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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랫폼 이사

[광장] 청년이 안 보인다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어떤 교수가 새로 산 컴퓨터를 두고 "왜 야후가 안 깔려 있느냐?"며 역정을 냈다. 막 설치를 끝내고 자리를 뜨려던 컴퓨터 기사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게 아니라고, 웹사이트는 소프트웨어와는 다른 거라고 잘 설명해야 하는데 하다 보니 자꾸 변명처럼 되고 말았다. 결국 하릴없는 사과와 함께 웹브라우저의 초기 화면을 '야후'로 바꿔 놓고서야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포털 사이트 '야후'의 위상이 그랬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야후는 삼위일체처럼 거의 동급에 가까웠다. 그때쯤이었다. 대한민국의 한 청년 기업이 좀 별난 광고를 냈다. 광고의 헤드카피가 '이순신 장군님, 야후는 다음이 물리치겠습니다'였다. 사실 그걸 처음 본 순간 피식 웃고 말았다. 가당찮은 만용이나 치기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게 조금씩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야후코리아는 그들에게 밀리고 또 다른 한국의 청년기업 N사에도 계속해서 시장을 빼앗겼다. 그리고 2012년 말, 검색 시장 점유율 0.25%라는 초라한 성적을 끝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렇게 말도 안 돼 보이던 일이 진짜 일어난 것이다. 현재 이 토종 기업에는 2천 명이 넘는 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또, 그런 적도 있었다. 미국 B사가 출시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렸다. 혁신적인 콘텐츠와 기술로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고 스스로 e-스포츠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PC방이라는 새로운 업종의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동시에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도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스타'로 시작하는 이름의 이 게임대회를 한국의 청년들이 모조리 석권하다시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청년들은 그걸 능가하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노라며 덤벼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B사의 독점적 지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의 청년 기업들은 게임 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고 B사가 지배하던 게임 시장은 군웅할거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현재 이 청년 기업들은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다. 한때,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인터넷과 콘텐츠 산업에 뛰어든 적이 있다. 막강한 자본과 조직으로 게임 퍼블리싱 분야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없다. 그들이 자랑하던 포털 사이트들은 이제 이름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살아남은 기업은 오직 그때의 그 청년들이 세우고 끌어온 회사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야후와 맞장 뜨던 그런 청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꽤 오랫동안 그랬다. 미국의 청년들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중국의 청년들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했지만 한국의 청년들은 내내 아프고 힘들기만 하다. 미국의 청년 기업 알파벳(구글의 모기업)에 대항하는 이도 여전히 '그때의 청년', 지금의 장년들이다. '오늘의 청년'들은 대신 '구글 입사'를 꿈꾼다. 정부는 날마다 혁신성장을 말하지만 늘 그랬듯 혁신은 청년정신과 도전에서 비롯된다. 공무원시험과 대기업의 문만 두드리는 절대다수의 청년들에게 몇 달 더 버틸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는 청년도 구하지 못할뿐더러 성장의 새로운 동력 또한 얻지 못한다. 청년을 가르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정신이다.

2018-09-06 15:47:49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삿포로에서 보낸 여름 휴가

지난달 삿포로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김해공항과 아사히카와공항을 이용하는 패키지여행이었다. 김해공항에서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의 콘서트 화보가 실린 롯데면세점 잡지를 챙겼다. 아사히카와공항은 수하물 찾는 곳의 높이가 낮고 청결해서 좋았다. 최근 공항 입국장 면세점 설치가 거론되고 있다. 인천공항 KTX 운행이 중단되면 해외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대구공항에서 입국하는 '환승 전용 내항기' 승객이 늘어날 것 같다. 내항기 운항 편수가 적어서 인천공항 면세구역에서 장시간 대기해야 한다. 환승 전용 내항기 승객에게 출국장 면세점 이용을 허용하면 좋겠다. 삿포로에서 열린 '홋카이도 명명 150주년 기념식' 행사에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참석했다는 소식을 현지 신문에서 접했다. 1871년 미국 농무부 장관을 역임한 호레스 케프론을 고문으로 초빙해 홋카이도 개발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가이드의 설명은 정확했다. 2년 전 삿포로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삿포로 쿠우'에서 오카모토 마요(岡本真夜)의 피아노 연주회를 관람했다. 삿포로 쿠우는 25평 규모의 라이브 음악 공연장으로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서 좋았다. 음반을 구입하면 공연이 끝난 뒤 뮤지션과 악수하면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 7월 유원대학교 실용음악과 양하영 교수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공연이 열린 서울 삼익악기 엠팟홀은 아늑한 분위기가 삿포로 쿠우와 비슷했다. 양하영은 가슴앓이, 갯바위 등 왕년의 히트곡과 자신이 작곡한 최신곡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를 열정적으로 불렀다. 함께 무대에 오른 김수한의 색소폰 연주도 깊은 감동을 줬다. 대구찬가를 만든 길옥윤 선생(1927~1995)의 색소폰 연주를 듣고 싶어졌다. 길옥윤 선생의 친필 사인이 담긴 '그 세월이 아쉬워도·1990년' 앨범을 구했다. 삿포로의 추억을 회상하는 길옥윤 선생의 글이 '당신만을 사랑해' 가사와 함께 실려 있었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했다. 가을밤이면 강냉이 굽는 냄새가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거리로 번져 나왔고, 삿포로 라면을 파는 포장집의 등불이 정겹게 밝혀졌다. 겨울이면 세상을 덮을 듯이 눈이 쏟아져 이 감상적인 이국 사내를 한없이 걷게 했다.' 비에이의 대표적인 전망 화원인 '시키사이노오카'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여행 예능프로그램인 '플랜맨 뉴비기닝' 북해도 편 촬영을 위해 은지원, 장수원, 달샤벳 수빈이 작년 7월 이곳을 방문해 마스코트 롤군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이 입구에 게시되어 있었다. 지난 3월 걸그룹 블랙핑크가 제주도를 여행하는 모습을 TV로 시청하면서 홍보 효과가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에서도 그런 장면을 자주 보고 싶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2001년 개장한 삿포로돔은 축구와 야구 경기를 모두 개최할 수 있는 돔구장이다. 롤링 스톤스, 에어로스미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콘서트가 열렸고 한국의 빅뱅과 동방신기도 이곳에서 공연을 펼쳤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냉방 복지'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시원한 실내에서 스포츠 경기와 각종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도시가 부럽다. 더위도 식힐 겸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삿포로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2018-08-30 14:23:11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간송(澗松), 계곡 물가의 솔

