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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새론새평] 정치는 졸(卒), 돈이 왕이다

[최재목의 새론새평] 정치는 졸(卒), 돈이 왕이다

온통 돈, 돈, 돈이다. 세상이 아주 돈에 목을 맨다. 세상에는 돈에 대한 충성 서약과 황금에 대한 순교자들로 넘쳐난다. 주식, 펀드, 가상화폐의 열풍은 눈물겹다. 황금만능이 좋고 나쁘다는 평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정치든 종교든 처음에는 그럴싸한 이야기로 출발하나 결국은 돈에서 끝난다.문득 한 스님의 유머가 생각났다. "도를 닦으러 출가했는데, 아니 '도'자 밑에 자꾸 ㄴ자가 어른거려 '돈'독이 올랐다가 결국 '돌'중이 돼 버렸어요." 이야기가 재미있어 허허 웃고 치웠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도→돈→돌'로 얽혀 드는 인생사가 짠하게 다가온다.2년 전 어느 신문에서 '한국은 어쩌다 사기 범죄 1위 국가가 됐나'라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그때 우리나라 범죄 발생 비율은 절도보다 사기가 훨씬 높아 국내 1위를 기록했고, 세계적으로도 사기 범죄 발생률이 최고라 했다. 사기란 '나쁜 꾀로 남을 속이는 것'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잘 속는지 모르겠다. 더 놀라운 것은 '감옥살이를 하더라도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답변한 청소년이 많았다는 점이다. 윤리나 법보다도 돈이 더 중요하단다. 이런 세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니 더욱 심해지는 듯하다. 보통 투자는 '생산 활동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란다. 반면 투기는 '생산 활동과 관계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란다. 그러면 주식과 가상화폐는 투자인가 투기인가. 좀 헷갈린다.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왜 투기, 사기가 증가했을까. 생각해 보면 돈 이상으로 자신의 미래를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불안 심리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과거에 우리 사회는 황금만능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돈에 무지하면 가난해지게 마련이다. 대학생들에게 슬쩍 물어보니 대부분 주식 등에 투자한단다. 안 하는 경우가 드물다 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딱 깨놓고 돈 잘 버는 '대박 학과'쯤 개설하는 것도 좋을 법하다.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정치가 신용을 잃었기 때문 아닐까. 미래를 책임져 주지 못하는 추상적 정치 쇼보다는 차라리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챙겨줄 돈에 기댄 각자도생이 나을 것이다. 먼 장밋빛 미래냐 눈앞의 현금이냐? 당연 현금이다. 현진건의 단편작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무기력을 말하고 있지만, 작금의 '돈 권하는 사회'는 현실 정치인의 무능함을 비웃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회보다도 확실한 지금이 더 다급하다.정치는 졸(卒)이고 돈이 왕 노릇하는 시대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처럼 믿음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는 법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투기나 사기를 증폭시킨다. 현실 정치가 채우지 못한 불만과 불안감을 돈으로 충족하고 싶은 심리인 것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간적 본능이다. 중국에서 사랑받는 차 번호 가운데 58888이 있다. 5(五·wu)는 나 '아'(我·wo)와 발음이 비슷하다. 8(八)은 광둥어 발음 발재(發財·fa cai)의 '발'로, 돈 많이 버세요(恭喜發財·gong xi fa cai)로 통한다. 따라서 58888은 '나는 돈을 많이 번다'(我發財)는 재물 축적과 풍요를 표현하는 말이다. 한편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5'라는 숫자는 오행사상에서 보면, '믿을 신'(信)과 '흙 토'(土)를 상징한다. 예컨대 우리 한양 도성의 중앙에 보신각(普信閣)의 '신'이 바탕해 동쪽의 흥인(興仁), 남쪽의 숭례(崇禮), 서쪽의 돈의(敦義), 북쪽의 숙정(肅靖)이라는 문들이 열리고 닫히듯 '믿음'은 사통팔달의 플랫폼이 된다.풍진만 가득한 세상,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자꾸 무언가를 밀고 올라가는 5월의 초목들을 바라본다. 주식과 가상화폐에 매달리는 2030세대가 그렇듯, 살아 있는 존재들이 향하는 곳은 구체적 현실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기(天崩地坼) 전에는 지금 이곳이 믿는 구석이다.갈수록 정치는 졸(卒)이고 돈이 자꾸 왕 노릇 하려 드는데, 글쎄 5월은 어린이도 부모도 스승도 주인공으로 버티고 서 있다. 마디마디 그것을 마음에 새겨보며 천천히 가란다. 그래야 단번에 뚝 부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2021-05-05 15:03:58

[새론새평] 문재인 정부의 정의와 공정

[새론새평] 문재인 정부의 정의와 공정

30년 넘는 세월, 정치 행정 분야를 연구해 온 필자는 문재인 정부처럼 무능하면서도 오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정권을 본 적이 없다. 가치관과 생각이 달라 혹평하는 것이라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오만과 위선이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해 온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를 크게 훼손했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의 주역은 소위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586 운동권 인사들이다. 박근혜 정부 말기 국민적 심판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그들은 대통령 취임사에 나타난 바와 같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정의와 공정, 평등을 강조하며 출발했다. 그러나 5년 차에 접어든 지금 정의와 공정은 사라졌고, 스스로 특권 계층이 되어 다른 정치 세력을 적폐로 몰아 청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자신의 부패와 무능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의와 공정의 기준을 세우고 판단할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와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심판 기능을 모두 독점함으로써 자신들만이 정의이고 공정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문 대통령은 대법원장에 전임자보다 무려 13기를 뛰어넘어 김명수(사시 25회, 연수원 15기)를 지명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진보좌파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과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임성근 판사의 탄핵 가능성을 의식해 사표를 받지 않았음은 물론, 이후 이에 대한 거짓말이 드러나 정권에 충성한 것도 모자라 도덕성까지 파탄 났다. 지금까지 대법관 14명 중 9명이 임기 만료로 교체되었는데 모두 민변,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거나 좌파 성향의 판사들이다. 이들은 사법부 요직의 34%를 장악했다. 내년 대통령 임기 만료 전까지 4명의 대법관이 더 교체되어야 하는데, 이 추세라면 1명을 제외한 모든 대법관이 좌파 성향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의 저울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헌법재판소는 9명의 재판관 중 7명이 진보좌파 성향으로 구성되어 모든 이슈에서 편향적 헌법 해석이 우려된다. 선거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더욱 심각하다. 상임위원을 문 대통령 선거 캠프 출신으로 임명했음은 물론, 정당 지명자 중 과거 새누리당 지명자 1명을 제외한 8명 전원이 사실상 좌파 성향이다. 주파수 재허가 요건을 통해 방송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균형을 상실한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 준사법기관인 검찰도 '개혁'을 명분으로 사실상 기소청 수준으로 전락했고, 그것도 모자라 새 검찰총장의 조건으로 '대통령과 철학을 같이하는' 사람을 내세웠다. 정의를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조건으로 사실상 대통령을 지켜낼 사람을 내세우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옳고 그름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기관들의 현저한 이념적 불균형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의 정의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부 인사들이 개입된 사건은 어떻게든 무마하거나 시간을 끌어 사법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예사이며, 감사원 감사마저 방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사법부 인사에서는 관례를 깨뜨리고 정권에 우호적 인사들에게 정권 관련 사건을 배당하고 있다. 울산 사건이나 조국 사건 등 정권 관련 수사는 아예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을 악용하여 수사팀 자체를 사실상 공중분해시키면서도, 공수처장은 피의자 신분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자신의 관용차로 모셨다. 세금으로 지원되는 교통방송에서 마음껏 편파적 방송을 하고 있는 김어준은 자신들 편을 든다고 균형적 언론이라면서 다른 민간 방송들은 형평성을 잃을 가능성만 보여도 재허가권을 흔들며 위협한다.역사는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의지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잣대로 그 시대를 평가한다. 다른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도 두고두고 평가와 재평가를 받을 것이다. 권불오년(權不五年)이라는데 정권 수호를 위해 정의와 공정을 버린 사람들에 대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눈에 선하다.

2021-04-28 11:41:54

[오정일의 새론새평] 낯섦, 혐오, 그리고 차별

[오정일의 새론새평] 낯섦, 혐오, 그리고 차별

서울시 한 아파트 단지 내에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섞여 있었다. 얼마 전 분양아파트 주민들이 외벽을 파란색으로 칠했다. 그 바람에 임대아파트 주민이 누구인지가 드러났다. 거주자가 속한 계층이 구별되었고 아파트 단지가 계층별로 분리되었다. 혹시 분양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구별하고 분리하기 위해 아파트 외벽에 파란색을 칠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은 구별과 분리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했다.언제부터인가 대학생들이 만우절에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다. 유치한 장난이지만 여기에도 차별이 숨어 있다. 교복에는 학교 이름이 표시된다. 학교 이름이 없어도 교복의 모양과 색깔로 출신 고등학교를 알 수 있다. 교복을 입으면 출신 고등학교가 드러난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오라는 것은 네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어디인지를 밝히라는 뜻이다. 왜 알아야 하는가? 명문고 출신 학생들로 내부 집단(inner circle)을 만들기 위해서다.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사람이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라고. 명문대학 재학생들이 학교와 학과가 드러나는 점퍼를 입는 것, 일부 S대 학생들이 지역균형선발제도로 입학한 학생들을 비하한 것도 차별의 욕망이 드러난 사례다.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 즉, 낯선 것을 거부한다. 익숙한 것에 대해 호감을 느끼지만 낯선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호감을 느끼는 대상을 받아들이고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은 거부하는 것이 본능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혐오로 바뀐다. 현역 군인이었던 남성이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가 강제 전역을 했다. 얼마 전 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람이 자살하기 전까지 여론이 시끄러웠다. 성전환을 혐오하는 목소리도 컸다. 태어나면서 정해진 성을 바꾸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전환은 낯선 일이었다. 낯섦이 혐오로 바뀌었다.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한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했다. 많은 비난이 있었다. 이 사람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라는 청원이 제기되었다.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비혼 남성이 입양을 통해 가정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여성을 비난했을까? 누구도 비혼 남성의 입양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낯설어한 것은 비혼 출산이 아니다. 가부장적인 남성들은 여성이 남성과의 성적 결합 없이 출산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낯선 대상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인종과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Y대학 의대생이 수업 중에 인도 출신 교수에게 난민이냐고 말해서 논란이 되었다. 이 학생은 자신을 용으로, 교수를 가재로 생각한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아시아인 차별을 비난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월러스타인(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은 차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중심국 국민들이 준주변부 국민들을 차별하고, 준주변부 국민들이 주변부 국민들을 차별하니 말이다.대구시 북구는 모스크(mosque) 건립으로 시끄럽다. 주민들이 소음과 악취를 이유로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 예배를 위해 사람들이 모스크에 모이면 소음과 악취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음과 악취는 교회, 성당, 사찰에서도 발생한다. 다른 종교에 비해 이슬람 예배가 더 시끄럽거나 악취가 더 심할 이유는 없다. 대구시 북구에는 이미 다양한 종교시설이 존재한다. 모스크 건립만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우리에게 이슬람은 낯선 종교다. 혹시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는 이유가 낯선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혐오 때문은 아닌가?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위대한 윤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행복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게 신중(愼重)의 미덕을,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게 공정(公正)과 자혜(慈惠)의 미덕을 요구한다."

