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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춘추칼럼]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한 소녀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부른 노래를 감탄하면서 들었다. 어쩜 저렇게 노래를 잘하나! 귀에 쏙쏙 박히는 노랫말에 홀린 듯 몰입해 들었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라는 가사로 유추하자면, 이 노래는 '안티에이징'을 대놓고 주창한다. 나이의 제약은 걷어치우고 오늘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누리자! 나이가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나이에 따라 우리 인생은 다른 시기로 옮겨가고, 나이를 먹으며 필연적으로 다른 형태의 삶을 겪는다. 나이와 생물학적 신체, 나이와 삶의 형태와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늙음은 한물간 퇴적층이 아니다. 하지만 다들 나이 듦을 기피한다. 젊음이 늙음에 견줘 더 가치가 있다는 사회 통념이 늙음을 기피하는 태도를 부추긴다. 늙음은 인생이란 자산을 한 푼도 남김없이 거덜 낸 노름꾼이 아니건만 늙음에 대한 반감은 꽤나 넓게 퍼져 있다. 본디 젊은이가 제 아버지나 교사를 상스럽게 낮춰 부르는 '꼰대'가 이즈막엔 나이 듦을 싸잡아 혐오하는 용어로 바뀌었다. 나이 든 자는 다 꼰대 취급을 받는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늙음을 기피하는 세태를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과연 늙음은 수치고, 하찮음이며, 쓸모없음으로의 전락인가? 안티에이징은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노화를 늦추자는 것이다. 늙음을 폄하하고 젊음을 숭상하는 세태가 안티에이징의 유행을 낳는다. 동안(童顏) 숭배도 그 유행의 한 조각이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흑발에서 백발로 변한다. 이 자연스러움을 한사코 기피하는 세태가 우스꽝스럽다.물론 청춘은 풋풋하고 아름다운 시절이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한 구절을 꿸 만한 지적 능력이 없더라도 젊은 생의 추동력은 눈부시다. 불의와 부조리에 반항하고, 꿈을 향해 나아갈 때 젊음은 근력과 재능이 넘치고, 생은 약동한다. 하지만 여러 모순을 품은 채 불안정을 드러내고 실수가 잦은 것도 사실이다. 제 안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경험의 결핍과 부족 속에서 방탕에 빠질 때 젊음은 '혼란의 동맹군'(크리스티안 생제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청춘이 무조건 아름답다는 말만은 하지 말자.늙는 일은 누구에게나 낯선 첫 경험이다. 노화는 인생의 과정일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노화를 겪는다. 노화는 개체가 죽음에 이름으로써만 끝난다. 다들 망각하지만, 늙은이도 한때는 청춘이었다. 난자가 정자와 결합하고 수태가 이루어진 생의 첫 순간부터 인간은 늙음을 향해 달려간다. 늙음은 추락도, 불명예도 아니다. 이것은 약속된 생의 프로그램일 뿐이다. 우리는 늙으면서 상실과 쇠락을 겪는다. 늙음이 자랑스러운 훈장은 아니지만 숨기고 싶은 수치나 악덕도 아니다. 늙음이 빛나는 순간 그것은 쇠락 속에서 통찰과 지혜, 황혼의 평화와 같은 덕목을 드러내는 인생의 원숙기인 것이다.한국계 미국 이민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그린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 할머니 연기를 한 배우 윤여정 씨가 오스카상에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아시아 배우로서는 두 번째라고 한다. 한국 영화사 100년 만에 거둔 이 놀라운 성과를 낸 주인공은 배우 윤여정 씨다. 나이 74세의 배우는 오스카 수상식장에서 한 점의 주눅 듦 없이 당당했다. 윤여정 씨의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주름이 많은 얼굴을 보면서 '늙음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했다. 누가 늙음을 잔인한 간수이자 감옥이라 하는가?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늙음이 추하다는 소문은 유언비어이다. 그건 헛소문이고, 가짜 뉴스다. 청춘이란 영예는 거저 얻어진 것이지만 노년의 충만함과 완숙 경험을 표상하는 백발은 공짜로 얻은 게 아니다. 윤여정 씨, 당신이 한국의 배우여서 자랑스러워요! 늙음이 별처럼 빛날 때 젊음과 노년은 그 자체로 가치의 우열 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을, 그리고 백발이 보여주는 창조주와 같은 위엄은 숱한 시련과 수고의 결과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2021-05-13 11:35:06

[춘추칼럼] 매일매일 새롭게 사는 방법

[춘추칼럼] 매일매일 새롭게 사는 방법

내일 강원도 정선으로 스무 번째 오토바이 여행을 떠난다. 천명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오십이 되자 신체적으로 여기저기 조금씩 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이 그날이 그날인 채로 지내고 있었다. 쉰일곱이라는 나이에 훅 들이닥친 갱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몸 온도를 높였다.대중교통 수단으로는 나의 열증을 식혀 줄 수가 없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걷거나 자전거라도 타야 했다. 고심 끝에 작은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작은 오토바이는 강한 바람에도 휘청이는 등 불안한 면이 있으니 좀 더 큰 오토바이에 도전하기로 했다.첫 번째 관문은 2종 소형 면허 취득이다. 8월의 뙤약볕에서 열 시간 동안 가다 서는 연습을 반복했다. 일보일배하는 심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면허증을 거머쥐었다. 세계 챔피언이라도 딴 것처럼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그러곤 바로 오토바이 대리점에 가서 내 몸무게보다 네 배나 더 큰 오토바이를 덜컥 계약해 버리고 말았다. 오토바이 대리점에서는 내가 오토바이를 사들인 최고령 여성 고객이었으므로 '조심해서 타세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오토바이를 2천㎞쯤 타고 간신히 혼자서 좌로 가고 우로 갈 수 있게 되었을 즈음 한 방송국으로부터 국내 여행과 음식을 주제로 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해 줄 것을 제안받았다.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이 워낙 많다 보니 타 방송국의 유사 프로그램과 차별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열세 지역을 달려보았고 올봄 일곱 곳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 아닌가?' 하고 수도 없이 의심하였는데 무모한 도전은 어느새 '무모한 자신감'을 키워 내고 있었다.부르릉 하고 시동을 거는 순간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여행자, 탐험가가 뇌리를 스쳤다. 당나라 사람으로서 서역에 다녀와 대당서역기를 작성한 현장,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로서 중국에 다녀와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 신라시대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인도까지 여행하고 돌아온 혜초, 조선시대 실학자로 당시의 대제국이었던 청나라를 방문하여 그 모습을 고스란히 적어낸 열하일기의 박지원, 27년간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유람했던 이븐 바투타까지 그들의 가슴도 이렇게 두근거렸을까?인생도, 여행도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거라면 내 한번 다녀 보리라 마음먹고 시동을 걸었다. 부릉하는 시동 소리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려 보았다. 오십이라 안 될 줄 알았던 것들이 오십이어서 더 진하게 다가왔다.제주 바다 저 아랫녘에서 왔을 봄은 오자마자 벚꽃을 피워 냈다. 봄이 왔다고 소식을 전해 오더니 금세 색이 짙어진 개나리와 진달래가 나를 반긴다. 코끝에 진하게 머무는 향은 라일락이었다가 아카시아였다가 인동초로 넘어간다.바다는 파도를 만들어 뭍으로 바다 향을 나르고 또 나른다. 종일 쉼이 없다. 바닷물을 뚫고 올라오는 일출은 그 자체가 강한 에너지로 무엇이든 소망하면 다 이룰 것 같다. 일몰은 일몰대로 하루 열심히 산 사람들을 위로한다.나무는 한 그루였다가 두 그루였다가 작은 산을 만들고 거대한 산맥을 만들어 돌고 도는 길을 만들어 낸다. 항아리 모양으로 둘러싸인 숲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니 동이 트기도 전에 시작된 새들의 노랫소리는 차라리 교향악에 가까웠다.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한 연한 나뭇잎은 빛을 받아 차라리 눈이 부셨다. 계곡을 휘돌아 흐르는 물소리도 창공의 새소리와 더불어 돌림노래를 하는 듯하다.오토바이를 타고 내달리다 푸른 하늘이 보이면 내려서 하늘 한 번 보고 달리다 정겨운 풍경이 보이면 잠시 쉬어 심호흡도 해 본다. 달리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 안의 묵은 찌꺼기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렇게 순수했을까. 컴퓨터의 리셋(reset)을 누르면 화면이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나의 하루도 매일매일이 새롭다.