형필이란 이름은 조부가 지어 주었다. '형'(鎣)은 '줄'로 '거친 쇠를 갈아 매끈하게 하는 공구'이며 '필'(弼)은 도지개로 '뒤틀린 활을 바로잡는 틀'이다. '거친 것을 갈아 빛을 내고 뒤틀린 것을 곧게 펴는 연장'이 되라는 선대(先代)의 기원을 담았다. 스승인 위창은 '간송'이라는 아호를 선사했다. '간'(澗)은 '계곡물 간'자이다. 그래서 간송은 '계곡 물가의 솔'이다. 한문학자 황위주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추적해 보면, 송나라 시인 황정견이 스승인 소식의 사람됨을 칭송한 시에 '청송출간학'(靑松出澗壑)이 나온다. '푸른 솔이 물 흐르는 계곡에 솟아 있으니'라는 뜻이다. 첫 자와 끝 자를 지우면 '송출간'이 된다. 여기에 '출'자를 지우고 글자 순서를 바꾸면 '간송'이 된다. 간송 전형필, 줄(鎣)과 도지개(弼)로 살아, 계곡 물가에 선 솔이 되었다. 그의 초년의 삶은 믿기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작은집으로 입양되었고 열 살에서 스무세 살 사이에 본가와 양가의 모든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생의 근본 문제인 '나는 누구이며 무엇하고 살 것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2천644만6천여㎡(800만 평) 이상의 땅을 상속받았다. 이제 '유산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쓸 것인가?'라는 숙제까지 맡게 되었다. 입양과 가족들의 죽음 앞에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생의 이치는 이미 깨치고 있던 터였다.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제국주의적 약육강식의 물결이 세상을 휩쓸고 있었다. 열강들은 약소국의 영토를 식민지화했으며 문화재를 마구잡이로 수집했다. 그렇게 수집된 유물은 런던, 파리 등지의 박물관을 지금도 가득 채우고 있다.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은 우리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일제 도굴꾼과 영리 목적의 수집가들은 문화재 반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와세다대학을 1930년, 24세에 졸업한 간송은 그런 모습을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보고 들었다. 다 털려 빈 깡통이 된 나라를 후대에 물려줄 수는 없었다. 그의 뜻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다. 역사와 민족의식을 심어준 월탄,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워준 춘곡, 심미안을 길러 주었고 문화재가 곧 '민족의 혼'임을 일깨워 준 위창 등 많은 분들이 있었다. 그는 문화재가 만들어진 시기, 당시의 평가, 그리고 가격에 상관 않고 수만 점을 수집하였다. 그중엔 훈민정음 해례본같이 훗날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많은 문화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존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6·25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은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 유물을 보화각(현 간송미술관 전신)에 남겨둔 채로 납북을 피하기 위해 그곳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은신했다. 보화각을 지켜보며 9·28 서울 수복 때까지 아흔이틀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가 살았던 을사늑약 이듬해부터 5·16 이후까지, 그가 터 잡은 계곡의 물은 거셌다. 비라도 쏟아지면 거침없이 불어난 물이 그의 종아리를 후려쳤다. 쓸려 가지 않으려, 않으려고 기슭을 향해 휘어져 버티다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지켜낸 것들 중에서 조선 회화 명품을 9월 16일까지 대구미술관에 전시하고 있다. 거기 간송이 있다. 그는 정선의 삼부연과 박생연 같은 산수화 속 맑은 물가에서 솔이 되어 우리를 반기고 있다.

2018-08-23 11:40:47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대프리카의 사하라, 동대구역 광장

올여름 뭐니 뭐니 해도 최대의 화제는 더위다. 아니 더위보다는 폭염이라고 해야 적당할 것 같다. 1907년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올해는 연일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올림픽 신기록이 경신되듯 계속 신기록이 세워지면서, 한편으로는 신기록 행진에 어쩔 수 없이 평등하게 동참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해지기도 한다. 더위하면 역시 대구다. 강원도 홍천이 신기록을 작성했다지만, 꾸준히 오래도록 그리고 역사적으로 대구는 폭염의 도시였다. 오죽하면 대프리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폭염의 도시를 상징하는 달걀 프라이 조형물까지 만들었겠는가. 서울에서 뜨거운 여름에 주위를 잘 살펴보면, 유독 더위를 잘 참는 사람들 중에는 대구 출신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이 덥다고 연신 땀을 훔쳐대면, 대구 출신 족속들은 '뭐 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을 떠나'면서, 무표정하게 인내한다. 그러면서 자긍심을 가진다. 서울의 더위 정도는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다는 그 강건한 자긍심. 한때 경북고나 대구상고의 야구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통합 우승에서 자긍심을 드러냈듯이, 이제는 패배하지도 않고 해마다 찾아와 대구를 뜨겁게 달구는 그 폭염에서 대구 출신들은 생뚱맞은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 자긍심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타향살이의 삶의 혼탁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대프리카 출신이니만큼, 대구의 폭염도 잘 견뎌냈듯이, 어려운 일도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 사람으로서 동대구역 광장에 대해 한마디 말할 게 있다. 냉방이 잘 된 KTX 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기 위해, 이제 공사가 끝난 동대구역 광장을 한여름 오후에 가로질러 가 본 적이 있는가? 역사에서 광장으로 나오자마자 훅 숨이 막힌다. 곧이어 온 몸의 땀샘에서는 물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그늘 하나 없는 동대구역 광장의 그 삭막하고 넓은 콘크리트 덩어리는 대프리카 중의 대프리카, 대프리카의 사하라다. 대구 사람이 아닌, 함께 간 내 안의 '서울 사람'이 그 광장을 가로질러 택시를 타고나서 내뱉은 일성(一聲)은 '역시 대프리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대구는 대구의 대표적인 관문인 동대구역에서부터 이렇게 방문객들에게 대프리카의 '본때'를 보여준다. 그 '서울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아예 동대구역 광장에 모래를 깔아 낙타 두어 마리 가져다 놓고 대구를 상징하는 '사하라 체험' 관광 상품을 개발하든지, 아니면 나무도 심고 차양막을 설치해 그늘도 만들지. 곳곳에 다양한 분수를 설치해 분수 광장으로 만들어도 좋고, 분수가 많으면 밤에는 시민들이 새로 생긴 백화점에 왔다가 광장에서 놀 수도 있을텐데. 그 광장에서 대구가 자랑하는 '치맥'을 팔아도 좋을텐데. 밤에는 분수에 조명을 예쁘게 설치하면 교통 편리한 대구의 새로운 명소가 대구 시민뿐만 아니라 외지인도 끌어들이는 관광 상품도 될 수 있을텐데…."

2018-08-15 18:31:3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래폼 이사

[광장] 대한민국 첫 번째 사람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다. 일본은 조선의 해안을 탐사하고 항구를 사용할 권리를 얻었다. 조선은 부단히 노력하여 '일본을 황제의 나라로 명기하지 않는 것'을 얻어냈다. 조선의 관리는 '일이 타당하게 되었다'고 했고 조선의 조정은 그들이 무엇을 잃게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조선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그해 1876년 여름, 황해도 해주의 한 가난한 부부가 어렵게 아들을 얻었다. 난산이었고 젖조차 마음껏 물릴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도 아이는 자못 굳세었다. 서너 살 무렵엔 천연두를 이겨냈고 예닐곱에 이르자 둘도 없는 개구쟁이가 되었다. 하루는 부러진 숟가락을 가져오면 엿을 준다는 엿장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선 아버지의 멀쩡한 숟가락을 부러뜨려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엔 장맛비로 마당에 작은 도랑 두 개가 생겨나자 집에 있던 염색 통 두 개를 꺼내와 통째로 들이부었다. 그리고 물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이 서로 만나는 장관을 즐기다 어머니에게 끌려가 매를 맞기도 했다. 돌아보면 누구나 그렇듯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그러나 좋은 날들은 거기까지였다. 집 안은 반상의 차별에 짓눌렸고 나라는 외세의 침탈에 허덕였다. 아이는 일찍 철이 들었고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들어갔다. 뜻을 세워 맹렬하게 공부했으며 사람을 대할 땐 진심을 다했다. 옳은 일을 하려 애썼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 분투했다. 그러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산한 삶이 계속되고 아이는 소년이,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그동안 나라는 끝없이 기울다 기어이 일제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그때부터였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긴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세 차례의 투옥과 무수한 형벌, 그리고 모진 고문으로 온몸이 찢기고 부서지기를 반복했고 망명 생활 27년 동안 갖은 풍파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가족도 온전하지 못했다. 하나뿐인 딸아이가 일곱 살 나이로 눈을 감을 때 그는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타국을 전전하다 아내를 잃었고 아들마저 그를 따르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 헌병에 끌려가 밤새 매달려 매질을 당하면서도 '나는 이들처럼 밤을 새워가며 독립운동을 했던가?'라고 자문할 만큼 늘 스스로를 다잡았다.일제가 패망하고 몇 달 뒤, 그는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편할 날이 없었다. 미처 빼내지 못한 총탄과 온갖 상흔을 몸에 지닌 채 조국이 남북으로 동강나는 것을 막으려 동분서주하다 끝내 흉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죽자 흰옷 입은 사람들이 길마다 거리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백만의 상주가 상여를 따랐고 걸음걸음 사람들이 애달피 울고 또 울었다. 노산 선생이 조사를 지었다."어허 여기 발 구르며 우는 소리/ 지금 저기 아우성치며 우는 소리/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이 겨레 이 강산이 미친 듯 우는 소리를/ 임이여 듣습니까?/ 임이여 듣습니까?"그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햇살처럼 따스했다. 평생을 배우고 또 가르치며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이 문화가 꽃피는 나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첫 번째 대한민국 사람, '백범 김구'였다. 다시 광복절이다.

