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⑤]박영귀 작

1981년 8월 5일 집사람과 딸내미가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집사람은 딸내미를 업고 세탁소에서, 나는 식당에서 일했고 어느 정도 중국식당 운영을 파악하자, 인디애나주에 있는 일본 식당에 취직을 했다. 일본 식당을 알고 싶어서다. 그런데 휴가를 가서 자신을 생각해보니 사업을 해 본 적도 없고, 돈 버는 기술도 없고, 돈도 없고, 어떻게 식당을 할 것인가에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의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 집사람은 친정에 손을 벌려 보자고 했지만 죽으면 죽었지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다. 올바른 판단의 결론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사방을 헤아려 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밖에, 나에게 용기란 돈이 들어가면 안 되는 조건이 있다. 돈도 없고, 나올 구멍도 없으니깐.'아! 찾았다 하나 있다 그것은 두뇌다.' 학교는 올바르게 다니지 못했어도 학교 다닐 때 받았던 수십 장의 우등상장과 상장들, 육군 일등병이 해병대 장교가 된 용기와 두뇌, 동기생의 간부, 새마을운동 지도자, 전부가 빈손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한 경험이 나는 있다, '아! 나는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야 집사람도 그렇고.'나는 공부를 해서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했다. 집사람과 함께 식당 일을 하면서 뉴욕, 엘 에이, 시카고, 등 대도시 한인사회 지인과 신문을 통하여 우리 영어 수준과 공부해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았다. 시, 주 공무원, 연방 공무원, 가리지 않고 찾았다그 결과, 육군 군무원과 우체국 직업이다. 둘 다 연방 공무원으로 봉급도 은퇴 후 혜택도 좋았다. 유급 휴가와 병가도, 휴일도 많아 가족과 즐길 시간도 충분히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군무원은 우리 부부가 같이 근무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체국 시험을 보기로 했다. 영어도 그다지 많이 필요 없고 암기력을 위주로 한 시험이었다. 식당 퇴근 시간이 밤 10시, 매일 새벽 1시까지 시험공부를 하여 집사람은 인디애나주에서 만점을, 나는 99.8점을 받았지만, 응시자가 너무 많아 발령받기가 쉽지가 않았다.그때, 다니던 식당이 장사가 부진해서 우리는 미시간주로 가야 했다. 마침, 지방정부에서 실시하는 직업학교(요트 제작)가 있어 거기를 수료하고 요트 공장에 입사하여 회사에 다니면서 우리 부부는 다시 시험에 응시하여 또, 집사람은 만점, 나는 또 99.8점을 받았다.드디어 발령을 받아 상급 부서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임지로 왔다. 홀랜드시다. 더치페이로 유명한, 네덜란드 민족이 모여 사는, 식당에 가면 부부, 또는 가족끼리 손을 잡고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과 튤립 꽃, 풍차가 있는 인구 6만의 작은 도시다.주로 백인이 거주하고 개혁교회가 많다. 옷을 기워서 입고 다닐 정도의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자존심이 강한 민족 같다.집사람은 아이들 때문에 나만 먼저 우체국에 출근해서 우체국장에게 첫 인사했다. 또 한 명이 있었는데 백인 여자였다. 그 여자 시험 점수는 99.6점, 나는 99.8점으로 내가 우선권이 있었다. 우체국장은 백인으로 미 육군에서 부사관으로 오래 근무한 노인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3개월의 수습 기간 동안 시험에 통과해야만 한다고 엄숙하게 말하고, 시험방법은 1200개의 주소를 암기하고 거기서 무작위로 뽑은 100개의 주소를 우체부 번호로 만들어진 공간에 지정된 시간 내에 적중률 95% 이상을 집어넣는 시험이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는 나만 따로 불러 종이에다 그 시험에 합격해야만 연방정부 공무원법에 의한 급여를 주지만 불합격하면 합격할 때까지 시간당 $9.5를 주겠다며 $9.5라고 썼다. 나는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는가 하고 백인 여자한테 물어보니 자기에게는 아무 소리도 안 했다는 것이다. 노조위원장에게 얘기하니 그는 봉급 주는 날, 진짜 그렇게 주는가 보자고 했다.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1200개의 주소를 암기하기 시작했다.거의 백인인 우체국 안에는 노골적인 차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나가면 코를 막고, 내가 갖다 놓은 우편물을 집어던지고 내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코를 손으로 가리며 일어서 나갔다. 동양인과 같이 근무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고 마늘 냄새가 나고 더럽다는 것이다. 우체국장이 왜? 나에게만 $9.5라고 썼는지 알만했다.우체국에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직원도 있고, 미군으로 한국에 근무한 직원도 있고, 한국 고아를 입양한 직원도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보고 왔는가? 그것이 그들이 나한테 하는 행동이다. 측은하고 불쌍한 후진국 국민이 자기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속이 상한 것이다. '자! 그럼 나는 여기서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직분은 우편물을 판매, 접수, 분류, 관리, 우송, 그리고 우편배달을 제외한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일이다. 업무는 쉬운 것 같은데 직원과의 알력에 심각한 스트레스가 예상되었다.그러나 절대 낙오란 있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생각대로 후진국 사람처럼 불쌍한 시늉을 하여 동정받으며 지내야 하는가? 내가 그들보다 보수를 적게 받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들보다 더 받고 또, 그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나는 지금 막 시작했지만 나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 있었다. 임시직, 우편물 우송직, 청소직, 등 여러 백인이 있었다. 단 하나, 실력으로 하는 것 밖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나는 쫓기는 토끼가 될 것이다. 죽기 살기로 뛰는 토끼가 될 것이다. 백인들은 여기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지만 나는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다고 배수진을 칠 것이다.나는 1200개의 주소를 일주일 만에 암기하고 일주일 동안 속도 훈련을 한 후 시험을 봤다. 96% 적중률로 합격했다. 우체국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우체국장은 노조 위원장을 불러 다시 하면 어떠냐고 했고, 노조 위원장은 나한테 다시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했다. 다른 백인들도 보고 있었다. 시험관이 "시작" 하며 스톱워치를 눌렸다. 그리고 내가 분류한 것을 검사했다. 100%로 합격이다. 우체국장은 한동안 '멍' 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 우체국장은 전 직원들을 모이게 하고 내 이름을 호명한 후 '우체국 기록상' 2주일 만에 1200개의 주소를 암기하고 합격 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표창장을 주었다. 백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그 후에도 나는 표창장 10번, 집사람은 3번을 더 받았다. 상금 아니면 특별 호봉 승급도 같이 받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공짜는 없었다. 사냥개에 쫓기는, 목숨 걸고 달리는 토끼의 심정으로 쉬지 않고 노력했기에 있었다. 그 후 악질 우체국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미국 성당에서 영세을 받을 때, 내 대부가 되어 내 손을 잡고 신부님 앞으로 나갔다. 그는 나를 아들처럼 대했다. 집사람과 나는 백인들이 싫어하는 휴일 근무를 도맡아서 했다. 휴일은 2배의 돈을 받았다. 악착같이 일을 하고 재투자를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우리 부부는 정신병 진단을 받고 의사로부터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받아 유급 휴가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유급 병가를 이용해서 세계 여러 나라를 관광을 했다. 한국과 미국 48주 곳곳을 아이들과 캠핑을 갔다. 백인들이 우리 부부를 무시하고 시기하는 눈총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소포 분류하던 백인이 눈 보호 안경과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긴 집게를 들고 나한테 와서는 보여 줄 게 있다고 해서 가보았더니 한국에서 온 소포가 터져서 내용물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멸치였다. 백인들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나한테 물었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하니 나를 쳐다보는 눈이 아프리카 식인종을 보듯 했다.(7월2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6회가 게재됩니다)

2019-06-24 18:00:00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정우성 지음/원더박스 펴냄

잘생긴 영화배우의 대명사 '정우성'. 그가 언제가부터 우리 사회 난민 이슈의 중심에 서고 있다. 지난해 5월 자국의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온 500여명의 예멘인 난민 신청자의 수용 문제를 두고 찬반 논란이 있었을 때, 정우성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난민 보호에 힘써달라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난민이라는 다소 민감한 사안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정우성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을 하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난민 문제에 대한 생각을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으로 엮어냈다.◆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 난민정우성은 "난민을, 그리고 난민촌을 직접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다면, 그들을 돕는 문제에 대해, 그리고 유엔난민기구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소중히 쓰려 한다"며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한다.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연예인이 비영리기구 활동을 하는 사례는 적지 않지만 정우성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그가 어느 순간 우리 사회 난민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2014년 5월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된 정우성은 그해 11월 네팔로 첫 난민 캠프 미션을 떠났다. 그곳에서 난민 지위를 얻은 사람부터, 법률상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하고 유엔난민기구 보호 대상자가 된 사람들을 만났다. 2015년 5월에는 남수단에서 수단 출신 난민과 남수단의 국내 실향민을 만났고, 같은 해 6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11명 중 한 명으로 공식 임명됐다. 2016년 3월 레바논에서는 시리아 난민을, 2017년 6월에는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내 실향민과 시리아 난민을, 2018년 11월에는 지부티와 말레이시아에서 예멘 난민을 만나는 등 매해 한차례 이상 해외 난민촌을 찾았다.처음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됐을 때, 그는 난민 문제와 특별한 관계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제안을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배우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다른 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오던 그였다. 딱히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는 게 그의 소박한 수락 이유다. 그가 걱정한 것은 혹시라도 자신이 바쁘다는 핑계로 활동을 소홀히 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난민 문제를 위한 해결책은?정우성은 난민을 만날수록 이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내전이나 폭압 등의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임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난민촌이라고 웃음이 없을 리 없다"며,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아이들 교육 문제를 더 걱정하는 부모들을 마주하며 난민에 대한 이해가 확장돼 갔다고 고백한다.제주도를 찾아온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스마트폰을 쓰고 브랜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가짜 난민'으로 몰릴 때, 그가 단호히 '가짜 뉴스'에 맞서 이들을 비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정우성은 당시에 제주도에서 난민지위신청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고국에서 기자, 엔지니어, 셰프 등으로 활동했던 이들이었고, 내전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받던 탄압을 피해 이곳까지 온 상황이었다. 그들은 본국에서 입던 옷을 입고 이곳까지 왔을 뿐이고,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고 어느 나라에서든 값싼 심카드를 구해 바꿔 끼우기만 하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그는 난민 문제에 대해 온정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 차원에서 정치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 각국에서의 여론이 중요하며, 그러하기에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참여라고 이야기한다.인권, 평화, 사랑 등이 그가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키워드다.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이지만 난민 문제를 접하며 이 단어의 소중함에 대해 더욱 크게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나 역시 상상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는, 보다 나은 세상을"이라고 책의 끝을 맺는다. 216쪽, 1만3천500원.

