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영상] '경주 남산'에서 만난 신라의 흥망성쇠

경주시·TV매일신문 공동기획 2부작 ‘삼릉 가는 길’
공개…남간사지·창림사지·포석정·삼릉 등 소개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TV매일신문이 공동으로 기획한 특별방송 '삼릉 가는 길' 〈제2부〉 '신라의 종말과 망(亡)'이 3일 TV매일신문(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영됐다.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김민정 아나운서와 이승호 대구답사마당 원장, 정호재 마임이스트가 트리오(Trio)로 호흡을 맞췄다.

삼릉 가는 길엔 신라 왕의 탄생과 건국, 그리고 패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알에서 태어난 비범함으로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탄생 설화의 배경이 된 나정, 그와 왕비가 잠든 오릉, 신라 패망의 상징으로 알려진 포석정까지, 신라의 시작과 끝이 이 길에 있다.

〈제2부〉에서는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앞에서 여정을 다시 이어간다.

 

◆큰 인물 키운 땅…남간마을

남간사지 당간지주가 있는 남간마을은 불교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신라 불교의 기틀을 다진 자장율사(590~658년)의 집도 이곳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문무왕 재위 시절, 용궁에서 배워왔다는 주술적인 밀교(密敎) 의식인 '문두루비법'으로 서해를 건너던 당나라 설방의 50만 대군의 배를 모두 침몰시켰다고 전해지는 명랑법사도 이곳과 관련이 있다. 명랑은 자장율사의 조카다. 다시 말해 명랑의 어머니 남간부인(법승랑으로도 불림)의 남동생이 자장율사다.

<삼국유사>엔 명랑법사와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명랑이 당나라에 유학한 뒤 돌아오는 길에 바다 용의 청으로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전하고 황금 1천냥을 시주받은 뒤 땅 속으로 몰래 들어가 자기 집 우물 밑으로 솟아나왔다. 이후 자기 집을 내놓아 절을 짓고 용왕이 시주한 황금으로 탑과 불상을 꾸몄다. 유난히 광채가 빛나 절 이름을 금광사(金光寺)라고 했다는 게 대략적인 내용이다.

남간사지 석정이 명랑법사가 솟아나온 우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부 학자들은 이 동네가 남간부인과 연관돼 '남간'이란 마을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보고, 몇 가지 석조유물이 나온 인근 한 연못 부근이 명랑법사의 출생지이자 금광사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신라 첫 궁궐터, 창림사지

남간사지 당간지주 앞에서 남쪽으로 1㎞ 가량 떨어진 곳엔 창림사지가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의 첫 궁궐 자리로 전해지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창림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867호)은 신라 탑의 주요 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탑에 돋을새김한 팔부신중(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수호신) 조각이 유명하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제16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국내 석탑 팔부신중 조각으로 인정받는다. 오랫동안 파괴된 상태로 방치됐다가 1976년 사라진 부재를 일부 보강해 복원됐다. 탑의 원형은 상당히 훼손됐지만, 남산에 있는 석탑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경애왕 마지막 이야기 품은 포석정

창림사지에서 남쪽으로 600m쯤 가면 포석정을 만난다. 신라 때 국가 의례나 연회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포석정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에 제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다는 기록과 효종랑이라는 화랑이 포석정에서 놀았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신라 제55대 경애왕의 마지막 이야기도 포석정에 남아있다. 927년 후백제가 경주로 쳐들어왔을 때에 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다 견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시작과 끝이 '삼릉 가는 길' 위에 모두 있는 셈이다.

사실 포석정에서 볼만한 건 별로 없다. 63토막의 화강암을 다듬어 구불구불하게 물길을 만든 유명한 석조 구조물이 전부다. 포석정의 성격에 대해선 연회장소, 혹은 국가적 제의 공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연회장소라기보다 제의 공간으로 보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다만 구체적인 제의 내용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 차이를 보인다.

◆삼릉, 그리고 포석정에 얽힌 오해와 진실

신라 제6대 지마왕(112∼134년)의 무덤과 보물 제63호인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을 차례로 지나면, 아름드리 소나무숲 속에 왕릉 3기가 모여 있는 삼릉을 만나게 된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이다. 인근엔 후백제 견훤에 의해 죽음을 맞은 비운의 왕인 경애왕의 무덤이 있다.

<삼국유사>는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신하, 궁녀들과 술판을 벌이다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 군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애왕이 술판을 벌였다는 시기는 음력 11월, 다시 말해 한겨울이었다. 게다가 경애왕은 이보다 두 달 전인 음력 9월 후백제 견훤의 군대가 인근 영천까지 진격하는 위험에 처하자 고려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왕건은 구원병 1만 명을 보냈는데, 이들이 미처 경주에 도달하기도 전에 견훤군이 침략한 것이다.

이처럼 적을 목전에 두고 술판을 벌일 왕이 있을까. 더구나 한겨울 노천에서 술판을 벌였을까. 기록은 신라를 무너뜨린 역사의 승자 '고려' 때의 것이다. 따라서 포석정과 경애왕의 이야기는 새 왕조 탄생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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