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하성란, 창비, 2002.

잘못된 선택, 바로잡을 때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는 탁월한 묘사로 '정밀 묘사의 여왕'이란 별명을 가진 작가, 하성란(河成蘭)의 세 번째 작품집의 표제작이다. 11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꼽은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을 기반으로 한다. 많은 이본이 있음에도 밝혀지지 않은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가 왜 살해당했는지에 대한 상상을 현대적으로 채워 넣은" 것이 이채롭다.

19세기 귀스타프 도레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중 하나인 '푸른 수염' 19세기 귀스타프 도레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중 하나인 '푸른 수염'

동화 '푸른 수염'은 '빨간 모자,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 유명한 샤를 페로가 설화를 바탕으로 지어 1697년에 발표하였다. 프랑스의 한 지역에 사는 잘 생기고 부유한 군주 푸른 수염은 여러 번 결혼했지만 이상하게 아내들이 모두 죽는다. 새로 결혼한 아내에게 모든 방문을 열어도 되지만 지하의 작은 방은 열지 말 것을 경고하며 열쇠 꾸러미를 준다. 원작에서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작은 방을 열어 본 것을 안 푸른 수염이 그녀를 죽이려는 순간 오빠들이 달려와 구해 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반면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에서 나는 22살 때 약혼을 파혼하고, 10년 만에 결혼을 하는 32세의 약사이다.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첫딸 시집 갈 때 오동나무 장롱을 해주려 심은 수령 32년 오동나무를 베어 열두 자짜리 장롱을 만든다. 3개월 알았지만 연애는 1개월도 되지 않은 스물아홉의 제이슨과 19개월 동안의 결혼 생활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구식 면도칼로 매일 수염을 깎아 턱이 푸르스름한 제이슨은 뉴질랜드에서 학교에 노란 스포츠카를 타고 다닌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 같은 돈을 벌어본 적 없다. 몸집은 왜소하지만 성격이 좋은, 학교 후배 챙과는 매일 무슨 연구랍시고 복도 맨 끝 방에서 살다시피 한다. 제이슨은 내게 다 내 맘대로 해도 좋지만, 단 하나 자신의 방에는 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굳이 궁금해 하지 않다가, 어느 날 새벽 두 시 제이슨의 방문을 열고 만다.

"방문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우린 아무 일 없었을 거야. 안 그래? 이게 다 네가 자초한 거야. 알아?"

판도라의 상자와 아담과 이브, 그리스 신화의 큐피드와 프시케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나는 제이슨에 의해 오동나무 장롱 안에 갇힌다. 요지부동의 오동나무 장롱 안에서 살려 달라 죽는 힘을 다해 소리치지만 오동나무 장은 역시 튼튼했다. 제이슨이 방심한 틈에 탈출한 뒤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열 두 자짜리가 제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혼 후 여덟 자짜리가 더 좋았다는 아쉬움 가득한 회한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맺는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을까."

작가는 오동나무 장롱을 결혼의 실패와 연관시킨다. 제이슨의 조건만 보고 선택한 결혼이 오동나무 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동나무처럼 단단한 결혼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사랑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마주한 순간 바로잡을 기회가 없었느냐는 물음이 남는 것이다. 제이슨은 계속 결혼 할 것이다. 반복될 비극의 예고편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푸른 기대를 조심스레 품어 본다.

서미지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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