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컬럼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이병철 동상을 보면

'기업의 존립 기반은 국가이며 따라서 기업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난 40년간 사업보국을 주창해왔다.' '호암 이병철 선생은…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철학을 가진 선구자로 모든 경제인의 귀감이다.'대구의 옛 제일모직 터에는 삼성의 기업 왕국을 세운 이병철 전 회장의 동상이 있다. 동상 뒤 벽 양쪽에는 그의 생전 업적의 글을 새겨 놓았다. 앞은 1982년 4월 2일 미국 보스턴대학 박사학위 기념강연에서 따온 말이고, 뒤는 2010년 2월 12일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그를 기려 적은 글이다.나라가 망한 1910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일으켜 시작된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 삼성의 모태'가 대구임을 밝히고, '국가 민족 그리고 인류에 대하여 봉사'를 꿈꾼 그의 생각을 세상에 드러낸 현장의 증언이다. 삼성의 발상지인 대구로서는 당시 시민 뜻을 모아 동상을 세워 기릴 만했다.옛날과 달리 삼성으로는 세월이 흘러 대구의 효용 가치가 떨어지고 1세대 창업주를 지나 2세대 후계를 거쳐 3세대 손자 경영으로 바뀐 만큼 대구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물론 삼성 기업군의 발상지로서의 자긍심 같은 느낌도 옅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렇더라도 대구로서는 남다르기에 동상으로 기렸을 법하다.그의 동상과 그를 읊은 글을 읽고 최근 노조와 관련된 재판부의 삼성에 대한 단죄(斷罪)를 보면 그가 생각한 '사업보국' 뒤에 가려진 숱한 일반 국민의 성원과 근로자의 피와 땀, 눈물을 새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은 자본이 부족하던 시절, 고사리손으로 모은 코 묻은 용돈부터 의무적인 학생 저축 장려 등으로 쌓인 돈을 썼을 터이다. 또한 직원들은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그와 함께 일했음이 분명하다.그의 동상 뒤 글 어디에도 이런 사연은 엿보이지 않는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곳인 만큼 어쩔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지난 2013년 당시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 폭로에 따른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한 지난 17일 재판부의 '노조에 대한 반헌법적 태도' 판결은 그의 경영 철학을 되돌아보게 한다. 해고된 삼성 근로자가 서울의 철탑 위와 밑에서 농성하는 모습이 겹치는 요즘, 그의 동상과 글귀가 이리도 달리 보일까.

2019-12-22 19:02:08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Yea or Nay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이 19일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이로써 트럼프 탄핵소추안은 내년 1월 상원으로 넘어가는데 상원에서 탄핵이 최종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상원이 맡는다.트럼프 탄핵에 적용된 혐의는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다. 이 중 하나라도 상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트럼프는 파면된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과 달리 상원은 공화당이 과반(100석 중 53석)을 넘어 '유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치사에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모두 세 차례다. 1868년 앤드루 존슨(17대·공화)과 1998년 빌 클린턴(42대·민주) 그리고 트럼프(45대·공화) 탄핵안이다. 링컨의 암살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은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달러에 사들인 일로 유명하다. 그는 에드윈 스탠튼 국방장관을 상원 동의없이 해임했다가 권한 남용으로 탄핵소추됐으나 상원 표결에서 3분의 2(총 54명 중 36명 이상)에 1명이 모자라 탄핵을 모면했다.미국 의회에서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 탄핵소추권은 하원에 있다. 반면 탄핵 심판과 결정은 상원의 권한이다. 미국 상원은 50개 주마다 2명씩 모두 100명으로 구성되는데 하원이 국민의 대표 기관이라면 상원은 주정부와 주의회를 대표한다. 상·하원이 동등하게 입법권을 갖지만 6년과 2년이라는 임기에서 보듯 기업으로 치면 하원은 이사, 상원은 대주주에 비유할 수 있다.양원제 나라 중 이름뿐인 영국 상원(House of Lords)이나 일본 참(參)의원과 달리 미국 상원은 권한이 막강하다. 미국 연방정부 예산 의결권을 비롯해 파병 동의, 외교 조약 승인, 870명의 연방판사 인준권은 상원의 권한이다.트럼프 탄핵안이 가결되자 언론은 미국의 분열을 크게 걱정한다. 탄핵이 무산되더라도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여론 때문이다. 미국의 현 상황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은 2년 앞서 우리도 탄핵 정국을 경험해서다. 'Yea'(Yes)와 'Nay'(No)를 사이에 둔 여론의 갈림이 팽팽할수록 국민 감정과 국론의 치유와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2019-12-20 18:55:26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의 망상(妄想)

1.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2.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계획은 실현되어 있다. 3. 경제계획은 실현되어 있다. 하지만 가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4. 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줄이 늘어서 있다. 5.어디를 가든 줄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우리는 풍요의 문턱에 서 있다. 6. 우리는 풍요의 문턱에 서 있다. 하지만 모두가 불만족하고 있다. 7. 모두가 불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찬성!'이라고 투표한다.브레즈네프 집권기인 1970년대에 소련 인민들이 정부의 경제 성과 선전을 비웃으며 낄낄댄 '소련 사회의 일곱 가지 기적'이란 농담이다. 이런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소련 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사회주의가 성공적으로 창조됐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성과를 굳히는 것뿐"이라고 한 브레즈네프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그래서 개혁을 시도했다. 당시 총리인 알렉세이 코시긴의 이름을 딴 '코시긴 개혁안'으로, 기업인에게 더 큰 자유를 허용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더 많이 활용해 생산을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제는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였다. 처절하게 실패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계획경제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도 마찬가지였다. 계획경제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 생산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망상(妄想)이었다. 계획경제라는 문제 자체는 그대로 뒀기 때문이다. 시장 요소를 도입하자 소련 체제는 '개혁'이 아니라 붕괴해버렸다. 고르바초프는 훗날 "페레스트로이카의 전 과정을 내가 의도한 틀 내에서 관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고 했는데 그럴 만했다.그저 그렇고 그런 경력의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총리로 기용해 경제를 살린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 역시 '망상'으로 끝날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문 대통령부터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소주성'은 한 번도 현실에서 검증되지 않은 '책상물림'의 공상일 뿐이다.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추락하는 우리 경제의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소주성'의 틀 내에서 경제 살리기는 한마디로 '헛소리'이다.

2019-12-20 06:30:00

[관풍루] 문대통령 "40대 고용부진 아프다"며 대책 지시하자 정부, '40대 위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준비.

○…'환경오염 민원에 소극 대처했다'며 진행된 포항 기초의원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투표율 부족해 개표 불발. 어렵다 어렵다 해도 정치판에 사람 모으기가 가장 어려운 법.○…문대통령 "40대 고용부진 아프다"며 대책 지시하자 정부, '40대 위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준비. 근본 해결책은 말 못하니 또 나랏돈 쓸 일만 담았겠지.○…역대 정부서 과학 부총리, 장관 등 지낸 국가 원로들, "탈원전은 대한민국이 망하는 정책"이라며 문 정부 강력 비판. 눈 가리고 귀 막은지 오랜데 무슨 말이 통할까.

