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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우 본부장

[춘추칼럼] 지역축제와 지역문화

유사한 방식과 형태 보여주기 반복어느 순간 규모의 경쟁으로 치달아과거·현재·미래 공동체 정체성 지속독자적 콘텐츠 개발해 차별화해야 축제는 지역문화의 꽃이다. 지역문화 영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여러 지역의 다양한 축제를 접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지역축제가 정말 많다는 점과, 그럼에도 그 많은 축제를 왜 하고 있는지 가끔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물론 지역문화의 확장과 맞물려 지역축제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전문가와 시민의 역량이 강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지역축제를 넘어 지역 특성을 살린 멋진 축제들도 많아졌다.그렇기에 축제가 많다는 것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관점에 따라 축제와 같은 문화행사를 예산의 소모나 낭비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사실상 모든 문화와 예술은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 지역축제에 대한 비판은 그 축제들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차별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유사한 방식과 형태의 축제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규모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축제를 지역문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광산업 일변도나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외부 이벤트 기획사에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취하게 됨으로써, 지역축제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틀에 맞춰 크기만 다르게 찍어내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지역축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 때문이다. 지역축제는 지역문화의 중요한 콘텐츠이고, 이를 통해 다양한 지역문화와 역사문화 자원이 결합되어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공동체의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축제가 일시적 이벤트일지라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와 시민,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오랜 신뢰와 경험을 쌓아가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이 제대로 발현된 결과를 담아내야 한다. 간혹 지역축제가 엉망이 되는 이유는 축제를 '도구'로 생각하는 권력자와 그 주변에서 축제를 통해 '장사'를 하는 이들이 결탁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건강한 지역축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첫째, 축제 규모를 키우는 일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축제를 대규모의 국제적인 축제로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축제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래야 하는 축제만 그렇게 하면 된다. 장사가 잘되는 작은 식당이 함부로 가게를 확장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둘째, 지역축제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지역축제는 '공통 문화'(common culture)를 경험하고 축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공통 문화는 곧 지역의 특이성이자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으로 나타난다. 지역축제는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잘 담아내고 드러냄으로써 지역공동체 주민들에게는 스스로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외부의 대중들 또한 그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맛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일한 기준의 경쟁이 아니라 각각의 차이가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역문화와 지역축제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다.셋째, 지역축제는 지역의 독자적인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보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지역축제를 위한 지역의 전문가 및 활동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전문가가 아니라 지역문화를 함께 일궈갈 실질적인 주체를 생산하는 일이다. 다양한 주체들이 결합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지역의 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발굴함으로써 공동의 자산으로 만들어가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지역문화 관점에서 지역사회의 건강지수를 측정한다면 어떨까? 가장 나쁜 상태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정치'를 염두에 두거나 눈치를 보면서 활동할 때이다. 소수 정치인을 위해 다수의 주민 활동가들이 존재할 때이다. 반대로 건강한 지역사회는 활동 주체들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있을 때이다. 정치는 그러한 활동의 결과로 만나는 지점에 불과하다. 정치가 전제되고 활동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활동이 전제되고 정치가 따라와야 한다. 지역사회의 문제와 퇴행은 대부분 이 두 가지가 서로 바뀌어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19-10-10 11:40:15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 대통령의 존재 이유와 검찰 개혁의 본질

국민 통합 이루어내야 할 대통령 진영 논리 대립으로 나라 두 동강검찰 개혁 핵심은 정치적 중립화윤 총장이 개혁 몸소 실천하는 셈조국 사태가 몰고 온 파장은 자못 크다.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대통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부를 통치한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이것을 토대로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전략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모두에게 책임을 진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이 꿈꾸는 대통령의 표상에 대해 다양한 약속을 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심지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진영 논리에 따른 이념적 대립으로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검찰청 앞에서는 진보 진영이 주최한 '조국 수호' 대규모 군중집회, 광화문광장에서는 보수 진영이 총동원되는 '조국 사퇴 촉구' 집회가 등장했다.문 대통령은 줄곧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쳤지만 이제는 "조국이 먼저다"로 방향을 튼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을 향해 '하조대 대통령'(하루 종일 조국 장관만 챙기는 대통령)이라는 별명마저 생길까 봐 걱정된다. 항간에는 문 대통령이 조국에게 무슨 약점이 잡혔거나, 아니면 조국 수사를 막아야 할 무슨 절박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온다.국민들이 현 시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식과 도덕, 윤리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통령"이 되길 요구한다.한편 검찰 개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청와대와 여권은 검찰 개혁과 관련해 심각한 모순과 착각에 빠져 있다. 이들은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검찰 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밝혀왔다. 더불어민주당조차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최고 적임자"로 치켜세웠지 않았는가. 더구나,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권은 검찰이 조 장관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하니까 느닷없이 '개혁 저항' '정치 검찰' '과잉 수사' '고의적 피의 사실 유출' 등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다.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국 임명 반대'와 '조국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수천 명의 전·현직 대학교수가 '조국 파면' 시국 선언을 하고, 서울대 등 수많은 대학생들이 '조국 아웃'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여는 현실은 왜 외면하는가? 최근 KBS 여론 조사(10월 26~27일) 결과 조 장관 가족 수사와 관련해 '지나치지 않다'(49%)가 '지나치다'(41%)보다 훨씬 많았다.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피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에 대해 '허용돼야 한다'(64%)가 '금지돼야 한다'(24%)보다 2배 이상 많았다.분명, 집권 세력의 생각과는 달리 민심은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살아 있는 권력인 조 장관을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는 윤 총장이 검찰 개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수사권 조정, 검찰의 수사 관행 등과 관련된 검찰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개혁은 조 장관 수사가 끝난 뒤에 진행돼야 진정성이 담보된다.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주장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단언컨대,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은 별개다. 개인 조국의 실패는 진보의 실패가 아니다. 이제 진보는 폐쇄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짓과 위선, 각종 의혹으로 진보를 깊은 수렁 속으로 빠뜨린 조국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판하고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의 미래가 보인다.

2019-10-03 09:46:20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한반도 비핵·평화에 시동 건 대통령의 정상외교

지난 24일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DMZ의 평화 구축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얻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가치를 공유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하였다. "남북 간에 평화가 구축되면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고도 언급하였다.문 대통령의 DMZ 평화지대화 제안이 보다 현실성을 갖는 이유는 지난해 9·19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군사 분야 합의서의 영향이 크다. 군사 분야 합의서에서는 DMZ를 둘러싼 육해공 지역에서 남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큰 틀의 합의를 이루었다. 군사 분야 합의서 체결 이후 이 지역에서 남북 간 충돌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우리 측은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 간 합의사항인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작업과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파주, 철원, 고성 지역에서는 시험 폭파된 GP 장소를 따라 평화의 길 조성 작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드라마틱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군사 합의에 따라 판문점 지역에서 왕래가 수월해진 것에 기인한다. 판문점 지역의 자유왕래까지는 아직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우리는 과거와는 다르게 변해가는 남북 접경지역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이처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DMZ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역대정부에서 늘 있어 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DMZ 한복판에 DMZ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접경지역을 둘러싸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지구로 지정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남북이 한반도 번영을 공동으로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명실공히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미 DMZ는 남북의 철책을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평화, 생태, 문화의 보고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특히 아직 한반도는 수십만 발의 지뢰와 세계 최대의 군사적 화기가 대치하는 정전협정 체제 아래 있다. DMZ는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는 지역으로 되어 있다. 유엔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DMZ를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문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물론 DMZ만 평화적으로 관리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DMZ의 평화지대화는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정착 과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한 단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번에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전쟁 불가, 상호 간 안전보장, 공동번영의 3원칙에 따라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고 한반도 전체의 긴장완화와 화해 협력이 전개될 때 평화지대화 작업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면서 단계적인 방식을 통해 북한의 신속한 조치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체제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한에 먼저 비핵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상응하는 조치들을 촘촘히 만들어 연착륙시켜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음은 지난 30여 년간의 협상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북한의 핵동결에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유도해 내야 함은 자명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과 '지켜보자'는 신중한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앞으로 2, 3주 내에 개최될 북미 실무협상을 지원하면서 북미가 유연한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조치들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와 DMZ의 평화지대화, 남북 관계의 발전과 공동번영의 이슈들이 상호 선순환하면서 한반도 평화발전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

