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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케렌시아, 마음의 고향

작가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수록된 첫 작품이 '퀘렌시아'(Querencia)인데 '자아 회복의 장소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국어사전엔 '퀘' 대신 '케'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케렌시아'로 부르기로 한다. 이 말은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를 뜻하며 투우장에서 투우가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쉬는 곳을 가리킨다.'케렌시아'를 '자아 회복의 장소'로 번역하면 너무 길고, '피난처'나 '안식처'로 해석하면 다소 건조하게 들린다. 김형석 교수는 '고향'이라는 수필에서 고향이라는 단어를 케렌시아처럼 썼는데, 고향은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므로 그것을 케렌시아로 보는 데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심향'(心鄕), 즉 '마음의 고향'으로 옮기기로 했다.심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곳에선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마음은 편해지고, 몸엔 힘이 솟으며, 없던 자신감도 생겨나고, 선택의 기로에서는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심향이라 해서 특별한 곳이 아니라 집 안의 작은 방일 수도 있고, 거실 내의 소파일 수도 있다. 주택에 거주하는 지인이 그 집의 반지하 공간을 소개한 적이 있다. 독서·음악·영화 등을 즐길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분이 방의 이름을 고심하고 있어서 '심향'을 추천해 주었다.필자에겐 심향이 많다. 셋만 꼽으면, 첫째는 경북대 꽃시계 옆의 숲, 둘째는 문경새재, 셋째는 영천호(湖)다. 학교에서 시간이 나면 백양로를 따라 걷다 꽃시계 옆의 숲속 벤치에 앉는다.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주변엔 소나무와 물푸레나무가 에워싸고 있으며, 바닥에선 부엽토의 온기가 전해온다. 복잡한 일도 이곳에 앉으면 단순하고 수월하게 느껴진다.종일 시간이 나면 새재로 간다. 1관문인 주흘관에서 2관문인 조곡관을 거쳐 3관문인 조령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명품이다. 소나무, 잣나무, 박달나무가 조화롭게 숲을 이루고 곳곳엔 역사와 전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좌측의 조령산과 우측의 주흘산으로 난 등산로도 일품인데 특히 주흘산의 주봉, 관봉, 영봉과 6개의 부(釜)봉은 비경이다. 그간 수도 없이 방문했지만 갈 때마다 몸과 마음이 새 기운을 얻는다.세 번째는 영천호다. 공식 명칭은 영천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천호'라고 부른다. 순환로가 산기슭을 따라 나 있으므로 자동차로 굽이굽이 도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호수 안으로 내달리다 멈춰선 듯한 키 낮은 산 능선, 이어 놓은 표주박처럼 물 위로 봉긋봉긋 솟은 봉우리들을 바라본다. 호수의 동쪽은 운주산, 북쪽은 꼬깔산과 기룡산이 있는데 서너 시간의 산행 코스로 아주 멋지다. 4월 초순엔 순환로를 따라 벚꽃이 끝없이 만발한다. 벚꽃이 질 때 눈송이가 되어 흩날리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위의 심향들과는 달리 우리 모두가 갖는 마음의 고향이 있다. 명절이면 찾아가는 곳이다. 부모님이 계신 집일 수도, 큰집이거나 작은집일 수도 또는 시가나 처가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좋은 시간만을 보내면 좋겠지만, 너무 반가운 나머지 예기치 못한 사소한 일로 마음이 상한 채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번 설에는 형편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동근생'(同根生)끼리, 즉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들'끼리 따뜻한 정을 나누는 명절이 되길 바란다. 자신을 찾고 소중한 추억 하나 만들 수 있길 기원한다.

2020-01-17 19:47:53

박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조사관

[광장] 인권의 시대

2020년 새해가 희망차게 밝았지만 새해를 전후한 우리의 뉴스는 여전히 어둡다. 한 가족은 빈곤과 빚 독촉에 몰려 삶을 마감하고, 살해의 위협을 피해 한국으로 온 한 인도 가족은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또다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지구 한쪽에서는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있다.지난해만 해도 세상을 얼마 살아보지도 못한 아이는 친부모 손에 고통을 당하다 목숨마저 잃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건물 옥상에는 여전히 사람이 노동하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주거의 안정을 잃어버린 이들은 철거를 앞둔 건물 앞에 주저앉아 있다.학생들의 성적과 두발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증명은 여전히 힘들어 보이는 데도 각 학교에서는 성적 향상을 위한 두발 단속이 실시되고 있다. 조사한 사건 중에는 흡연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소변검사를 강제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기본권인 학생 인권을 논의하면 교권이 갑자기 같이 등장하기도 한다.수많은 청년들은 '수저'라는 신종 계급론에 의해 각자의 고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었다. 가정을 꾸리려던 이들도 벌이로 감당할 수 없는 집값의 무게에 행복을 미루어야 했다.여성들의 삶 역시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여성은 아름다움이 미덕인 듯 칭송하고 있다. 남녀평등한 세상이고,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했다는 뉴스 아래에 여성은 아직 밤길이 두렵다. 한국의 취업률과 평등지수 역시 OECD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하는 이들도 노동에 의해 자유로운 삶이 아닌, 노동에 예속된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내가 가진 휴식의 권리를 행사함에도 사측의 눈치가 보이고, 쉬는 동안에도 울려대는 핸드폰 메시지를 무시할 수가 없다.올 한 해 조금씩 인권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것이다. "저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인사할 때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 편하지만은 않다. 인권은 낯설고 힘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배어 있다. 인권은 아직도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고, 인권을 이야기하면, 먹고살기도 힘든데 배부른 소리라는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기도 했다. 앞서 세상 살기 고단한 이야기를 나열한 것들은 바로 이 인권이라는 영역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례들이다. 즉,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면 오히려 먹고살기 편해지는 세상이 된다.우리의 삶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는 사소한 불편함부터, 끔찍한 인간 존엄의 훼손까지 인권의 가치는 두루 작동한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해 일을 한 후 장을 보고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에도 인권의 원리는 작동한다. 저 멀리 멕시코의 국경과 중동의 전쟁 난민 혹은 과거의 대량학살과 인종차별에도 인권의 가치가 논의된다. 인권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기본 원리이자 가치 기준이다. 어렵고 낯선,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잘살기 위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로 인식해야 한다.덧붙여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인간의 존엄이 말살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1948년 만든 약속이 세계인권선언문이다. 선언문 중에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고(14조),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22조). 7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우리 사회는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야기해야 하는 인권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2020-01-10 15:11:43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대구만 분지(盆地)일까?