2019-12-20 06:30:00

채정민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주머니돈은 쌈짓돈이 아니다

'사학(私學)이 사악(邪惡)하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사립학교를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예외가 없다. 잊을 만하면 사학 비리 뉴스가 터진다.건국 이후 오랫동안 한국의 교육 인프라는 척박했다. 민간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역대 정부가 사재를 털었다는 사학 설립자들 앞에선 약해졌던 이유다. 사학들은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폭 넓게 인정받았다. 그게 독이 됐다. 사립학교를 제대로 감사하면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다.박용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전체 사학 비리 규모를 공개한 바 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사립유치원부터 사립고교까지 발생한 비위 건수는 2만4천300건, 금액은 1천402억원에 달했다. 사립대학의 비위 금액은 4천771억원이었다.'숨 막힐 것 같은 규모', '나라가 망할까 봐 겁날 정도'. 이 통계를 밝히며 박 의원이 덧붙인 말이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간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가 이 상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수준이다. 특히 아이를 학교에 맡긴 부모 마음이 편할 리 없다.대구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대구시교육청이 사립학교법인 두 곳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비리로 물러난 전 이사장은 여전히 학교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사회 이사들도 한통속. 학교 교육에 쓸 돈으로 이사장실을 꾸미는 등 공금 횡령도 예사였다. 교내 비리 제보자를 협박하기도 했다.자연스레 사학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유치원 3법'도 그런 조치 중 하나.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다. 국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문제는 이 법안이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유치원 돈을 제멋대로 펑펑 써댄 사립 원장들이 공분을 불러일으킬 때만 해도 곧 시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았다. '패스트트랙' 열차에 가까스로 올라탔지만 이번에도 통과할지는 미지수다.자유한국당의 반대 논리는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주장과 흡사하다. 한유총은 국가 회계 시스템(에듀파인) 도입에 반발했다. 물건을 파는 점포도 아닌데 임대료 성격인 시설 사용료를 달라고 요구한다. 모두 사유재산이라는 게 이유다.자유한국당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사학을 운영하는 집안 출신이고, 황교안 대표는 한유총 고문 변호사였던 게 자꾸 눈에 밟힌다. 사학 운영자와 관련된 이는 그들 외에 더 있다.사학이 사유재산이긴 하다. 그래도 운영의 공공성, 투명성은 담보돼야 한다. 세제상 각종 혜택이 주어지고 교직원 인건비 등 재정 지원을 받는 만큼 책임이 뒤따르는 게 당연하다. 대구만 해도 사립유치원 1곳당 연평균 지원액은 5억1천여만원이나 된다. 사립고는 더 많다.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사립고 2곳의 올해 지원액은 각각 82억5천여만원, 56억3천여만원에 이른다.한 한유총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유치원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는 건 치킨집 문을 닫는데 종업원 3분의 2 동의를 받으란 것과 같은 꼴"이라고. 당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반문했다. "유치원이 치킨집입니까?"사립유치원은 단순한 사유재산이 아니다. 비영리기관인 학교다. 아이들의 학습권이 보장돼야 한다. 또 사학의 주머닛돈은 쌈짓돈이 아니다. 그 돈 대부분은 국민의 혈세다.

2019-12-19 15:57:43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올해의 인물 조국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올해의 인물'로 스웨덴의 16세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1927년 올해의 인물로 처음 선정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25) 이후 최연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툰베리 선정을 두고 "아주 웃기는 일"이라며 막말을 했지만 선정 이유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의 유일한 고향인 지구에 대한 인류의 포악한 행위를 경고했고, 분열된 세계를 향해 배경과 경계를 초월한 목소리를 냈으며,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는 어떠한 모습일지 보여줬다."곳곳에서 올해의 인물을 앞다퉈 선정하는 것을 보면서 한 해가 저물었음을 실감한다. 82년생 김지영, 방탄소년단, 축구선수 손흥민, 영화감독 봉준호 등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거나 물망에 오르고 있다.필자의 견해로는 올해의 인물은 단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트위터 분석 결과 정치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 키워드는 조 전 장관이었다. 작년 1위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2위로 밀어냈다. '문재인 위에 조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조 전 장관의 올 한 해는 '모든 것을 얻으려 했으나 모든 것을 잃었다'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죽창가'를 부르짖으며 일본과의 경제 전쟁 선봉에 섰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단시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됐다. 장관 한 사람의 사퇴 여부를 두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등 나라가 둘로 쫙 갈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장관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일가 비리에 이어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등과 관련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지금의 조 전 장관을 보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가 떠올랐다.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인 이카로스는 태양 가까이 날아올랐다가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조 전 장관은 트위터 등 왕성한 SNS 활동에 힘입어 하늘로 비상했으나 결국 자신이 쏟아낸 수많은 글로 인해 추락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와 풀기 어려운 과제를 남긴 점에서 조 전 장관은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손색이 없다.

2019-12-19 06:30:00

[관풍루] 대구 동구청-동구의회 계속된 다툼에 구정 표류하면서 애꿎은 주민만 피해.

○…전략 무기인 F-35A 전력화 행사, 대통령과 국방장관 참석 없이 격납고에서 비공개로 진행돼. 사람과 날씨 등 이것저것 낯 가리다 보니 '스텔스 전투기'라는 이름 붙었나?○…대구 동구청-동구의회 계속된 다툼에 구정 표류하면서 애꿎은 주민만 피해. 국회에 이어 구청·구의회에도 성난 시위대 밀려드는 불상사 있을까 그게 걱정.○…3선 이상 대구경북 현직 시장·군수 대다수 내년 총선 출마 위해 중도 사퇴 않고 현직 고수. 선거에 이골이 날 법도 한데 불출마 선언이라 더 '큰 뜻'이 있는 모양.

2019-12-19 06:30:00

조두진 문화부장

[데스크 칼럼] 신춘문예와 늙은 한국문학

전국 일간신문들이 2020 신춘문예 작품 접수를 마감하고, 예심 중이거나 예심을 끝냈다. 매일신문도 예심을 마치고 현재 본심 심사 중이다.최근 5, 6년간 신춘문예 응모작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응모 편수가 완만하지만 증가세를 띤다. 둘째, 응모자의 연령이 점점 높아져 60대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셋째, 청년 응모자들의 작품에서 '반듯한 작품', 다시 말해 '흠도 없지만 매력도 없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신춘문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인 작가 등용문이다. 그래서 응모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노령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사위원 중에는 "이렇게 나이 든 사람을 등단하도록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등단한 뒤 오랜 세월 갈고닦으며 더 나은 작품을 써 주기를 기대하는데, 고령의 작가에게 열정과 에너지가 얼마나 있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글쎄다.세계 문학판에서 한국문학의 힘은 미미하다. 한국문학의 위상이 낮은 데는 언어와 번역, 출판사의 경영 방식, 국가의 매력 등 여러 이유가 있다. 차치하고 작품 자체의 대표적 문제만 꼽자면, 생생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점, 한국문학이 국내 시류에 지나치게 편승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등을 쓴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했으며, 그리스-터키 전쟁 때는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또 7년간 쿠바 수도 아바나의 암보스문도스호텔에 기거하면서 현지인들과 어울린 덕분에 '노인과 바다'를 더 생생하게 가꿀 수 있었다.소설 '오만과 편견'은 결혼 적령기 남녀의 이해와 몰이해, 결혼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쓴 제인 오스틴은 약혼했지만 남자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된 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결혼에 있어서 돈, 집안, 개인의 성향과 능력 등이 어떻게 얽히고설키는지를 그녀는 생생하게 경험했으며, 그런 문제로 오랜 세월 번민했다.고미카와 준페이의 소설 '인간의 조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징집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중국인에 대한 만행과 전쟁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잔인함을 그려낸 작품이다.예로 든 작품들은 모두 자국(미국, 영국,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문학에서도 걸작으로 통한다. 모두 경험 혹은 절절한 고뇌를 바탕으로 썼으며, 어느 작품도 자국 독자 혹은 동시대의 '통념'에 아첨하지 않았다.한국문학은 어떨까? 경험보다는 독자의 입맛에 맞춘 작품이 많다. 역사 소재 작품들은 인류 보편의 시각이 아니라 한국인의 편에서 쓴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성(性)과 관련한 작품은 '여성=피해자' '남성=가해자'가 대세를 이룬다. 글쓰기 방법을 정식으로 배운 작가는 많은 반면, 전문 분야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쓰는 작가는 드물다. 경험이나 번뇌의 결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경험과 번뇌를 찾아다니는 작가가 수두룩하다. 한국문학이 국내용이자 당대 시한부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신춘문예 응모자들의 연령이 높아진다고 한국문학의 고령화를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세상을 살아낸 사람의 절절한 경험과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다면 고령이라도 '젊은 작품'을 써낼 것이고, 경험이나 고민보다는 문학적 장치와 기교로 시류에 편승한다면 젊은 응모자라도 '늙은 작품'을 양산할 것이다.