2019-06-20 11:36:28

인간 뇌 속 해마

[서평] 해마를 찾아서/ 윌바 외스트뷔, 힐데 외스트뷔 지음/ 안미란 옮김/ 민음사 펴냄

사람들은 매일 기억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당시엔 분명 뇌리에 박혔다고 생각한 각종 정보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거나 다른 정보들과 뒤엉켜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다. 기억이 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누구도 반기지 않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기억에 대한 불안은 나이가 들면서 더 커진다. 도대체 기억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삶 곳곳에 침투해 영향을 미치는 걸까.지은이인 신경심리학자 윌바 외스트뷔와 언론인이자 작가인 힐데 외스트뷔 자매는 450여 년 전 해마의 발견에서 시작해 현대의 기억 연구에 위대한 기여를 한 실험과 연구 성과를 짚어 나가며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는지, 기억을 효과적으로 불러내기 위한 기억 훈련법은 무엇인지, 허위 기억과 망각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를 살피고 있다.◆인간 뇌 속에서 발견한 해마바다에 사는 생물과 우리 뇌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바다의 해마와 뇌의 해마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가지 있다. 새끼들이 바다에서 헤엄치는데 위험이 없고 그들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배에 알을 품는 해마 수컷처럼, 인간 뇌의 해마 역시 무언가를 품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억이다. 해마는 기억이 크고 강해져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꼭 붙잡아 둔다. 해마는 기억을 위하 인큐베이터인 것이다. 이탈리아 해부학자 율리우스 아란티우스는 1564년 뇌의 측두엽에 묻혀 있는 해마를 처음 발견했다. 바다의 해마와 비슷하게 생겨 '해마'라 이름을 붙였다. 이런 해마의 발견은 해마를 제거해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 헨리 몰레이슨과 그 반대편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 솔로몬 셰레셰프스를 연구함으로써 인간 기억의 작동 방식과 현대의 기억 연구가 본격 진행됐다. ◆ 기억은 인간의 뇌 어디에 있을까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자 덩컨 고든과 앨런 배들리는 1975년 기억이 어떻게 그물에 갇히는가를 보이기 위해 잠수부를 상대로 스코틀랜드의 해안에서 했던 잠수 실험을 오늘날에 재현했다. 당시 잠수부들은 다리 위와 수심 5m라는 서로 다른 조건에서 단어 목록을 암기했다. 그 결과 물 속에서 외운 단어는 물속에서 훨씬 더 잘 기억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억의 상황 의존적 성질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와 동일한 환경에서 꺼내기가 수월함을 알려 준다. 기억이 다른 무엇에도 관계없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다니는 일은 드물고, 다른 물고기와 함께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기억을 다시 꺼내야 한다면, 함께 묶여 있는 다른 기억 몇개를 함께 찾는 게 고기가 잡힐 가능성이 높다.◆ 허위 기억은 어떻게 들어오나우리가 가진 기억 하나하나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대부분의 기억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회상을 할 때마다 재구성이 되어야 한다. 뇌는 우리의 모든 경험을 영화 필름처럼 정확하게 저장할 필요가 없다. 대신 해마가 경험들을 꼭 붙잡아 주는 기억 망으로 엮여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공간이 생기고 우리의 생각이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허위 기억의 구성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관여한다. 우리가 겪은 일은 시간이 지날 수록 희미해져 허위 기억이 들어오기 쉽고, 일상적인 일은 적극적이고 이상한 일보다 쉽게 거짓 기억이 되어 파고 들어온다. 진짜 기억은 사실 상상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허위 기억은 환상에서 시작하여 기억을 거쳐 어느 순간 현실로 인식되는 것이다.◆기억, 얼마만큼 좋아질 수 있나런던 교수인 엘리너 매과이어는 런던 택시 기사의 뇌와 일반인의 뇌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검은색 런던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장소 기억 시험을 통과해야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이 시험에는 GPS의 도움 없이 2만5천개의 도로와 320개의 루트를 기억해야 한다. 런던은 단순히 오래된 도로와 새로운 도로, 큰길과 샛길의 미로일 뿐 아니라, 공간 기억을 극한까지 훈련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런 환경이다. 훈련 전 택시 기사 지망생들의 해마는 대부분 사람들의 것과 같은 크기였다. 그러나 매과이어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소 기억을 집중적으로 훈련한 택시 기사들의 경우 해마도 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 대부분 사람들보다 해마가 있는 뒤쪽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뇌가 훈련될 수 있다는 증거이다.◆미래에 대한 상상은 기억의 일부'미래에 대한 상상은 기억의 일부다.' 미래 연구자인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토머스 서든도프가 이 기능을 밝히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기억 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진화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뇌의 기억 체계에 포함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화적 이점 때문이라는 것. 생존에 관해서라면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유용할 뿐이다. 오류투성이이고 유연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의 기억은 살아 있고 유연한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기능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더라면 인간에게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기와 기차, 잠수함과 비행기.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먼저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이며, 꿈의 뿌리는 기억에 있다. 기억은 환상의 재료이다. 그리고 환상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에너지다. 388쪽 1만6천800원.

2019-06-19 18:41:16

화장의 일본사

[책 체크] 화장의 일본사/ 야마무라 히로미 지음/ 강태웅 옮김/ 서해문집 펴냄

일본 전통 화장에 사용된 색은 고대부터 기본적으로 하양, 빨강, 검정 등 세 가지였다. 하양은 백분, 빨강은 입술연지나 볼연지, 검정은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오하구로와 눈썹 화장의 색으로 쓰였다. 이 세 가지 색은 서양 화장이 일본에 들어오기까지 1천년 이상에 걸쳐 일본 전통 화장의 기본색을 이루었다. 검정 화장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다.이 책은 헤이안 시대, 에도 시대, 메이지 시대, 쇼와 시대에 걸쳐 메이크업 중심으로 화장의 변천사를 풀어간다.헤이안 시대 중기 무렵은 귀족계급 여성에 의해 백분과 연지 사용, 오하구로 화장, 눈썹 화장 등 전통화장의 기초가 만들어졌고, 에도 시대에는 상류층에서 서민층으로 확대되면서 화장을 예의로 보는 교양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메이지 시대부터는 근대화로 전통화장이 무너지고 오하구로 화장과 눈썹 밀기가 사라졌고, 쇼와 시대 전까지는 서양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볼, 입술, 눈썹, 눈에도 서구식의 포인트 화장이 새롭게 유행했다. 256쪽 1만6천원.

2019-06-19 18:34:46

다산에게 배운다

[책 체크] 다산에게 배운다/ 박석무 지음/ 창비 펴냄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쓰는데 있고, 아껴 쓰는 것의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검소해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함이야말로 목민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할 일이다.'-다산 정약용 '목민심서'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50년간 천착해온 다산학 연구의 과정과 결실을 담은 역작을 냈다. 박 이사장은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 등 논문과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이 책에는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 조선 실학사상의 흐름, 다산학의 민중성 및 새 화이론 고찰, 다산의 공직윤리와 목민관상, 다산의 흠휼정신과 법의식, 다산의 농업대책 등 다산의 개인적인 삶에서부터 고차원적인 학문적 개념들에 이르는 '다산학' 연구의 전모를 만날 수 있다.지은이는 "다산학이 주자학을 뛰어넘는 조선의 유학사상이자 실학사상으로서, 중세의 학문에서 근대의 학문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그 다리를 놓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목적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404쪽 1만8천원.

2019-06-19 18:34:06

호국평화기념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관람객을 맞는 철모와 55발의 총탄. 55일간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이곳의 역할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흥]전쟁이 뭐꼬... 호국보훈의 고장 칠곡에서 되짚는 전쟁의 기억

'왜관역'이 호명되면 대구에 다 왔다는 신호였다. 무궁화와 비둘기에 몸을 싣던 시절이다. 대구가 코앞이다. 20km다. 대구로 기어이 들어오려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을 기필코 막으려 했던 이들이 있었다. 1950년 8월이다.군가 '최후의 5분'을 기억하는가. 왜관을 중심으로 한 칠곡군은 지금 대한민국의 버팀목이 된 곳이다. '우리가 밀려나면 모두가 쓰러져, 최후의 5분에 승리는 달렸다'는 가사처럼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선두에 있던 왜관에서 우리는 55일을 버텼다.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이후 69번째 6월 25일을 앞두고 찾은 칠곡이다. ◆다부동 전적기념관관람객을 맞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강렬하다. 오래된 기억 속 공간이다. 1981년 준공된 다부동 전적기념관이다. 40년 가까이 외형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탱크 모양을 형상화한 그곳이니 틀림없다.아이러니하게도 도로가 확장되고 교통이 편해지면서 찾는 이들의 발길이 줄었다. 관리를 맡은 한국자유총연맹 측도 변하는 세태를 인정한다. 방문객이 연인원 50만명 수준이라고 했다. 주변에 함께 둘러볼 곳도 마땅찮다. 일부러 이곳만 보러 와야 하는 곳이 됐다.유학산에 오르려는 이들이 산행 기점으로 삼기도 한다. 기념관에서 유학산이 바로 보인다. 중앙고속도로 다부터널을 지나면 위압적인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그 산이다. 해발고도 839m 정도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홀로 돋보인다. 매년 힐 클라이밍 대회가 열리는 자전거 마니아들의 성지다. 한 번 라이딩하고 나면 허벅지 두께가 2cm씩 늘어난다는 유학산에선 매년 한국전쟁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 다부동 전투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유학산은 살아 내려가기 힘든 곳이었다. 높은 산이었고 깊은 골이었다. 조지훈 시인의 '다부원에서'처럼 '彼我(피아) 공방의 화포가 한 달을 내리 부르짖던 곳'이었다.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을 만큼. ◆가산산성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을 만큼 오래된 요새다. 지금은 등산로로 고마운 가산산성이다. 팔공산 종주의 시작지로 선택되기도 하는 이곳은 한국전쟁에서 백병전으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1950년 8월 18 ~ 27일까지 전투가 있었다.백병전은 육박전이라고도 부른다. 총알로 싸우는 전투가 아니다. 코앞에서 목을 조르고 급소를 찌른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싸움이다. 살려달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측은지심에 경중이 있으랴만 '살려주시라요'와 '살리주이소'에는 차이가 생긴다. 북한군에 의용군으로 끌려간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서글픈 이야기가 있다. 가산산성에 있던 북한군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의용군에게만 가산산성 사수를 명령하고 도주했다고 한다. 국군이 "대구 출신은 손뼉을 치고 나오라"고 외치자 사방에서 38명의 의용군이 무기를 버리고 나왔다고 한다.가산산성 주변 치열했던 전투 현장은 70년 뒤 평화로운 마을이 됐다. 원당마을, 현방마을의 풍경은 최근 들어 크게 바뀌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도 계단식 논에 농가가 띄엄띄엄 있던 마을이었다. 분명 개별적으로 지은 집인데 어느새 전원마을처럼 모였다. 관광명소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호국평화기념관2015년 낙동강변 가까이에 호국평화기념관이란 게 생겼다. 어찌보면 다부동 전적기념관의 역할을 넘겨받은 곳이다. 호국정신을 지역 정체성으로 삼는 칠곡군의 랜드마크다. 그도 그럴 것이 낙동강 방어선 최전선으로 장장 55일간 버텨준 곳이다. 인천상륙작전의 토대가 됐다. 왜관의 낙동강이 인천의 바닷길을 연 셈이다.기념관에 들어선 관람객은 다소 충격적인 조형물을 마주한다. 총알이 후두둑 철모 위로 떨어지는 장면이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예비군들에겐 주지의 사실이겠지만 철모는 유탄 방지용이다. 정확히 머리로 날아온 총알을 철모는 막지 못한다. 철모의 주인은 분명 전사자다.1950년 8월과 9월 철모의 주인들은 쓰러졌다. 기념관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인근은 전장이었다. '폭풍'이라는 작전명처럼 북한군은 남쪽으로 휘몰아쳤다. 그러나 왜관을 넘지 못했다. 기념관은 시종일관 북한군이 왜관을 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왜관철교를 폭파하고 다부동, 가산산성 등지에서 버텨낸 기록들을 보여준다.호국전시관, 전투체험관, 어린이평화체험관 등으로 나뉘어 있다. 선혈이 낭자하는 전쟁의 참상을 아이들에게 과하게 전하지 않으려 애쓴다. 3세 남짓해 보이는 어린이집 원아들에서부터 현장체험에 나선 초등학생까지 평일에도 북적댄다. 성인 3천원, 청소년 2천원, 초등생 1천원의 입장료가 있다.주말 나들이 코스로도 추천할 만하다. 기념관 바로 옆에 소풍 장소로 적당한 벌꿀나라테마공원이 있다. 자전거 라이더들의 경유지 칠곡보, 관호산성 앞 낙동강역사너울길과 왜관철교까지 몽땅 걸어 이동할 수 있을 거리에 모여들 있다. ◆왜관철교, 호국의 다리왜관철교에는 '호국의 다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1950년 8월 3일 둘째 경간 63m가 끊긴 데서 붙은 훈장이다. 남하하는 북한군의 전차를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푹신하게 걷기 좋은 인도교다. 주로 걷는 이들이 오가지만 자전거를 타고 건너도 뭐라 눈치주진 않는다. 서로가 인사하며 지나는 시골에서 법령 운운하며 핏대 세울 사람도 없다. 평화롭다. 1905년 열차교량 용도로 준공됐다. 500m가 채 안 되는 길이다. 지탱하는 교각마다 버텨낸 세월만큼 색이 바래있다.자고 일어나보니 유명인사가 됐더라는 '칠곡 가시나들'의 시가 왜관철교 다리에 걸려있다. 한글을 깨친 이들이 정리해 가는 인생사 중 가장 아픈 곳 중 하나는 전쟁이었다. 자고 일어나보니 전쟁은 터져 있었고, 듣도 보도 못한 현실이었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 기억을 글로 풀어 왜관철교 두 번째 경간에 달았다. 1950년 8월, 그리고 한국전쟁이 재생된다. 이들의 표현 몇 줄을 그대로 옮긴다. '집에 폭탄 맞아서 다 탔다. 집은 좋은 집인데. 아무것도 없다. 먹을 것도 없다. 배급줘서 먹었다. 먹을 거 없어서 있는 집에서 얻어먹고 애 먹었다. 고상 마이 했다. 인민군들이 아이들 결혼할 때 쓸라고 정재 단지에 묻어 두었던 밍주, 삼베 다 파내서 발에 칭칭 감고 돌아다녔다. 생지랄... 끔찍하다. 피란 갔다 와서 애들이 수류탄, 대포 갖고 놀다가 마이 죽었다. 마카 안고 다 울었다' -고상 마이 했다 (박문임, 덕산댁)- '비행기 폭발해서 인민군이 못 건너오도록 왜관철교를 끊었다. 낮에는 폭탄이 터져서 산에 굴속에서 숨어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밤에는 각산 제실에서 잤다. 전쟁 끝났다고 미군들이 올라와서 손 둘고 북삼 율 2동 집으로 왔다. 옆 동네는 빨갱이 있다고 불질렀다. 지금도 비행기 보면 비행기가 머리우에 뱅뱅 돌고 있는 것 같다' -비행기 (송문자, 각산댁)- 정제됐거나 압축된 시어가 아니다. 전쟁을 겪은 이들의 감정이 시를 보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판다. 그 감정이 전해져 먹먹하다. 칠곡 할머니들이 써준 다큐멘터리다. 전전(戰前)세대들의 '배가 고파봤냐', '전쟁을 겪어봤냐'던 눈빛이 어른거린다. 긴 말 대신 한숨에 가까운 '어휴, 참'이라 하고 말았던 이유가 실감난다. ◆별미의 시간, 미군기지 앞 한국인 맛집왜관읍내에 캠프 캐럴이라는 미군 병참기지가 있다. 1960년 들어선 미군기지다. 농촌마을에 난데없이 미군기지가 왜 들어섰을까. 왜관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요충지였다. 지금이라도 거점 내륙 화물기지인 칠곡 물류 IC를 떠올리면 쉽다. 미군 입장에서도 왜관은 보급 창고로 최적지였다.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캠프 캐럴 주변은 별세계였다. 이곳 후문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형성된 상권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했다. 미군과 군속을 상대로 영업하던 식당은 이제 내국인에게 '맛집'이라는 표창장을 받고 영업중이다. 캠프 캐럴 후문에 줄지어 있는 경양식 식당들이다.각 식당별로 특색있는 메뉴가 있다. 몰려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 돈까스, 샌드위치, 햄버거 등이 조금씩 다른 모양과 맛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손님은 대개 내국인들이다. 칠곡군도 이 점을 간파했다. 캠프 캐럴 후문 일대를 2022년까지 푸드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줄을 서서 먹는 식당이 두 곳 보인다. 근자에 맛집 공증, 백종원 씨 사진이 보이는 식당을 고른다. 난생 처음 보는 메뉴에 당황할 찰나. 다른 테이블에 많이들 올라와 있는 메뉴를 훑는다. 코돈블루(Cordon blue), 시내소(슈니첼[Schnitzel]을 부르기 쉽게 바꾼 것), 햄버거다. 모두 고기가 듬뿍 들어간 음식이었고 손님 대부분은 먹는 도중 콜라를 주문한다.줄을 선 또 다른 식당도 염탐한다. 1980년대로 돌아간 인테리어다. 음식에 대한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다 싶었는데 테이블을 보니 돈까스 일색이다. 돈까스 크기가 한눈에 봐도 보통 성인용이 아니다. 역시나 내국인들로 바글바글하다.

