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앞둔 대구 고성동 길고양이들…"가여워 어떡해"

영역 동물 머물던 곳 쉽게 못 떠나…대구고양이보호연대 사전에 구출
안전하게 포획, 중성화로 수 조절…철거 끝나면 원래 살던 장소 방사

터전을 잃은 고양이가 빈집 계단에 앉아 멍하게 앉아 있다. 임소현 기자 터전을 잃은 고양이가 빈집 계단에 앉아 멍하게 앉아 있다. 임소현 기자

줄줄이 닫힌 출입문마다 붉은색 페인트로 'X'가 칠해져 있고 유리창이 다 뜯겨나간 채 골조만 남은 창틀엔 한두장이면 충분할 '공가(이주 완료 가구)' 스티커 수십 장이 어지럽게 붙었다. 철거를 앞둔 건물들 사이로 들어가니 그곳에 터를 잡은 고양이들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혀를 끌끌 차며 가까이 다가가니 놀란 듯 무너진 담 사이로 도망친다. 기찻길과 4차선 도로에 끼인 재개발 지구 '대구 북구 1가'엔 현재 철거를 기다리는 집들만 남았다. 이곳이 허물어지면 4천여 세대의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고양이 울음소리, 기껏해야 인부들 말소리만 오가던 이 곳에 몇 주 전부터 요상한 조끼를 입은 사람들 몇몇이 돌아다닌다. 둥그렇게 모여 파이팅을 외치는가 하면 부서져내린 건물 틈을 요리조리 잘도 지나 다닌다. "길고양이들을 보호소에서 보호하지 않고 길에서 보다 편하게 살게 하고 싶다" 철거가 시작되기 전 한 마리라도 더 구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현진 씨의 눈이 반짝 댄다. 이 씨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길고양이 보호 활동을 하고 있는 대구고양이보호연대 운영자다.

대구고양이보호연대 활동가들이 지붕 위에서 길고양이를 포획하고 있다. 임소현 기자 대구고양이보호연대 활동가들이 지붕 위에서 길고양이를 포획하고 있다. 임소현 기자
치킨이나 각종 음식을 넣은 포획틀로 고양이를 유인한다. 임소현 기자 치킨이나 각종 음식을 넣은 포획틀로 고양이를 유인한다. 임소현 기자

◆재개발 지역 방치된 길고양이 구출 작전

지난 4일 오전 11시쯤 찾은 북구 고성동 1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일그러진 철제대문이 나뒹굴고 부서진 건물 잔해와 깨진 유리조각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그 어수선한 풍경 너머 재촉하는 손짓이 보였다. "빨리 안 오고 뭐 하세요. 곧 포획 시작합니다" 사람과 함께 삶의 터를 옮겨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자신이 머물던 곳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고양이들이 많이 죽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구고양이보호연대는 철거가 시작되면 깊숙한 곳으로 숨어 버리는 길고양이들을 사전에 구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길고양이를 구출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우선 현지 캣맘·캣대디(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보금자리를 만들어 돌봐 주는 사람)와의 소통이 포획 성공의 8할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잡아야 할 녀석들의 행동반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캣 맘이다. 낮엔 어디서 지내는지, 또 밥 먹으러 언제 오는지. (활동가들은)캣맘이 알려주는 정보를 토대로 움직인다" 현장 사람들의 협조도 반드시 필요하다. 외부 철거, 내부 철거는 보통 장기적인 계획이 없다. 갑자기 날짜가 잡히는 공사 일정을 알기 위해선 활동가들은 매일매일 현장에 출근 하는 수밖에 없다.

포획틀 안에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참치나 치킨을 뜯어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양이 한 마리가 포획틀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간다. 먹이에 입을 대는 순간 '쾅' 하고 문이 닫힌다. 이날 활동가들은 길고양이 19두를 포획 했다. 그 중 한마리는 입양이 확정 됐고, 나머지 18마리는 계류장에 보호 중이다. 이들은 철거가 완료되고 위험요소가 사라지면 원래 살던 곳으로 방사 될 예정이다.

대구고양이보호연대는 월동대비 길고양이집 만들기에 나섰다 임소현 기자 대구고양이보호연대는 월동대비 길고양이집 만들기에 나섰다 임소현 기자
스티로폼과 단열재를 이용한 길고양이 겨울집의 모습. 임소현 기자 스티로폼과 단열재를 이용한 길고양이 겨울집의 모습. 임소현 기자

◆관리 주체 명시된 급식소·겨울집 설치

17일 오후, 다시 찾은 대구고양이보호연대에서는 철거 때와는 다른 조용한 분주함이 느껴졌다. '구출에 성공했으니 할 일 다 했네'라는 기자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구출된 고양이들을 (재개발 지역에) 방사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인적 없고 황량한 그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활동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스티로폼을 둥그렇게 파내더니 안내문이라고 크게 적힌 종이를 턱턱 붙인다. 한 쪽에선 콜라병, 물병, 사이다병 온갖 페트병들이 칼질을 당하고 있다. 그곳에도 안내문 종이가 똑같이 붙었다.

고양이들을 방사하기 전 재개발 구역 곳곳엔 급식소와 겨울 집이 설치된다. 물론 관리 주체와 연락처가 명시된 안내문이 붙여진 채로 말이다. "캣맘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이유는 끝까지 책임을 안 지는 몇몇 모습들 때문인 것 같다. 길고양이가 길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캣맘이 아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캣맘이 길고양이 개체 수를 늘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바른 방법을 통한다면 캣맘의 활동은 개체 수 조절에 오히려 효과적이다. 실제 길고양이 급식소나 겨울 집 설치는 배곯은 고양이들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훼손하는 것을 줄이고, 향후 중성화 수술을 위한 포획을 원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안전하게 포획해 중성화를 한 뒤 방사하는 TNR 사업은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에 효과적이다. 임소현 기자 안전하게 포획해 중성화를 한 뒤 방사하는 TNR 사업은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에 효과적이다. 임소현 기자
고양이 급식소에는 관리 주체와 연락처가 명시된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임소현 기자 고양이 급식소에는 관리 주체와 연락처가 명시된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임소현 기자

◆최종 목표는 TNR 통한 개체수 조절

대구고양이보호연대의 최종 목표는 TNR(trap-neuter-return)을 통해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이다. TNR이란 길고양이를 안전하게 포획(Trap)해 중성화(Neuter)한 뒤 원래 살던 장소에 방사(Return)하는 방법이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지금 당장 우리 동네의 길고양이들을 다 잡아간다 해도 그 주변에 있는 고양이들이 비어 있는 공간을 다시 채우게 된다. 결론은 개체 수를 늘리지 않으면서, 깨끗하게 공생하는 것이 최선이다.

TNR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러 지자체들은 해당 예산을 매년 늘려가는 추세다. 하지만 구 별로 신청 기간이 제각각인 탓에 지원금을 받을라 치면 마감됐다는 통보를 받기 일쑤다. "포획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중성화를 통해 더 이상 개체 수가 늘어나지 않는 게 중요한데 지원금 없이 사비로 충당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현재 북구 고성동에서 포획된 19마리 중 중성화가 필요한 고양이는 활동가들 사비로 수술을 진행한 상태다.

캣맘의 정의는 무엇일까. 한 달에 사료 1kg는 주는 사람? 편의점에서 소시지라도 사다 주는 사람? 대구고양이보호연대 이현진 씨는 길고양이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 만으로도 캣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길고양이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그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라이프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