2019-12-18 16:52:55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청어 과메기

'푸른 동해를 누비던 청어 떼도/ 북해도를 헤엄치던 꽁치 떼도/ 과메기가 되려면 구룡포에 와야 합니다/ 구룡포 투명한 겨울 해풍에/ 얼었다 녹았다/ 며칠을 덕장에서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출신인 김현욱 시인은 '과메기'란 시에서 매운 바닷바람에 과메기의 붉은 속살이 꼬들꼬들 여물어가는 구룡포의 겨울 풍경을 담았다.미국의 해양저술가 마크 쿨란스키는 '세상을 바꾼 물고기'란 책에서 유럽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물고기로 대구를 꼽았지만, 청어 또한 강력한 경쟁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특히 통조림과 냉동식품이 등장하기 전에는 소금에 절인 청어가 정말 중요했다고 한다. 염장 생선 수요가 폭증하면서 발트해 연안 도시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결성한 한자동맹을 출범시키는 동력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소금과 청어는 그만큼 큰 돈벌이 수단이었다.청어가 북해로 대거 이동하는 15세기에는 네덜란드가 급부상했다. 내장을 빼고 간수에 절여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염장 기술을 개발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청어는 금 노다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을 한때 '청어의 도시'라 했다. 지금도 초절임 청어의 전통이 음식문화에 남아 있다. 청어를 잡기 위해 낯선 해역으로 나가던 개척 정신은 네덜란드를 해양국가로 발전시켰다.임진왜란 때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청어를 잡아 군량미와 바꾸는 대목이 나온다. 청어가 물물교환의 중심이던 쌀과 바꿀 정도로 환전 가치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기름기가 넉넉해 맛이 좋은 데다 많이 잡혔던 청어야말로 단백질의 보급원으로 조선 수군 연전연승의 원동력이었다. 일제강점기까지는 청어가 상당히 많이 잡혔다. 동해가 '물 반 청어 반'이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그 청어를 잡아다 말려서 과메기를 만들었다. '과메기'란 말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등장하는 '관목어'(貫目魚)에서 유래한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린 데서 나온 말이다. 청어 어획량이 늘어나면서 올겨울은 그동안의 '꽁치 과메기' 대세를 역전시킬 전망이다. 출렁이는 구룡포 파도를 권주가 삼아 원조 '청어 과메기' 안주로 소주 한잔이 맛깔스럽게 떠오르는 계절이다.

2019-12-18 06:30:00

[관풍루] 21대 총선 예비 후보 등록 시작됐지만 선거법 확정 안 돼 정치신인들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 준비

○…21대 총선 예비 후보 등록 시작됐지만 선거법 확정 안 돼 정치신인들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 준비. 아무리 늦어진들 현역 의원들이야 손해 볼 일 없으니 서둘 일도 없지.○…강효상 의원, 국비 증가율 '대구 패싱'은 "예산에 관여하고 노력해야 할 주체들 잘못"이라 질타. 예산 따 낼만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노력도 없었다는 지당한 말씀.○…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 항공여객 수요 2050년에 1천만 명에 이를 것. 도로 뚫고, 철도 놓고, 활주로 늘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일.

2019-12-18 06:30:00

김수용 편집국 부국장

[시각과 전망]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 통과되지 못한 법안들

죽음을 애통해 하는 까닭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리라. 실수는 만회할 기회가 있고, 헤어짐은 돌아옴을 기대하지만 죽음은 어떤 대가를 치러도 되돌리지 못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남은 자의 가슴에 묻히고 기억에 머문다. 그런 통한의 기억도 망각의 치유제를 만나면 조금씩 잦아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바로 자식의 죽음이다. 먼저 떠난 자식은 가슴에, 기억에 뽑히지 않는 못으로 박힌다. 잠시 죽음을, 아픔을 잊을 수 있겠지만 어느새 다시 살아난 기억은 마치 처음처럼 부모의 가슴을 헤집는다.그처럼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운 고통 속에 부모들이 용기를 냈다. 돌이킬 수 없는 내 자식의 죽음이 안겨준 고통을 다른 누군가는 결코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비통함과 허망함을 부디 티끌만큼이라도 보상받기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목소리를 냈다.그렇게 세상에 나온 결과물이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다. 재윤이, 민식이, 해인이, 한음이, 하준이, 태호와 유찬이. 먼저 보낸 자식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조차 고통일 테지만 부모들은 조금 더 나아진 세상을 만들고자 기운을 냈다.2010년 백혈병 치료 중 의료진 실수로 항암제가 교차 투여돼 9세 아동이 목숨을 잃었고, 2017년 12월 한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오염된 주사로 신생아가 숨을 거뒀다. 지난 2017년 11월 김재윤(당시 6세) 군은 고열로 입원한 상태에서 무리한 골수검사를 받던 중 숨지고 말았다. 의료진의 과다 약물 투여와 관리 의무 소홀 문제가 논란이 됐고, 앞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중대 의료사고 발생 시 보고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재윤이법'이 지난해 2월 발의됐다.2016년 4월 6일 광주 한 통학 차량 안에서 세상을 떠난 박한음(8) 군의 이름을 딴 '한음이법'은 통학 차량 내 CCTV를 설치하고, 영상정보를 일정 기간 이상 보관하며, 통학 차량 운전자나 교사가 이를 확인토록 하고, 위반 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2016년 4월 14일 경기도 용인에서 경사로를 따라 내려온 어린이집 차량에 치인 뒤 응급 조치도 제대로 못 받고 이송 도중 숨을 거둔 이해인(5) 양의 이름을 딴 '해인이법'. 13세 미만 어린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응급의료기관에 옮겨 필요한 조치를 다 하도록 하고, 사고 방치 시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2017년 10월 1일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 주차장에서 주차 차량이 미끄러져 내려와 세상을 떠난 최하준(4) 군의 이름을 딴 하준이법은 경사진 주차 공간에 미끄럼 주의를 표시하고 미끄럼 방지시설을 설치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2019년 5월 15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인근 네거리를 지나던 한 축구 클럽 승합차가 과속 운전을 하다가 마주 오던 승합차와 충돌했고, 그 사고로 김태호·정유찬(7) 군이 목숨을 잃었다. '태호·유찬이법'은 어린이 통학 차량의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안전운행 기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등 조치를 담고 있다.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은 짧은 세상과의 만남을 뒤로한 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떠났고, 그들의 이름을 딴 법안들만이 남았다. 물론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과 숙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서로의 잇속 챙기기에 급급해 딴청만 피우는 정치 집단의 다툼 속에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 제대로 된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폐기되는 일만은 없기 바란다.

