지부를 창립해 초대 지회장과 지부장을 지낸 것, 농촌계몽 향토문화공로상(상록수상) 등 수상 경력, 국립 4·19민주묘지, 2·28기념중앙공원 등 6기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기록했다.이날 김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에는 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 구자도 지부장과 고문인 도광의 시인, 구활 수필가· 제갈태일 시조시인, 박기옥 직전 지부장을 비롯한 문인들과 경산시 조현숙 복지문화국장, 김윤달 덕천이장과 김상수 동네 노인회장 등 50여 명이 참석해 축하를 했다.구자도 지부장은 "오늘 서지 김윤식 시인의 생가 표지석 제막식이 마중물이 돼 서지 선생이 남긴 많은 업적이 새롭게 재평가 되길 바란다"면서 "경산시민은 물론 문학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희망하는 많은 국민이 찾아와 보고 마음에 교훈을 담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윤식 시인이 경주여고 교사로 재직중이던 1955~1958년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다는 제자 정봉자(81) 씨는 인사말을 통해 "선생님은 6·25전쟁 후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공납금을 대신 내주시고 다방면에서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신 은사님"이라고 회상했다.또 "너무나도 늦게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게 된 것이 아쉽고 유감이지만 항상 정의롭고 헌신적이며 열정과 사랑이 많으시기에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들을 돌보시고 걱정 많이 하시겠다. 너무나 그립다"라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시의 장남인 김약수(66) 전 대구미래대 교수(경산학연구원장)는 "선친은 생전에 1990년 발간된 경북중고등학교 42회 졸업문집에 '2·28, 고이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 보며'에서 '이승에 살아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 한국 근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대사건에 비록 보잘것 없는 글이나마 동참했다는 자랑과 보람을 안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라고 말씀했다"면서 "오늘 선친의 생가 표지석 제막식을 거행해 준 문협 경산지부 모든 회원들의 정성과 인정을 잊지 않겠고, 매우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9-06-09 14:55:03

괜찮은 결혼/엘리 J. 핀켈 지음/지식여행 펴냄

우리나라의 혼인율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OECD 아시아 회원국 중 이혼율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대부분 경제적 프레임에서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 있다.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 교수 엘리 J. 핀켈의 '괜찮은 결혼'은 경제적 프레임보다 사회심리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결혼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심리학과 사회학 연구와 문헌을 통해 지금 시대의 결혼에 대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꼬집는다.◆인문학적으로 파헤쳐보는 결혼관계 이론 분야에서 혁신적인 학자로 평가받는 엘리 J. 핀켈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는 결혼이 양극화된 과정과 원인,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나타난 현재의 결혼을 건강한 길로 인도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결혼을 보는 그의 관점은 우리 사회가 대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결혼에 대한 개념을 넘어 변혁적이고 획기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의 의미는 남녀 간 갈등, 결혼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기피 현상 등으로 얼룩져 있다.결혼을 인문학점 관점에서 파헤친 책은 흔치 않다. 대부분 부부 교육서, 자녀 양육서, 종교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결혼에 대한 것들이다. 책은 미국의 결혼에 대해 포괄적 고찰을 담고 있지만, 한국 사회 또한 결혼, 동거, 출산, 이혼 등의 측면에서 미국 사회가 겪은 것과 같은 변화를 아주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한국 사회도 이와 비슷한 결혼을 마주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책은 지루하지 않게 결혼을 다룬다. 영화와 드라마, 소설, 고전 속의 에피소드를 동원해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선다. 실용, 사랑, 자아실현 시대의 프레임을 주도하는 여론과 실증적 예도 꼼꼼하게 챙겨나간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중세 시대, 계몽주의 시대, 근세 시대의 철학자, 예술가, 사상가, 그리고 가상현실 세계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풍부한 지적 여정의 길로 안내한다. 자칫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결혼과 부부의 이야기를 학술적 가치와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 ◆양극화된 결혼과 극복 방안 책은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결혼과 부부 문제에서 출발한다. 지은이는 역사를 보면 결혼의 존재 이유가 실용에서 출발해 사랑을 거쳐 자아실현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가 시대적인 맥락에 따라 진화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다는 자아실현에 기반한 지금의 결혼마저도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결혼 생활이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편향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의 핵심 기능이 매슬로의 욕구 단계 중 높은 곳을 지향하면서도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탓에 결혼 생활이 기대에 부응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결혼 생활에 실망하면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의 본질이 변하면서 기대를 충족했을 때의 혜택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평균적인 결혼 생활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반면, 최상의 결혼 생활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고 말한다.마지막으로 양극화된 결혼과 부부의 불행을 극복해나갈 방안을 제시한다. 그 방안은 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 또한 더욱 필요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지은이가 알려주는 결혼에 대한 고찰은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미혼뿐만 아니라 결혼을 했거나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에게도 도움이 된다. 결혼 생활에 대한 고민이 큰 부부라면, 갈등을 멈추고 앞으로 남은 기나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2019-06-06 13:33:12