위성사진에서 대구 지역을 살펴보면 남쪽과 북쪽에 비교적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대구분지'가 뚜렷이 나타난다. 북쪽은 팔공산지(1,193m)가 동-서로 가로놓여 있고, 남쪽은 비슬산지(1,084m)가 역시 동-서로 가로놓여 있다. 분지 가운데를 금호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 화원읍 사문진교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자세히 보면 팔공산 자락과 비슬산 자락 사이의 평평한 공간을 볼 수 있다. 그 평평한 공간이 바로 대구분지다. 분지 동쪽과 서쪽의 잘록한 부분은 금호강에 의해 침식된 부분이다. 분지 내부 평지도 금호강과 그 지류에 의해 침식과 퇴적이 반복하여 이루어진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사전적 의미의 분지는 산지나 대지(臺地)로 둘러싸인 평평한 지역으로 설명된다. 분지(盆地)의 한자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부가 움푹하게 파인 그릇 모양의 땅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분지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평평한 땅이 산지로 완전히 에워싸여 있는 분지를 비롯해 대구분지처럼 좌·우가 열려 있는 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릇처럼 생긴 분지로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가 대표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종군기자가 화채 그릇을 닮았다 하여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학창 시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분지 도시가 대구라는 얘기를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분지 하면 대구를 사례로 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왜 대구가 분지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온 것일까?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팔공산에 대한 인식이 일반인들에게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공산당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영토를 끝까지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의 보루가 팔공산이었다. 또한 세계적 명소 갓바위가 위치한 곳이 팔공산이란 사실과 대구의 무더운 여름 날씨의 원인이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지라는 점이 대구를 분지 도시로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을 것이라 본다. 어쨌든 대구가 분지인 것은 분명하다.그런데 대구분지와 관련하여 떠도는 허황된 루머 중 하나가 대구를 '고담도시' '수구 보수의 도시'라고 비꼬는 경우다. 하기야 전직 모 대통령조차 대구에 들러 지역민들에게 "대구 사람은 분지적 사고를 떨칠 필요가 있다"고 한 적이 있었다. '분지적 사고'란 용어 자체도 없을뿐더러 분지를 폐쇄적, 수구 보수적 개념과 연계시키는 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학창 시절에 배운 기억을 떠올려 보자. 우리나라는 육지 면적의 70%가 산지다. 부산, 인천, 울산, 포항 등 해안가에 인접한 삶터를 제외한 내륙의 삶터는 대부분 분지다. 서울이 대표적인 분지 도시다. 서울 외에도 남양주, 여주-이천, 대전, 충주, 광주, 남원, 춘천, 밀양, 거창, 안동, 영주 등지가 분지임에도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과 연관시켜 비꼬는 경우는 없다.그런데 유독 대구분지만큼은 예외였다. 아마도 먹고살기 힘들었던 1960, 70년대 후진국 상황에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치는 동안 그나마 잘나가던 도시가 대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 역시 지역 출신이다 보니 온갖 시샘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분지라는 이유만으로 대구가 공격을 당할 필요는 없다. 또다시 그런 루머가 떠돌면 우리 지역민들은 이렇게 얘기해주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여서 해안가를 제외하면 모두가 분지라는데, 귀하는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요?

2020-01-03 19:24:01

송석화 메시지 캠프 대표

[광장] 정치인 이미지 전쟁

정치인의 이미지, 선거 연설, TV 토론 등에 대해 전문가적인 처방을 내리는 일이 업(業)이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나왔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당선될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결과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그렇기에 정치인에게는 내부의 시각이 아닌 유권자의 시각에서 이미지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마케팅의 혁신가인 루이스 체스킨(Louis Cheskin)은 사람들이 제품의 포장에서 받은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제품 자체로 전이시킨다고 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하지만 직접 학교를 찾거나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미디어에 자주 노출했고, 그 결과 교육 문제를 고심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됐다.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 진정성이 없는 이미지 전략은 위선이고 기만이다.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주디 버군(Judee Burgoon)에 따르면 사람들은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는 일정한 기대치를 갖고 있다. 또 우리 스스로도 대중이 나를 이런 사람으로 봐줬으면 하고 소망하는 모습이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가가 되겠는가. 몸에 맞지 않는 이미지 변신은 오히려 패러디의 소재가 되고 희화화될 뿐이다. 성공적인 이미지 전략은 후보자의 비전·장점과 유권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 간에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필자가 정치인들을 직접 컨설팅하면서 지켜본 결과, 이미지에 대한 후보자들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이를 기준으로 5가지 유형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먼저, 정치 영역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이미지 전략을 거부하는 '순진형'이다. 이들에게 이미지란 겉치장, 즉 나쁜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진실된 태도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작용한다. 하지만 이미지 전략은 실체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표현하기 위함이므로 후보자 본인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이미지 전략을 구사하기는 하나, 후보자의 장점을 부각하거나 단점을 보완하지 못하는 '미완성형'이다. 본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은 채 이미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만 앞선 경우로,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망우보뢰(亡牛補牢)형'은 이미지 전환의 시기를 놓쳐서 그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다. 포지셔닝은 적합했으나 실행 시기가 늦었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마음속에는 기존 이미지가 이미 각인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넷째, 후보자의 시각적 이미지와 언어적 메시지가 불일치하는 '언밸런스형'이다. 가는 안경테 안경을 쓰고 옅은 미소를 띤 사진으로 전문적이라는 인상을 주고자 한 반면에 논조는 친근함을 강조한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센스형'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리더의 덕목과 시대상을 반영한 이미지를 정립한 가장 바람직한 유형이다.선거는 우리 사회의 의식과 문화 수준이 표현되는 장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집합적 의식이 표면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선거 규모에 따라 정치인의 이미지가 가지는 중요도는 다르지만 눈앞에 있는 참모, 열혈 지지자, 지역 유지만 바라보느라 자칫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에는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공약을 내놓는 것만큼이나 그 공약을 제대로 실천할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2019-12-27 18:54:46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나이 듦, 그리고 삶의 보람

