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야만의 시대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때려치워라! 물러가라!"

대구 두류공원 운동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욕설과 고함이 진동했고 주먹만한 돌멩이가 비처럼 쏟아졌다. 유인물과 현수막은 불탔다. 1987년 11월 15일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13대 대선 유세 때였다. 당시 대학생인 기자는 생생하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기억에 남는 것은 위험하고 긴박한 순간에도 끝까지 연단을 지킨 DJ의 모습이었다. DJ는 돌 던지는 이들을 향해 "내게 돌을 던지세요" "우리 이겨냅시다"라고 연신 호소했다.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은 거목답게 꿋꿋하고 당당했고, 30분 가까운 연설을 마쳤다. DJ를 '빨갱이' '거짓말쟁이'라고 여기던 대구의 어르신들조차 그 장면을 보고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돌을 던진 군중은 누구일까. 당연히 일반 시민은 아니었다. 그들은 머리가 짧고 운동화를 신고 눈매가 매서운, 정체불명의 집단이었다. DJ가 연단에 오르자마자 100명이 넘는 무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조직적으로 폭력 행위를 자행했다. 야당 총재가 '깡패 집단'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데도, 경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TV 뉴스를 보니 돌 던진 무리는 일반 시민으로 바뀌어 있었다.

노태우 민정당 후보도 그해 11월 29일 광주 유세 중 돌멩이·계란 세례를 받고 10여 분 만에 유세를 중단했다.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두 사건 모두 안기부가 '지역감정 조장'을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기획 폭력'이었다. 그 시절은 정권 차원에서 야당 총재의 연설을 방해하고 폭력배를 동원한 '야만의 시대'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광주에서 집회하다 욕설·물세례를 받았다. 한국당이 518정신을 폄하했다는 이유였지만, 폭력으로 야당 총재를 공격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하지 않다. 상당수 언론은 '혼쭐났다' '찬물 먹다' '거센 항의'라고 황 대표를 은근히 비하했을 뿐, 민주주의의 가치를 언급한 곳은 드물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과 생각·사상이 다르다고 폭력을 옹호하면 30년 전과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또 다른 '야만의 시대'가 시작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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