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누가 비열한가?

'트로츠키주의자'의 정의(定義)는 레프 트로츠키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이나 분파쯤 될 것이다. 트로츠키의 사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매우 길고 복잡한 서술이 필요하지만 '러시아 혁명은 서구에서의 혁명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는 '영구혁명론'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레닌이 죽은 뒤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트로츠키가 패하면서 트로츠키주의는 그런 가치중립적 의미를 박탈당하고 '배신자'와 동의어가 됐다. 이때부터 각국 공산당은 자신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공산주의자를 '트로츠키주의자'인지와 상관없이 '트로츠키주의자'란 딱지를 붙였다. '트로츠키주의자'는 만능패가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반란군에 대항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민병대를 조직한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의 숙청이다. POUM의 지도자 안드레스 닌은 트로츠키의 비서를 지낸 적이 있지만, 1935년 트로츠키와 결별했다. 그럼에도 당시 소련의 지도를 받고 있던 스페인 공산당은 공산당 이외의 좌파 세력 제거를 위해 POUM을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말살했다. 안드레스 닌도 체포돼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스탈린이 보낸 하수인에 의한 암살도 그중 하나다.

1930년대 공산권을 횡행했던 '트로츠키주의자'와 비슷한 만능패가 21세기 한국의 대선판에도 등장하고 있다. 바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안보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꺼내 드는 '색깔론'이다. 그 방식은 자동반사적이다. 불리하면 "또 색깔론이냐"는 식이다.

문 후보는 "북한이 주적(主敵)이냐"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질문에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국방부가 할 일이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보수 진보를 떠나 문 후보의 안보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문 후보 측은 "현재 국방백서에서 주적 개념은 삭제된 것"이라며 "이 문제는 안보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색깔론에 가까운 정치 공세"라고 했다.

'팩트'부터 틀렸다. '주적'이 '우리의 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주적'이 삭제됐기 때문에 북한이 주적이냐고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주적'과 '우리의 적'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한 개념 정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국방백서가 '우리의 적'으로 명시한 대상은 '북한 정권과 북한군'뿐이다. '주적'이나 '우리의 적'이나 그게 그거라는 것이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식으로 말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라는 기의(記意)의 기표(記標)가 '주적'에서 '우리의 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노무현정부가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했다는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문 후보는 '색깔론'으로 비켜간다. 문 후보는 문제의 주장이 담긴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이 공개된 뒤 그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송 전 장관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건'을 다시 공개하자 문 후보는 '비열한 새로운 색깔론'이라고 했다. 23일 TV토론회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거짓말을 하면서 계속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 데 대한 반응도 "구태의연한 색깔론"이었다.

색깔론은 나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도자의 색깔이 국가의 정책과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면 '색깔 검증'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색깔론'으로 이를 회피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색깔을 감추기 위한 '역색깔론'일 뿐이다. 그러면 문 후보의 색깔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문 후보의 TV토론단장인 진성준 전 의원의 말은 그 판단 기준이 될 듯하다. 그는 22일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북한 당국에 물어봤다 쳐도, 그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라고 했다.

이쯤 되면 누가 비열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후보의 안보관을 검증하려는 측이 비열한가 아니면 그것을 '비열한 색깔론'으로 모는 문 후보가 비열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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