[반갑다 새책]수학과 예술/린 갬웰 지음'김수환 옮김/쌤앤파커스 펴냄

'수학과 예술을 사랑한 인류의 지적 경험을 총망라한 경이로운 책' '지식인의 서재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할 금세기 최고의 교과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수학과 예술, 그 둘의 위대한 역사가 이 책에 담겨있다. 읽어라 그리고 감동하라'…어떤 책이기에 출간과 동시에 세계적 석학들의 찬사가 이렇게 쏟아지는 걸까? 일단 두꺼운 책을 펼쳐보았다.'공자는 타인을 대하는 올바른 행동윤리 철학을 전파했다. 공자의 글에는 사람이 엄격한 계급과 조화로운 질서를 이루고 개개인이 협력해 집단을 이루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공자의 철학에는 전통 점성술책 '주역'(역경)이 설명하는 마법적 체계도 담겨 있다. 역경은 괘라고 불리는 64개의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역경의 추상형태에서 나오는 권위는 2000년 동안 아시아인의 마음을 끌었다.'(본문 중에서)'중세유럽은 결국 유클리드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식을 잃어버렸지만 이슬람 학자들은 비잔틴의 그리스어 문헌을 아랍어로 번역해 보존했다. 9세기 칼리프들은 학자들이 해외(특히 그리스)의 수학과 철학 지식을 번역하고 자신의 고유 사상을 표현하도록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을 건설했다.'(본문 중에서)세상의 모든 창조와 진보는 수학에서 시작됐다. 동서고금의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뮤즈, 수학은 어떻게 예술가와 철학자를 사로잡았을까? 고대부터 현대에 이어지는 수학과 과학, 예술이 문화사를 이 책 한 권으로 정리했다.그리스와 이슬람, 고대 중국의 '구고정리'를 포함해 책으로 접하기 어려운 예술작품과 현대미술 작품들 500여 점과 90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수학과 예술을 연결하는 방대한 지적 연결고리와 문화적 환경들을 종횡으로 보여준다. 611쪽, 8만9천원

2019-06-05 11:20:03

괜찮아 괜찮지

[책 체크] 괜잖아 괜찮지/ 성희 지음/ 시와에세이 펴냄

'나는 살고 싶다/ 졸졸졸 바스락거림도 없이/ 내 어두운 궤적을 지우고/ 거친 돌과 돌 사이/ 하얀 물푸레 뿌리도 적시며/ 유장하고 격렬한 문장으로/ 이 한 몸 푸르고, 푸르게 흘러/ 저 아득한 심연의 바다에 가 닿는/ 작은 물고기의 꿈이고 싶다'- 성희 시 '개숫물의 꿈'지은이 성희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5년 '시에티카'로 등단해 현재 시에문학회,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시집에는 '깎다' '괜찮지?' '달방 있습니다' '갱년기' 몽당 빗자루' '걸레 경전' 곤공한 세상' 등 따뜻한 위로와 모성애가 느껴지는 시 60여 편이 실려 있다.시적 관심은 하나같이 늙고 병들고 힘없고 소외된 삶이나 풍경에 꽂혀 있다. 그것도 직접 몸으로 겪은 체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지은이는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의 힘은 대단하다.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밟히고 저항한다. 시기적절할 때 밟아주는 힘으로 자라는 꽃잔디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119쪽 1만원.