2019-09-26 15:28:59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존경하는' 대신 '존중하는'

진정서를 써본 일이 있다. 지인이 갇혀 있기에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부양하는 가장임을 긍휼히 여겨 집행유예로 봐주십사 애걸복걸하는 내용이었다. 반성문보다 더 쓰기 힘든 글이 남을 위해 쓰는 진정서임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첫 문장 때문에 괴로웠다. 진정서를 어떻게 쓰는 건지 대략 알아보았는데, 하나같이 첫 문장이 '존경하는 판사님'이었다. 정말 존경하는 부모와 스승께도 왠지 쑥스럽고 오해 받을까봐 써보지 못한 말을, 생면부지의 판사에게 써야 한단 말인가?판사가 진정서를 틀림없이 읽어주고, 진정서가 판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인다고 치자. 누구나 쓰듯 '존경하는 판사님'이라고 시작하면, 판사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첫 문장을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존경하는'을 쓰지 않으면 판사의 감정이 상할지 모른다. 진짜 존경하지 않는 것으로 오독할 수도 있다. 불쾌할 수도 있다. "남들 다 쓰는 '존경하는' 말 한마디를 안 붙였네, 성의가 없어!"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친애하는'을 쓰거나 '대쪽 같으신' '사랑해 마지않는' '똑바로 판결해주시리라 믿는' '법의 수호자이신'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하늘님 같으신' 등과 같이, 남다르게 써도 좋은 소리 못 들을 테다. "뭐야, 판사한테 장난쳐?"판사는 실제로 존경할 만한 분일 테다. 공부로 따진다면 내가 한없이 우러러봐야 한다.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할 때 절로 존경심이 든다. 경제적인 면을 따지면 나같이 모자란 사람은 공경을 해도 모자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하는'이라는 말을 왜 그렇게 쓰기 싫었을까. 아무리 지인을 구하고자 하는 글이지만, 아무리 의례적인 표현이라지만,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칭이 아니었기에, 그런 판에 박힌, 진심이 담기지 않은 관용어를 쓰는 것이 저어됐을 테다.'존경하는'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발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토론인지, 회의인지, 질의인지, 취조인지, 말싸움인지 잘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의 언변 덕분에 곧잘 놀라고 자주 웃는다. 저렇게 재미난 분들이 계신데, 소설이 읽힐 리가 없다. 도무지 적응 안 되는 말이 '존경하는'이다. 주로 진행자인 위원장이 쓰는 말이다. 질의자가 여당 의원이든 야당 의원이든 꼭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이라고 칭하는 것이다.대체 왜? 혹시 반어법일까? 그렇게 보기엔 칭하는 이나 듣는 이나 너무 자연스러운 얼굴이다. 텔레비전 보는 국민을 세뇌시키려는 것일까? 국회의원님을 부를 때는 앞에 '존경하는'을 붙여야 된다고. 국회의원끼리라도 존경해주자는 것일까? 혹시 진심인 걸까? 여야를 떠나서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성별을 떠나서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준 사이더라도, 국회의원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동류 의식의 표현일까?'존경하는 의원님'도 '존경하는 판사님' 못지않게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관용어일 테다. 내가 추측한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의도가 담겨 있다기보다는 위원장쯤 되어 회의 진행을 할 때 으레 쓰는 단순 관형어일 테다. 품위 없는 언어를 사용하며 다른 당 의원을 자격이 없다고 매도하는 이들도 위원장이 되면 '존경하는 의원님'을 입에 달게 될 테다.어쩌면 '존경하는'은 법원과 국회뿐만 아니라, 판사 못지않은, 국회의원 못지않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존경하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존경하는 공화국'일지도 모른다.'존경하는'은 그만 하자. 국회의원을 '존경하는'(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는) 국민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존경받으면 안 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에게 칭찬받아야 할 머슴이니까.국민의 충복끼리 '존경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진짜 언제쯤 존경하고픈 국회의원을 볼 수 있을까) 정 무슨 말을 붙이고 싶다면 '존중하는'이 어떤가. 사람끼리 존중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못하니 '존중하는'이라는 말이라도 사용하라는 것이다.

