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한국 정치의 '백지선'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믿기지 않는 승전보를 보냈다.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 남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1그룹 A대회에서 깜짝 놀랄 성적으로 '꿈의 리그'인 1부 리그에 사상 처음으로 진입했다는 소식이다. 많은 국민들은 김연아의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소식만큼 후련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귀를 의심했다.

한국의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 승격은 1928년 국내에 빙구(氷球)가 소개된 지 89년 만의 일이다. 현재 톱 디비전에 이름을 올려놓은 아시아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 대표팀이 캐나다'러시아'미국 등 15개 아이스하키 강국과 어깨를 겨루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분석하느라 전문가와 언론이 덩달아 바빠졌다.

대표팀 선수들의 불굴의 의지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빙판에 청춘을 건 귀화 외국인 선수들도 '원팀'이 됐다. 투지는 엔돌핀을 치솟게 한다. 하지만 투지만으로는 병아리가 싸움닭이 될 수는 없다. 등록 선수라고는 233명이 고작인 국내 링크에 2014년 첫발을 내디딘 백 감독에게서 결국 답을 찾아야 한다.

그는 '새 역사를 쓰자'는 큰 꿈을 이야기했고 선수와 공유했다. 한국식 전술도 가세했다. 퍽을 다루는 기량과 신체 조건이 월등한 일류 선수들과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는지 해법을 찾은 것이다. 빠른 스피드와 강인한 체력, 자신감이 바탕이 된 전략의 승리다. 불과 3년 만에 3부 마이너 리그에서 빅 리그로 용솟음한 이유다. 감독과 선수 모두 가슴에 새긴 '와이 낫'(Why not) 정신이 2018년 평창올림픽 본선 진출권까지 제 힘으로 거머쥐게 한 가장 큰 동력이다.

일주일 후면 우리 정치도 대표팀을 뽑는다. 대통령이 이끄는 새 국정 대표팀이다. 누가 지휘봉을 잡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아이스하키에 비유하자면 새 대통령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가 경영'이라는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의 판은 아이스 링크보다 더 미끄럽다. 벌써 중국은 사드 보복 카드로 우리를 옥죄고 있고, 북한 김정은은 불장난에 여념이 없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1조원짜리 사드 청구서를 들이밀고 간보기를 하고 있다. 연일 '찔러보기' 수가 현란하다. 트럼프가 팩트에 전혀 개의치 않는 인물임을 감안하면 우리의 대응수가 궁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새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해야 한다.

트럼프의 사드 비용 청구는 우리를 우왕좌왕하도록 만든 후 그 빈틈 노리기다. 상황에 맞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조커 카드인 셈이다. 부동산 사업가로 잔뼈가 굵은 트럼프는 상대방에게 동쪽으로 가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고는 서쪽으로 가는 교란술에 능하다. 말하자면 트럼프는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칭기즈칸식 '이일대로'(以逸待勞)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먼저 싸움을 걸어 상대방을 자극하고 싸우는 척하다가는 뒤로 빠지는 기만술이다.

우려되는 것은 우리가 호들갑을 떨며 그 수법에 말려들어 가는 일이다. 만약 사드와 한'미 FTA 재협상 운운에 정치권과 국민이 서로 편이 갈리고 국론이 분열된다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보다 손쉬운 상대가 없다. 새 대통령은 최고 경영자이기에 앞서 CRO(Chief Risk Officer)라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위기를 관리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서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이 말은 위기나 변화에 둔감한 사람은 위기관리 능력 자체가 없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대선은 표를 다투는 단기전이다. 하지만 승자 앞에는 선거와는 양상이 판이하게 다른 몇 년의 장기전이 기다리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의 합리적인 국가 경영과 민생, 위기관리 능력을 주시한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이념도 정당도 뛰어넘는 지도자에 주목한다. 유권자가 그런 국정 철학과 원칙, 꿈을 가진 후보를 찾는 게 이번 대선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의 백지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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