2021-04-21 11:10:53

[도태우의 새론새평] 대구·영남 비하의 본질은 대한민국 정통성 비하

[도태우의 새론새평] 대구·영남 비하의 본질은 대한민국 정통성 비하

국민의힘 초선 의원 56명이 보궐선거 직후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나가겠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특정 지역'이란 영남을 지칭한다. 대구경북 지역 의원 9명도 이 발표에 동참했다.때를 맞춘 듯이 일부 언론은 '영남당으로 되돌아가 청년층이 혐오하는 모습으로 원점 회귀하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몰락할 것'이라며, 이번 시장 당선자들이 영남당으로 각인된 기존 야당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사람들로 합리적인 중도 정치를 강조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논의에서 '영남당'은 비합리의 상징이고 청년층이 혐오하는 대상으로 낙인찍혀 있다.이에 더하여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은 거슬러 올라가면 대통령 정당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그래서 이 정당은 자생력이 없고 결속력도 없다. 그저 자기네끼리 우리는 산업화 세력이라는 헛소리나 한다"고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냈다.국가기관을 주축으로 나라 발전을 견인해 온 국민의힘 계열이 운동권에 바탕한 더불어민주당 계열보다 정당 차원의 결속력과 자생력이 약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정치세력으로 어떤 가치 흐름을 대변하고 어떤 존재 의미를 지니는지는 완전히 별개 문제이다. '헛소리'란 말이 그리 쉽게 나오나.돌이켜 보면 김부겸 전 의원은 민주당 대표에 출마했던 작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영남의 정치 성향이 문제"라며, "영남은 보수당이 무슨 짓을 해도 '묻지마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구는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인 김 전 의원을 선출했다. 그런데도 김 전 의원은 4년간 민주당의 파행에 제대로 된 견제 없이 오히려 민주당이 '안보를 지키는 정당'이라 강변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그가 대구에서 다시 선출되지 않은 것은 민주당 후보이기에 '묻지마 낙선'된 것이 전혀 아니다.상황이 이런데도 지난달 31일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강원도지사를 지낸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41년간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지금 대구 경제는 전국 꼴찌인데 왜 그럴까. 사람을 보고 뽑은 게 아니라 당을 보고 뽑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이 의원 또한 대구와 영남의 '가치 지향 투표'를 '묻지마 투표'로 주저없이 왜곡했다.이들이 무시했던 대구·영남이 지향해 온 가치의 밑그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7년 대통령 취임사에 잘 나타나 있다. "경제 건설 없이는 빈곤의 추방이란 없을 뿐 아니라, 경제 건설 없이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는 실업과 무직을 추방할 수 없습니다. 또 그것 없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 즉 자유의 힘이 넘쳐흘러 북한의 동포를 해방하고 통일을 이룩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는 호소이다.이 연설은 '잘살아 보세'의 경제개발이 단지 물질적인 부를 추구한 것이 아님을 잘 드러내 준다. 경제개발은 자유를 계승하고 공화로 힘을 키워 빈곤, 부정부패, 공산주의라는 3대 공적(公敵)을 극복하고 북한 해방 자유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통 흐름이다.대한민국 헌정은 1단계 자유민주 건국과 6·25의 호국, 2단계 낮은 단계의 법치와 민주주의 및 산업화의 동시 추진, 3단계 1987년 개헌을 통한 높은 단계의 법치와 민주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이라는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다. 이제 대한민국은 마지막 4단계 헌법적 과제인 한반도 전역에 천부인권과 적법 절차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자유통일을 실현할 수 있을지 갈림길에 서 있다.대구·영남은 역사의 각 고비마다 대한민국 정통 가치와 비전의 정수를 공유하며 그 기적의 발자취를 함께 일구어 온 불후의 원동 기관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의 정체를 알 때까지 놀림과 고립, 핍박을 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선도 국가로 비상해 오를 때까지 대구·영남의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아직도 배가 고프고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누가 영원한 청년 정신의 영남을 노쇠하다고 손가락질하나.

2021-04-14 11:50:39

[최재목의 새론새평] 까불다간 한 방에 훅 간다

[최재목의 새론새평] 까불다간 한 방에 훅 간다

4월 첫머리에 섰다. '4'라는 글자를 생각할 때 누구는 '네잎클로버'(행운)의 4를, 누구는 '죽을 사'(死)의 4를 떠올릴 수도 있으리라. 이처럼 4월의 사(四) 자에는 별의 기쁨도 사멸의 슬픔도 동거한다. 4월쯤이면 벚꽃이 지고 이팝・조팝나무 꽃이 환히 피니 1년 중 볼 것은 다 봤다는 느낌마저 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피었다 곧 지고 마는 꽃처럼, 권력의 무상감도 목도하고 말았다.3·15 부정선거로 일어난 4·19혁명을 생각하면 4월엔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저항과 심판의 기운도 살아 있다. '개벽, 다시 개벽'으로 나아가며, 한판 뒤집어엎는 민초들의 무서운 저력 말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서 보듯, 원이 하늘의 형식이자 언어라면, 사각은 대지가 기억하는 가장 안정된 형식이자 언어이다. 바둑・장기・체스판, 축구・권투경기장 등 우리가 선호하는 게임장은 대개 사각을 기본 틀로 한다. 이 사각 속에서 우리는 전쟁하고 격투하며 살아왔다.그동안 서울・부산의 시장 보궐선거로 전국이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상대방을 향해 온갖 네거티브를 쏟아내던 선거판 분위기는 아마 이번 보궐선거로 끝나지 않으리라. 내년의 대선을 향해 가며 더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 지속될 것이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전혀) 갈 길은 하나 없소"라는 시처럼, 패 가르기, 갈라치기로 나라는 갈래갈래 갈 길을 더 헤맬 수 있다. 네 갈래 길 한복판에 서서 사분오열 서로 마이크를 쥐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갈피 잡기 어렵다고 호소할 것이다. 모두 "일자리, 삶의 자리를 달라!"는 것이리라.그래도 선거가 있어서 좋다. 위선・내로남불・후안무치이던 잘난 권력도 투표라는 심판 앞에서는 반성과 사죄의 읍소를 내비치니 말이다. 물론 속임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건방졌다간 한 방에 훅 가고 만다는 것쯤은 직감하고 있을 터다. 그러나 낙관과 방심은 금물이다. "파리가 싹싹 빌 때 사과한다 착각 말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눈물지어도 악어는 악어의 성질을, 전갈은 전갈의 본성을 버리지 않는다. 도둑은 도둑의 길을 걷다가, 권력자는 권력자의 길을 걷다가 죽는다. 모두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그 원동력은 맹목적 탐욕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불유구'(不踰矩·법도를 넘지 않는다)라는 암묵지로서의 공정성과 상식을 뭉개버린 듯하다. 국가가 지탱되는 임계점의 기준은 신뢰다. 신뢰를 상실하고 나면 정치는 끝이다. 협박도 읍소도 안 통한다.권력을 잡은 자들은 케이크를 자르는 칼을 들고 있다. 이 칼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방법으로 사용되어야 할 물건이다.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을 어기면 LH 사태에서 보듯이 '묘서동처'(猫鼠同處) 즉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는' 격이 된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한패가 되어 있으니 나라 꼴이 뭐가 되겠나. 법과 윤리의 선이 사라지면 국정은 파탄 난다.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고, 어떤 사죄도 변명도 먹히지 않는다. 청와대의 보좌진이 가끔 "대통령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느니 "불같이 화를 내셨다"느니 하는 식의 감성적 겁박을 토로하나 우이독경이다. 정작 화가 치미는 쪽은 국민이고, 불타는 것은 민심 아닌가. 돈을 마구 풀어 대는 것 대신 제대로 된 일자리의 비전으로 삶의 자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여당은 남은 임기 동안 민생 안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더욱 겸손・솔직하게 소통하며, 상식과 공정이라는 기본을 지켜 가야 한다.영원한 것은 없다. 선거에 이겼다고 우쭐대서도 안 되고, 졌다고 침울해할 것도 아니다. 국민들은 바닷물과 같아서 참다 참다 안 되면 항상 성난 파도로 배를 뒤집어엎어 왔다. '자, 봐라. 까불다간 한 방에 훅 간다'는 사실을,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 가르칠 것이다. 꼼수 부릴 시간 있으면 사즉생의 자세로 민심이나 잘 챙기자.

