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삭발, 그 뒷얘기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권의 삭발은 낯설다.

삭발은 그동안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1970, 80년대 운동권 학생들과 민주화 인사, 노동자·농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저항의 결기를 삭발이나 단식 등을 통해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요된 삭발이나 단발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구한말 단발령, 일제 치하 학생들의 단발, 군사정권하의 두발 단속 등은 모두 일제에 의해 강요됐거나 일제 잔재의 하나였다.

1895년 일제의 강요로 고종이 먼저 단발한 뒤 전국적으로 단발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유교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저항을 불렀다. 일제 치하 초·중·고 학생들이나 1970, 80년대 청소년들에 대한 두발 단속도 특정 집단을 단일 규제로 묶으려는 정치·사회권력의 대표적 통제 문화의 하나로 꼽힌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언론과 여론의 관심 속에 삭발을 단행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따내야 할 국회의원, 원외 당협위원장 등 상당수도 자리를 함께했다. 원내 사령탑인 나경원 원내대표도 눈에 띄었다.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 2년 5개월 만에 어깨 수술을 위해 구치소를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일부 지지자들이 '박근혜 석방' 등 구호를 외쳤지만 황 대표의 삭발 소식에 가려 메아리는 크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때 대통령과 국무총리로 국정 파트너였지만, 이날은 투쟁하는 제1 야당 대표와 질환에 고통받는 수감자로서 각자의 길을 나설 뿐 상호 교감이나 관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황 대표는 왜 하필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를 나오는 날 삭발을 감행했을까. 이날 오후 5시에 할 삭발을 오전부터 대대적으로 예고하면서까지. 여기에는 의도성이 다분하다는 시각도 있다.

황 대표의 삭발 이후 한국당 인사들의 삭발이 이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공천권 확보가 여의치 않은 비례대표나 원외 인사들이 초반 삭발을 주도하다 뒤늦게 일부 지역구 의원들까지 뒤따르는 모양새다.

황 대표는 삭발 릴레이가 계속되자 '공천을 위한 퍼포먼스 삭발'이란 역풍을 우려해 최근 자제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 본인으로서는 이제 삭발 효과는 충분히 거둘 만큼 거뒀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삭발을 통해 구치소 밖 병원 입원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쏠릴 여론을 차단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황 대표로서는 '박근혜 신당설'을 비롯해 보수층의 관심이 박 전 대통령 쪽으로 모이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더욱이 총리 시절 황 대표에 대한 '문자 해임통보'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치소 의자 반입 불허'로 얽힌 양측의 좋지 않은 감정이 지금까지 계속 쌓여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 원내대표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대권에 관심을 품고 있는 그로서는 원내에서의 정책 투쟁이야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당의 투쟁은 광화문이나 청와대 집회, 삭발 등 장외로만 향하고 있어 곤혹스러운 지경이다. 이런 투쟁에 대한 관심과 공은 오롯이 황 대표에게로 돌아가기 마련이기에 떨떠름할 수밖에 없다. 한국당 안에서 장외 투쟁이 반복되는 것을 반대해온 나 원내대표의 속내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가 이번 삭발을 통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제1 야당 대표로서의 투쟁 결기는 물론 박 전 대통령과 나 원내대표에 대한 견제 등 일석삼조를 거뒀다는 뒷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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