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오늘 밤, 대한민국의 역사가 새로 쓰여진다. 제19대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봐야 할 터인데,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질 것 같다. 새로운 출발은 희망과 기대를 던져줘야 마땅한 일이건만,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 취임식을 여러 번 지켜봤지만, 착잡한 기분이 든 때는 일찍이 없었다. 새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과 이념이 다르더라도, 새로 취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설렘과 호기심을 자아내곤 했다. '모든 것은 시작될 때 언제나 가장 좋다'는 말처럼 그 순간만큼은 국민 모두가 진심이었다. 대부분 대통령이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시나'로 끝났지만, 첫발을 내디딜 때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바랐다.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번만큼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누가 당선되든,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보다는, 그렇지 않은 국민이 훨씬 더 많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과거에도 소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때와는 너무나 다르다. 이번에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새 대통령에 대해 아주 적대적이거나 최소한 방관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5년 내내 대통령을 공격할 기회를 노리다가 틈만 보이면 행동으로 나설 그룹이다. 이들은 새 정권과 화해할 생각이 전혀 없고, 정권이 잘못되기만 바랄 것이다. 정치인들이 보수니 진보니 하며 정권 다툼을 벌이면서 국민을 얼마나 갈가리 찢어놓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성격부터 살펴보면 새 정부의 앞날이 얼마만큼 험난할지 알 수 있다. '촛불 집회'에 의해 전직 대통령이 쫓겨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촛불 혁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촛불이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대선이었다. 촛불 집회 참석자의 정서와 생각이 비슷한 후보가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고 갈 것이 확실하다. 그것이 합당한 결론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민심의 흐름이자 역사의 순리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촛불 민심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의 첫 번째 공약이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설치'라고 한다. '적폐 청산'은 오랜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찾아내 뜯어고치고 개혁하겠다는 의미다. '적폐 청산'은 이론적으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것이다. 잘못을 고치고 바로잡겠다고 하니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때가 있는 법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싸우고 다투는 나라에서 과거의 상처를 더 헤집고 까발리는 것이 좋은 일일까. 검경 수사와 법원 판결 등 사법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면 될 일을 초법적인 기구까지 만들어 조사하고 처벌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혁명적인 발상이다. 혁명 정부가 적폐 세력을 깡그리 수용소에 집어넣고 외국으로 쫓아내지 않는 이상, 반대 세력만 양산하고 여론 분열을 심화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혹자는 진보 세력의 '한풀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엿보인다. 사회정의를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보수 세력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복수 심리와 교만함이 숨어 있다. 흔히 편 가르기와 편향적인 자기 확신은 진보의 부정적인 유산이라고들 한다. 박근혜 정권도 아버지 때의 향수를 잊지 못해 과거에만 매달리다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봐야 희망이 있다.

정권을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선 안 된다. 자신만이 반드시 정의는 아니다. 힘은 가졌을지 모르지만, 반대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문재인 후보가 '국민 통합'과 '적폐 청산' 두 가지를 내걸었지만 '국민 통합'이 먼저다. 국민 통합에 도움된다면 우선적으로 수용하고 그 반대라면 폐기하는 것이 옳다. 오늘의 걱정과 두려움이 기대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지 여부는 새 집권층이 '오만'과 '아집'을 버릴 수 있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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