2018-08-09 13:48:06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 손에 손잡고 홍화자

지난 7월 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제3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개막작 '씨네라이브: 손에 손잡고'를 관람했다. 임권택 감독의 88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영화를 처음으로 접했다. 조동희, 조동익 음악감독의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30년 전 올림픽 현장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조동희 음악감독과 장필순, 문제호가 함께 부른 '손에 손잡고'는 진한 여운을 남겼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 가을학기에 나는 경희대 한의대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의 철학사 강의를 청강했다. 심오한 동양철학의 언어로 올림픽을 해석하는 영화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학창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먼 훗날 영화 '손에 손잡고'가 우주보(宇宙寶)로 자처했던 도올 선생의 천재성을 뒷받침해 주는 작품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손에 손잡고'를 다시 보고 싶었다. 통나무출판사에 문의를 했지만 관련 자료가 전혀 없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에서 1912년부터 2012년까지 제작된 올림픽 기록영화를 DVD와 블루레이 세트로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이 비싸지만 3편의 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영화를 살펴보고 싶어서 아마존에서 주문을 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손에 손잡고'를 열창했던 코리아나의 근황이 궁금했다. 4명의 멤버 중 여성 리드싱어였던 홍화자씨는 대구 출신이다. 남서울대 실용음악학과 김석원 교수의 도움으로 연락이 닿았다. 암 진단을 받았지만 적극적인 치료로 극복했고, 코리아나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요즘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홍화자씨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출신 학교로 최근 화제가 된 대구 남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 경북여고 재학 중에는 2·28 민주운동 시위에 참여했다. 2004년 발표한 홍화자의 솔로 앨범에는 '손에 손 잡고'와 함께 어린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멋진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88서울올림픽 공식주제가인 '손에 손잡고'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가 만든 곡이다. 아이린 카라의 'What a Feeling'도 그의 작품이며 서울올림픽과 인연이 있다. 서울올림픽 공식문화행사로 1988년 9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88서울국제가요제'에서 아이린 카라는 'What a Feeling'을 불렀다. 아이린 카라는 나나 무스꾸리, 조용필, 패티김 등 국내외 인기가수와 함께 '손에 손잡고'도 불렀다. '손에 손잡고'의 주인공인 코리아나는 서울, 부산 등 여러 도시에서 공연을 펼쳤지만 대구에서는 단독 콘서트가 열린 적이 없다. 로열 앨버트홀은 런던에 위치한 영국 최대 규모의 콘서트홀이다. 영국 BBC 방송에서 주최하는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가 열리는 곳이다. 팝송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데뷔 60주년 공연도 10월에 예정되어 있다. 1988년 11월 미스월드 선발대회가 열린 로열 앨버트홀에서 코리아나는 '손에 손잡고'를 열창했다. 지난 달 '위풍당당, 영국을 만나다!'를 주제로 열린 '서머 페스티벌 인 대구' 공연을 관람했다. 범어대성당 드망즈홀에서의 공연이 특히 인상 깊었다. '듀오 비비드'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음악과 어울리는 회화 작품이 스크린에 소개됐다. 영화와 음악의 만남이 이곳에서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스의 명곡을 감상하면서 더위를 식힐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대구에서도 위풍당당하게 '손에 손잡고'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18-08-04 05:0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마음과 말

사람에게서 몸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마음'이다. 마음은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정신 또는 의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허전하고, 때로는 기쁘다. 보이지 않아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귀중한 우리 몸을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탄식할 때가 많으며, 같은 이름의 가요와 영화까지 나왔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말과 행동을 통해서다. 몸짓, 표정 등과 같은 행동은 보조 수단이며 마음을 표현하는 주된 도구는 말이다. 그래서 철학자 라이프니츠(Leibniz)는 말을 '마음의 거울'이라 했고, 언어학자 촘스키(Chomsky)도 그의 글을 인용하면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 말인 것이다. 마음과 말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표현이 많은데, 그중에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한자어를 살펴보자. 예로부터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아왔던 말이다. 신(身)과 언서판(言書判)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과 그리고 마음이 지닌 능력 3가지를 중요도에 따라 열거한 것이다. 몸이 없으면 언서판(言書判)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신(身)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제외한 마음의 3가지 능력, 즉 말하기, 글쓰기, 그리고 판단력 중에서는 말하기를 제일 앞자리에 두었다. 이처럼 마음과 말, 그중에서도 말의 중요성은 예부터 늘 중시되어 왔던 것이다. 마음과 말, 이것은 개인과 집단의 흥망과 성쇠를 좌우하며, 행복에 이르는 수단이며,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학생들에게는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 된다. 언어 과목뿐만 아니라 외국어, 사회 및 과학 탐구, 그리고 수학까지 몽땅 '언어'로 작성된 과목들을 공부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법, 자신의 주장을 펴는 법, 남을 설득하는 법, 장사를 잘하는 법, 유머와 위트로 사랑을 받는 법과 같은 세상사 모든 것이 결국 마음과 말인 것이다. 그런데 마음과 말이 항상 친하다면, 그래서 같이 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말이 마음의 거울이 되는 것은 말을 하는 사람이 진실을 말할 때에만 그러하다.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말은 들리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남이 듣는 말은 조심하면서도 남이 볼 수 없는 마음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마음과 하는 말이 다른, 다시 말해서 거짓을 말하는 상황에 처할 수가 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한 선의의 거짓말, 즉 예법(禮法)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도리어 권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의적인 거짓말은 절대 삼가야 한다. 그러한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진실한 삶을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경계하여 마음과 말이 따로 노는, 즉 악의적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정(思正), 바른 것을 생각하고, 언정(言正), 바른 것을 말하는 것이 그러한 상황을 피하는 길이다. 그리고 바르게 표현한 것을 실천까지, 즉 행정(行正)까지 하면, 가히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신오현은 '선(禪)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되도록 부단히 정진(精進)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선(禪)은 모든 이가 추구해도 좋은 삶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2018-07-28 05:00:00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경북여고 여학생의 일기