2021-04-07 14:17:49

[홍성걸의 새론새평] 집권세력의 위선과 도덕 불감증

[홍성걸의 새론새평] 집권세력의 위선과 도덕 불감증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명제다. 그런데 집권 4년 차를 넘어가면서 선거 때 굽신거리며 표를 구걸해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거머쥔 자들의 위선과 도덕 불감증이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정권 초부터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대통령 바로 옆에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해 온 김상조 씨는 국민을 큰 고통에 빠뜨린 임대차 3법을 밀어붙인 장본인이면서도 법 시행 불과 이틀 전에 계약기간이 한 달이나 남은 자신 소유의 집 전세보증금을 14% 넘게 인상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전셋집의 보증금이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그런데 자신이 더 내야 할 전세보증금은 5천만 원인데, 올려받은 전세보증금은 1억2천만 원이었고, 그 시점에 14억 원이 넘는 예금을 보유하고 있었다.문재인 대통령은 김 실장을 경질하면서 대국민 사과 한 마디 없었다. 경질 바로 다음 날, 청와대에서 생중계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부동산 부패 청산을 강력히 추진하라면서도 자신의 정부에서 빚어진 불공정과 위선, 부도덕성에 대한 사과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자신도 피해자라는 생각에 대통령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대통령을 잘 안다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눈에도 대통령의 화만 보일 뿐, 국민의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화가 났다는 말에 국민은 울화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청와대 주변의 부동산 적폐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김진애 후보로부터 의석을 물려받아 국토위에 배정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관사에 살면서 동작구에 건물을 매입하는 투기 신공을 발휘해 물의를 일으킨 후 사퇴했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서울과 청주에 2주택을 보유하면서 공직자의 다주택 소유를 비판하다가 지역구인 청주의 아파트를 팔았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고개를 숙이고 반포의 아파트까지 팔게 되었다. 김조원 전 민정수석도 강남에 두 채의 아파트를 보유했다가 여론의 질타 속에 결국 집을 택하고 직을 사퇴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 채 이상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닌데도 집권자 스스로 다주택자를 부도덕한 범죄자로 만들어 도덕성에 치명적 흠집이 생긴 것이다.집권 세력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 26일, 설훈 의원 등 73명의 범여권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민주화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집권자들의 위선과 부도덕,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인다. 현재 4·19, 광주 등의 민주화운동 부상자, 사망자, 행방불명자 등을 민주화 유공자로 지정해 혜택을 주는 법안이 이미 제정되어 시행 중이다. 그런데 이번에 제안된 법안은 시위에 나섰다가 유죄판결, 해직, 퇴학 처분을 받았던 사람들을 모두 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추가해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중·고교·대학 수업료, 직업훈련비, 의료비, 20년 분할 상환이 가능한 주택 구입 및 임차 대부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솔직히 말해 과거 데모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오죽했으면 김영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나서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와 내 가족은 특별법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국민들께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며,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를 오늘로 반납한다"고 썼겠는가.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 개혁이란 미명하에 서울남부지검의 금융특별수사부를 공중분해시켜 사실상 라임, 옵티머스 등 대형 금융 사건의 수사가 지지부진해졌고, 수차례에 걸친 인사권 전횡으로 울산 선거 개입 사건, 윤미향 사건 등의 수사가 답보 상태다. 전국적인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부동산 부패 수사 지시는 한 마디도 없이 한명숙 사건에 올인하고 있다. 이 정도면 법무부는 '정의수호부'가 아니라 '정권수호부'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에서 자신에게 또박또박 대드는 젊은 검사를 보며 기가 차서 한 말이다. 이제 국민이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에게 되돌려 준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겁니까?"

2021-03-31 11:40:36

[오정일의 새론새평] 공정하게(?) 부동산 투기를 할 권리

[오정일의 새론새평] 공정하게(?) 부동산 투기를 할 권리

부동산을 수용(收用)해서 개발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투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하여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를 하는 내부자거래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투기의 목적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가격이 하락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내부자거래는 이러한 위험을 없애 주지만 불법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여야 한다. 내부자거래는 약탈적이다. 내부자의 이익은 외부자의 손실을 초래한다. 외부자는 고객이거나 시민이다. 내부자거래는 약탈적이므로 비생산적이다.정보만으로 투기를 할 수 없다. 투기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는 사람은 영혼을 끌어모아도 투기를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그 나름의 계획이 있지만 그것을 실현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없다. 개발계획을 미리 알아도 돈이 없으면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없다. 대다수 시민이 투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와 돈은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더구나 정보와 돈은 교환된다. 정보를 보유한 집단과 돈을 가진 집단은 공생(共生)한다. LH 사건으로 인해 정보와 돈의 더러운 커넥션(Connection)이 드러났다. 물론 빙산의 일각이다.LH는 중개인이다. LH는 토지를 매입해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매각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 LH의 사업은 단순하지만 수익성이 높다. 높은 수익성은 수용이라는 행정적 권한에서 나온다. 수용은 강제적이다. 피수용자에게 보상을 하지만 시가에 못 미친다. 토지 시가와 보상가의 차액(差額)은 LH의 몫이다. LH는 수용한 토지에 아파트를 건설해서 분양한다. 분양가에는 LH의 이윤이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LH는 아파트 분양가와 토지 보상가의 차액을 가져간다. 이는 은행의 주된 수익원이 예금과 대출 금리의 차이인 것과 유사하다. 어쨌든 아파트 분양가는 시가에 못 미친다. 시가와 분양가의 차액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의 몫이 된다.불법적 투기에 대한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모든 공직자가 재산을 등록하고 부동산 거래를 신고하도록 하는 법안, 불법적 투기의 형량을 최고 무기징역으로 높이고 투기로 얻은 이익의 5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정부는 부동산감독원을 신설해서 부동산 거래를 감독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책들은 불법적인 투기가 이루어진 후 그것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사후적(事後的)이다. 사후적인 대책으로는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대책들은 거래의 자유와 재산권이라는 시장경제의 근본적 가치를 훼손한다. 신설되는 부동산감독원의 직원들이 투기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부동산감독원은 막강한 권한과 중요한 정보를 보유하게 된다. 권한과 정보는 투기로 연결되기 마련이다.불법적 투기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전적(事前的)으로 투기의 유인(誘引)을 없애는 것이다. 투기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없으면 불법적으로 투기할 유인이 없다. LH의 사업에는 세금이 투입된다. 따라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시가와 분양가의 차액을 갖는 것은 부당하다. 공적인 개발로 발생한 이익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정부가 시가와 분양가의 차액을 환수하면 투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LH 직원, 정치인, 관료의 불법적 투기를 비난하지만 개발이익의 환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분노한 이유가 공정하게 투기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인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공정하게 투기할 권리인가?부동산을 사용해서 이익을 얻는 것은 정당하다. 부동산 투기로 이익을 얻는 것은 부당하다. 투기로 얻는 이익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로 준 토지를 독점해서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정의롭지 않은 것을 추구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부동산 투기를 할 권리를 주장하는가? 탐욕 때문인가? 진정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내 안에 있는 탐욕이다.

2021-03-24 11:24:39

[도태우의 새론새평] 문 정권을 반인도범죄 공범으로 심판할 자는 누구인가

[도태우의 새론새평] 문 정권을 반인도범죄 공범으로 심판할 자는 누구인가

지금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제46차 유엔 인권이사회 정기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올해도 역시 주요 의제 중 하나는 북한 인권 문제이다. 매일같이 북한 인권에 관한 고강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특히 3일 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북한 내의 반인도범죄에 대해 기소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는 '인도(人道)에 반하는 죄'라고도 하며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가할 정도로 중대하고 조직적이며 광범위한 인권침해 범죄를 가리킨다. 2차대전 후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에서 개념이 형성되어 1998년 로마규약에 의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창설로 체계를 갖추었다. 반인도범죄는 개인이나 작은 집단이 주체가 될 수 없고 국가기구나 그에 준하는 조직을 갖춘 범행 주체를 상정한다. 북한의 김정은과 보위부 등은 이미 유엔의 조사를 통해, 북한 주민을 상대로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반인도범죄자로 결론 내려졌다.북한이 이처럼 반인도범죄의 대명사가 된 데는 7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충격적인 보고서가 큰 역할을 했다. 런던, 도쿄, 워싱턴, 서울 등에서의 공청회와 증언들이 집대성된 이 보고서에 소개된 끔찍하고 심각한 사례들 중 두 가지를 들어 본다."김 씨는 감방 출입문 높이가 80㎝밖에 되지 않아 40명과 함께 수감된 감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손과 무릎으로 기어 들어가야 했다. 계호원은 '이 감옥에 들어오면 사람이 아니고 동물이기 때문에 이 감옥에 들어오는 순간 동물처럼 기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경비견들이 어린이 수감자를 위한 학교에서 난폭하게 덤벼들어 세 명의 어린아이를 죽였다. 지휘관은 개들의 풀린 상태에 대해 일단 경비견 훈련사를 호되게 꾸짖었으나, 추후에 다른 경비병들 앞에서 그가 정치범들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게 경비견을 잘 훈련시켰다고 칭찬하였다."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범죄라 불릴 만한 사례가 보고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번 회기 마지막 날인 3월 23일에는 북한인권결의안이 19년째 연속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전 세계 43개국이 공동 제안한 이 결의안에 우리나라는 3년 전부터 제안에도 불참하고 있다.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0일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과 협상 시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룰 것,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을 비롯해 북한인권법을 제대로 시행할 것 등 권고 사항 8개를 발표했다. 북한 인권에 눈감아 온 한국 정부의 직무 유기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사실 문재인 정권은 직무 유기를 넘어 적극적인 협력 행위 또한 서슴지 않아 왔다. 귀순한 국민 2명을 강제 북송하여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대북전단금지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노예노동인 개성공단의 재개를 주장하고,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꾸는 법 개정을 시도했다.문 정권은 정부와 집권당의 지위에서 이런 일을 벌여 왔기에 반인도범죄의 구성 요건인 대규모성, 조직성, 중대성까지 충족시켰다. 우리나라는 2007년 로마규약을 국내법화한 '국제형사재판소법'을 제정한 바 있다. 이 기준에 따를 때 문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북한 반인도범죄의 지속에 고의적으로 협력한 공범(共犯)으로 구성되어 우선적인 관할권을 가지는 우리나라 법정에서 심판이 가능하다.북한 김정은과 문 정권이 반인도범죄 행위로 재판을 받는다면 그 진정한 심판관은 누구일까? 심판대에 앉아 있는 판사들일까? 차라리 80㎝ 감옥 문을 기어간 수감자들, 수색견에 물려 죽어간 어린이들, 안대를 떼고 북한 병사를 보자 무릎이 풀려 무너져 내린 강제 북송자들, 그 한 사람마다 지닌 양도 불가능한 존엄성이 진정한 심판관이 아닐까?도스토옙스키의 우화적인 소설에서는 종교재판으로 하루에 100명을 화형시킨 대심문관이 남루한 옷을 입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예수를 도시 밖으로 쫓아 버린다. 예수는 영원히 쫓겨나 버렸을까? 역사는 쫓겨난 자들 속에 숨겨진 존엄이 보이지 않는 '대심판관'으로 되돌아옴을 거듭 웅변하고 있다.