2019-06-19 18:00:00

[반갑다 새책]이기적 유전자, 반격의 사피엔스/권행백 지음/아마존의 나비 펴냄

잠 못 이루고 건강을 해칠 정도로 현대인들에게 고통과 불안을 주는 것 중 하나가 걱정이다. 그러나 걱정을 잘 분석하면 전체 걱정의 40%는 기우(杞憂)다. '하늘이 무너질까'와 같은 쓸데없는 것이란 뜻이다. 또 나머지 40%는 과거의 반추에 따른 사고의 확대 재생산에 불과하며 12%는 사소한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런 남은 8% 중 4%는 통제 불능의 걱정이며 기껏 4%만이 통제가 가능한 걱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시시대부터 축적된 자연과의 투쟁에서 우리 인간 유전자에 심어진 하나의 경고체계가 걱정의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다.책의 부제가 '진화생물학에서 찾은 행복의 기원'이다.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결핍의 기원, 인간의 불행, 짝짓기 등을 지은이 특유의 말재주로 풀어내고 있어 글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그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유전자는 인간의 몸에 본능을 새겨두고 욕망에 직면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유전자의 요구에 충실한 삶은 인간 개체의 행복을 더 이상 담보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따라서 개체의 다양성 즉 '자기다움'을 찾는 것이 행복한 삶으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전자의 정체를 제대로 알면 본능에 새겨진 애정, 물질, 신념의 결핍으로부터 해방되어 자기다움을 펼치도록 돕는다는 것.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해 주인 된 삶을 개척할 무기로 삼는다면 개성의 깃발을 높이 올려 자기답게 살 수 있다.지은이는 한의원 개업의로 한때 '명의'소리를 들으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런 삶을 접고 십 여년의 세월을 돌아 이름마저 '행복한 백수'란 뜻의 '행백'으로 바꾸고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을 자처하고 나섰다. 368쪽, 1만4천500원

2019-06-19 11:48:31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 어느 낙엽의 시'④] 박영귀 작

해병대 대위 시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악몽이 다시 시작됐다. 새마을 운동이고 뭐고 다 집어치울까 말까? 새마을 운동이란 더 나은 삶의 비전이 보여야 한다.밥줄이 끊어질까 말까 하는 지금은 아니었다. 사양길에 들어선 활판 계의 주조, 문선, 식자, 등등 각 부서의 사람들은 나와 은밀하게 만나기를 원했다. 술집에서, 다방에서 또는 생일이라고, 장례식장에서 모임을 했다.그들의 노조 결성은 거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연판장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사주 측도 이미 알고 있었다. 주모자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살생부였다. 그들의 움직임이 겉으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탄의 도화선이 타고 있었다.나는 긴급 노사 협의회를 열 것을 사주한테 건의했다. 사주 측 K 사장은 선수를 친다. "연일 계속되는 새마을 사업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안타깝게도 시대 흐름이 활판계의 타격을 주어 상심이 크실 줄 알고 저희도 그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낙오자 한 사람도 없이 구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니 동요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잘 하신 대로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회장님께서 얼마 되지 않지만, 여러분 노고에 감사하다고 금일봉을 주셨습니다. 누구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그렇게 회의는 끝났다. 수군수군하면서도 선뜻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약하니까 약자다. 칼을 쥔 자가 나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는데 토를 달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은 안심하는 모양이다. 사주의 플라세보 처방이 약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월은 얼렁뚱땅,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가장 거북하고 지루한 시간이었다.그때, 기억과 망각의 혼돈 시절, 항상 어수선했던 날들. 한쪽 귀는 노동자의 소리를. 한쪽 귀는 사주의 소리를, 정부의 시책을 들어야 하는 야누스의 시간, 이미 혀는 굳어가고 내 자존심의 최후 마지노선은 귀머거리인 척하는 것 이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윗집에 살던 요시찰 인물이었던 김교수가 할 수 있는 말은 꽃 이야기뿐이었고 나는 술 이야기 이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왕대포집에 배수진을 친 나는 벽에 쓴 누군가의 낙서를 쳐다보며 게걸스럽게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어제도 오셨는데 오늘도 오셨군요. 내일 또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안주는 기분 더러워서 자신이 한심해서라는 이유가 안주였다.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사건으로 세상이 난리다. 신문 호외에 주먹만 한 활자가 대통령 유고를 알리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에 포기한 미국 비자의 유효기간을 살폈다. 아직 살아있다.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집사람에게는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1979년 11월 2일, $855를 가지고 김포 공항을 빠져 나갔다. 영어를 알아듣지도 못 하지만, 영어로 해도 미국 사람들은 이해를 못 했다. 부산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김 선생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영어교육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할 수 없다. 만국 공통어로 손짓, 발짓했다.처지가 비슷한, 부산 김 선생, 광주 이 검도 사범, S 대 사학과 출신 강군,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시카고 변두리, 싸구려 아파트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제일 나이가 많은 김 선생이 대장, 내가 부대장, 강군이 회계 담당 회장, 이 사범이 살림 담당 회장, 그래서 부를 때는 대장님, 부대장님, 강 회장, 이 회장으로 정했다.돈을 절약하기 위해 아침은 가까운 곳에 있는 커피가 공짜인 도넛 집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점심과 저녁은 밥(안남미)에 닭고기나 생선 통조림으로 하기로 했다. 계산해 보니 개나 고양이가 먹는 통조림보다 싸서다.우리가 사는 동네는 남미계와 흑인들이 많고 거리가 지저분했다. 그 대신 월세가 무척 쌌다. 밤에 전등을 껐다 켜면 바퀴벌레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기가 막히게 많았다. 대장이 아파트 사무실에 가서 얘기 하니 오히려 화를 내며, 이 바퀴벌레들이 아시안들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삿대질을 하며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지랄을 해서 혼났다고 한다.우리는 바퀴벌레와 6개월 동안 같이 살았다. 우리는 밤에는 공장이나 사무실 청소를 했고 낮에는 강 회장 지휘 아래 이력서를 작성 했다. 강 회장 정보에 의하면 코리안은 꾀 안 부리고 일 잘하는 불쌍한 후진국 사람으로 알고 있어 쓸데없는 거짓말이나 허풍을 떨지 않는 한 채용하니 잘난 척하는 것보다는 불쌍한 척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그들이 공장 근로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장거리 전화로 한국에 전화할 리도 없고, 한국에서 그 전화를 받고 답변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지금은 통신수단 발달로 확인이 쉽지만) 그렇지만 나중에라도 솔직하지 못한 것이 발견된다면 코리안 전체의 문제가 되니 거짓 행동은 하지 말자고 했다.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공장에 취직하는 것보다는 식당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과 중국요리를 배워 식당을 차리고 싶었다. 마침, 교포가 하는 중국집에서 침식 제공, 종업원을 구한다하여 가족들과 이별주를 마시고, 또 지긋지긋한 바퀴벌레와도 헤어졌다. 미시간주에서 제법 큰 식당을 하는 경상도 사나이와 그의 부인은 서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으로 서로 눈이 맞아 미국으로 튀었다 한다.교포사회에서 성공한 사례다. 그의 노래는 항상 "하루 해는 너무 짤 바요"였다. 무슨 노래의 토막인지 모르지만, 그 토막만 불렸다. 부지런하고 열성적이었다. 경상도 시골에서 남의 땅으로 농사를 짓던 소작농의 아들로서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떠돌아다녔다 한다. 나와 모양새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성장기였다.사장 집 지하방에서 4명의 새 식구가 나를 위해 환영 파티를 열었다. 서로 어떻게? 왜? 미국에 왔느냐라는 질문은 피했다. 육군 일등병 시절로 돌아갔다. 선임 순으로 업무가 주워 줬다. 나는 식당 청소, 설거지, 채소 다듬기를 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일했다. 고단한 하루였고, 지하실에 와서는 그냥 곯아떨어졌는데 중간에 잠에서 깼다.내 옆 침대에는 자갈길을 달리는 탱크 한 대와 트럭 한 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 나서는 탱크는 박 선생, 정 선생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투덜거렸다. 한국에 갈 여비가 생기자, 나는 서울로 날아갔다. 일 년 만에 온 서울, 집사람과 딸내미가 있는 영등포 처가 대문을 뚜드렸다. 모두 놀랬다. 집사람은 훌쩍훌쩍 울었다. 그동안 소식이 없어 미국에서 딴 살림을 차린 줄 알았다는 것이다.실제로 성당에 다니는 사람 중에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우리는 달동네를 갔다. 가슴 아팠다. 달동네는 나를 항상 괴롭혔다. 부모님은 더 늙어 보였고, 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말씀은 "돈 없이 객지에 나가서 얼마나 고생이 많냐"라고 하시며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 하시지만 미국에 가면 떼 돈을 버는 것으로 아는 달동네 인식은 동생들까지도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장남이 장남 노릇을 못 한다는 눈치는 내 가슴에 대못을 사정없이 꽝꽝 박았다.얼마 되지 않지만 용돈 하시라고 부모님에게 봉투를 드렸다. 동생들에게도 봉투 하나씩을 주었다. 그런데 남동생이 "형이나 형수랑 잘 살아" 하면서 봉투를 던지자 그 순간, 내 손은 남동생 뺨을 때리고 있었다. "형이 뭐 잘 한 게 있다고 때려" 하며 엉엉 운다. 나도 남동생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지만 집사람과 딸내미에게 잘해 주고 싶었다. 장난감도 사고 옷도 사고 식당에도 갔다. 그리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돈을 주고 미국에 올 절차를 받으라 하고 미시간주로 돌아왔다.(6월25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5회가 게재됩니다)

2019-06-17 15:30:00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책]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이정환 지음/고요아침 펴냄

이정환 시조시인이 시조선집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를 출간했다. 1978년 등단 이후 40여 년 동안 쓴 1000여 편의 작품 중에 100편을 선정해 묶었다.이 시집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남루의 시, 제2부 내 노래보다 먼저, 제3부 새와 수면, 제4부 꽃의 이해, 제5부 물망 등인데 시대별 구성이다.선집 제목은 한 줄 시인 '서시'에서 따왔다. 시대의 소리와 철학적 사유 세계를 함축한 제목이다.김상옥, 이호우 시인과 같은 선배세대 시인들은 역사성과 시대성을 적지 않게 노래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시조는 대체로 자연 서정이 주조를 이룬다.이정환 시인은 "시조는 전통적 기율에 충실하면서 시대적 요청에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단한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쓸 때마다 '천편일률'이 아니라 '천편천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이번 시조선집은 이 시인이 40여 년 동안 '또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온 결정판이다. 시인은 "보여줄 것은 다 내보여준 집약의 결과물이다."고 말한다.'제1부 남루의 시'는 초기 작품들로 자연 서정과 존재론적 성찰, 사랑의 영원성에 관한 탐구가 주조를 이룬다. 천년은 시간적 길이일 뿐만 아니라 깊이라는 인식 아래 고도 경주를 배경으로 '자목련 산비탈', '숯' 과 같은 작품을 썼다.'제2부 내 노래보다 먼저'에서는 '헌사', '에워쌌으니' 등을 통해 보다 심화된 사랑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노래한다. 또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존재의 근원에 대한 사색을 육화하고, 자연의 말과 소리와 빛깔에 귀 기울이고 따사로운 눈길을 주고받는 내적 교감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제3부 새와 수면'에서는 '원에 관하여'와 '상평통보'를 통해 우리 고유의 정서와 생활 습속인 원융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아울러 다채로운 자연 서정의 변주를 통해 심미성의 심화를 꾀한다. 역시 사랑에 관한 시편들이 이어져서 '봄의 자책'과 '너의 초상' 등을 통해 사랑의 지고지순함과 격한 슬픔을 체현하고 있다.'제4부 꽃의 이해'에서는 삶과 죽음, 사랑의 아픔, 씻을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은 일에 대한 소회를 노래한다. 시인이 여러 지역을 오고가며 마주친 정경을 통해 얻은 자연의 비의와 철학적 사유에 초점을 맞춘 시편들을 담고 있다. '어떤 저녁, 꽃의 이해, 삼강나루, 청산도' 등이 그런 작품이다.'제5부 물망'은 최근 작품으로 사람과 자연에 대한 경이를 담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안식을 노래한 '저녁 숲'과 관계의 소중함을 환기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누군가 불렀다, 흘림흘림 민흘림, 퍼펙트' 등이다. 무엇보다 시의 본질, 삶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쓴 시로 '생의 반역, 밤을 보려고, 시스루, 또 다시 블랙홀' 등이 독자의 감성을 울린다.이정환 시인은 "시인으로 산 지 40여 년, 내가 줄기차게 꿈꾸고 추구한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며 "나는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더불어 내가 쓴 시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영원불멸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이정환 시인은 "우리 시조도 이제 철학적 사유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시대적 요청에 답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147쪽, 1만2천원.▷ 이정환 시인1978년 시조문학 추천,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한국시조작품상, 대구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금복문화상과 황조근정훈장을 받았으며,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동시조 '친구야, 눈빛만 봐도' '혀 밑에 도끼' '공을 차다가' 등이 수록되어 있다.

