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다

정창룡 논설실장 정창룡 논설실장

서울 구청장 선거 당선자 수 25대 0.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아니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 일이다. 싹쓸이한 것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북 단 한 곳에서만 당선자를 냈다. 이어 열린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대권을 거머쥐었다. 여세를 몰아 2008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둔다. 보수 정당은 내리 3연승 했다.


2018년 6월엔 뒤집어졌다. 서울 구청장 당선자 수 24대 1. 이번에는 여당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를 낸 곳은 TK뿐이었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앞서 2016년 총선에선 제1당으로 부상했다. 이번엔 진보 정당의 3연승이다. 여론은 이렇듯 표변한다. 다만 먼저 3연승 했던 한나라당은 오만해지면 망한다는 선례를 남겼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은 "보수는 훌륭한 유산은 쉽사리 창조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보수란 "과거를 지키면서 현대적이어야 하고 전통을 지키면서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서히 진화하며 어렵게 만들어진 긍정적 유산과 전통, 문화를 지녀야 진정한 보수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지도층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보수는 수구가 된다. 오만해진 한나라당이 그 길을 걸었다. 물론 위기의 순간마다 새누리당으로, 또 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본질을 바꾸지 못했다.


보수 정당이 사라지는 것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정당이 끊임없이 견제와 균형을 이룬 나라일수록 발전해 온 역사가 말한다. 보수당과 노동당이 대립한 영국이 그렇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을 세운 미국이 그렇다.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가 선진국 문턱을 넘은 사례가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권 역시 유정회를 만들며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깨트린 후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수구로 몰락한 한국당은 갈 길을 잃었다. 보수를 표방한 정당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후에도 그 단초가 됐던 계파 싸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친박의 망령'이니 '목을 친다'느니 하는 계파 다툼이 여전하다.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홍준표 전 대표는 이를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 등으로 잘 요약했다. 이쯤 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한 것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 정당이란 점이 너무나 분명해졌다.


민주당은 이런 수구 정당의 궤멸을 즐기고 있다. '20년 진보 집권론'을 공공연히 흘리며 들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낀다'면서도 소득주도 성장과 탈원전 등 국민이나 기업을 볼모로 삼거나 미래 국민에게 부담을 떠안기는 경제정책을 밀어붙일 명분을 삼았다.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이 존재했다면 정책 논의라도 해 보겠지만 지금 해체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당은 그럴 여력이 없다.


한쪽 날개로 날 수 있는 새는 없다. 보수의 구심점이 될 정당이 사라진 것이지 적어도 40% 이상으로 추정되는 보수 세력이 사라진 적은 없다. 민주당은 비대해진 한쪽 날개로 기꺼이 날아보겠다지만 자칫하면 또 10년 전의 데자뷔가 될 수 있다. 현 정부가 많은 국민들이 수긍하기 어려운 정책을 마냥 밀어붙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


정신줄 놓고 있다 사라진 새누리당이 벽에 붙여 놓았던 구호는 이랬다.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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