2019-09-19 14:12:02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공공의 존재 이유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과 민간이 만나서 협력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지방분권'이 강조되면서 협치 혹은 거버넌스라는 형태의 구조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혁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간의 역량을 공공 영역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공공과 민간이 만나게 되면 항상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은 별도로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만 놓고 본다면 힘의 불균형과 속도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공공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예산'이다. 지금처럼 불안한 사회에서는 그나마 공적 자금만큼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불합리한 지원 제도에도 불구하고 공모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런 부분도 포함될 것이다. 공공의 모든 사업은 예산을 기초로 한다. 차기 연도 예산을 수립하는 시기가 되면 정부나 지자체 모든 부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정해진 예산에서 자기가 속한 부서나 사업에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때론 눈물겹다. 최근에는 추가경정예산도 치열해져서 사실상 '예산 전쟁'은 1년 내내 전개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동네 곳곳에 '예산 확보'라는 플래카드를 열심히 내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실제로 예산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으며 사업을 진행할 이유도 없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공 조직에서는 매년 정해진 사업과 예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실무자 정체성이 강할수록 이러한 원칙을 더 강조한다.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매년 하던 사업들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매년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도 비슷한 이유이고, 공공 혁신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이것은 시민들이 공공 영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시민과 가장 밀접해야 할 공공이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공공 혹은 행정의 존재 이유라는 물음에 가 닿는다. 행정은 시민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국가와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기본적인 책무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작동할 때가 많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출발해서 사고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라는 틀에 나와 있는 법과 규정을 적용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전도되어 위의 규칙으로 아래를 통제만 하는 것이다.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례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정부가 도시재생과 생활SOC 사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조만간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결과는 새로운 시설이나 공간 등 하드웨어의 변화일 것이다. 문제는 하드웨어의 변화까지는 공공이 책임을 지지만 대부분 그 후에는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공간 운영의 방향과 주체마저도 공간이 완성된 이후에 고민하는 일이 많다.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처음 예산과 사업 계획이 정해지면 바로 운영 기획과 방향, 주체 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226개의 전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 중에 현재 제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방치되어 있는 시설과 공간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런데도 지역 예술가들이나 활동가들은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 불균형과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앞으로 민관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언젠가 공공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공공 영역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자신의 존재, 즉 정체성을 스스로 완성하려고 할 때이다. 자기 스스로 완결 구조를 갖추려고 하는 순간, 더 이상 공공성이 설 자리는 없게 된다. 공공성은 철저하게 시민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약 정부나 지자체가 자기 완결성을 갖는 조직이 된다면 대기업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혁신을 하고 잘못하면 망하기라도 하지만, 공공은 잘 망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 공공의 존재 이유는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2019-09-05 11:21:18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무엇이 정의고 공정인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던진 충격과 파문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첫째,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신을 계승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촛불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는 공정, 정의, 평등이다. 조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은 이런 촛불 정신을 정면 부정한다. 조 후보자의 위선과 탐욕으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도로 아미타불 물거품이 됐다. 조 후보자의 가장 큰 과오는 현 정부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 OUT"을 외치며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 장관 되면 공정·정의 배반이다"고 했다.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23, 24일), 조국 후보자 임명에 대해 국민의 60.2%가 반대했다. 20대 젊은 세대에서는 68.6%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는 '여러 의혹 때문에 공정·정의 등을 내세울 자격이 없어서'(51.2%)가 가장 많았다. 여론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아집이고 오기다.조 후보자는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지명됐다. 그런데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법 개혁을 완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개혁을 하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도덕성과 언행일치,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국 캐슬',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단언컨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개혁은 설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라도 '읍참조국'(泣斬曺國)을 통해 정의와 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촛불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다.둘째, 집권 여당의 비뚤어진 '조국 지키기'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관계 기관과 협의 없이 조 후보자 주변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선 것을 "적폐" "개혁에 저항" "기관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주당의 이런 행태는 표리부동의 전형이고 검찰에 대한 정치적 외압이다.문 대통령은 7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한 법 집행"을 당부했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윤 총장 인사 청문회 당시만 해도 "검찰을 이끌 적임자"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 검사"라고 두둔했다. 압수수색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검찰이 적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외압을 가하는 집권당이 적폐다. 집권당은 검찰이 아니라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해 청와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집권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보며 맹목적으로 충성하면 결국 정부를 죽이게 된다.셋째,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와 법치와의 관계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애드워드 밴필드(Edward Banfield)는 '비도덕적 가족주의'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리 비도덕적이어도 용인될 수 있다"는 '가족에 대한 무한 충성 감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것은 법치 훼손의 주범이고 사회 불신의 근원이다. 부끄러움 없이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 빠져 있는 조 후보자는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법치를 완수할 수 없다.청와대에 묻는다. "각종 의혹으로 본인이 수사 대상이고 가족이 출국 금지당한 사람이 아직도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 생각하는가?" 집권당에 묻는다. "누가 적폐 대상이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가? 검찰인가 조국인가?" 조국 후보에게 묻는다. "당신이 부르짖었던 정의와 공정은 무언인가?" 친구 원희룡 지사의 충고처럼 '386 세대를 욕보이지 말고 부끄러운 줄 알고 이쯤에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행동은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되면 그것이 위선이고 기만이다.통상, 대통령이 오기를 부리고 특정 인물에 집착하며 집권당이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를 불러 대면 정부는 실패한다. 박근혜의 실패에서 보듯이 이것이 한국 정치에서 입증된 철칙이다. 조 후보자는 이제 허황된 권력에 대한 집착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불철저하고 안이했던 것을 성찰할 때다. 자신이 젊은 시절 매료됐다던 사르트르처럼 자기 안에 있는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2019-08-29 11:18:26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북한의 통미봉남은 구시대 발상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참여의 기대를 높였던 작년과는 달리 경직된 상황이다. 북미대화는 물론이고 남북대화의 중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엊그제 방한한 비건 미국 협상대표도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현재 협상을 앞둔 북미 간 샅바싸움은 지속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친서는 오고 가고 과거와 같은 위기상황은 없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반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볼 때 실질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우리 정부는 북미협상과 남북대화가 선순환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남북미 판문점 3자 회동의 성사와 조속한 북미 실무협상의 재개를 위해 노력해왔다. 3자 정상회동은 형식적으로는 미국의 손짓에 북한이 호응해서 개최된 것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러한 회동이 성사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남북 간에, 한미 간에 신뢰관계가 없었다면 이러한 회동이 성사되지 못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을 떠나기 전 우리 정부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이러한 노력을 통해 재개키로 한 북미협상에 거는 기대는 실로 크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직접 북미 실무협상의 고비를 잘 넘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광복절 경축사의 내용대로 한반도가 북핵문제나 분단 구조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미관계의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정전 체제는 남북이 당사자가 되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국들의 중첩적 이해관계가 해소되어야 한다. 특히 현 시점에서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현재 북한은 과거보다 한미 연합훈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폐지를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연례적, 방어적 훈련이고 이번에는 전작권 전환에 대비한 필요 최소한으로 운영했다. 북한은 우리의 군사훈련에 대응하는 차원이라는 명분하에 수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등을 시험 발사하고 있고 우리와 미국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내부를 결속하고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이 이러한 언행을 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만 가고 있으니 답답하다. 특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면서 남북관계의 문을 닫아 놓아서는 안 된다.현재 북한은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하면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며 북미관계에서 빠지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남북 당국 간 대화는 그렇다 하더라도 민간 교류와 협력까지 막지 말아야 한다. 우리 당국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들이 순수하게 전개하려는 교류까지 정치적 이유로 차단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협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실질적인 소장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불만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이 또한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남북 간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통한 동질성 회복만이 공동 번영과 통일의 밑거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상기한다.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나아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질 것이다. 이러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고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한미동맹과 함께 남북관계의 발전이 중요하다. 북한의 통미봉남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경제발전이라는 새로운 노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북한은 더 이상 실기하지 말고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관계를 착실히 개선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지방자치단체는 북한과의 협력에 대한 준비를 차분히 해 나가고 있다. 이후 남북 지방자치단체 간 자매결연과 교류가 이뤄진다면 공동 번영의 토대를 함께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9-08-22 13:11:59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한국소설에도 사랑을

1998~2004년, 4단계로 허용된 '일본대중문화 개방', 그때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두려워했다.한일 국교정상화(1965년)를 했다지만, 36년간 지배당한 억분함과 일본정부의 일관된 뻔뻔한 작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가실 수가 없었다. 스포츠 '한일전'이 벌어지면 너무나도 애국적이지만, 일제를 사용하는 것은 거리낌이 없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하는 이율배반 상태에서, 자존심상 일본 영화(특히 애니메이션)·비디오·만화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개방에 두려움 없이 임하라!" 일국의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는 자체가 두려움이 컸다는 얘기다. IMF에 돈 빌린 대가로 다양한 개방 압력을 받고 있었고, 세계화를 부르짖는 터수에 세계적인 일본대중문화를 계속 막을 수도 없었고, '한류'를 팔기 위해서는 '일류'도 살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해적판이 난무했다. 차라리 정상 유통시키고 세금을 뜯어내기로 한 정부의 선택은 당연한 바였지만, 불법으로도 그렇게 잘 팔리는데 합법이 되면 얼마나 잘 팔릴지 겁나지 않을 수 없었다.이미 한국 문화시장을 휘어잡던 일본 문화가 있었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일본소설은 거리낌 없이 살아남았다. 야스나리와 겐자부로의 노벨문학상 수상(1968, 1994년)은 일본소설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데 일조했을 테다. 누가 감히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 번이나 배출한 나라의 소설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루키의 등장은 치명적이었다. '상실의 시대'는 수백만 권이 팔렸다. 출판사들은 다투어 일본작가의 소설을 출판했다. 또 다른 하루키 대박을 꿈꾸면서. 일본신인문학상에 불과한 '아쿠타가와상'은 세계적인 문학상으로 오해받았고, 그 상 받은 일본작가 치고 한국에서 안 뜨고 안 팔린 이가 없었다. 대중문화에서도 그런 장악이 당연해보였다. '대중문화식민지'가 될까봐 떨었던 것이다.일본대중문화가 완전 개방된 지 15년째, 걱정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대중문화적으로 다시 식민지가 되었다'고 통분하는 분도 계시지만, 그럭저럭 방어해낸 듯하다. 가장 우려했던 호환·마마보다 무서워했던 '비디오'는 사라져버렸고, 나머지는 '불매운동' 같은 거 안 해도 나라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일본 것이라면, 국'뽕'이랄까 신토불이 정서랄까, 그게 무엇이든 무슨 내용이든 그냥 무조건 싫은 분도 있었겠지만, 좋아하지 않는 데는 나름 까닭이 있었을 테다. 일본 것은 오래전부터 자유분방한 이야기를 누구나 마음껏 쓰고 읽고 출판했던 전통 때문인지 몰라도 자질구레한 얘기에 유난하다. 주제와 의미를 중요시하는 한국대중에게는 한심하고 사소했을 테다. 한국인 역시 개인주의로 치닫고는 있지만 대의나 사상에 기반하지 않은 일본의 극도한 개인주의는 낯설기만 했을 테다. 또 일본 것은 더는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는 듯 장면의 잔혹성, 엽기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식 엽기와 잔혹이 매우 부담스러운 한국대중이 많았을 테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좀 안다고 해도 참 맥락 없는 전개로 느껴질 때가 흔하다. 가족과 공동체와 나라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 흘리는 장면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눈물나오게 하는 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한국대중은 일본 것이 도무지 정서에 맞지 않아 감동하기 어려웠고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어쩌면 한국정서와 조금은 더 가까운 미국대중문화를 향유하기에도 바빠서 일본 것은 애초에 관심 밖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의 대중문화식민지'라고 통분하는 분도 부지기수다.그런데 참 알 수가 없다. '대중'이란 명색이 붙지 않아서일까, 일본소설만큼은 꾸준히 많이 팔려왔다. 한국소설을 압도했다. 웬만한 일본소설보다 훌륭하고 재미있고 의미있고 감동있는 한국소설이 수두룩한데 하나같이 안 읽힌다. 한국대중은 한국소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사랑도 국뽕도 신토불이 정서도 나름의 분별도 발휘해주지 않았다. 최소한의 소비에도 인색했다. 구차하지만 한국작가들과 한국소설에도 최소한의 사랑을 나눠달라고 호소 드린다.