2021-05-06 11:55:15

[춘추칼럼] 화양연화(花樣年華)

[춘추칼럼] 화양연화(花樣年華)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몽마르트르 거리 풍경'이 최근 경매에서 약 175억 원에 낙찰되었다. 엄청난 금액이지만 고흐 작품치고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에게 치료비 대신 그려준 그림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에 약 880억 원에 팔렸다. 평생 900여 점가량 그림을 남겼으니 고흐의 그림 자산 가치는 천문학적이다.하지만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고흐는 평생 그림을 한 점도 팔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 재능을 알아 주지 않은 탓이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15세 때 중학교 자퇴 후 화랑 점원, 교사, 보조 목사, 서점 점원, 전도사 등 여러 일을 해 보았지만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과격한 성격 탓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시엔'이라는 매춘부와의 동거 생활은 가족과 주위 사람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그녀와 헤어진 후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된다. 그림에 재능을 보여 화가의 길로 들어서지만 알아 주는 이 없어 평생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존하였다.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비극의 절정기에 오히려 수많은 걸작을 남기고 권총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고흐의 삶이 오죽 불행했으면 조용필은 '킬로만자로의 표범'에서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고 노래했을까? 그렇게 천재는 살아서 불행했고 죽어서야 빛을 발했다. 비단 고흐뿐이랴.타임지 선정 20세기 최고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며 7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30만 부가 팔리고 있는 미국 현대문학의 정수 '호밀밭의 파수꾼'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32세 때 쓴 소설이다. 젊은 날에 발표한 작품이 워낙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이를 뛰어넘을 후속작은 나오지 않고 작품 활동도 점차 뜸해지면서 작가는 대중의 관심을 피해서 은둔하다가 더는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91세에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인생의 절정이 너무 일찍 찾아왔다.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주로 대중음악에서 사용되는 말로 노래 한 곡 반짝 히트한 후 잊히는 가수를 이르는 말이다. 수많은 가수가 히트곡 하나 없이 가수 생활을 마감하는 세계에서 히트곡 한 곡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수 있으나 한 번 맛본 단맛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아니 맛본 것보다 더 큰 고통일지도 모른다.2020년 영화계 최대 화제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면 2021년은 단연 '미나리'와 윤여정 배우이다. '미나리'는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75세 배우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상을 받는 바람에 몇 관왕 세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그녀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신문 기사 제목이 '또 韓(한) 배우 최초' '윤여정 또 수상'일 정도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영화인의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또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윤여정은 25세에 첫 영화 '화녀'로 제1회 시체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던 주연급 배우였고 한동안 전성기를 누리는 듯했다. 하지만 많은 여배우가 나이 들어 가면서 은퇴하여 젊고 아름답던 모습 그대로 대중의 기억 속에 박제되는 것과 달리 윤여정은 데뷔 후 5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주연, 조연, 악역, 할머니역 등 가리지 않고 여러 역할을 맡으며 늘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성장하였다.그녀는 말한다."내가 꽃이 아니라는 걸 알죠. 조연이란 게 거름이죠. 나는 꽃들이 잘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고 싶어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배우 윤여정은 거름이 아니라 꽃이며 조연이 아닌 주연이다.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을 뜻하는 말이다. 그녀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어쩌면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우리 삶의 화양연화는 언제쯤 올까?

2021-04-29 10:57:43

[춘추칼럼] 2030시대의 등장

[춘추칼럼] 2030시대의 등장

이번 서울·부산 재·보궐선거에서 가장 큰 특징은 2030세대의 등장이다. 과거 선거에서 스윙보터로 중도층의 영향은 많이 봐 왔지만, 2030세대의 영향은 조금 낯설다. 과거에도 2030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1980년대와 90년대 2030세대인 386세대와 X세대다. 당시는 2030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고, 유권자 구성 비율에서 50% 이상을 차지한 반면 40대는 20%를 넘지 않았다.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2030세대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든다. 가장 큰 이유는 유권자 구성 비중이 줄어서다. 2000년대 들어 50%대 이하로 감소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또 정치적으로도 무관심해 투표율이 낮았다. 반면 40대의 구성비는 20%대로 늘어난다. 그러자 40대는 40%대를 차지하는 당시 2030세대와 30%대의 50대 이상 세대의 중간 위치에서 선거판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터의 역할을 했다.그런데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했던 40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스윙보터로 2030세대가 부각되고 있다. 그럼 왜 다시 2030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는가? 2030세대의 유권자 비중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줄었다. 35% 선도 무너졌다. 유권자 수가 더 줄었는데도 영향력이 더 커진 것은 2030세대의 높은 정치 참여율과 정치 성향에서 40대와 다른 유동성 때문이다.그럼 왜 2030세대의 투표율이 높아졌는가? 그 이유는 2030세대가 처한 구조화된 저성장시대 때문이다. 이들은 IMF 이후 세대로 성장기부터 취업 등 사회 진출을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가서도 스펙부터 쌓았다. 그리고 사회에 나오면서 정치권에 많은 일자리와 공정한 경쟁 관리를 요구했다. 이러한 공정이 정치적으로 폭발한 것이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정유라 사건이며 이를 계기로 2030세대의 정치적 관심과 투표율이 급속히 높아졌다.투표율뿐 아니라 투표 성향도 바뀌고 있다. 과거 2030세대인 1980년대 386세대뿐 아니라 그 후배인 1990년대 대학을 다닌 X세대는 선배의 영향을 받아 이념 성향이 강했다. 당시 이념성의 핵심은 역사적으로는 남북한 정통성 논쟁, 경제적으로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대응, 정치적으로는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제국주의론으로 전개됐다. 대체로 자유주의적 경쟁을 비판적으로 봤으며 평등을 요구했다. 이런 이념성으로 인해 40대의 표심은 진보 성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다 보니 표심에서 유동성이 부족해 스윙보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유권자 수도 20%가 되지 않아 캐스팅보터 역할도 못 한다.반면 IMF와 2000년대 이후 대학을 다닌 2030세대는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스펙을 쌓으며 일찍이 사회 진출을 준비했다. 정치사회 의식에 있어 선배보다는 대졸인 부모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 우리나라 기업의 다국적화와 월드컵 4강 등을 경험하면서 경쟁의 수용과 남북 역사의 정통성, 미국에 대한 인식 등에서 40대와 성향을 달리했다. 그러다 보니 2030세대는 탈이념성 특징을 갖고, 선거에서 이념적 프레임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경쟁의 공정성을 요구할 뿐 아니라 다양성과 공동체적, 개인의 행복 추구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이념의 고정층이 되지 않는다.2030세대는 한때 40대와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보였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 그러했다. 그러나 19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한 40대와 달리 20대는 이재명을 더 지지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19대 대선과 그 이후 지방선거, 총선 등에서는 40대와 비슷한 투표 성향을 나타냈다가 이번 재보궐선거에선 다른 모습을 보였다. 즉 2030세대는 진보의 고정층인 40대와 달리 스윙보터의 모습을 보인다.매년 2030세대가 60만 명 이상 늘어나고, 고연령층이 40만 명 이상 사망하면서 한 해에만 100만 명 전후의 유권자 변동이 진행된다. 그럴수록 2030세대의 영향력은 더 커진다. 2030세대는 더 이상 단순히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이용할 수 있는 세대도, 정치적 영향력이 적어 무시할 수 있는 세대도 아니다. 2030세대의 등장은 정치적 현실이다.

2021-04-22 11:56:20

[춘추칼럼] 갑질에 대처하는 법

[춘추칼럼] 갑질에 대처하는 법

최근 한 야당 국회의원이 보궐선거 개표상황실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당직자의 멱살을 잡고 정강이를 걷어차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갑질은 한국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이른바 대한항공 086편 회항 사건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갑질 사례일 것이다. 2014년 12월 5일, 미국의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나는 여객기에서 대한항공 총수 가족이자 부사장인 조현아 씨가 객실 승무원의 서비스를 트집 잡아 항공기 회항을 지시하고 이륙을 지연시켰다. 이 갑질 사태로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기업의 인사 구조 변화까지 불러오는 파장을 낳았다.고용주와 피고용주, 직장 상사와 하급 직원,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원, 선배와 후배같이 부나 직위, 나이의 격차로 인해 갑과 을이라는 비대칭 구도가 생긴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갑질이란 힘의 위계에서 비대칭 관계인 갑이 을에게 윽박지르며 월권적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갑질은 갑의 우둔함과 무신경함에서 비롯되는데, 무엇보다도 개별자의 비뚤어진 인성, 인권에 대한 인지적 감수성의 부재, 즉 인격의 막돼먹음이 가장 큰 발생 이유일 것이다. 갑이 을의 인권을 침해하고 이익을 빼앗을 때 위력을 행사하는 갑질 당사자의 비루함은 그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갑질은 피해자의 내면에 트라우마를 남기며, 삶의 의욕을 고갈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태다. 갑질 피해자의 일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렇듯 타인의 인격을 짓누르고 파탄 낸다는 점에서 갑질은 극악한 범죄 행위다.갑질의 행태는 실로 다양하다. 부당한 강요, 협박, 막말(반말과 욕설), 폭행, 임금 떼먹기, 열정페이… 따위가 다 갑질이다. 과시적인 소비문화와 함께 갑질이 활개를 치는 천민자본주의 세상은 너저분하고 미친 세상일 것이다. 몇 해 전 한 방송사 외주 프로그램 제작사의 조연출 일을 하던 한 청년은 모욕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여긴 미친 세상이야!"라고 외치고 자살했다. 그런데 갑과 을은 고정불변의 관계가 아니다. 어제의 갑이 오늘은 을이 되고, 어제의 을이 오늘은 갑이 될 수가 있다. 이렇듯 갑과 을의 관계는 유동적이다.갑질 사건 때마다 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벌통을 쑤신 듯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없는가? 유교적 가부장제 내에서 작동하는 수직화된 힘의 위계와 질서를 한국 사회가 관습적으로 수용하여 문화 정서적 기율로 삼은 것도 원인 중 일부일 것이다. 또한 깊은 삶의 생태학이 부재하는 사회의 낮은 단계의 인권 감수성과 천박한 물질만능주의도 갑질이 창궐하는 데 한몫을 했을 테다.갑질은 구역질 나는 행위다. 어떤 경우에도 갑질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갑질에 대처하는 을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즉각적으로 갑의 부당한 행위에 항의하고 바로잡고자 애써야 한다. 강자들은 내심 약자의 저항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갑질을 당하고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은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바 우리 안에 잠재된 '노예의 속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예의 속성'은 힘의 위세 앞에서 저자세와 굴종을 낳는데, 이것을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처세술이라고 호도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는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을을 두고 "재빨리 영합하는 자, 개처럼 툭하면 벌렁 드러눕는 자, 비굴한 자"라고 꼬집는다. 더 나아가 "결코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는 자, 독성 있는 침이나 사악한 눈길도 받아들이는 자, 지나치게 인내심이 강한 자, 무슨 일이든 만족하는 자를 증오하고, 그런 자들에게 구역질을 느낀다."(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갑질에 대한 인내심은 우둔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노예 도덕에 대한 비겁한 굴종이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욕과 폐해에서 자신을 지키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불러온다. 갑질에 속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참아서는 안 된다. 즉각 분노하고, 항의하라! 그 정당한 분노와 항의가 당신의 자존감과 인격을 지켜줄 것이다.

