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컬럼

 
김수용 편집국 부국장

[시각과 전망] 분노 범죄가 잇따르는 사회

물건을 사다가 매장 직원과 사소한 시비가 붙어 욕설이 오가는 말다툼으로 이어지고 멱살잡이까지 벌어질 수 있다. 수년간 만남을 이어오던 연인과 헤어질 수도 있고, 아이까지 낳고 잘살던 부부가 이혼할 수도 있다. 문제의식 없이 부하 직원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거나 함부로 대하는 등 이른바 '갑질'을 저지르기도 한다.그렇다고 해서 다퉜던 매장 직원이, 한때의 연인이,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배우자가, 한솥밥을 먹었던 부하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해 흉기를 들고 찾아오는 일은 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상황일 뿐, 현실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엽기적인 영화 소재가 일상다반사처럼 벌어지고 있다.서울 구로구 한 모텔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장대호(39)는 투숙객(32)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장대호가 경찰 조사에서 밝힌 살해 동기는 섬뜩하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상대가 '모텔비 얼마야?', '사장 어디 있어?' 같은 반말을 했다.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어 모멸감을 느꼈다." 살해 이유가 모멸감이다. 범행 당일 장대호는 마스터 키로 피해자 방을 열고 들어가 살해했다. 사흘간 시신을 방 안에 방치했다가 새벽에 시신을 토막낸 뒤 한강으로 가서 유기했다.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에선 PC방 아르바이트생이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숨진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 김성수는 "자리를 치워달라고 했는데 화장실을 갔다온 사이에도 안 치워져 있어서 화가 났고, 1천원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해 '나만 바보가 됐구나'라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5월 경기 안산 대부도에서 훼손된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 조성호는 "열 살 어리다는 이유로 자주 청소를 시키고, 무시했다"며 함께 살던 선배를 살해한 동기를 밝혔다.사람들은 때론 분노하고 때론 모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일로 분노를 분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극히 드물다는 표현이 무색할 지경이 됐다.전문가들은 가해자들이 마음속 화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것이 범죄를 촉발시켰다고 진단했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습관 및 충동장애)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가 지난 2013년 4천934명에서 2017년 5천986명으로, 4년 만에 20% 넘게 증가했다.인터넷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고민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던 장대호는 괴롭힘을 당한다는 학생의 고민에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괴롭힘을 당하겠다는 계약'이라며 '먼저 때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유일하다'고 답했다.지독한 경쟁 속에서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고, 그래서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그 속에 웅크려 살고 있는데, 그곳마저 침범당하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응징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들이 장대호의 분노 서린 해결책을 보며 '공감'을 누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제2의 장대호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2014년 345명, 2015년 344명, 2016년 373명, 2017년 357명에 달했다. 하루 한 건꼴이다. 경쟁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난 부작용쯤으로 여겨야 할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지만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2019-08-27 21:30:00

홍준헌 사회부 기자

[취재현장]산업재해 책임은 사업주 몫

'꿈과 사랑, 축제의 나라' 이월드에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20대 대구 청년 A씨가 한순간 실수로 평생을 돌이키지 못할 사고를 당했다. 그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상황이다.사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신체 부자유자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이 여전히 높은 탓이다. 일자리를 찾는 것도, 결혼 상대를 만나기도 어렵다. 내면은 달라진 것 없는 '나'를 장애 하나만으로 '비정상인' 취급하는 타인의 따가운 눈초리를 쉴 새 없이 견뎌야 한다.그래서였을까. 사고 소식이 알려진 이후 많은 시민들, 특히 20·30대 또래들은 "이월드가 그를 고용해 장래를 책임져 줬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댓글을 달고 또 달았다. A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는 사연까지 알려지면서 안타까움도 더했다.법조계, 노동계는 '이번 사고는 산업재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르바이트 직원이 관행에 따르다 난 사고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근로 현장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고용주의 책임이자 의무다.매일신문은 이번 사고를 둘러싼 자극적인 가십보다는 사고 원인에 대한 구조적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면서, 이월드가 지금껏 안전보장의 '책임'을 저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밝혀냈다. 이월드는 각 놀이기구 조작 현장에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1명씩 만을 뒀다. 그마저도 퇴직금 지출을 아끼려 이들이 업무에 익숙해지기도 전인 11개월마다 계약을 마치는 쪼개기 편법까지 동원했다.설치 20년이 넘은 노후 놀이기구를 운영하면서 '동네 놀이동산'에도 못 미쳐 보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두고 운영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심지어 안전 전문 직원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생들끼리 후임자에게 놀이기구 작동 및 안전교육을 한 정황까지 확인됐다.경찰은 A씨가 롤러코스터 탑승 관행을 배운 경로, 사고 당시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목적을 조사 중이다. 이는 사고 발생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경찰 수사의 초점은 그보다도 근로자 수백 명을 고용하는 기업 이월드가 지금껏 왜 근로현장 위험을 방치했는지, 경영에 무심했거나 무능했던 탓에 관행의 존재를 몰랐던 것인지 등을 밝히는 데 맞춰져 있다. 사측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상 등의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는 것이다.스스로 치부를 알았던지 한동안 자신의 민낯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이월드도 뒤늦게 부실한 근로여건 개선에 나서는 한편, A씨 치료와 재활을 전적으로 돕고 수사에도 숨김없이 응하겠다고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사업주로서 책임과 과실을 인정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안타깝게도 국내 대다수 산업재해 사고에선 기업이 피해 근로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산재 인정은 곧 사업주 위법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탓에 숱한 피해 근로자와 가족은 '자기 과실'이라는 오명을 쓰고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평생을 자책과 고통 속에 살곤 한다.그래서 "이월드가 A씨를 고용해 장래를 책임져 달라"는 시민들의 댓글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입사 5개월 차 A씨는 그것이 위험한 줄도 모른 채 관행을 따랐다. 부디 한순간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고난에 처한 20대에게 '본인이 자초한 실수'라며 비난의 화살을 던지지 말았으면 한다.

2019-08-27 14:01:07

[관풍루] 북, 신형 발사체 쏘아대며 도발하는데 한미일 정상은 제각각 딴소리하며 동맹에 파열음

○…북, 신형 발사체 쏘아대며 도발하는데 한미일 정상은 제각각 딴소리하며 동맹에 파열음.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는 트럼프 말이 섬뜩한 이유.○…소설가 이외수, "이명박·박근혜 시절에 비하면 조족지혈도 못 되는 사건"이라며 온갖 의혹 휩싸인 조국 두둔. 국민들 눈엔 그때 그 사건이 지금에 비해 조족지혈.○…한일 경제 전쟁 와중에 일본 보란 듯 이지스함·특전사 투입해 사상 최대 규모 독도 영토수호 훈련.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책'이란 사실 잊어서야.

