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1938년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협상으로 평화를 지켜낼 것이라는 소망적 사고의 발로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재무장에 들어간 독일을 지켜보기만 한 결과 힘의 균형은 독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미 유럽의 정세는 전쟁 말고는 독일의 세력 확장을 저지할 수 없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유화정책의 파탄은 이런 현실에 대한 의도적 외면의 필연적 결과였다. 1938년 뮌헨회담에서 체임벌린은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할양하라는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줬다. 체임벌린은 "이것으로 우리 시대의 평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했지만,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째로 먹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히틀러는 2년 뒤 프랑스 침공 때 유용하게 써먹은 체코제 탱크 600대를 비롯해 소총 150만 정, 항공기 750대, 야포 2천 문을 덤으로 얻었다. 유화정책은 평화의 도래는커녕 히틀러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하지만 유화정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유화정책도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다만 전제가 있다. 적절한 조건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란 바로 '힘'과 '의지'다. 뮌헨회담 결과를 '노상강도'를 당한 것에 비유했던 처칠도 그런 점을 분명히했다. "유화정책 그 자체는 경우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또는 공포 때문에 취하는 유화정책은 소용없는 정책일 뿐더러 치명적이기도 하다. 강한 힘이 뒷받침되는 유화정책은 관대하고 고상하며 세계 평화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1950년 12월 14일 하원 연설)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는 이런 간단한 진리를 외면한 결과다. 김대중정부 이후 남한 정부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전제 조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조건이란 핵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지와 그 실행이었다. 역대 정부에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유화정책의 성공 조건으로 처칠이 든 '힘'이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매년 세계 군사력 순위를 발표하는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지난해 집계에 따르면 남한의 전쟁 수행 능력은 세계 11위로 25위인 북한을 압도한다.

문재인정부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려 한다.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겠다고 했지만, 외교'안보 라인에서 나오는 소리는 '대화' 일색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시행된 5'24 조치의 해제는 물론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도 허용한다고 한다. 국가안보실도 대북 대화론자로 채웠다. 이에 북한은 29일 스커드 미사일 발사로 '화답'했다. '잘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뺨을 맞은 꼴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벌써 세 번째다. 북한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 그럴 생각도 없는데 문재인정부는 가망 없는 구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돈을 잃었지만, 이번에는 딸 것으로 확신하며 다시 돈을 거는 '도박사의 오류'의 전형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고 했다. 지금도 그럴까? 그렇다면 참으로 문제다. 개인은 그래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 이유를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이렇게 갈파했다. "개인 입장에서는 '세계가 망할지라도 정의를 실현하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국가를 책임지는 정치가는 '국가가 망해도 정의를 실현하자'고 말할 권리가 없다…외형상 도덕적인 행위라고 여겨지는 행위가 초래할 정치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정치적인 도덕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국가 간의 정치')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휘하 장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적은 하찮은 벌레야. 나는 그 벌레들을 뮌헨에서 보았어." 김정은도 남한 정부를 두고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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