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지기(知己)부터

임상준 경북부 차장
임상준 경북부 차장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조선 팔도에 수백 명의 세작을 보냈다. 이들은 조선의 주요 지형지물을 베끼고 민정을 염탐했다. 하지만 '왕만 잡으면 백성은 항복할 것'이라는 사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한다. 손자병법에 비춰볼 때 '지피'(知彼)에 무지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大望)에 따르면 일본 다이묘(봉건 영주)는 전투에서 지면 할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부하인 사무라이가 자신의 죽음으로 영주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영주를 잃은 휘하의 무사들은 낭인으로 떠돌다가 새 주인을 만나는 게 보통이었다.

반면 조선은 고려 때부터 계속된 일본의 약탈 행위에 이골이 났다. 이런 불만은 민족 저항운동(의병 봉기)으로 승화됐다. 관군만 상대하면 된다고 여겼던 일본은 민간 의병 봉기에 전략적 혼선이 생겼다. 결국 패전이 이어졌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 일본처럼 선진국에 올랐다는 자신에 찬 발언이었다. 얼마 뒤 우리 경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자금이 가장 먼저 빠졌고 '고치려던 버르장머리'가 IMF를 불렀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긴급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했다. 정부의 대(對)일본 강경 기조에 맞춰 국민도 '일본 제품 불매'로 호응했다. 국민 DNA(유전자)에 뿌리 박힌 반일 감정은 들불처럼 번졌고 거세졌다. 대일본 감정이 이성적으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까지 왔다.

하지만 정부나 우리 국민이 일본과 마주 달리는 기차가 돼서는 안 된다. 경제 규모가 일본의 3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가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욱'하는 감정에 자칫 우리의 위치를 바로 보지 못하는 누를 범할 수 있어서다. 축구를 이긴다고 경제까지 승리할 수는 없고 유니클로 티셔츠 한 장 안 사고, 사케를 마시지 않는다고 극일(克日)이 될 수는 없다. 한 발짝 물러서 우리부터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대한민국은 1910년 무기력하게 불법적으로 병탄을 당한 100여 년 전의 대한제국이 아니다.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일본만큼이나 많은 우호 국가를 두고 있다. 비록 경제력으로는 일본에 비해 모자라지만 국제 명분에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

차분히 국제적 동의를 얻고 우방 국가와 함께 일본의 불공정 무역 규제의 부당함을 알리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반(反)일본과 반아베를 분리해 압박해가는 프레임 작업도 필요하다.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냈다고 우리까지 '함무라비 법전'(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들이댄다면 그 나물에 그 밥밖에 안 된다.

일본의 특성을 가장 잘 연구했다는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정치가들이 국가와 국민 간의 '알맞은 위치'를 세밀히 규정했다고 봤다. 바꿔 말해, 일본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는 것을 근대국가의 주춧돌로 놓았다.

하물며 이런 일본을 이기려는 데 우리가 우리를 모른다면 미래의 '봉오동 전투'는 담보되지 않는다. 감정은 살짝 누르되 정치는 정치를, 경제는 경제를, 가계는 가계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가슴을 가져야 한다. 상대가 일본일 때는 더더욱 '지피지기'(나를 알고 적을 아는)가 병법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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