2019-06-14 06:30:00

디지털 미니멀리즘/칼 뉴포트 지음/세종서적 펴냄

우리에게 스마트폰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SNS를 확인하고,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며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할애한다. '스마트폰 좀 줄여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하루라도 스마트폰 없이 지내라고 하면 '놓치는 연락이 있지는 않을까', '중요한 뉴스가 있진 않을까'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스마트폰의 유혹은 그만큼 강력하다.디지털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칼 뉴포트는 그의 저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통해 우리를 좀먹고 있는 디지털 과잉 환경에서 우리가 기술과 맺은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디지털시대, 나만의 속도 살아가기디지털 과잉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림음과 무한으로 연결되어 있는 온라인 세상과 정보들에 휩싸여 정작 몰입해야 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디지털 기기를 쓰는 데 소모하는 시간을 양질의 여가로 대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적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은 물론, 삶의 균형까지 잡을 수 있지 않을까?문제는 알림 기능을 끄거나, 가끔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 수준으로는 디지털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버리거나 모든 디지털 기기를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나에게 맞는 기술을 활용하되, 어떤 기술을 어떻게, 왜, 어떤 조건에서 활용할지 설정하고 그것을 일상화해야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선 깊은 가치에 뿌리를 둔 성숙한 기술 활용 철하기 필요하다. 이 철학은 어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공하고, 다른 모든 것을 확고하게 무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술 과부하에 걸린 현재 상황에서 잘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이 바로 '디지털 미니멀리즘'인 것이다.◆30일의 디지털 정돈 프로젝트스마트폰을 흘긋거리지 않고 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차분하고 행복한 사람들, 사진을 찍는 데 집착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뉴스나 SNS를 확인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다. 이들은 어떤 활동이 의미 있고 만족을 주는지 알기 때문에 디지털 도구와 멀어지면 '무언가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는다.지은이는 농부부터 실리콘 밸리의 프로그래머까지 수많은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들이 어떻게 소셜 미디어와 맺은 관계를 재고하고, 오프라인 세계의 즐거움을 재발견하며, 고독에 잠기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재회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술에 압도당하지 않고 생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도록 도와준 30일간의 '디지털 정돈' 과정과 함께 이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들을 구체적인 실천지침들을 제시해준다.책은 1부에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개념을 설명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디지털 미니멀리스트의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 이용에 따른 득실과 디지털 기술을 삶에 최적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준다. 여기에 지은이가 1천600명을 대상으로 직접 실시한 실험을 근거로 만든 '디지털 정돈' 과정을 소개하며, 독자 스스로 디지털 정돈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확실한 전략과 빠지기 쉬운 함정을 정리해 개개인에게 맞는 디지털 미니멀리즘 실천 방법을 제시해준다.2부에서는 지속가능한 디지털 미니멀리즘 생활방식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실천을 위한 확실한 전술을 열다섯 가지의 실천지침으로 정리해 각 장에 수록해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일상화하는 전략을 알려준다. 296쪽, 1만6천원.▷지은이는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부교수이며, 분산 알고리즘 이론을 연구한다. 다트머스대를 최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학습전문가로 다수의 TV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베스트셀러 '딥 워크'를 비롯한 6권의 책을 저술했고, 그의 TED 강연 '소셜 미디어를 끊어야 하는 이유'는 5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19-06-13 11:10:20

[반갑다 새책]소나무 향기 아래 어린 잣나무는 자라고/박용구 지음/만인사 펴냄 아껴둔 말/박용구 지음/한비CO 펴냄

경북대 임학과 명예교수이자 시인인 지은이가 수필집과 시집을 함께 냈다. 수필집 '소나무…'는 나무와 숲과 같이 살아온 지 60년 가까이 되는 지은이가 나무들이 때로는 서로 경쟁하기도 하지만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자연섭리를 갖고 있는 오묘한 생명집단임을 자각, 그 곳에서 삶의 많은 위안을 받게 되는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이 뿐 아니라 지은이는 한국과 중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면서 해박한 임학 지식과 풍부한 한시의 내공을 글 곳곳에 함께 실어 독서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아껴둔 말'은 지은이가 정년하고 8년이 지나 희수가 된 때 그 지난 세월이 아까워 그저 적어왔던 것을 정리해 엮은 시집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과 같이 항상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에게 시어는 숲의 언어와 같아, 힘들고 바쁜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고 안아주는 실체들이다.'지난 한 해/높이 자란 느티도/떡깔 물푸레 같은 사람도 만났다/열매 색 예쁜 작살나무도/세 밑 사랑 비목나무 열매도/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시 '새해'중에서)터무니없이 화려한 시절일수록 마음은 텅 비어 더 외로움을 타고 지나온 삶 속 아쉬움만 덧없이 쌓이는 노년에, 사춘기의 희열이 가슴을 적시고 또 다른 새 마음이 문을 여는 데 삶의 실존적 시간은 매정하기만 하다.지은이는 이를 시어로 승화하면서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자 시를 쓴다고 했다. 여기에 지은이는 또한 나무라는 전문지식을 시적 소재로 삼아 시를 창조해내고 있다. '소나무…' 231쪽, 1만5천원. '아껴둔 말' 142쪽, 1만원

2019-06-11 13:54:48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 어느 낙엽의 시'③] 박영귀 작

아버지도 나도 눈물을 보였다. 나는 해병대 소위 정복을 하고 육군에 있을 때 근무하던 부대의 대대장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중대장과 함께 내가 있던 내무반을 방문했다. 감개가 무량했다. 나를 몽둥이로 때리던 아이가 병장을 달고 최고 선임자가 되어 있었다. 나한테 미안했었다고 큰소리로 나한테 "충성" 하며 거수경례를 했다.건강하니 군 생활도 순탄했다. 그러나 대위로 진급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진로 문제였다. 솔직히 나 같이 고학력 출신도, 배경이 좋은 것도, 특출한 소질을 가지지 않은 자는 올라갈 자리가 애매했다. 운이 좋아 영관급으로 진급해 보았자, 그때 사회에 나오면 내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결혼도 해야 하는데 전세방이라도 얻을 돈이 생기는가? 그렇다고 지금 제대를 하면 취직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아! 머리가 아프다.더구나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되어 가야 할 길도 더 안 보이는데 이래도 저래도 답이 없다. 우물쭈물하는 공백은 술이 메꾸었다. '술! 많이도 퍼마셨다. 차라리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소연할 걸!' '선두에 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더불어 낙오할 생각도 아예 하지 않는다'. 1978년 백령도에서 해병대 대위 제대한다. 그리고 국립묘지에 있는 친구 김광오한테 제대 신고를 한다.부모님과 동생들은 서울대 앞, 신림동 달동네에 살고 있었다. 강제 철거된 판자촌 주민에게 구청에서 관악산 앞 작은 산에 한 가구당 택지 12(?) 평씩 분배해 주었다. 그것이 신림동 달동네다. 거기에 새로운 판자촌이 생겼다. 수도, 하수도, 전기도 없었다. 화장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관리자가 없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여름에는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고 겨울에는 똥과 오줌이 얼어붙어 산처럼 쌓여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집마다 땅을 파서 화장실과 우물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화장실과 우물 거리가 가까워 물에서 똥, 오줌 냄새가 났다. 그 우물과 화장실을 내가 만들었다.냄새가 지독해서 더 깊이 파고 파이프를 박고 펌프를 세우니 냄새가 덜 했다. 그러나 식수로는 적합하지 않았다.그때 생긴 것이 물지게꾼과 똥 퍼 가는 직업이다. 그들은 "똥 퍼, 똥 퍼" 하며 외치고 다녔고, 산 밑에 수도가 있어 산 위까지 가기가 힘이 들어 그들의 기세는 등등했다. 먹지는 못 해도 물은 있어야 했고 똥은 퍼야 했다. 또 한 가구당 한 사람씩 나 오라 해서 노역을 시키고 밀가루를 배급받았다. 얼마 후 전기가 들어왔지만, 전기료를 낼 돈이 없자, 사람들은 전선을 옷핀으로 찔러 사용하다가 감전 사고가 나기도 하고 밤에 똥을 퍼서 검지산 가는 산등성에 버리기 시작했다. 유독 진달래꽃이 많이 피던 산에 꽃은 많이 피어 있는데 똥 냄새가 지독했다.겨울이 문제였다. 똥이 얼자, 똥 퍼가는 사람이 오지 않아 집마다 도끼나 야전삽 또는 곡괭이로 깨트려 산에다 버렸다. 내가 주로 했는데, 옷이며 얼굴이 똥투성이였다. 또 하수도가 없으니 사람들이 사용한 물을 아무 데나 버린 물이 얼어 산 꼭대기에서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어려웠다. 눈이라도 오면 사고가 일어났다. 노인들이 많이 다쳤다. 사람들이 타고 남은 연탄재를 던지기 시작했다.달동네는 항상 싸우는 소리, 술 먹고 노래하는 소리, 웃는 소리, 그리고 이유 없이 고함지르고, 악을 쓰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다.그때 일급 뉴스는 남편이 목숨 걸고 월남에 가서 꼬박꼬박 보낸 돈으로 마누라는 춤바람이 나서 어느 놈팡이와 도망간 사건이다. 귀국해서 집에 오니 집까지 팔아 버린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달동네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관악산과 검지산(산 이름)은 각각 개울을 가지고 있었고 관악산에서 흐르는 개울이 더 컸다.어릴 적에는 목욕도 하고 가제와 송사리도 잡았고 두꺼비(개 이름)와 물장구치며 놀았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모여들자 더러운 시궁창이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내가 집에 오자, 외조모님은 결혼을, 아버지는 신림동 향토예비군 중대장을 하면 어떠냐고 떠보신다. 월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과외 수입이 있고 고정 수입이라 괜찮은가 보다고 하신다.결혼문제는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합세하셨다. 박씨 집안의 종손이고 나이도 32살이나 되었으니 너무 늦었다는 말씀이다.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대방동 성당 할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중매를 섰다. 영등포에 있는 한의원 집 둘째 딸이었다.선을 보고 교제를 시작했는데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 집과 너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다. 영등포 사거리 목 좋은 곳, 삼층 빌딩이 그의 집이었고, 언니와 형부는 명문대 출신이었다. 내가 졸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처가와의 불화가 보이는 것 같아 서다. 그리고 천주교를 믿어야 하고 결혼식도 천주교회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둘째 딸은 나를 죽자 사자 쫓아다녔다. 같이 도망가자고도 했다. 나는 웃었지만,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결혼했다. 마침, 도림동 성당 주임신부님이 해병대 출신이라 결혼식 준비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성당은 나중에 다니기로 신부님과 약속하고 신림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30년 후 나는 미국에서 영세를 받았다.)유일하게 민간인 출신으로 5·16 군사 쿠테타에 참여했던 R 씨의 회사 계열인 K 회사에 입사, 공장 새마을 지도자 선거에 출마 등록을 했다. 선거 연설문을 작성하여 녹음기를 놓고 집사람 앞에서 연설 예행연습을 했다. 얼마 후 노동자들은 나를 당선시켜 주었다.대전 서구 도마동 새마을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나는 새마을 지도자로서 온 힘을 다했다. 우선, 서울역 뒤 만리동 고개 도로 정화 작업부터 시작했다. 통금 해제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깨어 출근하여 통금 사이렌 직전에 집에 왔다. 사원들과 아침 일찍부터 도로변을 쓸고 닦았다. 휴지를 줍고 쓰레기를 치우고 담배 재떨이 겸 쓰레기통을 설계, 제작하여 거리 곳곳에 설치했다. 사원 복지를 위해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사주와 협의, 개선하는 데 노력하며 효율적인 생산성을 위해 품질관리, 개선, 능률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 수집, 우수한 사원의 포상 등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든든한 배경을 가진 사주는 막대한 외화로 독일제 다색 오프셋 인쇄기, 최신 사진식자기, 카메라, 등을 수입해서 인쇄방식의 현대화를 하다 보니 활판 계통에 몸담고 있던 수많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을 우려해, 노조를 만들 움직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시기였다. 그들은 나만을 의지했다.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다른 일자리로 대체 해 주기를 원했다. 정부와 사주는 이런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노사협의회 회장은 사장 또는 사주, 노사협의회 부회장은 새마을 실천본부장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감투는 두 개다. 새마을 실천본부장 겸 노사협의회 부회장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감투다. 쉽게 말하자면 어용 노조 위원장이고, 더 쉽게 말하자면 허수아비라는 말이다.나는 새마을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노조의 방패막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새마을 지도자가 되기 위해 출마했지, 노사협의회 부회장이 되기 위해 출마하지는 안 했다. 그것은 가진 자의 횡포다. 저녁이면 가진 자들은 나를 요정으로 모셔 갔다. 그리고 그들은 치즈 몇 조각, 양주 몇 잔에 내 봉급의 몇 배의 돈을 지급했다.이것도 강제다.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본부장 차 타시오" 하면 차를 타야 한다. 새마을 운동 지도자가, 달동네에 사는 내가 요정에서 술을 먹다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6월18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4회가 게재됩니다)