여학생의 일기하면 '안네의 일기'가 떠오른다. 나치 점령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서 숨어 지냈던 유대인 안네가 약 2년 동안 기록한 일기다. 은신처가 발견되어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 안네는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3월경, 장티푸스에 걸려 1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로 번역되어, 전체주의의 폭압과 인간의 자유를 환기하는 교과서 구실을 했다. 그녀는 일기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라고 썼다. 폭압의 종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한국판 '여학생의 일기'도 있다. 일본 동지사대학의 오타 오사무 교수는 2007년 서울의 한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대구의 한 여학생의 일기를, 2013년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묻다'라는 책자를 발간하면서 소개했다. 대구교육박물관에서는 개관기념으로 일본어로 되어 있는 이 일기를, '여학생의 일기'란 이름으로 지난 6월 번역 발간했다. '소심'이라는 이름의 이 여고생은 경북여고의 전신인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당시 이 학교는 4년제였다. 일기를 보면 이 여학생은 4학년 학생으로 졸업 후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기가 작성되던 1937년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도발하던 바로 그 해. 대구의 여학교에서도 일제는 전시동원 체제를 가동하고 황국식민화를 위해 여학생까지 총력으로 동원하고 있었음을 일기는 증언하고 있다. "오늘 가사 시간에 재봉을 했습니다. 추위가 다가오는 중국에서 싸우는 용사는 여름옷 한 벌 뿐이니 경북의 위문품으로 조끼를 드리고자 해서 그 재단을 했습니다."(10월 9일) "우리들이 노력해서 바느질한 끝에 벌써 512벌의 조끼를 완성했습니다."(10월 16일) 당시의 조선 여학생까지 군수물자 조달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봉사라 이름하여, 일본인 교장과 담임은 수시로 여학생들을 독려하고 채근했다. 일인당 10전씩 돈(애금헌금)을 거두어 군용 장갑을 제작하게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황국신민의 서사, 전우의 노래와 일본 육군가를 외우게 하고, 각종 일제 관용 행사에 학생들을 수시로 동원했다. 반장이었던 이 여학생은 선생님들의 말을 적극 수용하고 애국하려고 노력했다. 바로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네는 비록 쪽방에 갇혀 있기는 했지만 자유로운 상상으로 일기를 썼다. 하지만 이 여학생은 일기마저 일본인 선생에게 검사를 받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담임은 일기에 도장을 찍어주고 격려의 코멘트를 달았다. 일제의 검열 혹은 사상통제는 작가나 지식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이 일기는 전 교육기관을 통해 전체 조선인의 정신을 통제하려 했던, 일제의 치밀한 사상통제에 대한 기장 기초적이면서도 명백한 증거자료라고 할 수 있다. 후배가 말을 안 들어 속상해 하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시험을 망쳤다고 허탈해 하기도 하는 이 여학생의 1937년 12월 8일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황군의 그 아픈 몸, 괴로움, 힘듦에 동정하는 마음이 일어나며, 함께 남경 함락을 기뻐했습니다." 그로부터 5일후, 일본군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자행된 것을 역사는 또한 기록하고 있다.

2018-07-21 05:00:0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랫폼 이사

[광장]보수와 진보 타령

이렇지 않았다. 이런 적도 없었다. 이렇게 눈만 뜨면 온통 보수 아니면 진보로 세상이 가득 찬 적이 없었다. '보수'란 말은 사회적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말은 아니었다. 그게 불과 2년 전이었다. 그런데 벌써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지금은 TV도 신문도 인터넷에도 '보수' 또는 '진보'가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다. 명칭부터 그렇다. 보수 매체, 보수 정당, 보수 지지층, 보수 또는 진보적 기업과 학자, 예술가까지 그동안 이 말을 안 쓰고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다. 이젠 사람과 세상, 사람의 일과 세상의 모든 일이 진보와 보수의 기준으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의 논리로 설명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것처럼 보인다.사실,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이렇게 성행하게 된 데는 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의 역할이 컸다. 이젠 학자들도 앞 다투어 보수와 진보를 말하고 여론조사기관은 보수층과 진보층의 지지율 추이와 상관관계를 자세하게 분석해 결과를 발표한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남녀가 있듯이 우리 사회엔 '보수'와 '진보'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는 셈이다. 만약 그 밖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중도'로 분류될 것이다.난감하다. 세태가 이런데도 지금 당장 누가 혈액형 묻듯이 "넌 뭐냐?"고 하면 정확히 답을 할 수가 없다. 보수가 뭔지 진보가 뭔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겸연쩍은 마음보다 몇 가지 따져보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돌이켜 보면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만 빼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디 가서 공부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명확히 그게 뭘 뜻하는지 난 아직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이토록 짧은 기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알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예전엔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릴 것 없이 자기들이 바로 서민의 대변자라 했다. 그런데 지금은, 특히 우리 지역에 연고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보수의 대변자'라고 말한다. '보수의 마지막 보루에서 위기의 보수를 구해 내겠다'고도 한다. 다만 그 보수의 가치가 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정치적 '보수주의' 또는 '진보주의'는 유럽과 미국인들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빚어낸 인간과 인간의 삶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에 관한 '그 무엇'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집단 구성원이 지녀야 할 태도나 마음가짐과 관련해 학교에서 배운 건 '국기에 대한 맹세'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음으론 '나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이 떠오른다. 그뿐이다. 토리당과 휘그당의 면면을 배운 적이 없고 미국 건국 초기 '연방주의자'들의 이상과 철학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이 지녔던 생각의 내력이 우리의 역사와 정치문화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다양성의 확산'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의 핵심 가치임에도 '혼연일체'만을 강조하다 급기야 가당치도 않은 '보수 혁명'까지 외치는 걸 보면 저 보수지킴이들 또한 보수가 뭔지 알기나 할까 싶다. 우리에겐 오랫동안 건전 세력과 불건전 세력, 아니면 민주와 반(反)민주주의자들이 있었을 뿐이다. 느닷없는 보수와 진보 타령은 나라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 아니고 우리를 태우고 갈 양 날개도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이려는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

2018-07-14 05:00:00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 인디밴드 콘서트 락락락

지난 6월 14, 15일 저녁 '인디밴드 콘서트 락락락'이 개최된 대구문화예술회관 숲속공연장을 찾았다. 첫째 날 출연한 '락키즈'(Rock Kids)라는 효성초등학교 록밴드가 궁금했다.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에 창단한 스쿨밴드다. 무대에 오른 여섯 명의 락키즈 멤버는 모두 여학생이었다. 여성 록밴드는 해외에서도 흔하지 않다. 락키즈는 영국 가수 아델(Adele)의 대표곡인 'Rolling in the Deep', 걸그룹 트와이스의 'CHEER UP',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등의 노래를 들려줬다. 최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트와이스의 단독 콘서트가 떠올랐다. 댄스가 없더라도 독특한 음색의 록밴드 연주를 가까이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5월 미국 뉴욕에서 뮤지컬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을 관람했다. 다양한 피부색의 아역 배우들로 구성된 록밴드가 기타, 드럼, 키보드를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대구의 락키즈가 '스쿨 오브 락'에 나오는 밴드와 실력을 겨뤄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3명의 친자매로 구성된 여성 록밴드 '하임'(HAIM)의 공연을 참관했다. 관객들은 뜨겁게 환호했다. 기타를 연주하던 여성 멤버가 환상적인 드럼 연주 실력을 보이기도 했다. 라디오시티 뮤직홀은 6천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대규모 공연장이다. 10년 전 조용필은 국내 가수로는 최초로 이곳에서 공연했다. 인디밴드 콘서트 둘째 날 공연은 싱어송라이터 조진영의 무대로 시작됐다.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흘러나왔다. 조동희가 가사를 쓰고 조동익이 작곡한 이 노래는 조진영이 무대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사가 무척 아름다운 곡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영화 '손에 손잡고'가 이번 주말 열리는 제3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일반 관객에게 공개된다. 임권택 감독과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함께 만든 기록영화다. 조동희, 조동익 음악감독은 '손에 손잡고' 영화를 라이브 음악으로 재창조한 무대를 선보인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DAC 인문학극장 등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공연이 펼쳐진 숲속공연장은 분위기는 좋았지만 날씨가 추워서 아쉬웠다. 첫날 무대에 오른 '슬로십'은 "추우시죠. 덜덜 떨다 올라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둘째 날 '밴드카노'도 무대에 올라와서 생각보다 너무 춥다고 말했다. 인디밴드 콘서트가 열린 주말에 월드컵 특집으로 꾸며진 'SBS 인기가요'를 시청했다. 여성 듀오 밴드 '볼빨간사춘기'가 '여행'이라는 노래로 아이돌 그룹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TV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 이룬 쾌거다. 인디밴드 특유의 감성이 듬뿍 담긴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볼빨간사춘기의 멤버 안지영과 우지윤은 경상북도 영주 출신이다. 볼빨간사춘기의 1위 등극은 '대구FC의 데 헤아' 조현우 선수의 활약 못지않게 반가운 일이다. 다음번 인디밴드 콘서트 락락락은 편하게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실내 공연장에서 열리면 좋겠다. 볼빨간사춘기가 초대가수로 출연한다면 방탄소년단 서울 공연처럼 티켓이 바로 매진될 것 같다. 객석 1만~2만 석 규모의 '아레나'급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이 대구에 건립되어 폭우, 폭염, 미세먼지 등 기후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세계적인 가수의 공연을 안방에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2018-07-07 05:00:00

