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대지진 10년 뒤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대지진은 1만5천899명의 사망자와 2천526명의 실종자를 기록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하고 방사능이 누출돼 많은 이재민을 낳았다. 참사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거나 질병 때문에 죽은 사람도 3천 명이 넘는다. 일본 내각부가 추정한 재산 피해 규모만도 약 16조9천억엔(약 180조원)에 달했다.

오늘로 동일본대지진 이후 꼭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대지진 이후 일본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우리에게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일본의 자연 재난이나 전쟁의 참화는 우리에게 불행한 사태로 되돌아오는 역사적 선례가 많아서다. 일본인 특유의 집단심리와 습성이 대지진을 계기로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데 바로 이상한 '피해 심리'다. 아니나 다를까, 대지진 이후 한·일 양국은 크게 대립하고 관계가 악화했다. 역사적 앙금과 별도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나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갈등, 초계기 사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등으로 대립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의 배경에는 큰 흐름이 있다. 바로 극우 세력과 손잡은 자민당 정권의 '혐한' 분위기 조성이다. 2012년 12월 정권을 쥔 아베 정부는 사후 수습 실패에 대한 책임은 외면한 채 히스테리를 부렸다. 국가적 환란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 경제적 난국에 쏠린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희생양을 찾는 데 골몰했다. 이런 계략은 위기 때마다 일본이 보여 온 행태다. '포스트 대지진 시대=혐한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지진 직후인 2011년 8월 후지TV 본사 앞에서 시작된 '노 모어(No More) 한류' 시위는 '혐한 시대'의 출발점이었다. 수천 명의 극우 세력이 모인 이날 데모는 '후지TV의 날'(8월 8일)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재난의 울분을 '혐한'으로 표출한 것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와 똑같은 심리 구조다. 최근 여러 엉터리 논문으로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마크 램지어의 이상한 행적도 '혐한' 일본과 무관치 않다.

대지진 이후 10년의 시간을 지켜보는 한국인들은 지금 매우 불편하다. 뒤틀어진 양국 관계 등 해결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나설 이유는 없다. 과거 역사가 보여 주듯 '결자해지'가 먼저다. 긴 호흡으로 멀리 보며 전략적인 정치·사회적 흐름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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