2021-04-15 11:30:33

[춘추칼럼]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

[춘추칼럼]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

요리를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직업으로 택한 이후 가장 재미있는 주제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중 한 방송국에서 어린이와 미식회를 진행해 동영상 채널에 올리고 싶다는 것이다. 어린이와의 미식회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어린이들의 연령이 궁금했다.어린이들은 24개월, 6세, 7세, 9세의 남, 여아라고 한다. 어린이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다.그동안 우리는 세대에 대한 많은 담론이 있어 왔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신세대 구세대로 양분하는 것이 전부이던 것이 요즘은 나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들은 베이비붐시대로, 나는 586시대, 아래 후배들은 X세대, IMF와 월드컵을 겪어낸 시대는 Y세대 Z세대 즉 밀레니얼세대라고 부른다. Z세대까지 다 써 먹었으니 더 이상 세대를 구분할 글자도 없다. 그런데 음식을 나눌 대상이 채 열 살이 안 된 어린이라고 하니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고심이 깊어졌다.메뉴를 준비하는 내내 24개월 어린이가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내가 하는 음식은 중국 음식이라서 이 어린이들이 나를 통해서 처음으로 중국 음식을 접할 수도 있다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요리의 가짓수는 열 가지로 하고 육지에서 구할 것과 바다 재료 등 골고루 선택하고 각각의 재료에 사용할 양념은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메뉴를 선택하고 수정해 나갔다. 매일 하는 요리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이 잘 먹게 하려면 신경을 쓰고 또 써야 했다.진짜 걱정은 그다음이었다. 어린이들과 나의 나이가 50살이 넘게 차이가 난다. 이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고심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미식회 당일 어린이들은 힘찬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왔다. 막상 만난 어린이들은 의젓했고 밝았다. 24개월 된 어린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새우를 튀겨서 케첩에 조리는 요리를 하면서 풍미를 증진하기 위해서 조금 넣은 중국의 두반장에는 "좀 매운데요?"라면서 넣은 양념을 바로 읽어 냈고, 매울까 봐 케첩만 넣었더니 "단순한 케첩 맛이 나는데요?"라면서 꼭 집어냈다. 어린이들은 절대 미각을 갖고 태어난 듯 보였다.짜장면을 먹을 때는 오늘 짜장면 먹었다고 광고를 하는 것처럼 온 얼굴이 모두 짜장면으로 물들었다. 볶음밥은 한 그릇 더 달라고 곱빼기 주문이 들어왔다. 45㎝ 잉어로 만든 탕수생선 앞에서는 환호성을 질렀다.그중 아홉 살짜리 한 어린이는 꿈이 래퍼였다. "함께 노래할까? 무슨 노래를 하고 싶어?" 했더니 영국 그룹 퀸의 노래를 불렀다. 아홉 살짜리 어린이가 퀸의 노래를 하다니. 나는 서랍에서 잠자고 있던 미니 마이크도 꺼내고 컴퓨터에 꽂아서 쓰는 노래방 등도 켰다. 미식회로 시작해서 음악회가 되어 간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는 노래 하나로 5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나이도 잊은 채 함께 즐거워했다.식사하면서 노랫가락 한 소절이라도 부르면 더 행복해지는 흥 많은 한국인의 유전자를 어린이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미식회로 시작한 우리들의 시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옛날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나도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할 때 나는 즐겁지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살짝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세대마다 사용하는 어휘도 달라 간혹 세대 간 대화가 막히기도 하고, 과도하게 줄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해하는 척하기도 하고.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신세대인 밀레니얼과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나와 있다. 진정한 소통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 하루 그렇게 보내보면 어떨까.

2021-04-08 11:34:18

[춘추칼럼] 나의 담낭 절제기

[춘추칼럼] 나의 담낭 절제기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을 탈출시킨 지도자 모세가 죽은 후 유대 민족을 고향 가나안으로 인도할 책임에 힘겨워하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당부하신 말이다.쓸개 담(膽) 클 대(大), '쓸개가 크다'는 뜻의 담대(膽大)는 겁 없고 용감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용감한 사람을 '담력(膽力)이 세다'고 한다. 반대로 용기나 줏대 없는 사람을 '쓸개 빠졌다'고 한다. 인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던 시절 용기는 쓸개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쓸개, 즉 담낭(膽囊)은 '쓰다'에서 나왔다. 오월동주(吳越同舟), 고대 중국 오나라와 월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월(越)과 전쟁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은 오나라 왕자 부차는 편한 잠자리 대신 장작 위에 누워 자고 쓰디쓴 쓸개를 씹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는 말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씹어 보진 않았으나 쓸개액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쓰다고 한다. 쓸개액 담즙(膽汁)은 이름과 달리 쓸개가 아니라 간에서 만들어진다. 쓸개는 간에서 흘러온 액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즉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소장으로 내려보내 소화를 돕는데 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위치도 간 바로 밑이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쓸개가 탈 나서 아팠다. 처음에는 별로 심하지도, 자주 아프지도 않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을 때만 아프다 보니 오히려 '음식 조심하라'는 몸의 경고로 생각하고 참고 견뎠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주, 심하게 아파서 급기야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없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어 수술하기로 했다.시간 내기가 어려워 오전 진료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입원해서 오후에 수술하기로 했는데 생전 처음 하는 수술이라 살짝 긴장도 되었지만 수술대에 눕고 약물이 들어가자마자 곧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마취 회복실. 그리고 쓸개가 사라졌고 고통도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쓸개 빠진 인간이 되었고 이틀 후 퇴원, 일주일 후 업무에 복귀하였다.지금이야 그다지 어려운 수술이 아니지만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담석증은 불치병이었다. 제대로 된 마취도 없고 "배를 열면 공기에 노출된 내장에 염증이 생겨 죽게 된다"고 알던 시절이라 수술은 꿈도 못 꾸었다.1867년, 미국 의사 존 스토 밥스는 4년간 통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죽어도 좋다"며 매달리자 수술을 결심했다. 쓸개에 구멍을 뚫어 돌과 쓸개즙을 빼내어 고통을 덜어줬지만 쓸개는 그대로 둔, 돌과 즙이 쓸개에서 흘러나오는 길을 남겨 놓은 불완전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통증이 사라진 환자는 만족했다.1882년, 독일 의사 칼 랑겐바흐는 쓸개를 제거하는 새로운 수술법 개발을 위해 수년간 연구 끝에 최초의 담낭절제술을 시행했다. 16년간 통증에 시달려 체중이 40㎏이나 감소한 43세 환자의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고 6주 후 건강하게 퇴원하였다. 랑겐바흐는 이 사례를 학회에 발표했으나 무시당했다. 의사들은 여전히 쓸개에 구멍 뜷는 수술을 고집하며 랑겐바흐를 비난했다. 하지만 랑겐바흐는 좌절하지 않고 담낭절제 수술을 계속한 끝에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인정받게 되었고 담낭절제술은 이제 충수절제술(맹장 수술) 다음으로 많이 하는 복부 수술이 되었다.불과 20년 전만 해도 담낭절제술은 오른쪽 갈비뼈 밑에 20㎝ 정도 긴 수술 자국을 남기고 1, 2주의 입원 기간, 한 달 이상 회복기가 필요한 큰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1㎝ 정도의 작은 구멍만 내고 내시경을 넣어 쓸개를 잘라내는 복강경 수술이 보편화되면서 입원 기간과 회복 기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환자에게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서 수술할 정도에 이르렀다.지금 기준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어이없듯 미래 의사들은 병든 장기를 잘라내는 현대 의료를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도, 오늘날도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 의학이 가장 최신 의학이다. 그리고 새로운 의술에 몸을 맡기는 환자들과 무관심 및 비난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한 의사들 덕분에 의학은 조금씩 발전한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2021-04-01 12:06:09

