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의 추억의 요리산책]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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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의 눈빛이 새파랗다. 저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뻐꾸기 소리가 가깝다. 어느 개개비 부부는 남의 자식 거둬 먹이느라 날갯짓 분주하겠구나. 땡볕 내리꽂히는 한낮, 잘 삭은 열무김치 국물에 말아먹는 냉면이 한 끼니로 제격이다.

냉면의 역사는 오래다. 고려 시대 때, 서북 지방의 메밀로 만든 국수에 살얼음 덮인 동치미 국물을 부어 말아 먹으면 별미였다고 전한다. 숙종과 고종 임금이 냉면을 먹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 '냉면' 음식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홍석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에는 '냉면' 과 '골동면'을 언급했다. 냉면은 물냉면, 골동면은 비빔냉면으로 '관서(關西)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평양 지역은 냉면 전문점으로 성업을 이루었다. 그에 따라 분업화가 일어났는데, 반죽을 맡은 사람은 '반죽꾼', 면을 삶는 사람은 '발대꾼', 면을 찬물에 헹구는 사람은 '앞잡이', 그릇에 담긴 냉면에 지단과 고기 등 고명을 얹는 사람을 '고명꾼', 냉면을 배달하는 사람은 '중머리'라고 불렀다. 냉면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를 개선해 달라는 노동운동을 벌였을 정도였다.

평양에는 메밀면에 동치미 국물과 육수를 섞어 말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함흥에는 고구마나 감자의 전분으로 면을 만들고,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간재미 회를 넣어 회냉면을 만들었다. 경상도 진주에는 해산물로 육수를 내고 육전 등 푸짐한 고명을 얹은 냉면을 선보였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냉면이다. 메밀의 성질은 달고 약간 시고 차다. 무더위에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또한 한겨울에 살얼음 둥둥 뜬 동치미국물에 말아먹는 것이 냉면이다. 예전에 동치미나 메밀은 겨울철에만 장만할 수 있는 식재료였다. 한여름에 이열치열(以熱治熱) 하듯이, 한겨울에 이냉치냉(以冷治冷)한 것이다.

술 취하면 냉면을 먹으며 속을 풀었다고 하여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도 있다.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백석 시인은 '냉면'을 노래했다.

메밀 속에 함유된 루틴은 변비와 고혈압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단백질이 많아 영양가 또한 높다. 냉면에는 반드시 식초가 들어가야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냉면과 식초는 미각적인 조화, 영양, 위생을 충족시킨다. 녹말이나 육류를 먹으면 대사과정에서 유산이 생성된다. 유산이 쌓이면 피로가 가중되는데 식초는 유기산을 가지고 있어 피로회복과 소화 흡수된 영양분을 에너지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더구나 여름철에는 육수나 여러 재료로 인해 식중독이 발생할 수 있는 악조건을 피할 수 없다. 식초는 살균력이 있어 냉면에 아주 적절하게 어울린다.

냉면의 마스코트는 삶은 달걀 반쪽이다. 달걀은 완전식품이지만, 비타민 C와 식유섬유는 결여되어 냉면과 같이 먹었을 때 영양소를 보완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냉면 먹을 때 달걀부터 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메밀은 성질이 거칠고 차서 빈속에 먹으면 위벽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삶은 달걀을 먼저 먹으면 위 내벽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약선에서는 메밀과 돼지고기를 같이 먹는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찬 성질의 돼지고기 보다는 따뜻한 성질의 닭고기나 쇠고기를 삶아 육수와 편육으로 사용하면 유용할 것이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노정희 요리연구가

 

노정희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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