2019-08-2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역사의 수레바퀴

70년 전이다. 1949년 38선에서는 남북 군대 사이에 모두 847차례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 남쪽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北進統一)을 외쳤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조선노동당위원장이 맞불 구호를 내세웠다. '조국완정'(祖國完整)이다. 즉 조국해방(祖國解放)과 국토완정(國土完整)을 뜻하는 구호다. 이렇게 두 남북 정상은 통일과 완정을 향해 마주 달렸다. 이어 1950년 북한의 6·25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터졌고 3년을 끌었다.그리고 1953년 7·27 정전으로 다시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은 갈렸다. 이후 남북은 경제, 군사, 대규모 국제행사(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과 1989년 평양 세계청년축전)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선(善)순환의 생산적 경쟁 또는 악(惡)순환의 소모적 경쟁을 벌이곤 했다. 또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역사적인 세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은 물론, 올해는 남북 분단의 현장에서 남북미 세 정상의 만남까지도 이뤄졌다.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역대 정부와는 특징적인 변화와 일이 숱하게 일어났다. 과거 보수 정권은 물론,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도 다른 차별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나라 안도 그렇지만 우리를 둘러싼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종전과는 사뭇 차이나는 흐름이 분명하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미국과 일본, 그 맞은편의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도 마찬가지다. 마치 큰일에 흔히 따른다는 일종의 조짐(兆朕)처럼 말이다.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고 빚어진 갈등과 불편한 관계, 특히 한국과 일본 간 경제 전쟁 등 깊어진 아베 총리와의 외교적 갈등,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과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두 강국에 의한 우리 영공 휘젓기 같은 침범, 북한을 에워싸고 뭉친 이들 북중러 공산사회주의 삼각 동맹 국가와의 긴장 관계가 그런 사례다. 하나같이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고 심상찮은 분위기나 다름없다. 문 정부 출범 2년을 지나면서 맞이한 국제 현실이다.그런데 걱정은 역사의 수레바퀴다. 이 바퀴는 나라 지도자나 국민의 의도나 바라는 대로 구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를 살피면 그런 일은 많다. 특히 우리 역사 수레바퀴는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는 쪽으로 구른 굴곡의 궤적을 여럿 남겼다. 굴곡진 역사에서는 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고통에 시달리는 백성이다. 다른 공통점은 지도자나 집권 세력, 그 주변에 맴돌던 부류는 뒷날을 누린 사실이다.지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심상찮은 여러 변화는 위기 또는 기회의 조짐일 수 있다. 이는 문 정부와 우리 국민의 몫이자 그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나라 안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로, 한일 경제 전쟁으로 모처럼 뭉쳤던 정치권과 민심이 또다시 갈라지고 있다. 나라 밖은 이런 국내 꼴을 이용, 자국 이익을 챙기려는 움직임에 바쁘다. 연일 포(砲) 발사 도발에 나선 북한 움직임도 그러니 한국은 마냥 먹잇감이니 걱정이다.뭇 변화를 기회의 조짐으로 물꼬를 트는 일은 아무래도 안에서 먼저 찾아야 할 듯하다. 정부와 정치권에만 맡기기보다 국민의 몫이다. 국민이 할 일은 정치권 편 가르기에 멋대로 휘둘리지 않는 자세이다. 진영 논리에 빠져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어리석음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 청문회, 정치, 반일(反日)운동 등 뭐든 상식적 잣대로 행동해 나라 안팎의 변화를 기회의 조짐으로 돌려 역사의 수레바퀴를 제대로 굴려보자. 국민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 굴린, 민주화 시위와 촛불 민심도 우린 봤지 않았던가.

2019-08-2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장닭 없이 굵은 놈'

지금도 그런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으나 과거 경북 북부지방에는 '장닭(수탉) 없이 굵은 놈'이란 말이 있었다. '아버지 없이 자라 예의범절을 모르고 언행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비하(卑下)하는 말이다.기자의 선친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성장기에 타인의 무례한 말이나 행동에 화를 내면 그런 소릴 들었고, 사회 상규(常規)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해도 상대방이 음해할 목적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게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기자의 선친은 "장닭 없이 굵은 놈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했다"고 했다.아버지 없이 자란 사람 중에는 '장닭 없이 굵은 놈'이란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인간 승리'를 일군 사람도 숱하다. 바로 공자(孔子)가 그렇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粱紇)은 자식 복이 없었다. 60세가 넘도록 본처에게서 딸만 9명을 얻었고, 첩이 낳은 아들도 불구였다. 그래서 66세에 무녀(巫女)인 16세의 안징재(顔徵在)를 아내로 맞아 공자를 낳았다.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이를 '야합이생'(野合而生)이라고 기록했다.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결합, 요즘으로 치면 '사실혼'이나 '동거'라는 것이다. 그만큼 공자의 '출신 성분'은 미천했다는 얘기다. 그나마 숙량흘은 공자가 3세 때 죽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덤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공자가 17세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공자는 '장닭 없이 굵은 놈'이 아니라 유교의 비조(鼻祖)가 됐다.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황제 입시'를 겨냥해 "조국 같은 아버지를 두지 못했다. 그래서 용이 되지 못할 것 같다"고 비판한 백경훈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에게 YTN 변상욱 앵커가 "반듯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면 수꼴(수구꼴통) 마이크를 잡게 되진 않았을 수도"라고 했다가 하루 만에 사과했다.백 대표는 대학 때 아버지를 여읜 것으로 알려졌다. 변 앵커가 이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알았든 몰랐든 '반듯한 아버지' 소리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백 대표와 그 아버지, 그 가족 모두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기 때문이다. '반듯한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아버지인가? 조 후보자 같은 아버지여야 반듯한 아버지라는 건가? 변 앵커는 부끄러워해야 한다.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imaeil.com

2019-08-27 06:30:00

[관풍루]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사모펀드 사회 기부하고, 웅동학원도 공익재단에 넘겨 손 떼겠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사모펀드 사회 기부하고, 웅동학원도 공익재단에 넘겨 손 떼겠다" 승부수. 뜻은 잘 알겠지만 쭉정이 받고 뒷목 잡을 게 뻔한데, 못 들은 걸로-국민.○…일본 정부, 해군이 이지스함 처음 동원해 독도 등 '동해 영토수호훈련' 실시하자 또 반발. 북한 미사일 대책만해도 시간 모자랄 건데 남의 땅에는 신경 끄도록.○…경북도의회, 수업 전과 방과 후 아동 놀이 시간 및 공간 확보 강조한 '놀 권리' 조례안 발의. 공부에 짓눌려 아이들 노는 소리 끊긴 빈 운동장은 분명 비정상.

2019-08-26 06:30:00

이대현

[야고부] '조국아 고맙다'

지인이 SNS에 '아베야 고맙다'는 글을 올렸다. 아베 신조가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을 계기로 한·일 역사, 경제 등 지금껏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고 깨달음을 얻어 역설적으로 아베에게 고마워한다는 내용이었다.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씨와 가족을 둘러싼 의혹들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조 씨에게도 고마워할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학 필기시험이 필요 없는 방식으로 고교, 대학, 의학전문대학원까지 들어간 조 씨 딸 '덕분에' 입학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게 드러났다. 고교 재학 중 단 2주간 인턴에 의한 논문 제1저자 등재, '황제 장학금' 논란 역시 이들 분야에 대한 점검 기회를 안겨줬다. 부동산 차명 보유, 웅동학원 채무 면탈 및 교사 부정 채용, 사모펀드 투자 등 다른 의혹들도 '가족이 뭉치면 뭣이든 할 수 있다'는 가족애(?)를 일깨워준 것과 함께 관련 제도들의 미비점을 손질할 계기를 제공했다.'우파 못지않게 좌파도 부패하다'는 논거를 조 씨와 가족이 입증한 것도 고마워할 이유다.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조국 사태'는 일깨워줬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문 대통령 취임사가 빈말이란 것도 보여줬다. 외모나 언변에 속지 말고 거짓·위선을 판별할 수 있도록 국민을 경각시킨 것도 의미를 둘 만하다. 청년들에게 불공정의 장벽이 어둠 속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들로 하여금 무엇이 정의인가를 숙고하게 하고 분노·행동하게 한 것도 조 씨가 이바지한 바다.집권 세력의 참모습도 '조국 사태'는 국민에게 알려줬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가 조 씨를 보호하기 위한 꼼수라는 야당 비판에 청와대는 '갖다 붙이기'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직접증거가 없을 뿐 정황증거와 심증은 차고 넘친다. '조국 구하기' 나아가 내년 총선 프레임을 '한·일전'으로 몰고 가려고 지소미아를 파기했다면 어느 국민이 용서할 수 있을까. 권력형 비리인 '게이트'로 비화한 '조국 사태'에 대한 청와대, 더불어민주당의 도 넘은 비호도 집권 세력 실체를 국민에게 일깨워줬다. 장외 집회에 10만 명이나 모이게 해준 조 씨에게 자유한국당은 '조국아 고맙다'라며 청문회 준비에 바쁜 그에게 김칫국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2019-08-26 06:30:00

