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그 많은 쥐틀은 다 어디 갔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마스크에 '부동산 부패청산'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마스크에 '부동산 부패청산'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연합뉴스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또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할 모양이다. 내부 정보 이용을 의심받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철저한 조사 합의와 대국민 약속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반발이 절로 나올 정도다. 4·7 재보궐선거가 막을 내리자마자 여야 누구랄 것도 없이 발뺌을 하면서 '오초의 흥망은 내 알 바 아니다'는 속담대로 된 것이다.

LH 투기 의혹은 지난 4·7 재보궐선거 국면을 뜨겁게 달군 사안이다. 여론의 성화에 못 이겨 검·경은 마지못해 수사에 나섰다. 속도가 생명인 압수 수색은 굼벵이가 부럽지 않을 수준이었다. 이런 형편에 정치권마저 일단 급한 불이 꺼지니 나몰라라며 꽁무니를 빼는 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시곗바늘을 몇 달 전으로 되돌려보자. 정부는 천정부지의 집값 오름세를 잡기 위해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본격화했다. 지난 2월 24일 광명·시흥 지역을 3기 신도시로 추가 선정했다. 이로써 3기 신도시는 모두 6개 지구로 늘었는데 천정부지로 치솟은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한 공급 확대 정책이었다. 알곡이 많으면 쥐가 들끓는 법. 아니나 다를까, 제보를 받은 시민단체가 내부자들의 투기 의혹을 세상에 알리면서 LH 사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의 신도시 정책 관리의 허점이 드러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철저한 조사를 천명했다. 여야도 공기업 직원과 지방의원 등 공직자들의 비리 정황이 꼬리를 물자 지난 3월 중순 국정조사와 특검, 국회의원 전수조사까지 합의했다. LH 사태로 국정조사가 성사되면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5년 만의 국정조사다. 그런데 시곗바늘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닳은 탓일까. 선거를 앞두고 공직자 부패에 대한 국민 불신이 일파만파 커지자 급한 불부터 끈다며 질세라 손을 잡고 입을 맞췄지만 선거가 끝나니 문득 제정신이 든 모양이다.

물론 재보궐선거가 끝난 직후 당 대표, 원내 대표 등 지도부 선출 문제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시간표가 빡빡하긴 했다. 하지만 임시국회가 열려도 후속 조치 논의는커녕 일언반구도 없다가 근 한 달이 지나면서 LH 특검과 국정조사는 여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내 문제로 경황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지만 정당 내부의 일이 국가의 대사보다 중한가.

여야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목청만 높이고는 발본색원과 제도 개선 등 후속 조치에 슬며시 꼬리를 내리면서 분노한 국민만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 것이다. 이런 식이면 제2, 제3의 LH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고 '세상의 모든 가치가 시작되는 LH, 희망의 터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슬로건도 단단한 화강암에 계속 새겨질 것이다.

한동안 인터넷에 'LH=내'라는 등식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신도시 등 공공개발지 땅 투기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작금의 현상을 정확히 짚어낸 언어유희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사회 지도층과 공직자들이 공공연히 '선금 지르는' 부정한 땅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슬로건대로 집 없는 사람의 터전이 아니라 부당이득의 꿈나무가 자라는 땅, '내 재산 불리기'라는 오만한 가치의 시작점 말이다. 더 늦기 전에 여야는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후속 조치를 실행해야 한다. 이 땅이 집 없는 이들의 '절망의 터전'이 되지 않도록 말뚝 박기를 서둘러야 한다. 누가 쥐틀을 사놓고 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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