2019-06-05 11:18:51

인생의 함정을 피하는 생각 습관

[책 체크]인생의 함정을 피하는 생각 습관/웨이슈잉 지음/ 이지은 옮김/ 올댓북스 펴냄

'호감, 관심 등의 감정을 통장에 부지런히 저축하다 보면 상대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곤경에 처했을 때 상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감정을 저축하지 못하고 인출만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감정이라는 통장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하버드 새벽 4시 반' 저자인 웨이슈잉이 이번에는 실패 없는 인생을 사는 생각의 원칙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성공법칙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놓치기 쉬운 함정들을 잘 관리함으로써 보통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저자는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심리적 함정들을 인생관, 일상생활, 인관관계, 사고방식 등 여섯 파트로 나누고 각 장마다 다시 10가지 실천적 사고 방법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의 흥미로운 일화나 명언,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예시를 통해 함정들의 실체를 파헤치고 이를 극복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304쪽 1만4천원.

2019-06-05 11:18:24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②]박영귀 작

▶가난이라는 절대음감그러나 "고맙습니다"라는 말보다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자존심의 발로였고 자신에 대한 최초의 반항이었으며 현실에 대한 부정이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참을 수가 없었던 거다.그러나 끝마무리를 잘하는 자신에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다."선생님 감사합니다""친구들 고마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소리중에 가장 예민한 소리는 아버지 발소리다. 빈곤은 먹이에 집중하다 보니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의 움직임이 새끼의 전부다. 엄마가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역시 우리 남매들이 가장 잘 이해되는 음역이다.동생 중에 절대음감을 가진 동생이 있다. 내 바로 밑에 여동생, 정말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동생이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동생은 "아버지가 오신다" 하면 정말 아버지께서 오셨다. 그리고 아버지 손에 들고 있는 봉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알고 있어 우리 가족 사이에는 개 코, 또는 도사, 울보라는 별명을 가진 동생이다. 배고픔에 지친 가족들은 여동생처럼 절대음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아버지다!"하고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 손이 빈손이면 울보는 울대를 몇 옥타브 올려 사정없이 울었다. 보고만 있던 우리들도 따라 울었다. 엄마도 울보를 부여안고 우셨다.아버지도 눈물을 보이셨다.기절초풍을 할 일이 생겼다. 죽은 사람이 시장 바닥을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다. 방물장수 할머니 말씀이 김 씨 아저씨를 시장에서 보았다고 하신다. 부모님은 믿지 않으셨다. 잘못 보셨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귀신 이야기는 부모님 가슴에 더 큰 상처만 만들고 흐지부지 사라졌다.경찰서에서 김 씨는 외상으로 들어온 자재와 금고를 빼돌린 후 페인트와 휘발유를 가게 안에다 뿌리고 불을 질렸다는 이야기와 지금은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고 부모님에게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는, 믿었던 김 씨 아저씨의 정직한 고백 앞에 부모님은 할 말을 잃었다고 하신다.▶병역기피와 동기생의 전사"믿었던 주먹이 다운되는 순간" 1960년대 길거리 좌판에서 보던 시다. 부모님 가슴을 가히 짐작한다.나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김광오, 고교 동창이며 회사 입사 동기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직장과 학교를 다니던 나는 친구와 같이 입영 통지서를 받고 친구는 입대했지만 나는 기피를 했다. 핑계는 건강이 좋지 않고, 그보다는 집도 절도 없는 집안의 8남매 장남으로 무기력한 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동생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내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으로 병역 기피자라는 죄목의 붉은 줄이 생겼다. 친구와 나는 짝꿍처럼 잘 어울렸다. 입대 후에도 곧잘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친구한테 온 소포에 전사통지서와 유품이 와서 친구 집으로 달려가 보니 친구 사진 앞에 향이 타고 있었다. 무장공비 토벌 작전 중 전사한 것이다. 