김병구 매일신문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낙하산과 험지

내년 총선을 약 8개월 앞두고 보수 진영의 두 인물이 지역에서 주목받고 있다.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와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다.두 인사는 많이 다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총선 국면을 앞두고 염치없고 옹졸한 공통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보수 진영의 대권 후보에 관심 있는 두 인사가 총선에 출마하는 것은 전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도 보인다.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총선 출마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이 당당하지도 않을 뿐더러 대권을 꿈꾸는 인사의 위상으로는 전혀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현재까지의 행보로 볼 때 이들은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에 손쉽게 안착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것도 다른 후보와 직접 맞붙기보다는 전략 공천을 은근히 바라는 모양새다. 안방에서, 그것도 내리꽂기를 통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금배지를 그저 거머쥐겠다는 속셈이다.이들은 언론 접촉이 있을 때마다 TK 출마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지역의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는 TK 석권이 어렵다"며 한국당 내 총선 불안감을 은근히 부추기면서 중량감 있는 자신들이 출마해야 한다는 논리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지역 여론에 대한 '간보기'이자, 한국당 지도부에 대한 '공천 희망 메시지'를 동시에 던져보는 사전 포석이다.홍 전 대표는 내년 총선 출마지로 대구 몇몇 곳을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다. 속내로는 그중에서도 대구 달서병이나 북을을 가장 원하고 있는 것으로 한국당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홍 전 대표가 속내를 드러내 이 지역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지역민은 물론 당내의 비아냥거림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달서병과 북을은 한국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없는 곳으로, 대구 어느 곳보다 공천을 얻기 쉬운 곳이다.북을은 대표 시절 자신이 당협위원장을 셀프 임명한 곳이고, 달서병은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강효상 국회의원(비례)에게 당협위원장 자리를 넘겨준 곳이기도 하다.김 전 비대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가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대구 수성갑은 정순천 전 대구시의회 부의장을 자신이 직접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한 그 지역이다. 수성갑에 꾸준히 밭을 갈아온 정 전 부의장이나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정치 지망생 등을 제치고 낙하산으로 내려앉겠다는 것은 몰염치하기 그지없는 행태다.홍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이 진정으로 대권 도전에 마음이 있다면 텃밭이 아닌 험지에 출마해야 마땅하다.홍 전 대표의 험지는 초·중·고를 다닌 대구도, 도지사를 지낸 경남도 아니다. 김 전 위원장도 고향인 경북이나 학창 시절을 보낸 대구를 출마지로 택해서는 여론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이들이 출마지로 꼽아야 할 곳은 바로 한국당의 험지이자, 대권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는 수도권이다.대권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국회의원 자리 한 번 해볼 심산으로 TK에 내리꽂기를 시도한다면 자신의 고교대학 후배에게 망신만 당하고 대구 입성에 실패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전철을 되밟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각인하기 바란다.그나마 TK 외에는 어느 곳도 발붙일 선택지가 없다면 전략 공천에 기대지 말고 당당히 경선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2019-08-25 17:08:14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투 머치 토커

SNS나 유튜브 영상에서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라는 용어를 종종 접하게 된다.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영어의 프래틀러(Prattler)나 개시(gassy)와 같은 의미다. 간단하게 얘기하고 끝낼 일도 장황하게 늘어놓아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을 이르는 용어다.이 용어가 크게 부각된 것은 전직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 때문이다. 은퇴 후 TV 예능 프로에 종종 얼굴을 내비친 그는 겉보기와 달리 한번 시작하면 좀체 끝이 나지 않을 만큼 말을 많이 해 '투 머치 토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말하는 것을 즐기는 스타일이고 또 엄청난 달변가다. 그가 출연한 TV 상업광고도 자연스레 '수다쟁이'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진다.요즘 딸 문제로 의혹의 중심에 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SNS상에서 '투 머치 토커'로 불릴 만큼 늘 대중의 주목을 받아온 사람이다. 교수 재직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입성 이후에도 트위터 때문에 종종 구설에 올랐다. 좋게 보면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고 참여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표현이 지나치거나 공감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아 못마땅하게 보는 부류도 분명 있다.조국 후보자가 매일같이 신문 방송을 독차지하면서 '오늘도 조국, 내일도 조국' 푸념도 나온다. 딸의 부정 입학 의혹에서부터 논문, 장학금 등 각종 논란이 이어지자 조국 후보자의 해명도 길어진다. 진위 공방이 기어코 인사청문회까지 이어질 모양이다.어떤 특정 사안의 진위가 엇갈리면 누구나 있는 그대로를 밝히고 억측과 오해를 불식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실을 밝히는 것 못지않게 결말에 이르는 과정도 중요해서다. 의혹을 풀기 위해 자신을 항변하는 것은 의혹의 중심에 선 당사자로서 의무인 동시에 보편적 권리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쏟아내는 말과 드러나는 정황 증거들이 진실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면 항변권은 효력을 잃기 마련이다. 지금 국민들은 밑도 끝도 없는 그의 해명을 반복해 듣고 있다. '투 머치 토커'의 고문이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유다.

2019-08-2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위령비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가곡 비목(碑木)의 노랫말 2절이다. 화약 연기 사라진 달빛 처연한 전장에 쓸쓸히 남은 비목을 노래하는 것은, 두고 온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며 애틋하게 스러져간 이름모를 병사들을 위한 진혼곡이다.참혹한 전쟁의 여운과 미려한 자연 풍광이 빚어낸 역설이 모태가 된 가곡 비목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천진한 뒷모습을 남기고 떠난 청춘의 호곡성이기도 하다. 경주 안강읍 용운사 경내에 서 있는 '안강전투 전사자 위령비'의 모습도 비목과 다름이 없다. 태극기를 새긴 전투모 형상의 비석갓이 치열한 전투 속에 죽어간 젊은 넋들을 상징하고 있을 뿐, 비석에 새겨 놓은 20여 명의 전사자가 정규군이었는지 학도병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20일에 세웠으니 6·25 전사자 위령비로는 가장 빠를지도 모른다. 사각 기둥 위에 철모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것도 특이하거니와 비문에 신라 경순왕과 마의태자가 등장한 것도 특별하다. 위령비 옆면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인 신라의 이두(吏讀) 흔적도 있다고 하니, 문화재적인 가치도 지닌 듯하다.안강은 인민군 주력부대인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고 국군이 북진하는 6·25전쟁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다. 위령비가 있는 용운사 주지 스님은 '내년이면 비를 세운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며 관련 당국과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절이 수상하니 젊은 넋들의 표상이 오히려 더욱 서러울 따름이다.미증유의 민족적 비극을 초래한 북한의 공산왕조는 아직도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며 남쪽을 향해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다. 남한 대통령을 '오지랖 넓은 중재자' '겁먹은 개'라고 조롱한 데 이어, 이번 광복절 '남북협력 및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서는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대꾸 한마디 못한다. 비목과 위령비조차 피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2019-08-23 06:30:00

[관풍루]정경두 국방부 장관, '한미연합훈련 축소' 문제점 지적한 야당의원 향해 '군 폄하하지 말라'며 고성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한미연합훈련 축소' 문제점 지적한 야당의원 향해 '군 폄하하지 말라'며 고성. 북으로부터 '정경두 같은 웃기는 것' 소리 듣고도 침묵하던 그 장관 맞소.○…별도의 법률 소송 없이 군공항 주변 지역 소음 피해 보상하는 관련법 국회 국방위 통과. '죽 쒀서 변호사 좋은 일'만 시키는 때는 '이제 안녕' 하려나.○…유승민 의원, 페이스북 통해 "만약 조국 임명 강행하면 국민 저항에 직면하고 몰락의 길 갈 것" 경고.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가면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

2019-08-23 06:30:00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잃어버린 8개월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아베 정권이 수출 규제 조치로 대응하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과거사를 둘러싼 분쟁을 무역과 연결한 조치는 일본이 절대 일류 국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기적으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를 줄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이 시점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직전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 동안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신일철주금(과거 신일본제철)이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은 지난해 10월 30일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항의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인 지난 7월 1일, 일본은 반도체 소재·부품 3개 품목 수출 제한을 발표했고 한달 뒤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했다.8개월 동안 일본의 경제 보복 가능성이 줄곧 예고됐다. 많은 일본 전문가들이 아베 정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경고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지난 3월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고 100여 개의 제재안을 마련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최종안은 5월 중에 대부분 완성됐다"고 보도했다.한·일 경제 전문가인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상반기 내내 소문이 무성했다. 일본 정부와 일을 하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관료들이 한국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벼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일본 주재 한국 기자들이 어떤 품목으로 보복할 것 같으냐고 물어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국내 언론도 '정부가 대일 외교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을 수없이 했다.돌이켜보면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울렸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청와대, 여당, 외교부가 일본의 동향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직무유기다. 일본 주재 한국 대사관은 현지 분위기를 어떻게 보고 했나? 보고를 했다면 여권의 어느 선까지 올라갔나? 정상적인 정부라면 8개월간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대비책을 만들어야 했다.정부는 지난 6월 말 일본 언론들이 보복 조치 예고 기사를 내놓을 때까지도 전혀 예상을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최소한 그간의 경과를 설명하고 정부 대책을 차분하게 설명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자세로 나왔어야 했다.세간에는 일본의 도발을 정부가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 "그동안의 태만이 의도된 것이라면 묵과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일본과 갈등이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는 보고서를 만든 여당의 행태로 볼 때 여러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라도 정부의 8개월간 행적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정부를 믿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2019-08-22 18:22:45

[관풍루] 4대강 보 처리 방안 마련한다며 지난 2년간 13개 보 수문 열고 모니터링한 결과 7개보에서 수질 되레 악화

○…4대강 보 처리 방안 마련한다며 지난 2년간 13개 보 수문 열고 모니터링한 결과 7개 보에서 수질 되레 악화. 보 짓기 전 갈수기 X물 생각하면 뻘짓을 한 것.○…국세청 100대 생활업종 분석 결과 대구 29개 업종이 인구 대비 다른 지역보다 많아. 반듯한 일자리가 그만큼 적으니 자영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뜻.○…보수통합을 주제로 '열린 토론, 미래' 토론회서 김문수 전 지사와 김무성 의원, '박근혜 탄핵' 책임 두고 또 충돌. 미래 이야기한다더니 말짱 '황'이었나.

