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막말' 쏟아내는 정치인
한동안 미세먼지가 숨을 쉬기 어렵게 하더니 최근엔 정치인들의 험한 말이 귀를 따갑게 한다. '좌파 독재' '도둑놈들' '사이코패스' '한센병 환자' '달창' '독재자의 후예'…. 내뱉는 말마다 가시가 돋쳤고 되받아치는 말은 더욱 자극적이다. 아무리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이라지만, 서민 시름을 내팽개치고 '막말 배틀'로 국회를 공회전시키며 매연을 뿜고 있으니 정치가 민생난 오염원이요, 반목과 혐오를 부추기는 진앙이라 불릴 만하다.말(언어)이 지닌 힘과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돼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동물'이라 일컬었고,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철학적 함의가 있지만, 말이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과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수많은 사자성어와 속담, 격언이 입(말)조심을 당부하고,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 혹독한 대가를 치른 이야기도 수두룩하다.다섯 왕조, 열 한 명의 군주를 모신 중국 재상 풍도(馮道)는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고 했고, '설망어검'(舌芒於劍·혀는 칼보다 날카롭다)은 말조심을 각인시키고자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다.그럼에도 정치인의 극언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득'(得)이 '실'(失)보다 크다고 여기는 인식 탓이다. 무리한 비유, 정제되지 않은 단어, 상대를 자극하는 말이 일으킬 파장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주목받으니 관종(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는 남는 장사다. 여기에 환호하는 지지자도 있으니 지지층 결집 면에서도 나쁠 게 없다.막말이 반복되는 건 잠시 숙이면 그뿐이라는 학습 효과도 기인한다. 분란을 일으켜놓고 '사과' 한마디로 퉁 치려는 경우를 수없이 봐 오지 않았는가.저급한 막말이 지지층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사이다'가 될지 모르나 마셔보지 않았던가, 탄산음료가 주는 청량함은 그때뿐인 것을. 과다 음용 시에는 이가 썩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지 않나.막말로 홍역을 치른 일본의 집권 여당 자민당은 최근 '실언 방지 매뉴얼'을 만들어 소속 의원이나 예비 후보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7월에 있을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부적절한 발언으로 표를 까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데 여기에는 약자에 관한 표현이나 지지자들 사이에서 쓰는 특정 표현을 유의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링컨-더글라스' 일화는 국회 문을 닫고 막말 경연을 일삼는 우리 정치권에 교훈을 준다.미국의 링컨 전 대통령은 1858년 상원의원 선거 토론회에서 정적인 스티븐 더글라스가 자신을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하면서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고 하자 "제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이 얼굴(못생긴)을 하고 있겠냐"고 응수했다.이후 링컨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됐지만 더글라스는 그의 생애를 넘어 그의 후손대까지, 160여 년 넘게 막말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국가 번영과 국민 안녕을 위해서라면 정치인은 싸워야 한다. 무기는 논리와 설득이 돼야 한다. 잘못 놀린 혀로 대대손손 소환되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2019-05-23 16:49:49
[계산동스케치] 정주영·이병철을 10만 원권 인물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중 한 명을 언젠가 발행될 10만원권 지폐 인물로 하면 어떨까? 모르긴 해도, 국민의 80% 이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상당수는 "백범 김구 같은 애국자를 놔두고 자기 욕심만 차린 기업가를 감히…"라며 분노할 것이 뻔하다. 반기업적 정서가 노골적인 이번 정권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이런 뜬금없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일본이 2024년부터 새로운 1만엔권 지폐 인물로 기업가인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를 택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좌파 성향 학자들이 '국가 주도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며 비판했지만,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작, 한국에서는 조선의 경제 침탈에 앞장선 제국주의 시대 인물을 택한 것은 일본의 의도된 도발이라며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의 극우 성향에 비춰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그렇다고 시부사와는 낮춰 볼 만한 인물이 아니다.게이오대학에서 경제사를 공부한 김명수 교수(계명대 일본학과)는 시부사와를 이렇게 평했다. "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일본만의 독특한 경영 풍토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500여 개 회사 설립에 관여하면서 자신이 소유·경영하기보다는 인재를 유학 보내고 능력에 맞춰 경영을 맡길 정도로 혁신적이었고, 공익과 사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에 따라 600여 개 학교·복지기관 등의 설립에 참여한 선구적인 기업가였다."시부사와의 경영 철학은 어릴 때 공부한 유교를 기반으로 한 '도덕경제합일설'(道德經濟合一說)이다. '공익이 될 정도의 사익이 아니라면 진정한 사익이라 할 수 없다. 부를 쌓고 영달하는 행위와 인간의 도리인 인의도덕은 합치 병행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기업가가 아니라 고매한 사상가를 연상시킨다.