2019-08-15 14:45:53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 동네 워터파크로 변신한 초등학교 운동장

오늘날 도시에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아마도 공원이나 놀이터, 혹은 쇼핑몰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공원은 다수의 시민이 모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목적에 따라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경험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상대적으로 공동체성이 강한 놀이터는 아이들이라는 특정 세대에 한정된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어쩌면 쇼핑몰이야말로 현대 도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동체 공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공간에서 모든 시간과 경험이 자본과 소비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공동체 본래의 의미가 발현될 수 없는 구조이다.그 외에 최근 종종 언급되는 공간이 학교 공간이다. 대학은 그 잠재성에 비해 지역과의 연계에 아주 인색하거나 편향되어 있고, 중·고등학교는 입시 위주의 학습 공간으로 치우쳐 있다. 그나마 초등학교는 아직까지 자유로운 활동을 즐기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실제로 많은 초등학교에서 학교 개방이나 공간을 활용한 실험적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서울시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에서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몰놀이장으로 바꾸는 실험을 5년째 하고 있다. '성북문화바캉스'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에 대형 풀장을 비롯해 유아 풀장, 슬라이드, 다양한 먹거리와 체험부스, 공연 등을 준비하여 단순히 물놀이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 동네 워터파크의 경험을 제공하는 한여름날의 축제에 가까운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여러 자치구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성북구 고유의 특색을 살려내지는 못하고 있다.애초 '성북문화바캉스'의 취지는 소박했다.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문화와 여가 생활에서 소외되는 이들에게 짧은 기간이라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휴가를 떠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맞벌이부부나 자영업자, 그 외 소외계층 가정은 제대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에도 할머니와 사는 초등학생이 몇 년 동안 수영장 한 번 가지 못했는데 '성북문화바캉스'에 와서 정말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성북문화바캉스'로 변신한 초등학교 운동장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세대가 어우러지는 통합과 교류의 장이 된 셈이다.지역사회에서 학교는 여전히 담장이 높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특히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고유의 의미를 넘어선다. 이제 초등학교는 각 지역의 다음 세대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활동하는 공간으로서 지역사회의 매개와 연결의 공간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방과후교실 및 돌봄교실, 그 외 특화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학교에서 운동장이나 체육관을 개방하여 주민들의 생활체육이나 산책과 운동을 도와주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이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공통의 경험과 자원을 축적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 교사와 지역예술가, 학부모와 활동가들이 서로 만나야 한다. 형식적인 만남이 아닌,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사업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서 서로 필요한 사업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청과 자치단체는 이러한 사업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성북문화바캉스'처럼 초등학교 운동장이 지역의 공공공간으로서 누구나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된다면, 지역 문화의 쇠락이라는 흐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아이들에게 멋진 경험과 추억을 남기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경험과 추억이 어떤 것인지는 더 중요하다.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노파나 노인에게서 원숙미 같은 것을 보고, 아이들의 매력을 순결한 눈으로 본다." 어쩌면 지역의 공공공간에서의 경험은 그러한 시선을 갖도록 하는 출발 지점이 될 것이다.

2019-08-08 16:16:32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용기 없는 3류 정치에서 벗어나라

일본 경제 보복, 수출과 내수 부진, 한국 WTO 개도국 지위 박탈 등 경제 비상시국이다. 그런데 초당적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할 여야는 서로를 향해 죽창을 겨누고 있다. 정부 여당은 자유한국당을 향해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야당은 정부가 관제 민족주의로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행복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를 강력 비판하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확대하며 세계 여론에 호소해야 하나. 이것은 본질적인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고도의 외교력을 회복하고 협치의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최근 방문한 미국 보스턴에서 미국 민주주의 정신을 지탱하는 힘과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삶을 만났다.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타고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온 청교도들은 보스턴 근처 플리머스에 도착하기 전 배 안에서 41명이 협약을 체결했다.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시민 정치체제를 만들고 필요한 법률과 공직을 제정하여 이에 복종한다는 것에 서명했다. 중요 문제에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다수결의 원칙을 따를 것을 약속했다. 이런 메이플라워 협약에 바탕을 둔 다수결의 원칙이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한국 의회 민주주의와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법률 제·개정 절차를 관통하는 기본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 선진화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5분의 3 이상 법칙을 준수한다. 이런 국회 선진화법에 따른 선거법 개정과 사법개혁을 연계한 패스트트랙 지정이 정국 파행의 원인이 되었다.이제 국회 마비법으로 전락한 국회 선진화법은 개정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민주주의가 작동되고 성숙해진다.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도그마에 빠지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여당은 야당을 친일이라 매도하고 야당은 여당을 종북이라고 낙인찍으며 진영의 논리에 빠지면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민주주의 없는 민주화'라는 기형적인 상태가 지속된다. 흑백 논리가 아니라 흑과 백이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회색이 아름다워야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법이다.무너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은 용기에서 나온다. 보스턴에는 미국 제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도서관 및 박물관이 있다. 그곳은 케네디 대통령의 삶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각종 상징적인 유산, 그리고 동서 냉전시대에 맞섰던 그의 용기와 도전 정신이 깊이 배어 있다. 케네디는 '용기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극단적인 정치 투쟁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신념을 위하여, 대중들의 비난과 반발을 감수했던 8명의 무명 정치인을 소개했다. 이들은 자신이 소속된 정당과 동료들로부터 버림받고 언론으로부터도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케네디는 지금의 미국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세계 최강국을 건설하는 데 이들의 용기가 큰 힘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용기에 대한 이런 믿음 속에서 '뉴프런티어 공약'을 실천하고 냉전시대 최악의 핵무기 사태였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과감하게 해결했다.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의 눈치만 보고, 황교안 대표와 한국당도 태극기 세력과 친박에만 눈높이를 맞추면 용기 없는 3류 정치가 된다. 여당 의원들이 정부의 실정에 대해 가혹하게 비판하고 야당 의원들도 당 지도부의 잘못에 대해 쓴소리를 해야 몰락한 정치가 복원되고 대결 정치가 사라진다. 이제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지지자들로부터 미움 받을 용기를 보여주고 상대방의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주의가 살고 경제 위기도 극복된다.

