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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봄날은 가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가 무엇일까? 계간(季刊) '시인세계'에서 10여 년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였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이 노래는 1953년 대구의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었다. '연분홍 치마'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 젊은 여자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살살 휘날리는 것 같다. 이 여자는 왜 옷고름을 씹어 가며 성황당 길에 올랐으며,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었을까? 왜 '앙가슴을 두드리며', '얄궂은 그 노래를 불렀을까? 모두 다 얄궂은 봄날과 '실없는 그 기약'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이미자, 배호, 나훈아, 한영애 등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만큼 다른 가수들도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이 가사를 잘 들어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그려진다. 그 스토리란 게 사실은 뻔한 신파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있었고, 그들은 마을 뒷산 성황당을 남의 눈을 피해 오르내렸고, 장래를 함께 약속했고, 남자는 떠나갔다. 그리고 그 남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오지 않고 다시 새봄이 돌아오자 여자는 봄바람 속에서 앙가슴을 앓는다는 이야기다. 이 노래가 전쟁 중에 나왔으니 그 남자는 전쟁터에 갔을 수도 있다. 뻔한 스토리이긴 한데 한잔 마시고 취기가 올라 이 노래를 불러보면 그 뻔한 서러움이 가슴을 친다. 조선시대의 대중가요 격인 시조창에서도 이 노래의 선조 격이 되는 봄 노래가 제법 있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삼춘(九十三春)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든고." 작자 미상의 이 시조는 지은이가 여자인 것으로 보인다. 봄날 막 돋아난 버드나무 사이로 꾀꼬리가 부지런히 오간다. 시인은 이런 광경을 마치 꾀꼬리가 실 사이를 오가며 옷감을 짜고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 봄 세 달 동안 꾀꼬리는 버드나무 아래를 오가며 푸르름을 옷감처럼 짜나가는데, 그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몹시 힘들었다. 온통 시름이었던 것이다. 왜 시름인가? 위 '봄날은 간다'처럼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게 봄날을 지켜왔는데 누군가는 봄이 지나고 나니 푸른 풀과 잎들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인고(忍苦)의 봄날을 보낸 결과가 녹음방초인데, 아름답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녹음방초란 바로 봄날 온통 힘들게 보낸 자신의 시름의 결과물인 것을. 녹음방초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픔이란 것을 표현하고 있는 매우 세련된 시조다. 이 두 편의 노래는 남성의 부재(不在)로 인한 여인의 한이 기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봄 노래가 이토록 한스럽기만 한가?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습관데/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 날이리 웃을 대로 웃어라."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시조다. 맑은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 무엇이 우습길래, 온 산을 뒤덮은 꽃과 풀이 온몸을 흔들며 웃는가. 내버려 두어라. 봄바람이 며칠이나 가겠느냐, 만산홍록이 웃고 싶은 대로 웃도록 그냥 두어라. 이 시조는 봄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니, 마치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에 온 산에 꽃과 풀이 웃는 듯하다는 것을 의인화해서 노래한다. 왕자답게 호방하게 큰소리를 친다. 올해 봄꽃은 때 이른 더위에 한꺼번에 피더니 비바람과 갑작스러운 추위에 일제히 졌다. 그렇게 짧은 봄날은 갔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도 섭리인 것을. 봄날은 가라. 하응백 문학 평론가

2018-04-28 00:05:00

[광장] 우리는 '이야기'를 버렸다

우리는 우리말 '이야기'를 버렸다. '글짓기'도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스토리텔링'을 앉혔다. 덕분에 글짓기 대회는 스토리텔링 대회로, '이야기 공모전'은 '스토리텔링 공모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군가가 스토리의 힘과 산업적 가치를 열거하며 '스토리텔링'과 '이야기'는 다른 거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영어, 또 하나는 우리말일 뿐, 둘은 같다. 시작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이었다. 디지털 시대가 낳은 이 신조어는 1990년대 중반, 미국의 한 지역 방송에서 처음으로 전파를 타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말 그대로 '디지털'과 '스토리텔링'이 합쳐진, 즉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스토리'를 '텔링'하는 일종의 '행위'를 뜻하는 말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막 열리던 그때였다. 창작자들은 콘텐츠를 만들기에 앞서 그 콘텐츠에 담긴 이야기가 디지털 문화와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그리고 확장성은 있는지를 먼저 고민했다. 그런 다음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콘텐츠를 만들고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확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콘텐츠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전개를 지칭하는 신조어였다. 순기능도 비교적 분명했다. 작은 규모의 작은 콘텐츠가 큰 시장을 넘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 것이다. 콘텐츠 시장의 크기와 다양성이 늘어난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일단의 자칭 전문가들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제 것인 양 가져가 개념을 부풀리고 해석을 독점했다. 마치 온 나라를 먹여 살릴 새로운 기술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시나리오 작법' 같은 책을 외국에서 가져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책으로 둔갑시켰고 잘된 콘텐츠마다 따라다니며 '스토리텔링의 승리'라는 해석을 붙여댔다. 이들의 활약(?)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놓고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했다고 말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화콘텐츠 산업과 시장의 모든 것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 하나로 장악해 버린 자칭 전문가들의 희한한 논리에 주눅 들어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한 홍길동처럼 애니메이션을 애니메이션이라 쉽게 부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성공한 감독은 '그냥' 영화감독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거장'으로 높여(?) 불리기도 했다. 아무튼 느닷없이 그렇게 고양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별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그런 전성기를 누리던 자칭 전문가들은 틈틈이 자신들에겐 어렵고 불편했던 '디지털'이라는 세 글자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슬그머니 지워버렸다. 그렇게 지난 세월 '디지털'은 가고 '스토리텔링'만 남았다. 그 나름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채 바다를 건너왔던 신조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결국 '스토리텔링'이라는 보통명사로 회귀했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는 동화도 기행문도 수필도 모두 사라지고 스토리텔링만 남은 해괴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숱한 스토리텔링 대회와 공모전이 열리고 학교에선 스토리텔링을 과제로 내지만 정작 아무도 그게 뭔지를 모른다. 대체 '스토리텔링'이 뭔지, 어떻게 하면 단순한 '이야기하기'가 아니라 뭔가 차원 높을 것 같은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는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답을 찾아 헤맨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우리가 진짜 우리의 이야기로 뭔가를 하고 싶다면, 우리도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코코'(COCO) 같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유령 같은 '스토리텔링'부터 버려야 한다. '스토리텔링'에 밀려난 '이야기'라는 우리말부터 되찾아야 한다. 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2018-04-21 00:05:00