2019-06-10 17:30:00

서지 김윤식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 참석자들이 표지석 공개 순서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받은 고 김윤식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

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가 올해 제59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건국포장)을 받고 첫 독재저항 민주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고 서지(西芝) 김윤식(1928~1996) 시인(매일신문 4월 18일 27면 보도) 생가인 경산 용성면 덕천리에서 8일 생가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지부장 구자도)는 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23년 만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것을 기념하고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협 회원의 뜻을 모아 시인 생가에 표지석을 세웠다.생가 표지석에는 김 시인의 생전 대표 행적이 담겼다.우선 대한민국 최초 독재저항 민주운동인 1960년 2·28 대구학생의거 목격 후 쓴 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을 대구일보에 게재하고 3·15 김주열 열사 및 4·19혁명 관련 시를 대구매일신문 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는 등 민주화에 기여한 공적을 기록했다.아울러 올해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첫 독재저항 민주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과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와 경산지부를 창립해 초대 지회장과 지부장을 지낸 것, 농촌계몽 향토문화공로상(상록수상) 등 수상 경력, 국립 4·19민주묘지, 2·28기념중앙공원 등 6기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기록했다.이날 김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에는 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 구자도 지부장과 고문인 도광의 시인, 구활 수필가· 제갈태일 시조시인, 박기옥 직전 지부장을 비롯한 문인들과 경산시 조현숙 복지문화국장, 김윤달 덕천이장과 김상수 동네 노인회장 등 50여 명이 참석해 축하를 했다.구자도 지부장은 "오늘 서지 김윤식 시인의 생가 표지석 제막식이 마중물이 돼 서지 선생이 남긴 많은 업적이 새롭게 재평가 되길 바란다"면서 "경산시민은 물론 문학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희망하는 많은 국민이 찾아와 보고 마음에 교훈을 담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윤식 시인이 경주여고 교사로 재직중이던 1955~1958년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다는 제자 정봉자(81) 씨는 인사말을 통해 "선생님은 6·25전쟁 후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공납금을 대신 내주시고 다방면에서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신 은사님"이라고 회상했다.또 "너무나도 늦게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게 된 것이 아쉽고 유감이지만 항상 정의롭고 헌신적이며 열정과 사랑이 많으시기에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들을 돌보시고 걱정 많이 하시겠다. 너무나 그립다"라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시의 장남인 김약수(66) 전 대구미래대 교수(경산학연구원장)는 "선친은 생전에 1990년 발간된 경북중고등학교 42회 졸업문집에 '2·28, 고이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 보며'에서 '이승에 살아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 한국 근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대사건에 비록 보잘것 없는 글이나마 동참했다는 자랑과 보람을 안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라고 말씀했다"면서 "오늘 선친의 생가 표지석 제막식을 거행해 준 문협 경산지부 모든 회원들의 정성과 인정을 잊지 않겠고, 매우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9-06-09 14:55:03

괜찮은 결혼/엘리 J. 핀켈 지음/지식여행 펴냄

우리나라의 혼인율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OECD 아시아 회원국 중 이혼율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대부분 경제적 프레임에서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 있다.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 교수 엘리 J. 핀켈의 '괜찮은 결혼'은 경제적 프레임보다 사회심리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결혼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심리학과 사회학 연구와 문헌을 통해 지금 시대의 결혼에 대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꼬집는다.◆인문학적으로 파헤쳐보는 결혼관계 이론 분야에서 혁신적인 학자로 평가받는 엘리 J. 핀켈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는 결혼이 양극화된 과정과 원인,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나타난 현재의 결혼을 건강한 길로 인도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결혼을 보는 그의 관점은 우리 사회가 대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결혼에 대한 개념을 넘어 변혁적이고 획기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의 의미는 남녀 간 갈등, 결혼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기피 현상 등으로 얼룩져 있다.결혼을 인문학점 관점에서 파헤친 책은 흔치 않다. 대부분 부부 교육서, 자녀 양육서, 종교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결혼에 대한 것들이다. 책은 미국의 결혼에 대해 포괄적 고찰을 담고 있지만, 한국 사회 또한 결혼, 동거, 출산, 이혼 등의 측면에서 미국 사회가 겪은 것과 같은 변화를 아주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한국 사회도 이와 비슷한 결혼을 마주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책은 지루하지 않게 결혼을 다룬다. 영화와 드라마, 소설, 고전 속의 에피소드를 동원해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선다. 실용, 사랑, 자아실현 시대의 프레임을 주도하는 여론과 실증적 예도 꼼꼼하게 챙겨나간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중세 시대, 계몽주의 시대, 근세 시대의 철학자, 예술가, 사상가, 그리고 가상현실 세계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풍부한 지적 여정의 길로 안내한다. 자칫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결혼과 부부의 이야기를 학술적 가치와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 ◆양극화된 결혼과 극복 방안 책은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결혼과 부부 문제에서 출발한다. 지은이는 역사를 보면 결혼의 존재 이유가 실용에서 출발해 사랑을 거쳐 자아실현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가 시대적인 맥락에 따라 진화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다는 자아실현에 기반한 지금의 결혼마저도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결혼 생활이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편향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의 핵심 기능이 매슬로의 욕구 단계 중 높은 곳을 지향하면서도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탓에 결혼 생활이 기대에 부응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결혼 생활에 실망하면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의 본질이 변하면서 기대를 충족했을 때의 혜택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평균적인 결혼 생활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반면, 최상의 결혼 생활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고 말한다.마지막으로 양극화된 결혼과 부부의 불행을 극복해나갈 방안을 제시한다. 그 방안은 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 또한 더욱 필요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지은이가 알려주는 결혼에 대한 고찰은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미혼뿐만 아니라 결혼을 했거나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에게도 도움이 된다. 결혼 생활에 대한 고민이 큰 부부라면, 갈등을 멈추고 앞으로 남은 기나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2019-06-06 13:33:12

[반갑다 새책]수학과 예술/린 갬웰 지음'김수환 옮김/쌤앤파커스 펴냄

'수학과 예술을 사랑한 인류의 지적 경험을 총망라한 경이로운 책' '지식인의 서재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할 금세기 최고의 교과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수학과 예술, 그 둘의 위대한 역사가 이 책에 담겨있다. 읽어라 그리고 감동하라'…어떤 책이기에 출간과 동시에 세계적 석학들의 찬사가 이렇게 쏟아지는 걸까? 일단 두꺼운 책을 펼쳐보았다.'공자는 타인을 대하는 올바른 행동윤리 철학을 전파했다. 공자의 글에는 사람이 엄격한 계급과 조화로운 질서를 이루고 개개인이 협력해 집단을 이루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공자의 철학에는 전통 점성술책 '주역'(역경)이 설명하는 마법적 체계도 담겨 있다. 역경은 괘라고 불리는 64개의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역경의 추상형태에서 나오는 권위는 2000년 동안 아시아인의 마음을 끌었다.'(본문 중에서)'중세유럽은 결국 유클리드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식을 잃어버렸지만 이슬람 학자들은 비잔틴의 그리스어 문헌을 아랍어로 번역해 보존했다. 9세기 칼리프들은 학자들이 해외(특히 그리스)의 수학과 철학 지식을 번역하고 자신의 고유 사상을 표현하도록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을 건설했다.'(본문 중에서)세상의 모든 창조와 진보는 수학에서 시작됐다. 동서고금의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뮤즈, 수학은 어떻게 예술가와 철학자를 사로잡았을까? 고대부터 현대에 이어지는 수학과 과학, 예술이 문화사를 이 책 한 권으로 정리했다.그리스와 이슬람, 고대 중국의 '구고정리'를 포함해 책으로 접하기 어려운 예술작품과 현대미술 작품들 500여 점과 90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수학과 예술을 연결하는 방대한 지적 연결고리와 문화적 환경들을 종횡으로 보여준다. 611쪽, 8만9천원

2019-06-05 11:20:03

괜찮아 괜찮지

[책 체크] 괜잖아 괜찮지/ 성희 지음/ 시와에세이 펴냄

'나는 살고 싶다/ 졸졸졸 바스락거림도 없이/ 내 어두운 궤적을 지우고/ 거친 돌과 돌 사이/ 하얀 물푸레 뿌리도 적시며/ 유장하고 격렬한 문장으로/ 이 한 몸 푸르고, 푸르게 흘러/ 저 아득한 심연의 바다에 가 닿는/ 작은 물고기의 꿈이고 싶다'- 성희 시 '개숫물의 꿈'지은이 성희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5년 '시에티카'로 등단해 현재 시에문학회,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시집에는 '깎다' '괜찮지?' '달방 있습니다' '갱년기' 몽당 빗자루' '걸레 경전' 곤공한 세상' 등 따뜻한 위로와 모성애가 느껴지는 시 60여 편이 실려 있다.시적 관심은 하나같이 늙고 병들고 힘없고 소외된 삶이나 풍경에 꽂혀 있다. 그것도 직접 몸으로 겪은 체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지은이는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의 힘은 대단하다.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밟히고 저항한다. 시기적절할 때 밟아주는 힘으로 자라는 꽃잔디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119쪽 1만원.

2019-06-05 11:18:51

인생의 함정을 피하는 생각 습관

[책 체크]인생의 함정을 피하는 생각 습관/웨이슈잉 지음/ 이지은 옮김/ 올댓북스 펴냄

'호감, 관심 등의 감정을 통장에 부지런히 저축하다 보면 상대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곤경에 처했을 때 상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감정을 저축하지 못하고 인출만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감정이라는 통장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하버드 새벽 4시 반' 저자인 웨이슈잉이 이번에는 실패 없는 인생을 사는 생각의 원칙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성공법칙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놓치기 쉬운 함정들을 잘 관리함으로써 보통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저자는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심리적 함정들을 인생관, 일상생활, 인관관계, 사고방식 등 여섯 파트로 나누고 각 장마다 다시 10가지 실천적 사고 방법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의 흥미로운 일화나 명언,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예시를 통해 함정들의 실체를 파헤치고 이를 극복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304쪽 1만4천원.