2019-12-17 23:29:54

13일 오후 3시 개의하려던 제372회 임시국회 제1차 본회의가 지연되고 있다. 연합뉴스

[세풍] 개, 돼지 취급 받지 않으려면

문재인 정권은 '10년 집권'을 꿈꾼다. 그러나 내년 총선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현실이 그렇다. 경제는 꼬꾸라졌고 대북정책은 파탄났다. 선거 공작과 인사 개입, 태양광 사업 등 각종 이권 개입 의혹이 자아내는 악취는 참으로 고약하다. 여론 조사는 이런 비정(秕政)과 동떨어진 결과를 내놓지만 그게 실상이 아님은 알 만한 사람은 안다.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지키려면 무슨 수든 써야 한다. 바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이다. 목적이 이렇게 불순하니 내용이 불순한 것은 당연하다. 선거법 개정안은 표심(票心)을 인위적으로 왜곡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공수처법은 정권의 비리를 꼭꼭 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개정안의 명분은 소수 정당의 사표(死票) 방지이지만 실제 목적은 '10년 집권'을 위한 범(汎)여권 연합전선의 구축이다. '개정안'은 전문가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내 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려 하지 말고 그냥 표만 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대한 알기 쉽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정당별 의석수를 미리 배분하고, 거기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의석수의 절반(이른바 50% 연동)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우선 배분하며, 나머지 절반은 현행대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이는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당득표율로 배정된 의석수보다 지역구 당선자를 더 많이 낸 정당은 '연동'으로 받는 비례대표 의석이 '0', 즉 이 정당의 정당 득표가 대거 사표가 된다는 것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얻은 지지율보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이런 운명을 맞을 수 있다.사표를 막는다면서 더 많은 사표를 구조화하는 모순의 극치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를 지역구 당선자에게까지 확대하려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코미디가 생기는 것이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비판 그대로다. "전 세계 역사상 듣도 보도 못한, 전무후무하게 희한하고, 두고두고 선거법 개악 사례로 소개되어 대한민국이 웃음거리가 될 선거법 개정안이다."개정안대로면 민주당은 의석수가 줄어든다. 이런 '자해'를 하는 이유는 의석수 증가라는 미끼로 군소정당을 꼬드겨 장기집권을 위한 '2중대'로 세운다는 계산에서다. 그런데 민주당이 뒤늦게 '본전 생각'이 났는지 "비례대표 의석수 전체를 줄이자" "연동을 적용하는 비례대표 의석수도 줄이자"고 나섰다. 그렇게 하면 군소정당 의석수는 기대치보다 적어진다.군소정당이 이에 반발하면서 '4+1 협의'로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하려던 민주당의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군소정당에 떡고물을 줘 선거법 처리에 나설 것이다. '10년 집권'을 위한 또 하나의 기둥인 공수처법 통과를 위해서는 이들과 '야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군소정당을 어떻게 달래든 선거 민주주의의 제도적 파괴이다. 이를 그냥 보고만 있으면 국민은 정말로 개, 돼지가 된다. 어떻게 해야 하나? 1919년 독일군부의 실세로 왕정주의자인 루덴도르프와 정치학자 막스 베버의 대담은 그 대답이 될 듯하다."인민은 그들이 신뢰하는 지도자를 선출한다. 그다음 그 지도자는 말한다, '지금 당신들은 아무 소리 말고 복종하라. 인민과 정당들이 지도자와 상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베버) "그런 민주주의는 상당히 매력적이다."(루덴도르프) "그런 다음에 인민은 심판할 수 있다. 만약 지도자가 잘못한다면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베버)

2019-12-17 06:30:00

[관풍루] '블랙 아이스'로 차량 50대 추돌 7명 사망사고 난 상주영천고속도 관리 두고 이용자들 비난 빗발.

○…'블랙 아이스'로 차량 50대 추돌 7명 사망사고 난 상주영천고속도 관리 두고 이용자들 비난 빗발. 당장 책임 묻고, 고치지 않으면 또 다른 사고 막기 어렵다는 아우성.○…교수들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로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 '공명지조' 선정. 한 나라 국민이면서 둘로 갈려 다투는 민심을 딱 꼬집은 촌철살인.○…문대통령, "40대 고용부진 계속되는 것은 매우 아프다"며 '40대 고용 특별대책 마련하라' 지시. 한마디 말만으로 안 아플 수 있다면 세상에 아픈 사람 어디 있을까.

2019-12-1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정치 세습

16세기 이후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국의 와해로 '귀족 공화국'이 멸망할 때까지 유럽에서 귀족이 가장 많은 나라는 폴란드였다. 귀족이 전체 인구의 10%를 넘었다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중세 유럽의 귀족 비율은 프랑스가 약 1%, 스웨덴 약 0.5%, 독일이 약 0.01% 정도였다. 18세기 유럽 전체 인구에서 귀족 비중이 약 1.5~2.3%인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특히 귀족으로 구성된 폴란드 의회 '세임'(sejm)은 모든 권력을 쥐고 행사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선거를 통해 국왕을 뽑고 외국인을 왕좌에 앉힐 정도로 귀족이 전권을 휘둘렀다. 폴란드 귀족은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의 왕족을 폴란드 국왕으로 뽑아 '허수아비 군주'로 만들고 권력을 독점했다. 이런 구조는 '로마 황제 43%는 세습 황제가 아니라 갑자기 권좌에 오른 인물'이었다는 점과도 맥이 닿는다.현대 일본의 정치 구조도 폴란드와 닮았다. 패전 이후 일본은 화족(華族) 제도를 폐지했지만 '정치 귀족'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역구를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총리에서부터 장관, 각 정당 요직 인사 상당수가 '세습 정치인'이다. 자민당뿐 아니라 군소정당에도 세습 정치인이 많다. '파벌'과 '세습'이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2017년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 전체 의원 정수 465명 중 26%인 120명이 세습의원으로 나타났다. 열에 셋이 '금수저 정치인'인 셈인데 증조부-조부-아버지-아들 등 몇 대에 걸쳐 권력을 대물림하는 사례도 있다. 영국 하원의 세습의원이 10%가량인 점과 비교해도 일본 사례는 특이한데 지명도와 조직, 자금을 모두 물려받아 애초 '흙수저'와는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판적 여론이 높다.요즘 문희상 국회의장의 '지역구 부자 세습' 문제가 관심사다. 서점을 운영 중인 문석균 씨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정부갑 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으로 내년 총선을 준비 중이다. '아들 공천' 비판과 경선 과정을 넘어 당선된다면 현역 의원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지역구를 바로 물려받는 사례가 된다. 여당 내에서도 '부적절한 대물림'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고 보면 요즘 여당이 국민 눈치조차 보지 않고 막간다는 생각이 든다.

2019-12-16 19:52:17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홀씨 가족

'구개열 파열 수술 총 70명, 어린이들 발 내반증 외반증 총 10명, 피부 이식, 의족 및 특별한 수술 총 5명, 발목 절단 총 5명 수술, 의족·수족 해드릴 수 있었기에 감사드립니다.'서아프리카 '상아 해안'으로 알려진, 옛 프랑스 식민지 코트디부아르(영어로 아이보리 코스트)에서 활동 중인 박달분 프란체스카 수녀에게서 온 글이다. 안동이 본부인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소속으로 파견된 박 수녀의 사연은 최근 나온 수녀회 해외 선교 소식지 '홀씨 되어'의 2019년 겨울호에 실려 알려졌다.복음 전파와 함께 의료 지원 활동을 펴는 그의 글은 올 1, 2월 현지 자원봉사에 나선 이춘자 아녜스 수녀 등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이 수녀가 봉사하며 겪은, 가난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힘든 아이, 젊은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려 그들의 후원에 나선 많은 사람의 정성을 모아 보낸 성금으로 두루 혜택을 입어서다.일흔 넘은 노구를 이끌고 자원 봉사에 나선 이 수녀의 용기도 예사롭지 않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사정에도 힘든 나라 밖 사람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성금을 모아 이 수녀의 도움 호소에 선뜻 응한 사람들, 특히 대구경북인의 마음은 돋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격려의 말 한 마디에서 몇만원, 몇백만원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마음이 모여 여러 가지 고통을 덜 수 있었으니 말이다.서아프리카 기니만의 평화롭던 고을 원주민과 상아, 향료, 곡물 등 풍부한 자원을 마구 약탈했던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의 하나였던 상아 해안. 그곳에서 옛 식민지의 아픔을 겪은 한국의 박 수녀 등 여러 성직자의 인류애적 헌신과 그들을 도와 우리 고유 정신인 홍익(弘益)의 가치를 널리 퍼뜨린 대구경북 후원자의 아름다운 마음은 반길 만하다.이런 대구경북인의 마음은 이 수녀의 '홀씨 가족을 위하여'라는 소식지 글이 대신하는 듯하다. '콩 반쪽 나누어 먹고/ 없는 집 제삿밥이라도 이웃에/ 돌리며/ 겨울 까치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두는/ 우리 조상들의 나눔은/ 예수님의 사랑 실천이었네.'세밑에 전해온 박 수녀의 소식과 먼 서아프리카 낯선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눈 모든 '은인'에게 보내는 이 수녀의 간절한 기도가 와 닿는 12월이다. '새해에는/ 은인들을 축복하소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소서.'

2019-12-16 06:30:00

[관풍루] 포항 생활폐기물 소각장 건설에 입 다문 오천읍 시의원 2명 첫 주민소환 투표 결과에 비상한 관심.