[광장] 마라톤의 추억

지난 4월 1일 2018 대구국제마라톤대회 TV 중계방송을 시청했다. 봄을 맞이한 대구의 아름다운 풍경이 화면 가득히 펼쳐져서 반가웠다. 힘차게 달리는 선수들 모습 뒤로 도심 곳곳의 대형빌딩과 상업시설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시 브랜드 홍보 효과가 클 것 같다. 최근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마라톤 감독의 사인이 담긴 A4 용지를 얻었다. 대구마라톤 결승선 인근 호텔의 입점 업체 벽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시원스러운 필체의 사인과 함께 적힌 42.195라는 숫자를 바라보면서 문득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기억이 떠올랐다. 2001년 4월 어느 봄날이었다.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을 기념하는 '패트리어트 데이' 휴일이었지만 연구실로 출근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미국인 행정 직원이 전화로 알려줬다. 세계 4대 마라톤대회의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1947년 서윤복, 1950년 함기용에 이어 51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직접 마라톤대회를 참관하지 못했지만 보스턴에서 생활하고 있던 내게 큰 자부심을 안겨줬다. 2014년 1월 오랜만에 보스턴을 방문했다. 보스턴까지 가는 직항편이 없어서 일본 나리타공항을 경유해서 갔다. 하버드 의대 주최로 이틀 동안 진행된 학교 정신건강에 대한 학술세미나에 참석했다. 둘째 날 오후에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는 체첸계 이슬람 극단주의자였던 차르나예프 형제가 압력솥을 이용한 사제폭탄을 터뜨려 3명이 사망하고 260여 명이 끔찍한 부상을 당한 사건이다. 테러범 조하르 차르나예프가 다녔던 케임브리지 린지 앤 라틴스쿨 교장과 학교 전담 경찰, 교육청 관계자가 나와서 발표를 했다. 토론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발언하기 위해 마이크 뒤로 길게 줄을 섰다. 질의응답 시간은 당초 예정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넘겨 마무리됐다. 세미나 참석자들의 사건에 대한 관심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대구국제마라톤대회 중계를 보면서 보스턴 마라톤 테러의 전모가 궁금해졌다. 작년에 개봉한 '패트리어트 데이'라는 영화 DVD를 구해서 감상했다. 2013년 4월 15일 117회 보스턴 마라톤대회 결승선 인근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가 무척 흥미진진해서 한 번에 다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나온 '보스턴 스트롱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라는 보고서를 PDF 파일로 구해서 읽었다. 테러가 발생한 지 총 102시간 53분 만에 테러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위기 상황이 종결되기까지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다. 박진감 넘치는 영화 스토리가 실제 사건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폭탄 테러로 다리가 절단되는 등 중상자들이 많았는데도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은 부상자들은 모두 살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의학 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PubMed)에서 보스턴 마라톤 테러 관련 논문을 검색해봤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보스턴의 여러 병원에서 관련 논문이 발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정신과의 캐서린 고 박사가 참여해서 마라톤 테러와 정신건강을 주제로 2016년 '란셋 정신의학지'에 발표한 논문이 특히 인상 깊었다. 캐서린 고 박사는 고경주(하워드 고) 전 미국 보건복지부 차관보의 딸이다.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서 '보스턴은 강하다'(Boston Strong)라는 슬로건이 실감 났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다음 주 월요일에 열린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보스턴 마라톤에 여러 차례 참가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나도 보스턴 마라톤대회 현장에 달려가고 싶다. 대구국제마라톤대회를 통해 훌륭한 유망주가 발굴되어 보스턴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018-04-14 00:05:04

[광장] 과잉의 강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아 정리해둔 물품을 보고 있자니 긴 한숨이 나왔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사둔 물건, 필요하긴 하지만 이미 사다 놨다는 걸 모르고 또 산 것, 필요 없는데도 뭔가에 혹해서(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이유로) 산 물건, 필요하긴 하나 지나치게 많이 사서 집을 비좁게 만드는 물건으로 내 존재 자체가 폭식과 소화불량, 비만, 정체를 체현하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특히 면도기는 시장점유율 1위인 면도기(면도기 자체만 3개, 면도날 4개)부터 전기면도기(3종), 일회용임에도 여러 번 써도 되게 성능이 뛰어난 면도기 3종 등 당장 쓸 수 있는 것만도 10개가 넘었다. 매일 면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삼 년은 써야 그 면도기들이 소용을 다하게 될 것이었다. 전기면도기는 충전을 하고 면도날을 갈면 죽을 때까지 쓰고도 남아 유산으로 물려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유산을 받고 안 받고는 받는 사람 마음이겠으나.당장 불필요한데도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과의 차별성 때문에 구입한 면도기를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특정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을 했던 때에 무분별한 구매 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지난 세기 1990년대 초반 TV 홈쇼핑이 처음 시작되었을 무렵 쓸데없는 문구류를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사들였다가 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소비에 관한 한 사람은 입력(광고, 입소문, 마케팅 전략)에 따라 출력(소비, 구매, 쓰레기 배출)을 반복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유능한 마케터들은 분석과 통찰, 논리적 결정이라는 인간 고유의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이 소비에 간섭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그러니까 소비사회 속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생산자의 마케팅 기법에 노출이 되고 무의식 중에라도 욕구를 자극받으며 욕망을 실현하게 된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TV의 '맛집 프로그램'을 보다가 차 열쇠를 챙겨들고 나서는 사람처럼.어떤 SNS, 포털 사이트, 무료 인터넷 서비스는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하는 장치를 시스템 속에 숨겨놓고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중독적인 소비행위를 하도록 부추기고 다른 매체에 비해 더 많은 광고수익을 올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그것이 불법적이면 처벌을 받고 제어가 되겠지만 법망을 피해가는 것은 아주 쉽다. 피해를 입은 다수의 사람들이 보상, 배상을 받는 게 훨씬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소비가 '소비자의 현명하고 자발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논리를 누군가 교묘하게, 광범위하고 오래도록 전파해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사실상 소비자가 그렇게 독립적인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일방적인 정보를 주입하고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과장과 현혹을 통해 면도기를 몇 개나 더 사도록 한다. 심지어 면도기가 얼마나 많은지 잊게 만들기까지 한다.이러한 불합리와 정리되지 않은 인간관계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하나씩 사면 터무니없이 비싸서 억울한 김에 사버린 수십 개들이 화장지, 때깔 좋고 맛있고 값은 싸지만 박스 단위로만 팔아서 조금밖에 먹지 못하고 태반을 버린 과일처럼.이런 것들을 버리는 데도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는 결단과 과정이 필요하고 내가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그런 것들로 어디선가 거대한 쓰레기의 섬이 만들어지고 있고 환경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불편하다.아무리 많아도 과잉이 되지 않는 것은 새벽녘의 가냘픈 봄비 소리, 그 봄비에 젖은 봄꽃의 소리 없는 향연.

2018-04-07 00:05:00

[광장] 독도 해역을 조사하는 배 한 척도 없다?