2021-03-17 11:42:25

[최재목의 새론새평] 좌우에서 ‘제3지대’로 향하는 까닭은

[최재목의 새론새평] 좌우에서 ‘제3지대’로 향하는 까닭은

2월에서 3월로 들어섰다. 정치권의 흐름도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적 분열에서 차츰 제3지대로 향한다. 2에서 3으로 분화되는 모양새가 요즘 말로 '신박하다'(놀랍고 새롭다). 일석이조, 일거양득, 일심이문처럼 1은 왜 반드시 2로 향하는가.2는 '맞섬'(이분, 대립, 분열, 대치, 양극, 불화, 긴장)인 동시에 '마주함'(상대, 대비, 대칭, 동반, 반려, 균형, 화해, 안정)이다. 보통 2는 합일을 파탄 낸 분열・대립의 주범으로 간주된다. 둘이 평행선을 달리며 서로 만날 수 없는 상극으로서, '하나가 둘이 되는' 갈등이라는 부정적 방향에서 파악한 것이다. 한편 2는 1이라는 하나=전체의 잠재성・다양성을 의미 있게 처음으로 가시화한 것이라는 긍정적 의미도 있다. 분리된 둘이 화합・화해하는 상생으로서, '둘이 하나가 되는' 치유의 방향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이처럼 2는 우리 인간 정신의 이중성이다. 이념, 가치, 기호(嗜好)의 면에서 이쪽저쪽으로 갈라지거나 이곳저곳을 오가는 인간 내면의 진실을 말해 준다. 우리는 수시로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둘이 되는' 경험을 한다.둘은 선(線)으로서, 2차원에 머문다. 단조로운 편 가르기, 줄서기를 강요하는 이분법이다. 대개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선전・선동은 이쪽 아니면 저쪽에 서라는 무언의 권력적 강요이다. 최근 가덕도로 부산 민심을 잡으려는 노력도 그렇다. 과거에는 선거를 앞두고 고무신・막걸리를 돌렸다. 민심은 속고 속으면서도 표를 몰아 줬다. 여하튼 2는 너무 단조로운 게임을 만든다. 3이 되어야 비로소 이분법의 한계를 탈피할 수 있다. 2에서 3이 되면, 3각형처럼 3차원적 입체화를 이룰 수 있다. '3에서 만물이 생겨난다'(三生萬物)고 했듯 비로소 다양한 분화가 일어난다. 다양성은 생명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이분법에 길들여진 영혼들은 자주 갈림길, 경계선에서 두리번거리며, 아찔한 정신적 경련을 경험하며, 실존적 자아를 형성해 가야 한다. 서양에는 '세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반드시 바보 한 명이 끼어 있다'는 속담이 있으나 동양에서는 '셋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거울이 될 만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三人行必有我師)라고 했다. 진보/여, 보수/야의 둘이 아닌 또 다른 선택지를 호출하고픈 까닭이다.마침 서울시장이나 대선 후보를 거론할 때 '제3지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반가운 일이다. 특정 이념과 당파에 빙의된 자아를 넘어서서, 국민들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는 말을 여전히 믿고 살아간다. 그러나 희망은 늘 우리를 속여 왔고, 거짓말을 해 댔다. 그렇다고 양식과 양심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면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하리라는 믿음이 헛되다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개떼, 도둑질을 너무 많이 목도해 왔기에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우리는 자꾸 현실 너머의 제3지대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을 향할 지도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에, 한두 마디 소망을 적어본다.첫째, 기성 권력으로 쉽게 회귀하거나 야합하지 말라. 현실의 2분법에 지친 국민들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3자의 마음'을 찾고 있다. 좌우 양변을 떠나되 어정쩡한 추상적 '중도'(中道)라는 관념은 걷어차야 한다(離邊而非中). 오로지 국민의 여망 편에 서는 것이 중(中)이어야 한다. 기성 권력에 빌붙지 말고 국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 일심(一心)의 정치를 고민했으면 한다.둘째, 대한민국의 정치는 늘 대립과 갈등으로 요동쳐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대립・갈등의 역동성 위에 빅 텐트를 치고서 그 힘을 긍정적 추진력으로 삼아 화합을 이끌어내는 화쟁(和諍)의 정치 기법을 익혔으면 한다. 칼 손잡이를 잡은 손이 결국 칼날을 쥐고 피를 흘려 온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부도덕한 것은 일찍 끝났고(不道早已), 해도 달도 차면 기울었다(日月盈昃). 제3지대로 가는 길은 양식과 양심 있는 건강한 민심의 결집에 달려 있다. 문제는 평등, 공정, 정의의 실현이다.고요한, 불안한 3월. 꽃 피우고 싶어 서성이는 대지 위의 환한 생명들처럼, 민심의 아린 고갱이는 자꾸 제3지대로 눈길을 돌린다. 자꾸 개판이 돼 가는 세상을 속 시원히 한판 뒤집어 달라는 뜻이리라.

2021-03-10 11:32:31

[홍성걸의 새론새평] 무엇을 위한 검찰 퇴출인가

[홍성걸의 새론새평] 무엇을 위한 검찰 퇴출인가

검찰 개혁이란 퍼즐 게임의 마지막 조각은 이른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설치다.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일사천리로 완성한 여당은 내친김에 중수청도 밀어붙일 태세다. 검찰 개혁의 주된 이유인 검찰의 기소권 독점과 수사지휘권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검찰 중심의 형사법체계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것은 그만큼 장점이 단점보다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형사법체계는 국민 편익에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정부 여당은 검찰 개혁의 이유로 수사지휘권과 기소권 독점으로 인권을 무시한 강압 수사나 자의적 사건 조작 가능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검찰이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검찰 개혁에 따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고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진행되는 검찰 개혁은 전혀 그렇지 않다.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제한적 수사종결권이 인정되고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폐지되었다. 검찰은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을 가지며, 경찰 수사 과정의 위법 사항이나 고소인의 수사 종결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있으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 검찰은 일정 규모 이상의 뇌물죄와 횡령죄 등 6개 유형의 특수 범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사권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권 행사에 우려가 크다 보니 수사국, 형사국, 보안국, 과학수사대, 대공수사 업무 등을 포괄하는 국가수사본부를 경찰청 내에 신설하여 보완토록 했다.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병립의 결과는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검찰 개혁의 또 다른 퍼즐 조각인 공수처에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가 설치되고 처장과 차장이 임명되어 조직 구성이 진행 중인데, 문제는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민주적 통제 가능성은 완전히 정치권력의 선의에 맡겨졌다는 점이다. 설치 과정에서 야당의 거부권 행사로 처장 추천이 어려워지자 여당은 일방적 법 개정을 통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유일한 조항이었던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켰다. 최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성윤 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가 자신들이 연루된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는 것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에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다.검찰 개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중수청은 더욱 심각하다. 검찰에 남겨진 6대 중대 범죄의 수사권을 아예 없애 검찰은 기소만 담당하라는 것이다. 많은 법조인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중수청이 과연 6대 중대 범죄를 충분히 수사할 능력과 전문성을 단기간에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사권 없이 기소만 담당할 검찰이 공소 유지에 충분한 자료와 정보를 가질 수 있을까. 그 결과 범죄인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늘어나 죄인들만 유리해지고 오히려 일반 국민들의 권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뿐만 아니라 형사사법체계가 복잡해지면서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이번 검찰 개혁은 공수처와 중수청이라는 두 개의 수사 관련 기관의 신설과 경찰청 내 국가수사본부의 신설이라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곧 최소 2개의 기관 신설과 1개 본부가 새로 만들어지고 이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의 증가가 불가피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보다 나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 형사법 관련 서비스를 받는데 많은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개혁의 이름으로 검찰을 형사법체계에서 퇴출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석열 검찰의 정권에 대한 수사가 멈추지 않으니 아예 수사권을 없애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공수처와 중수청, 국가수사본부가 언제까지 집권 세력의 충견으로 남을 것으로 보는가. 그들이 행사하는 수사권이 검찰과는 달리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호랑이가 없는 산에는 늑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검찰을 퇴출시킨다고 자신이 안전해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착각이요 오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1-03-03 11:14:29

[오정일의 새론새평] 왜 국민의 힘은 기회주의적인가?