성석제 소설가

[광장]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

여름 저녁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앞에 놓고 앉아 있노라면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대화가 들려온다. TV 속에서 유명 시사평론가가 하는 말이든, 이웃의 탁자에서 들려오는 대화이든 그것은 글(文)이 아닌 말(言)이다. 그런데 이런 말과 대화, 이야기 속에 '없어도 되는 것'들이 글 쓰는 게 직업인 내 귀에는 유난히 잘 들려온다. 말과 글은 같은 언어에 속해 있으니 어쩌면 간섭하기 좋아하는 친척처럼 누가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교정, 교열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의 예에는 '아니…근데…있잖아…어떻게 보면' 같은 '발어사'나 간투사가 있다. 이런 것들은 대개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이라는 뜻의 췌사(贅辭)에 해당하나 전혀 뜻이 없는 건 아니다. 말과 취사선택된 단어에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태도가 엿보이게 마련이다. 그 사람이 논리적인가,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과시형인가, 실속형인가…. 습관적으로 '아니', '근데'를 반복하는 사람은 타인에 비해 논리적이고 타인을 설득하여 자신과 같은 편으로 이끌거나 논파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있잖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유형이다. '어떻게 보면'은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에 대비하는 신중함이 느껴진다. 대화에 흔히 동원되는, 유행을 타는 부사어들도 있다. 단독적으로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앞뒤의 단어, 형용사, 동사 등을 부연하고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진짜(정말), 엄청나게(엄청), 조금(약간), 굉장히(굉장하게), 사실(사실은, 사실상)' 같은 것들이다. 진실성을 강조하고(진짜, 정말, 사실), 그것이 거창하고 의미가 큰일임을 설득하기 위해 과장하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살짝 결정을 유보하거나 보험을 들어놓는다(조금, 약간은). 간투사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이야기 한 문장에 어떤 부사어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혈액형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발어사나 간투사, 부사어는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 뒤나 앞에 오는 '본체'를 수식하고 강조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 본체라는 것 또한 특별할 게 없다. 이미 스마트폰 속의 뉴스나 언론과 SNS의 이슈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소비되고 말았거나, 단지 자극적이고 이목을 끌기 쉽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과 별 관련이 없으면서도 우리의 주의력을 강탈해간 것들이다. 요점은 사람들이 나누는 '그 이야기의 본질은 내용이 아니고 이야기 그 자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하기 위해 적당한 화제로 '본체'를 등장시킨다. 중요한 것은 서로 이야기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대화는 지속된다. 세상이 두 쪽 나도, 저녁을 먹은 뒤 여름 밤의 산책과 카페에서의 나직한 이야기와 두런거림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얼마전까지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두 나라 정상끼리의 역사적 회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비록 그것이 "아니…진짜…그래서…그러니까…아주 조금…굉장히…있잖아…사실은…말이지"로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람과 사람 피아 간의, 지성체 간의 대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중하고 단 한 번, 한 순간뿐인 우리의 삶이자 비전이며 성스러움에서 비루함까지 인간 세상의 표리를 명경처럼 반영하는 것이니.

2018-06-30 05:00:00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 가난한 신랑 신부에게 드리는 글

충남 부여 지방에 전해지는 토속 민요 중에 '총각타령'이란 노래가 있다. '상주모심기' 노래나 '영남들노래'처럼 들에서 일하면서부르는 일종의 노동요다. 그 노랫말은 이렇다. "머리머리 밭머리 동부 따는 저 큰애기/머리끝에 드린 댕기 공단인가 대단인가/공단이건 나 좀 주게/뭘 하라고 달라는가/망건탕건 꿰어 쓰고 자네 집에 장가갈세/장갈랑은 오소마는 눈이 올 제 오지 말게/우산 갓모 걸 데 없네/갓모랑은 깔고 자고 우산일랑 덮고 자세/잠잘 적에 꾸는 꿈은 무릉도화 부럽잖고/같이 잡고 거닐 적엔 비바람도 거침없이/풍파 속에 사는 세상 임 놔 두고 어이 살까/장가 들러 어서 오소." 이 노래의 이해를 위해서는 약간의 해설이 필요하겠다. 밭에서 댕기를 드린 한 처녀가 동부콩을 따고 있다. 이웃 총각이 이 처녀에게 수작을 건다. 댕기를 만든 천이 대단인지 공단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달라고 조른다. 처녀가 왜 달라느냐고 묻는다. 총각은 공단이면 망건 탕건을 만들어 쓰고 처녀 집으로 장가가려 한다고 말한다. 은근한 청혼인 셈이다. 처녀가 받아서 말한다. 장가 오는 것은 좋지만 집이 가난해서 우산도 갓모(비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는 우장)도 걸 데조차 없으니 눈이 올 때 오지 말라고 한다. 총각은 능청스럽게 말한다. 갓모는 깔고 자고 우산은 덮고 자자고. 그러면서 그들의 소박한 장래를 노래한다. 둘이 잘 때 꾸는 꿈은 무릉도화가 부럽지 않고, 같이 손잡고 거닐면 비바람도 문제될 것 없다고. 풍파 속의 세상, 당신과 같이 헤쳐 나가고 싶다고. 이런 총각의 적극적인 구애에 처녀는 장가들어 '어서' 오라고 맞장구를 친다. 얼마 전 지인 아들의 결혼식에 갔었다. 서울 유명 호텔에서 '벌어진' 호화 결혼식. 유명 가수의 축가와 수많은 하객과 식장을 뒤덮은 어마어마한 꽃과 근사한 서양식 식사. 양가 합쳐서 수억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다. 이 정도 결혼식이라면 이미 그들에게는 서울 아파트의 값비싼 세간살이에, 비까번쩍(?)한 자동차 정도는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하객으로 갔으면 당연히 축하해야겠지만, 혼주에게 축하한다고 말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부러움과 질시가 함께 속삭이고 있었다. 물론 그들 신혼부부의 행복을 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가난한 신혼부부 혹은 예비 신랑 신부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결혼 후의 행복은 재물보다는 저 동부콩 처녀 총각처럼 같은 꿈을 꾸고, 비바람에도 거침없이 손을 잡고 나가, 갖은 풍파를 함께 헤쳐 나가는 데 있다고. 경험적으로 보면 돈은 결혼의 행복 조건은 아니라고. 결국은 둘의 사랑이라고. 많은 예비 신랑 신부가 항의할지도 모르겠다. 저 동부콩 처녀 총각은 가난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둘이 같이 살 집 한 채, 방 한 칸은 있지 않느냐고. 맞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우리도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지금 이런 집에 살기까지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사실은 우리도 왜 이렇게 집값이 비싼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부부는 사랑이 있으면 살아진다고, 삶에 대한 긍정과 투지는 오직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밑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가난한 신랑 신부들이여, 부디 행복하여라.

2018-06-23 05:00:0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랫폼 이사

[광장]누가 방탄소년단처럼 할까?