어릴 때는 친구들끼리 누가 나이가 많은가를 뽐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나이 먹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듦에 따라오는 질병(病), 외로움(孤), 가난(貧)과 같은 부정적 요소 때문일까? 하지만 나이 듦과 병, 외로움, 가난이 꼭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병약한 노인도 있지만 병약한 젊은이도 있다. 외로운 노인도 있지만 외로운 젊은이도 있다. 가난한 노인도 있지만 가난한 젊은이는 더 많다. 따라서 노인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병약함, 외로움, 가난은 노인의 진짜 특징이 아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좀 더 높을 뿐인데 사람들은 노인들이 그러한 특징을 지닌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노인에 대한 편견은 위의 세 가지 외에도 많다. 노인들은 지저분한가? 아니다. 지저분한 젊은이도 많다. 노인들은 추한가? 아니다. 멋있는 노인들도 많다. 노인들은 말이 많은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훨씬 말이 많다. 노인들에겐 꿈이 없는가? 있다. 단지 젊었을 때의 꿈과는 종류가 다를 뿐이다. 이처럼 노인은 병약하지도, 외롭지도, 가난하지도 않을뿐더러 지저분하거나, 추하거나, 말이 많지도 않으며 삶의 보람을 찾아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신 분들이다.그렇다면 나이 듦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갔기 때문이다. 유한한 시간을 사는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종착역이 까마득한 미래였을 때는 죽음에 대한 자각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어느덧 종점이 어른거리기 시작하면 걸음을 멈추고 싶고 심지어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막연히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미지(未知)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리는, 그리고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로부터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혹은 종교나 미신, 사회적 관습이 만들어 낸 허상이거나 생명체가 지닌 삶에 대한 본능이 만들어내는 공포일 수도 있다. 어쨌든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을 앞당겨 너무 두려워하거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자연에서 왔다가 그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일이 불시에 닥치겠지만, 바로 이 순간이라 해도, 담담하게 맞이할 일이며, 나 없이도 세상은 본래의 계획대로 돌아감을 믿으면 된다.은퇴하기 전엔 직장에 충실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삶의 보람이었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자기 계발을 위해 약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은퇴 후, 자녀들이 성장해서 떠난 후에는 무엇이 삶의 보람일까? 그것은 개인의 건강, 재력, 인생관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삶의 보람을 본능적으로 좇을 수밖에 없다.결국 삶의 보람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문제다. 완성해야 할 목표를 향한 사명감으로 살 수도 있다. 또는 사회봉사를 통해 이웃에 헌신할 수도 있다. 또는 독서, 취미, 운동, 사교 등 하고 싶은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도 있다. 자신이나 사회에 유익한 어떤 활동이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된다. 소일거리가 없는 권태로운 시간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노거수(老巨樹)의 휘어진 가지와 옹이진 둥치에서 겪은 풍상과 살아온 세월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서도 살아온 연륜과 삶의 지혜를 읽어낸다면 좋지 않겠는가?

2019-12-20 18:55:08

이상일 시인·수필가

[광장]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매주 한 편씩 방송하는 KBS '인간극장'과 일요일 점심 때마다 전국에 울려 퍼지는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고 값지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극장'은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까지 5부작으로 잔잔하게 우리의 이웃들이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전국노래자랑'은 일요일 낮마다 전 국민이 즐겨 들을 수 있는 이웃의 노래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매주 휴먼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결같은 공통점은 묵묵히 자기 직분에 화려하지 않지만 성실하고 진솔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더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긴 인생을 비록 5편으로 보여주기에는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TV란 창을 통해 그분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과 그 과정에서 겪은 갖가지 고통과 갈등 등이 엮여 한 편의 인간드라마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을 가진다.'인간극장'을 통해 보여주는 매주 1편씩의 이야기는 다소 극적인 감동은 없을지 몰라도 정말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삶을 보여주기에 오래 장수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배움과 남녀와 세대를 떠나 공통적으로 흐르는 따뜻한 인간애와 헌신과 봉사의 가족애는 이웃과 자연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가슴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짧은 인생에 있어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들을 어찌 다 보고 경험해 볼 수 있으리오? 이런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분야나 곳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진실은 통하는 법이기에 이들이 엮어내는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보면서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느끼게 한다.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또 하나는 '전국노래자랑'이다. 우리의 이웃들이 지방 축제의 장에 모여 같이 쉽게 어울리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세대 간, 남녀 간, 지역 차이의 갈등이 심한 요즘이지만 이 모든 것을 허물고 한자리에 온 세대가 어울려 무슨 노래를 부르던 간에 같이 들어주며 웃고 호흡할 수 있는 화합의 장(場)이기 때문이다.지역사회에서 저마다 숨은 끼와 장기를 가지고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수십 년을 이어오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도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 압축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소 작위적인 설정은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 보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진실성의 위대함이 이런 장수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는 이유라고 본다. MC 송해 사회자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이 장점이자 약점이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아 온 프로그램이 세계사적으로도 없을 정도이다.위대하고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들의 강연이나 토론도 물론 유익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이야기에 더 공감하고 애환을 함께할 수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인간극장'과 '전국노래자랑'이라고 본다.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이웃의 웃음과 애환과 삶의 진솔된 모습에 진정한 격려와 박수를 보내며,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가야 할 진정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열광하는 삶보다는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고 값지다고 본다.