(시부사와 에이이치 기념재단에서 발행한 전기집은 무려 권당 700쪽이 넘는 책 68권으로 구성돼 있다.)그는 당시 '사농공상' 신분 서열에서 제일 밑바닥인 상인의 지위를 가장 위층으로 끌어 올린 인물이다. 1899년 도쿄고등상업학교(현재 히토쓰바시 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축사했다. "상인이 명예로운 지위가 아니라고 누가 말했나? 상업으로 국가의 홍익(鴻益)을 가져오고 공업으로 국가의 부강을 도모할 수 있다. 상공업자의 실력은 능히 국가의 위치를 높이 올리는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라 기업조직가이자 사상가이면서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일본에는 '경영의 신'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 '혁신 기업가의 표상'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1906~1991) 같은 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기업가가 여럿 있다. 이들은 '기업은 공공재'라는 철학을 가졌으며, 고생하면서 기업을 일궜지만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에서 기업가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과 달리, 한국인은 원래부터 기업가를 질시하고 미워하는 DNA를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을 자신과 가족의 배만 불리는 수단으로 여기거나 공익 기여도가 미미한 풍토이다 보니 존경받는 기업인이 거의 없다.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만 해도 젊을 때에는 존경·명예 따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가 무료'로 인식되던 시절, 소프트웨어를 상업화해 야유받았고, 워런 버핏은 주식 투기꾼일 뿐이다. 이들은 나이 들어 천문학적인 기부와 공익 봉사에 나서면서 신망을 얻었으니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의 전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지폐 인물이 될 만한 '존경받는' 경제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한국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2019-05-22 18:00:00
[데스크 칼럼] 청춘, 희망이 먼저다.
얼마 전 후배 기자가 쓴 '취직 대신 취가로 눈 돌리는 젊은 남성들이 많다'는 기사를 읽고 웃었다. '취가'는 예전 여성들이 힘든 취업 대신 시집가기를 택하는 것을 지칭한 '취집'을 남성의 사례에 빗댄 신조어란다. 요즘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자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힘든 취업 준비를 할 게 아니라 살림을 배워 '백마 탄 공주님'을 찾는 게 빠르겠다는 얘기가 많이 회자하는 모양이다.이 얘길 듣고 대학교수 지인 A씨가 최근 강의 중 일화를 소개했다. 2000년생 제자들이 1990년대를 많이 그리워한다는 얘기였다. 한 학생은 하루만이라도 그 시절을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대학에 다녔던 터라 쉽게 수긍이 되지 않았다. 느려 터진 PC통신은 고사하고, 휴대전화도 없어 연락 한번 하려면 공중전화 부스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으며, 심지어 한 주에 하루 놀았던 그때가 뭐가 그리 좋았는지.A씨는 "1990년대는 그래도 희망이 있던 시절이었다. 열심히 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내년이 올해보다 더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저성장, 장기 불황에 접어든 현재를 사는 제자들에겐 천국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A씨의 말을 듣고 보니 이는 20·30대에게만 국한된 얘긴 아닌 듯싶다. 40대인 나도 부럽긴 하니. 그땐 월급쟁이도 재산 불려 잘살 수 있다는 기대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요즘은 계층 사다리가 끊어져 월급쟁이가 부자 되기는 정말 어려운 세상이 됐다.최근 한 독자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화가 잔뜩 난 표정이 수화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신문 진짜 이렇게 만들 거요? 맨날 경제가 어렵다, 일자리가 줄었다, 출산율이 사상 최저다, 아니면 이놈 저놈 욕하는 얘기뿐이고. 애들 교육용으로 신문 받고 있는데, 이럴 거면 당장 끊겠소."다 맞는 말이라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지난주 통계청은 '2019년 4월 고용동향'을 통해 3월 실업자 수가 124만5천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취업자 증가 폭은 10만 명대로 후퇴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IMF) 발발 이전의 61만6천 명이던 실업자 수에서 두 배 늘어난 수치다. 특히 3월 20대 실업률은 11.7%를 나타내 IMF 직후인 1998년(11.3%) 이후 최악의 지표를 넘어섰다. 왜 20대들이 취직보다 재력 있는 이성과의 결혼을 꿈꾸고, 1990년대를 그리워하는지 이해가 됐다.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우리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2019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직장인들의 소득과 삶의 질은 분명히 개선됐다"며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더 많은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재정의 역할을 키울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다.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20대 젊은이들은 취업 문이 막혀 먹고살기 힘들어졌다고 아우성인데, 정작 정부만 아니라고 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5월 가정의 달, 한 가정과 사회의 미래가 되어야 할 20대 젊은이들에게 과거와 현재가 아닌 희망찬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을 정부가 제시해줬으면 한다.