2019-08-22 06:30:00

최창희 체육부장

[데스크칼럼] 장애인 체육 메카 대구

한때 대구는 장애인 체육의 메카로 명성이 높았다. 지도자 양성, 관련 교육시설 등 풍부한 인프라로 타 시·도의 부러움을 받았었다. 대구시 장애인체육회는 2006년 7월 전국에서 최초로 대한장애인체육회 시·도지부로 출발하기도 했다.그러나 몇 년 새 예산과 훈련 공간 부족 등으로 이 같은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우수 장애인 선수들이 타 시·도로 이적했고 생활체육 저변 확대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나마 봄, 여름에 열리는 국제대회인 대구오픈 국제휠체어 테니스대회나 대구컵 국제휠체어 농구대회가 장애인 체육 메카로서의 명성을 잇고 있다.매년 봄에 열리는 대구오픈 국제휠체어 테니스대회는 국내에서 개최된 최초의 장애인 국제휠체어 테니스대회로 1997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휠체어 경기의 양대 산맥인 제22회 대구컵 국제휠체어 농구대회가 대구시민체육관에서 열렸다. 대구시청 휠체어농구단은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휠체어농구단으로 장애인 체육의 모범 사례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두 대회 모두 우리나라 장애인 대표 선수들의 새로운 등용문은 물론 신인 선수 발굴과 장애인 스포츠 국제교류의 장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스포츠계 전체를 돌아봐도 변변한 국제대회 하나 없는 대구로서는 소중한 자산이자 자랑거리다. 전국 17개 지자체 중 꼴찌 수준(12위)인 예산과 훈련 공간 부족 등 많은 어려움에도 선수들과 협회 임직원 등 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조만간 대구에는 장애인 체육계에 새로운 자랑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장애인국민체육센터가 수성구에 있는 대구체육공원 내에 들어선다. 이 센터는 전체 면적 3천991㎡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이뤄졌다. 1층에는 체력단련실과 보치아 경기장, (시각)탁구장, 의무실이 있고 2층에는 체육관, 당구장 3층에는 다목적체육관, 용기구실, 탈의실 4층에는 탁구장, 휴게실이 조성된다. 장애인 체육의 메카 대구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그러나 기대가 커서일까. 개관(27일)도 하기 전부터 졸속 설계·안전 논란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메인 공간인 3층 다목적체육관은 휠체어 농구 등의 훈련과 시합이 열리는 곳인데 너무 좁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휠체어 농구는 엔드라인과 벽까지 2m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간격이 채 1m도 되지 않는다. 농구단 측이 설계 때부터 경기장 너비를 규정(33m)에 맞게 해달라고 대구시 측에 요구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공사가 진행됐다. 단순한 졸속 설계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주차장과 화장실 역시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센터와 대구시체육회, 그리고 대구FC 관계자들이 50면의 주차장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다. 층당 3개에 불과한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역시 불편해 보인다.화재 등 긴급 상황 발생 때 휠체어를 탄 채 대피할 수 있는 경사로가 없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임시방편으로 엘리베이터로 대피를 유도할 수 있겠지만 대피 속도 등을 고려했을 때 오히려 피해를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설계 단계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장애인 체육 전문가들이 참여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도 편리하고 안전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대구시의 설명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들이다.장애인국민체육센터는 대구시에 처음 들어서는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아무쪼록 이 소중한 공간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장애인 체육의 보금자리가 됐으면 한다.

2019-08-22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8조원과 20만 혁신 인재

올 들어 경북 영주에서 호미를 만드는 60대의 석노기 장인(匠人)이 언론에 등장, 화제를 모았다. 쇠 두드려 만들기 외길 인생의 보람인지 그의 혼(魂)이 깃든 호미가 지난해 세계 최대 온라인 판매망인 미국의 아마존을 통해 지구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주문이 잇따랐던 덕분이다.그러나 이전까지는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호미였다. 그의 '영주대장간' 역시 지난 2017년 '향토 뿌리기업'과 '경상북도 산업유산'에 지정되고, 지난해 그 역시 '경상북도 최고장인'에 선정되는 영광도 얻었지만 그를 이을 사람은 없었다.지난 52년 동안 이어온 호미 만드는 일을 어느 누가 감히 물려받을 생각이나 했을까. 겨우 한 젊은이가 기술을 배우겠다고 나타났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만둔 안타까운 사연도 들렸고 뒷받침이 없으면 아마 대(代)는 끊어질 터이다.기술을 잇는 장인 육성은 옛날에도 난제였다. 물론 사정은 지금과 달랐다. 조선 선조 시절 경북 청도의 도공(刀工)으로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기술을 지녔고, 특히 철의 품질을 구분하는 데에는 마치 신과도 같았다'던 저재(抯才)와 아들에 얽힌 사연이 그렇다. 일제 때 다카하시 도루가 남긴 기록을 보자. '임란 때 일본군 병사가 그 장인의 제품을 보고 대단히 칭찬했다…저재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이 가업을 이었다…그는 관아의 가혹한 상납 재촉을 견뎌내지 못했다…저재의 아들은 끝내 자신의 오른손을 잘라서 겨우 파산을 면했다.'시대가 바뀌고, 우리 사회 역시 기술을 인정하고 장인을 받들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직업의 귀천도 옅어졌고, 상납 요구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특정 직업에 젊은이와 부모가 목을 매는 모습은 여전하다. 어쩌면 더 심한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 계통 기피나 오직 공무원의 길을 바라는 현상은 좋은 사례다.한·일 경제 전쟁을 맞아 정부가 연일 투자를 강조하고 뭇 정책을 내놓고 전쟁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7년간 100대 핵심 전략 품목을 골라 8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2023년까지 20만 명 혁신 인재 양성을 약속했다. 정부 외침처럼 돈을 넣고, 사람도 키운다니 앞의 두 사례 같은 일은 역사 속의 일로만 기록되리라 믿어본다.정인열 논설위원 oxen@imaeil.com

