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81,185 그리고 1,474

지난 13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다음 주면 코로나19 사태의 신호탄이 된 '31번 확진' 사례가 발생한 지 꼭 1년이다. 이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출발 지점은 대구였지만 파문이 전국으로 번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년 만에 우리는 완전히 뒤바뀐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는 현재 1억660만 명 이상의 감염자와 232만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8일 기준 국내 확진자도 8만1천185명, 희생자는 1천474명에 이른다. 사태가 급박하게 치닫다 너누룩해지기를 거듭하는 동안 일상은 헝클어졌고 삶은 팍팍해졌다. 이틀 뒤가 설인데도 명절 분위기를 찾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중국 정부는 우한이 코로나19 사태의 시발점이 아님을 거듭 강변하고 있지만 최근 우한을 찾은 세계보건기구(WHO) 연구팀은 "우한 화난 시장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결정적인 몇 가지 단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새로운 사실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제야 세상을 놀라게 한 코로나19 사태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3차 유행기의 수구막이가 될 백신 접종도 희소식이다. 수세에 몰린 인류가 이제 겨우 작은 방패를 손에 쥔 것이다. 백신 부족에다 안전성 문제가 걸림돌이지만 미생물의 도전에 맞서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의 경우 약 330만 명이 1차 접종을 마쳤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35%가 넘는 비율이다. 한국도 이달부터 백신 접종이 예정돼 국면 전환의 기대가 크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의 시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의 변화에서 보통의 사람도 그런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읽고 있다. 경기를 앞둔 권투 선수들이 옷을 벗고 저울 위에 올라서듯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것을 감지했다. 말하자면 코로나 사태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다리'이다. 링 바깥과 링 위의 상황이 다르듯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점을 직감한다.

문제는 그 속도와 양상이다.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시대 전환과 디지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회나 집단과 달리 낡은 시스템을 지탱해 온 사회일수록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임은 분명하다. 세계 석학들의 미래 예측을 담은 '초예측'이라는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수렵 채집인의 특성으로 '유연성'과 '적응력'을 꼽았는데 이를 무기로 인간이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고 했다. 이는 현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특성이다.

코로나는 변곡점에 선 우리에게 묻고 있다. 혹시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낡고 거추장스러운 것은 아닌지 말이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도전 의지도 그럴지는 장담할 수 없다. 가까운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반도를 분단으로 몰아넣은 것은 외세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 씨앗을 뿌린 것은 우리 내부의 분열이다. 당대 사회적 모순과 독단, 차별, 무지, 착오가 침탈의 빌미가 됐고 피를 불렀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과거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

지난 1년은 그래서 소중하다.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또박또박 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지만 서두르다 제풀에 지쳐 중도에 멈추면 실패는 기정사실이다. 코로나 시대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도전과 변화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우리에게 좋은 시험대인 동시에 기회다. 지금 우리 체제와 변화 의지를 점검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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