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대구에서 정치부 기자를 한다고?"

김근우 정치부 기자

김근우 정치부 기자 김근우 정치부 기자

"대구에서 뭐 할 게 있다고?"

지난해 12월 '정치부 기자'라고 적힌 명함을 만들고서 지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국회도, 청와대도, 주요 중앙 부처까지 '정치'의 핵심은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대구에서 도대체 무슨 '정치 기사'를 쓰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정치부에 가게 됐다"고 말하자 "그럼 서울로 가는 거야?"라고 묻는 이들도 많았다.

"그냥 시의회 쪽 담당하면서 국회의원들 대구 오면 챙기고 그러는 거지 뭐"라고 대답하며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맞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정치의 중심은 오롯이 '중앙'에 몰려 있다. 지방정치는 다루는 주제의 규모는 물론, 시민들의 신뢰 면에서도 뒤떨어진다. "정치부 기자가 대구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이건 기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사람으로 치면 서른 살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서른 살을 이립(而立)이라고 표현했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1991년 6월 20일 광역의원 선거날 유권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대구 서구 제3선거구 제3투표소인 중리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 줄지어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신문DB 1991년 6월 20일 광역의원 선거날 유권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대구 서구 제3선거구 제3투표소인 중리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 줄지어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신문DB

하지만 지금 우리 지방의회는 여전히 흔들리는 지지대 위에서 불안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왜 그런가? 지방의회 구성원 개개인의 잘못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천착해야 할 문제는 이들에 대한 감정적 비난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어째서 함량 미달의 인물들이 지방의회에 유입되는가'를 살펴보자. "제대로 된 권한과 기능이 없는 지방의회에 유능한 인물이 생업을 포기하고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설득력 있다.

애초 우리 지방자치가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아닌 중앙 정치권의 정치적 타협에 따라 권한과 기능이 빈약한 채로 태어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중앙정치에 비유하자면 '국회의장' 격인 시의회 의장은 32년간 의회사무처 직원의 인사권조차 행사할 수 없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 하나. 최근 국회는 32년 만에 지방의 숙원이던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기자가 대구시의회를 찾아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행정안전부 지침이 내려오면 검토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지방의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법안마저 세부적으로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결국 지역민들이 끊임없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요구해 나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기득권을 틀어쥔 중앙은 이를 놓으려 하지 않을 터. 끈질긴 싸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현직 지방의원들의 노력도 꼭 필요하다. 지역민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건 결국 지방의원들이 내놓는 올바른 실적이기 때문이다.

대구시의원들은 "최근 도시계획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주민들이 관심 있는 이슈를 다루면 관심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뼈저리게 체감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관심이 높아질수록 '지방자치 강화'에 대한 지역민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결국 의원들이 얼마나 주민과 밀접한 이슈를 발굴하느냐에 우리 지방의회의 미래가 달린 셈이다.

아울러 지방의원들이 '사고'를 칠 때마다 제기되는 섣부른 '지방자치 무용론'은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밀접함은 역사가 증명한다. 고대부터 독재에 가까운 정권일수록 중앙집권을 선호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중앙집중의 습관은 박정희·전두환을 비롯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정권의 흔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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