2019-08-22 06:30:00

조국 페이스북에 20일 게재된 딸 '학부형 인턴쉽 프로그램' 및 논문 관련 해명. 페이스북 화면 캡처

[시사뒷담] 학부형 조국

▶학부형에 대한 기억이 몇 개 있다.한 학부형은 자식 대학원 자소서를 업무 시간 내내 첨삭했다. 일하다 쉬는 시간에 하면 되니까 자유이긴 한데, 그걸 후배들한테 봐 달라고 들고 다녔다. 누구 자소서냐고 물으니까 아는 사람 자소서라고 거짓말을 했다. 얼마나 한가하길래 아는 사람 자소서를 일하는 와중에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칠까. 안 봐 줬다. 업무 시간에 업무와 상관 없는 걸 후배들한테 시키면 되겠느냐고 얘기하려다 말았다. 다른 후배는 어쩔 수 없이 봐 줬다고 했다.초등학교 때도 그런 학부형이 있었다. 전교회장 선거를 하는 데 회장에 입후보한 친구 엄마가 학교에 왔다. 걔 친구들마다 만나 멈춰 세우더니 귀에다 손을 갖다 대고 귓속말로 뽑아달라고 했다. 나도 들었다. 안 뽑아줬다. 떨어졌다.투표야 학생들만이 하기에 그랬지만, 그 외의 학교의 일에는 학부형들이 마음껏 나설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의 선명한 기억 중 하나는 이렇다. 선생님이 교직원 행사를 하고 남은 고기를 먹는 친구를 보고 "있는 집 애는 다르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지" 그랬다. 선생님은 그 친구가 있는 집 자식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그걸 알고 있더라도 걔보다 못사는 나 같은 애들은 서글퍼지고 걔보다 잘 사는 애가 혹시나 있다면 코웃음을 칠 텐데 굳이 말해야 했을까. 또한 무엇이 그 말을 그리도 밝은 표정으로 경쾌하게 표현토록 만들었을까. 아까 교직원 행사에 그 친구 엄마가 학부모회 임원 자격으로 와서 뭘 건네고 가긴 했다.그리고 최근에 목격한 학부형이 바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전 청와대 민정수석, 현 서울대 법대 교수)이다.딸이 외국어고 시절 '학부형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해 논문을 써서 제1저자로 등재된 게 요즘 화제다.쓸만한 능력이 있으면 고등학생도 논문을 쓰고 제1저자도 될 수 있다. 또한 현재로서는 조국 후보자가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검증과는 꽤 멀어 보이는 사안이다.▶문제는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이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학부형이 다른 학부형 자식의 평가자(논문 지도교수)로 나섰기 때문이다.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인턴십이건 뭐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가능한 다채롭고 풍성할수록 학생에게 좋다.다만 학부형을 끌어들여버리면 이렇게 문제를 만든다.▶학부형은 사실 위험한 존재다. 내 자식의 친구를 선의로 도와줄 수도 있지만, 자식의 경쟁상대로 보고 방해할 수도 있다.큰 인기를 얻은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그랬다. 학부형들은 자식의 서울의대 진학을 위해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족집게 선생을 초빙하는 등 협력도 하지만, 내 자식의 친구에게 누명을 씌워 감방에 집어 넣어 버리기도 한다. 감방에 가둬 수능시험을 보지 못하고 서울의대 입시전형에도 지원할 수 없도록. 그래야 내 자식의 합격 가능성이 높아지니까.그런 학부형이라는 존재에게 학교가 학생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맡기다니. 그런 프로그램에 자기 자식을 맡기다니.물론 현실은 드라마와 다를 것이다. 학교가 프로그램 관리는 하기 때문에 학부형이 다른 학부형의 자식을 의도적으로 나쁘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고, 학부형끼리도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닐테니 몹쓸짓은 못할 것이다.▶결국 학부형끼리 서로의 자식에게 잘해줄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은 학부형끼리 서로의 자식에게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이력 한줄씩 만들어주는 '공생' 내지는 '공모'가 돼 버리는 것은 아닐까.이 역시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학부형이 끼면 그럴 가능성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그러니까 왜 굳이 인턴십 프로그램에 학부형을 집어넣었느냐는 말이다. 학생에게 의학 논문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게 필요하다면 학부형 의대 교수가 아니라 그냥 의대 교수를 섭외하면 됐을 일이다.이건 가령 입시나 취업과 꽤 거리가 먼 초등학교에서 학부형에게 직업 소개 수업 같은 것을 맡기곤 하는 이벤트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고등학교는 입시나 취업과 꽤 거리가 가까워 관련 서류가 작성 및 곧 제출되는 시기다.여기서 학교와 학부형의 공생 내지는 공모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다면, 너무 나간 공상인걸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은 이상하다.▶조국 후보자는 "이러한 일련의 인턴쉽 프로그램 참여 및 완성과정에 후보자나 후보자의 배우자가 관여한 바는 전혀 없습니다"라고 해명했다.아니다. 관여했어야 한다.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이란게 뭔가 좀 이상하다고. 딸을 그 불공정한 프로그램에서 구출해 왔어야 한다. 물론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간 학생인 딸이 자칫 피해를 볼 수도 있었을테니까. 자식 둔 부모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해한다.만약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이 좀 이상하긴한데, 얻을 이익이 꽤 선명하게 보여 딸을 그대로 둔 것이라면, 그건 의식 있는 학부형이라면 용납해선 안 됐을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저 프로그램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딸을 구출해 왔어야 한다.이 부분이 사람들의 여론이 쏟아지는 지점일 것이다. 적폐청산과 사법개혁을 외치는 조국 후보자의 이미지가,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부모 덕 보는' X '학부형들의 공생 내지는 공모가 의심되는' 시스템을 이용한 부분과 충돌해서가 아닐까.이번 정부가 여러가지 성공을 거두고 종료됐으면 좋겠다. 조국 후보자도 만일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이전 법무부 장관들이 하지 못했던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한다. 딸이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이라는 구태에 참여하는 걸 그냥 지켜만 본 학부형으로서의 사적 반성을, 향후 구태를 파괴하는 공적 업무에 잘 반영하길 바란다.

2019-08-21 19:00:26

[관풍루] 조국 동생 전처, '위장이혼과 부동산 위장 매매 의혹 사실 아니다'며 장문의 호소문…

○…조국 동생 전처, '위장 이혼과 부동산 위장 매매 의혹 사실 아니다'며 장문의 호소문 냈다가 '자금 출처 밝혀라' 역풍. 감성에 호소해 혹 떼려다 혹 붙였다는.○…북의 잇단 미사일 세례에도 문재인 대통령 여전히 '평화경제는 우리 미래의 핵심'이라고 재차 강조. '적반하장'해도 '평화경제'하면 '만사형통'인가.○…매년 1차례 안전성 검사 받아야 하는 전국 유원시설 2천319곳에 안전 전문기관은 단 1곳. 놀이시설 탈 때마다 그저 안전이란 기적을 바라야 하나.

2019-08-21 06:30:00

박상구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日 수출규제 마주한 대구 기계업종

지난달 일본이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비교적 잠잠하던 대구 제조업계가 뒤늦게 들끓고 있다. 오는 28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계업종을 필두로 한 대구 주력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일본 수출규제 취재차 대구 달성군에 있는 금속절삭가공기계 업체 대표를 만났다. 이 업체는 핵심 부품인 콘트롤러를 전량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콘트롤러는 완성된 기계 가격의 20%를 넘을 만큼 중요한 부품이다.위로의 인사로 건넨 "힘내십시오"라는 말에 그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차라리 잘됐다며 오히려 이런 일이 10년쯤 빨리 터졌으면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그러면서 그는 일본이 독점하던 기계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하고도 시장에서 외면당한 일을 털어놨다. 현재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도 기술력 문제보다는 대기업 납품이 용이해서라는 얘기도 덧붙였다.그는 "오래전 일본이 독점하던 기계 부품을 6년 동안 수십억원을 들여 개발한 뒤 평소 거래처였던 모 대기업에 가져갔지만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며 "당장 일본 부품이 익숙한 데다 부품을 바꾸면 납품처에도 일일이 부품 변경 사실을 알려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회고했다.이어 "품질 문제라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귀찮아서'라는 뉘앙스에 허탈했다"며 "차라리 이번 일본 수출규제가 기술력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그동안 대구 기계업종에 일본은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었다. 한국기계연구원이 19일 발표한 '한‧중‧일 공작기계 및 기계요소 수출경쟁력 분석 및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공작기계 수입액은 6억1천770만달러인 반면 일본으로의 수출액은 1억8천110만달러에 불과했다.국내 대기업들은 기술력을 이유로 레이저, 초음파 등 핵심 부품을 전적으로 일본 수입에 의존했고, 대구 중소 협력사에 돌아온 것은 마진율이 낮은 단순 부품 정도였다. 야심 차게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이 외면당하는 사례가 늘면서 굳이 비용을 들여 위험을 감수하려는 대구 기업도 줄고 있다는 것이 현장 얘기다. 국산과 일본 제품에서 똑같은 불량이 나더라도 국산 제품이 기술력 부문에서 유독 가혹한 평가를 받는다며 '역차별'을 호소하는 기업인도 있었다.그래서 대구 기계업종에서 이번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미묘하다. 물론 수입 길이 좁아져 위기감을 호소하는 기업도 있지만 그동안 일본 기업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던 대구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지원을 위한 특별회계를 신설해 최소 5년 이상 연 2조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하기로 했다. 대구시도 국산화 기업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다.금전적 지원만큼 절실한 것이 이들 기업의 판로 확보다. 일본의 벽에 막혀 선뜻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곳에 예산 지원을 하는 한편 개발을 끝낸 기업에는 제품을 팔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대기업 입장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중소기업 제품을 검토라도 해볼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줘야 한다.