○…포항 생활폐기물 소각장 건설에 입 다문 오천읍 시의원 2명 첫 주민소환 투표 결과에 비상한 관심. 민심 외면한 대표에게 주민이 보여줄 뜨거운 맛은 과연 어떨지….○…미·중 무역전쟁 21개월만에 1단계 합의하면서 수출 부진에 허덕이던 한국도 안도의 한숨. 싸울 때 싸우더라도 도장 찍을 건 찍고, 점심도 먹어야 박수 받지?○…'일부 공무원 근거리 출장비 부풀려 받았다' 제보에 따라 대구시 부정 여비 전수 조사에 나서자 공직사회 좌불안석. 푼돈에 딴마음 먹으니 뒤통수가 땅기는 법.

2019-12-16 06:30:00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공천기준 물갈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체제에서 내년 총선의 최대 화두는 물갈이다.물갈이 대상은 3선 이상 중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황 대표를 주축으로 한 지도부는 불출마자를 포함해 현역 국회의원 50% 이상 물갈이를 공언하고 있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이 지난 12일 공천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운 주 대상도 청년과 신인이다.만 34세까지 청년 경선자 중 정치 신인에 50%, 비신인에 40% 가산점을 주고, 만 35~39세 청년 경선자의 경우 신인 40%, 비신인 30%의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또 만 40~44세 청년 경선자는 신인 30%, 비신인 20%의 가산점을 받는다. 한국당은 당헌당규에 만 45세 미만을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치 신인의 범위는 당내 경선을 포함해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는 모든 선거에 출마 경험이 없어야 한다.또 여성 정치 참여를 위해 만 59세 이하 여성 중 신인에게는 30%, 비신인에게는 10%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만 44세 이하 여성은 가산점 비율이 더 높은 청년 가산점을 적용받는다.결국 청년 신인 가산점을 최대 50%까지 부여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3선 이상 중진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청년과 신인을 다수 포진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한국당의 내년 총선 공천 방향을 보면 물갈이 자체가 곧 혁신인 것처럼 비친다.물갈이는 혁신의 좋은 명분이기는 하다.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나 정치 지망생들도 물갈이란 듣기 좋은 구호일 뿐 아니라 필요성도 절감한다.하지만 중진들을 대상으로 한 마구잡이식 '묻지마 물갈이'의 결과는 어떠한가. 특히 대구경북을 반추해 보자.국회 의정 활동의 키를 쥔 상임위원장 대다수는 3선 또는 그 이상의 중진이 맡는다.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핵심 보직 대다수도 초·재선은 자리를 차지하기는커녕 출마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다. 더욱이 지역구 현안 해결을 비롯해 지역 발전 전략을 위한 예산 확보나 정책 추진에서도 초·재선은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대구는 매번 총선 때마다 물갈이를 거듭한 끝에 현재 한국당 국회의원 8명 가운데 3선 이상 중진은 주호영 의원 1명뿐이다. 재선인 윤재옥·김상훈 의원을 제외한 5명이 모두 초선이다. 이 때문에 이번 20대 국회에서 대구에서는 대표나 원내대표에 어느 누구도 출사표를 던지지 못했다.최근 국회에서 처리된 2020년도 국가 예산을 살펴보면 대구의 국비 예산 증가율은 고작 1.9%로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꼴찌다. 16위를 기록한 전남의 증가율 5.6%와도 격차가 크다. 만년 꼴찌인 대구 1인당 국내총생산(GRDP)을 비롯해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구 경기의 허물도 지역 경제 환경과 함께 대구 정치인들의 책임과 전혀 무관하다고만 할 수 없다.초선이든 중진이든 물갈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맛이다. 하지만 단순히 선수(選數)를 기준으로 한 솎아내기식 물갈이는 곤란하다.일하지 않거나 지역 현안에 무관심하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으면 초선이든 중진이든 반드시 물갈이를 해야 한다.그동안 한국당의 물갈이는 이 같은 기준이 아니라 계파, 당과 공천권자에 대한 충성도, 공천 헌금 등이 주요 기준이 됐기에 공천을 받은 이들은 다시 계파나 공천권자에 매몰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과정으로 배지를 단 의원들이 지역 현안이나 유권자들에게 더 관심 가지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한국당이 정말 물갈이해야 할 대상은 중진이 아니라 바로 공천 기준이다.

2019-12-1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문제투성이 가장(家長)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말은 1945년 아서 클라크가 소설 '외계로부터의 전달'에서 처음 썼다. 지구를 하나의 마을로 규정했다. 국제 분쟁이나 환경·경제 등을 언급할 때 지구촌이란 용어를 쓰면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지구가 마을이라면 국가는 마을을 구성하는 가구(家口)로 볼 수 있다.'가구 대한민국'은 2년 7개월 전 새로운 가장(家長)을 뽑았다. 구성원들은 새 가장이 잘하리라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거둔 성적표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무엇보다 지구촌에서 우리 편을 들어주는 곳이 없다. 누구 말대로 우리 가장은 툭하면 '구타'당하는 신세다. 한때는 이웃집 '김 씨' 아저씨와 사이가 좋았지만 지금은 전보다 관계가 더 나빠졌다.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에다 주먹을 들어 위협하는데도 항의조차 못한다. '시 씨' '푸 씨' 식구들이 안마당을 헤집고 다녀도 꿀 먹은 벙어리다. 조상님 이름까지 들먹이며 '아 씨' 집안과 한바탕 붙었으나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다. 우리 편이던 '트 씨' 집안과는 사이가 벌어져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됐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진단에 식구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먹고사는 것도 최악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돈을 벌어와 식구들을 배불리 먹일 생각은 않고 창고에 있는 것을 퍼주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고 빚만 잔뜩 진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에 "동네가 다 어렵다" "조금 있으면 나아진다"고 둘러대기에 급급하다. 원전(原電) 기술을 가진 아들에게 집어치우라고 하면서 밖에 나가서는 우리 아들 원전 기술이 좋으니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한다. 불안한 일부 식구들은 금·달러를 사고 아예 가출(家出)까지 한다.제일 큰 잘못은 식구들을 둘로 쫙 갈라놓은 것이다. '국이' 같은 애들을 편애하고 자기편만 챙기니 식구들이 마음을 합치기 어렵다. 누가 맞는 소리를 해도 듣는 시늉만 할 뿐 고치지는 않는다. 부부가 왜 그렇게 자주 외국에 나가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똥 피하려다 지뢰 밟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남은 2년 5개월을 어떻게 버틸지 식구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2019-12-13 19:29:28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돌

오랜 세월 일편단심 돌을 그려온 작가가 있다. 맑은 물속에 잠긴 조약돌을 진짜 돌보다 더 돌같이 그린 화폭에는 작가의 고향인 영덕 바닷가의 숨결이 배어 있다. 그런데 돌이 품고 있는 세월의 결마저 드러내는 작가의 필치와 색조의 궁극은 무엇일까. 이른바 '석심'(石心)이란 명제의 그 가없는 조약돌 연작 속에 숨어 있는 화가의 내면 풍경은 어떤 것일까.그 해답은 그림 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비의 몸짓에서 찾을 수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있어 돌은 바야흐로 생명력을 얻는다. 나비를 맞고서야 돌은 작가의 그리움을 머금고 이상향으로 비상한다. 어느 날 바람처럼 황망히 사라진 나비였다. 차안(此岸)을 떠난 나비는 피안(彼岸)의 화폭에서 그렇게 날개를 편다. 그래서 '조약돌 화가' 남학호의 작품 '돌과 나비'는 불이(不二)의 세계관을 상징한다.'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옛말이 있듯이, 자고로 '돌'에 대한 우리 정서는 귀한 편은 아니었다. 삼천리 강산에 흔해 빠진 돌이 무슨 특별한 가치가 있었을까. 게다가 '돌'자가 접두어로 붙으면 그 의미가 더 악화되기 일쑤이다. '돌X가리' '돌상놈' '돌무식' 등이 그 사례들이다. '돌쇠' '삼돌이' 등 '돌'자가 들어가는 사람의 이름도 예로부터 신분이 낮은 하인들이었다.'돌'자는 한자로는 '乭'로 쓰는데 한국에서만 쓰는 희귀한 글자이다. '乭'자가 들어간 이름 또한 극히 드물어 구한말 영덕의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申乭石)과 오늘날의 프로바둑기사 이세돌(李世乭) 정도이다. 그런데 흔하면서도 특별한 돌이 등장했다. 이른바 '떡돌'이다. 포항에서 '떡돌'로 부르는 광물인 벤토나이트가 간암·대장염·헬리코박터·고혈압 신약 후보 물질의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이미 동물 실험을 통과해 상업화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벤토나이트는 메디컬 점토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의 대표적 광물로,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포항에 1천만t 이상 매장돼 있다. 간암 치료제를 비롯한 5종의 신약 후보 물질이 상용화된다면 10조원 이상의 세계적 신약 시장을 열게 되는 것이다. 동해안의 평범한 돌에 아픈 이들의 염원을 보듬은 나비가 앉아 석심대작(石心大作)을 이루는 것인가.