2019-12-13 19:29:56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천연기념물 제435호 달성 비슬산 암괴류

2019년 기해년도 이제 12월 달력 1장을 남겨 두고 있는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 지난 10월과 11월에는 빙하기와 관련하여 대구 선사시대 인류를 얘기했다. 내친김에 빙하기 얘기 하나 더 해보자.빙하기와 관련한 대구의 소중한 이야기는 비슬산 암괴류다. 대구에는 천연기념물이 2곳에 있다. 하나는 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이고, 다른 하나는 천연기념물 제435호인 달성 비슬산 암괴류다. 제1호가 대구에서 탄생했고 세월이 한참 흘러 달성 비슬산 암괴류가 제435호로 지정되었다.대구에는 천연기념물은 물론 국보·보물급, 더 나아가 세계유산급에 해당하는 중요한 문화재가 있음에도 지역민의 성향 탓인지 별 관심이 없다. 비슬산 암괴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계기는 2000년대 초반 본인의 연구와 언론의 노력 결과다. 암괴류는 일본식 지형 용어라서 별로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학술용어로 굳어져 있어 달리 방법이 없다. 필자는 여기에서 암괴류라는 용어 대신 '돌강'(바위강)으로 부르고자 한다. 돌강은 영어로 'block stream' 'boulder stream'으로 표시한다. 말 그대로 돌이나 바위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에서 붙여진 명칭이다.비슬산 돌강은 원래 길이가 약 2㎞에 달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1㎞를 조금 넘어가는 정도다. 실제로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에도 현재의 상태만 보고 세계 최장(最長)이라 하지 않았다면 천연기념물 지정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돌강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채 개발에만 목맨 결과다.돌강 곳곳에 개발로 인한 상처가 생겨 안타깝다. 소재사 입구 다리 아래 있었던 돌강의 바위를 모두 걷어내 조경석으로 장식한 일이나, 인공폭포를 만든 것이 그렇다. 돌강 중간에는 작은 사방댐을 조성했고, 연못까지 만들어 놓아 참으로 가관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잘된 일이라 생각된다.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난개발이 있어 여러 차례 얘기를 했음에도 신통치 않다. 최근에는 케이블카도 설치하려 한다니 가슴이 답답하다. 돌강 최고 전문가가 지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 허가만 바라보고 있는 지자체가 안쓰럽다. 비슬산 돌강은 최종 빙하기(10만 년 전〜1만 년 전) 때 거대한 기반암에서 분리되어 만들어진 돌들이 산지 상부에서 아래로 조금씩 이동하여 형성된 지형이다. 2017년 세계적 학술지에 필자와 공동연구진은 비슬산 돌강을 연구논문으로 게재하였다. 지역의 지형과 관련하여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된 경우로는 첫 사례다.비슬산 대견사 주변 스님바위, 코끼리바위 등으로 이루어진 기반암은 7만9천 년 전에 노출되어 풍화를 받았고 이때 기반암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들이 아래쪽으로 느리게 이동하였다. 즉, 산 정상부인 대견사에서 아래쪽인 비슬산관리사무소로 갈수록 나이가 많은 돌이 위치한다. 예를 들면, 대견사 주변 돌강의 바위들은 빙하기가 끝나가던 시기인 약 9천700년 전에 형성된 가장 젊은 돌인 반면 비슬산관리사무소 부근에 위치하는 돌강의 바위들은 대견사 부근 기반암에서 약 6만5천 년 전에 떨어져 나온 바위들이 이동한 것이다. 돌강의 바위들이 1천 년에 26m의 아주 느린 속도로 이동한 것임을 알 수 있다.비슬산 돌강의 바위들이 주빙하적 기후환경(알래스카와 비슷한 기후)에서 한창 이동하고 있을 무렵, 2만 년 전 백두산 일대에서 대구로 이주해 온 대구 최초의 인류인 구석기 인류도 이 광경을 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2만 년이라는 긴 시간조차 짧게 여겨진다.

