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꿔야 한다

이상헌 경북부장 이상헌 경북부장

늘 놀라운 소신 발언으로 국민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보면서 떠오른 건 아쉽게도 펭수가 아니라 팽글로스였다. 그는 18세기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쓴 소설 '캉디드'에 나오는 세상 둘도 없는 낙천주의자다. 'Panglossian'(근거 없이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세상을 밝게 보는 게 뭐 나쁘냐고? 귀족 가문의 가정교사로서 순박한 청년 하인 캉디드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치는 정도라면 괜찮다. 하지만 행정 수반으로서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긍정론을 고집한다면 국가적 불행이다.

대통령은 그제 회견에서 남북 관계, 경제 문제를 언급할 때 '낙관' '긍정' 같은 단어를 자주 썼다. 공교롭게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시민들이 가장 자주 꼽는 대통령의 실책 분야다.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는 팽글로스의 가르침과 달리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대통령의 발언 중 그나마 주목할 만한 대목은 수도권 집중 해소였다. 그러나 대안으로 제시한 혁신도시 추가 지정 및 공공기관 이전도 행간에선 총선용, 특히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분류되는 충청권을 겨냥한 포석으로 읽힌다.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과정에서 저지른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고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를 겁박하는 청와대이니 억측은 아닐 테다.

사실 오늘부터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또한 수도권의 일방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제대로 된 국제공항만이 떠나간 인재와 기업을 다시 불러들여 고사 위기에 놓인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다. 과열 유치 경쟁 탓에 나온 잡음은 안타깝지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푸줏간·술도가·빵집 주인의 애타심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덕분"이라고 갈파한 걸 떠올리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최근 목소리를 높이는 대구경북 행정통합 역시 '지방도 먹고살자'란 의미에서 같은 맥락이다. 두 지역을 하나의 광역행정권으로 묶어야 수도권은 물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는 14일 매일신문이 주최한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선 "대구와 경북이 통합되면 인구 550만 명의 핀란드, 530만 명의 노르웨이 등 선진국과 경쟁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우려하는 점은 구체적 비전이 있느냐다. 뭉치면 뭐라도 낫겠지 하는 기대감만 줘서는 부족하다. 2018년 기준 지역별 경제성장률이 제주와 함께 전국에서 유이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한 경북이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만년 꼴찌인 대구와 물리적으로 결합한다고 해서 엄청난 반전이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의 대전·충남 혁신도시 추진처럼 정치적 포석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가뜩이나 경북도가 행정통합 시기로 내심 목표하는 2022년에는 대선(3월)과 지방선거(6월)가 연달아 치러진다. 이번 총선이 지나면 그해 양대 선거를 동시에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질 테고, 이 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입장에선 행정통합 이슈만 잘 마무리한다면 인물 없는 보수 진영의 대권 카드로 떠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혹여 진정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라면 권 시장과 이 도지사는 라스베이거스 CES 전시회를 갈 게 아니다.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 아니라 막 잉태되고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 연구실에 가야 한다. 미망(迷妄)에서 깨어난 캉디드가 말한대로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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