2019-12-13 06:30:00

[관풍루] 올 하반기 대구 경기 온통 빨간불, 생산·고용 등 대부분 지표 전국 평균치보다 훨씬 안 좋아.

○…올 하반기 대구 경기 온통 빨간불, 생산·고용 등 대부분 지표 전국 평균치보다 훨씬 안 좋아. 예산은 못 따고, 기업은 떠나보내며 설마 파란불 기대했을라고.○…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2003년 석사논문 표절 의혹 제기에 '당시는 연구 윤리 지침 정비 되기 전'이라 해명. 양심의 기준도 지침 정비 전과 후가 다른 모양.○…참여 변호사조차 불리하다해도 조국 전장관, 검찰 소환조사서 모든 질문에 묵비권 행사. 아내 정경심 교수에 대한 공소장 변경 불허한 법원을 너무 믿다 보니.

2019-12-13 06:30:00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청라언덕] 황교안과 심재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읍참마속'을 외치며 당직 쇄신을 단행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심재철 국회의원이 새로운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한 명은 당을 이끌고, 다른 한 명은 당내 의원들을 대표한다. 전통 있는 보수 정당의 명실상부한 두 명의 장수이다.두 사람의 스타일은 너무 다르다. 대여 투쟁, 그 가운데 '단식'을 예로 들자.황 대표는 평생 두 번의 단식을 했다. 최근 마친 8일간의 단식이 하나이고,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게 전부다. 황 대표는 고시 공부 장소를 지방의 한 기도원으로 잡았는데, 기도원 규율이 3일 금식 이후 정식 입소여서 할 수 없이 단식에 임했다. 금식 후 "머리가 너무 맑아졌다"는 게 추경호 국회의원의 전언이다.황 대표는 최근 '목숨을 건 단식'에 돌입했다. 8일을 꽉 채우고 정신을 잃기까지 했다. 고시 합격 후 평생 공안검사와 고위 공직자로 살던 그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인 셈이다.반면 심재철 원내대표는 전형적인 386 운동권 세대이다. 광주 출신인 그의 정치적 뿌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돼 지금도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린다고 한다.단식을 밥 먹듯 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그래서 심 원내대표에게 단식 투쟁은 더 이상 강공으로 보여질 리 없다. 소속 의원을 이끌고 대여 투쟁의 선봉에 서야 할 그의 투쟁 리더십 수위가 어디까지일지 벌써부터 대중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두 사람의 당 내 지지 세력도 극명하게 갈린다.황 대표는 두 번의 당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초·재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공천 혁신을 부르짖으며 중진 물갈이론에 앞장섰고 현역 의원 50% 공천 탈락이라는 수치까지 제시했다.당장 중진들이 불안했다. 불안 심리를 활용해 심 원내대표가 등장했다. 그는 '공천 대학살론' 대신 "여러 의원님들의 다음 총선 승리를 위해 힘을 합치겠다"며 의원들의 불안한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중진들이 대거 몰렸고, 원내대표 1차 경선에서 39표에 불과하던 그의 득표 수가 2차 결선에선 52표로 늘어났다.정치 경력 면에서도 심 원내대표는 5선으로 김무성 의원을 제외하면 당 내 최다선이고 황 대표는 배지를 한 번도 달아 본 적이 없다.황교안·심재철.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나온다.한편에선 두 사람의 전혀 다른 경력과 정치 스타일을 놓고 상보 관계로 보는 이들이 있다. 각자의 장점을 부각하면서 부족한 점은 서로 채워줄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분석이다. 중앙당과 원내 운영에 견제가 생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을 찾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반대로 각기 다른 스타일과 당 내 지지 세력 탓에 사사건건 부딪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특히 공천 문제에서 양보할 수 없는 혈전을 치른다면 당은 복잡한 내홍으로 빠져들게 된다.공천 문제는 중앙당 대표 권한이지만 심 원내대표는 이미 "공천에 개입해 황 대표에게 직언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월권 논란이나 항명으로 비칠 수도 있다. 황 대표 측의 강력 반발이 예상되지만 심 원내대표 입장에선 당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할 것이 뻔해 양측의 대립은 불가피해 보인다.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17일부터는 예비후보 등록이다. 공천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이 상호 보완 공생 관계로 발전할지, 분당까지 가는 시발점으로 악화할지의 문제는 의외로 빠른 시일 내에 드러날지 모른다.

2019-12-12 16:40:06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개로비(開路碑) 단상

'길을 내다!'대구경북과 경계하고 서로도 이웃인 경남의 밀양시와 창녕군에는 '길을 연' 사연을 기념한 비석이 하나씩 있다.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와 창녕군 부곡면 노리마을에 있는 이른바 '개로비'(開路碑)이다. 비에 적힌 이야기 주인공은 서로 다르지만 마을 주민들을 이롭게 한 길을 낸 사실은 같다.밀양시 청도면 구기리 개로비는 1961년 동네 주민 이택언(李宅彦)이 마을 진입도로 문제로 통행에 어려움이 있자 약 100평의 논을 기꺼이 내놓았고, 이후 1963년 세상을 뜨자 주민들이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1965년 돈을 모아 1967년 세운 비로 알려지고 있다. 뒷날 '새마을운동'처럼 마을을 위해 주민 스스로 땅을 기부하고 길도 냈음을 기린 셈이다.그러나 창녕군 부곡면 노리 개로비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개(犬)여서 흥미롭다. 옛날 부곡의 낙동강변 임해진과 동쪽의 노리 마을 사이에는 험한 산이 있어 사람이 다니기 힘들었다. 그런데 두 마을의 성(性)이 다른 개 두 마리가 오가며 정(情)을 나누자 어느덧 길이 나고 사람도 다녔다. 이에 개의 고마움에 비를 세워 개로비 또는 개비(犬碑)라 불렀다.이런 개로비 가운데 밀양 청도 사연엔 아쉬움도 든다. 특히 1969년 8월 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 마을 자활(自活) 경험담 청취를 계기로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는 청도군 주장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현 밀양시 청도면이 원래 청도군 외서면이었으나 1914년 일제가 밀양군 청도면으로 강제 개편했으니 말이다.일제는 당시 청도군 외서면의 관할을 바꾸며 명칭에 '청도' 지명을 살려 두었다. 하지만 밀양군 관할이 아닌 청도군 땅이었으면 이택언의 마을길 조성을 위한 땅 희사는 신도리 마을사람의 자활 노력처럼 새마을운동의 전조 사례가 될 만했고, 그랬으면 청도를 새마을운동 발상지로 삼는 자긍심은 더 컸을 터였다.마침 청도군이 지난 4일 2019년 경북도 새마을운동 시·군종합평가에서 대상 성주군과 함께 최우수상을 받았다. 현 정부의 홀대 속에 새마을운동의 동력을 살리려는 경북도와 두 군의 활동이 반갑다. 특히 청도 개로비를 살핀 박순문 밀양문화원 부원장(변호사)이 청도 개로비 사연의 문헌 기록 뜻을 밝혀 경남북의 '청도'로선 다행스럽다.