2019-12-06 19:37:54

송석화 메시지 캠프 대표

[광장] 너만 모르고 다 알아

누구나 알 법한 유명 정치인이 뉴스에 나왔다. 축하하는 장면,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이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나온 표정이었을 테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는 종종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 보여지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노출되는 모든 순간, 모든 모습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우리가 본래의 모습을 장식품으로 꾸미고 뒤덮는다 한들 내면의 속성은 우연한 기회에 수면 위로 노출되기 마련이다.우리는 겉모습이 진정한 자아인 줄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마음의 창은 다르다. 요하리의 창(Johari's window)은 한 개인의 자아가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4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다.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아는 '열린 자아', 상대방은 알고 있으나 정작 나는 모르는 '눈먼 자아', 나는 알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자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자아'가 그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너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눈먼 자아다. 국민이나 타 조직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잘 보이는 문제점을 정작 그 내부에서는 집단사고에 빠져 깨닫지 못하거나 외면하려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국민 정서와 괴리'됐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서두에 나왔던 유명 정치인은 왜 눈먼 자아에 빠져 있었을까. 언론 노출이 잦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신체언어가 반복되는 것은 주변에서 아무도 그의 눈먼 자아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직급이 올라가고 조직 내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리더십의 사각지대도 커지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승진과 연봉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돌직구를 날릴 만큼 용기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정치는 소망의 총체라고 했다. 때로는 지나친 자기합리화로, 때로는 감언이설에 둘러싸여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놓치곤 한다. 본인에 대한 눈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대개 리더들은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고 하지만 막상 결점을 지적하면 속상해 하거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나를 무한히 사랑해주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현실 인식으로 조언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 또한 복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자기 이해는 정확해진다. 눈먼 자아는 피드백 즉, 상대방의 조언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게 되고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타인과 소통하는 영역이 넓어질 뿐 아니라 우리 사회도 보다 수용적인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아프지만 필요한 것이다. 그 가능성을 위해서는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열린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적인 조언을 사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보복하는 것은 입을 닫게 할 뿐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외골수형 리더들이 어떠한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는지 확인해 왔다. 자신을 향한 조언은 달콤하지는 않지만 성장에는 무한한 자양분이 된다. 조직의 발전으로도 연결된다.나에 대한 진실은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지 그들이 내게 하는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리더의 자리, 갑의 자리에 있어서 들려오는 좋은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애정 어린 조언을 포용할 줄 아는 권력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2019-11-29 19:53:54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일정하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다. 가령 1년, 하루, 한 시간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시간, 즉 '객관적'인 시간이다.크로노스는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간다. 막을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 크로노스 앞에서 인간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역동 우탁 선생은 고려 말에 지은 '탄로가'에서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탄식했는데, 역동 선생이 한탄한 시간이 바로 크로노스이다. 가수 서유석이 '가는 세월'에서 잡을 수 없다고 한 '세월'도 크로노스이다.반면에 카이로스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시간이 길다거나 짧다는 것은 물리적, 객관적 길이에 따른 판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한 시간처럼, 또는 한 시간을 1년처럼 느낄 수도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은 시간이 빠르게,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라는 말은 더디게 감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때의 시간이 카이로스이다.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인 카이로스에는 사람의 마음과 의지가 개입될 수 있다. 마음과 의지가 담긴 특별한 시간이며 우리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때'나 '기회'이다.크로노스는 흘러가고 만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잠든 순간에도 크로노스는 흐른다. 그러나 카이로스는 마음속에 기억과 경험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들뢰즈(Deleuze)는 '들뢰즈, 유동의 철학'(2008)에서 현재는 "과거가 되어버리는 점(點)과 같은 것"이 아니라 "현재란 언제나 현재와 과거의 복합체이고 결정체(結晶體)"라고 했다. 그가 여기서 '현재' 또는 '과거'라고 한 말은 카이로스적 현재 또는 과거를 말한 것이다.그렇다면 흘러가버리는 크로노스는 무의미한가? 그렇지는 않다. 그 누구도 하루 24시간을 카이로스만으로 채울 수는 없다. 적당한 휴식과 수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 멍 때림조차도 삶을 더 활력 있게 해주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지혜롭게 조합시킬 필요가 있다.작가 김선영은 '시간을 파는 상점'(2012)에서 "삶은 시간의 내용"이라 했다. 다시 말해 삶은 자신이 사는 동안에, 카이로스적으로 살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들이다. 마지막 순간, 보람과 추억으로 가득 찬 생을 회고하고 싶다면 적어도 깨어서 활동하는 동안은 카이로스로 채우려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때와 기회를 기다린다면 더더욱 그러하다.카이로스를 위해서는 시간을 '자기 주도적'으로 쓸 필요가 있다.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 매사에 적극적,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독서, 취미, 운동, 사교, 종교, 봉사 등 그 무엇이든지 간에 진실로 하고 싶은 활동을 찾아 자발적, 능동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직업상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차피 해야 하고, 보내야 할 시간이라면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즐기면서 참여하자. 시간의 주인으로서, 때로는 왔다가 사라지고, 때로는 마음과 몸에 기억과 경험으로 쌓이는 시간을 정중하게 맞이한다면,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이다.

2019-11-22 21:10:55

이상일 시인, 수필가

[광장]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보자

몇 년 전 공익광고에 "어린 시절에 보았던 공연의 감동은 집으로 오는 길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리고 지금까지 제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작은 문화체험들이 더 큰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문구와 같이 대구의 문화정책에 대한 하나의 제언으로 대구 대공원 개발에 가칭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보자고 제안해 본다.세계는 지금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제조업 및 서비스업까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어,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관광이나 문화 콘텐츠 분야가 각광을 받고 있다. 국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글로벌 한류로 지속 가능한 콘텐츠와 정책 개발에 힘써오고 있다.인구 240만 명이 넘는 대도시답게 대구도 다양한 공연장과 전시실이 많다. 특히 국내 최초 단독 오페라 전용 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콘서트하우스를 비롯한 음악공연장과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미술관 등 전시실은 물론 각 구청마다 복합문화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문화를 총괄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국과 공연문화도시 조성사업과 문화예술인 가치 확산 사업을 주도하는 대구문화재단 등도 대구예술문화계를 이끌어 가고 있어, 문화 예술 인프라 측면에서는 크게 뒤처질 것이 없다.문화는 다양한 장르로 시민의 삶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구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볼 때 통합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점에서 아쉽다. 시민이 먼저 대구지역에서 성장하고 활동했던 미술·음악·문학 등 예술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 고장 사람들부터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작품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대구가 문화예술의 도시임을 부각시키고 홍보할 콘텐츠 개발 차원에서 가칭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만들어 우리 고장 사람부터 친숙하도록 해보자.내가 근무하고 있는 창원시(구 마산시)만 해도 지방 소도시이지만, 이미 2008년 시(詩)의 도시로 선포하고 임항선 그린웨이와 산호공원, 돝섬 등 7곳을 '시인의 길'이라 명명하고 이 지역 출신 문학가를 중심으로 시비나 팻말 100여 개를 세워 시민들에게 잔잔한 문화체험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구도 전문가의 공연과 전시도 좋지만, 누구나 쉽게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작은 문화공간이 많아져야 하는 차원에서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자연스럽게 건강과 레저와 문화가 함께하는 복합시민문화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일환으로 대구미술관을 중심으로 새로 조성 예정인 대구대공원, 이미 조성되어 있는 대구스타디움과 연계해 명품 산책길을 조성해 대구 출신 미술, 문인,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테마길(미술길, 문학길, 음악길 등)을 조성해 작품을 감상토록 하고 음악도 들려준다면 좋은 문화공간이 될 것으로 본다.산책하면서 대구 문화도 알고 긍지를 갖도록 인프라를 갖춘다면, 도심과 가깝고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부모님과 아이들이 교육 차원에서 많이 찾으리라 본다. 먼 훗날 이런 작은 체험들이 모여 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 구축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더 큰 세계 속의 문화계를 빛낼 사람으로 키우는 공간과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2019-11-15 19:37:48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대구 인류의 원류를 찾아