2017년 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만찬에 독도새우가 올랐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본 정부는 왜 하필 '독도새우'냐고 발끈해서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인 만큼 한국이 '독도'라는 명칭이 들어간 재료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독도새우가 무엇인가? 동해안에서 잡히는 큰 새우는 크게 세 종류다. 세로줄이 들어가 있는 붉은 새우는 꽃새우(표준명은 물렁가시붉은새우), 닭벼슬처럼 생긴 모양의 대가리를 한 닭새우(표준명은 가시배새우), 닭새우와 비슷한데 보다 붉은빛이 돌면서 크기가 큰 새우가 도화새우(일명 독도새우)다. 울릉도나 독도 근해에서 잡혀 독도새우라는 편의상 이름이 붙었는데 포항 등지에서는 20~30년 전부터 미식가들이 회로 먹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닭새우, 꽃새우, 도화새우 모두 통칭해서 독도새우라 부르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트럼프가 방한하기 전 일본을 들렀는데 이때 만찬의 식재료에도 새우가 올랐다고 한다. 그 새우는 닭새우라고도 하지만 일본명으로는 이세(伊勢)새우인데, 한국의 닭새우와는 완전 다른 종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라는 우방국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했을 때 가장 맛있는 식재료를 동원한 것인데, 음식상에 무엇이 올랐든지 간에 상대방에게 미주알고주알 따질 계제는 아니다. 이런 것까지 화제가 되고 양국의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독도'라는 '뜨거운 감자' 때문인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독도' 이야기만 나오면 애국자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2005년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방위백서, 외교청서 등의 기록물에서 독도영유권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도 지속적으로 이에 맞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교적 대응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의 완성이 바로 그것이다. 울릉도의 부속 섬인 독도에 대해 더욱 연구하고 활용하고 자원화하여 독도의 가치를 더 높여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출범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동해연구소 소속의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도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울릉도, 독도 인근 해역의 실질적인 연구를 위해 출범했다. 하지만 아직 이 해양연구기지에는 울릉도와 독도 해역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전용선 하나 없다. 이 연구기지의 김윤배 박사가 3월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내일 새벽같이 어선(연안자망) 임차하여 당일 일정으로 독도 연안 조사를 위해 독도 수중에 들어갈 장비 세팅 중. 독도 연안의 해수 흐름을 측정할 해류계, 독도의 수위 변화를 측정할 수위계, 해수 중의 빛의 세기와 수온을 측정할 장비들. 몇 개월 동안 독도 연안에 들어가 다양한 정보를 담을 예정. 이외에 서도 혹돔굴, 동도 해녀바위 등 다이버가 입수하여 수중생태계 관찰 예정. 올해 매달 독도에 들어가야 할 듯. 1년 독도 바다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그나저나 언제쯤 어선 임차에서 탈피하여 독도전용 조사선으로 번듯이 조사할 수 있을까"라는 글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댓글에서 김 박사는 10t급 어선을 임차했다고 밝히면서 "해수부에 독도 동도 물양장 정온구역 접안 가능한 20t급 소형 쾌속조사선을 계속 건의 중"이라고 하기도 했다. 독도는 말과 의기와 각종 서명으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보다 현실적으로 김 박사의 소망처럼 소형 쾌속조사선이 하루빨리 건조되어, 연구원들이 '번듯이'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하응백 문학평론가

2018-03-31 00:05:00

[광장] 포스터 감별법

커다란 현수막이 나붙기 시작했다. 봄과 함께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돌아온 까닭이다. 이제부터 거리는 점점 더 소란해질 테고 어딘가 좀 들떠 보이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번잡한 교차로 곳곳에선 저마다 시장, 구청장, 군수, 의원이 되겠노라며, 잘할 수 있다며 길 가는 이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할 거고 손 내밀며 악수도 청할 것이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잔칫날처럼 그걸 반기는 사람도 있었고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비켜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악수 한 번 한다고, 눈 한 번 마주친다고 갑자기 생각이 변할 리도 없으니 쓸데없이 요란만 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투표하는 날, 그 북적이는 시간을 보내고도 후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런 생각은 더 커질지 모른다. 우리가 바로 유권자임에도, 그러니까 그들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지닌 존재임에도 정작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니! 문 닫기 직전 붐비는 마트에서 엉겁결에 물건을 골라 나온 것처럼 뒤끝이 개운치 않다. 벽보도 나붙고 노래도 나오고 TV에서 토론도 했으니 나름 옥석을 가렸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면 예문을 다 못 읽고 답을 고른 것처럼 미련이 남는다.선거는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고르고 만들어가는 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잔치다. 그러니 잔칫날 제대로 즐기려면 고를 때 잘 골라야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치 않다. 최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고 짐작도 잘해야 한다. 물론, 후보를 불러서 이야기도 해보고 여행도 같이 가보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후보 사용설명서, 즉 포스터, 현수막, 책자 등에서라도 부지런히 힌트를 찾고 답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확성기 소리에 정신 팔려 부지불식간에 산 제품을 4년 내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는 것 같은 곤란을 겪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달랑 포스터 하나라 할지라도 거기엔 후보의 생각이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대로 살펴야 한다. 배려 따윈 잠시 접어두고 거만한 자세와 게으른 눈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포스터 감별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좋은 포스터는 그런 자세, 그런 눈으로 봤음에도 시선, 마음, 생각을 차례대로 붙잡아낸다.포스터의 힘은 결코 번득이는 아이디어나 별난 이미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건 오직 유권자를 향한 사랑과 정성에서 생겨나고 그 정성과 사랑을 시각화해내는 전문가 또는 전문가 집단의 역량으로 이루어진다. 포스터는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거다. 따라서 알아야 할 정보가 순차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포스터, 이미지와 텍스트가 따로 노는 포스터, 빈 데 없이 이것저것 꽉꽉 채워 넣은 포스터,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포스터, 그리고 시민을 가르치려 드는 포스터를 보면 주저 없이 기분 나빠해야 한다. 가치를 말하지 않는 포스터, 좋은 말만 나열된, 그래서 더 공허한 포스터, 뭘 하겠다는데 그게 구청장이 할 일인지 아니면 시의원 또는 구의원이 할 일인지 구분을 못 하는 포스터, 심지어 이름과 사진을 다른 이로 바꾸어도 거의 티가 나지 않는 영혼 없는 포스터를 보면 망설임 없이 불쾌해해야 한다. 그건 우리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거다. 그걸 만드는 내내 머릿속에 시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포스터(홍보물)는 별로일지 몰라도 사람은 괜찮다는 말은 억지스럽기만 하다. 창의성은 공감하는 데서 나오고 공감은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 시민을 향한 절절한 마음이 있다면 포스터가 그렇게 나올 리 없다. 그리고 그것조차 안 되는 후보가 진짜 시민이 원하는 걸 해낼 리 없고 그 정도의 안목도 없는 후보가 도시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낼 리 없다.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2018-03-24 00:05:00