2019-06-05 11:18:24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②]박영귀 작

▶가난이라는 절대음감그러나 "고맙습니다"라는 말보다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자존심의 발로였고 자신에 대한 최초의 반항이었으며 현실에 대한 부정이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참을 수가 없었던 거다.그러나 끝마무리를 잘하는 자신에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다."선생님 감사합니다""친구들 고마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소리중에 가장 예민한 소리는 아버지 발소리다. 빈곤은 먹이에 집중하다 보니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의 움직임이 새끼의 전부다. 엄마가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역시 우리 남매들이 가장 잘 이해되는 음역이다.동생 중에 절대음감을 가진 동생이 있다. 내 바로 밑에 여동생, 정말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동생이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동생은 "아버지가 오신다" 하면 정말 아버지께서 오셨다. 그리고 아버지 손에 들고 있는 봉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알고 있어 우리 가족 사이에는 개 코, 또는 도사, 울보라는 별명을 가진 동생이다. 배고픔에 지친 가족들은 여동생처럼 절대음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아버지다!"하고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 손이 빈손이면 울보는 울대를 몇 옥타브 올려 사정없이 울었다. 보고만 있던 우리들도 따라 울었다. 엄마도 울보를 부여안고 우셨다.아버지도 눈물을 보이셨다.기절초풍을 할 일이 생겼다. 죽은 사람이 시장 바닥을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다. 방물장수 할머니 말씀이 김 씨 아저씨를 시장에서 보았다고 하신다. 부모님은 믿지 않으셨다. 잘못 보셨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귀신 이야기는 부모님 가슴에 더 큰 상처만 만들고 흐지부지 사라졌다.경찰서에서 김 씨는 외상으로 들어온 자재와 금고를 빼돌린 후 페인트와 휘발유를 가게 안에다 뿌리고 불을 질렸다는 이야기와 지금은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고 부모님에게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는, 믿었던 김 씨 아저씨의 정직한 고백 앞에 부모님은 할 말을 잃었다고 하신다.▶병역기피와 동기생의 전사"믿었던 주먹이 다운되는 순간" 1960년대 길거리 좌판에서 보던 시다. 부모님 가슴을 가히 짐작한다.나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김광오, 고교 동창이며 회사 입사 동기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직장과 학교를 다니던 나는 친구와 같이 입영 통지서를 받고 친구는 입대했지만 나는 기피를 했다. 핑계는 건강이 좋지 않고, 그보다는 집도 절도 없는 집안의 8남매 장남으로 무기력한 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동생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내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으로 병역 기피자라는 죄목의 붉은 줄이 생겼다. 친구와 나는 짝꿍처럼 잘 어울렸다. 입대 후에도 곧잘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친구한테 온 소포에 전사통지서와 유품이 와서 친구 집으로 달려가 보니 친구 사진 앞에 향이 타고 있었다. 무장공비 토벌 작전 중 전사한 것이다. 동작동 국립묘지, 친구 앞에서 나는 대한민국 남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낀 날이다. 얼마 후 병역 기피자 자수 홍보 포스터가 서울 곳곳에 붙어졌다.나는 모든 것을 치우고 자수를 한 후,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강원도 모 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건강이 좋아졌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주고 운동까지 시키니 이처럼 신나는 곳은 없었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 이제는 해골도 아니고 왕 눈깔도 아니다.▶군 생활은 인내심의 수련어느 날 전우신문에 각 군 사관후보생 모집 광고 중 해병대 사관후보생 모집 광고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육군 졸병 일등병이 지원하기엔 산 넘어 산이었다. 육군에서 육군 장교가 아닌 타군 장교로 가기 위해서는 육군 참모 총장의 추천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대장 추천에 중대장 추천서, 그걸 가지고 대대장 추천서를 받고, 연대장, 사단장, 또는 군사령관, 서울에 있는 육본까지 올라가 추천서를 받고 중앙 대학교에서 필기시험, 체력시험, 신체검사까지 통과해야만 해병학교에 입교할 수 있었다.육군 일등병이 어떻게 이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가 있을까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는, 강인한 정신과 육체만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일을 시작했다. 드디어 2박 3일 휴가증을 받아 육군본부 위병소까지 왔다. 어느 곳이나 비슷한 절차였다. 위병소 근무자나 헌병은 나를 보면 "새까만 졸개가 겁대가리 없다"며 "쪼그려 뛰기 3만 번" 또는 어느 곳은 "쪼그려 뛰기 백만 번"하며 얼차려(벌)를 주었고 장교들은 육군에도 장교가 될 기회가 많은데 왜? 해병대로 갈려하느냐고 물었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나에게는 체력시험이 문제였다. 죽기 살기로 뛰었다. 애초부터 선두에 설 생각은 없었다. 포기하여 낙오자가 되지는 말자는 것이 나의 각오였다. 이것이 나의 생활 철학이 되었다.드디어 해병학교에 입교했다.나의 육군 이등병, 일등병 생활은 만족했다. 풍족한 식사, 넘치는 운동량,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 건강한 몸을 만들어 주었다.▶해병대 소위가 되다.군 생활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어떤 군인은 음식이 맛이 없다고 조미료를 몰래 사 먹고, 부모한테 총을 잊어버려 돈이 없으면 영창에 가야 한다고 거짓 편지를 보내 그 돈으로 상급자에게 뇌물, 또는 외출을 나가 돈을 흥청망청 쓰는 자들도 있었다.내가 자대 배치를 받고 내무실에 들어서니 거기에 있는 군인은 전부 동생뻘 되는 상급자들이 30여 명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가끔 어린아이들은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어떤 어린아이는 생트집을 잡아 나를 구타했고 어떤 바로 밑 동생 같은 놈은 알 수 없는 헛소리를 하며 몽둥이로 나를 후려쳤다. 어린아이들은 수없이 나를 얼차려를 주었다.어떤 때는 눈깔 동작이 건방지고 불량하다고 집단폭행도 당했다. (지금은 비인간적인 언행, 체벌이 없다고 한다. 좋은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인내심 수련이라고, 체력단련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육군 졸병은 내무반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하며 해병학교에 입학했음을 신고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원, 섭섭했다.해병학교는 진해 바닷가에 있었다. 해병대 장교는 대부분 여기서 배출한다고 한다. 해군 사관학교도 이웃하고 있는 이곳은 조용하고 공기도 맑고 상쾌한 바닷바람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전반에 걸친 전술학을 배울 것이며 임관하기 전까지 태권도 유단자가 되어야 하고, 공수낙하 훈련, 그리고 특수전 훈련을 수료해야 한다. 여름에는 해군 사관학교에서 전투 수영을 배웠다.왜소한 몸을 가진 나는 무거운 철모와 M1 소총이 나를 힘들게 했다. 더욱이 무거운 철모로 머리가 파묻히고 착검한 총의 높이와 키가 총을 내가 메고 있는지, 총이 나를 메고 있는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동기생과 한참 웃었다. 그런 모양새로 완전군장을 해서 진해에서 창원, 또는 천자봉 정상까지 뜨거운 땡볕에 뛸 때면 죽을 것 같지만 낙오만은 하지 않았다. 정신무장이다. '선두에 설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더불어 낙오할 생각도 아예 하지 않는다'동기생 몇이 픽 쓰러진다. 의무병이 들것에 실어 구급차에 싣는다. 스파르타식 교육과 훈련 방식이다. 낙오나 미달은 퇴교다. 수시로 동기생 몇 명씩 퇴교를 당했다. 어떤 동기생은 며칠 있으면 임관을 하는데 아깝게 퇴교를 당했다. 임관을 앞두고 부모님을 임관식에 초청한다는 편지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병역 기피자로 끌려가 혹독한 벌을 받는 줄 알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임관식에서 나에게 소위 계급장을 달아 주셨다.(6월11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3회가 게재됩니다)

2019-06-03 18:00:00

2019 수성 문학제 '북잼 토크'

이원길 수필가는 2일 수성못 수변무대에서 '2019 수성 문학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대받아 시민들과 '북잼 토크'를 벌였다. 이날 행사에 장호병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심후섭 대구 아동문학회 회장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2019-06-03 08:04:40

한식을 위한 변명/황광해 지음/하빌리스 펴냄

TV를 켜면 먹방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나오고 SNS에는 맛집 인증샷이 넘쳐난다. 어느 때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식이나 맛집에 관한 책들도 쏟아진다. 음식칼럼니스트 황광해의 '한식을 위한 변명'은 '진짜'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혹은 오해하고 있었던 한식을 올바고 잡고, 제대로 한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음식 인문서다.◆궁중음식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한식 찾기책은 그동안 잘못 알려져 왔던 우리 음식의 유래와 의미를 정확한 역사적 근거를 통해 바로잡아 준다.'보양식은 없다', '향토 음식은 없다', '궁중요리는 한식이 아니다'. 지은이가 던지는 화두는 우리의 상식을 한참 벗어난다. 그는 삼계탕이 보양식이 아니며, 우리 조상이 굶주렸기 때문에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던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등 잘못 알려져 온 한식의 진짜 모습을 파헤친다. 한식에 대한 이같은 오해가 생긴 것은 진실은 뒤로 한채 음식을 많이 팔기만 한다는 생각과 일본의 잔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지은이는 궁중음식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사실과 다르게 포장되거나 잘못 알려진 한식을 연구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힘이 셌던 다른 나라에는 궁중음식이 없을까?' 대한제국은 힘없던, 껍데기만 남은, 짓밟힌 나라였다. 힘센 다른 나라들의 발 아래서 신음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도 없던 '궁중의 음식, 나라님이 먹던 음식'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라며 진짜 한식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을 설명한다.보양식, 향토음식, 사찰음식은 없다. 1장 '그런 음식이 아닙니다'에서는 "우습다 못해 슬픈 것이 삼계탕이다. 삼계탕은 없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삼계탕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한식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삼계탕은 우리 시대에 시작한 음식이다"며 삼계탕이 역사가 오래된 보양식이 아님을 설명한다.또 지역 축제를 한다고 해서 가보면 모든 축제마다 '우리 고장 고유의 음식'이라며 도토리묵을 내놓고 있는 점, 정갈하고 소박한 사찰 음식을 외국인에게 인정받게 하기 위해 화려하게 바꿔야만 하는 것인지 등 반문한다.◆앞으로의 한식은 어떤 길을 가야할까2장 '궁중음식의 진실'에서는 궁중음식이라 잘못 알려진 요리에 대해 얘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선로다. "신선로 그릇은 태국, 싱가폴 등의 동남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태국식 국물 요리인 똠얌꿍을 담는 그릇도 신선로다. 동남아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쓰인다. 그걸 우리 정통, 전통, 궁중이라고 포장했다.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서. 한반도 조선의 왕들은 한낱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사용하는 그릇으로 음식을 먹은 셈이다."이와 함께 조선의 왕들이 정말 호화로운 밥상을 받았는지, 궁중음식이 어떻게 대중화 된 것인지, 궁중잡채가 정말 궁중음식인지 등을 고증을 통해 제대로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궁중음식을 전승했다고 알려진 안순환과 한희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마지막에서는 지금의 한식과 앞으로 한식에 대해 말한다. 지금의 한식이 슬프게도 일본풍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전통과 정통을 지키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한식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을 제시한다."한식의 정체성, 특질은 무엇일까? 한식의 정체성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밥상의 특질과 원칙을 찾아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옛 음식을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옛 음식을 만들었던 정신을 찾자는 뜻이다. 복원의 대상은 고분이지 음식이 아니다."박찬일 요리연구가는 치밀한 고증을 통한 진짜 한식을 끌어냈다며 책을 추천한다. "기자 출신인 지은이는 고정 관념과 시중의 상식을 의심한다. 치밀하게 파고들어 입증해낸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보양식이니 신선로니 한정식이니 심지어 '궁중음식'까지도! 더구나 당대의 한식이 일본풍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있어 온 이야기인데, 이처럼 치밀하게 독자적 시선으로 고증해낸 경우는 드물었다." 236쪽. 1만4천원.

2019-05-30 11:26:37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의 의약품 생산 모습. 매일신문DB