2006년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아파트 부지 일대에서 1만3천 184점에 이르는 다량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의 발굴은 대구지역 인류 역사를 신석기시대에서 구석기시대로 앞당겨주었다.월성동 구석기 유물 발굴 중 특이한 점은 구석기 제작지의 존재였다. 이곳에서는 석기 제작의 원석인 몸돌, 몸돌을 가공하는 데 사용했던 망치돌, 몸돌로부터 떼어 낸 격지(몸돌에서 산출된 가공 돌), 긁개, 새기개, 찌르개, 흑요석 등 다양하고도 많은 석기들이 발굴됐다. 그리고 받침돌(臺石)을 비롯해 모룻돌도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화산분출 때 형성되는 유리질 화산암인 흑요석은 최근 구성광물 분석결과 백두산 기원으로 밝혀져 대구 최초 인류 기원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동 중에 다른 지역 구석기 인류와의 물물교환으로 흑요석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장소 관련성을 입증하는 데 있어 흑요석은 가장 중요한 과학적 수단이다.후기 구석기시대로 입증된 달서구 월성동 유적과 유물은 약 2만여 년 전의 것으로, 2만 년 전 보다 훨씬 이전에 백두산 일대를 출발하여 대구로 구석기인류가 이주해왔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백두산 일대에서 살다가 이동해 온 대구 최초 인류는 또 다른 외부 이주 세력과의 혼혈로 인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2017년 언론에 공개된 신석기시대 인류의 유전체(게놈) 비교분석 관련 연구에 의하면 한민족의 기원이 알타이산맥에서 몽골, 중국 대륙을 거쳐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기존의 북방계설(언어, 외모 등 유사성) 보다 오히려 동남아시아에서 올라 온 남방계설에 무게가 더 실리는 과학적 증거가 드러났다. 즉, 우리 민족의 유전체는 고립된 현대 베트남, 타이완 원주민 유전체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북동쪽 프리모레 지방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인류 두개골 유전체에 결합시켰을 때 가장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특히 고구려, 동부여, 옥저 영토였던 프리모레 지방의 동굴(악마의 문 동굴, Devil's Gate Cave)에서 발굴된 약 7천 700년 전 신석기시대의 40대 여성, 20대 여성 유골에서 채취한 유전체 분석에서 드러난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현재의 한국인과 같은 갈색의 눈, 앞니가 삽처럼 생긴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게 나는 유전자, 마른 귓밥 등의 유전자 특성이 현대 동아시아 유전체 특성과 유사하다고 한다.'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굴된 유전체는 주변에 거주하는 울치족을 제외하면 한국인과 가장 비슷하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도 한국인의 특성과 일치해 모계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리하면, 한민족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혼혈이며, 유전체 특성에서 볼 때 남방계 농경민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한민족 기원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와 월성동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을 고려해 볼 때, 대구 최초의 인류는 빙하기의 추운 날씨를 피해 백두산 일대로부터 이주해온 구석기 인류가 대구 최초의 토착민이었다. 한편 고조선 원조 인류는 3〜4만 년 전과 약 1만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극동으로 각각 이주해간 수렵채취인들과 농경인들 간 혼혈로 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고조선의 멸망으로 남하하던 유민들이 대구 최초 토착민과 혼혈로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될 거 같다. 현재 달서구 진천동 상화로 변에 설치되어 있는 '대구 2만년 역사가 잠든 곳' 조형물(길이 20m, 높이 6m)은 이곳이 대구 최초의 인류 거주지였음을 알게 해준다.