[광장] 어느 멋진 날, 신주쿠

3'1절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대구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을 이용했다. 도쿄를 1박 2일 일정으로 짧게 다녀오는 것은 쉽지 않다. 나리타공항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대구공항과 하네다공항을 왕복하는 항공편이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 도쿄를 방문하면 항상 신주쿠에 숙소를 정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키노쿠니야 서점 본점이 신주쿠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간다의 고서점가도 지하철로 한 번에 갈 수 있어서 편리하다. 일본 출판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간다 고서점가는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일본의 대형서점에서는 계산대에서 서점 특유의 포장지로 책에 커버를 씌워준다. 책을 담는 봉투나 쇼핑백에도 별도의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책이 젖지 않도록 비닐봉지로 정성스럽게 쇼핑백 윗부분을 덮어준다. 사소한 차이지만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찾고 싶은 책을 문의하면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책을 직접 찾아준다. 서가 위치가 적힌 종이만 건네주고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키노쿠니야 서점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해외 잡지를 판매하고 있다. 국내 대형서점과는 달리 잡지를 비닐로 밀봉하지 않아서 내용을 살펴본 뒤 구입을 결정할 수 있어서 좋다. 의자가 있긴 하지만 독서실처럼 장시간 앉아 있을 분위기는 아니다. 서가 위치나 인테리어의 변화가 별로 없어서 익숙한 분위기에서 책과 편하게 만날 수 있다. 키노쿠니야 본점 2층 문학 코너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엽서 크기의 종이에 저자가 독특한 글씨체와 디자인으로 인사말과 멋진 사인을 남긴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서점 직원에게 문의해 이 홍보물의 명칭이 '피오피' (POP)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쉽지만 피오피를 따로 판매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여러 작가의 피오피를 살펴보면서 손 글씨에 매료되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인 재일교포 유미리의 신간 '봄의 소식'의 피오피는 두껍게 힘이 실린 작가의 필체가 인상적이었다. 피오피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유미리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키노쿠니야 본점 직원이 독단과 편견으로 추천하는 '2017 나의 책 한 권'이라는 제목의 코너도 흥미로웠다. 여러 분야의 책을 서점 직원이 추천하는 내용이 손 글씨로 피오피에 담겨 있었다. 멋진 그림과 함께 실린 수준 높은 서평이 인상 깊었다. 재미있고 독창적인 피오피를 만들어 책과 함께 지인에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노쿠니야 지하 1층 여행 서적 코너를 방문했다. 일본 여행 작가인 야스다 료코가 집필한 '대구 주말 트래블, 설레는 대구 즐기는 법 48'이 비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 매일신문 기사를 읽고 아마존에서 구입한 책이다. 키노쿠니야 본점 서가에서 대구 관광을 다룬 전문서적을 처음으로 접하니 무척 반가웠다. 서가에 꽂힌 책을 꺼내 눈에 잘 띄도록 다른 도시의 관광책자 위에 슬쩍 얹어놓고 나왔다. 신주쿠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형 전광판 '유니카 비전'은 전자상가 라비(LABI)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유니카 비전에 작년 2월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펼친 록밴드 '세카이노 오와리'의 공연 모습이 나왔다. 세카이노 오와리는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모티프로 한 노래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3월 3일 밤 유니카 비전에서 한국 가수의 노래가 나와 깜짝 놀랐다. '정용화'라는 가수 이름과 'One Fine Day'라는 노래 제목이 화면에 나왔다. '씨엔블루'의 리더인 그가 일본에서 펼친 대형 콘서트 열기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며칠 뒤 우연히 정용화의 사인이 담긴 '어느 멋진 날'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구했다. 신주쿠의 어느 멋진 날을 추억하게 만드는 피오피로 내게 다가왔다.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018-03-17 00:05:00

연세대 법학과 졸업.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광장] 전문가의 생업

E는 자전거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다. 처음 산악자전거를 구입하던 십수 년 전에 그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내게는 큰 행운처럼 여겨졌다. E는 자전거를 고르고 타는 법에서부터 자전거 타기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자전거와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자전거가 등장한 이후 인류가 어떤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었는지 내게 가르쳐 주었다.자전거가 인류의 삶과 문화, 가치관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나 역시 변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전문가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 특히 자긍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십수 년이 지난 지금 E는 여전히 자전거를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고쳐주고 관리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다. 자전거 인구도 폭증했다.그중에서도 선수들이나 탈 만한 고성능, 고가의 자전거를 타고 즐기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E는 그런 사람들의 수요에 맞추어 자전거를 대신 골라주고 적정한 이익을 얻었다. 폭리를 취할 수도 없는 것이 스마트폰을 몇 번만 톡톡 두드려도 대충 가격이 나오는 세상이고 그렇게 하기에는 E의 직업윤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하지만 요즘 E에게 좋은 자전거를 골라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웬만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자전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E에 따르면 좋은 자전거일수록 엄밀한 관리가 필요하고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고 적절한 방식에 따라 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비싼 자전거가 제 몫을 하고 수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날이 따뜻해지고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E에게 자전거를 가지고 찾아온다. 고장을 수리하고 부품을 교환하며 청소를 해달라고 한다. E를 통해 구매를 하지 않은 자전거가 훨씬 더 많다. E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자전거를 기꺼이 돌봐주고 있다. 특히 묵혀뒀던 자전거를 분해해서 깨끗이 청소할 것을 권한다. 청소를 제때 해야만 부품이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E가 자전거 한 대를 낱낱이 분해하고 청소한 뒤 다시 조립하는 것까지 2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청구하는 비용은 몇 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종일 청소만 몇 대 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낮은 부가가치의 뒤치다꺼리며 허드렛일만 해서는 가게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가 가진 고급의 기술과 지식 또한 퇴행하고 있다. 그런다고 비용을 더 받을 수도 없다. 인터넷이며 SNS, 입소문을 통해 당장 다른 곳과 비교가 되고 바가지를 씌우느니 뭐니 하여 악소문이 난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사랑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E로서는 자전거와 관련해서 그런 구설에 오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어쩌다 E의 가게에 들러 앉아 있다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굴러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문제투성이인 자전거를 가지고 온다. E는 누구든 반갑게 맞지만 나는 한숨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경쟁사회의 현실, 자본의 논리가 사람 잡는 세상에서 E와 같은 일을 겪는 장인, 전문가들은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다.어느 날 그들이 모두 견디지 못하고 후계자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의 모습을 한 AI가 들어선다면? 값이 싸질지 비싸질지는 몰라도 내 자전거를 맡길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그릇들, 방짜유기, 칠기, 목기, 발우,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또 어찌 되나…. 아니, 코가 석 자인 내가 지금 남 얘기를 하고 있을 때인가?성석제 소설가

