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文의 이중 잣대가 적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진(自盡)은 계산한 것이라는 손혜원 의원의 발언은 '사건'이었다. '사건'인 이유는 '천기누설'이기 때문이다. 천기란 문재인과 그쪽 진영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손 의원의 발언은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해줬다. 손 의원을 포함해 그 누구도 노 전 대통령이 '계산'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계산이 사실인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그들의 방식이다. 그 방식이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득이 되느냐를 계산해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쯤 될 듯하다. 그들은 무슨 소리냐고 눈을 부라리겠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불복 예고'와 '승복'을 오간 그들의 언행은 이를 잘 보여줬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한 뒤 그들의 입에서 일제히 나온 말은 '승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私邸)로 퇴거하면서 기대했던 "승복" 대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하자 문재인은 "국민과 헌법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죄와 승복"을 요구했다. 촛불집회에 빠짐없이 나가 "탄핵 인용"을 선동하고, "기각이면 혁명밖에 없다"며 헌재를 겁박했음을 상기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는 헌재가 '기각'이나 '각하'를 결정했다면 그들이 어떻게 나왔을지를 가늠케 한다. '불복의 촛불'로 헌재를 태워버리려 했을 것이다.

이러한 '선택적 승복'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북한은 북한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종북주의자들의 '내재적 접근'이다. 북한을 북한의 시각으로 보면 북한은 전혀 이상한 나라가 아니듯이 '문재인들'의 언행도 같은 도구상자에 넣어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일관된 논리는 우리에게 득인가 실인가라는 '계산'이고, 이는 그들의 '세계'에서 공기만큼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그 자체로 존중하고 따라야 할 근본적 가치나 규범은 없다. 우리에게 유리하면 선이고 불리하면 악이다. 탄핵 심판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문재인의 소회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지난 대선 출마를 앞두고 펴낸 자서전 '운명'(2011년)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다행히 기각됐다. 하지만 만약 인용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로 헌법재판관 2명은 인용 의견이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재판관이 다수였다면 대통령은 탄핵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줬을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을까? 국민이 그들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한 것도 아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정당하지 않음은 물론 앞으로도 다른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도 탄핵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고 헌재 재판관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엄청난 결론에 이른다. 재판관을 투표로 뽑지 않는 한 헌재는 존재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렇게 정당하지 않은 헌재의 판결을 쌍수로 환영했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자 "건강한 헌재의 결론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똑같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같은 해 노무현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에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리자 180도 달라졌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에 맞서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박근혜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헌재에 청구했을 때 문 전 대표는 정부의 '성급함'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보지도 않고 해산을 청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에서는 전혀 달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시작도 안 했다. 그럼에도 탄핵을 밀어붙였다. 참으로 편리한 이중 잣대다. 그래서 문재인의 승복 요구는 공허함을 넘어 기만적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보고 배울까 겁난다. 문재인은 적폐 청산을 얘기하지만 자신의 이중 잣대부터가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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