동작동 국립묘지, 친구 앞에서 나는 대한민국 남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낀 날이다. 얼마 후 병역 기피자 자수 홍보 포스터가 서울 곳곳에 붙어졌다.나는 모든 것을 치우고 자수를 한 후,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강원도 모 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건강이 좋아졌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주고 운동까지 시키니 이처럼 신나는 곳은 없었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 이제는 해골도 아니고 왕 눈깔도 아니다.▶군 생활은 인내심의 수련어느 날 전우신문에 각 군 사관후보생 모집 광고 중 해병대 사관후보생 모집 광고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육군 졸병 일등병이 지원하기엔 산 넘어 산이었다. 육군에서 육군 장교가 아닌 타군 장교로 가기 위해서는 육군 참모 총장의 추천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대장 추천에 중대장 추천서, 그걸 가지고 대대장 추천서를 받고, 연대장, 사단장, 또는 군사령관, 서울에 있는 육본까지 올라가 추천서를 받고 중앙 대학교에서 필기시험, 체력시험, 신체검사까지 통과해야만 해병학교에 입교할 수 있었다.육군 일등병이 어떻게 이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가 있을까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는, 강인한 정신과 육체만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일을 시작했다. 드디어 2박 3일 휴가증을 받아 육군본부 위병소까지 왔다. 어느 곳이나 비슷한 절차였다. 위병소 근무자나 헌병은 나를 보면 "새까만 졸개가 겁대가리 없다"며 "쪼그려 뛰기 3만 번" 또는 어느 곳은 "쪼그려 뛰기 백만 번"하며 얼차려(벌)를 주었고 장교들은 육군에도 장교가 될 기회가 많은데 왜? 해병대로 갈려하느냐고 물었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나에게는 체력시험이 문제였다. 죽기 살기로 뛰었다. 애초부터 선두에 설 생각은 없었다. 포기하여 낙오자가 되지는 말자는 것이 나의 각오였다. 이것이 나의 생활 철학이 되었다.드디어 해병학교에 입교했다.나의 육군 이등병, 일등병 생활은 만족했다. 풍족한 식사, 넘치는 운동량,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 건강한 몸을 만들어 주었다.▶해병대 소위가 되다.군 생활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어떤 군인은 음식이 맛이 없다고 조미료를 몰래 사 먹고, 부모한테 총을 잊어버려 돈이 없으면 영창에 가야 한다고 거짓 편지를 보내 그 돈으로 상급자에게 뇌물, 또는 외출을 나가 돈을 흥청망청 쓰는 자들도 있었다.내가 자대 배치를 받고 내무실에 들어서니 거기에 있는 군인은 전부 동생뻘 되는 상급자들이 30여 명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가끔 어린아이들은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어떤 어린아이는 생트집을 잡아 나를 구타했고 어떤 바로 밑 동생 같은 놈은 알 수 없는 헛소리를 하며 몽둥이로 나를 후려쳤다. 어린아이들은 수없이 나를 얼차려를 주었다.어떤 때는 눈깔 동작이 건방지고 불량하다고 집단폭행도 당했다. (지금은 비인간적인 언행, 체벌이 없다고 한다. 좋은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인내심 수련이라고, 체력단련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육군 졸병은 내무반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하며 해병학교에 입학했음을 신고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원, 섭섭했다.해병학교는 진해 바닷가에 있었다. 해병대 장교는 대부분 여기서 배출한다고 한다. 해군 사관학교도 이웃하고 있는 이곳은 조용하고 공기도 맑고 상쾌한 바닷바람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전반에 걸친 전술학을 배울 것이며 임관하기 전까지 태권도 유단자가 되어야 하고, 공수낙하 훈련, 그리고 특수전 훈련을 수료해야 한다. 여름에는 해군 사관학교에서 전투 수영을 배웠다.왜소한 몸을 가진 나는 무거운 철모와 M1 소총이 나를 힘들게 했다. 더욱이 무거운 철모로 머리가 파묻히고 착검한 총의 높이와 키가 총을 내가 메고 있는지, 총이 나를 메고 있는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동기생과 한참 웃었다. 그런 모양새로 완전군장을 해서 진해에서 창원, 또는 천자봉 정상까지 뜨거운 땡볕에 뛸 때면 죽을 것 같지만 낙오만은 하지 않았다. 정신무장이다. '선두에 설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더불어 낙오할 생각도 아예 하지 않는다'동기생 몇이 픽 쓰러진다. 의무병이 들것에 실어 구급차에 싣는다. 스파르타식 교육과 훈련 방식이다. 낙오나 미달은 퇴교다. 수시로 동기생 몇 명씩 퇴교를 당했다. 어떤 동기생은 며칠 있으면 임관을 하는데 아깝게 퇴교를 당했다. 임관을 앞두고 부모님을 임관식에 초청한다는 편지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병역 기피자로 끌려가 혹독한 벌을 받는 줄 알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임관식에서 나에게 소위 계급장을 달아 주셨다.(6월11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3회가 게재됩니다)

2019-06-03 18:00:00

2019 수성 문학제 '북잼 토크'