2019-05-22 15:27:58
[시각과 전망] 적폐 없애려 적폐만 쌓는 문 정부
'취업은 알바레오, 통계는 바꿀레오, 경제는 망칠레오, 북한은 퍼줄레오, 세금은 올릴레오, 자영업자는 울릴레오'.유시민의 유튜브 '알릴레오' 등장에 맞춰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빗댄 인터넷 댓글이다. 민심은 정치적 적폐, 사회 구조적 적폐 청산도 필요하지만 적폐 청산을 빌미로 국민의 삶이 고단해지거나, 궁핍해져서는 안 된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이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가장 악질적이고 근본적인 적폐는 '국민의 삶을 곤궁하게 만들고 정치적 혐오를 갖게 하는 정치적 행위'임을 보여준다.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감히 약속드린다.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오늘부터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도 진심으로 우리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그는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하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반대 세력에 대한 인적 청산과 처벌 위주의 적폐 청산, 무리하고 졸속적인 탈원전 정책, 현실을 도외시한 소득주도성장 등을 밀어붙임으로써 그의 약속은 대부분 공염불이 됐다.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시작된 적폐 청산 작업으로 수사받은 전(前) 정권 인사만 110명이 넘는다. 징역형 합계가 130년을 넘겼다. 4명이 자살했고, 1명은 국가기관의 공격을 받던 중 유명을 달리했다.대통령이 지시한 박찬주 전 대장 수사, 기무사 계엄 문건 수사 등은 용두사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고(誣告)에 가까운 것이었다."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 대원칙으로 삼겠다"는 약속도 허언에 그쳤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는 '코드인사'가 판을 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의 국정 운영에서 문 대통령의 인사 원칙은 사실상 '내 편이냐, 아니냐' 뿐이었다. 내 편이면 헌법재판관조차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문 대통령 친구들은 쉽사리 한 자리씩 맡고 법무법인의 동료는 법제처장, 심지어 사무장까지 공기업 이사가 됐다. 이러면서 취임사에선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약속은 어떤가. 현 집권 세력은 자기네들은 위장 전입하면서 남은 징역형 때리고, 자기네들은 편법 증여를 일삼으면서 다른 사람은 못 하게 하는 법 만들고, 제 자식은 외고 보내면서 남의 자식은 자사고도 못 가게 하고, 자기 세력은 집 두 채, 세 채 갖고 임대업자들에겐 집 팔라고 한다.자기들은 체크리스트이지만 다른 정부가 하면 블랙리스트이고, 자기들 댓글 조작은 괜찮고 남은 불법이라 한다. 자기들은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 가면서, 다른 이들은 1만2천700원 법인카드 사용을 문제 삼아 쫓아냈다. 이러면서 공정과 정의를 약속했고 실천한다고 선전한다.현 정부 좌파 권력 실세들에겐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면 모두 적폐였다. 적폐 청산은 집권 세력 자신의 살을 먼저 도려내는 솔선수범과 그 주체의 높은 도덕성이 담보됐을 때만 가능하다. 적폐로 적폐를 청산할 수는 없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의 눈에 정의롭게 비쳐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적폐 청산은 또 다른 적폐를 쌓는 일이다.
2019-05-21 19:07:49
[세풍] 문재인 박근혜, 왜 그리 빼닮았나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음을 느낀다. '욕하면서 배운다' '혹독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모진 시어머니 된다'. 이런 속담이 생각나는 이유는 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왜 그리 빼닮았는가 하는 의문점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최순실 없는 것 빼고는 박 전 대통령과 똑같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데, 단순한 우스개가 아니라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유사점이 많다. 둘의 사상·가치관은 대척점에 있지만, 행동 양식이나 상황 인식 면에서 거의 흡사한 모습을 보여 놀랄 정도다.둘에게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통과 독선이다. '불통'과 '독선'은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언제부턴가 문 대통령도 같은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둘은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전형적인 '꼰대'의 기질을 보여준다.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 비해 덜 폐쇄적이라고 하지만, 여론 수렴이나 상대 진영을 인정하지 않는 기질은 그에 못지않다. 문 대통령은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고지식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문 대통령은 남의 얘기를 인내심 있게 잘 듣는다. 막상 결정할 때는 자신 맘대로 한다.'온 국민이 경기 침체를 체감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 홀로 '경제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참모들에게 '경제정책이 잘된 점을 적극 홍보하라'고 하니 경제부총리나 일자리수석비서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얼마 후면 구조 개선의 변화를 실감할 것이다' '일자리의 질이 개선됐다'는 망발을 내놓고 있다.