'방탄소년단이라니!' 이름 한번 별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좀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오그라드는 것 같아 피식 웃고는 채널을 돌렸다. 그 후론 꾸준히 TV에 나와도, 가요 차트에 그들의 이름이 보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름만 가지고 따지자면 '소녀시대'인들 별다를 바 없건만 그들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온라인에서 애써 활동하면 어느 정도 성과야 내겠지만 그렇다고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못 해낸 일을 겨우 '방탄소년단'(BTS)이 해낼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지난 세월 케이팝을 이끌어온 주역들은 단연 걸그룹이었다. 그러니 언젠가 우리 음악이 빌보드 차트의 맨 윗줄에 오른다면 그 주인공 또한 당연히 걸그룹일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이 방탄소년단은 그 흔한 해외파 한 명 없는 작은 기획사의 보이그룹이었다. 그런저런 어쭙잖은 이유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을 매년 데뷔했다 사라지는 40여 개의 아이돌 그룹 중 하나쯤으로 여겼다. 제대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면서 판단은 참 섣불리 한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대수롭잖게 여겼던 이 보이그룹이 대박을 쳤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반짝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올라 결국 지금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가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s)를 보고서야 그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공연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노래와 퍼포먼스의 차원이 달랐다. '디엔에이'(DNA)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표정에서 불현듯 오래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떠올랐다. '빌리진'을 부르며 '문 워크'를 추는 마이클 잭슨을 향해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장면이 수십 년 만에 오버랩된 것이다. 그렇게 춤추며 노래하는 남자를 그때 이후로 처음 보았다. 그리고 종종 그들을 상징하는, 그러나 좀 부정적으로 들렸던 '칼군무'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그건 일곱 명의 멤버가 한 명처럼 동작을 맞춰 춤을 춘다는 뜻이 아니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들의 몸 하나하나가 칼처럼 음악을 파고들었다.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목숨이 날아가는 칼처럼, 그렇게 그들은 춤을 추었다. 그들의 퍼포먼스에는 철저하게 드라마가 있었다. 그런데 간결했다. 그들의 몸짓에는 눈물도 있었다. 그럼에도 때론 압도적이었다. '널 위해 예쁜 거짓을 빚어내/ 날 지워 너의 인형이 되려해/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지난달 방탄소년단은 새 노래 '페이크 러브'로 빌보드 컴백 무대를 가졌다. 발표된 지 사흘밖에 안 된, 이 예사롭지 않은 가사의 노래를 미국 현지에서 관중들이 소위 '떼창'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 노래가 실린 정규 3집 앨범이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기쁜 소식을 팬들에게 가장 먼저 전했다. 그들은 오직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서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아티스트가 되길 원한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높이 오를 때마다, 그래서 잔치가 열릴 때마다 그들은 늘 먼저 내려오고 일찍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팬들을 찾아간다. 이제 지방선거가 끝났다. 문제는 승자들이다. 잔치 소리를 뒤로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오직 시민만 바라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누가 방탄소년단처럼 할까?

2018-06-14 17:26:54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올림픽의 추억 되살리기

1988년 5월 서울 프레올림픽쇼가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됐다. 오륜마크가 빛을 발하는 무대에서 가왕 조용필은 '친구여'와 '서울 서울 서울'을 열창했다. 지난 5월 12일 조용필 50주년 기념 투어 '땡스 투 유'(Thanks To You)의 첫 공연이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30년 전 분위기를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았다.다양한 색깔의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우비를 입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공연을 관람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발치에서 우산을 들고 서서 공연을 끝까지 관람했다. 젊은 날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서울 프레올림픽쇼에 함께 출연했던 다른 가수의 공연도 보고 싶어졌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송 가수 실비 바르탕(Sylvie Vartan)이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펼친다는 소식을 접했다. 30년 전 잠실에서 열창했던 '마리차 강변의 추억'이 떠올랐다. 지난 주말 저녁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오차드홀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열리는 곳이다.올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폐막작인 '플래시댄스'의 주제가인 'What a Feeling'을 불렀다. 아이린 카라의 원곡 못지않게 좋았다. 기대했던 대로 실비 바르탕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마리차 강변의 추억'을 불렀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진솔한 독백에 이어서 노래가 흘러나오니 감회가 깊었다. 실비 바르탕은 최근 타계한 전 남편 조니 할리데이를 추모했다. '프랑스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렸던 뮤지션이다. 실비 바르탕이 조니 할리데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이 소개되면서 공연은 끝났다. 관객들은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다.서울 프레올림픽쇼에서 사회를 맡았던 자니 윤은 치매로 투병 중이다. 함께 사회를 봤던 영화배우 로레타 스윗은 최근 '데이타임 에미상' 시상식에 등장했다. 시나 이스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브룩 실즈 등 쇼에 함께 출연했던 가수와 사회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음반과 사진을 구했다. 서울 프레올림픽쇼를 추억하는 소중한 기념품이 될 것 같다.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천500m 결승에서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임효준 선수는 대구 출신이다. 그는 걸그룹 블랙핑크의 제니 팬이다. SBS에서 방송된 '영웅의 신청곡'에서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을 신청했다가 아버지의 18번곡인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바꾸는 효심을 보였다. 다음 달 일본 3개 도시에서 개최되는 '블랙핑크 아레나 투어 2018' 티켓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최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중 2명(뷔와 슈가)은 대구 출신이다. 방탄소년단은 국내외 유명 가수들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잠실종합운동장의 '뮤직스타존'에 소개된 가수이기도 하다. 2주 후 롯데면세점 주최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이 선미, 김범수, B1A4, BTOB와 함께 출연한다. 30년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서울 프레올림픽쇼에 버금가는 감동을 선사할지 궁금하다. 티켓을 구하기 어려워서 아쉽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에서도 그런 공연이 자주 열리길 소망한다.

2018-06-09 05:00:00

성석제 소설가

[광장] 어른은 어디로 가셨는가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무협'이라는 대중예술(소설·영화·드라마 등)에서 만들어진 전문용어가 일상에서 쓰이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경우가 '내공'(內功)이다. 무협물에 나오는 무공(武功)은 무예나 무술과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칼이 아닌 검기로 상대를 제압하고 한번 도약하면 수십m를 날아가며 꽃잎을 날려서 수십 보 밖의 사람을 살상할 수도 있는 초능력이다.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고 손가락으로 찌르는 공격이 아닌 권풍(拳風), 장풍, 지풍의 바탕이 되는 것은 그것을 발출하는 고수가 가지고 있는 내공, 내력이다. 내공은 반복적인 육체적 단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외문무공, 곧 외공(外功)과 달리 비급이나 구결(口訣) 등의 비밀스러운 문장 또는 호흡법과 몸속에서 온몸의 혈도로 기를 운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축적된다. 시일이 경과할수록 높아진다고 하여 십년, 일갑자(60년) 등의 단위로 수위가 일컬어지며 양도, 양수가 가능하다. 무협에서 말하는 내공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기능성 자기공명장치(f-MRI) 같은 최신의 관측장비를 동원하지 않고도, 에너지 질량 불변의 법칙을 논할 것도 없이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수련기간이 길수록 내공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설정은 동양적인 경로사상의 발로일 수는 있으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인간의 내면, 뇌세포 어디에서도 초인적인 물리력으로 전화될 수 있는 에너지를 찾을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하면 내공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다. 하지만 내공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무협지의 재미는 반감되거나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도통(깨달음), 열반, 사리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힘과 능력을 압축적,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과학과는 상관없이 인간을 공감케 하고 고무한다. 그 또한 인생사와 인간세의 흥미로운 단면이다. '그 사람 내공이 대단하다' 하는 식의 표현은 어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을 긍정하는 데서 나온다. 오늘날 내공이 외부로 발현하는 방식은 신언서판, 그중에서도 특히 언어이다. 정치, 재판, 회담, 담화, 조약, 예능, 인터넷, 뉴스, 댓글, 사회네트워크서비스(트위터 등의 SNS), 술자리와 카페의 대화 등등 수많은 언어가 범람하는 지금, 드높은 자신만의 내공을 지닌 이들을 보기는 지난하고 가짜 고수, 사마외도(邪魔外道)와 마두를 보는 것은 너무도 쉽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오면서 복잡다단한 정세 변화에 적응하고 극기를 거듭하여 마침내 금강불괴(金剛不壞) 같은 존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반면 가짜 어른으로 행세하면서 수십 년을 숨겨온 추괴한 본질을 하루아침에 드러내는 일은 거의 매일처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이제 어른은 정말 몇 분 남지 않은 듯한데 며칠 전 또 한 어른이 가셨다. 꽃봉오리와 같은 깨달음의 시 몇 편을 남기고. '어제그제 영축산 다비장에서 오랜 도반 하나를 한 줌 재로 흩뿌리고/ 누군가 훌쩍거리는 그 울음도 다비로 날려보냈다/ …/ 언젠가 나 가고 나면 무엇이 나올 건가/ 곰곰이 돌아보니 내가 뿌린 재 한 줌뿐이네'(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 '재 한 줌'에서)

