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아이, 어른의 거울답다

국채보상운동 당시 성금 모금 조형물.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 당시 성금 모금 조형물.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14세 상노(床奴) 김육봉 구화 1원, 9살 이용봉 세뱃돈 신화 4원 90전, 9살 이덕봉 세뱃돈 1환과 용돈 1환, 10세 김쾌문 신화 50전, 10세 김홍동 학자금 500냥, 9세 방경룡 1원, 인력거군 정화선의 10세 딸 구화 15전, 품팔이 과부의 10세 딸 구화 20전, 김치홍의 14세 딸 바느질 품삯 1원, 박처간의 8세 여종 시월이 60전, 이주현의 6세 딸 세뱃돈 3환, 수원 6세 어린이 신천동 세뱃돈 50전, 서울의 10세 김갑경이 9세 안옥남·김병돌과 함께 각 20전씩….'

과연 놀랄 만하다. 우리 역사에서 나라 언론이 이처럼 어린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미주알고주알 나날이 드러내 알린 일이 있었던가. 또 이렇게 어린이들이 세상과 어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이리도 어린아이들이 나라의 어려움에 보탬이 되겠다면서 고사리손으로 소중한 돈을 모아 바친 일이 세상 어디에 있었던가.

그러나 모두 사실이다. 1907년 3월부터, 당시 발간된 신문 여기저기에는 자고 나면 새로운 어린이 이름이 숱하게 등장했고,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온 백성을 들끓게 만든, 일제에 진 나라의 빚 1천300만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이 나라 어린이들의 상상하지 못한 기부였다. 드러난 신분과 행적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옛 아이들의 기부 행렬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의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에 의해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2천475건의 국채보상운동기록물에서 확인됐다. 사업회 김지욱 전문위원에 따르면, 특히 이들 아이를 포함한 학생·청소년의 기부만 최소 120건이 넘어 전체의 5%여서 더욱 놀라울 뿐이다.

지난달 경북도와 한국국학진흥원이 한국 보유 16종의 세계기록유산에 대해 소개한 책 '이야기로 보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에 처음 공개된 김 위원의 분석 자료는 '아이는 어른의 거울'임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특히 현재의 인색한 기부 문화를 살피면 100년 전 한국 어린이들의 기부는 오늘날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어른들의 알량한 기부가 판을 치는 오늘, 옛 어린이들의 때묻지 않고, 신분과 빈부 등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의젓함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새해 벽두 확인한 옛 아이들의 일, 널리 알릴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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