2019-08-01 10:14:31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남북 관계에서 지자체 역할의 중요성

동서독의 경우 분단 시기 상호 방문에 있어 제약이 많지는 않았다. 동독 내 서베를린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독 주민의 왕래를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갖추었다. 1970년대 초반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을 전후하여 교통조약이 체결되고 우편 통신 관련 조약들도 체결되었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당장의 통일이 어렵기 때문에 분단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 해소에 목표를 두었다.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을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로서 인정했다. 동독은 정상 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주민 간의 왕래와 접촉을 허용하였다. 서독인들의 동독 왕래에 따른 통행료를 받을 수 있었고 동독을 찾는 서독인들에게 강제적인 환전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경제적 이득도 챙길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서독인들은 안전하게 동독을 여행할 수 있었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국가가 나뉘어도, 이념이나 제도가 달라도 자유롭게 왕래하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공산권 해체 시기 독일인들의 외침은 국가의 통일이 아니라 여행의 자유였다. 인위적인 장벽에 의해 개인의 이동과 만남이 제약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분단의 장벽 속에 갇혀 있는 남북 주민 간의 이동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은 동서독보다 상황이 훨씬 좋지 못하다. 정전 체제가 존재하는 데다 군사적 대치는 여전하다. 아직 한반도에는 남북 갈등, 남남 갈등, 북북 갈등 등 중층적 이념 대결 구조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간에는 왕래와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남북 간 교류 협력이 장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그러한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지금 북한과 새로운 협력을 도모하려 해도 대북 제재로 인해 쉬운 상황이 아니다. 남북 경제협력에 있어서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로 이렇다 할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북 제재로 인해 벌크 캐시의 이전이 허용되지 않고 있고 대북 투자와 전략 물자의 이전 금지에 따라 공단은 재개조차 하지 못한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완료 전까지 이러한 대북 제재의 예외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늦추면서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한국 정부를 오히려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해 남북 관계에 비해 올해 남북 관계는 매우 소극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그러한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북중 관계이다. 최근 북한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북중 경제협력 확대를 모색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북중 수교 70주년이고 최근에는 시진핑 주석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후 두 나라 정부 간, 민간 간 교류도 확대 일로에 있다. 대북 제재 국면에 남북 관계도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북중 관계는 보다 확대될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교류협력의 대안적 기제를 중국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답답한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 동서독의 사례처럼 어렵더라도 남북 교류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우선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이산가족들의 북한 방문과 왕래, 자유 관광을 허용해야 한다. 당국 간 이것을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여행사와 민간이 자율적으로 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성공단 재개는 무조건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초기 이행 조치로서 검토되어야 한다. 즉 포괄적으로 대북 제재를 해결하기 어려운 미국은 개성공단을 제재의 예외로 하여 북한의 초기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내는 협상 칩으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안을 미국에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북한은 남한을 개혁 개방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우리와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중국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중국이 북한의 대부분 시장을 선점하면 남북한 통합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도, 북한도 100년을 앞서서 남북 관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 다른 방안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중앙정부에서 막히면 지자체 간 교류 확대를 시도해야 한다. 이벤트 행사보다는 자치단체 간 교류의 큰 플랜을 만들고 계속 북한을 교류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통일부와 시도지사협의회가 이러한 취지를 담은 협약식을 개최했다고 한다. 남북 관계의 경색 국면에서 지방의 이해와 지자체의 역할이 이래저래 중요한 시점이다.

2019-07-26 06:30:00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말이 되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전통적 설정으로 시청률 안 나오니끝없는 비현실 치닫는 한국 드라마왜 말초신경 자극에만 애쓰는 걸까은유·풍자·해학 있는 판타지 제작을 한국 드라마는 끝없이 비현실로 치닫고 있다. 옛날엔 보통 사람의 현실을 담백하게 다룬 드라마도 꽤 했다. 연예인들이 뭔가를 하는 소위 '예능'프로, 일반인의 삶을 보여주는 '리얼다큐', 연예인과 일반인이 함께 나오는 '리얼예능'. 실상은 연출이거나 '악마의 편집'이더라도 그 '리얼'을 표방하는 프로들이 득세하는 것에 비례해, 드라마는 '현실'로부터 멀어졌다.몸이나 영혼이 바뀌는 체인지담, 시간·공간 이동담, 현대판 귀신담, 초능력 히어로담…. 이런 노골적인 판타지에 시청자는 익숙해졌다. 저게 말이 되냐고 따지는 이는 드물다. 그 어떤 판타지도 없으면 시청률이 바닥이다. 드라마는 으레 황당무계한 것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듯하다. 드라마의 만화화라고 해야 할까.물론 괴력난신(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을 이르는 말)이 전혀 없는 드라마도 있다. 그렇지만 그 '현실적인' 드라마도 판타지다. 비극적·엽기적 출생의 비밀, 갑작스러운 중병의 발발, 못된 부자와 착한 서민의 운명적인 로맨스, 이중삼중사중의 짝짓기 연애, 정의로운 '사'들의 징치…. 전통적인 설정만으로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니, 5대 강력범죄가 난무한다. 만약 드라마가 현실의 반영이라면, 한국은 폭력·절도·성범죄·강도·살인이 비일비재하는 무법천국이나 다름없다. 재벌은 사업에 힘쓰기는커녕 끔찍한 사고나 저지르고, 공권력은 범죄자와 결탁되어 있고, 그래서 범죄는 은폐되기 십상이고, '사'들도 거의 다 악당이고, 흙과 물에 억울한 희생자가 묻혀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범죄가 발생 중이다. 정의로운 영웅의 목숨을 건 활약이 없다면 구제불능이다.한국이 얼마나 정의롭고 안전한데. 한국인이 얼마나 훌륭하고 이타적인데. 한국 재벌이 얼마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인데. 드라마 만든 사람들, 애국심이 없네. 저런 사상이 의심스러운 드라마를 만들다니.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해서 발칵 뒤집히고는 하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을 가지고, 만날 일어나는 것처럼 호도하다니 불순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시청자가 있다면, 거짓말인 걸 알고 보는 괴력난신류보다 강력범죄 드라마가 더 충격적인 판타지일 테다.전혀 판타지 같지 않은 드라마도 판타지 일수도 있다. 훌륭한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낭만닥터 김사부'와 '병원선', 지구대 경찰의 애환을 그린 '라이브', 감옥도 살 만한 곳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어안이 벙벙한 '슬기로운 감빵생활'. 근래에 참 보기 드문 '리얼한' 드라마들이다. 하지만 일선 의료인과 지구대 경찰과 교도소 경험자에게 그 드라마들은 얼마나 사실적일까? 어쩌면 예능과 다큐의 '리얼'도 조작된 드라마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리얼'이 괴력난신 판타지보다 어처구니없을 수 있다.판타지의 극한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최근 방영 중이다.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리고 대통령 포함 정부 요인 수백 명을 한꺼번에 죽인 '60일, 지정생존자'. 알다시피 미드 '지정생존자'를 그대로 베꼈다.아무리 베꼈다지만, 한국에서 국회의사당을 날리다니! 미드에서는 총질이 자유로운 나라여서 그런지 정말 많이 죽는다. 한드에서는 웬만하면 죽지 않는다. 귀신인지 좀비인지는 미드처럼 죽여도, 감히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못했다. 그런데 '60일, 지정생존자'는 갑자기 수백 명을 죽여버린 것이다. 미드 수준을 한 방에 따라잡기라도 하겠다는 듯이.드라마의 '비현실'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미드에서도 베꼈지만, 일드에서도 많이 베꼈기 때문이다. 일본 만화, 일본 소설을 대놓고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도 수두룩하고, 한드에 일본에서 빌려온 판타지가 가득하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비현실'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닐 테다. 시청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아니, 판타지 없는 드라마는 이제 불가능하다. 하지만 왜 꼭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만 애쓰는 걸까. 판타지라도 은유하고 풍자하고 보듬고 해학이 있고 의미가 있는, '말이 되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2019-07-18 11:53:57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청년창업과 도시재생