2019-11-09 06:30:00

이예식 경북대학교 사범대 학장

[광장] 정시확대, 무엇이 문제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부정 대학입시 의혹으로 촉발된 대학입시제도 공정성의 문제는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입시 공정성 제고 방안으로 정시 비율 확대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려면 이미 공론화를 통하여 결정된 2022학년 대학입시제도의 정시 비율 30%에서 각 대학들은 적어도 10% 이상 확대하여 신입생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정시 비율 확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대통령이 바라는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 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심히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첫째, 정시는 객관식 시험인 수능 성적을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4차 산업혁명 변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조 능력,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수행할 수 없는 비자동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비자동화 영역에 속하는 일들은 하나의 답이 아닌 다양한 답을 창의적으로 찾는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입시에 유일한 하나의 답만을 찾게 하는 수능의 중요성을 확대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역행하는 교육적 조치이다.둘째, 수능 성적에 근거한 정시 전형이 비교과 활동 스펙을 이용하는 학종 수시제도보다 더 공정하다는 보장이 없다.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수능 성적도 부모의 학벌, 경제 능력에 상당히 좌우된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1분위 상승할 때마다 수능 1, 2등급을 획득하는 자녀들의 수가 두 배로 증가된다. 결국 수능 성적에 기반한 정시도 온전히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셋째, 수능시험과 같은 객관식 시험은 다른 차원에서 공정성도 결여되어 있다. 언어학을 전공한 필자의 견해로는 수능 영어 문제 중 답으로 적합한 선택지가 없는 문항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험생은 어쨌든 선택지 하나를 답으로 골라야 한다. 출제자가 답으로 정한 선택지를 고른 수험생들만 점수를 획득한다. 이렇게 받은 점수로 대학입시의 당락이 좌우된다면 이 또한 결과의 공정성조차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위에서 언급한 문제 외에도 정시 비율 확대는 대학의 교육에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야기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보면 거의 모든 학과에서 정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가장 낮다. 그 이유는 단순히 하나의 답을 고르는 객관식 문제풀이에만 익숙한 정시로 입학한 학생은 수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에 비에 대학의 논술형 문제나 다양한 프로젝트형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학생이 더 많이 대학에 들어오면 올수록 그만큼 대학 교육의 수월성은 저하될 것이다.우리나라는 대학입시의 교육 역류효과가 너무 크다. 대학입시에 있어 객관식 시험인 수능을 위주로 하는 정시 비율을 확대한다면 초·중등 모든 교과 과정은 객관식 문제풀이 능력인 수렴적 사고력의 향상에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확산적 사고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는 2015 개정 초·중등 교육과정의 정상화는 물 건너 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의 결과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시 비율의 확대는 우리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고 국가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교육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2019-10-31 11:31:26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날로그'(analogue)와 '디지털'(digital)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는 나타내는 방법의 차이'를 뜻한다. '나'라는 실체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초상화를 그리거나 필름을 쓰는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을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상화 혹은 아날로그 사진은 서로 연결된 선과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날로그는 '연결된/연속형의'라는 뜻을 얻게 되었다.그러나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전통적 아날로그 방식과는 다른 방법이 등장했다. 화면을 '화소'(畵素, pixel)라는 작은 칸들로 나눈 다음, 각 화소의 색상을 조절하여 사진을 완성하는 방법이다. 가령 1인치(2.54㎝)를 10등분, 100등분, 혹은 그 이상으로도 나눌 수 있는데 각 화소의 칸을 잘게 나눌수록 실물에 더 가까운 해상도(解像度)가 높은 사진을 얻게 된다.색의 3원색에 컴퓨터에서 쓰는 0과 1로만 이루어진 이진법 수를 각각 부여한 후 그 숫자의 조작과 처리를 통해 각 화소의 색상을 조절한다. 이 새로운 방법은 연속된 선이나 면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상의/단절형의' 정보를 이용하게 되고, 여기서 디지털이 '수치상의/단절형의'란 뜻을 얻게 되었다. 숫자는 각기 독립적이므로 '수치상의'란 말은 '단절형의'란 말과 사실상 일치한다.단절형의 데이터만을 다루는 것이 컴퓨터 소프트웨어이며 이것의 발달로 스마트폰을 포함한 각종 전자제품이 생겨났고, 인공지능의 출현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 결과, 디지털은 '컴퓨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컴퓨터의 웹사이트에 있는 정보를 이용하는'이라는 뜻도 얻게 되었다. 우리가 '디지털 혁명',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할 때는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디지털의 두 번째 뜻과 함께, 그 대척점에 있는 아날로그 또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은 전통방식의'라는 의미를 얻게 되었다. 컴퓨터의 정보처리에 의존한 '디지털 뮤직'이란 말과 전통적인 녹음테이프나 레코드판에 담긴 '아날로그 뮤직'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다시 아날로그의 본래 뜻인 '연속형의', 디지털의 본래 뜻인 '단절형의'를 염두에 두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펴보자. 세상은 아날로그적 연속된 면과 디지털적 단절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해운대에 서보라. 바다와 육지가 연결되어 있는가, 분리되어 있는가? 을숙도에 가보라. 낙동강과 남해는 어떠하던가? 팔공산 동봉에 올라보라. 바람과 구름은 또 어떠하던가? 김민기의 노래 '친구'의 가사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를 떠올리지 않아도 삶과 죽음조차도 연결된 것 혹은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아날로그는 종합 또는 통섭(統攝)하는 정신이고, 디지털은 분석하는 정신이다. 아날로그가 수학의 적분이라면 디지털은 미분이다. 합치고, 나누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의 큰 몫이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 시각과 디지털적 시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디지털적 시각만 가지면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은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결국 부정과 불법까지도 서슴지 않을 수가 있다. 아날로그적 시각만 가지면 의타적(依他的)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자기희생적일 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이지만 지구 표면을 딛고 살고 있고 그래서 너와 나는 지구 표면을 매개로 인연을 맺고 있다. 결국 '같이&따로'이다.