[춘추칼럼] 레임덕에 다가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춘추칼럼] 레임덕에 다가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임기 5년 대통령의 레임덕 패턴을 보면 임기 초 정치사회 개혁으로 지지율을 유지한 후 중・후반에 경제로 떨어지다가 임기 말에 권력형 비리로 급격한 레임덕을 맞는다. 결국 경제가 나아지길 기다리던 국민에 대한 배신의 분노가 분출되는 과정이다.3월 들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이 예사롭지 않다. 19일 발표된 한국갤럽조사의 37%에 이어 22일 리얼미터 34.1%,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34.0%, 24일 데이터리서치 31.4%로 35% 선이 무너졌다.레임덕은 경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국민과 대통령 간의 허니문 기간은 각각 다르다. 대체로 정치사회 문제는 임기 초반에 기대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취임 이후 1, 2년 초기에 정치사회 개혁에 집중한다. 그만큼 정치사회 문제에 있어 국민과 새 대통령 간의 허니문 기간은 짧다.반면 경제의 허니문 기간은 길다. 국민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 2년 이상은 감내한다. 특히 코로나19와 해외 경제위기 같은 외부 요인이 있거나 정부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할 경우는 2년보다 더 길 수 있다.그렇다고 5년 내내 기다리지는 않는다. 5년 임기가 끝나 가면서도 경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들은 차기 대권 주자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급격한 권력 누수가 발생한다.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임기 중반 경제로 지지율이 하락한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 수행의 평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정 운영의 동력이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역대 정부에서 사용한 방법은 두 가지다.먼저 경제 부양책이다. 그러나 과거 부양책들은 효과보다 풀린 돈으로 인해 부동산 상승 등 부작용이 더 컸다. 또한 각 경제주체의 부양책에 대한 학습효과로 부양책의 지속 기간도 점점 짧아져 1, 2개월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부양책을 함부로 쓰기도 힘들다. 그래서 경제적 부작용을 피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시키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 정치사회 개혁으로 되돌아간다. 단 정부 초기와 달리 개혁 강도가 높아진다.문재인 정부도 처음에는 경제였다. 소득주도・혁신・공정성장과 사회경제 개혁 등에 집중했다. 그러나 경제정책들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논쟁에만 휩싸였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검찰 개혁을 강화한다. 이로 인해 국민 시선을 경제에서 벗어나게 했다. 또한 코로나 사태는 경제 외부 요인으로, 경제 성과에 대한 좋은 면책 사유이기도 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는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정부보다 허니문 기간이 길었다.그렇다고 문 대통령도 경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정권 초기 경제 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부동산정책의 무능, 인사에서 내로남불 논란, 검찰 개혁 등 정권 의제에 대한 피로감으로 중도층에 이어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런 가운데 LH 사태가 터졌다. 내부 정보로 투기를 한 사람들 중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안정 등 정책 수혜자이거나 현 정부에서 급격히 늘어난 공공기관의 임직원이 적잖은데, 문제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데이터리서치의 24일 조사에 의하면 현 정부의 코로나 대책 신뢰도는 53.2%다. 작년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지지율은 정부의 코로나 대책 신뢰도와 동조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지금까지의 동조현상이 깨어졌다. 정부의 코로나 대처 신뢰도가 그 나름 높음에도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 수준인 31.4%까지 하락했다. 바로 이러한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린 것은 다름 아닌 23.8%에 불과한 부동산정책 신뢰도 때문이다. 결국 이번 LH 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아 오던 부동산정책 신뢰도를 파탄 나게 하고 대통령 지지율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임기 1년여를 남기고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도 이전 대통령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지 대통령 친인척이나 핵심 권력의 스캔들이 아니라 현 정부의 기강 잡기 실패로 인한 핵심 지지층의 도덕적 해이로 국민의 분노를 산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진퇴양난이다.

2021-03-25 13:42:08

[춘추칼럼]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다 어디 갔을까?

[춘추칼럼]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다 어디 갔을까?

언제부터인가, 티브이 방송 편성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코미디 프로그램은 찾아볼 길이 없다.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티브이 지상파 방송 편성에서 왜 사라졌는지, 나는 그 사정을 알지 못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유머 1번지', 가장 최근의 '개그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유머와 위트를 뒤섞은 콩트로,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쓴 쩨쩨한 정치에 대한 날 선 풍자로 서민에게 웃음을 주며 번성기를 누렸다. 이제 코미디 프로그램은 명맥이 끊겼다. 팍팍한 나날의 삶에서 그나마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는 노릇을 하던 코미디가 없으니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주던 그 많던 코미디언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웃음이 항상 기쁜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웃음은 복잡한 프로세스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한 표현이다. 웃음은 대상과 당위적 기대 사이에 비대칭이 형성되는 찰나에 솟구친다. 잘 차려입은 신사가 거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질 때 사람들은 웃는다. 이때 제3자는 그 실수의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는 안도감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웃음에는 주체의 우월감과 짓궂음이 묻어난다. 타자의 낭패에서 즐거움의 계기를 찾는 이 무의식의 행동에 깃든 짓궂음은 악취미에 지나지 않는다.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압달라에서 살았는데,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가진 철학자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이 아흔 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온종일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구로 나와서 부둣가 노동자를 바라보며 웃어대는 그를 가리키며 노망이 들었다고 수군거렸다. 유명한 의사인 히포크라테스가 이 늙은 철학자를 관찰한 뒤 그가 미친 것도, 병에 든 것도 아니라고 단정했다. 늙은 철학자가 온종일 발작하듯이 웃어댄 것은 주민들의 부조리한 상업 활동과 어리석음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었던 것이다.생리학자들은 웃음이 인간 내부에 있는 과도한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코미디언들의 바보 연기가 웃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실이' 배삼룡, '맹구' 이창훈, '영구 없다'의 심형래 같은 바보 연기의 달인들은 무의식 중에 우리 안의 우월의식을 부추긴다. 그들이 연기한 바보스러움과 엉뚱함이 우리 안의 '자만과 착란'을 자극해 웃음을 터지게 한다. 광대의 익살극이 유행하던 시대의 천재 시인 보들레르는 웃음을 '불행의 징후'라고 했다. 웃음이 제 고통에 대한 신체적 경련일 때, 혹은 제 자만의식을 분출하는 행위일 때 이것은 내면의 불순물이고, 제 안의 '불행의 징후'를 타인에게 되비춘 것에 지나지 않을 테다.인간은 웃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웃음은 근심과 시름을 잊게 하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고, 억압과 고통에 맞서는 비판과 저항의 뜻을 담아낸다. 웃음은 근엄한 독재와 파시즘, 광신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악에 항변하는 저항의 한 방식이었다. 경제 불황에 전염병 팬데믹이 덮치면서 서민의 삶은 더욱 암울하고 팍팍해졌다. 그럴수록 유머와 웃음이 필요하다. 웃음은 현실 극복 의지를 북돋는 청량한 자극제가 되거나,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들에 찌든 마음의 치유제가 될 수도 있을 테다. 맘껏 웃다 보면 감정을 옥죄는 불안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진 자리를 '먹방'이 꿰찬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매몰된 개인 미디어에서 방출하는 '먹방'이 자아내는 웃음은 상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코미디를 대신하는 '먹방'은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비틀린 웃음만을 낳는데, 그런 웃음은 가짜 치료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진짜 즐거움으로 꽉 찬 유머들, 남이건 자기건 아무도 해치지 않는 무해한 웃음들이다. 그런 유머와 웃음들이 우리를 살리는 명약이다. 우리를 웃기는 코미디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들의 활동 무대인 공중파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하기를 기다린다.

2021-03-18 16:14:13

[춘추칼럼] 지금은 대차고 올곧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

[춘추칼럼] 지금은 대차고 올곧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

해마다 3월은 봄이 왔다는 설렘에 앞서 일제강점기에서 독립한 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더욱이 올해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보궐선거를 치러야 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정치가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선거를 치러야 하는 서울, 부산 등지에서는 당마다 대표적인 주자를 정하고 선거운동에 한창이다. 누군가에게 한 표를 찍어야 하는데 누구를 찍을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다. 누가 우리를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누구의 부동산 및 주거 정책이 좀 더 명확하고 효율적인가.각 후보는 '35층 층 높이 제한을 완화하겠다' 또는 '대대적 재개발과 재건축을 추진하겠다' '신혼부부용 한강 변 초고층 아파트를 짓겠다' '뉴타운 6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 '65세 이상 1주택자 종부세를 면제하겠다' '주택청약 세대별 할당제를 실행하겠다'고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부동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선거는 입후보한 사람에게는 될 수 있는 한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하더라도 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권력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표가 절대적일 것이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을 찾아가고 전직 대통령 부인을 찾아가고 서로 간에 나눈 대화가 신문 방송을 통해 보도되기도 한다.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대학 때 배운 맹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맹자 이루하' 편에 보면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부인과 첩을 두고 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편이 밖에 나가기만 하면 술과 고기를 아주 많이 대접받고 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부인이 "오늘은 누구랑 만나서 그렇게 드셨어요?" 하고 물으니 "오늘은 고관대작하고 마셨지" 하는 것이다.부인이 첩에게 "우리 집 남편이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저렇게 고기와 술을 대접받았다고 하면서 매일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데 그 정도면 남편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해 준 손님들이 집에도 와야 하는데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고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내일은 남편이 밖에 나가서 누구를 만나서 뭐 하고 술을 누구와 마시는지 한번 미행해 보겠다"고 하고 따라 나가 보았다.남편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다른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마침내 동광에 이르렀을 때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남편은 그곳에 가서 구걸하면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그곳에서 부족하면 또 다른 곳에서 얻어먹고 있었다.그걸 본 부인이 집에 와서 첩에게 하는 말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러러보며 살아야 하는 양반이 이러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며 서로 붙잡고 울 때에 남편은 이런 일도 모르고 또 밖에서 돌아와 잘난 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진정한 정치가는 초지일관 소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존경하는 김구 선생님은 한평생을 온전히 조국의 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바쳤다. 동학에 입도하였고 유가 학문을 공부하였으며 의병 활동에도 가담하였다. 옥중에서 새로운 문물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승려가 되기도 했다. 고향에서 농장의 관리인 생활을 하며 농민 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3·1운동 이후에는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최선봉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한평생 민족 자체의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였고 민족 통일을 위한 노력에 매진하였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하지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시장은 있는데 정치가는 없고 국회의원은 많은데 올곧게 철학을 갖고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대차고 올곧은 시장을 뽑고 싶다.