2018-03-10 00:05:00

[광장]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유감

베이비붐 세대 이전의 작가들의 소설에서 굶주림이란 소재는 자주 나타난다. 이 소설들에서 먹는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였기에 음식의 질을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달성공원 주변이 소설의 주무대였던 이동하의 '장난감도시'나 약전골목 일대가 주무대였던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에서도 주인공들은 늘 일상적으로 배고픔을 겪는다. 소설 속의 주인공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1950년대까지 먹는다는 것은 생존 차원의 문제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반찬 투정을 하니까, 세 들어 사는 아저씨가 내게 해 준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만주에 갔을 땐데, 3일을 내리 굶었어. 나중엔 눈에 보이는 게 없는데, 얼마나 서러운지 눈에서 달구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라. 그때 결심했어. 앞으로 어떤 음식도 달게 먹겠다고." 나의 반찬 투정을 달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그 말을 들은 이후에는 음식이 좀 맛이 없어도 그 아저씨의 말을 생각하며 '한 끼야 못 먹으랴' 하는 심정으로 배를 채웠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 3만달러에 접어들면서 온 국민이 반찬 투정을 하는 시대로 변해버렸다. 소득이 높아지니 당연히 음식의 질을 따지게 되었다.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자는 것이다. 그러니 외식산업이 발달하고 '먹방'이 유행하고 식도락이 보편화되었다.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수준도 대단히 높아졌다. 짜장면 한 그릇이면 환호작약했던 시절에서 미슐랭 가이드 별이 달린 음식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시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한 끼의 식사는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먹는 것이 인간의 행복지수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온 국민의 입맛이 날로 예리해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구태의연하게 한결같은 고집으로 여전히 맛없음을 고수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들이다. 메뉴가 다양해지고 맛있는 음식을 선보이는 휴게소도 일부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휴게소 음식들은 그냥 '휴게소 음식'이다. 물론 휴게소 음식점 업주들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이라고 왜 맛있는 음식을 내놓고 싶지 않겠는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휴게소 음식점 매출액의 약 50%는 임차의 대가로 내는 돈이라 한다. 나머지 50%로 인건비와 식재료비를 감당하고 여기에서 마진을 남겨야 한다면 음식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휴게소 음식 맛의 형편없음은 업주의 잘못이 아니라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의 비합리성에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또한 이 문제의 이면에는 한국도로공사의 휴게소 운영업체 선정 입찰방식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발상을 달리해보자. 대구 인근 고속도로 휴게소에 대구가 자랑하는 음식이 나온다면? 이를테면 따로국밥이나 납작 만두, 매운 갈비찜 같은 음식이 대구 시내와 동일한 수준으로 차려진다면? 안동이나 상주, 밀양과 같은 도시들도 자신을 드러내는 그 지방 특색이 담긴 음식을 차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행객들은 일부러라도 그 휴게소에 쉬면서 식도락을 즐길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고속도로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서 각 지역마다 지방의 고유성을 대표하는 특색 있고 맛있는 음식이 발달한 나라도 드물다. 생각만 좀 바꾸면 온 국민이 고속도로로 여행할 때마다 입은 즐거워질 텐데, 입이 즐거워지면 인생도 가끔은 즐겁기 마련인데…. 한 끼를 때우는 음식이 아니라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휴게소 음식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하응백 문학평론가

2018-03-03 00:05:04

[광장] 시작의 도시

이맘때였다. 그때의 열일곱과 지금의 열일곱이 다르지 않다. 짧은 머리, 앳된 얼굴이 그렇고 비장한 표정으로는 다 가려지지 않는 10대의 명랑이 그렇다. 낡고 오래된 사진임에도 가득 느껴지는 파릇한 힘, 싱그러운 기운 또한 지금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때의 열일곱들은 아직은 제법 쌀쌀한 이맘때, 사진 속 모습처럼 거리에 있었다. 분노에 찬 얼굴로, 결기 서린 표정으로 하나같이 서로의 어깨를 걸고 앞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떤 사진에는 경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고 또 다른 사진에는 시루 속 콩나물처럼 모여 앉아 무언가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그때는 '리승만 박사! 대통령으로 모시자'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나붙던, 즉 국민이 대통령을 '모시던' 시절이었다. 독재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도, 불의가 횡행하고 민주주의가 쪼그라들어도 그저 숨죽여 살던 때였다. 권력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았고 감히 대들거나 반대하는 자들은 오직 나라의 적이거나 공산당의 편일 뿐이었다. 한 해 전 7월에는 진보당 당수 조봉암이 사형을 당했고 또 그 몇 해 전에는 '학생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썼다는 이유로 매일신문이 폭도들로부터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백주(白晝)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는 길이 남을 언사를 던지며 폭도가 아니라 매일신문 주필 최석채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그렇게 엄혹하던 그 시절 바로 '그때', 이 앳된 열일곱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알려진 대로 1960년 2월 28일 그날,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있기 보름 전이었다. 자유당정권은 이날 대구 수성천변에서 있을 예정이던 야당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려고 관공서와 기업은 물론, 학교에까지 손을 뻗쳐 일요일임에도 학생들을 등교하게 했다. 졸업식 예행연습, 무용발표회 참석, 청소 등 이유도 가지가지 억지스러웠고 심지어 대구고등학교처럼 '앞산에서 토끼 사냥을 하겠다'는 곳도 있었다. 무도한데다 어이없기까지 한 처사에 분노한 학생들이 '학생들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관치행정이 민주주의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나와 당시 지역 최고의 권부였던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기록에 따르면 시위를 주도하던 학생들에겐 대략 세 가지 걱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 하나는 당연히 체포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또 하나는 친구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자신들로 인해 혹시라도 선생님들이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는데 함께 내린 결론이 '무조건 우리가 다했다고 하자'였다고 한다. 소년답기도 하거니와 찡하기도 하다. 또, 이들의 정의로움과 용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인류 역사에 이런 강압적이고 횡포한 처사가 있었던가. (중략)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당시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군은 이렇게 결의문을 쓰고 읽었다. 그들은 불의에 맞서 이렇듯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외침은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지난달 30일, 정부가 이러한 2·28민주운동을 기려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를 계기로 대구의 정신이자 대구의 자랑이니 공휴일로도 지정해야 하고 헌법에도 넣어야 된다고 한다. 사실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나라 경제의 새로운 시작도 대구에서 있었던 것처럼 대구는 늘 정의로운 도시, 새로움을 여는 '시작의 도시'였다. 그러니 여기서 한 번쯤은 되물어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자랑스러운가? 58년 전 거리에 섰던 그들처럼 여전히 정의로운가? 그리고 지금도 대구는 '시작의 도시'가 맞는가?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2018-02-24 00:05:00