2018-06-02 05:00:00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 어느 봄날 초등학교를 지나며

이 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다. 1922년 5월 5일 '금일의 세자뎐하'라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당시의 왕세자(영친왕)는 오전에 이방자여사와 함께 교동초등학교를 시찰하였다. 고작 10분 방문에 그쳤지만, 당시 교동초등학교의 위상을 말해주는 기사이기도 하다. 왕세자 부처는 이 학교를 방문한 뒤 창덕궁에서 점심을 드시고 오후에는 비원에서 사이토 총독 등이 참석한 원유회(園遊會)를 가졌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이 학교 담벼락에 붙은 '학교의 소사(小史)'가 우연히 눈에 들어와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교명이 여러 번 바뀐 것이 눈에 들어왔다. 관립교동소학교(1894), 관립한성사범학교부속소학교(1895), 관립교동보통학교(1906), 교동공립보통학교(1910), 경성교동공립심상소학교(1938), 경성교동공립국민학교(1941), 서울교동공립국민학교(1947), 서울교동국민학교(1950), 서울교동초등학교(1996). 구한말 한성에서 일제하에는 경성으로, 해방 후에는 서울로 변한 것이다. 뒤에 붙는 명칭도 소학교에서 보통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 순으로 변했다. 이 이름의 변화만으로도 국가의 주인이 누구였던가 하는 점과 초등교육정책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이 학교는 1921년 새로 지은 2층 기와 건물이 1927년 불에 타 소실되자 1928년부터 1939년까지 세 동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짓는다. 6.25전쟁 때는 휴교를 했고, 1951년과 1952년에는 전쟁으로 인해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다. 1963년에는 59학급을 편성했고, 재학생이 5,250명이었다. 1977년 79회 졸업생 사진을 보면 어느 한 반이 91명이었다. 이때를 정점으로 해서 학생 수는 급감하기 시작한다. 1984년에는 36학급에 재학생 1,790명이었고, 2017년 제 119회 졸업식에는 전체 21명이 졸업 사진을 찍었다. 학교 정문에는 '서울형 작은 학교 모델학교 운영'이라는 플랜카드가 붙어 있기도 했다. 이제 전교생이라 봐야 100여 명 남짓. 한때는 이 학교도 5천여 명의 학생들이 갖가지 즐거운 소음을 내며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북적거렸을 것인데, 학교를 한참 기웃거려 보아도 어떤 움직임이나 왁자지껄한 소리도 없었다. 서울 도심 학교가 절간 같이 고요하기만 한 것이다. 서울 도심학교의 공동화 현상에는 대한민국 공통의 취학아동 감소 현상과 서울의 특수성인 강남과 신도시 개발 및 도심재개발이라는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되지만, 콩나물시루 학교에 익숙한 세대인지라 정서적으로는 잠시 비감해졌다. 이제 서울의 한복판뿐만 아니라 농어촌과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의 초등학교가 텅텅 빈 산중 절간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좀 어지럽다. 하응백 문학평론가

2018-05-26 08:33:48

[광장] 다시 레드벨벳이다

다시 레드벨벳이다. 화면 가득 웃고 있는, 저곳은 한눈에 봐도 청와대다. 아니나 다를까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초청 오찬이라고 한다. 순간 한 달 전 일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 레드벨벳과 조이가 실시간 검색어 수위에 오른 걸 보며 처음엔 흔한 연애 스캔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열어 보니 논조가 전혀 딴판이었다. 뜻밖에도 데뷔 5년 차의 걸 그룹이 나랏일로 논란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발단은 조이의 남북평화 협력기원 평양 공연 불참이었다. 소식을 읽은 일단의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서슴없이 조이를 비난했다. 그런 국가지대사(國家之大事)를 어떻게 다른 일정을 핑계로 나 몰라라 하느냐는 게 이유였다. 그건 마치 병역이나 납세처럼 마땅히 져야 할 국민의 도리를 저버린 것에 버금갈 만큼 자못 강도가 셌다. 물론 반박도 있었다. 조이인들 왜 안 가고 싶었겠느냐며, 그건 순전히 돈만 밝히는 소속사의 잘못이라고 조이와 레드벨벳을 감싸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조이와 레드벨벳, 그리고 SM엔터테인먼트까지, 이들을 향한 갑론을박이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평양 공연 또한 나랏일이기 이전에 가수에게는 또 하나의 공연일 뿐이며 시간이 남아나도 가기 싫으면 그뿐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게 애국은 물론 국민의 도리, 가수의 책임을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는 말도 없었다. 어쨌든 레드벨벳은 자신들에게 쏟아진 곱지 않은 시선을 등에 진 채, 그리고 어찌 보면 아직 그들에겐 무거울 수 있는 평양이라는 곳에 들어가 3박 4일의 공연 일정을 소화해냈다. 그럼에도 TV를 통해 본 그들의 무대는 흔들림이 없었고 태도는 프로다웠다. 그리고 그렇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귀국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영광이었다'라고 한 말 한마디가 다시 문제가 되었다. '북의 독재자를 만나고 와서 그게 할 소리냐'며 레드벨벳은 또 한 번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평양 공연 이전이나 이후나 뉴스는 레드벨벳의 '무대'가 아니라 그들을 본 북쪽 사람들의 반응을, 레드벨벳의 '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말과 몸짓들을 훨씬 더 샅샅이 전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한 달여 만에 뉴스 화면에 잡힌 레드벨벳을 보는 순간, 반갑기보다는 '또 왜 불려왔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마 저기 모인 가수들 중 제일 바쁠 텐데 그냥 좀 내버려두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들의 미소가 여전히 흔들림 없다는 것이었다. 화면에 비친 그들의 포즈는 어색하지 않았고 조금 긴장한 듯 보여도 진정으로 그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말썽은 또 일어났다. 청와대 오찬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레드벨벳이 '김정은 위원장이 따뜻한 모습이었다' 라고 말한 걸 두고 다시 비판이 일었다. 그렇게 그들은 평양 공연 이전에서 이후까지 한 번도 음악으로, 또는 그들만의 메시지로 주목받지 못했다. 언제나 다른 일로 쉽게 거론되고 쉽게 비난받았다. 나라 밖에서 갑자기 우리 휴대폰이 더 잘 팔리고 화장품까지 인기몰이를 하게 되면 그게 다 한류 덕분이라고들 한다. 그럼 그걸 만들어낸 주역들에게 한 번쯤은 제대로 고마워해야 한다. 고대 제천 행사로부터 전승된 민족의 풍류문화 덕이라고만 할 게 아니다. 아이린, 웬디, 슬기, 조이, 예리에게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평양 공연도 갔다 와줘서 더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이참에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봐야겠다. 다시 레드벨벳이다. 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2018-05-19 00:05:00

