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왜 지금 '이준석의 공정'인가

이준석의 책 '공정한 경쟁'과 마이클 샌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 이준석의 책 '공정한 경쟁'과 마이클 샌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
김봄이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김봄이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세계적 석학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공정에 대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누군가의 성공은 실력과 노력만이 아니라 행운과 우연이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실력과 노력만으로 성공을 평가하는 '능력주의', 그리고 이 같은 사회가 '공정하다' 생각하는 착각을 공동체 붕괴의 주범으로 꼽았다.

'만 36세, 0선'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등장한 야당 대표도 일찌감치 공정을 말했다. 2년 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책을 통해 목동 월촌중학교에서의 등수 경쟁을 "열심히 공부하는 자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표현했다. 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그는 "우리 당은 정치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능력에 따른 인재 선발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정반대의 주장인 셈이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공정이라는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입장이지만, 이준석은 능력주의야말로 공정을 대변할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다.

공정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됐다는 지금,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쪽은 샌델보다는 이준석인 듯 보인다. 왜 그들에게 이준석의 공정은 맞고 샌델의 공정은 틀렸나.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 초반 출생)에게 샌델의 공정은 공허하다. '흙수저'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불평등에 익숙해진 MZ세대들은 타고난 실력, 행운과 우연 등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공정한 과정'이다. 조국 사태와 LH 사태 등 과정의 불공정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자 반작용으로 과정의 공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이준석의 공정은 "과정이라도 공정했으면 좋겠다"는 MZ세대의 간절한 외침과 일맥상통한다. 불공정과 편법으로 얼룩진 과정이 아닌 경쟁을 통해 능력으로 평가하는 과정 말이다.

그의 공정에 제동을 거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 대표만큼이나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부로 등수를 매기는 것이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 대표의 견해에 대해 부모의 재력과 건강, 학업에 집중할 여건 등 통제 불가능한 여러 변수를 거론하며 "나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은 친구가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했다.

같은 당 고민정 의원도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는 샌델의 책 내용을 인용하며 이준석을 겨냥했다.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경쟁은 이미 '있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것이라며, 공정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는 "경쟁의 룰은 공정할지 몰라도 경쟁에 뛰어들 기회는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과정의 불공정에서 시작된 공정에 대한 외침은 이들이 말하는 근원적인 공정이 아니다. 제도를 근본부터 공정에 맞게 뜯어고치는 일은 요원하다. 과정에 끼어든 불공정과 편법을 없애는 것이 MZ세대에게서 촉발된 공정에 대한 현실적 요구다.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젊은 야당 대표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시대정신이 된 공정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본인이 수학한 하버드대 교수이자 세계적 석학에게서 나온 것보다 논쟁거리가 되고 살아 움직이는 말이 된다. 부디 이준석의 공정이 정치적 수사로 그치지 않고 그에게 지지를 보낸 이들이 원했던 '최소한의 공정'으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11위

6 4 9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완독률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