역사관마저 닮은꼴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애국' '뉴라이트사관'에 경도돼 역사 교과서를 손대려고 했고, 문 대통령은 '친중 반일' '역사 바로 세우기'로 대표되는 '관제 민족주의'에 열중한다. 방향만 다를 뿐, 개방개혁 시대에 과거사를 껴안고 미래를 소홀히 여기는 것도 판박이다.불통과 독선은 국민뿐만 아니라 같은 편에게도 적용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이 잘못됐다고 비판한 이가 있었던가. 이들에게도 친척·친구가 있고 지역 구민을 만나는데,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2015년 박 전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는 유승민 의원에 대해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하고 원내대표직에서 쫓아낸 것을 기억한다면 누가 감히 신념에 가득 찬 대통령에게 고언을 하겠는가.둘의 닮은꼴은 아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내세우며 '친문'으로 물갈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연구원장에 취임한 최측근 양정철 씨가 '친정체제 강화'를 내세우면 '친문'과 '비문'의 공천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총선 때 당시 새누리당이 180~200석을 예상하다가 '공천 파동'으로 제2당으로 내려앉았던 때를 기억한다. 내년 총선에 '친문'을 넘어 '진문'(眞文)이 등장하지 않을까 궁금해진다.둘이 닮은 이유는 개인 자체의 문제인지, 국민 수준의 문제인지 헷갈리지만, 결국은 문 대통령에 대한 모욕으로 귀결된다. 이웃을 만나도, 택시를 타도, 서울 친구를 만나도 문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는 비판으로 넘쳐난다. 야당이 좋아서 혹은 보수 성향이라서 하는 비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실패는 대한민국의 퇴보와 직결된다. 집권 2년을 돌아보고 새롭게 출발했으면 좋겠다.
2019-05-21 06:30:00
[데스크 칼럼] 의한방 통합의료와 메디시티
지역 한 의료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전국 단위 의료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병원장까지 지낸 인사가 뇌병변을 앓았다고 한다. 이 분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한의원을 찾아 탕약과 침 시술 등을 병행했다. 재활에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릴 것이라던 병세는 한방 치료 2달 만에 골프를 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치료를 맡은 한의사에게 외부에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더라고. 의사가 한의사의 치료 영역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몇몇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의한방 통합의료도 이러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치료 효과를 높이는 이상적인 협진(協診)이 아니고, 대개 양방 또는 한방 치료를 고를 수 있도록 환자에게 선택권을 줄 뿐이다. 의사가 한의사의 치료 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여러 요인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상황에서 2009년 대구에서 설립된 재단법인 통합의료진흥원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접목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물을 도출했음에도, 산업화를 위한 후속 절차가 이어지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통합의료진흥원 한 자문위원이 들려준 사연은 이러하다.통합의료진흥원은 지난해 한방 '자음강화탕'이 유방암 치료제 타목시펜의 부작용을 거의 없애주는 결과를 확인했으며, 미국 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신규 건강보조성분(NDI, New Dietary Ingredient) 인증을 획득했다. 인증은 올해 초까지 보중익기탕, 육미지황탕까지 이어져 'NDI 3관왕'을 달성했다.NDI 인증은 새로운 건강식품 원료에 대한 안전성 입증과 엄격한 절차 때문에 매년 수백 건을 신청해도 최종 승인은 2, 3건에 불과하다. 특히 약초에서 추출한 복합제제로 만든 한약이 미국에서 복용 가능하게 됐다.이러한 성과는 미국의 톱 클래스 병원의 책임자들을 흥분시켰다. 그들은 '동양의 신비한 약물'이 의료 신약 개발의 새로운 '기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버드 의대 교수, 하버드 암병원 센터장, 미 국립보건의료연구원 보완통합의료센터장 등은 "이제 한국이 주도하는 다국가 임상시험의 길이 열렸다"고 축하해줬다고 했다.이들은 한국을 방문해 양약과 한약의 병용 투여를 위한 임상시험에 돌입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관심이 없었다. 의사들은 약도 아닌 기능성 식품에 불과한데 호들갑을 떤다고 했고, 한의사들은 이미 한방에서 쓰이는 보편적인 약이라며 큰 의미를 보태지 않았다.NDI 인증을 받았어도 '한약'이 미국에서 많이 팔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통한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통합의료진흥원에 참여한 대구가톨릭대병원만 유일하게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자음강화탕 병용 투여 임상을 했지만, 사례 수가 10건에 그쳤다. 다른 대학병원은 어림도 없었다. 환자들에게 한약을 쓰는 것을 꺼릴뿐더러 임상에서 유의한 결과가 나타나면 한약의 우수성만 부각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대구에서 의한방 통합의료에 대해 오픈 마인드가 확산되면 어떨까. 미국 FDA라는 큰 산을 넘긴 아이템을 산업화하고, 대구가 주도하는 다국가 임상 연구 기반까지 마련한다면 그야말로 '메디시티' 아닌가. 미국 시장 규모만 42조원이다.
2019-05-15 17:2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