[광장] 세렌디피티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로 1931년 문을 연 후 메릴린 먼로 등 수많은 명사가 묵었던 호텔이다. 2001년 12월 그곳에서 열린 미국정신분석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소규모 세미나에서 한국 정신의학계 원로인 A선생님과 우연히 자리를 함께했다. 평소 존경하던 분이라 인사를 드렸더니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사주셨다. 그 후 A선생님과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귀국 후 2001년에 제작된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감상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 자주 등장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호감을 느꼈다. 인연이 있는지 시험해보려고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가서 서로 다른 엘리베이터에 탔다. 운 좋게 같은 층 버튼을 눌렀지만 아슬아슬하게 엇갈려서 헤어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2012년 2월 'A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다른 소식을 꿈에서 접하고 놀라 잠에서 깼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어머니가 말기암 진단을 받았다. 고심 끝에 수지상세포를 활용하는 면역세포치료를 시도하기로 했다. 국제학술지에 소개된 일본 도쿄의 세렌클리닉을 선택했다. 한국인 환자로는 첫 방문이었다. 원장으로부터 '세렌디피티'의 앞부분을 따서 병원 이름이 지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가야 마사키(長屋昌樹) 원장은 나와 동갑이었고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한 경력도 있었다. 늦은 밤에 영어로 이메일을 보내면 그는 지체 없이 새벽에 답장을 보내줬다. 2012년 10월 제12회 국제수지상세포 학술대회(DC2012)가 대구 엑스코에서 개최됐다. 저녁 시간에 다음 날 열리는 포스터 발표를 준비하고 있던 다카하시 히데노리(高橋秀徳) 박사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세렌클리닉 후쿠오카 병원 원장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뜻밖에 대구에서 같은 병원 의사와 어머니의 치료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수지상세포 발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랠프 스타인먼(Ralph Steinman) 박사는 수상자 발표 직전 별세했고 대구를 방문하지 못했다. 고인의 동료였던 쟈크 반슈로우(Jacques Banchereau) 박사를 만났다. 스타인먼 박사의 유족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어느새 5년이 흘렀다. 어머니를 담당했던 치료진은 모두 세렌클리닉을 떠났다. 나가야 박사에게 근황을 물어봤다. 종합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면서 메이지대학에서 특임교수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수가 참여한 학술 심포지엄에서 함께 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최근 야마나카 교수는 암으로 세상을 뜬 친구와의 우정을 회고하는 책을 펴냈다. 기회가 되면 나도 나가야 박사와의 인연을 정리해서 소개하고 싶다. 지난 주말 미국정신의학회(APA)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오랜만에 찾았다. 리노베이션을 위해 문을 닫았지만 건물 외관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주연을 맡았던 케이트 베킨세일과 존 쿠삭의 사인이 담긴 세렌디피티 영화 포스터도 구했다. 예상치 못했던 우연한 만남이지만 삶의 전환점이 되는 의미 있는 만남을 세렌디피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진실한 염원을 간직하고 있다면 세렌디피티는 또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018-05-12 00:05:10

[광장] 약탈자를 징벌하는 법

BC 382년 그리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이라고 정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에는 '사회'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불렀다. 후일 로마 시대에 철학자 세네카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동물이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is)로 바뀌었다고 한다.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인간이 뭔가를 위해 모이고 집단 내에서 서로 돕고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삶을 지속해나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혈거지나 동굴 같은 폐쇄적인 장소에서 집단으로 살았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집단의 구성원이 식량 조달, 생활, 교육 등으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었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사회적 협력을 강화하여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인간의 정교한 언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집단 내부에서 권력을 쥐고 빼앗기 위한 암투가 벌어지고 집단의 존속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자에 대한 공격도 가해졌다. 여기에도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집단 내에 그럴 듯한 소문을 유포하고 남에 대한 험담을 잘 퍼뜨리는 사람이 권력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 집단 내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남 이야기로 이루어졌고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떠는 가운데 언어는 더욱 발달했으며 발달된 언어는 조금 더 효율적이고 큰 집단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오늘날의 우리가 소문과 평판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집단 내에서 살아남은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동굴 사회 속에서의 소문과 험담, 귓속말은 오늘날 이메일과 메신저, SNS(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 블로그, 뉴스('속보', '단독' 따위의 허울을 쓰고 있는), 인터넷 포털의 게시물, 댓글, '좋아요' 표시로 변형되었다. 기업들은 입소문 마케팅(Viral Marketing)으로 상품 구매와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을 도입한 지 오래되었다. 여기에는 유전학, 신경학, 심리학에서 도출된 첨단의 기술과 기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특히 정치적, 경제적 이익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은밀하게 개인과 집단에 의한 여론 조작이 성행하고 있고 심지어 국가의 비밀기관을 통한 공작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직과 과학, 기술을 가진 보이지 않는 상대에 맞서 개개의 인간이 줏대와 맨정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범람하는 뉴스, 중독성 강한 SNS, 조작된 댓글, 조작된 랭킹, 조작된 실검 순위, 조작된 공감 숫자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의 이지, 판단력으로 버티는 것은 '맨주먹 붉은 피'로 총칼에 맞서는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인류는 존속하는 한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는 정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언어와 네트워크가 사적, 불법적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에 의해 악용되고 그들이 우리의 주의력을 약탈해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법과 제도를 고치고 보완하는 것 외에도 개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각자가 가진 무기는? 신경 안 쓰기, 무시, 무관심, 그리고 경멸이다. 성석제 소설가

2018-05-05 00:05:03

[광장] 봄날은 가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가 무엇일까? 계간(季刊) '시인세계'에서 10여 년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였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이 노래는 1953년 대구의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었다. '연분홍 치마'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 젊은 여자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살살 휘날리는 것 같다. 이 여자는 왜 옷고름을 씹어 가며 성황당 길에 올랐으며,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었을까? 왜 '앙가슴을 두드리며', '얄궂은 그 노래를 불렀을까? 모두 다 얄궂은 봄날과 '실없는 그 기약'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이미자, 배호, 나훈아, 한영애 등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만큼 다른 가수들도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이 가사를 잘 들어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그려진다. 그 스토리란 게 사실은 뻔한 신파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있었고, 그들은 마을 뒷산 성황당을 남의 눈을 피해 오르내렸고, 장래를 함께 약속했고, 남자는 떠나갔다. 그리고 그 남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오지 않고 다시 새봄이 돌아오자 여자는 봄바람 속에서 앙가슴을 앓는다는 이야기다. 이 노래가 전쟁 중에 나왔으니 그 남자는 전쟁터에 갔을 수도 있다. 뻔한 스토리이긴 한데 한잔 마시고 취기가 올라 이 노래를 불러보면 그 뻔한 서러움이 가슴을 친다. 조선시대의 대중가요 격인 시조창에서도 이 노래의 선조 격이 되는 봄 노래가 제법 있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삼춘(九十三春)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든고." 작자 미상의 이 시조는 지은이가 여자인 것으로 보인다. 봄날 막 돋아난 버드나무 사이로 꾀꼬리가 부지런히 오간다. 시인은 이런 광경을 마치 꾀꼬리가 실 사이를 오가며 옷감을 짜고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 봄 세 달 동안 꾀꼬리는 버드나무 아래를 오가며 푸르름을 옷감처럼 짜나가는데, 그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몹시 힘들었다. 온통 시름이었던 것이다. 왜 시름인가? 위 '봄날은 간다'처럼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게 봄날을 지켜왔는데 누군가는 봄이 지나고 나니 푸른 풀과 잎들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인고(忍苦)의 봄날을 보낸 결과가 녹음방초인데, 아름답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녹음방초란 바로 봄날 온통 힘들게 보낸 자신의 시름의 결과물인 것을. 녹음방초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픔이란 것을 표현하고 있는 매우 세련된 시조다. 이 두 편의 노래는 남성의 부재(不在)로 인한 여인의 한이 기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봄 노래가 이토록 한스럽기만 한가?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습관데/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 날이리 웃을 대로 웃어라."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시조다. 맑은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 무엇이 우습길래, 온 산을 뒤덮은 꽃과 풀이 온몸을 흔들며 웃는가. 내버려 두어라. 봄바람이 며칠이나 가겠느냐, 만산홍록이 웃고 싶은 대로 웃도록 그냥 두어라. 이 시조는 봄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니, 마치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에 온 산에 꽃과 풀이 웃는 듯하다는 것을 의인화해서 노래한다. 왕자답게 호방하게 큰소리를 친다. 올해 봄꽃은 때 이른 더위에 한꺼번에 피더니 비바람과 갑작스러운 추위에 일제히 졌다. 그렇게 짧은 봄날은 갔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도 섭리인 것을. 봄날은 가라. 하응백 문학 평론가

2018-04-28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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