[광장] 올림픽 추억 만들기

올해는 88 서울올림픽 30주년이 되는 해다. 1988년 5월 KBS에서 서울 프레올림픽쇼를 방영했다. 자니 윤과 영화배우 로레타 스윗의 사회로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화려한 쇼였다. 조용필, 김완선, 시나 이스턴, 실비 바르탕,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등 인기 가수들의 공연은 다시 봐도 흥미진진하다. 당시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는 미국에서 30여 명의 제작진이 내한해서 국내 초유의 호화 무대를 펼친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에서 살았지만 올림픽 관련 문화행사를 현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작년 8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정경화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관람했다. 공연 다음 날 아침 나는 깊은 산속에서 몇 달간 수양을 해야 도달할 수 있을 법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체험했다. 오랜만에 구삼열 대표에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 1월 30, 31일 일정을 비워놓으라는 답신을 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창겨울음악제가 처음으로 서울에서도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면서 그 의미를 뒤늦게 깨달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018 평창겨울음악제의 막이 올랐다. 3시간 동안 진행된 개막 공연은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열기가 넘쳤다. 윤이상의 '첼로와 하프를 위한 이중주' 연주를 들으면서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기념작으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세계 초연되어 찬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평창겨울음악제에서도 '세계 초연'이라는 문구가 프로그램에 몇 차례 등장했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은 정명화 예술감독과 함께 '평창 흥보가'를 세계 초연했다. '평창올림픽 대박 나소'라는 외침이 인상 깊었다. 발레리나 겸 안무가 김유미는 '아이리스'와 '쉴 사이 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창작 안무를 세계 초연으로 선보였다. 정명화의 첼로 연주,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김유미가 발레 공연을 펼치는 모습은 피겨 여왕 김연아를 연상시켰다. 개막 공연의 마지막 곡은 파블로 카잘스의 '새의 노래'였다. 정명화 예술감독은 강릉 공연에서 무대에 나와 곡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오래전 내가 번역 출간한 노먼 커즌즈의 '불치병은 없다'가 생각났다.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카잘스의 집을 커즌즈가 방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흔이 다 된 카잘스는 여러 노환으로 고생 중이었다. 하지만 피아노와 첼로 연주를 하면서 30대 청년처럼 기력이 되살아나는 기적이 매일 일어났다. 책 속의 주인공을 평창겨울음악제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사인을 받으려고 정트리오의 엘피(LP)앨범을 들고 갔다. 개막 공연 후 리셉션이 열리는 곳으로 오면 된다고 구삼열 대표가 알려줬다. 리셉션은 평창겨울음악제에 참여한 아티스트와 음악제 관계자들만 참석한 의미심장한 자리였다. 지난 7년간 평창음악제를 이끌어온 정명화'정경화 예술감독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공연이 아주 좋았기에 강릉아트센터에서의 공연도 관람하고 싶어졌다. 이미 매진된 공연이었지만 티켓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2월 개통된 KTX를 이용해서 강릉역으로 이동했다. 25년 전 나는 강릉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그때는 늦은 밤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에 탄 후 잠을 자면 아침에 강릉에 도착했다. 격세지감을 실감했다. 잠시 들렀지만 예전의 강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오륜마크 조형물이 돋보이는 역 앞에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외국인들이 해외 관광객을 안내하는 모습도 보였다. '2018년 2월 그 순간 당신은 누구와 어디에 계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서울시청 앞에서 접했다. 평창겨울음악제 덕분에 2018년 2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릉에 다녀왔다. 다양한 평창문화올림픽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또 방문하고 싶다.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018-02-10 00:05:00

1960년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수상

[광장] 메이드 인 경상도

김수박 작가의 '메이드 인 경상도'라는 만화가 있었다. 경상도 토박이로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으며 경상도에 살고 있는 작가가 '지역감정'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감각기관에 여과된 것들을 가감 없이,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같은 경상도 출신인데도 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어 꽤나 유익하고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경상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싶어졌다.관광명소에 가면 으레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가 있다. 가장 흔한 유형의 이름이 특정한 지역의 이름을 끌어다 쓰는 것이다. 음식점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은 북경(베이징)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만리장성. 여기에는 논리적 일관성이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익숙해 하는 장소(지역)를 식당의 이름으로 쓸 경우 그 장소와 연관된 사람들이 그 식당에 들어올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논리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식당의 이름은 '서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일지역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게 서울이고 관광객들 가운데도 서울에서 간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니 서울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 유명 관광지의 식당 이름을 '서울'로 지을 가능성이 있다.외국에 있는 한식당 이름에도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 남대문이나 아리랑, 신라도 있지만 서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88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었을 때 "쎄울!"이라고 누군가 외친 외마디 고고성의 영향 때문일까. 어떻든 지명에는 사람을 잡아끌고 주의를 환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실상 대단히 크다. 지역, 장소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될 만한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 또한 그러니까.지명, 또는 지역은 크나큰 자산이자 자원이다. 그것을 무기로 해당 지역의 명성과 신뢰를 높이고 정서적인 친근감을 형성하며 관광지로 발전시키는 일은 지역 주민이나 지자체장이 꿈꿔 마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타산지석이 될 만한 사례는 있다.일본의 북해도나 규슈 지방에서는 농축산물, 임산물, 해산물에 거의 반드시 지역 산이라는 표기를 하고 있다. 환경오염이 심한 대도시는 대소비지이기도 해서 청정 자연산, 지역 명물이나 특산물이라는 '지역 앞세우기'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지역 특산물이 어떻게 해서 명물이 되었나 하는 식의 사연을 가지고(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김을 양식하기 시작해서 '바다 이끼(海苔)'의 이름이 김이 되어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더 짭조름한 마케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국가 단위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것도 있다. 국산, 혹은 한국산으로 표기되는 공산품이 꽤 있다. 상주 곶감, 영광 굴비 하는 식으로 지역 단위의 대표성을 가진 농축해산물을 내세우는 경우는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중간 단위라 할 수 있는 경상도, 호남, 호서, 영동 같은 상품은? 제주 감귤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경상도에서 '메이드 인 경상도'로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게 뭘까.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진 지난 세기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규슈의 관문에서 게시판을 하나 본 적이 있었다. 규슈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분야와 품목을 열거하고 있었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부품과 중간재까지 포함해서 수백 가지나 되었다. 생각해 보면 경상도나 대구에서 세계 제일로 내세울 만한 게 꽤 되지 않을까? 굳이 서열로 매길 필요가 없는 세계 유일의 문화, 정신적인 자랑거리는 왜 없을 것인가. 그것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곳을 마음의 태 자리로 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을 줄 것은 자명하다. 그것만으로도 게시 비용은 건지고 남을 것이다.