최근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지역을 바꾸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유흥업소 밀집 지역에서 유흥업소 폐업 공간에 '청년창업가게'를 오픈하는 것이다. 출발은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었다. 자신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인근에 흔히 '맥양집'(맥주와 양주를 주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이라는 유흥업소가 밀집되어 있으니 유해 환경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이에 대한 행정의 대응은 강력한 단속뿐만 아니라 주민협의체 등과 지속적인 협력으로 업소 10여 곳이 문을 닫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일반적인 민원 과정과 단속, 효과 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북구에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다음 단계의 출구 전략을 고민했다. 단속 부서인 보건소와 성북문화재단이 함께 청년문화와 청년창업이라는 화두를 갖고 지역을 바꾸는 방법을 고민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폐업으로 빈 가게를 청년창업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행정안전부의 '청년창업공간만들기' 공모사업으로 예산을 마련해서 3개의 청년팀을 선발했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수십 년 된 건물은 구조적 문제와 복잡한 소유권, 법적 문제 등을 안고 있었으며 건물주를 설득해서 임대차계약을 맺는 일 등은 오롯이 실무자의 몫이었다.이렇게 수개월간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난 7월 초 '낭만덮밥'이라는 청년가게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오픈식이 있던 날, 그 주변의 왕복 800m 거리에서 90개 부스가 참여하는 '두근두근 별길마켓'이라는 행사를 열어 지역주민들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제공하였다. 성인 대상의 유흥업소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야간에는 일반인들의 왕래가 드물었던 곳이어서 동네 상권은 자연스럽게 활기를 찾을 수 없었다. 휴일 오후와 저녁 시간에 1만5천여 명의 주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모습은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주민들은 일시적인 변화 속에서 미래를 상상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청년창업가게 1호점'은 지역 변화의 새싹과 같다. 새싹이 자라나 나무가 될 것이고, 또 다른 새싹이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지역을 바꾸는 일은 공간과 거리를 바꾸는 일이자, 또한 '풍경'을 바꾸는 일이다. 도시 공간과 거리는 '계획'으로 바뀌지 않는다. 도로를 새롭게 포장하거나 가로등을 교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공간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거리를 찾아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맛집이나 예쁜 카페를 찾기도 하지만, 자신의 두 발로 걸어가면서 일종의 '갬성'(감성의 신조어)을 느낄 수 있을 때 거리를 찾아온다. 비록 대단한 계획이나 예산, 사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재생'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의 오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하나씩 찾아가는 작업은 그 과정 자체가 '도시재생'이라 할 수 있다. 막대한 예산과 사업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역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사례들이 '도시재생'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이야기한다. 변화는 어떤 하나의 사건, 한 사람의 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작지만 수많은 사건들이 축적될 때 변화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몇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갈 때 변화가 가능하다. 지역을 바꾸는 일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때 가능하다.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외면한 채 마치 어떤 단면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의 실험은 그 복잡성을 인정하면서 지역공동체와 상생하는 청년창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곧 말로만, 계획서로만, 돈으로만 하는 도시재생이 아니라 진짜 도시재생, 지역재생을 상상하는 일이다.

2019-07-11 14:25:51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왜 국내 정치에선 과감한 정치적 상상력이 없는가?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회동한 것은 분명 역사적 상징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처럼 "적대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청와대에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첫째, 현 정부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과 목표는 무엇인가? 통상 정책은 개념에서 시작한다. 개념이 명확하고 정확해야 정책 목표가 분명해지고 국민 소통이 원활해진다. 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반대로 개념이 모호하고 불확실하면 목표는 흔들리고 정책 효과성은 보장되지 않으며 정책을 둘러싼 정치 갈등은 심화된다. 스티브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올해 1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선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공유된 합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것이 하노이 2차 북미 회담 결렬의 핵심 이유일지도 모른다.문 대통령은 작년 10월 12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물질들을 전부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그런데, 문 대통령은 최근 연합뉴스 및 세계 6대 뉴스통신사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는 다소 다른 견해를 밝혔다. "영변의 핵시설 전부가 검증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변 핵심 시설만 제거해도 북한 핵 능력은 거의 사라지고 비핵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처럼 들린다.정부의 비핵화 개념이 흔들리고 핵무기와 핵 물질이 폐기되지 않은 채 비핵화 협상이 종료되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된다. 문 대통령은 작년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종전선언에서 시작해 평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 관심은 북한의 비핵화 조건이 아니라 북한이 문 대통령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충실히 따를지 여부다.둘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비핵화가 이뤄지는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수차례 했다고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작년 5월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김정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것은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할 경우 미국이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 안정을 보장하겠다는 말을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밝혔다.북한은 시종일관 체제를 보장하지 않으면 비핵화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한 '선 비핵화 후 체제보장'과는 결이 다르다. 분명, 북한의 비핵화는 김정은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따라서 정부는 북핵에 대해 감성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셋째, 문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 왜 기존의 정치 문법을 파괴하는 과감한 상상력을 통해 협치와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가? 문 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킨 북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은 기존의 외교 문법 속에서 생각하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그 상상력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으며, 역사를 진전시킬 힘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인 2000년 한 해 동안 야당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청와대에서 3번 단독 회동을 했다. 6월 17일에 6·15 남북 정상회담을 설명하기 위해, 6월 24일에는 의사들이 파업하는 '의료대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회동했다. 10월 9일 회동에서는 경제·남북문제 등 시급한 국정 현안 해결을 위해 공동협력하고 영수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하는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상생과 대화 정치 복원을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문재인 대통령도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깜짝 회동을 해서 판문점 회동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민생 경제, 남북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파격을 보일 때다. 그래야만 정치 협치도 복원되고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넓어질 것이다. 한국당 대표와 깜짝 회동을 해서 판문점 회동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민생경제, 남북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파격을 보일 때다. 그래야만 정치 협치도 복원되고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넓어 질 것이다.

2019-07-04 11:34:25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 이제 남북·북미 대화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오늘부터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G20 정상회의도 국제적으로 중요한 행사이지만 우리로서는 G20 직후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무엇보다 큰 관심사이다.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시기상으로 보나 여건상으로 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정확히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종료된 이후 북미 간에 이렇다 할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미국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다만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은 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는 과정에 최근 양 정상 간에 친서 교환이 있었다. 친서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제안이 오가는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와중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격적으로 방북하였다. 중국은 대화의 모멘텀 실종과 함께 미국의 대북·대중 압박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출구전략을 찾던 북한으로서도 시진핑 방북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한중 회담 전에 북중 회담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먼저 진행되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핀란드, 스웨덴 순방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뢰를 통한 대화를 강조해 왔고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상반기가 지나는 시점에 전개되는 이러한 상황들의 핵심은 대화 재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계기에 남-북-미 3자 정상 간 깜짝 만남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아직 그러한 분위기까지는 연결되지 못한 것 같다.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두 정상 간의 신뢰는 존재하지만 북미 간에는 아직 물러서긴 곤란한 쟁점들이 존재한다. 실무적으로 이러한 쟁점들을 다시 좁히지 못하면 정상 간 회담이 어렵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 실무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의 실무협상 제의에 응하는 것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북한이 결단만 하면 북미 간 실무협상은 다시 재개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며칠 전부터 북한 외무성 등 실무자들이 다시 날 선 비난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대북 제재 발언을 격렬히 비난하였고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져와야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다시 엄포를 놓았다. 실무회담이 개최되기 전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이번 G20 정상회의 계기로 미중 및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방북 결과를 전달할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설득했음을 강조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분명히 한다면 하반기부터는 다시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남북 분단의 최전선인 DMZ를 방문하여 평화와 대화의 메시지를 발신하길 바란다.이 과정에서 남북 간의 대화도 복원되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내부적인 단속을 강화하고 협상 결렬의 책임을 총화하는 시기를 가졌다. 당국 간 대화뿐 아니라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에 있어서도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언제든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남북이 합의한 교류협력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합의의 이행은 평화를 만들어 내는 신뢰의 힘을 보여준다고 언급하고 남북 관계가 제대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경제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아직 북미 간 담판이 남은 북한은 전면적으로 남북 관계를 복원시킬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어떤 형태로든 대화가 재개되는 것이 시급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이 중요하다. 남북 간에 담을 쳐 놓고서는 북미 대화가 잘될 수 없다.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및 북중 간 대화가 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하반기에는 이러한 국면이 조성되어 조속히 남북 관계가 복원되고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기대한다.

2019-06-27 14:05:10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문학을 사랑하라!

