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내 곁에 있어줘" 치매 걸린 아내와 마지막 여행

게르트너 부부의 여행/ 지뷜레 펜트·촐탄 요카이 지음/ 지뷜레 펜트 사진/ 출판사 클 펴냄

리투아니아 네무나스 강에서. 리투아니아 네무나스 강에서.
말하는 능력을 잃은 아내 엘케는 '내 곁에 있어줘'를 세 번 반복한 메모를 남겼다. 말하는 능력을 잃은 아내 엘케는 '내 곁에 있어줘'를 세 번 반복한 메모를 남겼다.
라트비아 아우야 국립공원에서. 라트비아 아우야 국립공원에서.

2008년 늦여름 리투아니아 네무나스 강가. 백발의 노부부가 마주 보고 있다. 남편이 깍지 낀 손으로 아내를 안고 있고, 두 손을 모은 아내는 환한 미소로 남편을 바라본다. 웃는 아내를 내려다보는 남편의 눈길은 그윽하면서도 뜨겁다. 금방이라도 입맞춤을 할 것 같이 촉촉하다. 강물도, 잎사귀도 그들의 포옹을 기다리고 있다.

◆나들이를 준비하다

평화로운 모습을 렌즈에 담은 이는 독일 사진작가 지뷜레 펜트다. '게르트너 부부의 여행'은 독일 남부 뮐바흐에 살던 게르트너 부부의 평소 모습과 발트해 연안국을 여행한 1년 남짓한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 앨범이다. 독일에서 2012년 출간돼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평소 캐러밴을 타고 여행 다니기를 좋아한 게르트너 부부는 2008년 발트해 주변 나라를 여행하기로 했다. 부부는 이전에도 수차례 유럽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두 가지. 사진작가와 함께 떠난다는 것과 부인 엘케 게르트너의 치매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지뷜레 펜트는 그해 초 게르트너 부부를 알게 됐다. 2년 전에 첫 증상을 보였던 엘케의 병은 빨리 진행되고 있었고, 그가 부부를 만났을 때 이미 엘케는 말을 하지 못하고 메모로 간단한 의사를 표시할 때였다. 대부분 '해줘' '하고 싶어'로 끝나는 메모였다. 작가는 그해 3월부터 부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들 삶의 일부가 됐다.

남편 로타어 게르트너는 많은 시간을 아내에게 할애했다. 매주 연극 모임에도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전문 재택 요양보호 서비스는 받지 않았다. 여가를 제외한 모든 시간에 아내를 돌보는 무거운 짐을 지더라도.

아내 엘케는 점점 어린아이가 됐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며, 무엇을 하려다가도 잊어버리곤 했다. 색칠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서툴러졌다.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그의 손에는 화상 자국이 있고, 파리가 앉아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정강이에 난 상처도 이전, 그리고 앞으로 닥칠 위험을 암시하고 있다. 다가오는 불행을 뿌리치려는 로타어의 노력에도 그림자는 계속 드리운다.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

여행은 늦여름에 시작됐다.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러시아-에스토니아를 도는 여정이었다. 용감했지만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부부와 작가는 그해 겨울까지 늘 함께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아내 엘케의 표정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지켜보는 듯한 남편 로타어의 눈빛은 가감 없이 지뷜레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정처 없이 거니는 엘케의 뒤에는 항상 로타어가, 지뷜레가 있었다.

이동식 주택과 야간열차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행의 안식처가 됐다. 로타어는 야영장 한쪽에 차를 주차하고 햇살이 비치는 곳에 엘케를 앉혀놓고선 토마토를 갖다준다. 집에서와 같이 빨래를 널고, 캐러밴을 끌고 가 짐을 정리한다. 엘케의 머리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수시로 피곤한 엘케의 옷을 갈아입히고 잠자리에 누이는 것도 당연히 로타어의 몫이다. 남자는 아내가 없는 곳에서 얼굴을 감싼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다. 엘케는 자작나무 숲을 걷기도 하고, 강가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종종 초점을 잃는다. 내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지만 친절한 이 남자가 때로는 낯설다. 이들의 조금은 무력하고, 희미한 미소는 수천 마디 글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은 종종 충격적인 장면을 묘사해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책은 환자의 고통과 눈물겨운 보살핌에 천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받은 남녀가 병마에 맞서 싸우는 동안 피어나는 사랑에 주목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뜨겁고, 평화로워 보이는 하루하루가 투쟁이었을 그들을 보는 내내 마음속에 물결이 인다.

잔잔한 일상과 생애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담은 이 사진집은 그들의 마지막 여행 기록이 됐다. 여행이 끝나고 두 달 뒤 엘케는 세상을 떠났다. 뒤로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발트해의 풍경은 다시는 함께 볼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더이상 말을 할 줄 모르게 된 엘케는 수첩에 짤막한 문장을 남겼다. 아마도 로타어에게 하는 말이었을 메모.

'내 곁에 있어줘.'

'내 곁에 있어줘.'

'내 곁에 있어줘.'

아프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신체의 어떤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아프다고 말한다. 책은 노부부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보여주고 다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이 사라지고 장소와 거리가 낯설어지고, 익숙했던 물건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동안 의식은 공포로 채워지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별의 순간은 다가오게 마련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만 대부분 듣지 못한 채 헤어진다. 모든 것이 어렴풋해지는 순간, 그래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준다면 행복할 것 같다. 120쪽, 1만7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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