2018-02-03 00:05:00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휴먼앤북스 대표

[광장] '한반도'기는 아닙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께.평창동계올림픽 주무장관으로,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불철주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뉴스를 통해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입장 때 '한반도기'를 사용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반도기'의 정치적 의미를 떠나, 장관님처럼 단어나 문장 사용에 심혈을 기울이는 문인의 입장에서, '한반도'란 단어가 과연 어떤 역사성을 지니고 있고,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반도'의 사전적 의미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지에 이어진 땅. 대륙에서 바다 쪽으로 좁다랗게 돌출한 육지"입니다. 영어로는 'peninsula'라고 합니다. 영어의 어원은 'almost an island'로 '거의 섬과 가까운 땅'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반도'(半島)란 말은 한자의 의미로 보면 '반쪽 섬'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육지와 한쪽이 붙어 있는 것이 어떻게 '반쪽' 섬입니까? 이미 섬을 염두에 두고 지은 말이 아닐까요?한자 '반'(半)은 전체의 반이라는 계량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모자란다'의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반편이: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낮은 사람' '반풍수: 서투른 풍수' '반치기: 가난한 양반 혹은 쓸모없는 사람' '반심: 할까 말까 하는 마음 혹은 진정이 아닌 마음' 등등의 낱말이 '반' 자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도'도 혹시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하려는 저의로 만들어진 용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의심을 품은 사람이 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문건을 검색했거든요."…'한반도'는 일제가 한국을 멸시하고자 만든 왜색용어다. '일본지리사전'은 "육지가 바다에 돌출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부분, 특히 조선반도가 그 좋은 보기"라고 하여 유독 한반도를 강조했다. '반도' (Peninsula)란 용어는 일제가 메이지유신 후 이른바 그들의 '본도'(本島) 에 예속시키려는 의도에서 만들어 낸 신조어였다.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곳은 내지(內地) 즉 '온 섬'(全島)이고 한국은 섬도 못 되는 반 섬, 즉 섬의 하위 개념인 변방으로 비하시키고자 하여 '반도'라고 명명하였다…."과연 이 주장이 진실일까요? 그래서 저는 1900년대 이전에 '반도'라는 말을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는가를 찾아보았습니다. '한국고전종합 DB'를 다 뒤져도 우리 문헌 원문에는 단 한 건도 나오지 않더군요. 우리 조상들은 우리 영토를 해동(海東), 동국(東國), 청구(靑丘), 진단(震檀), 계림(鷄林), 근역(槿域) 등으로 불렀습니다. 접역(鰈域)이란 좀 특이한 별칭도 있습니다. 가자미가 많이 잡히는 땅이라는 말인데, '한서 교사지'(漢書 郊祀志)에서 유래한 말로 정조 임금도 '일성록'에서 "'아국개재접역'(我國介在鰈域): 우리나라가 접역에 위치해 있어"라는 문장에서 사용한 바가 있습니다. 고산자는 자신의 필생의 역작에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다산은 자신의 지리서에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반도'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1920년대의 신문 기사에는 '조선반도'(朝鮮半島)란 단어가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위 주장이 진실 혹은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지요.이런 유력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반도'기라는 말을 사용해야 할까요? 평창올림픽에 참석한다고 한 아베 총리의 조상이 지하에서 깔깔거리지 않을까요?이제부터라도 다른 이름을 붙여 불러야 합니다. '한마음'기도 좋고, 세계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용어인 '코리아'기라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한반도'기는 아닙니다. 시인인 장관님께서 혜량하시리라 믿고 필을 놓습니다. 총총.

2018-01-27 00:05:00

[광장]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대사다. 가슴 시린 이 말을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입력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아무 반응이 없거나 아니면 무한 루프(컴퓨터프로그램이 결과 값을 얻지 못하고 끊임없이 반복 실행하는 상태)에 빠져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다. 날이 좋은 게 좋은 건지 좋지 않은 게 좋은 건지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가끔 들었던 "얘야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컴퓨터는 '이김'과 '짐' 사이를 무한 반복하며 오가다 결국 먹통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게 컴퓨터다. 0과 1로 이루어진, 켜지거나 꺼지거나 아니면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밖에 모르는 존재다.이처럼 태생적 한계로 인해 가끔은 참 단순할 수밖에 없는 이 기계가 요즘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핫 이슈가 되었다. 물론 그 결정적 계기는 '알파고'였다. 어디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겉으로 봐선 도무지 형태조차 알 수 없는 이 새로운 기계의 등장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그건 적어도 그때까지는 안전해 보이던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인터넷과 언론 등은 전에 없던 이 기계를 주저 없이 '그녀' 또는 '그'라고 지칭했다. 정작 기계를 만든 당사자들은 이런 표현을 꽤나 어색해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알파고'는 그렇게 간단히 기계의 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격을 얻었다.그리고 이어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은 '인류와 AI, 두 종족 대표 간의 격돌'이라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덧붙여졌다. 알다시피 결과는 다수의 예상이나 기대와 달리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났다.이때부터였던 듯하다. 조만간 닥쳐올 인공지능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진이 "우리에게 '알파고'는 매우 단순한 프로그램일 뿐,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라고 했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지난 연말, 정부는 '2018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데이터, 네트워크, AI, 즉 DNA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제 'DNA'하면 유전자, 방탄소년단에 이어 하나를 더 생각해야 할 만큼 AI가 차지하는 사회적 비중도 더 커진 셈이다. 더불어 기술적으로도 AI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다. 여기에 모터와 관절이 붙으면 로봇이 되고 저전력 통신망(low power network) 등으로 TV나 냉장고 같은 사물과 연결되면 이른바 '초연결'(hyper-connection)이 된다.하지만, 그렇다 해도 AI는 컴퓨터이고 여전히 컴퓨터는 컴퓨터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본질이 바뀌거나 한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알파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단 '알파고'는 이세돌과 바둑을 둔 게 아니다.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계산식을 만들고 자동으로 계산을 했을 뿐이다.그런데 이렇듯 감정의 교류가 없는 바둑도 바둑이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알파고'는 '이김'과 '짐' 딱 두 개밖에 모른다. '몇 집 차이' 따위에 대한 의미와 개념이 아예 없다. 원래 계산은 사람보다 컴퓨터가 더 잘한다. 컴퓨터는 실수하지 않는다. 다만 버그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실수는 페니실린을 만들었지만 컴퓨터의 버그는 어떤 가치도 만들지 못할뿐더러 인간의 도움이 없으면 '알파고'는 그 쉬운 오목도 두지 못한다.'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를 모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는 말자. 곧 AI가 우리를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할 거라 앞당겨 걱정하지도 말자. 기계는 더 기계다운 일을 하고 인간은 더 인간다운 일을 하면 될 일이다.