[오정일의 새론새평] 왜 국민의 힘은 기회주의적인가?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고 있다. 5년 전 외국 기관 평가에서 1위는 김해공항 확장, 2위가 밀양신공항, 가덕도신공항은 3위였다. 여기서 어떤 안이 최선인지 논(論)할 생각은 없다.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이라는 평가 결과는 상식적이다. 공항 신설에 비해 기존 공항 확장이 효율적인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나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정치는 그런 것이니까.민주당이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납득이 된다는 말이다. 민주당에 대구경북은 텃밭이 아니다. 또한 여당은 선심성 공약을 실현할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 속된 말로 민주당은 가덕도신공항으로 재미를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셈법이 복잡하다. 대구경북이 텃밭이지만 부산을 무시할 수 없다.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면 밀양신공항을 지지했던 대구경북 주민들을 배신하게 된다. 국민의힘의 속셈은 이럴 것이다. '가덕도신공항에 찬성해서 부산시장을 탈환하자. 대통령선거까지 1년이 넘게 남았다. 1년은 망각에 충분한 시간이다.' 국민의힘이 대구경북 주민들을 배신할 수 있는 메커니즘(mechanism)은 무엇인가?우리나라는 실질적인 양당제 국가이다. 많은 정당이 있지만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당은 두 개에 불과하다. 선거는 땅따먹기이다. 집권을 하려면 상대 정당보다 넓은 땅을 차지해야 한다. 양당제에서 더 넓은 땅을 차지하려면 정치적으로 좌나 우로 치우지지 않고 가운데에 위치해야 한다. 이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호텔링(Hotelling)이라는 경제학자다. 논리는 간단하다. A정당이 중도우파, B정당이 중도좌파인 경우 A정당은 우파 유권자들의 지지를, B정당은 좌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다. 다만, 중간에서 멀어지면 불리하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중간에 몰려 있다. 극우나 극좌 성향의 유권자는 그 수가 적다. 상대 정당보다 한 표라도 더 얻으려면 중간으로 이동해야 한다. 두 정당이 중간으로 이동하면 정당 간 차이가 없어진다. 이 현상이 가덕도신공항 사례에서 나타난 것이다.호텔링의 이론이 성립하려면 하나의 가정이 필요하다. 중도우파인 A정당이 중간으로 이동해도 우파 유권자들이 여전히 A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A정당이 중간으로 이동해도 상대적으로 우파적이면 우파 유권자들은 A정당을 지지한다. A정당에 불만이 있어도 대체할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이른바 집토끼·산토끼 이론과 통한다. 잡아서 집에 가둔 토끼는 갈 곳이 없고 도망칠 힘도 없다. 주인이 없는 산토끼만 잡으면 선거에서 이긴다. 산토끼를 잡으려면 공(功)을 들여야 한다. 국민의힘은 대구경북을 집토끼로 생각한다. 국민의힘에 부산은 산토끼이다. 이 생각이 가덕도신공항 사례에서 드러났다.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야 정당이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그치는가? 무기력한 집토끼로 있는 한 정당의 배신은 필연적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긴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정당을 바꿀 수 있다. 이는 지지하는 정당에서 이탈(exit)하는 것이다. 물론, 이탈했다가 복귀할 수 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A에서 B로 바꾸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목소리(voice)를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는 정당에 항의하는 것이다. 항의하는 경우 지지하는 정당에서 이탈하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A제품을 쓰면서 기업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과 같다.이탈과 항의는 상호 보완적이다. 이탈할 수 있어야 항의가 효과적이다. 대구경북 주민들은 국민의힘에 대한 충성도(loyalty)가 높다. 충성도가 높으면 항의가 효과적이다. 가덕도신공항과 관련해서 대구경북 주민들의 국민의힘에 대한 감정은 분노와 서운함이다. 분노와 서운함은 애정과 동일하다. 국민의힘에 애정이 없다면 화를 내거나 서운해할 이유가 없다. 지난 주말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통과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대구경북을 집토끼로 생각하는 한 배신은 계속된다. 이탈하거나 항의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은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2021-02-24 11:43:27

[도태우의 새론새평] 일당독재와 역설적 희망

[도태우의 새론새평] 일당독재와 역설적 희망

현 상황은 일당독재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삼권분립은 쓰레기통에 내버려졌다. 먼저 국회의 상황을 보자. 174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초거대 여당 앞에 야당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이 정부 들어 야당이 낸 29번의 인사청문회 부적합 의견은 모두 무시됐다. 공수처법, 임대차3법, 5·18특별법에 대한 야당의 반대 또한 쓰레기통에 내버려졌다. 행정부 공무원들은 정권의 손발이 되어 남에 있는 원전은 폐기하고 북에는 새로 원전을 짓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는 알아서 삼권분립을 반납하고 국민을 속였다.일당독재는 국가 전역에 미치고 있다. 전국 광역단체장 17명 중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중 3분의 2인 151명이 여당이다. 헌법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 각 군 참모총장 모두 여당이 고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무엄하게도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일말의 저항을 보이자 여당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듯 으르렁대며 엄청난 소동을 벌였다. 언론, 노조, 각급 관변단체 및 시민단체, 교육계, 문화계, 종교계, 학계, 변호사단체 할 것 없이 노골적인 친여 성향이 아닌 곳을 찾기 어렵다. 한마디로 일당독재, 여당독재의 상황이다.현 여당은 1987년 민주화 이래 33년 동안 나라 곳곳에 뿌리를 내려왔다. 그 핵심 세력은 1970, 80년대 운동권이다. 기존에 국가 발전을 주도한 세력은 국가기관을 주축으로 했기에, 정당과 시민사회 모두에 취약했다. 현 여당은 운동 조직을 정당 조직과 연결하고, 시민사회를 장악한 뒤 마침내 모든 국가기관과 제도권을 접수했다.권력 독점을 위한 그들의 기만술은 이러했다. 그들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동구권이 몰락하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며 조직을 수습했다. 권력 형성 초기에는 분권을 강조했고, 어느 정도 진지를 구축한 후에는 관용과 협치(協治)를 주장했다. 상대 당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며 비판에 열을 올렸고, 결국 탄핵을 유도해 국면을 전환했다. 탄핵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자 이제 그들에게 두 날개는 필요 없어졌다. 우선 과제는 적폐 청산이며, 관용과 협치,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은 사전에서 지워졌다. '선출된 권력'을 내세워 '선출된 독재'를 거리낌 없이 행하면서 그들은 주장한다. 자신들의 DNA에 독재는 없다고.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부패와 위선으로 같이 녹아내린다면 그 권력은 결코 교체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린 고도(Godot)처럼 오지 않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가? 이권 정치와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맞대응하며 초등학생 대 대학생 수준의 게임을 이어갈 것인가? 대체 탈출구가 있기나 한 것일까?역설적이게도 희망은 현재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일당독재가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일인독재인 김정은 체제와 운명 공동체라는 지점에 있다. 저들은 평화, 민족, 경제 등 갖은 거짓말을 둘러대고 있지만 본질은 유엔 안보리에 회부돼 있는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의 협력범일 뿐이다. 이 본질을 분명히 인식할 때만 저 독재 집단을 고립시키고 그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는 시민세력을 결집할 수 있다. 20만 명이 정치범수용소에서 인간 이하로 취급되며, 3만 명이 인신매매되고, 성경을 지니는 것은 곧 죽음인 휴전선 이북의 '사람'에 눈뜨는 것이 위선과 부패의 극치인 독재 세력의 마법을 깨뜨리는 주문이 될 것이다.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며 인간의 존엄을 옹호하는 건국 이념의 푯대를 높이 올리고 거국적인 전선을 형성하자. 반인도범죄에 협력하는 부패하고 위선적인 일당독재 수뇌부를 철저히 고립시키자. 자유는 지키려 애쓸 때만 유지할 수 있다. 인류 보편 가치와 규범의 빛으로 야만 독재의 진원지를 깨끗이 말려 버려야 할 것이다.