[서평]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정승규 지음/ 반니 펴냄

신약 개발의 역사적 흐름을 보면 '병이 있는 곳에 약이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질병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약을 만들었다. 아주 우연히 발견한 약도 있고 정밀조사와 과학적 방법으로 만든 약도 있다. 질병이라는 도전에 인간은 약으로 응전했다. 지금은 약과 개념이 다른 항체의약품, 백신, 줄기 치료제 같은 바이오 신약과 개인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맞춤 의료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이 질병과 통증에 대해 예방책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지은이는 약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 이야기와 함께 풀어썼다. 각 장은 첫 부분에 개괄적 설명으로 시작해 중요한 약이 개발된 순서대로 전개한다. 역사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항과 마지막으로 우리 의약산업의 최신 경향까지 알차게 다루고 있다.◆ 푸른곰팡이의 선물 페니실린영국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성 메리병원에서 미생물 실험을 하며 감염증 치료를 위한 항균물질을 찾는 연구를 했다. 그는 포도상구균을 납작한 접시에 배양하다 날아온 푸른곰팡이 포자가 배양접시에 번식하면서 잘 배양되던 포도상구균의 성장을 방해했다. 푸른곰팡이 주변에는 세균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알았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항균물질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했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 배양액 속에 있는 항균물질을 분리하지는 못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병리학 교수인 플로리와 유대인 생화학자 언스트 체인이 실제로 페니실린을 분리해 대량생산에 성공해 약으로 발전시켰다. 페니실린은 20세기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한 기적의 약이 됐다.◆통증 완화 목적 약물이 환각제로마약, 환각작용을 유발하는 약인 마약류는 강한 중독성과 탐닉성이 특징이다. 남용되기 쉽고 정신과 육체를 황폐화시키기 때문에 건강에도 해롭고 위험성도 높다. 대표적인 환각제로는 아편, 헤로인, 코카인, LSD, 필로폰, 엑스터시, GHB 등을 들 수 있다. 환각물질은 끔직한 고통을 줄이는 방편으로 개발됐다. 진통 효과가 뛰어나 개발된 당시에는 획기적인 약으로 사용되었지만, 중독자를 양산하는 등 폐해가 커지면서 법으로 규제됐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법규와 대대적인 단속에 힘입어 오랫동안 마약 청정국 지위를 유지해왔으나 이제는 그마저 깨진 상태다. 한동안 흔히 '물뽕'으로 불리는 GHB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냄새가 없는 흰 가루약으로 알약이나 캡슐 형태로 물이나 술에 타 마실 수 있어서 '물 같은 히로뽕'이라는 뜻으로 물뽕이 됐다.◆ 면역의 비밀을 벗긴 메치니코프엘리 메치니코프는 러시아의 동물학자다. 그는 동물 몸속을 돌아다니는 세포에 흥미가 많았다. 1882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메시나에서 불가사리의 유충을 관찰했다. 불가사리 유충은 투명해서 몸 내부를 볼 수 있다. 그는 장미 가시를 가져와 불가사리 유충의 투명한 몸에 찔러 넣어 보았다. 그러자 가시 주위로 유리세포(식세포)들이 몰려와 덩어리를 만들었다. 그는 "움직이는 유리세포가 몸에 들어온 미생물을 공격해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면역이론이 나왔다. 인간을 비롯해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의 몸 속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유리세포가 있어 병균을 잡아먹는다. 이것이 면역의 개념이다. 메치니코프는 식세포작용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1908년 '식세포에 의한 면역설'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사랑의 묘약 최음제·비아그라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발기부전에 최음제를 사용했다. 최음제는 효능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심리요인이나 생김새로 최음제를 썼다. 가장 잘 알려진 최음제는 술이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나 로마의 박카스 축제는 술로써 집단적인 흥분을 일으켜 사랑에 빠지게 했다. 아프리카 관목 껍질에서 추출한 요힘비 또한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효과로 오래도록 사용했다. 요힘비는 말초 조직의 혈관 확장을 촉진해 발기를 유발했다. 백삼을 가공한 홍삼에 들어 있는 Rg3, 지중해 연안에 분포한 맨드레이크 등도 최음제로 애용됐다. 비아그라는 1998년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했다. 실데나필 물질로 협심증 치료 임상실험을 하다 부작용으로 발기가 일어나는 사실을 확인해 비아그라를 만들었다.◆ 살인가스가 암치료제로 되다최초로 독가스(일명 겨자가스)를 개발한 사란은 유대인 출신의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다. 1943년 이탈리아 남부 바리 항구에 정박한 연합군 선박이 독일군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 수송선 존 하비호에는 100톤 가량의 겨자가스가 실려 있었다. 선박이 공격받아 파괴되면서 가스가 항구를 덮쳐 연합군 장병과 민간인 1천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희생자를 부검한 결과 혈액을 만드는 골수가 손상을 받아 백혈구 숫자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때 겨자가스를 연구하던 학자 루이스 굿맨과 알프레드 길맨은 황 머스타드보다 질소 머스타드가 백혈구 같이 빨리 분열하는 세포 분열을 막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질소 머스타드를 사용해 백혈병뿐만 아니라 림프종과 말기 혈액암 환자도 치료했다. 질소 머스타드를 이용해 개발된 최초의 화학요법제가 메클로에타민(제품명 머스타겐)이다. 292쪽 1만6천원.

2019-05-29 17:26:44

[반갑다 새책]다시 보는 체 게바라, 말콤X, 그리고 사파타/지은이 성장환/교육과학사 펴냄

책의 제목에 있는 세 사람, 체 게바라와 말콤X 그리고 사파타라는 걸출한 세 혁명가를 선택해 이들의 삶을 조명한 이 책은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기보다는, 이들의 삶을 추적해 봄으로써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시사점을 찾아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세 인물이 활동했던 시기는 당시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혁명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킨 많은 인물들 가운데 특히 가난하고 핍박받던 민중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실천하는 지식인 체 게바라,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헌신한 말콤X, 부당하게 빼앗긴 농민의 토지회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파타.지은이는 "이 책이 세 혁명가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75쪽,1만원

2019-05-29 11:23:39

[반갑다 새책]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지은이 김희곤/미술문화 펴냄

서원은 선현의 사상을 받들어 유생들을 가르쳤던 사립교육기관이다. 따라서 과거 급제나 관료 양성을 목표로 하던 향교나 성균관과는 다르다. 한국의 서원은 지식 전달을 넘어 삶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서원의 보편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서원이 9곳이나 된다. 전국에 분포된 600여개의 서원 중 제향자의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곳으로 지은이는 이 9곳의 서원에 대해 다루고 있다.한국 서원은 제향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제향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설계해 이를 구심점으로 유생들을 모았다.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공부)을 강조한 퇴계 이황은 한국 서원을 정착시킨 주인공이다. 또한 한국 서원은 세상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법을 건축공간으로 말해준다.지은이는 책을 통해 서원에서 조선 건축의 매력을 발견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길잡이가 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336쪽, 2만원

2019-05-29 11:23:29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박영귀 당선소감]

내가 싫어하는 것 중에는 골프와 문학이 있다. 골프는 엄두가 안 나서, 문학은 "먹이"가 안돼서다. 대물림하는 지긋지긋한 가난에 골프는 꿈속에서도 없었고 문학이란, 언감생심 고생하시는 부모님 앞에서는 금기 사항이었다. 사춘기 때 몰래 시와 소설, 철학책을 사 보면서 잠시 작가의 꿈을 가졌으나 내 주위의 가난한 문학가를 보면서 서서히 꿈을 접었다. 그런데 55년이 지난 어느 날 골프채가 단단히 굳어 있는 나의 "먹이"의 개념을 깨고 나의 십 대의 꿈이었던 문학을 끄집어 내었다. 나이 71살 때 하와이에서. 겨울이면 고국에서 온 80대 어른부터 본토에서 온 사업가, 종교인까지 이구동성으로 골프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필드에 몇 번 나가 봤으나 살아온 세월이 강하게 거부하여 포기하자 친한 지인들도 골프장에 가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었다. 그때 하와이 문예공모 광고가 잊었던 사춘기의 꿈을 일깨웠다미친 듯이 글을 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국을 떠난 지 40년 가까이 한글을 멀리하다 보니 맞춤법과 문법이 엉망이어서 다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평생 남이 만든 울타리에서 어쩔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해 왔던 내가, 내 의지로 쓴 글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생각하는 것을 투명하게 글자로 나타내자 어떤 희열을 맛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나는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71살 늦깎이로 시작하여 72살에 고국의 문학상 당선 소식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부족한 저를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들과 몸이 편치 못하고 한글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저를 격려하여 이끌어 주신 이언주 하와이 H 문인협회 고문과 김사빈 회장, 그리고 친구 이재기 장로 부부, 아내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19-05-27 17:00:00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①박영귀

별명이 '해골'인 굶주려 뼈만 남은 아이가 병역 기피자가 되고 육군 일등병이 되었다가 해병대 대위가 되었고 새마을 운동 지도자로 노동자의 지도자로 온 힘을 다하다 미국으로 와서 정신병 진단을 받았으나 그것을 극복하여 미국 연방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긴 타국 생활로 잃어버린 조국의 언어를 찾기 위해 한글을 배우며 작가의 꿈을 꾸는 흘러간 굴곡의 이야기.그때 흘리던 눈물은 지금도 흘릴 수 있는데 한번 떠난 잎은 다시 그 자리에 올 수 없는 나는 낙엽입니다.살 만하니 병들고 다시 고국에 돌아가 살 수 없는 처지의 썩은 낙엽입니다. 고국을 떠난 지 40년 가까이 국적 포기를 안 한 이중 국적자입니다. 그것은 저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중학교는 굶어, 결석을 밥 먹듯이 해서 겨우 졸업을 했고 고등학교는 고1 때부터 취직 반에 들어 고2(?) 때는 민중서관 활판부 수습생으로, 고3(?) 때는 취직 생활을 위한 연습, 졸업 후 K 서적에 입사하여 직장인이 됐습니다. 그래도 대학은 가고 싶어 S 대 입시를 봤는데 수학 문제가 6문제인가, 7문제인가 나왔는데 5-6문제는 전혀 알 수가 없었고, 나머지 한 문제도 아리송해 도중에 시험장을 빠져나왔습니다.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종로 학원가에서 수학을 중점적으로 공부를 하고 통금 사이렌 직전에 집에 왔습니다.그러나 다음 해 입시에 또 낙방, 안 되겠다 싶어 다음에는 다른 과를 지원하기로 하고 취직이 쉽다는 후기 대학인 S 대에 입학, 몇 개월 다니다가 저는 영양실조와 과로로 쓰러졌습니다.저의 별명은 해골, 또는 왕 눈깔이었습니다.어릴 때 너무 굶주려 바짝 말라서 눈만 크게 보이다 보니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런데도 직장과 학교나 학원에 잠을 뺏겨 수면 부족으로 건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입영통지서까지 나왔습니다.저의 학력은 이것까지 입니다. 그래서 배운 것이 많지 않아 이국 생활 40년, 영어도, 한글도 제대로 못 하는 반벙어리입니다.삼랑진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부모님께서는 영등포 꿀꿀이 죽을 파는 시장 부근에 자리를 잡으셨다. 나는 영등포 영중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했고 얼마 후 동쪽에 사는 학생은 (소문에) 영동초등학교로 (나중에는 남쪽에 사는 학생은 영남초등학교로) 재편성하여 나는 3학년 때에 영동초등학교로 다니게 됐다. 교실은 천막이었다.이(기생충)들이 너무 많아, 특히 여자아이들 머리에는 하얀 것들이 기어 다녔고 서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털실로 짠 옷이나 장갑에는 쌀알만 한 이들이 박혀 있었다.남자아이들 머리나 몸에는, 기계 총, 도장 부스럼이라는 피부병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DDT 살충제를 주어 그것을 조그만 주머니에 넣어 상의 겨드랑에 달게 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목욕이나 빨래를 할 여건이 안되어 목욕은 일 년에 한 번 설날 전에 할까 말까 였고 빨래도 자주 할 형편이 안되어 이가 들끓었다. 특히 서캐는 일일이 잡을 수 없어 촛불에 그슬리면 따따따 인민군 따발총 소리를 냈고 추운 겨울에는 얼어 죽으라고 옷가지들을 밖에 내 걸었다.우리 가족들도 미군 부대 식당 쓰레기통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를 끓여 파는 꿀꿀이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꿀꿀이 죽은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므로 부담이 가서 자주 먹지는 못 했다. 담배꽁초도 들어있고 동전, 깡통 뚜껑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코 푼 휴지도, 가래침도 있다고 했으나 그때는 그것을 따질 형편이 못 되었고 오히려 그런 것이라도 있는 게 다행으로 여겼다. 운이 좋으면 칠면조 고기도, 햄, 소시지 조각도 먹을 수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왕건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께서는 신기하게도 어디서 가져오셨는지 미군 물자인 페인트, 잡화 등을 파셨는데 장사가 잘되는지 가게를 차리셨고 "자고 먹을 것만 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아저씨를 점원으로 두셨다. 가게 안에 군용 목침대에서는 아저씨가 주무시고 가게 뒤엔 우리 가족이 살았는데어느 봄날, 가게를 아저씨에게 맡기고 우리 가족은 창경궁 벚꽃 구경을 갔다 왔는데 집과 가게가 불에 타서 재만 남아 있었다.외상으로 가져온 물건들이 많았다고 했고, 더욱이 아저씨가 안 보여 아버지께서는 "내가 김 씨를 죽였다"고 통곡을 하셨다. "그렇게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만 구경하러 갔다"고 어머님께서도 우셨다. 부모님께서는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김 씨 아저씨를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화재로 빚을 잔뜩 지고 갈 곳이 없는 우리에게 아버지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종이상자와 군용 천막 천으로 잠자리를 만드셨고 술과 담배를 못 하셨던 분이 술과 담배를 시작하셨다.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매일 우셨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아저씨 혼령을 볼 낯이 없다고 이사를 했다. 전 해군 본부와 장훈 중, 고교가 있기 전 신길동 고갯마루 공동묘지를 옆으로 한 판자촌에 있는 아는 이의 헛간을 빌려 보금자리를 만들었지만, 빚쟁이들이 아우성치는 난장판의 나날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아예 방 한구석에 살림을 차렸다. 돈을 받기 전에는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중학교 입시가 내일 모레인데 공부는 무슨 공부인가? 밖으로 겉돌았다.메뚜기, 도마뱀을 잡으러 다녔고 남의 밭 고구마, 무를 캐 먹고 관악산, (서울 대학교가 생기기 전) 검지산(산 이름)부근의 절과 기도원 근처에서 칡뿌리를 캐다가 젊은 스님, 박수무당에게 얻어 맞았다.다행히 봉천, 사자암, 신림, 난곡, 고개에는 (달동네가 생기기 전) 서낭당이 있어 북어, 하얀 쌀밥 (잿밥), 과일, 어떤 날은 고기산적, 돈도 있었다. 그것들은 나에게는 진수성찬이었다.운이 좋아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기운이 없어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결석을 하자 반장과 담임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셨다. 이틀을 먹지 못해 송장처럼 널브러진 우리 가족을 봤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교우 돕기 쌀 한 줌씩 가져오기 운동을 벌여 김익주 담임 선생님은 몇 명의 급우들과 쌀 봉지를 들고 집에 오셨다.(6월4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2회가 게재됩니다)