소설이 안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뉴스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허구(그럴듯하게 꾸민 일)보다 실제사건이 더욱 흥미진진하고 날마다 계속된다. 그 어이없고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들에 대해서 '재미'나 '흥미진진한' 같은 표현을 써서는 안 될 테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작태와 대중의 반응을 보면, 너무도 즐기는 듯하다. 어쩌면 그토록 소설보다 더 '허구'스러운 일이 실제 남발하는 까닭은 소설을 안 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문학 따위가 사람에게 무슨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문학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시나 소설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10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문학의 필요성을 인지하면 초중고에서 문학 교육을 하고, 문학에 최소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문학을 종교처럼 떠받들어 줄 것일 테다. 문학을 '긍휼히' 대우해주는 것이다.누가 생각하더라도 가장 먼저 태어난 예술은 미술, 음악, 무용일 것이다. 경험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렸든 재미로 그냥 그렸든 동굴 벽화로부터 미술은 발전했을 테고, 신호이든 감정의 반영이든 노래로부터 음악은 성장했을 테고, 제의든 축제든 다 함께 어울리는 행위로부터 무용은 진보했을 테다. 인류가 문자를 만들어 내고서야 문학은 탄생할 수 있었다. 노래를 기록한 것에서 시가 나왔고, 공동체 행사 대본으로부터 희곡이 생성되었다. 시로는 담아 내가 벅찬 이야기들이 수필이 되었고, 비로소 소설이 되었다. 시와 수필과 희곡과 소설을 평가하는 비평이 나왔다.문학이 없었어도 인류는 별문제 없이 존재했을까? 아마도 문학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과 같은 긍정적인 사회를 이루기 힘들을 테다. 문학은 감정을 발달시킨다. 개별적인 인생을 이야기한다. 이해타산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한다. 하여 타자의 처지를 헤아리게 만든다. 존중하게 한다. 배려하게 한다. 또한 문학은 생각하게 만든다. 관념이 고정되지 않도록 문제를 제기한다. 불의와 싸우도록 한다. 모순을 파헤치도록 충동한다. 이 끝없는 감정과 생각 행위, 즉 문학은 대단한 정신노동이다. 인류역사에서 문학하는 자는 언제나 소수였고, 문학이 사회 제 분야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늘 유명무실했지만, 사실은 절대적인 균형추이거나 없으면 안 되는 심장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문학과 더불어 발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동물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을 테다.어느 시대나 일정 수준의 문학인(작가뿐만 아니라 문학을 애호하는 독자)은 존재한다. 어느 시대는 문학인의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어느 시대는 급격히 상승한다. 경제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문학인이 많은 시대일수록 상식과 도덕이 통하는 사회일 테다. 문학인이 희박한 시대는 야만 사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과 감정을 조율할 줄 모르는 이들만 가득한 사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국어는 의당 가르쳐야겠지만, 국어 가르치듯이 문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문학을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이끌고 다각도로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을 도와주는 게 문학 교육이어야 한다. 평가의 조건으로,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지문으로, 오로지 하나의 해석만 가능한 것으로, 게다가 억지로, 이런 식으로 배우는 건 엉터리다. 그런 식으로 배우니까,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문학이라면 치를 떨고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다. 시와 소설과 에세이와 희곡과 비평을 즐길 권리를 청춘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면, 차라리 안 가르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문학을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문학을 접하고 자기에게 맞는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문학을 즐길 테다.감정지수가 0인 듯한, 상식이 아예 없는 듯한, 타인의 마음을 한 번도 헤아려본 적이 없는, 시나 소설을 읽고 감동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이들이 등장하는 파란만장한 뉴스는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문학을 사랑하라.

2019-06-20 18:06:54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지역문화와 생활문화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조건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SNS와 인터넷 등 디지털 문화는 개인의 일상을 더 이상 개별적인 수준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사회의 모든 단면을 모두 접하게 되면서 대중들은 자신의 일상을 구성하는 계기나 동기를 발견하는 훈련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단위의 실제적인 삶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전히 우리 삶과 관련한 많은 영역이 생활단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동과 노인 등 직접적인 복지제도와 개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은 생활단위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지역문화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다.바야흐로 '지방 소멸' 담론이 회자되는 시대에 지역문화를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지역문화는 지역을 왜곡시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라는 단어는 '경제 프레임'을 통해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적 효과 등 산업의 관점에서 지역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지역문화는 가장 객관적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환경, 기타 자원 등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다. 물론 지역의 토착 권력과 같은 왜곡된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프레임 차원에서는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그다음으로 지역문화야말로 무너져 가는 지역사회와 지역경제 등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관점을 제공한다. 지역 붕괴에 이르는 작금의 현실은 우리의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분절적이고 개별적으로 바라보면서 생겨난 결과이기도 하다.그렇다면 지역문화의 활성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중 하나로 생활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생활문화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현재 정책 용어로는 '생활문화'가 통용되고 있으나, 보는 관점에 따라 생활문화와 생활예술 등 용어가 혼용되기도 한다. 핵심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과 문화(예술)를 연결 지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생활문화'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문화 차원에서 생활문화를 어떻게 구성하고, 담아내고, 풀어내는가에 따라 지역문화의 지형도가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생활체육과 독서동아리 활동을 포함한 생활문화 영역은 모든 세대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그 영역이 앞으로 더 확장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바라볼 지점이다.생활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인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지역문화는 특정 권력과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자율적인 주민활동 영역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문화 정책 또한 생활문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이때 두 가지 정도 고민해야 한다. 하나는 생활문화가 동아리 중심으로 활동하다 보니 자신들의 활동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무대나 공간의 절대적인 부족이다.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개별적인 민원이 아니라 지역문화 정책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생활문화가 장르나 분야에 따른 구분이 명확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활동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장르와 분야 간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이들이 함께 만나는 장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광역과 기초 지자체에서의 생활문화 관련 조례 제정 또한 시급하다.생활문화 활성화가 지역문화를 바꾸고 지역사회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것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방적인 문화예술 진흥 정책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 문화 정책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문화 정책뿐만 아니라 기초 지자체 차원의 문화 정책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복제하고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에서부터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이 부분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면 지역문화를 통한 지역사회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것이지만, 이를 간과하게 되면 지역사회와 지역문화는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이다.

2019-06-13 11:32:05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 김·민·조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미사일 공격 당하고도 대북 쌀 지원법 위에 멋대로 군림 민노총에 뒷짐인사 검증 수차례 실패한 조국 옹호대통령의 신성한 권위가 무너진다문재인 정부가 정치 실종, 경제 부진, 외교 고립, 사회 혼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사면초가 상황 속에서 이른바 '김·민·조 왜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민주노총,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에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11일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 당국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정부는 북한이 5월 초 두 차례에 걸쳐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금지된 '탄도미사일'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이런 저자세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 여론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한국갤럽 조사 결과, 작년 5월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잘한다'(83%)가 '잘 못한다'(7%)를 압도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올해 5월 조사에선 긍정(45%)이 거의 반 토막 났고, 부정(43%)은 6배 이상 많아졌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의 대통령을 무시하면서 마치 은혜를 베푸는 듯한 '굴욕적이고 시혜적인 평화'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많다.정부가 5일 국제기구의 대북사업에 8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이라는 미국 고위급 인사들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차갑다. 한국갤럽 조사(5월 14~16일)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대북 지원 중단'(54%)이 '인도적 지원은 유지'(38%)보다 훨씬 많았다.민주노총의 폭력성과 무모함이 도를 넘었다. 현대중공업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수천 명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주주총회장을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하며 경찰관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전국 건설현장이 멈췄다. 일용직 근로자 상당수가 공사 중단으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법을 집행해야 할 공권력이 민노총의 눈치를 보고 관련 부서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다. 민노총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법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노조의 임금 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합법적 투쟁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경영상의 문제에 노조가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민노총의 폭력 시위는 권력과 강자를 향한 저항에서 멀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익단체를 넘어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으로 변한 민노총의 불법과 폭력에 대해 원칙과 결기로 법 집행의 엄격함을 보여야 한다.지난 2년 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인사 검증 실패와 조직 기강 해이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작년 1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소속 특별감찰단 10명이 부적절한 골프 접대에 연루되어 모두 교체됐다. 조국 민정수석의 책임론이 거세게 제기되었지만 문 대통령은 "특검반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조 수석 경질론을 일축했다. 최근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이 물러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안 맞는 인사가 있어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면서 사과했다. 그동안 조 수석과 함께 인사 검증 실패 논란의 당사자로 비판이 제기됐던 조국 민정수석은 이번에도 유임됐다.아무리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하더라도 잘못을 했으면 공평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그래야만 기강이 선다. 국민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위는 어느 누구 앞에서도 작아져서는 안 된다. 단언컨대, 대통령의 신성한 권위가 작아지고 무너지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코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2019-06-06 13:57:44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학생 '자봉' 이대로 좋은가?