2021-02-17 11:33:18

[최재목의 새론새평]설날, 차례보다 덕담 한마디 더 가다듬자

[최재목의 새론새평]설날, 차례보다 덕담 한마디 더 가다듬자

코로나19가 지속되는 가운데 어김없이 음력 설 명절이 찾아왔다. 설은 추석과 더불어 대한민국 대표 공식 명절이다. 산 자들끼리 모처럼 함께 자리하며, 쉬고 즐길 수 있는 휴일이다. 전염병으로 마음 놓고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유감이나 명절을 맞으니 이런저런 생각거리도 많다.명절(名節)을 사전에서는 '전통적으로 해마다 지켜 즐기는 날, 아주 좋은 시절' 정도로 규정한다. 습관적으로 명절이라 하면 누구나 '아주 좋은 날'로 인식하나 이상하게도 '명+절' 두 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명쾌하지 않다. 우리는 명절을 아주 좋은 날, 철(시절, 절기)로 보고 가절(佳節), 명일(名日), 가일(佳日)로도 쓰는데, 중국・일본에서는 명절이라 적으면 '명예와 절조'로 읽는다. 실제 명절에 해당하는 중국말은 절일(節日)이고 일본말은 축일(祝日)이다.'명'은 '이름나다, 훌륭하다, 좋다'는 뜻이고, '절'은 1년을 스물넷으로 나눈 철=절기(節氣)를 말한다. 절기는 절후(節候)이다. '기'든 '후'든 '철, 때'(=시절, 시기)를 가리킨다. 자연 사물의 이치(物理) 그대로 삶의 이치(道理)라 여겨온 동양의 전통 시대에는 자연이 법(法)이었다. 사람들은 태양의 위치에 따른 빛의 많고 적음 즉 온도의 변화에 기대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달을 보고 날짜를 분별했다. 이렇게 해와 달이 변화하는 규칙을 알아내 패턴화한 것이 24절기와 달력(月曆)이다. 해나 달의 빛에 기대어 생활을 이어왔던 버릇 때문에, 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지금도 우리는 빛살과 맺었던 따스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그리워한다. 인간의 내면에 박힌 빛살의 무늬, 그런 생명력을 '덕'(德)이라 한다. 그래서 빛을 따라 탄생한 명절에 우리가 집착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빛의 생명력을 느낄 덕담(德談)에 기대는 마음도 그렇다. 미안하게도 지금은 덕담도, 덕담해 줄 사람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지옥 같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라고 정호승 시인이 '밥값'이란 시에서 말한 지옥 같은 현실 말이다.지금의 흔해 빠진 덕담이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다. 양력 새해 축하 인사를 이미 실컷 주고받았는데, 다시 음력 새해의 인사를 주고받아야 한다. 솔직히 번거롭고 불편하다. 문자로 쏟아지는 '복 많이… 건강' 운운의 말들이 좀 지긋지긋하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온 국민이 반복하고 있다니. 이럴 바엔 주식, 펀드에 열광하고 있는 국민에게 '주식, 펀드 대박 나기를 빕니다!'라든가, 집에만 처박혀 사는 요즘 '무조건 걸으세요'라는 편이 훨씬 알맹이 있는 인사이리라.또 왜 하필 복, 건강인가. 이것은 전통적인 '수복강녕'(壽福康寧)의 관용구에서 나온 말투이다. 수복강녕이란 '오래 살고'(수) '복을 누리며'(복) '건강하고'(강) '평안하다'(녕)는 뜻이다. 최근 중국발 '사상 최대 3천억 뇌물 수수범 사형'이란 기사나 과거 우리 사회에 유행한 '9988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 3일 만에 죽는 것)라는 문구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제 욕망을 끝없이 실현하고 싶어 한다. 뭐 특별한 일도 아니고 욕망에 찌든 이 풍진세상의 흔한 풍경일 뿐이다. 우리의 덕담이란 게 겨우 이것인가. 제발 수복강녕 같은 기복과 소유의 덕담에서 서로의 삶을 전망하는 가치의 덕담으로 넘어서면 좋겠다.가치란 삶의 의미를 묻는 일이다. 설날 명절엔 무엇보다도 '새해의 첫날'이라는 의미를 살려야 한다. 삶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한 해의 첫걸음을 생각해 보는 것 말이다. 초심의 '초'(初)란 옷을 만들려고 천이나 가죽에 칼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해 첫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 차례보다 더 소중하다. 살아 있는 내 생각의 방식이 차례나 제사의 본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음식 차림의 형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나' 아닌가. 가령 멕시코의 '사자(死者)의 날'처럼 일정 기간을 정해 돌아가신 사람들을 한꺼번에 추념하는 축제도 그들이 결정한 하나의 형식이다. 그것마저도 싫으면 안 하면 그뿐이다. 모든 형식은 은유이고 상징이다. 설 명절엔 차례 음식 차리기보다 마음속 덕담 한마디 더 가다듬는 편이 낫겠다.

2021-02-10 11:34:51

[홍성걸의 새론새평] 이재명을 말한다

[홍성걸의 새론새평] 이재명을 말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선 후보 적합도가 30%를 훌쩍 넘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은 물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텃밭이라는 호남에서도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고, 6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결과야 알 수 없지만 현재 이 지사만큼 차기 대권에 가까이 다가간 후보도 없을 것이다. 이제 대통령감으로서의 이재명을 분석해 볼 시간이 되었다.많은 유권자들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선명하고 시원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과거 성남시장 시절부터 다른 지방정부 수장들과는 차별화된 정책을 통해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이는 분명 그의 리더십이나 자질을 드러내는 큰 장점이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코로나19 대응에 가장 먼저 전 도민 10만원 재난지원금 지급을 들고나온 것이 이 지사이다. 결국 망설이던 다른 기초 및 광역단체는 물론 중앙정부까지도 보편적 지원으로 그를 따랐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서민들이 아우성치자 이 지사는 경기도 공무원 인사에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을 배제시키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러면서 공직자가 임대사업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은 범죄라고까지 선언하며 서민들의 마음을 달랬다. 경기도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어느 청년이 과거 특정 웹사이트에 성희롱이나 장애인 비하 글을 여러 차례 올린 의혹이 있다는 청원이 있자 사실 확인 후 즉시 인사위원회를 통해 임용 취소를 결정했다. 모두 공정과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즉각적인 대응을 통해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유권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사례들이다.이 지사는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들 중 가장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 어떤 사건이라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적합하게 대응하고 이슈를 선점해 가고 있다. 기본소득과 관련한 그의 주장은 일관성과 함께 변화하는 미래에 반드시 검토해야 할 이슈라는 점에서 막말과 구태에 빠져 있는 정계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인다. 중앙정부가 보편적 지원과 선별적 지원을 두고 말싸움만 하고 있을 때, 그는 홀로 눈이 펑펑 쏟아지는 광주 5·18묘역을 방문해 참배하여 그 사진이 보도되도록 했다. 감성정치의 귀재라 해도 틀림이 없다. 거기에 정확한 논리와 빠른 판단력을 겸비해 토론이나 논쟁도 서슴지 않으면서도 약점이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성장 과정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했다는 점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떠오르게 한다.하지만 대통령 이재명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가족 간의 갈등과 의혹은 차치하더라도 이 지사의 행적에는 치명적 한계가 보인다. 선명성을 강조하다 보니 자신을 반대하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남양주시장이 전 도민 보편적 재난지원금에 반대하자 남양주만 빼고 지급했고, 이후 경기도의 감독 권한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 했다. 남양주시가 다른 시와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왜 시장이 반대하는지를 경청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다른 기초단체장들도 이견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남양주시와의 갈등을 보고 편한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사례는 이것뿐이 아니다. 지역화폐로 지급한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효과가 낮다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는 즉각적으로 반발하면서 정치적 의도까지 의심하며 연구자들을 매도했다. 재정 능력을 우려한 의견에는 국가부채 비율이 45%에도 못 미친다면서 일방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재정학자들은 우리의 국가부채 규모는 공공 부문 부채와 공무원 및 군인연금 부담금까지 합쳐 이미 GDP 대비 80%를 넘었고, 가계부채도 2020년 3분기에 이미 1천682조원을 넘어 위험한 상황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차기 대권 후보들 중 독보적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지사는 분명 차기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의 거침없는 언변과 과단성은 장점이지만 지나치면 히틀러나 두테르테 같은 지도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 지사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을 더욱 낮추고 다른 입장을 포용하는 관용의 리더십을 길러야 한다.

2021-02-03 11:32:04

[오정일의 새론새평] 인구(人口) 문제

[오정일의 새론새평] 인구(人口) 문제

작년 우리나라의 출생아는 사망자보다 2만 명 적었다.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작년에 28만 명이 출생했는데 이는 1990년 출생아 65만 명의 43% 수준이다. 한 나라의 출산 능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가 합계출산율이다. 합계출산율이 2.1명 이상이면 인구가 감소하지 않는다. 작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9명이었다. 금년에는 0.8명대가 될 것이라 한다. 인구 감소는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포항시 인구는 1995년 51만 명에서 작년 50만3천 명으로 감소했다. 금년에 50만 명대가 무너질 수 있다.우리나라는 인구가 줄면 경제가 축소되고 인구가 증가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인구가 줄면 걱정하고 인구가 늘면 안심하는 이유는 이러한 생각 때문이다. 이 생각이 확장된 결과가 '인구는 국력'이라는 슬로건(slogan)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5천만 명이어서 내수시장이 작다. 그래서 성장에 한계가 있다." 이 말 속에는 인구는 수요라는 잘못된 개념이 들어 있다. 인구는 수요가 아니다. 인구 중 일부가 수요다. 케인스(Keynes)는 이를 유효수요라고 했다. 우리 경제는 5천만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 보장할 수 있다면 인구는 증가해도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인구가 감소해야 한다. 국민들의 의식주를 겨우 감당하는 수준까지 인구가 증가해야 할 이유는 없다.최근 한 언론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 국내총생산이 감소한다. 생산가능인구 1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하니 소비도 감소한다.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드니 복지 시스템이 붕괴된다." 이 기사는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 국내총생산이 감소한다'는 주장을 과장한 것이다. 생산에서 소비와 세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옳은가?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국내총생산이 감소하는 나라가 있는가?생산을 못 할 정도로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하면 임금이 오른다. 임금이 오르면 국민 일인당 소비와 세금도 증가한다. 또한 임금이 오르면 기업은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한다. 물론, 무한정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기업은 노동을 덜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도 국내총생산이 감소하지 않는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투자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기업이 투자를 줄인다. 유효수요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경제가 축소되지 않으려면 국민 일인당 소비가 증가해야 한다. 소비 성향은 상류층에 비해 중산층 이하 국민들이 높다. 소득재분배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경제에서는 분배가 성장을 견인(牽引)할 수 있다.같은 해 태어난 사람들을 출생 코호트(cohort)라고 한다. 작년에 태어난 28만 명은 하나의 출생 코호트가 된다. 동일한 출생 코호트에 속한 사람들의 생애주기(life-cycle)는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입학과 졸업을 하고 결혼하며 취업과 은퇴를 한다. 이들은 입시, 결혼, 취업에서 경쟁자이지만 세금과 병역을 함께 부담한다. 199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출생 코호트가 크기 때문에 경쟁이 심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무를 함께 부담한다. 작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출생 코호트가 작아서 경쟁이 덜하지만 각자 부담해야 하는 의무가 클 것이다. 출생 코호트가 작은 것은 개인에게 축복도 저주도 아니다. 많이 가져가고 많이 부담하면 된다.정부는 인구 문제를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출산율은 충분히 감소했다. 향후 우리나라 인구가 급감(急減)하지는 않는다. 평균수명이 상한(上限)에 접근하고 있어서 고령화도 멈출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인구는 현 수준을 유지하면서 작은 붐(boom)과 버스트(bust)가 반복될 것이다. 인구가 증가해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끝없는 성장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부는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 또는 개별 가구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전남 해남군 사례에서 확인되듯이 정부보조금은 다른 지역의 인구를 뺏어올 뿐이다. 현재의 인구 버스트 또한 지나갈 것이다. 버스트가 지나가면 붐이 온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攝理)이다.