2021-03-11 11:44:25

[춘추칼럼] 누가 먼저

[춘추칼럼] 누가 먼저

대학 시절 어느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배가 난파되었는데 하나뿐인 구명보트에는 2명만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배우자, 아들, 나 이렇게 네 명이 남았습니다. 누구를 구명보트에 태우겠습니까?" 많은 의견이 다양한 이유와 함께 나왔다. 심지어 "아무도 타지 말고 온 가족이 같이 죽자"라는 주장까지.10여 년 전 의료 수준과 장비가 극도로 열악한 나라에 국내 모 투석회사가 혈액투석기 2대와 관련 물품을 무상으로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혈액투석이 낯선 그 나라 의사들에게 의료 기술 전수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투석기가 2대밖에 없는 그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평생 투석을 해야 하는 말기 신장병 환자 대신 1, 2주 정도만 투석으로 버텨 주면 콩팥 기능이 회복되어 살아날 수 있는 급성 신손상 환자에게만 투석 치료를 하고 있었다. 제한된 의료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전방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대량 전상자 분류는 의무부대의 가장 중요한 훈련 중 하나였다. 전쟁으로 많은 병사가 다치거나 죽은 상황에서 군의관과 위생병은 전장을 누비며 환자들에게 빨강, 노랑, 초록, 검정 표식을 달아줬다. 빨간색은 빨리 치료하면 살 수 있지만 위중한 환자, 노란색은 위독하진 않으나 조기 치료가 필요한 상태, 초록색은 가벼운 부상, 그리고 검은색은 적극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어렵거나 이미 사망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우선순위 표식을 보고 환자를 후방으로 옮겨서 치료하는데, 이 중증도에 따른 치료 우선순위 분류법을 '선별'을 의미하는 트리아지(Triage)라고 부른다.트리아지는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 군의관이던 도미니크 장 라레가 전쟁터 부상병을 치료 가능한 곳으로 빨리 수송하기 위해 '날으는 앰뷸런스'(Ambulance volante)라는 이름을 가진-비록 날 수는 없었지만 날 듯이 빨리 후방으로 환자를 옮기는-마차 형태의 운송 수단과 함께 처음 도입하여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현재 많은 응급실과 재난 현장에서 이 분류법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의료 장비와 침상, 인력이 바닥난 나라의 의사들은 끔찍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누구에게 인공호흡기와 중환자실을 우선 배분할 것인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환자로 넘쳐나던 일부 병원에서는 실제로 나이가 많거나 아주 위중한 환자는 인공호흡기 대신 산소만 공급받기도 하였다. 인력과 장비가 충분하다면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중환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자원과 인력 한계로 모든 환자에게 같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돼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에게 치료를 집중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선택적 의료 배급'(rationing care)을 선택한 것이다.하지만 어느 생명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평소 생명 존중을 최상의 가치로 삼던 의사들이다 보니 살릴 자와 죽을 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기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의 결과를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회생 가망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쏟을 시간과 인력, 장비를 살릴 수 있는 환자에게 더 집중하여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려는 '최대 다수의 최대 구명',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라는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의 재난 버전이라고나 할까.지난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맞을 것인가, 어떤 백신이 내게 돌아올까 관심도 많고 말이 무성하다. 백신 접종 순서는 희생자를 최소화하면서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코로나19를 물리치는 방향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백신 접종 순위에 빨강, 노랑, 초록 표식은 있어도 검은 표식은 없다. 전 국민에게 돌아갈 충분한 양이 확보되었다고 한다. 내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빠짐없이 맞는 일만 남았다.

2021-03-04 12:00:56

[춘추칼럼] 국민의힘 이제는 다를까?

[춘추칼럼] 국민의힘 이제는 다를까?

민심은 천심이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민심은 오늘날 주로 여론조사로 읽는다. 그리고 정치권이 민심을 얻었느냐 얻지 못하였느냐는 선거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DJ 사례와 최근 보수 야권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먼저 DJ의 경우 1987년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 진영에서는 김영삼·김대중 양김 단일화 요구가 컸다. 그러나 단일화 논쟁에서 수세에 있던 김대중은 단일화를 거부했는데 그 근거로 자신이 앞서 있다는 여론조사를 내세웠다.문제의 여론조사는 친김대중 진영의 단체가 실시한 조사였으나 엄밀한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김대중에게 유리한 결과였다. DJ는 이러한 여론조사 수치를 근거로 자신이 앞서 있기에 후보를 양보할 수 없다고 버텨 끝내 후보 단일화가 무산됐다.결국 13대 대선에서 노태우가 36.6%의 역대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 뒤를 이어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1%로 김대중은 3위를 차지했다.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단일화를 거부한 양김 중 3위를 한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인지라 결국 DJ는 자발적으로 정치 은퇴까지 선언한다.그 후 김대중은 1992년 14대 대선에서도 13대 대선의 정치적 책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전략을 바꾼다. 그 유명한 뉴DJ플랜이다. 이때 뉴DJ플랜은 이미지 전략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여론을 따르는 것이다. 자신의 DJ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DJ로 스스로 바뀌어 다가간 것이다. 물론 당시 재야 세력의 반발은 컸다. 그럼에도 DJ는 여론에 대한 대전환을 했고 여론을 바로 읽고 따랐기에 대통령의 꿈을 이루게 된다.그로부터 20년이 흘러 2017년 19대 대선에서 보수 진영은 홍준표를 내세워 문재인과 대결했다. 그러나 결과는 문재인 41.1%, 홍준표 24.0%로 보수 진영이 역대 최대 참패를 한다. 당시 홍준표 후보는 선거 기간 동안 여론조사에 대해 가짜 여론조사라거나 내가 이긴다는 식으로 여론조사를 무시했다.그러다 보니 홍준표는 선거 기간 동안 선거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었고 끝까지 홍준표 특유의 선거 캠페인을 이어 갔으며 결국은 선거에 참패한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미래통합당으로 그리고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고 비대위 체제로 생존을 위한 변신을 시도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에서 연이어 참패했다. 그리고 올 4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등 각종 여론 지표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왜 국민의힘 관련 각종 지표가 지지부진한가? 그 이유는 여론을 대하는 보수 진영의 태도 문제다. 국민의힘이나 과거 보수당의 여론관 특징을 보면 첫째 여론을 자신의 시각으로 읽는다. 국민의 눈이나 심지어 지지층인 보수의 눈으로도 읽지 않는다. 둘째는 취사선택이다. 즉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도 다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셋째는 여론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니 여론은 아주 단순해 보인다. 그야말로 아전인수 격이다. 여론이 무섭거나 두렵지도 않다. 그러니 따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맞서거나 바꾸려 든다.결론적으로 이러한 대중관은 국민을 객체로 본다. 기본적으로 민심을 따르기보다는 가르치거나 맞서거나 때에 따라서는 조작 통제의 대상이다. 이렇게 되는 순간 정치인은 갑이 되고 국민은 을이 된다. 즉 정치인의 갑질이다. 그것도 여당도 아닌 정권을 잃은 야당인 국민의힘이 이런 여론관을 가지면 각종 여론 지표가 낮을 수밖에 없다.곧 큰 선거가 다가온다. 선거는 여론을 정확히 읽고 시민이나 국민이 원하는 정책과 공약, 그리고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쪽이 올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대통령 선거의 승자가 될 것이다. 대선 3수를 한 DJ는 늦게라도 이러한 민심을 알았기에 대통령 꿈을 이루었다. 탄핵을 당하고 이어 대선, 지방선거, 총선에서 연이어 참패한 국민의힘이 이번엔 다를 수 있을는지 여부는 오로지 민심을 제대로 읽어 내느냐에 달렸다.

