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가덕도’라는 이름의 덫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 21일 오후 부산 강서구 대항전망대에서 가덕도신공항 예정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 21일 오후 부산 강서구 대항전망대에서 가덕도신공항 예정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국무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가 '김해신공항 백지화'라는 억지 해석을 내린 지 두 달여가 지났다. 더불어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론을 들고나온 데 이어 2월 중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며 대오를 가다듬고 있다. 밀어붙이는 힘과 속도가 놀라울 정도다.

국민의힘은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쳐 놓은 그물에 단단히 걸려든 모양새다. 우왕좌왕 사분오열이다. 동남권 신공항 이해 당사자인 대구경북(TK)은 또 어떤가. 제자리걸음질이다. TK 국회의원들은 최근 3주간 가덕도 신공항 대책 회의를 4차례나 열었지만 결론은 원점이다. 어느 TK 정치인은 가덕도 신공항을 찬성하고 나섰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 만난 TK 유력 정치인은 이런 말을 했다. "가덕도 신공항, 절대 못 짓는다. 정부가 수용할 리 없다. 선거용으로 적당히 써먹다가 흐지부지될 것이다. 설령 가덕도에 공항을 짓는다 하더라도 하세월일 것이다. 대구경북으로서는 통합신공항을 빨리, 제대로 지어 선점 효과를 거두면 된다."

집권 세력의 집요함과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부산 정서에 이리도 둔감할 수 없다. 현실을 보자.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제정을 통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아예 건너뛰려 하고 있다. 완공 시기도 2029년으로 못 박았다. 가덕도 카드는 먹혀들고 있다. 여당의 일방적 열세라던 부산 민심이 최근 돌아섰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여당은 2016년 20대 총선 이후 4연승을 기록한 정치 세력이다. 이기는 법을 알고 전략 구사도 능통하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지면 차기 집권도 물 건너가고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 속에 집권 세력은 결집하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은 한참 전부터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정치에서는 논리보다 기(氣) 싸움이 유효할 때가 있다. 한데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 TK에서 나온 가장 강경한 톤은 "천인공노할 일"(권영진 대구시장)이 고작이다. 삭발하겠다는 정치인도 없고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겠다고 나서는 용자(勇者)도 없다. 어차피 중앙 무대 정치권에 잘 보이면 국회의원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싸움닭'이 안 보인다. 만약 이명박 혹은 박근혜 정부 시절 대구경북에 동남권 신공항을 짓겠다고 발표했다면 부산은 어떻게 나왔을까. 대구경북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강경 반응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이는 PK 정치권 주도 아래 이뤄졌을 것이다.

영남권 5개 광역 지자체 공동 사업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어느 한 도시가 일방적으로 끌고 갈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은 선거에 이기려는 생각에 특정 지역 편을 대놓고 들고 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현실적으로도 가덕도 신공항은 대구경북이 추진 중인 통합신공항에 악재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정부 여당 차원의 밀어주기가 진행될 경우 군(軍) 공항 핸디캡을 지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국제 노선 유치 등에서 소외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TK 정치권은 참으로 나이브(naive)하다. 통합신공항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릴지 모른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해법도 보이겠건만 그런 위기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통합신공항과 역내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와 철도망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하지만 가덕도 신공항을 짓는 데 천문학적 재정을 들인 정부가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TK 정치인들의 엄중한 상태 인식과 분발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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