2021-01-27 11:23:07

[도태우의 새론새평] 중공과 중국

[도태우의 새론새평] 중공과 중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미국 워싱턴이 2만5천 명의 군인들로 얼어붙었다. 1월 6일 선거인단 표결 당시 있었던 의사당 난입 사건이 그 이유라지만 시민들을 분노케 한 부정선거와 중공에 의한 선거 개입 정황은 국가정보국(DNI)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대중(對中) 정책에 대한 맞불이었을까? 여하튼 키신저 회담 이래 미·중 관계 50년이 근본적인 시험대에 올랐다.일찍이 소설가 이문열은 두 개의 중국을 구분한 바 있다. 하나는 '힘의 제국'으로 군림한 중국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문화'의 빛을 발산한 중국이다. 오늘날 두 측면은 중공(중국공산당)과 중국으로 구별된다. 힘의 제국을 계승한 중공 노선의 특징은 최근 홍콩 민주 인사 50명을 무더기로 체포한 데서 잘 드러나며, 미·중 갈등의 심화는 바로 이런 측면의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다.지난 7일 미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 존 랫클리프는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 출처에 근거할 때 중화인민공화국은 2020년 미 연방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고 밝혔다. 랫클리프 국장은 또한 미 중앙정보국(CIA) 지도부가 중공의 선거 개입 분석 결과를 철회하도록 정보분석가들에게 압력을 넣었다며 미 상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인용했다. 자기 나라에는 선거도 실시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선거에 개입하는 중공의 행태는 자유 체제를 위협하는 전체주의 세력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사실 차이나(China)의 어원인 진(秦)나라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체주의 국가의 모델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혹한 통제 위에 강력한 국가를 세운 진은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했지만 15년 만에 멸망한다. 그러나 뒤를 이은 한 제국도 기본 틀은 진을 본뜬 것이며, 이후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에 이르기까지 중국 왕조의 기본 원리는 통치수단적 법치(rule by law)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실상은 권력적인 명령에 의한 지배였다.이런 중공과 대립되는 인문적 중국은 공자와 소동파의 나라이다. 그들은 시문을 숭상하며, 예치와 덕치를 추구한다. 진시황적 제국에 대한 영원한 대척점을 이루었지만 '적법절차에 바탕한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이상에 이르지 못했다. 중국의 두 얼굴인 진시황의 힘과 공자의 정신은 여전히 법 속에서 종합을 이루지 못하였다.한편 우리 역사 속에는 이 두 측면의 중국과 대결하여 부분적인 극복을 경험한 빛나는 사례들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멸망 후 귀환한 소정방에게 당 고종은 '왜 연해 신라를 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소정방은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신하는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과 같이 하니, 비록 나라는 작지만 함부로 도모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힘의 제국에 맞서 독립을 지켜낸 예다.또, 정조 대에 진나라 이전 원시 유학의 뿌리를 탐구한 정약용은 천주교를 통해 서양 문명을 접한 뒤 '천자란 추대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다섯 집이 인장을 추대하고, 다섯 인이 이장을 추대하며 이런 단계를 밟아 마침내 여러 제후가 공동으로 추대한 사람이 천자가 된다는 것이다. 다산은 상향식 민주정이 동양 역사의 시원에 존재함을 알렸다.이렇게 우리 역사 속에 신라처럼 힘의 제국(중공)에 맞서고 다산처럼 중국과 서양을 종합하여 신문명의 지평을 펼쳐간 전통이 존재함에도 오늘 우리는 힘의 제국으로서 중공에 굴종하고, 중국과 서양의 깊은 뿌리를 배워 종합할 기상은 다 팽개친 듯하다.거대한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치러질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을 맞아 자유민주주의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대양 건너 세계 최강국도 뒤흔들어 놓은 중공의 권력술에 경악하며 최인접국으로서 고도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중공과 중국을 구분하고 힘과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 극복을 추구하는 것은 수천 년 우리 역사의 운명적 과업이라 할 것이다.

2021-01-20 14:02:11

[최재목의 새론새평]1월, 1과 장(長)을 생각한다

[최재목의 새론새평]1월, 1과 장(長)을 생각한다

다시 1월이다. 1월의 '1'이란 숫자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그 무엇을 뜻하는 일(一). 그것은 신(神)일 수도, 태양일 수도, 황제일 수도, 오직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일 수도 있다. 시작되는 '처음'일 수도, 모든 것이 결국 돌아가야 할 '마지막'일 수도 있다."문명은 문자에서 시작하고, 문자는 숫자에서 시작하며, 숫자는 1에서 시작한다"고 했듯, 모든 것은 하나, 일(一)에서 시작한다. 한 해도 1월에서 출발한다. 1은 시작하는 곳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지쳐서 돌아가고 싶은 고향. 존재들이 스러져 눕는 흙바닥(대지). 그곳을 향한 향수도 하나를 향한 욕망이다. 사람처럼 곧게 서 있는 1자를, 한자(漢字)로 일(一)이라 써 보면, 무언가 평평히 누워 있는 모습이다. 곧게 서 있던 나무도 결국 땅에 눕는다. 특별하게 솟아났던 것이 결국 수평으로 누워 '그게 그것'인 것으로 변해 가듯, 서 있는 것(1)이나 누워 있는 것(一)이나 다 같은 '하나'이다.어쩌면 1은 0이 낳은 독생자(獨生子)이거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독존(獨尊) 같은 것인가. 무한・혼돈・무(無)・제로(空)를 향해 떠나가는 나그네 같은, 모든 존재들의 과정(=소멸・퇴락・멸망)을 기억하라는 영광스럽고도 안타까운 부표인 것일까. "단 한 번,/ 모든 것은 단 한 번뿐 더 이상은 오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 단 한 번뿐 다시라는 건 없어. 그러나/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한 번 존재했었다고 하는 것,/ 바로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그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 9번째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서양의 전통에서 보면 1은 신이 독점했었다. 그런데 이런 1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 좀 예외적이긴 하다. 하기사 릴케는 "신이여 내가 죽으면 당신은 뭘 하시겠습니까?"라고 신을 위로하는 시어를 가진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 자격도 있다.수많은 빛이 있으나 결국 하나의 태양에 귀속된다. 잔잔한 별빛도, 흔들리는 촛불도, 따사로운 모닥불의 불꽃도, 내 눈빛도, 모두 위대한 강렬한 저 빛 앞에선 제압당한다. 인간의 삶에서도 그렇다. 촛대였던 주(主) 자가 한 집안을 밝힐 주인공이라는 뜻에서 '주인'이라 읽게 되었다. 모든 불빛은 거기로 모인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한 도시의 시장도, 한 대학의 총장도, 그 자리엔 단 한 사람밖에 없는 '장'(長)이다. 장은 우두머리, 수뇌, 리더, CEO이다. 빛을 발할 자리이자 자격을 가진다.최근 새로 총장이 들어서고, 조만간 보궐선거로 시장도 바뀌게 된다. 나아가 대통령도 바뀔 것이다. 임기를 가진 장들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어른, 높음, 나음, 오램(항상)'이라 생각한다. 첫째 어른 노릇이다. 어른은 근엄하기도 하나 포용하고 통합하고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 자리는 높지만 낮은 평지여야 한다. 분열하고 이간질하는 자리가 아니다. 목에 힘주고 번쩍대며 큰소리만 친다면 '태양을 꺼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유일한, 환한 빛 아래에 온갖 잔잔한 빛의 수많은 주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둘째, 안목이 높아야 한다. 그래서 한 수라도 더 볼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을 말한다. 도시는 인구를 잘 챙겨야 살고, 대학은 학생을 잘 받아야 산다. 그렇지 않으면, 벚꽃 '피는 순서'대로가 아닌, 벚꽃 볼 '사람 없는 순서'대로 망해 갈 것이다. 셋째, 뭐가 나아도 더 나아야 한다. 각기 능력대로 일할 자리, 먹고살 자리를 챙겨 주는 게 보통 사람보다 더 나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힘이 아니라 짐이 될 뿐이다. 넷째, 가치 있는 약속을 오래 지킬 능력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했다. 저질러 놓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고 매듭짓고 지속해 가도록 해야 한다.시작 지점에 있는 1이란 숫자는 둥근 원 속의 한 점처럼, 모든 운동의 시작이며 회귀의 자리이다. 1월, 어느 자리에서든 누구나 주인이 되는 1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리는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모든 것을 품고 나누지 않는, 어머니의 품 같은 따스한 자리였으면 한다. 다시 1월. 싸늘한 대립과 모순의 상황 속에서, 1이란 숫자를 가만히 품어 본다.

