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北核은 눈감고 南 원전은 위험하다는 이중 잣대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불과 반세기여 전 우리나라는 만성적 전기 부족에 시달렸다. 툭하면 정전이 되고 제한송전 말이 나왔다. 집집마다 전기가 어느 정도 보급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율(電化率)이란 생소한 용어를 사용한 것도 그 시절이다.

"우리나라 전화율은 24.8%로 추정된다. 413만1천 호의 남한 주택 중 102만7천 호에 전깃불이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도시 주변에 그치고 농촌만의 전화율은 단 6%에 불과하다." 1965년 2월 22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이 당시 우리나라의 처지를 짐작게 해 준다. 4가구당 1가구꼴로 농촌 지역엔 전기가 거의 없던 시절, 양초는 가정 필수품이었다.

그 시기 북한은 전기 사정이 남에 비해 넉넉했다. 1965년 남한의 발전 전력량이 고작 33억㎾h일 때 북한은 132억㎾h였다. 인구는 적은데 남한의 4배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했으니 당연 북쪽 살림살이가 남쪽보다 훨씬 나았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1970년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285달러일 때, 북한은 434달러로 1.5배였다.

이렇던 남과 북의 국운을 바꾼 계기가 에너지 문제였다. 지지리도 가난하던 한국이 북한보다 잘살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1975년 북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는 630달러로 한국의 611달러를 근소하게 앞서 있었다. 이 해 남한의 발전 설비 용량이 4천720㎿로 북한(4천530㎿)을 처음 추월했다. 역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남한은 가파르게 발전 설비를 키워나갔고 북한은 그러지 않았다. 역전된 남북한 국민소득 차이가 더욱 벌어진 것은 물론이다.

그 중심에 핵이 있었다. 남한은 핵의 평화적 용도인 원전을 우선했다. 1978년 고리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원자력 혁명이 시작됐다. 값 싸고 질 좋은 전기가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를 뛰게 했다. 반면 북한 정권은 군사적 용도로서의 핵무기 개발에만 집착했다.

서로 다른 선택의 결과, 오늘날 남북 경제는 천양지차로 벌어졌다. 원전을 택한 남한의 2019년 전력량은 5천630억㎾h로 1965년에 비해 170배 폭증했다. 하지만 북의 전력량은 238억㎾h로 1.8배 늘었을 뿐이다. 1970년 이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2천422달러로 114배 늘었지만 북은 642달러로 고작 1.5배 증가했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한 우리는 이제 정권을 바꿔가며 풍요를 누리고 있다. 반면 군사적 용도로 사용한 북한은 정권은 안 바뀌면서 주민들은 피폐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탈북민 78%가 북은 여전히 하루 1, 2시간 제한 송전을 한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북의 전력 사정은 아직도 열악하다.

현명한 지도자와 국민이라면 남과 북,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을 했는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탈원전을 노래한다. '원전 사고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체코에 가서는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자랑했다. 이젠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는지를 두고 논란거리다. 사단은 산업통상자원부가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서류로 만들었다가 몰래 폐기한 사례가 들통나면서 시작됐다.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섰지만 그동안 좌파 정부가 수도 없이 퍼주기 논란을 빚었던 것을 보면 그 시도가 사실이더라도 그리 놀랍지 않다. 다만 정작 우리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북핵 폐기에 대해 한마디도 않는 점, 남한에서는 위험하다고 문을 닫겠다면서 북에는 원전을 지어주겠다는 그 이중 잣대에 경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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