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기우에 그쳐야 할 국가 채무 걱정

2015년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의 구제금융상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그리스 부채를 탕감하라'(DROP GREECE'S DEBT)는 문구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의 구제금융상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그리스 부채를 탕감하라'(DROP GREECE'S DEBT)는 문구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예정된 결과였다. 나라 곳간이 빠르게 비어간다. 곳간에 재정을 쌓아두면 썩어버린다는 발상을 했던 청와대 대변인은 21대 국회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 후보를 당선시켜 주면 '100% 국민 모두에게 돈을 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던 여당 원내대표는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이젠 '재난지원금이 너무 적다'며 '몇 차례 더 해야 한다'는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가 나왔다. 대통령은 "1, 2차 추경에 이어 3차 추경도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처럼 말한다.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GDP 대비 부채 비율 40%'는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국채 비율이 40%를 넘어 60%에 이르는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국가 채무에 관한 우려는 기우'라는 여당 간부의 주장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하다. 국가 채무를 걱정하는 것이 우국(憂國)도, 애국(愛國)도 아닌, 기우(杞憂)가 됐다.

국민 관심도 국가 재정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에 있지 않다. 당장 나에게 돌아올 돈이 얼마인가, 언제나 받을 수 있는가에 쏠려 있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긴급재난지원금, 아동수당, 각종 소비 쿠폰 등 공짜 천지인 세상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나랏빚보다 나라에서 더 받아낼 것은 없는지를 살피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카산드라를 떠올린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던 트로이의 공주다. 예언의 능력은 얻었지만 아무도 그 예언을 믿지 않도록 설계된 저주받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리스가 선물이라며 보낸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절규했다. 목마는 선물이 아니라 트로이의 멸망을 재촉하는 예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트로이는 성곽을 허물면서까지 거대한 목마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망했다.

2015년 국가 부도를 경험한 그리스에 카산드라에 비유된 인물이 있었다. 2001년 노동부장관이던 타소스 지아닛시스였다. 그는 일찌감치 그리스의 비극적 상황을 예견, 과감한 개혁을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좋은데 왜 10년 뒤의 일로 귀찮게 하느냐"는 푸념만 들었다. '정부와 당을 망치려 한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빚을 내 연금을 주고, 공무원 수도 팍팍 늘리는 일이 이어졌다.

2105년 그리스의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상환일에 그리스 아테네 시민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연합뉴스 2105년 그리스의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상환일에 그리스 아테네 시민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연합뉴스

10여 년 후 경제 위기가 닥쳤다. 평소 1천 명 미만이 찾던 아테네시 운영 무료급식소는 하루 2만 명을 맞아야 했다. 길게 늘어선 줄이 외신을 탔다. 포퓰리즘의 종말은 그렇게 시간을 두고 찾아온다. 그리스는 공무원 23만 명을 줄이고 연금은 최대 44% 깎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포퓰리즘은 짧은 기간 선물처럼 다가오지만 장기간 불행의 예고편이다. 국민 일부나 모두에게 단기적으로 선물로 보이지만 그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통합재정수지는 거의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10년 누적 흑자액이 115조원에 이른다. 그렇던 통합재정수지가 불과 2년 만에 91조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1분기만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가 45조원 적자를 냈다.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면 국채는 빠른 속도로 는다. 나라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건전재정의 축은 소리 없이 무너진다.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같이 포퓰리즘으로 무너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왕의 의자에 앉은 거지'로 불린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졌으면서도 나라가 휘청대니 '천연자원의 저주'라는 말 그대로다.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국가도, 국민도 포퓰리즘에 취해 빚잔치를 벌이면서도 지도자에게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