2019-08-2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문자의 옥(獄)

근대 이전 중국에서는 황제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인물을 숙청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자의 옥(獄)'이 자주 이용됐다. 문자의 옥이란 책이나 문서에 적힌 내용이나 글자를 파자(破字)해 황제를 비판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으로, 명의 홍무(洪武)제와 청의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제 때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그중 하나가 옹정제 때인 1726년에 터진 '사사정'(査嗣庭) 사건이다. 한족(漢族)으로 강서성 주시험관을 맡은 사사정이 시험 문제에 '유민소지'(維民所止)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방기천리 유민소지(邦畿千里 維民所止, 나라의 도읍 사방 천 리는 백성이 멈추어 사는 곳이다)에서 따온 것으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그러나 이 문구의 '維'와 '止'는 옹정(雍正)에서 윗변 'ㅗ'와 '一'을 의도적으로 걷어낸 것으로, 옹정제의 참수를 의미한다고 해석되면서 피바람이 불었다. 고문을 받다 자살한 사사정은 잠시 땅에 묻혔다가 부관참시됐고, 그의 가족 중 16세 이상 남자는 모조리 참수됐다.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아들 히데요리(秀頼)를 제거하려고 꾸민 '호코지 종명'(方廣寺 鐘名) 사건이다.히데요리는 도쿠가와의 건의로 호코지를 재건하면서 범종(梵鐘)도 만들었는데 거기에 '국가안강 군신풍락'(國家安康 君臣豊樂)이란 문구를 새겼다. 너무도 좋은 의미였지만 도쿠가와는 자신의 이름을 '安'자를 이용해 두 글자로 쪼개고, '臣'과 '豊'을 이어놓아 도요토미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고 도쿠가와 가문에 저주를 거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말하자면 일본판 '문자의 옥'을 벌인 것이다.홍콩 최고 갑부인 리카싱(李嘉誠)이 홍콩 시위와 관련해 홍콩 언론에 게재한 광고에 숨은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표면적인 메시지는 '폭력 시위는 안 된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의미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광고를 둘러싸고 있는 문구를 좌우로 오가며 각 문구의 끝 글자를 모으면 '홍콩 사태의 책임은 국가(중국)에 있다. 홍콩 자치를 용인하라'(因果由國, 容港治己)가 된다는 것이다. 표의문자인 한자에서만 가능한 해석의 기예다. 이런 해석이 빌미가 돼 홍콩판 문자의 옥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2019-08-21 06:30:00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30년 일본 가이드의 반성문

일본의 선전포고로 시작한 우리나라와의 경제 전쟁. 걷잡을 수 없는 확전 양상에서 광복절을 지나면서 차분한 장기전 구도로 가고 있다. 스포츠 한·일전이었다면 한바탕 웃거나 울분을 삼키는 것으로 벌써 끝났을 텐데.역사 학습에 따라 무조건 미워해야 할 나라. 하지만 지리적, 생리적으로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나라.일본의 대한민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시행된 지난달 초부터 국민들은 일본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일본 조치에 맞서 일본 여행을 가지 말고 일본 제품을 사지 않는 등 '반일'하는 게 애국인가. 평상시처럼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현실적인 사회, 경제 논리로 일본을 바라볼 것인가.7월 말,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온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패키지여행. 대구 공항에서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으로 향하는 텅 비다시피 한 비행기가 급속히 악화한 한·일 관계를 대변했다.이 와중에 왜 일본 여행을 강행했을까. 패키지 일행은 몇 개 팀에서 20여 명. 기자가 포함된 팀과 마찬가지로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가이드는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30년 경력의 베테랑 여성으로, 일본 역사에 대한 깊이와 배짱이 있었다. 아베 일본 총리의 선거용 벽보 사진을 보고 "아침부터 재수 없다"고 말하는 일행에 대해 그는 "왜 일본에서 아베를 미워하느냐. 아베는 일본인 다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맞섰다.가이드는 틈날 때마다 일본의 과거 지배 계층이었던 사무라이 역사를 곁들여 일본의 속성에 대해 얘기하며 '반일'이 아니라 '극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쪽발이"라며 일본인들을 미워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교류를 통해 그들을 더 잘 알아야 한다는 논리였다.그는 그동안 '극일'하도록 여행객들을 이끌지 못한 잘못이 있다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비난받더라도 여행객들의 '반일' 사고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아베가 트럼프에 앞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 때부터 비굴할 정도로 머리를 조아렸는데 이는 위기에 빠진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아베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아양을 떨었는데, 자존심 버리고 국민을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일본인들은 알고 있다."그는 아베의 야비한 정치 방식이 밉지만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현실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가이드의 '극일론'은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장에서 먹혀들었다. 공무원, 군인, 의사, 교사, 사업가, 주부 등 다양한 직업으로 짜인 일행은 시의적절하지 않은 여행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었다.정부와 일부 정치권·지방자치단체·언론의 과도한 '반일' 민족주의 조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경제 전쟁으로 시작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효과를 냈으면 좋겠다.우리 생활 속에는 일본이 지나칠 정도로 침투해 있다. 카메라를 제외한 가전제품이야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치약, 감기약, 파스, 위장약, 칼, 각종 식품·음료 등 일본 제품이 집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축구 한·일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번 경제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정치 지도자를 비난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극일'은 무엇인가?몇 차례 일본에서 홈스테이를 경험하면서 한국산 가전, 통신, 생활용품을 본 적이 없다.

2019-08-20 16:32:34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조국의 길

조선 중기의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사화(士禍)로 얼룩진 16세기의 위기와 혼돈을 사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정신사의 거목이었다. 이 위대한 사상가로 인해 유교가 유례없는 혁명적 실천 기능을 담당할 수 있었다.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민암부(民巖賦)의 설파에서 남명은 민중적 지식인의 풍모까지 내비친다.남명은 협객의 이미지도 지녔다. 실제로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글귀를 새긴 칼을 차고 다녔다. 벼슬을 사양하며 올린 '을묘사직소'에서도 조정의 실정을 준엄하게 통박하며 청고한 선비의 기개를 드러냈다. 남명의 유학 정신은 개방적이고 역동적이었다. 불교와 노장사상을 포용했으며, 제자들에게 병법과 천문, 지리, 의학 등 실용 학문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가르쳤다.그의 문하에서 임진왜란 때 많은 의병장이 나오고 광해군 정권에서 현실 정치에 참여한 것은 '앙가주망'에 다름 아니었다. 남명의 유교는 실천철학이요 마음의 철학이었다. 외부 세계의 변혁과 함께 자신의 혁신에도 주목했다. 남명의 정신은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앙가주망은 문중의 선조인 남명 조식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규정한 앙가주망도 지식인의 사회참여이긴 했지만, 권력에 편승해 감투와 권세를 얻거나 사익을 챙기는 길은 아니었다. 앙가주망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뇌이며 불의에 맞서 진실을 설파하는 지식인의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리페서를 비난했던 조국 후보자는 서울대생들이 뽑은 가장 부끄러운 동문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벼슬길에 나선 후 그의 언행은 지성적이기보다는 선동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죽창가로 애먼 국민을 분열시키고 친일파로 갈라치기 하고 있다. 할 말이 없으면 "맞으면서 가겠다"고 한다. 조국(曺國) 뜻대로 가다간 좌국(左國)이 될 것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조국(弔國)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상한 소송과 투자 의혹까지 받고 있는 강남좌파의 길에 앙가주망이 웬말인가.

2019-08-20 06:30:00

[관풍루] 중소기업 비중이 88%에 달하는 구미산단,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 가동률 30%…

○…중소기업 비중이 88%에 달하는 구미산단,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 가동률 30%까지 떨어져. '중소기업 하기 좋은 나라' 만든다던 정부는 어디에.○…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하며 'R'의 공포, 유사한 현상 벌어지는 한국에서도 빠르게 확산. 그래도 '우리 경제 기초 체력 튼튼하다'는 대통령 있어 든든(?).○…올 상반기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영업이익 작년 동기보다 54% 감소. 대기업 돈 저소득층에 흐르지 않아 양극화 현상 심해졌다는 정부, 한시름 놔도 되겠네.