2021-02-25 12:12:51

[춘추칼럼]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에 생각한 것들

[춘추칼럼]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에 생각한 것들

화요일은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재활용할 종이, 박스, 비닐, 유리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을 분리해서 내놓는다. 여러 가구에서 나온 생활 쓰레기가 작은 동산을 이룬 것을 볼 때마다 가느다란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가 이용하던 신선식품 배송업체는 식품을 제각기 다른 박스에 담아 배송한다. 박스를 줄여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을 했으나 시정되지 않아 배송업체를 바꾸었다. 새 배송업체는 주문 식품을 한 재활용 비닐 박스에 넣어 배송하고 다음 배송 때 수거해 간다. 따로 버릴 박스가 없으니 그만큼 분리수거의 필요를 덜어 주는 것이다.지구 인구가 늘면서 쓰레기 배출량도 늘어난다. 자연을 가공하는 문명화 과정에서 쓰레기 발생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손에서 설계와 제작을 거쳐 나온 물건은 본디 쓰임을 다하고 폐기될 때 쓰레기로 돌아간다. 쓰레기란 인간의 관점에서 효용 가치가 다한 자연이다. 인간이 생산과 창조 활동을 하는 곳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생산의 이면에 가려진 비밀이고, 그 처리는 인간이 풀어야 할 영구적 난제 중 하나다.산업 쓰레기와 생활 쓰레기가 지구의 생태학적 균형을 깨트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쓰레기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일까? 누군가에겐 쓰레기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자원이다. 쓰레기는 그 용도를 미처 찾지 못한 물건일지도 모른다. 쓰레기는 매혹과 혐오라는 양면성을 다 갖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쓰레기는 모든 창조의 산파인 동시에 지극히 가공할 만한 장애물이다"고 말한다.지구 인구가 10억 명이 되는 데 20만 년이 필요했지만, 70억 명이 되는 데 불과 2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구에 생육하고 번성한 인류는 자연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과부하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지구 자원을 제 마음대로 퍼 쓰는 인류의 번성은 지구 생태계에는 미증유의 재앙일 테다. 인류는 육류와 동물성 제품을 얻으려고 680억 마리의 가축을 사육한다. 가축 사육에 어마어마한 곡물을 쓰고, 울창한 숲을 목초지로 바꾸며, 인간이 쓰는 담수 3분의 1을 쏟아붓는다. 축산업이 전 지구적으로 온실가스의 18%를 발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로 이루어진 온실가스는 기후재난의 주요 원인이다.지구는 지난 세기보다 더 자주 기상이변을 겪는다. 초강력 태풍이 오고, 해수면은 상승하며, 잦은 가뭄과 물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대기와 해양은 각종 쓰레기로 뒤덮여 간다. 사하라사막에 난데없는 폭설이 내리고, 페루 바닷가는 죽은 정어리 떼로 뒤덮이며,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강으로 떨어져 나와 홍수를 일으켜 인근의 수력발전소 댐을 붕괴시키고 마을을 휩쓰는 것도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기후재난은 지구 생태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전조 증상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날씨다'에서 "기후변화는 재깍거리는 시한폭탄이다"고 경고한다. 우리 안에 퍼진 '무관심 편향'이 기후재난이라는 시한폭탄이 재깍거리는 시작점이다.오늘 태어난 아기에게 "지구라는 초록별에 온 걸 축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인류는 미래 세대에게 생태적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 깨끗한 대지와 공기들은 미래 세대가 누릴 것을 빌려 쓰는 셈이다.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땅에 묻혀 썩는다. 하지만 잉여의 쓰레기는 늘 골칫덩이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는 대양에서 섬을 이루고 떠돈다. 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탄소발자국을 줄이자고 한다. 그것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은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인간 사회는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초유기체, 즉 하나의 덩어리다. 한 사람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이고, 모두의 문제는 결국 한 사람의 문제다. 인류가 현재 수준의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배출한다면 지구는 곧 쓰레기로 뒤덮일 테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 각자가 생태적 각성과 더불어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윤리적 실천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2021-02-18 11:19:43

[춘추칼럼]김치,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

[춘추칼럼]김치,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

입춘을 앞두고 강풍과 한파가 동시에 휘몰아치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은 때아닌 김치 종주국 논란으로 뜨겁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김치 종주국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중국이라고 한다.문제의 중심이 된 곳은 구독자 1천400여만 명을 둔 중국인 유튜브였다. 유튜브를 찾아들어가 보니 출연자가 밭에 나가 뜯어온 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밀가루 풀을 쑤고 풀이 식기도 전에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을 하여 김치를 담근다. 그리고 일주일 후 돼지고기를 썰어 넣어 김치찌개를 만들고 해시태그에 'chinese food'라고 달아 놓았다.이것을 본 젊은 한국인 유튜버가 김치는 한국이 종주국인데 왜 김치를 chinese food라고 하느냐고 한 것에서 논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 젊은이가 인터넷상에서 벌인 논쟁에 두 나라의 언론이 반응을 하였고, 김치와 관계가 있는 관련 기관에서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나 보다.김치는 중국에서 파오차이(泡菜)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이 논쟁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김치는 고유명사다. 중국에서도 김치를 김치라고 부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중국어 발음에는 '김'이라는 발음이 없다. 가장 근접한 발음을 찾아봐도 '진'아니면 '신'이다. 그렇다면 진치, 신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 발음으로 김치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그런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한국의 김치를 표현할 말을 찾아야 하는데 그 발음은 없고 중국 쓰촨성에 파오차이라는 요리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이니 한국파오차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김치는 배추를 절여 젓갈과 고춧가루, 새우젓 등을 무에 버무려 배추 사이사이에 속을 채우고 김칫독에 꾹꾹 눌러 담은 후 발효가 되면 먹는다. 반면 쓰촨파오차이는 산초, 계피, 팔각, 월계수 잎 등 향신료를 물에 넣고 끓여서 식힌 다음 소금, 파, 마늘, 양배추, 무, 당근, 셀러리를 썰어 넣고 고량주를 넣는다. 가장 빠르게는 일주일에서 보름 후부터 재료만 건져 먹고, 그 국물에 채소를 넣고 발효되면 또 재료만 건져서 먹는 음식이다. 우리의 김치가 김치국물까지 모두 먹는 반면 파오차이는 국물을 먹지 않는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이렇게 다르다.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므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 김장을 담가 저장을 해야 했다. 고춧가루는 색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방부제 역할을 하고, 젓갈은 발효를 촉진시켜 맛난 맛을 낸다. 쓰촨파오차이를 만들어내는 쓰촨 지역은 중국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땅이 움푹 들어간 분지를 이루고 있다. 여름은 무척 습하고 더우며 겨울은 속으로 배어드는 음습한 추위가 스민다. 따라서 여름은 더위를 식힐 음식으로, 겨울은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음식으로 파오차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이와 같이 음식은 자연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먹기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어지고 전파된다. 전파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음식문화와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융합되기도 하면서 또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 정착되기도 한다. 간혹 어떤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긴장 상태가 되더라도 민간인들이 문화, 예술 방면의 교류를 통해서 두 나라 사이의 얼음을 녹이는 과정을 만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김치 논쟁이 정치적으로 번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된다.우리는 그동안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식 세계화'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 결과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식에 대해, 혹은 김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종주국의 개념은 '어디서 발원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가느냐'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 김치를 어떻게 만들어 잘 팔 것인가, 각 방면으로 연구를 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는 뉴욕의 한복판에 김치는 한국 것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통 크게 김치는 세계인의 것이라고 써야 할 때가 아닌가.

2021-02-04 11:28:40

[춘추칼럼] 100년이 지났어도

[춘추칼럼] 100년이 지났어도

"전염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학교·극장·상점은 폐쇄되고 모임도 금지되었다. 마스크 착용은 의무화되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대중교통 이용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은 심지어 담배 피우려고 마스크 벗는 사람까지 체포하여 벌금을 부과하거나 구류에 처했다. 장례식은 15분 내에 끝내도록 제한되고 도시마다 관이 동나고 묘 파는 인부와 장의사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도로에 화학약품이 살포되고 일부 도시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 없이는 출입할 수 없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자 자원봉사자, 군의관을 동원했으며 급기야 의과대학 3, 4학년 과정을 중단하고 학생을 병원에 투입해 의료 업무를 맡겼다."익숙해 보이는 이 장면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겪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100년 전 16억 세계 인구 중 6억 명 감염에 5천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 당시 상황이다.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스페인 독감.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이 정식 명칭이지만 보통 '스페인 독감'으로 부르고 있다. 사실 스페인은 억울하다.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미국 캔자스에서 시작돼 인근 신병 훈련소로 확산된 독감은 1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 파견된 미군을 통해 유럽 전역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참전국들은 적국에 이로운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고 아군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검열을 강화하는 등 독감 관련 보도를 철저히 통제하였다. 하지만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에서는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스페인에서만 8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독감과 그 영향에 대해 깊이 있게 보도하였다. 여기에 더해 국왕 알폰소 13세까지 감염되면서 스페인은 오명을 뒤집어썼다.예년 독감과 달리 스페인 독감은 폐렴으로 빠르게 진행하여 걸린 지 2, 3일 만에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다. 밤늦도록 카드 게임을 같이 한 여성 4명 중 3명이 다음 날 아침에 죽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특이한 점은 젊은 인구의 높은 사망률로 희생자 대부분이 65세 이하였으며 특히 20~45세가 전체 사망자의 60%를 차지하였다. 세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1차 세계대전 희생자보다 3배나 많아지자 전쟁은 서둘러 매듭지어졌고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독감은 자취를 감추었다.그리고 100년이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어느 도시에서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였다. 처음에는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그저 중국의 한 도시에서 생긴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교통의 발달과 사람의 이동이 많다 보니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국경을 봉쇄하였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100년 만에 다시 겪는 대유행! 워낙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보니 100년 전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었다. 이동 제한, 모임 금지, 상점 폐쇄, 도시 봉쇄 그리고 마스크와 거리두기, 손 씻기.하지만 우리는 지난 100년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2018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표한 스페인 독감 100주년 기념 구호 '우리는 기억하고 대비한다.'(We remember. We prepare)처럼 인류는 전염병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왔다. 역학 조사를 통해 환자를 조기에 발견·격리하여 감염 전파를 최소화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밝혀내고 신속한 진단 기술을 개발하였다. 음압 병상, 인공호흡기 등으로 중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100년 전 같았으면 죽었을 환자도 이제는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축적된 의학 기술의 발달 덕분에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항체 치료제와 백신 개발로 코로나19를 물리칠 날이 머지않았다.우리나라에서도 다음 달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 년간 힘든 날을 견뎌온 우리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손 씻기, 거리두기, 그리고 마스크.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는 그날까지!