2021-01-13 11:22:51

[홍성걸의 새론새평]사면(赦免)의 정치학

[홍성걸의 새론새평]사면(赦免)의 정치학

극도의 어려움 속에 희망을 갈구하는 신축년 새해 벽두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자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정치권은 사면 정국에 휩싸였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서 사면법에 의한 절차적 규정은 있으나 대상이나 범위 등에 큰 제한은 없다. 과거 재벌을 대상으로 사면권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어 유전무죄라는 비난이 일었고, 이것이 법 적용의 형평성과 공정성, 사회적 정의를 해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아직 입법화되지는 않고 있다.대통령의 사면권은 기본적으로 법치주의에 반한다는 측면에서 예외적이고 제한적으로만 행사되어야 한다. 민생 관련 범죄에 적용되는 일반사면과는 달리 특별사면은 더욱 엄격히 시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기본적 입장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정치를 생각해 보자.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과거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선례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두 사람은 내란죄 등 엄청난 범죄를 이유로 소추가 진행되었다. 당시 소멸시효 등 여러 문제가 있어 결국 5·18특별법을 제정하여 재판을 진행했고 유죄 판결에 따라 최종적으로 무기징역 등의 형이 선고되었다. 김영삼 정부 말기, 김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사회 통합을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의 합의로 사면을 단행함으로써 두 전직 대통령은 2년여의 옥고를 치른 후 석방되었다.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김 대통령의 이 같은 결단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저버리지 말자는 뜻으로 이해되었다.이후 한동안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갈등은 있었으나 서로 정권을 주고받으며 경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국면이 바뀐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부패 의혹 수사가 노 대통령의 자살로 끝나면서 386 중심의 친노 세력이 노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천명하면서부터다. 세월호 사건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여파로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정권을 잡은 386세력은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정적 척결에 나섰고, 이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갈등은 한국 정치의 전면에 재등장하여 사회를 극도로 분열시켰다.전직 대통령 사면에 반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대표 개인의 정치적 야망으로 사면 카드를 쓴 것이라는 비판에서부터 반성이 먼저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주장하는 촛불혁명에 대한 모욕이나 세월호 진실 조사 미진, 두 전직 대통령의 해외 재산 은닉 의혹이 사면 불가의 이유라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과 관련이 없고,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국정 농단에 관해 이미 사죄한 바 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4년이 다 되어 가도록 세월호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진상조사를 계속하겠다는 것과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해외 재산 은닉 의혹 때문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산 의혹이 있다면 증거를 바탕으로 고발하면 될 일이고, 설혹 그렇더라도 아버지의 죄를 딸에게 묻겠다는 것은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 위반이다.지금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란 사람들이 오히려 반민주적 행태를 보이면서 촛불 이후 문재인 정부의 높은 국정 지지도의 견인차였던 중도적 유권자들이 급속히 떨어져 나가고 있다. 많은 정책 실패와 함께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져 그 어느 때보다 화해와 통합의 필요성이 크다. 이러한 때에 전직 대통령 사면은 화해와 통합을 이룰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면은 언제 이루어지든 항상 찬반양론이 있게 마련이다. 형의 확정이라는 형식 요건이 갖추어진다면 문 대통령의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정치적 이해득실이 아무리 크더라도 국론 분열과 극한 대립으로 인한 피해보다 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1-01-06 11:50:54

[오정일의 새론새평] 조두순과 윤성여

[오정일의 새론새평] 조두순과 윤성여

8세 어린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이 12년을 복역하고 만기 출소했다. 법원은 향후 7년간 조두순의 야간 외출과 음주를 금지했다. 조두순의 집 앞에 경찰관이 배치되고 학생들에게 안심 호루라기가 지급되었다. 왜 조두순을 석방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2008년 당시에도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형벌이 가볍다는 여론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형벌이 가볍다. 사형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 법원은 사형을 거의 선고하지 않고 집행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실질적인 사형제 폐지 국가이다. 조두순 사례는 우리 사회에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이 무엇인가라는 화두(話頭)를 던졌다.범죄자를 처벌하는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범죄자를 처벌하면 유사한 범죄가 저질러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는 형벌의 기능적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해서 범죄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이다. 칸트(Kant)가 말했듯이 복수는 인간의 본성이다. 되갚는 것이 정의이다. 이는 형벌의 응보적(應報的) 측면이다. 응보가 있을 때 정의가 실현된다. 형벌의 목적이 무엇이든 형벌의 크기는 범죄의 심각성에 비례해야 한다. 심각한 범죄에 무거운 형벌을, 경미한 범죄에 가벼운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정의이다. 조두순에 대한 형벌은 적절했는가?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20년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에게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법원은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를 발견하지 못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했다. 윤 씨는 약 18억원의 보상금을 받고,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돈이 윤 씨의 잃어 버린 20년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시민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법원 판결에 따르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법원이 전지전능하기 때문은 아니다. 종종 우리는 검찰과 법원이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윤성여 사례를 통해 시민들은 사법제도의 불완전함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10명의 도둑을 놓쳐도 1명의 무고(無辜)한 사람이 처벌받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당분간 여론의 힘을 받을 것이다. 증거재판주의가 강화될 수도 있다. 증거재판주의가 강화되면 유죄 선고가 줄어든다. 이에 따라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가 선고되는 오류도 감소한다. 1명의 무고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10명의 도둑을 놓칠 수 있다. 왜 그런가? 증거재판주의를 강화하면 범죄자에 대한 유죄 선고도 감소하므로 범죄자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오류가 증가한다.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는 것을 제1종 오류, 도둑을 놓치는 것을 제2종 오류라고 한다. 제1종 오류를 줄이면 제2종 오류가 늘고, 제2종 오류를 줄이면 제1종 오류는 증가한다. 이것이 사람이 만든 사법제도의 한계이다. 검사와 판사가 신(神)이 아닌 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사람은 오류를 줄일 수 있을 뿐이다.어떻게 해야 사법제도의 오류가 감소하는가?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오류가 줄어든다. 검사가 더 열심히 수사하고 판사는 더 열심히 사건 기록과 증거를 살펴보면 된다. 왕도(王道)는 없다. 물론, 수사와 재판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수사와 재판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올 한 해 우리는 사법 개혁이라는 단어를 신물이 나게 들었다. 사법 개혁의 목적은 무엇인가? 수사와 재판의 절차적, 실체적 정당성을 확보해서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 간 수사권을 조정하면 제2의 조두순이 나타나지 않는가? 공수처를 설립하면 윤성여 씨와 같은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가? 현재 논의되는 사법 개혁은 시민의 인권 보호와 무관하다.검사와 판사 개개인이 수사와 재판에 충실할 때 진정한 사법 개혁이 이루어진다. 제2의 조두순이나 윤성여 씨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사법 개혁이다. 페이스북(facebook)이나 트위터(twitter)에 과격한 말을 쏟아 내는 것은 사법 개혁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지루한 말싸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2020-12-30 11:47:44

[도태우의 새론새평] 투표지 6장의 무게

[도태우의 새론새평] 투표지 6장의 무게

부정선거 정황이 의심되는 개표장의 미기재 투표용지를 공익 제보했던 이종원 씨가 구속 5개월 만인 지난 18일 1심 판결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검찰 구형 전체에 해당하는 형량이었다. 지난 4·15 총선 당시 이 씨는 구리시 개표장에서 참관 중 일반 투표용지와 색이 다른 투표지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경찰 출입을 막았다. 그러자 현장의 다른 참관인이 '기표 안 된 여분의 사전투표용지도 있다. 이것도 이상하다'며 6장을 주어 증거 확보를 위해 보관했다. 그 후 제보를 접수하던 민경욱 전 의원에게 표를 전달하게 되었다고 한다.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 씨가 "야간방실침입절도죄와 투표용지은닉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정작 검찰은 절도를 입증할 영상을 제출하지 못했다. CCTV 없는 체력단련실에 빈 투표용지를 넣은 여행 가방을 두어 불법 관리 논란을 자초한 것은 선관위인데, 절도하지 않았음을 입증할 CCTV가 없으므로, 이 씨가 체육관에서 투표용지를 가져왔다는 논리다.이는 형사사건에서 소추기관이 거증책임을 지며,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에 의해서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 판단한다는 형사법 대원칙을 총체적으로 붕괴시키는 판결이다.정다주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침해한 것은 선거의 공정성 그리고 그것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공권력에 대한 신뢰, 자유민주주의 제도 자체이기도 하다"고 썼다. 또한 "이런 범행을 방치할 경우 가짜 뉴스나 음모론의 양산, 포퓰리즘 정치인의 득세,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말은 피고인 이종원 씨가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와 법원에 해야 할 말이다.4·15 총선에 대해 후보 25명을 포함한 130곳 이상의 지역구에서 선거무효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 중 한 건도 법정기한인 180일 내에 선고된 것이 없다. 모든 소송을 통틀어 10월 23일 변론준비기일과 12월 14일 4시간 검증이 진행 상황의 전부이다. 검증 현장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포렌식 대상인 전자개표기 등 선거 전자장비 수천 세트 전부에 대해 이미 수개월 전 모든 프로그램을 삭제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부정선거를 가릴 소송이 1건도 제대로 진행된 곳이 없고, 8개월의 시간을 끌며 대량의 체계적인 증거인멸이 자행되었는데, 정 재판장은 선거 부정 의혹을 이미 '가짜 뉴스'라 단정하며, 부정 의혹 제기자가 오히려 선거의 공정성을 파괴한다고 단정했다. 소송 중인 사건에 결론을 유보해야 할 법관으로서 극히 부적절한 태도이다. 정 재판장은 나아가 "엄정한 사법적 대응을 통해 피고인의 죄책을 묻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려 일반 예방효과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대통령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함'을 주문하더니 막상 비리 백화점 조국을 건드리자 1년 반 동안 나라가 뒤집혔다. 결국 검찰총장에게 정직 2개월이 내려졌다. 판사들을 특별수사 대상으로 삼는 공수처도 곧 출범한다고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관련 '사법 농단' 프레임에 걸려 첫 증인이 되는 등 호된 경험을 치른 바 있는 정 재판장의 마음이 얼마나 움츠러들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요컨대 투표지 1장씩의 무게는 이렇게 되돌아오고 있다. 한 장마다 서린 진실의 무게를 쉽게 저버리고 수상하기 그지없는 180석에 굴복한 뒤 우리 국민은 대북전단금지법, 5·18과 4·3특별법, 공수처설치법을 비롯한 '불법적 법률' 아래 종의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 있다. 일부의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을 믿고 싶은 세말(歲末)이다. 혹 진실이 더 이상 존중되지 않는 세상을 만든다면 모든 사람들을 영구히 어둠 속에 두고 속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칠흑 같은 밤 가장 낮은 마구간에 빛으로 오신 예수 성탄 전야를 맞아 제일 버림받은 곳에서 새 역사의 동이 텄음을 상기한다. 완전한 어둠은 더 완전한 빛이 수태되는 입구가 될 뿐이었다. -결국은, 메리 크리스마스!

2020-12-23 14: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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