2019-08-2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또 '실패한 대통령'인가

아무리 능력 없고 내세울 게 없는 아버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를 무시하거나 욕하면 자식은 참을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지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들으면 국민은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욕설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멸시로 여기기 때문이다.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북한이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미사일 두 발을 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온갖 인신모독을 퍼부었다. "삶은 소 대가리도 웃을 일"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북쪽 총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 등 대한민국 대통령을 마구 난도질했다.1960, 70년대처럼 남북한이 대치 상태 또는 체제 경쟁을 하거나 박근혜·이명박 정부처럼 북한을 압박했다면 우리 대통령을 향한 북한의 조롱·모욕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주선하고 대북 제재 완화 등 유화 노선을 걸으며 북한과 김정은을 향해 지극정성으로 공을 들였다. 오죽하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비아냥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고마워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대고 문 대통령을 향해 저열한 언사를 퍼붓고 있다.애초 목표한 북한 핵 폐기는 물 건너간 반면 남한을 표적으로 한 북한의 도발이 갈수록 가중하는 것을 보면서 문 대통령의 집권 2년 4개월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대북 문제는 문 대통령의 국정 제1과제였다. 그렇게도 목을 맨 대북 문제가 좌초한 것처럼 국정 전 분야에서 '실패의 증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성과는커녕 어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 대다수가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 언급한 '외톨이'는 야당이 아닌 이 나라가 처한 안보·외교 상황에 딱 들어맞는 단어다. 강대국 중 우리 편을 들어줄 나라가 하나도 없다. 미국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고 한미연합훈련에서 '동맹'이 빠지는 등 한·미동맹은 와해 상태다. 일본과는 단교(斷交)까지 거론되고 중국·러시아는 안보 도발을 일삼고 있다. 열강의 각축 속에 나라를 잃은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먹고사는 문제'마저 낙제점이다. 경제성장률과 고용지표는 최악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고 주가지수는 문 대통령 취임 때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등 현실을 도외시한 고집불통 정책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탈원전으로 공공기관들과 기업들은 부실투성이로 전락했고 세계 최고인 원전산업 생태계는 붕괴하고 있다. "경제가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뿐이다.고고학자 콜린 렌프류와 사회학자 사무엘 아이젠스타트는 붕괴하는 국가의 공통점을 이렇게 집약했다. 집권층 내부의 균열과 투쟁, 관료들의 부패와 문제 해결 능력 부족, 근시안적 정책으로 말미암은 악영향, 과중한 세금 부담과 즉흥적인 땜질 정책 난무, 경제 악화 및 군사력 약화 등을 꼽았다. 이들 항목에 오늘의 한국을 대입하면 이 나라가 붕괴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대전환하지 않고 기존 행태를 답습한다면 실패의 증거는 더 많이 쌓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민은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볼 수밖에 없다.

2019-08-20 06:30:00

[관풍루]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에다 우리 국채 금리 차도 11년 만에 최저치 기록…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에다 우리 국채 금리 차도 11년 만에 최저치 기록하며 경기 침체 우려 확산. 더 졸라맬 수도 없는 개미허리니, 청명에 가나 한식에 가나-서민.○…황교안 한국당 대표 "24일 광화문 구국집회 개최 등 장외투쟁, 원내투쟁 병행한다" 선언. 투쟁은 자유인데 웬만하면 냉방 시원한 국회 내에서 치열하게~.○…아베, 고용노동부의 일본·아세안 해외취업박람회 재검토 소식에 "한국 학생들 곤란해질 텐데…" 은근히 조롱. 걱정해도 우리가 할 테니 제 집안 단속이나 잘해!

2019-08-19 06:30:00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국민 자존심은 무너진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에 익숙했던 탓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8·15 기념사에서 '동아시아의 기적'을 말했을 때 뜨악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광복 후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야기했으니, 당연히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기대는 어긋났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기적을 말했지만 누가 그 주역이었는지도 침묵했다.'한강의 기적'은 폐기할 수 없는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다. 폐허가 된 전쟁터에서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주도형 경제로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기적을 일군 것이 '한강의 기적'이다. 세계가 한국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경험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세계 6대 제조강국, 6대 수출강국의 원천 역시 '한강의 기적'이다. 그러지 못했다면 한국은 여전히 북한처럼 아직도 '이밥에 고깃국' 타령이나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강의 기적'은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치환 불가한 한국민의 자존심이다.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라라는 지표는 차고 넘친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 이상 국가)에 들었다. 지난해 IMF가 정한 세계 GDP 순위에선 11위에 올라 있다. 세계은행의 순위론 12위다. 세계 6위 수출대국이다. 국토 면적 순위 세계 109위, 인구 기준 27위 나라로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다. 요즘 K팝에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드라마, 영화로 시작한 한류는 이제 세계 문화로 확산하고 있다.경제성장을 통해 국력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가 한국을 주목했을 리 없다. 국력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과거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국민 자긍심은 크고 자존심은 세졌다. 국민들은 어찌하면 더 강한 나라, 더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꿈꾸고 있었다.그런 대한민국이 마구 흔들린다. '한강의 기적' 이후 키우고 지켜온 국민 자존심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꿈은 멀어지고 네 편, 내 편 갈려 서로 적개심만 불태운다. 한국이 영락없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대일 경제 전쟁이 벌어지자 문 대통령은 남북 경협으로 일본을 단숨에 넘겠다며 '평화경제' 카드를 내밀었다. 한반도는 세계 1·2·3위의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의 각축장이다. 한국은 IMF 기준 11위 경제국이고 북한은 98위까지 매긴 IMF 순위 밖에 있다. 그런 집단과 협력해 극일하겠다는 발상이 국민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현실은 북한이 잘 짚고 있다. 북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늘을 보고 크게 웃음)할 노릇"이라 했다.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며 콧방귀를 뀌고 있다. 그들 앞에 문 대통령은 '겁먹은 개'고,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다.그런데도 아무 소리도 못하는 대통령은 비굴하고, 국민들은 비참하다. 국제적으로 이리저리 차이고 조롱당하면서도 말로 이루는 '평화'에 흠이 날까 집착하는 모습에 국민 자존심은 여지없이 또 무너진다.안보 경제가 모두 위기에 빠진 요즘 한국을 구한말에 견줘 걱정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당시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조선을 '연작처당'(燕雀處堂)에 빗댔다. 사람의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와 참새가 집이 불타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재잘거린다는 뜻이다. 그런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2019-08-1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의 두 일본인 남녀

두 일본인 남녀가 있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여럿이다. 1905년에 태어나 1997년 삶을 마감한 노구치 미노루(野口稔) 또는 노구치 가쿠츄(野口赫宙)와 지금도 활동 중인 1927년생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대구에서 태어났고, 한때 경주에서 삶을 살았던, 글을 쓰는 작가이다. 또 일제강점기의 한국 관련 작품을 썼고, 한국과 일본에 걸쳐 살았지만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이어간 이력을 가졌다.다른 점도 있다. 앞의 남성은 망한 식민지 나라 사람으로서, 장혁주(張赫宙)라는 한국 이름을 하나 더 가졌다. 한국어, 영어, 특히 일본어로 된 작품을 더 많이 남겼다.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 자녀를 두었으나 다시 일본 여성과 결혼했고, 1952년에는 일본에 귀화를 했다. 한국을 비판하고 자신을 낳아준 땅을 싫어했고 마침내 등지고 나라를 버렸다.일본 여성 모리사키는 17년 머물렀던 한국을 떠나 1944년 귀국, 지금까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장혁주와 달리 한국에 '원죄' 의식을 가졌다. 식민지배 시기, 일본 때문에 죽은 숱한 한국인은 자신을 대신해 희생됐다는 '원죄'에 시달렸다. 그가 태어난 대구나 살았던 경주의 한국을 고향이 아닌 원향(原鄕)이라 불렀다. 1984년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나의 원향(原鄕)'이란 책은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 셈이다.두 작가의 운명은 일제의 식민지배 결과였다. 생명을 준 땅과 나라까지 버린 장혁주, 그 땅과 나라에 원죄를 느낀 모리사키 가즈에. 스스로의 조국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여기지 못했던 두 사람. 그러나 세월은 두 사람을 달리 평가하고 있다. 대구(한국)는 장혁주를 잊었고, 그와 그의 뭇 작품은 잊혀졌다. 반면, 대구(사람)는 모리사키를 다시 기억해 그 작품도 머잖아 번역, 출판될 모양이다. 두 사람의 역사가 얄궂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행사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였으면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도 없었을 터인데 안타깝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일본과 한창 경제 전쟁을 치르는 지금, 나라 사정을 살피면 과연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실현될지, 언제쯤 이뤄질지 답답하다. 안팎에서 어려운 한국을 흔드는 '아무'가 벌써부터 바다 건너는 물론, 안에서조차 여기저기 우후죽순이니 말이다.