2021-01-28 11:45:36

[춘추칼럼]문 대통령 지지율과 레임덕

[춘추칼럼]문 대통령 지지율과 레임덕

대통령 임기 1년 4개월을 남겨 둔 연말 연초에 여러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35% 전후까지도 내려가는 등 대체로 35∼40%의 지지율을 보였다. 최근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에서는 40.7%, 갤럽 1월 2주 조사는 38%였다.그럼 대통령 지지율이 얼마가 되었을 때 레임덕으로 봐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단지 역대 대통령의 4・5년 차 무렵 레임덕 현상을 보인 시기의 지지율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대체로 역대 대통령의 경우 30%가 무너지면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20%가 무너지면 레임덕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단순 지지율로만 판단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레임덕 여부를 판단하려면 단순 지지율뿐만 아니라 지지율의 강도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 지지율은 정량적 측면이고 지지율 강도는 정성적 측면이다. 그리고 정치적 상황은 수치와 강도의 역학이 작동되는 에너지의 장이 된다.먼저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로 레임덕 여부를 보면, 현재 문 대통령의 35% 전후∼40% 초반 지지율로는 레임덕이라 보기는 어렵다.그러나 정성적 측면 즉 지지율의 강도를 보면 달라진다.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의 대통령 긍정평가는 40.7%지만 아주 잘하고 있다는 20.9%, 다소 잘하고 있다는 19.8%다. 반면 부정평가는 56.9%인데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41.3%, 다소 잘못하고 있다는 15.6%다. 이러한 문 대통령 지지율 분포 모양은 바가지를 엎어 놓은 모양(정규분포)이 아니라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분포다.즉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중립적 합의형이 아니라 대립적 갈등형 분포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의 전체 긍정평가(40.7%) vs 부정평가(56.9%) 배율이 1.40이지만, 매우 긍정(20.9%) vs 매우 부정(41.3%) 배율은 1.98로 더 커진다. 결국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의 힘도 크지만, 레임덕 원심력인 비토층의 힘이 두 배나 더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의 레임덕에 대한 심리적 체감 현상이 나타난다.마지막으로는 정치적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당선된 대통령이다. 다시 말해서 생태적으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탄핵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보수층의 반동적 저항은 당연히 강하다. 또한 중도층도 탄핵에 동의했기에 현 정부에 대한 잣대나 기대치는 전 정부보다 더 높고 엄격하다. 이런 정치적 역학의 상황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전의 대통령에 비해 10%포인트 정도는 더 높아야 한다. 즉 정치적 역학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40% 지지율은 과거 대통령의 30% 정도 지지율의 국정 장악력이 된다.결론적으로 말해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 35∼40% 수준으로는 레임덕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비토 그룹의 크기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 체감 지지율은 레임덕 상황이다. 그래도 현시점에서 이 정도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전 정권보다는 선방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대통령 지지율은 4년 동안의 국정 수행에 대한 결과적 평가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 운영의 동력이다. 그럼 문 대통령의 임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지지율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앞서 말한 대로 과거 정권 말기 레임덕이 시작된 30%보다는 10%포인트 더 높은 40% 수준이다.그런데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기 말은 국민들이 임기 초기 기대감으로 바라보던 허니문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심으로 4년을 기다린 국민들은 구체적 성과를 보고 평가한다. 따라서 임기 말 대통령이 정쟁을 통한 비교우위나 책임 전가, 현란한 언변(레토릭), 인사나 국면 전환용 대증요법으로 국정 운영을 하면 역효과가 나타난다.국민의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진정성과 소통의 리더십을 통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문 대통령도 이 기대에 대한 성과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2021-01-21 12:15:31

[춘추칼럼]호로고루 사적지에서

[춘추칼럼]호로고루 사적지에서

새해 들어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늙는다는 실감이 또렷해진다. 눈이 침침하고 근력은 떨어졌다. 명민함과 정기도 사라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이 듦의 기색이 완연한 내 모습에 놀란다. 늙는 건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다. 노년의 실감이 늘 생경하고 쓸쓸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듦과 죽음은 노력하지 않아도 맞는 실존 사건이다. 오늘 아침 라디오 국영방송 채널을 틀어 놓은 채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죽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전두엽에 번개처럼 꽂혔다. 나는 죽음을 걱정했던가? 그건 우주의 섭리이고, 풀어야 할 실존의 수수께끼일 뿐인 것을.북극의 한랭전선이 남진하며 매운 추위가 몰려왔다. 한강이 얼음으로 덮이고, 중부 내륙도 얼었다. 오후에 집을 나서 호로고루(瓠蘆古壘) 사적지를 찾았다. 집에서 멀지 않아 답답할 때면 찾는 곳이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비강(鼻腔)으로 밀려든 찬 기운이 식초인 듯 따가웠다. 평지로 내려서니, 언 강과 응달 쪽 잔설, 쨍하니 파란 하늘, 임진강 너머에서 남쪽을 향해 나는 쇠기러기 떼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지역에서 쇠기러기나 두루미 같은 겨울 철새가 자주 목격되는 것은 철새들 먹잇감이 흔한 들녘과 장항 습지, 임진강이 한데 몰려 있기 때문이리라.호로고루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의 임진강변 현무암 절벽 위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 사적지다. 호로고루는 임진강의 옛 이름을 '호로하'(瓠蘆河)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일대는 기원 6세기 중엽 이후 200여 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 삼촌, 아들이던 이들이 고향에 부모 형제 처자식을 두고 떠나와 낯선 땅에서 무장을 한 채 국경을 지키느라 낮과 밤을 흘려보냈으리라. 스무 해 전쯤 유적 발굴조사로 땅 속에 묻혀 있던 삼국시대의 성벽과 우물이 나오고, 다수의 연화문·와당, 토기, 철기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지금은 평평한 구릉에 고구려 점령기에 쌓은 성벽과 성곽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강변 갈대숲에서 날지 않는 쇠기러기를 만났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사체는 얼어서 딱딱했다. 함부로 방치된 조류 사체는 죽음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사건임을 말한다. 천지간에서 나고 죽는 건 사람이나 조류나 마찬가지다. 1천500년 전 번성하던 고대 국가의 흔적을 밟고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 일은 범상하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성벽을 쌓고 전쟁을 치른 이들은 무명의 병사들이다. 더러는 전쟁 중 팔다리를 잃은 채 귀향하고 더러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 낯선 땅에 묻혔으리라.공자는 물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흘러감이 마치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시간은 저 아득한 근원에서 흘러와서 현재에 닿건만 현재는 유동하는 가운데 또 다른 현재에 닿는다. 인간은 그 유구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멸의 연쇄라는 굴레를 벗지 못한다. 하지만 내 생명은 나만의 것인가? 생명은 부모에게 받은 것, 내 의지로 살아낸 것, 미래 세대에 물려줄 것이다. 세 겹인 것을 굳이 내 것으로 한정할 때 생명이 품은 뜻은 협소해진다. 사람도, 새도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간다. 오래된 경전에서 말하듯이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다.젊을 땐 이런저런 걱정을 하느라 세월을 헛되이 썼다. 괴로워 술을 마시고 방황하던 젊은 날의 내 어리석은 선택과 행위들이 뼈에 사무친다. 결핍에 허덕이느라 현재에 더 충실하지 못했다. 너무 젊었던 탓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한 줌 지혜도 품지 못한 채 늙고 죽음을 맞는다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나이 들어 대리석을 깎아 새 집 지을 욕망 따위는 품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무덤을 생각하며 비감에 젖는 자에게 한 줌의 지혜가 있으리라. 이제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는 걱정거리는 내려놓자고 다짐한다. 오늘은 호로고루 사적지를 다녀왔고, 날 풀리면 속초의 겨울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2021-01-14 11:24:56