2019-12-12 06:30:00

[관풍루] 세수 부진 속 정부 재정 확대 정책으로 올 1~10월 관리재정수지 45조5천억원 적자

○…"청와대 전·현직 참모진 소유 부동산 재산 최근 3년 새 평균 3억2천만원씩 뛰었다." 문재인 대통령,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 장담하더니 그런 뜻일 줄이야.○…세수 부진 속 정부 재정 확대 정책으로 올 1~10월 관리재정수지 45조5천억원 적자. 빚은 지금 내도 갚는 것은 후세대 일이니 내 알 바 아니라는 고약한 심보의 산물.○…장관 사퇴 후 팩스로 복직 신청해 서울대 교수직 회복했던 조국, 2020년 1학기 서울대 로스쿨에 강의 개설 신청. 검찰엔 침묵해도 학생들에게 할 말은 많다(?).

2019-12-12 06:30:00

모현철 정치부장

[데스크칼럼] TK 물갈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인적 쇄신 바람이 대구경북(TK)을 강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물갈이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TK 한국당 의원들은 '물갈이 소용돌이'에 포함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지역구 의원 30%를 공천 배제(컷오프)하는 것을 포함해 현역 의원 50%를 물갈이한다고 밝힌 상태다. 현재의 한국당 TK 현역 의원 수에 단순 대입하면 전체 19명 중 최소한 6명은 컷오프로 탈락하고 10명은 공천에서 물갈이된다는 계산이 나온다.지역 정치권에서는 3선 이상, 고령자, 탈당 전력, 지난 지방선거 성적 등을 반영한 구체적인 물갈이 대상 의원 실명이 거론되는 '살생부'도 나돈다. TK 친박 의원들이 불출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병준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20대 공천 파동의 수혜를 입은 TK 의원들은 차기 총선 불출마에 앞장서라"며 TK 친박 의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하지만 TK 한국당 현역 의원들은 인적 쇄신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3선의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김병준 전 위원장이 TK 출마 의사를 접는 등 한국당 인사들이 인적 쇄신에 동참하고 있지만 TK 의원들 가운데 내년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힌 인사는 한 명도 없다. 세대 교체 요구에 대해 TK 의원들이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매일신문이 한국당 TK 의원들을 대상으로 인적 쇄신과 관련해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한 결과, TK 의원 전원이 총선 재도전 의사를 나타냈다. 이들은 총선 재도전과 관련해 지역구 발전을 이유로 꼽았으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지역 현안에 "본인이 없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인적 쇄신 요구에 귀를 닫았다.인적 쇄신에 대해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현역 의원들은 선거 때마다 TK에서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져 정치적 위상이 위축됐고 예산과 인사 등에서는 홀대를 받았다면서 반대한다. 반면 정치 신인들과 지역민들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면서 물갈이에 찬성한다. 정치 신인들이 도전하려고 해도 인지도에서 현역 의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지역의 많은 정치 신인들이 한국당에 "제발 경선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21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이 다가오고 있다. 출마 예정자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면서 본격적으로 총선 국면이 시작된다.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동물국회' 등 온갖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 정치권이 지역민에게 속죄하는 방법은 지역을 잘 알고 전문성이 있는 정치 신인들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는 것이다.한국당의 텃밭이라는 TK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의 공천 물갈이가 단순히 숫자 늘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20대 총선 당시 TK에서 물갈이가 상당수 이뤄졌지만 지역민들이 원하는 정치 발전은 요원한 상황이다.한국당은 공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진박 공천' '옥새 파동'으로 참패한 탓이다. 한국당이 이번 공천에서도 기득권을 챙기고 계파에 매몰된다면 정치 혐오에 빠진 지역민들로부터 또다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역민들은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정치 신인들이 드물다고 우려한다. 한국당이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을 통해 능력 있고 참신한 젊은 정치 신인을 발굴하기를 기대해본다.

2019-12-11 17:42:54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전전반측

해마다 연말연시에는 한 해를 되돌아보거나 새해 소망을 글자로 풀어보는 이벤트가 빠지지 않는다. 지난해 연말 교수신문은 2018년 사자성어로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선정해 우리 사회 분위기나 정치·경제·안보 등 각 분야의 흐름을 읽어내는데 도움을 주었다.올해 연초 신문 지면을 장식한 한자 성어 '마고소양'(麻姑搔痒)도 마찬가지다. 마고소양은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의미로 직장인과 구직자, 자영업자 등 보통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렸다.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로 접어들자 매체마다 예외없이 '올해의 사자성어'에 대한 설문이 줄을 잇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성인 968명에게 물었더니 '올해의 사자성어'로 가장 많이 손꼽은 것은 '전전반측'(輾轉反側)이었다.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으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근심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현대인의 심경을 잘 대변하는 말이다.'많은 노력에도 이룬 것이 별로 없다'는 '노이무공'(勞而無功)과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는 뜻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꼽은 이도 많았다. 선택 순위가 높은 이 한자 성어들을 살펴볼 때 2019년 한 해에 대한 평가가 대체적으로 긍정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년간 나름으로 노력하고 애를 쓴 만큼 결실이 따르지 않았거나 의지할 데 없이 홀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처지임을 말해준다.특히 전전반측은 중국 고전 시경(詩經)에 실린 시 '관저'(關雎-물수리가 울다)의 한 구절이다. '구하여도 찾지 못해(求之不得) 자나깨나 생각하네(寤寐思服)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悠哉悠哉) 잠 못들고 뒤척이네(輾轉反側)'에서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여인을 생각하며 잠을 설치는 상황을 표현했지만 근심 때문에 속을 태우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내년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쥐의 이미지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새 각오를 다지게 마련이다. 우리 삶의 여건이 갑자기 확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나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한 해를 착실히 준비한다면 내년 이맘때는 보다 긍정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성어가 뽑히지 않을까 싶다.

2019-12-11 06:30:00

[관풍루] 추위 누그러지면 어김없이 미세먼지 찾아오는 '삼한사미'현상 올해도 반복.

○…추위 누그러지면 어김없이 미세먼지 찾아오는 '삼한사미'현상 올해도 반복. 어쩌다가 삼천리 금수강산이 미세먼지 떨치기 위해 추운 날씨만 기다려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됐나.○…트럼프, '적대적 행동하면 모든 것 잃을 것'이란 지적에 북, '우리는 잃을 것 없다' 맞받아. 모든 것 잃을까 겁나도 잃을 것 없다고 큰소리쳐야 살아남는 벼랑 끝 전술.○…지난 10년간 OECD 청년실업자 14% 줄어들 때 한국은 되레 28% 늘며 실업률 순위 11위서 22위로. 소득주도성장 내세우다 소득없는 빈곤만 불렀네.

2019-12-1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인문학과 왜관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강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 강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무상 속의 영원을 보여준다'. 구상 시인은 왜관 낙동강변 관수재(觀水齋)에서 '강' 연작시를 썼다. 시인에게 강은 삶과 문학을 일깨운 회심(回心)의 터전이었다. 구도의 방편이자 사랑의 궁극이었다.1970, 80년대 왜관의 어느 이름난 음식점에 욕쟁이 할머니가 있었다. 식당 골목에 들어서면 사회적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할머니의 걸쭉한 육담부터 한 사발 얻어먹어야 했다. 할머니도 낙동강변에서 자란 그저 순박한 소녀였다. 전쟁의 격랑과 삶의 굴곡이 소녀를 억센 여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할머니의 욕은 여울져 흐르는 강물처럼, 농익은 판소리의 사설처럼 정감나는 넋두리이기도 했다.왜관(倭館)은 그런 곳이다. 낙동강 물류 수송의 길목인 나루터가 있었고, 통상·교역을 위한 왜인들의 거주 공간이 있었다.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왜관역이 생기면서 왜관이란 지명이 확정되었다. 군청이 옮겨오면서 명실공히 칠곡의 중심지가 되었다. 왜관철교의 내력에는 낙동강 방어선의 참혹한 상흔이 배어 있다. 가실성당과 베네딕도 수도원에는 사랑과 평화를 희구하는 염원이 스며 있다.매원마을은 유교적 이상향을 꿈꾸던 선비들의 세거지였다. 왜관 낙동강변에는 전쟁의 비극을 되돌아보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호국평화기념관이 있고, 해마다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이 열린다. 칠곡군이 문화교육 선도도시 부문에서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대상'을 7년 연속 수상했다. '인문학도시 칠곡'의 입지와 명성을 재확인한 것이다.평생학습대학을 운영하고 평생학습인문학축제를 열며, 글 모르던 할머니들이 시집을 내고 '칠곡 가시나들'이란 영화까지 만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일은 인문학마을사업이 골골마다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도시 칠곡'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또 한 해의 석양이 드리워진 낙동강은 말한다. 그것은 왜관 사람들의 곡진한 애환을 품고 숱한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강의 노래'라고….