2019-08-19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망조(亡兆)든 미국

로마의 첫 통치자 로물루스는 첫 전쟁을 사비니와 치렀다. 승리한 로물루스의 결정은 뜻밖이었다. 승자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사비니에 로마와 동등하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로물루스와 사비니 왕 타티우스는 공동으로 왕이 됐고 두 부족은 권력을 나눠 가졌다. 세계제국 로마는 패자까지 품은 관용(寬容)에서 싹이 텄다.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보편제국'을 이룬 로마의 힘은 관용 한 단어로 집약할 수 있다. 로마제국 설계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통치 방침을 관용이라고 선언했다. 갈리아족, 유대인 등 로마는 이민족들의 다양성을 존중했고 그들에게 시민권을 줬다. 관용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질성을 극복해 제국을 만들었다.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아 로마에 자주 비견되는 것이 미국이다. 실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로마 공화정은 이상적 통치 체제였다. 대통령과 의회, 법원이 권력을 나눠 갖는 체제는 로마를 모델로 했다. 다양한 이민족을 포용해 '팍스 아메리카'를 만든 것 역시 로마를 빼닮았다.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던 30대 후반의 한국계 외교관이 자괴감을 견딜 수 없다며 사표를 던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주의, 여성 혐오 등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게 외교관을 그만둔 이유다. 관용을 비롯해 자유, 공정 등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려고 외교관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가치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에 나설 때 트럼프의 참모습을 알아봤어야 했다. 급기야 적도 아닌 동맹국에까지 폭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한국을 조롱·폄훼하고 문재인 대통령 말투를 흉내 내며 희화화했다. 품격·관용은 차치하고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관용은 사라지고 원주민들을 축출하고 아프리카인 노예로 부를 쌓은 초기의 '야만 미국'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트럼프에게서 볼 수 있다. 미국도 망조(亡兆)가 단단히 들었나 보다.

2019-08-1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조강(糟糠)

일본에서 250만 부나 팔린 후지와라 마사히코(전 오차노미즈대 교수)의 '국가의 품격' 한글판 서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때 조선인들이 베풀어준 음식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패망 후 1946년 8월, 저자 가족이 귀국길에서 겪은 고생과 굶주림, 자신을 핍박하던 일본인을 되레 도와준 조선인들의 온정에 대한 이야기다.피난 경로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만주 신경(창춘) 태생인 그와 가족이 만주나 한반도 북부에서 살다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머니와 다섯 살이던 저자 등 삼 형제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개성(開城)에 다다르는 과정이 나온다.무사히 귀국 후 어머니가 저자에게 여러 차례 들려준 말도 서문에 담았다. "돈 많은 조선인은 차가웠지만, 궁핍했던 조선인들은 음식을 베풀어주는 등 우리를 따뜻하게 도와주었다"는 내용이다. '비에 젖어 거지꼴인 우리를 따뜻한 마구간에 재워준 분도 있었다. 그렇게 친절을 베풀어준 조선인 여러분이 없었으면 우리 가족은 북한의 산 어딘가에 묻혀서 흙이 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회상한다.그때 후지와라 가족이 얻어먹은 음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격식을 차린 음식은 결코 아닐 터다. 해방 무렵 이 땅의 사람들이 먹던 흔한 밥과 반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식이 한 가족을 살렸고 먼 훗날 기억에 박제된 것이다.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청와대 초청 오찬에 제공된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 화제다. 백범이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휴대하기 편해 자주 먹었다는 대나무 잎으로 감싼 '쫑즈'와 돼지고기 간장조림 요리 '홍샤오로우'다. 요즘 사람에게는 생소한 음식이지만 그 음식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최근 안동에서 독립군이 먹던 밥상을 복원하는 사업도 활발하다. 항일 투사들이 평소에 먹던 보리개떡, 소금에 절인 콩자반 등을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조강(糟糠)과도 같은 음식이다. 조강은 지게미와 쌀겨를 말하는데 가난한 이들이 늘 먹는 음식이다. "조선인은 밥을 많이 먹어서 늘 배가 고프다 투정한다"며 혐한 망언을 쏟아내는 저질 일본 TV 출연자들은 음식의 가치나 박애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2019-08-16 06:30:00

[관풍루]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서 납북 시인 김기림의 시구 인용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강조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서 납북 시인 김기림의 시구 인용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강조. 흔들리지 않던 나라를 스스로 흔든 건 아닌지부터 생각해 볼 일.○…김원웅 광복회 회장, 일본 경제 보복은 "친일정권을 다시 세우려는 의도"라고 주장. 일본의 전문가들은 경제 보복이 오히려 문 대통령을 소생시켰다고 하는데도요.○…사노맹 사건으로 복역한 은수미 성남시장, "사노맹에 무례하게 굴지 말라"며 황교안 한국당 대표 공격. 뭘 잘했다고 이렇게 큰소리치는지,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네.

2019-08-16 06:30:00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지기(知己)부터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조선 팔도에 수백 명의 세작을 보냈다. 이들은 조선의 주요 지형지물을 베끼고 민정을 염탐했다. 하지만 '왕만 잡으면 백성은 항복할 것'이라는 사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한다. 손자병법에 비춰볼 때 '지피'(知彼)에 무지했다.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大望)에 따르면 일본 다이묘(봉건 영주)는 전투에서 지면 할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부하인 사무라이가 자신의 죽음으로 영주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영주를 잃은 휘하의 무사들은 낭인으로 떠돌다가 새 주인을 만나는 게 보통이었다.반면 조선은 고려 때부터 계속된 일본의 약탈 행위에 이골이 났다. 이런 불만은 민족 저항운동(의병 봉기)으로 승화됐다. 관군만 상대하면 된다고 여겼던 일본은 민간 의병 봉기에 전략적 혼선이 생겼다. 결국 패전이 이어졌다.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 일본처럼 선진국에 올랐다는 자신에 찬 발언이었다. 얼마 뒤 우리 경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자금이 가장 먼저 빠졌고 '고치려던 버르장머리'가 IMF를 불렀다는 주장이 나왔다.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긴급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했다. 정부의 대(對)일본 강경 기조에 맞춰 국민도 '일본 제품 불매'로 호응했다. 국민 DNA(유전자)에 뿌리 박힌 반일 감정은 들불처럼 번졌고 거세졌다. 대일본 감정이 이성적으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까지 왔다.하지만 정부나 우리 국민이 일본과 마주 달리는 기차가 돼서는 안 된다. 경제 규모가 일본의 3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가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욱'하는 감정에 자칫 우리의 위치를 바로 보지 못하는 누를 범할 수 있어서다. 축구를 이긴다고 경제까지 승리할 수는 없고 유니클로 티셔츠 한 장 안 사고, 사케를 마시지 않는다고 극일(克日)이 될 수는 없다. 한 발짝 물러서 우리부터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물론 대한민국은 1910년 무기력하게 불법적으로 병탄을 당한 100여 년 전의 대한제국이 아니다.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일본만큼이나 많은 우호 국가를 두고 있다. 비록 경제력으로는 일본에 비해 모자라지만 국제 명분에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차분히 국제적 동의를 얻고 우방 국가와 함께 일본의 불공정 무역 규제의 부당함을 알리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반(反)일본과 반아베를 분리해 압박해가는 프레임 작업도 필요하다.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냈다고 우리까지 '함무라비 법전'(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들이댄다면 그 나물에 그 밥밖에 안 된다.일본의 특성을 가장 잘 연구했다는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정치가들이 국가와 국민 간의 '알맞은 위치'를 세밀히 규정했다고 봤다. 바꿔 말해, 일본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는 것을 근대국가의 주춧돌로 놓았다.하물며 이런 일본을 이기려는 데 우리가 우리를 모른다면 미래의 '봉오동 전투'는 담보되지 않는다. 감정은 살짝 누르되 정치는 정치를, 경제는 경제를, 가계는 가계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가슴을 가져야 한다. 상대가 일본일 때는 더더욱 '지피지기'(나를 알고 적을 아는)가 병법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2019-08-15 17: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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