2019-05-27 17:00:00

오늘도 마십니다, 맥주/이재호 지음/다온북스 펴냄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맥주 때문에 결정장애를 겪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여러나라 여러종류의 맥주가 수입되고, 국산 맥주도 다양한 라인들을 출시하고 있어서다. '오늘도 마십니다, 맥주'는 수많은 맥주 사이에서 자신만의 맥주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 맥주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맥주 교양서'다.◆어떤 기준으로 맥주를 고를까'에일 맥주', '라거맥주', '페일에일 맥주'…. 브랜드도 종류도 많다. 그렇다면 이 중 '맛있는 맥주'는 어떤 맥주일까. 지은이는 세상에 맛있는 맥주에 대한 유일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못난 맥주는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맥주는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고 말했다.책은 나만의 맥주를 고르는 가이드를 제시하면서 인류 역사와 맥주가 걸어온 길과 오늘날 맥주 산업 현황같은 맥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도 전한다. 맥주 한 잔을 하며 나눌 수 있는 낭만적인 이야기와 맥주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는 이야기도 담고 있다.처음은 맥주의 재료와 제조공정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라거와 에일이 어떻게, 왜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조 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손쉽게 얻은 맥주라 할지라도 그 나름의 과정이 있다. 어쩌면 쓸모없다고 생각했을 맥주의 생산방법은 맥주 스타일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정보가 된다.맥주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두 번째 파트에서 이어진다. 다른 맥주 관련 책에서는 간략하게 다룬 역사를 조금 더 세밀하게 다뤄 길고 긴 맥주 역사 속에서 맥주라는 술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맥주가 얼마나 오랜 시간 숙성되어 오늘을 만들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세 번째 파트에서는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맥주를 스타일별로 다루었다.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맥주 스타일을 기본으로 하지만,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인접한 카테고리로 분류해 비슷한 맥주를 한눈에 살피기 쉽다. 게다가 추천 맥주를 덧붙여 관심 있는 맥주 스타일을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아무 맥주'가 아닌 나만의 맥주중세 시대 전염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사순절 수도사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맥주는 현재 우리의 지친 오늘을 달래주고 있다. 집 앞 편의점에만 가도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만날 수 있는 지금 거기서 거기, 다 똑같은 맥주라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맥주의 시작은 모를지언정 맥주 스타일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을 구해낼 맥주를 찾아야 한다는 것. 라거와 에일이라는 선택지에서 홉과 아로마의 강도를 따지고 오늘 먹을 음식과 어울리는 맥주 스타일을 고르는 일은 곧 내일의 기분을 만든다.맥주를 고르기 위한 실전편은 마지막 파트에 등장한다. 집에서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팁과 테이스팅 방법에 대해 엮었다. 다양한 맥주잔, 적절한 맥주 온도, 청결 상태 등에 맥주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단계, 맥주의 풍미를 느끼는 순서와 테이스팅 실전에 대해 알려준다. 여기에 지은이의 인생 맥주 'BEST 6'와 테이스팅 노트도 소개한다.지은이는 보통의 맥주 애호가에서 시작해, 지금껏 650여 종의 맥주를 시음한 테이스팅 노트, 맥주를 즐기는 노하우와 다양한 정보로 6년간 블로그를 운영하며 '맥주 아무거나'가 아닌, 자신만의 맥주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 맥주 애호가로 거듭났다. 그만큼 전문가가 아닌, 보통의 맥주 애호가에게 와 닿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맛있는 맥주를 알려달라는 친구와 동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맥주에 얽힌 저마다의 사연을 이해하면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 오늘도 새로운 맥주를 찾고 마시고 쓰고 있다.이 책에는 무수히 많은 맥주 이야기와 스타일이 열거되어 있지만, 맥주의 모든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만 알아도 '아무 맥주'나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아 두면 쓸모 있는 충분한 맥주 정보이자 맥주 이야기다. 맥주 애호가가 써내려간 맥주 이야기를 읽다보면 시원하고 맛있는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질 것 같다. 280쪽, 1만4천500원.

2019-05-23 10:24:12

[반갑다 새책]천주 신앙으로 일구어 낸 나눔과 섬김의 자리/안동교구 50주년 역사편찬위원회 편/천주교 안동교구 펴냄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준비하고 읽는 교우 여러분들께도 주님 안에서 축하와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2019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2년 전부터 가정과 본당 그리고 교구공동체의 쇄신운동을 펼쳐온 안동교구는 반세기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결과물이 '안동교구 50년 역사편찬'사업이었다.이 책은 교구의 '통사'(通史)와 제 본당과 교구 내 각종 활동단체, 수도원,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등의 '약사'(略史) 그리고 제 본당과 공소의 도록집으로서의 '천주신앙으로서 일구어낸 나눔과 섬김의 자리' 및 '역사화보집' 등 4가지 형태로 발간됐고 또 '부록'으로 역대 교구장의 사목교서와 교구의 주요 공적 문서들도 함께 발간됐다.1천200쪽, 비매품

2019-05-21 16:25:01

[반갑다 새책]표해록/최부 지음'허경진 옮김/서해문집 펴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이어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에 꼽히는 '표해록'은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지은이 최부는 1487년 추쇄경차관(도망간 노비를 찾아 체포하는 벼슬)으로 임명돼 제주로 갔다. 여기서 그는 1488년 아버지 부고를 듣고 고향인 나주로 가던 중 바다를 표류하게 됐다. 그리고 약 보름 동안 표류한 후 천신만고 끝에 중국 절강성 연해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이나 해적을 만났고 육지에 올라서는 왜구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조선 관리임을 알게 된 현지인에 의해 운하와 육로를 이용, 명나라 수도인 북경까지 호송을 받아 당시 황제 효종을 알현하게 됐다. 이후 요동반도를 거쳐 약 6개월만에 압록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다. 단 한 명의 희생이나 낙오자 없이 말이다.이후 최부는 성종의 명에 따라 일주일간 쓴 글이 바로 '표해록'이며 이 책은 15세기 중국의 생생한 모습을 현재까지 전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76쪽, 1만4천500원

2019-05-21 16:23:17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7회)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분이 서로 존대어를 쓰셨고 부부싸움을 하신 날에도 잠은 꼭 한 방에서 주무셨다.어려운 살림에 어찌 고단하고 힘들지 않았을까 만은, 삯바느질로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며 묵묵하게 그리고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님!오신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병명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전신 마비가 되어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차남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끝에 의사로 의대교수로 키워내신어머님!맏며느리가 하늘나라로 가자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인 어린 손자 손녀를 손색없이 키우신 어머님!경상도 사나이의 전형이시던 아버님이 84세로 당신의 곁을 떠나던 그 날까지 진정한 내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던 어머님!평생을 독서와 기도를 취미로 하시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삼종기도를 하셨던 어머님!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느냐고 질문하면 씩 웃으시며 "딱 두 가지다"라고 하셨지요."하나는 너희들 잘되라고 또 하나는 내가 너희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하늘나라에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하셨지요.어머님!용서해주세요.어머님께서 놀라실까봐 셋째가 먼저 간 것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아차! 지금쯤 영곤이를 만나서 더 놀라셨겠네요.어머님!떠나시면서 저희들에게 남긴 무형의 유산이 너무 많습니다.그리고 한 가지 더 좋은 것은 무형의 유산이라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네요..어머님!상속세 대신에 어머님 가르침대로 남을 배려하고 관용하면서 일하듯이 기도하고 기도하듯이 일하면서 살게요.참! 어머님 제가 이번에 신인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네요.내달 초순에 상 받으면 어머님께 꿈 속에서 라도 드릴게요.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네요.어머니!부디 불효자식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보필 잘 하십시오.보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제 꿈나라로 오세요.저도 어머니 보고 싶으면 꿈나라로 달려갈께요.어머님!안녕히 계세요. 제일 속 많이 섞힌 차남 올림. ▶쌍둥이 에피소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나의 가장 어릴 적 기억은 할머니에 닿는다.할머니께서 외출을 하실 때 웬만한 곳이면 쌍둥이 손자들을 데리고 다니셨는데 전차만 타시면 아무도 물어본 사람도 없는데 애써 다가가 ''우리 손자요. 우리 쌍둥이 손자. 참 예쁘지요?''하고 자랑을 하시는 것이었다.일면식도 없으면서도 예외 없이 "고놈들 참 귀엽네"라고 대꾸를 해주었다.워낙 많이 닮아 친척들도 구분을 잘 못했다.음성은 너무 비슷해서 아버지께서도 '큰 곤이냐? 작은 곤이냐?'라고 물어보실 때가적지 않았다.쌍둥이로서 에피소드가 한 둘이 아니지만 참 난감할 때도 있었다.여름방학 때 청주 어느 이발소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인사를 하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엉거주춤 아는 채를 하고는 이발이 끝나고 이발비를 내자 아까 그 사람이 내 것도 함께 내고 갔다고 했다.쌍둥이 동생을 잘 아는 누군가 나를 동생으로 착각을 한 것이 분명했다.집에 돌아와 쌍둥이 아우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기는 했는데 아우는 그 사람이누구인지 전혀 감이 안온다고 했다.본의 아니게 아우는 그 사람에게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도대체 누구인지 알아야 고맙다는 인사라도 전할 텐데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그리움이란 끝이 없는 것인가언제까지 그리움을그리움으로 달래야 하는가 밤 사이에 별빛 타고 와서는내 창가를 가만히 두드리다말없이 돌아서는너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쳐다만 보다 화들짝 놀라서 달려 나갔지만어느새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가버린 너의 흔적에 눈물로 답하는이 안타까움은 또 어찌해야 하는가 쌍둥이 아우야그토록 그리움이 몸서리 친다면 우리이전 처럼 그렇게 함께 살자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함께 살자 그리움이 끝이 없다면차라리 함께 살자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문학상 대상 당선소감문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고 넝쿨 장미가 흐드러진 오월에 윤동주시인 탄생 백주년기념 문학공모전에서 뜻밖의 대상 수상소식에 접하고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이하얗습니다.의사대상은 받은 적은 있지만 고등학교 재학 중 대상을 받은 이후 문학공모전에서대상 수상은 거의 반백년만입니다.의과대학시절 '필내음'이라는 문학 동아리에서 오세영 교수님께 잠깐 지도를 받은 후진료에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외도를 했습니다.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진한 무엇인가가 남아있었고 문학에의 갈증은 여전하여 2년 반 전에 영남문학신인상으로 늦깎이 등단을 하였습니다.짬짬이 떠오르는 시상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 오늘의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합니다.새 생명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가 되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공이 되어 우울에 지쳐삶을 포기하고자하는 환우들을 위해 그리고 밤을 하얗게 밝히는 불면증 환우들을위해 아무리 시시한 것에도 철학이 있다는 신념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겠습니다.비우고 버리면서 밝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고운 마음으로 읽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미흡하고 미흡한 졸작을 대상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감사를 드립니다.영남문학예술인협회 가족들 그리고 문학시선 가족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오래보고 자세히 보면서 아름다운 시어에 살아있는 철학을 입히는 작업을 더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항상 겸손하게 살겠습니다.성하지 않은 남편 곁에서 40년을 자나 깨나 애기 돌보듯 보살펴주는 내 사랑 한용희,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내 등불 종원, 내 희망 종윤에게 고맙다는 인사 전합니다.늘 그래왔듯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일하듯 기도하면서 나머지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채우겠습니다.서쪽하늘로 지는 멋지고 값진 석양이 되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끝〉 (5월28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장선작인 민윤숙의 "아니야, 안 돼, 안 돼." 첫 회가 게재됩니다.)

2019-05-20 17:30:00

[반갑다 새책]감성촉촉/오영희 지음/동아문화사 펴냄

시 낭송가이자 시인으로 활동 중인 지은이의 첫 산문집이다. 42년 전 지은이에게 전해진 'J'의 사연으로 시작한 추억의 연결고리는 연애의 감정처럼 '두근거림'으로 이어져 '용기' '추억' '지금' '감동' 등 4개의 우체통을 통해 감성을 전해주고 있다.'마음의 바다가 넓어야/ 받아줄 수 있고/마음의 눈이 밝아야/길을 찾을 수 있으며/가슴에 따듯함이 있어야/사람을 느낄 수 있는/다시, 사랑으로/촉촉한 월요일 되세요'(본문 중)책은 매주 월요일을 테마로 '나'에게서 '너'에게, 현재의 나로부터 미래의 나에게 전해지는 시와 편지들을 모았다. 육필의 편지글과 함께 게재된 시들은 단연으로 구성되어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산문과 운문의 경계를 허물고 두 손을 마주 잡은 감동으로 공감을 주고 있다.간간이 들어있는 육필편지를 통해 지은이의 생활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편지를 보낸 이의 그 마음을 귀히 여겨 온전히 간직한 정성이 마음 한 켠을 촉촉하게 적신다.'흔들려/본 사람은 안다/살아 있음에 흔들릴 수 있는/아름다움/흔들어서 바로 세워지는 길/다시, 흔들리는 촉촉한 월요일 되세요'(본문 중)책 안을 보다 보면 또 하나 시를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는 것들. 바로 흑백 사진물들이다. 찍은 이는 지은이의 지인으로 이 책을 위해 선뜻 자신의 작품을 내어주었다고 한다.활자와 사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은이와 지인의 우정 또한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나는 언제나 그대로/너도 언제나 그대로/내가 밝으면 너도 밝고/내가 어두우면 너도 어두운/나로 인한 밝고 어두운/다시, 나와 너가 어울리는/촉촉한 월요일 되세요'(본문 중)213쪽, 1만3천원

2019-05-18 0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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