[춘추칼럼]국민의 마음 읽기

[춘추칼럼]국민의 마음 읽기

영하 15℃에 눈까지 내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달력을 보니 소한이 지났다. 어른들이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라도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소한이 지나면 멀지 않은 곳에 봄이 있다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일간지의 뉴스를 훑어보니 이번 주는 부동산에 관한 뉴스와 주식 뉴스가 크게 보인다. 작년 한 해 동안 아파트값이 20%나 올랐고 올해도 오른다고 한다. 주식도 코스피 3천을 넘어섰다. 이렇게 다 오르는데 어째 내려가는 것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 지지율이 36.6%로 최저치를 기록했다.지지율 하락의 주원인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인가 보다.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을 방문해 '2022년까지 총 650만 호를 공급하겠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공공임대주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신임 국토부 장관은 '양질의 값싼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줘서 집값을 안정시키겠다' '설날 이전에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국민은 또다시 스물다섯 번째로 발표되는 '특단의 대책'에 관심을 가져 본다.1970년대에 방주연이라는 가수가 '당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모래밭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 코, 입 모두 그리고 입가에 미소도 그렸지만 당신의 마음 그 한 가지는 몰라서 못 그렸다는 내용이다. 마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요즘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걸 보니 현 정부가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다. 무엇이든 단숨에 다 이루고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국민의 마음 읽기를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이 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첫째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스마트폰에서 화면을 누르지 않아도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하면 전화를 걸어 준다. 자율주행차도 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했더니 이런 변화가 모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둘째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하여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상을 살아내기에 힘들다. 젊은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도 집 한 채 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 있고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한 칸 장만한 사람들은 세금 때문에 시름이 깊다.셋째 정부와 소통이 안 돼서 힘들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려나 보다. 기자회견이라는 단어도 오랜만에 듣는다. 왕이 종과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노래를 하자 백성들은 왕이 우리의 삶을 이렇게 곤궁하게 해 놓고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시끄럽게 노래를 하느냐며 이마를 찌푸렸다. 왜냐하면 임금이 백성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서 즐겁게 놀았기 때문이다.그런데 임금이 종과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노래를 했더니 백성들이 우리 임금님께서 편찮으신 데는 없으신가. 음악 소리가 참으로 즐겁다고 했다. 이는 임금이 백성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맹자 '양혜왕 하' 편에 있는 내용인데 '소통'과 '함께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구절이다.중국 청대 문인이면서 관직에 종사했던 원매 선생은 그가 지은 조리서 '수원식단'에서 위정자가 할 일은 한 가지 정책을 더 만드는 것보다 국민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폐단 한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본다면 스물다섯 번째 발표될 부동산 정책 특단의 조치는 새로운 묘수를 만들어 내는 그것보다는 이미 있는 정책 중 폐단으로 여겨지는 한 가지를 빼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이것은 그동안 각계각층에서 정부에 대고 수도 없이 외쳐 온 '규제 철폐'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나라이건 기관이건 간에 리더가 몇 명의 참모만 가지고 좋은 나라 좋은 기관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국민이 원래 자기가 살아오던 방식대로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어 가는데 무엇이 불편한지 그 불편함을 제거해 주는 것이 정치다. 어디 그런 세련된 정치를 할 사람 없는가?

2021-01-07 14:01:47

[김성호의 춘추칼럼]쥐의 해 가고 소의 해 오라

[김성호의 춘추칼럼]쥐의 해 가고 소의 해 오라

콜레라, 말라리아, 독감, 에이즈 등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한 수많은 전염병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黑死病)과 지금은 박멸된 적사병(赤死病)이라고도 불리던 천연두가 아닐까 한다.흑사병은 페스트균을 벼룩이 쥐로부터 사람에게 옮기는 병으로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키면서 중세 암흑기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역사를 바꾼 전염병이다.흑사병은 14세기 중앙아시아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하여 몽골군이 서쪽으로 침략할 때 따라왔다. 1346년 몽골군은 흑해 북쪽 제노바 무역 기지 카파를 포위 공격하면서 흑사병으로 숨진 흉측하게 썩은 시신을 성벽 안으로 던져 넣어 적의 사기를 꺾으려 했다. 생화학 테러의 원조인 셈이다. 그 시체에 있던 페스트균은 벼룩을 통해 쥐에게 옮겨갔고 그 쥐는 상인들의 화물선에 무임 승선하면서 이탈리아반도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한때 배고픈 고양이들이 쥐들을 열성적으로 공격한 덕분에 흑사병은 조금 주춤하기도 했으나 가톨릭 교회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불태워 없애기 시작하면서 마르세유에서는 고양이 보기가 어렵게 되었고 그로 인해 쥐들은 대거 흑사병을 퍼뜨렸다. 마침 수년간의 대기근으로 허약해진 유럽인들은 속수무책 쓰러졌고 유럽 사회는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절대 진리로 군림하던 가톨릭교회조차 어쩔 도리가 없었다.사람들은 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회개하고 고행을 하거나, 반대로 종교를 버리고 '어차피 죽을 거 즐기다 죽자'며 쾌락주의로 빠져들었다. 전염병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염자, 유대인, 이교도, 나병 환자를 악마로 몰아 화형시켰다. 인구가 너무 많이 줄어들어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농노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장원제도는 붕괴되고 중세를 지배하던 종교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가 싹트기 시작했다. 쥐들이 퍼뜨린 흑사병이 중세를 무너뜨린 것이다.흑사병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무서웠던 전염병으로 천연두가 있다. 천연두는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혀 왔는데 이집트 파라오 미라에도 천연두 마마 자국이 남아 있고 수백 명에 불과한 스페인 군대가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우수한 무기보다는 신대륙에 옮겨간 천연두가 원인이었다. 18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매년 40만 명이 천연두로 죽었으며 감염자의 20~60%, 소아는 80%가 사망한 무서운 질병이었다. 살아남아도 얼굴에 마마 자국이 남거나 합병증으로 실명하는데 18세기 런던 수용소의 시각장애인 중 3분의 2는 천연두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 천연두가 1979년 드디어 지구상에서 영원히 박멸되었는데 거기에 소가 큰 역할을 했다.예로부터 천연두를 막기 위한 시도로 천연두 환자의 고름 딱지를 피부나 코에 접종하는 인두법이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시행되었지만 인두법은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감염시키기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이나 사망,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위험성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 짜는 여인들이 우두(牛痘)를 앓고 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우두를 접종하면 소가 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어 우두 접종이 쉽지 않았다. 1796년 5월 소젖 짜는 여인 사라 넬름즈의 손에 있는 우두 고름을 하인의 아들 8세 제임스 핍스의 팔에 접종한 후 2개월이 지나 천연두 고름을 접종시켰으나 천연두가 생기지 않았다. 이를 왕립협회에 보고했으나 인증을 받지 못하자 제너는 자비로 우두법에 대한 논문을 발간하며 홍보했고, 많은 시간이 지난 끝에 인증을 받았다. 제너는 자신의 이 예방 접종법을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가져와 백신(vaccine)이라고 명명하였다. 암소 덕분에 전 인류는 천연두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쥐의 해 2020년이 지나가고 소의 해 2021년이 밝았다.쥐의 해에는 쥐가 퍼뜨린 흑사병만큼이나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 인류가 힘들었다면, 소의 해에는 소(vacca)로부터 시작된 백신으로 인류가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대해 본다.희망찬 새해!

2020-12-31 14:44:19

[춘추칼럼] 눈으로 말하기와 경청하기

[춘추칼럼] 눈으로 말하기와 경청하기

이제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바깥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됐다. 자기 집 문밖을 나서는 순간 그 무엇보다 먼저 챙겨야 할 물건이 마스크다. 마스크 착용 없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고 공공장소는 물론 공원이나 예식장, 헬스클럽조차 드나들기 어렵게 됐다.심지어 가게나 식당에 갈 때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안 된다. 이제 마스크는 생활필수품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오죽하면 속옷 없이는 살아도 마스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다 나왔을까. 그런데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니 언뜻 사람을 알아보기 어렵고 대화하기도 힘들다. 더러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싶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특히 마스크를 쓴 여성분들은 이쪽에서 헤아려 알기가 쉽지 않다. 마스크가 입술과 코를 비롯한 얼굴 아랫부분을 모두 가리는 바람에 이마와 눈썹과 눈만 빼꼼히 나와 있는 모습으로는 상대방의 특징이나 표정을 읽기가 어렵다. 도무지 누구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눈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마스크를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의사소통에 있어 입술과 볼의 기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소리로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만, 입술의 움직임이나 볼의 움직임으로 먼저 상대방의 의중을 짚어 알게도 된다. 그런데 그 입술과 볼이 가려진 형편이니 답답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그래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인간에게 눈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 말이다. 눈이야말로 마음의 창이다. 영혼의 거울이다. 마음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얼굴의 기관이 바로 눈이다. 마스크 차림으로 사람들과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전보다 훨씬 밀도 있는 대화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것도 실은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역작용으로의 효능이다. 더러 젊은 여자분들 말을 들어보면 마스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얼굴 화장을 하더라도 윗부분만 하게 돼 오히려 편해졌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래선지 여자분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스크 벗기를 꺼리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 또한 마스크가 가져다준 새로운 삶의 풍조 가운데 하나다.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사람이 살아서 알아야 할 것은/ 오직 이것뿐/ 나는 지금도 술잔에 입술을 대고/ 그대를 바라보며 눈물 글썽이고 있다.이것은 내가 자주 외우는 시로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술 노래'라는 작품이다. 글의 제목은 '술 노래'지만 글의 내용은 사랑이다. 마스크를 쓰면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새삼 이런 시가 가까이 다가오는 요즘이다.더하여, 최근 우리에게 생긴 것은 경청의 문화다. 경청이란 글자의 뜻 그대로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래도 예전에는 경청하는 문화가 있었다. 어른이 말하든 아이가 말하든 누군가 말을 하면 귀를 기울여 정성껏 들었고 또 거기에 정성껏 반응했다.그런데 세상이 복잡해지고 피차간 하는 일이 바빠지다 보니 이야기할 때도 상대방의 말에 정성껏 귀 기울여 듣고 조심스럽게 말해주는 대화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수월찮게 소원해지고 데면데면해진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사는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경청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만 해도 문학 강연에 가서 독자들이 책을 들고 와 사인을 해 달라고 할 때 그 이름을 물어 적어 주는데 경청이란 것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다른 건 몰라도 이름을 잘못 쓸 때는 저쪽도 불편하고 이쪽도 민망한 일이 된다. 그래서 아예 복사지를 하나 준비해서 거기에 이름을 적어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가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쓰기를 하면서 새롭게 생긴 삶의 형태, 문화 풍조다.그렇다. 이참에 우리도 이런 것들을 새롭게 익히면서 조금쯤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됐으면 싶다. 코로나 19가 우리의 삶의 형태를 바꿔 놓기는 했지만 이렇게 좋은 쪽으로도 바꿔 놓았노라 자위 아닌 자위를 해 보기도 한다.

2020-12-17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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