자원봉사 줄임말로 '자봉'이 널리 회자된다. 자원봉사는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가 없이' '자발적', 이거 되게 힘든 일이다. 어쩌면 '자봉'은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대가 없다'지만 실상은 있고, '자발적'이라지만 본질적으로는 강제적인 봉사 행위들을 뜻하는 신조어일지도 모른다.사실 '대가 없는' 것도 문제다.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의 최고 덕목은 일한 만큼 받는 것이다. 모든 부당한 노동 문제는 노동한 만큼 대가를 주지 않았거나 얻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져야 마땅한 사회에서 대가를 받지 않는 노동의 범람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일자리가 느는 게 아니라 줄어든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작금에 '자봉'으로 충당되는 일들에,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면, 더는 자원봉사일 수는 없겠지만, 일자리는 늘어나고 소비경제는 개선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학생의 자봉은 확실하고 분명한 대가를 받는다. 봉사시간 혹은 봉사점수. 게다가 학생들의 '자봉'은 자발성을 매우 의심 받는다. 대학 입학과 각종 공무원·취직시험에 자봉을 필수조건으로 만든 자들의 취지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자봉은 그저 더욱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무원이나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갖춰야 할 스펙일 뿐이다.마침내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만 13~18세의 청소년은 학생이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회'를 이룩했다.(물론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공부 대신 노동을 하는 청소년도 상당하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학생을 누가 '자봉'이란 이름으로 무료 노동의 세계로 내몰았는가? 그들이 '자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숭고한 가치, 정말 그런 것을 학생이 얻는다고 보는가? 설령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왜 그걸 학교에서 배워야지, 무료 노동판에서 얻으라는 건가? 공부는 학원 가서 하듯이 인격도야는 사회에 가서 하라는 건가? 도대체 학교는 왜 있는 건가?자봉에도 소위 등급이 있는 모양이다. 알짜(지속성이 있고 시험관에게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봉은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지만 결국 스펙 넘치는 부모를 가진 학생에게 주어진다. 시험관이 별로 쳐주지 않지만 시간은 채울 수 있는, 배경 없는 평범한 중고등학생이-학생 본인이 아니라 부모님이-그나마 쉬이 구할 수 있는 '시간' 자봉은 대개 행사보조다. 국가보조금을 받는 무수한 단체들이 각종 행사를 꾸준히 벌이기 때문이다. 대개 선착순이기 때문에 행사 정보를 빨리 얻고 빨리 신청하면 된다. 국민 혈세 받아서 그 행사 치르는 단체가 미래를 이끌어나갈 국민(청소년)을 무보수로 부려먹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자봉은 몰라도 중·고등학생의 자봉만은 제고가 필요하다. 학생이 자봉을 통해 함양할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면이 크다. 학생(부모)의 등급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해 치열한 경쟁과 학생 간의 위화감을 조장할 뿐이다. 자봉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청소년은 왜 꼭 편의점, 피시방, 주유소, 식당 같은 데서만 일해야 한단 말인가? 일을 해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생활이 가능한 청소년에게 현재 '자봉'으로 충당되는 일자리를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은 공부(자아계발과 품성과 인격을 넓히기 위한 활동 포함)하고 독서해야 하는 이들이다. 공부 안 하는 시간은 놀아야 한다. 학생이 노는 게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운가?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자원봉사가 아닌 자봉이 진정 사라지려면, 대입시 필수조건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자봉 때문에 얻는 게 있는 자들은 자봉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애쓸 테니 쉽지 않을 테다. 조금씩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어른들끼리 대가를 주고받으며 일하자. 학생 인력이 꼭 필요하다면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자.

2019-05-23 15:44:28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지역문화와 학습공동체

한국 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인구의 급격한 변화, 기술 발달에 따른 사회 환경의 변화, 압축 근대화와 도시화에 대한 대응 등은 단순한 국면 전환을 넘어 사회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다가온다. 특히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담론은 우리 인생의 노화처럼, 알고 있지만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다. 물론 중앙정부 차원에서 '도시재생'이라는 사업에 5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준비함으로써 위기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남는 의문은 특정 지역이나 계층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그 가운데 주목하는 것으로 대학과 지식사회의 풍경이 있다. 현실은 '풍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처참하고 가혹하다. 작년 대비 올해 대학의 강좌 수는 6천655개나 줄었다. 그 수업을 담당하던 시간강사들의 비명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나는 이러한 문제가 기본적으로 대학의 문제이자 국가 학문 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 영역에서 대안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동시에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지역문화 차원에서 지식연구 네트워크와 같은 공동체를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식사회의 문제를 지역문화 생태계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찾자는 말이다.지역사회는 교육과 복지, 문화, 환경, 의료 등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현안들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파편적이고 전문화된 지식만 넘치는 사회에서 총체적 지식의 향연을 지역사회에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식의 문제를 대학과 지식인 등 특정 주체에 '위탁'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지식 생산의 구조와 방법을 지역문화 생태계 구조에서 고민할 때가 되었다.지역문화 생태계 관점에서 그동안 마을 만들기와 마을공동체 복원사업 등은 혁신적인 사례뿐만 아니라 무너져 가는 공동체를 살리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피로감에 물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아무리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는 활동과 주체는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대안이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활동을 넘어 학습공동체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때 학습공동체의 물리적 토대는 도서관과 동네 책방, 카페 등 다양한 공간을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뿐만 아니라 사립작은도서관 등이 촘촘하게 되어 있는 곳도 많다. 평생학습기관도 중요한 공간이자 자원이다.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이자 학습의 공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가 배우는 공간이다. 지식인과 대중, 전문가와 일반인, 예술가와 주민 등의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역사회라는 특정한 시공간적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에서 발휘될 수 있는 일종의 '선한 영향력'이다.다음으로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학과의 연계는 대학에 갇혀 있던 교수와 연구자, 학생들이 실제 지역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지역사회에서는 지역과 아무 관련성이 없는 외부의 전문가를 불러 일회성 행사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문화진흥원은 '인문활동가 지원사업'을 전국 단위로 수년째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 전문가들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과 성과가 지금 하는 것처럼 개인 연구자에 대한 일시적 인건비 지원 형태로 그친다면 '인문활동'은 지역의 자원으로 축적될 수 없을 것이다. 인문활동가 사업을 통해 발굴된 지식 연구자들을 지역의 도서관과 독서 동아리, 시민교육, 평생학습, 예술가 등 다양한 자원들과 연계할 수 있는 출구 전략이 절실하다.지식인의 역할과 임무를 묻는 시대는 끝났다. 지식인이 아니라 연구자로서 혹은 전문가로서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삶의 공간에서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는 차원의 실천이 필요하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넘어 지역문화 차원에서 혁신적인 모델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지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짜 지식이 필요한 시대이다. 마을공동체, 시민 자산화, 사회적경제, 공공미술, 문화예술 교육 등 할 일이 태산이다. 지식이 필요한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5-16 13: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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