이원길 수필가는 2일 수성못 수변무대에서 '2019 수성 문학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대받아 시민들과 '북잼 토크'를 벌였다. 이날 행사에 장호병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심후섭 대구 아동문학회 회장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2019-06-03 08:04:40

한식을 위한 변명/황광해 지음/하빌리스 펴냄

TV를 켜면 먹방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나오고 SNS에는 맛집 인증샷이 넘쳐난다. 어느 때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식이나 맛집에 관한 책들도 쏟아진다. 음식칼럼니스트 황광해의 '한식을 위한 변명'은 '진짜'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혹은 오해하고 있었던 한식을 올바고 잡고, 제대로 한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음식 인문서다.◆궁중음식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한식 찾기책은 그동안 잘못 알려져 왔던 우리 음식의 유래와 의미를 정확한 역사적 근거를 통해 바로잡아 준다.'보양식은 없다', '향토 음식은 없다', '궁중요리는 한식이 아니다'. 지은이가 던지는 화두는 우리의 상식을 한참 벗어난다. 그는 삼계탕이 보양식이 아니며, 우리 조상이 굶주렸기 때문에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던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등 잘못 알려져 온 한식의 진짜 모습을 파헤친다. 한식에 대한 이같은 오해가 생긴 것은 진실은 뒤로 한채 음식을 많이 팔기만 한다는 생각과 일본의 잔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지은이는 궁중음식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사실과 다르게 포장되거나 잘못 알려진 한식을 연구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힘이 셌던 다른 나라에는 궁중음식이 없을까?' 대한제국은 힘없던, 껍데기만 남은, 짓밟힌 나라였다. 힘센 다른 나라들의 발 아래서 신음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도 없던 '궁중의 음식, 나라님이 먹던 음식'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라며 진짜 한식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을 설명한다.보양식, 향토음식, 사찰음식은 없다. 1장 '그런 음식이 아닙니다'에서는 "우습다 못해 슬픈 것이 삼계탕이다. 삼계탕은 없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삼계탕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한식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삼계탕은 우리 시대에 시작한 음식이다"며 삼계탕이 역사가 오래된 보양식이 아님을 설명한다.또 지역 축제를 한다고 해서 가보면 모든 축제마다 '우리 고장 고유의 음식'이라며 도토리묵을 내놓고 있는 점, 정갈하고 소박한 사찰 음식을 외국인에게 인정받게 하기 위해 화려하게 바꿔야만 하는 것인지 등 반문한다.◆앞으로의 한식은 어떤 길을 가야할까2장 '궁중음식의 진실'에서는 궁중음식이라 잘못 알려진 요리에 대해 얘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선로다. "신선로 그릇은 태국, 싱가폴 등의 동남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태국식 국물 요리인 똠얌꿍을 담는 그릇도 신선로다. 동남아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쓰인다. 그걸 우리 정통, 전통, 궁중이라고 포장했다.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서. 한반도 조선의 왕들은 한낱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사용하는 그릇으로 음식을 먹은 셈이다."이와 함께 조선의 왕들이 정말 호화로운 밥상을 받았는지, 궁중음식이 어떻게 대중화 된 것인지, 궁중잡채가 정말 궁중음식인지 등을 고증을 통해 제대로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궁중음식을 전승했다고 알려진 안순환과 한희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마지막에서는 지금의 한식과 앞으로 한식에 대해 말한다. 지금의 한식이 슬프게도 일본풍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전통과 정통을 지키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한식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을 제시한다."한식의 정체성, 특질은 무엇일까? 한식의 정체성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밥상의 특질과 원칙을 찾아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옛 음식을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옛 음식을 만들었던 정신을 찾자는 뜻이다. 복원의 대상은 고분이지 음식이 아니다."박찬일 요리연구가는 치밀한 고증을 통한 진짜 한식을 끌어냈다며 책을 추천한다. "기자 출신인 지은이는 고정 관념과 시중의 상식을 의심한다. 치밀하게 파고들어 입증해낸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보양식이니 신선로니 한정식이니 심지어 '궁중음식'까지도! 더구나 당대의 한식이 일본풍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있어 온 이야기인데, 이처럼 치밀하게 독자적 시선으로 고증해낸 경우는 드물었다." 236쪽. 1만4천원.

2019-05-30 11: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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