2019-12-10 06:30:00

[관풍루] 북 올 들어 발사체 도발 12차례 하도록 성주 사드 기지 최종 배치 위한 환경영향 평가 시작도 않아.

○…신체검사서 4급 보충역 판정 받았지만 자리 없어 대기하다 병역면제 처분 받은 자원이 올 들어서만 1만1천457명. 병역 자원 모자라 모병제 검토한다더니 모두 엄살이었나.○…북 올 들어 발사체 도발 12차례 하도록 성주 사드 기지 최종 배치 위한 환경영향 평가 시작도 않아. 창은 갈고 또 가는데 막을 방패는 녹이 슬도록 기다리는 이유는.○…올해 470조원 슈퍼예산 편성해 상반기 집중 집행 했음에도 경제성장률 2% 밑돌 우려. 그렇다면 내년 513조원 초슈퍼 예산 편성해 경제 살리자는 소리는 또 뭐임.

2019-12-10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대구에 돌고 도는 '착한 돈'

돈은 돌고 돈다. 몸의 피처럼. 피가 돌아야 하듯이 돈도 금고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돌아야 제 역할을 하리라. 그렇게 돌고 도는 돈 가운데 보수 도시라는 소문의 대구의 돈, 특히 이웃을 돕고 나눔을 위한 대구의 '착한 돈'은 더욱 빛이 난다면 믿을까. 그러나 사실이다. 지난날을 살피면 수긍하리라.먼저 1907년 대구에서 불붙은 국채보상운동이다. 우리가 나랏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처음 깨달았을 때다. 나라 관리와 권력자가 집안 장롱에 부정한 엽전을 재고 있을 당시, 대구 사람은 담배를 끊고 아낀 푼돈을, 부녀자는 비녀와 반지 등 패물에 이르기까지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내놓았고, 이는 전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사상 처음, 당시 1천700만 추정 인구의 1.8%인 31만7천여 명(추정)이 동참한 자발적 거국 모금운동은 이렇게 이뤄졌다. 1907년 1~7월까지 나랏빚(1천300만원)의 1.5%인 20만원(학계)이 모였다. 대구경북은 3만1천520명이 1만7천445원을 모았으니 대구경북인 165만7천여 명(1911년 기준)의 2%가 참여해 모금액의 8.7%(목표 1천300만원의 0.1%)를 채웠다.이런 흐름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운동으로 재연됐다. 4천700만 국민의 7.5%인 351만 명이 나랏빚 1천200억달러의 1.8%인 22억달러 상당의 금 227.5t을 모아 제2국채보상운동으로도 조명됐다. 특히 국채보상운동 전파지 대구에서는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라는 민·관 기구를 통한 자발적 범시민적 나눔운동도 일어났다.무엇보다 이런 나눔운동은 이웃돕기 기부로 번졌다. 매일신문에서 2002년 11월 19일부터 매주 1회, 올 10월 8일까지 16년11개월 853회 연재한 '이웃사랑' 모금이 한국기록원의 신기록 인증을 받은 사례가 그렇다. 성금은 111억5천373만5천384원으로, 매주 130여 명 총 11만4천400명이 기부했으니 대구시민 244만 명의 5%에 가깝다.더 있다. 1998년 발족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성금 모금이다. 26년째 전국 꼴찌 수준의 대구 경제지표(1인당 국내총생산)와 달리 해마다 연말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모금회 이웃사랑 성금 접수는 목표 100℃를 초과하기 일쑤였고, 1억원 넘는 기부자도 현재 144호로 서울(277호), 경기(216호), 부산(177호) 다음에 이를 만큼 많다.아울러 대구에는 다른 곳과 달리 얼굴 없는 '키다리 아저씨'와 '키다리 아줌마'도 기부 행렬을 채우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8차례 걸쳐 매번 1억2천만원을 전한 아저씨와 2013년 1월부터 매월 10만~44만원까지 한 차례도 빠짐 없이 성금을 모금회에 보낸 청소 아주머니가 자랑스러운 주인공이지만 지금까지도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다.이렇게 돌고 도는 대구 돈은 대구의 공동체를 구르게 하는 대구만의 소중한 동력이 될 만하다. 이런 기부 문화에 새로운 사례도 생겼다. 7일 달성 서씨 대종회가 35억원에 이르는 600년 역사의 대구 중구 동산동 한옥마을 내 옛 구암서원 터를 대구시민에 내놓은 일이다. 세종 때 현 달성공원을 국가에 바치고 대구 사람의 세금 감면을 바란 옛 조상 서침(徐沈)의 뜻을 이은 후손다운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혼란스럽고 힘든 경제 사정 속에 다시 맞은 12월, 세밑이다. 거리 여기저기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고, 공동모금 활동도 이미 시작됐다. 날씨만큼 움츠린 마음이겠지만 늘 그랬듯, 대구의 '선(善)한 돈'은 돌고 돌아 대구의 올겨울도 지낼 만한 따뜻한 곳으로 이끄는 마력을 보이리라 믿는다. 부정적인 평가의 보수 도시 대구에서 돌고 도는 착한 돈은 죄가 없으리라.

2019-12-09 19:11:31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좌파의 '검찰 트라우마'

트라우마(trauma)는 상처라는 뜻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에서 유래했다. 과거 경험했던 위기,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일컫는다. 트라우마는 개인적으로 존재하고 드러나는 게 일반적이지만 집단 차원에서 잠재하고 표출되는 경우도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은 좌파 진영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논두렁 시계'와 같은 피의사실 공표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이 뇌리에 박혀 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앞서 "정권(政權)과 검권(檢權)과 언권(言權)에 서거 당한 대통령의 영결식"이라고 했다. '검찰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울산시장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유재수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칼끝이 청와대를 정조준하자 집권세력의 검찰 트라우마가 또다시 밖으로 드러났다. '조국 사태' 때보다 이번엔 증상이 더 심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공정수사 촉구 특위'까지 만들어 검찰 수사를 성토하고 특별검사 도입을 들고나왔다. 청와대는 검찰에 공개 경고를 날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 다음 날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사실상 검찰에 선전포고를 했다.급기야 민주당 한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악마의 손'에 비유했다. 그는 "윤석열이 마치 악마의 손 같다. 이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가늠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 7월 하순 문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면서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불렀던 검찰총장이 넉 달여 만에 좌파로부터 악마로 낙인 찍힌 것이다.일이 터지면 '남 탓'으로 돌리는 게 문재인 정권의 장기(長技)인데 이번에도 검찰, 야당, 언론 탓을 하고 있다. 이렇게 남 탓만 하는 정권을 국민은 보지 못했다. 자신들이 검찰 수사를 자초(自招)하고서도 잘못에 대한 반성·사과는커녕 검찰, 야당, 언론 때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트라우마의 일반 증상은 과민하게 경계하고 집중해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검찰을 공격하고 우왕좌왕하는 정권의 모습이 딱 그렇다. 드러나는 팩트들이 메가톤급이어서 좌파의 검찰 트라우마 증상은 더 심해질 것 같다.

2019-12-09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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