2018-01-20 00:05:00

[광장] 대구시민 코바체프

어렸을 때 별표전축 한 대가 집에 있었다. 외제 오디오만큼 뛰어난 제품은 아니었지만 애용했다. 다양한 장르의 엘피(LP)음반을 자주 들었고 오디오와 레코드, 음악동아 등의 잡지를 탐독했다. 유명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이 드물었고 형편도 여의치 않아 공연을 직접 관람할 생각은 못했다. 언젠가는 명품 오디오를 장만해 오리지널 음반으로 세계적인 거장의 연주를 즐겨보겠다는 소망을 품고 지냈다.20세기 최고의 지휘자로 꼽히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소식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1984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베를린 필 내한공연을 꼭 보고 싶었지만 비싼 티켓 가격 때문에 포기했다. 카라얀의 내한공연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세월이 흐르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쌓아두었던 음악 잡지를 통째로 버렸다. 꽤 많이 소장했던 엘피음반은 부모님 집을 정리하면서 대부분 폐기처분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후회되는 일이다. 엘피음반의 부활을 다룬 '아날로그의 반격'이란 책이 나와서 화제가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재작년부터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줄리안 코바체프가 지휘하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코바체프는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무대에서는 카라얀에 버금가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카라얀이 상임지휘자로 있었던 베를린 필에서 코바체프가 4년간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했고 카라얀으로부터 직접 지휘법을 배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카라얀의 분신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지휘자의 음악을 대구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몇 달 전 공연이 끝난 뒤 대구콘서트하우스 주변을 서성이다가 코바체프와 마주쳐서 즐겁게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무척 복잡다난한 직업이기에 지휘자는 심리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지난 11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 내한공연을 가족과 함께 관람했다. 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은 사이먼 래틀의 사진이 인쇄된 대형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구에서는 코바체프와 함께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우쭐해졌다. 콘서트홀 로비에 음반 매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대구콘서트하우스가 본받을 만한 장점이라 느껴졌다. 베를린 필을 소개하는 두툼한 화보집과 베를린 필 연주가 담긴 CD 여러 장을 멋진 케이스에 담아 판매하는 것은 팬 서비스 차원에서 좋아 보였다. 베를린 필은 지난 11월 일본에서는 도쿄와 가와사키 두 도시에서 공연을 펼쳤다. 다음에는 대구에서도 베를린 필 공연이 개최된다면 좋겠다.지난 12월 29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대구시향의 송년음악회를 관람했다. 이날 코바체프는 공연을 마친 뒤 무대에서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으로부터 대구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다. 2016년 2월 매일신문 기사에서 '할 수만 있다면 대구의 명예시민이 되고 싶다'고 밝혔던 코바체프의 소망이 실현된 것이다.지난 11월 대구시향 정기연주회를 마친 뒤 코바체프는 콘서트홀 로비에서 팬 사인회를 가졌다. 나는 해외에서 중고로 구입한 코바체프의 CD 음반과 DVD에 사인을 받았다. 코바체프가 발표한 음반은 대부분 품절되어 국내 음반 매장에서 구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코바체프가 지휘한 대구시향의 음반이 발매된 적은 없다. 2015년 10월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코바체프는 실황 녹음 앨범을 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코바체프의 소망대로 대구시향 앨범이 CD와 엘피음반으로 제작되어 판매될 수 있다면 좋겠다. 코바체프를 사랑하는 대구 팬들에게 소중한 기념품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018-01-13 00:05:03

1960년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수상

[광장] 오진 세계에 지린 마음

말과 글을 생업의 밑천으로 삼아, 출처 불명 저작자 불명의 가담항설을 푹푹 퍼다가 쓰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어떤 시기에든 '불량 자원'과 부닥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가령 지난 세기의 1980년대 후반, 직장 생활을 하는 중에 한여름에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들었던 "냉면 먹고 돌아서자마자 육수가 뚝뚝 떨어지네, 비싼 점심 헛먹었구만" 같은 말에서 '육수' 같은 것. 상황에 맞는 적실한 표현 같긴 한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인생 선배로 존경할 수 없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 뒤에도 식당에 가서 '육수를 뚝뚝 떨어뜨리면서 육수가 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음식을 먹고 나와서 땀을 닦을 때마다 '육수'라는 단어와 그 단어를 썼던 선배의 얼굴이 생각나서 괴로웠다. 인간의 말이란, 인류의 언어란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기 마련이어서 '동공의 지진'처럼 개성과 의도성이 있는 표현을 포함해 유행어가 잘잘못이라는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다. 장발이나 청바지, 통기타 문화가 탄압을 받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처럼.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2000년대에 들면서 콘텐츠, 트렌드, 거버넌스 같은 영어 표현이 불편하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어느새 그런 단어를 조금씩 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 쓰려고 어지간히 '발악'을 하여도. 발악은 고등학교 때 어느 선생님에게 '미치고 팔짝 뛰겠다'와 함께 배운 단어로서 '한심한 너희를 볼 때마다 미치고 팔짝 뛰겠다. 너희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소용이 없지' 같은 용례로 쓰였다-사방에서 알 만한 사람이 써대니 '세 사람이 저자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三人成虎)는 옛말에 그른 게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따라 쓰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했다.십여 년 전부터 내게 자주, 불편하게 들린 단어는 '대박'으로 '통일 대박'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이든 아이돌의 입에서든 알 만한 학자의 입에서든 대박은 스스럼없이 튀어나와 대박 그 자체에 낯가림하는 나 자신을 '꼰대'로 생각하게 만들 뻔했다.가장 최근의 불편은 이른바 '급식체'에서 오고 있다. '오지다, 지리다, ~하는 각, 야민정음' 등등의, 내게는 넘어갈 수 없는 강 너머의 언어와 흉내도 소통도 불가한 것 같은 데서 마음이 편치 않다. 분명히 내가 일용할 당대의 한국어임에도 내가 가져다 쓸 수 없다? 이건 믿기지 않는 '실화'다. 물론 유행어는 소용이 끝나고 나면 봄눈 녹듯 스러져 버릴 것이고 그중 몇몇은 살아남아 그게 유행했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의 감성과 추억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어떤 말이나 글도 그게 영원한 전범으로 남을 것이라는 믿음은 내게 전혀 없다.바로크의 원어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이다. 16, 17세기의 유럽 건축미술의 한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장르와 시대에 한정하지 않고 어느 시대의 예술이든지 그 비슷한 특징이 나타나면 이를 가리켜 '바로크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크풍은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인 질서와 균형, 조화와 논리성과 달리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예술 양식이면서도 최소한의 질서와 논리가 유지되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총체적 미감에 접속될 수 있었다. 비발디, 바흐, 헨델, 세르반테스, 몰리에르가 이 범주에 드는 작가들이다.다시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아직까지 우리 곁에 여기저기 남아 있다. 우리 시대의 무엇이, 특히 언어와 예술과 발명품, 예능 중 그 무엇이 앞으로 십 년, 아니 단 일 년을 살아남을 것인지 나는 궁금해서 '발광'해 버리겠다. 그걸 안다면 떼부자 되는 건 일도 아닌데.

2018-01-06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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