2019-10-25 19:45:25

이상일 시인, 수필가

[광장]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다. 이미 유치원에서 배운, 정직하라, 성실하라, 사랑하라 이 세 마디다. 뜻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개인적으로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다시 뽑으라면 誠(정성 성)이라고 말한다. 誠을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言+成으로 즉 말대로 행동한다는 언행일치를 뜻한다. 이것은 또한 우주철학과 관련된 덕목이다.동양철학을 명쾌하게 정리한 中庸(중용) 20장에서도 誠者(성자)는 天之道也(천지도야)요 誠之者(성지자)는 人之道也(인지도야)라 하고(정성이란 하늘의 도요,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다), 誠者(성자)는 物之終始(물지종시)니 不誠(부성)이면 無物(무물)이라(誠이라는 것은 만물의 마침과 시작이니, 진실이 없으면 어떠한 사물도 없다) 했다. 이 세상의 처음과 끝도 결국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성도 멸함도 없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부지런해야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곧 至誠感天(지성감천)과 至誠無息(지성무식)과 연결되어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감동시키고, 誠(성)은 결코 쉼이 없다고 했다.생활에서 가장 기초적인 민법에서도 권리의 행사나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는 기본 원리로 성실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를 자연의 이치에 적용시켜 보면, 천지는 이때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지런히 돌아가기 때문에 밤낮과 계절이 생기어 모든 만물들은 이 환경에 맞추어 살 수 있다. 만약에 천지가 한 번이라도 멈추거나 계절의 순서가 바뀌면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어 모든 생물들이 멸할 것이다. 이것은 오직 변하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쉼 없이 돌아가는 우주의 자연법칙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사랑도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아니, 백 번이라도 찍으면 안 넘어가는 사랑이 없듯이, 지극한 성의에는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사랑이 이루어진다. '근면과 성실로 재산을 모은 것은 신의 섭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종교개혁자 캘빈이 말하여 자본주의 탄생에 기여했고, '성실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이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예는 이제까지 하나도 없고, 성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남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예도 이제까지 하나도 없다'며 맹자도 성실에 대해 언급했다. 나의 평소 철학은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길만이 인생의 의미를 알고 허무를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삶에서 경험하듯 生于憂患 死于安樂(생우우환 사우안락:어려운 상황은 사람을 분발하게 하지만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과 같이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으면 공부도 하고 무엇이든 잘할 것 같지만, 막상 시간과 여유가 많으면 오히려 더 나태해져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는 이치다. 진정한 행복은 꾸준한 일이나 행동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고 편리한 것에만 올인하는 가치와 논리 속에 때론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몸과 생각의 기본 바탕은 늘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삶이란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이 세상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의미를 남길 수 있기에, 3대 액체(피, 땀, 눈물)를 흘리지 않는 사람은 결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없다. 그러기에 그 어떤 가치보다 숭고한 誠을 바탕으로 노력하다 보면 사랑도 사람도 재물도 다 이룰 수 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사람도 미물도 감동시키며 존재 가치를 부여하기에 끊임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2019-10-18 19:15:21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선사인류와 빙하기 이야기

대구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약 2만 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인류로 보고되고 있다. 구석기시대 이래 대구지역에서 살아온 우리 인류의 이야기를 필자는 기후적 환경과 관련하여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첫 주제는 선사 인류와 빙하기 이야기다.지구상에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빙하기가 실제로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빙하기는 또 올 수 있다. 그렇다면 빙하기는 왜 생겨나는 걸까?지구상에 빙하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지구 공전궤도와 자전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바퀴 도는 것을 공전이라 하고, 공전하는 동안에도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이것을 자전이라 한다. 그런데 공전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 그리고 자전축의 회전(세차운동)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 수만 년을 주기로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설명이다. 바로 이러한 공전궤도와 자전축 기울기 변화 그리고 자전축의 회전으로 인해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에너지는 변한다. 즉 공전궤도가 지금의 궤도보다 약간 바깥으로 이동하면 지구상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는 감소하게 돼 혹독한 추위가 나타나고 그것이 바로 빙하기가 발생하는 이유다. 반대로 공전궤도가 좀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는 증가하여 빙하기는 끝나고 고온의 지구, 즉 간빙기가 나타난다.지구 생성 이래 이러한 현상은 지속되어 왔다. 현재 우리가 사는 기후 환경보다 더 추운 빙하기가 오면 바닷물이 증발하여 눈으로 변해 녹지 않고 육지에 쌓여만 갈 것이다. 그러면 육지에 쌓여가는 눈의 양만큼 바닷물은 줄어 해수면은 낮아진다. 반대로 지구의 대기온도가 점점 높아지면 육지에 쌓여 있던 눈(빙하 포함)이 녹아 바다로 흘러가게 돼 바닷물은 불어나 결국 해수면은 높아진다. 이처럼 지구상에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나타나면서 지구상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다.지구적 기후변화는 우리 인류 문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마지막 빙하기가 존재했던 시기다. 역사에서는 이러한 1만 년 전을 기준으로 인류의 문명 역시 큰 전환점을 가지는 시기라 보고 1만 년 이전의 빙하기를 구석기시대로, 그 이후의 시기를 신석기시대로 구분한다.지금의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가르는 서해는 평균 수심 44m, 최저 수심 103m로 빙하기 당시 평균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20m가량 낮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서해는 육지로 드러난 상태이다. 또한 남해 역시 평균 수심 101m, 최저 수심 227m여서 제주도까지 육로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가능케 해준다.빙하기에는 혹독한 추위로 인해 동물은 먹잇감을 찾아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인류 역시 추위를 피하고 먹잇감을 쫓아 남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동한 구석기시대 인류는 제주도까지 이르게 되었고, 그 후 빙하기가 끝나 날씨가 따뜻해져 북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해수면이 높아져 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당시 제주도에 머물게 된 인류가 제주도 최초의 인류가 되는 것이다.한편 빙하기에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해 온 구석기 인류는 이전의 지역에서 사용했던 도구나 중요 유물들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또한 이동 중에는 필요에 따라 물물교환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빙하기와 같은 지구적 환경변화는 오늘날 지구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유적이나 유물의 유사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2019-10-11 20:33:30

최경규 '최경규의 행복학교' 교장

[광장] 2020 행복 프레임 만들기

해외를 갈 때마다 내가 탄 비행기는 어느 정도의 연료를 담고 출발하는지 궁금하다. 공중급유를 하지 않는 이상 비행기는 제한된 연료를 탱크에 담아 목적지를 향해 이륙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만약 이륙한 후에서야 목적지가 정해지거나 갑자기 변경된다면 연료가 부족하여 비행기는 중간에 불시착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보이지 않는 남은 인생의 게이지를 무시한 채, 오늘을 의미 없이 살아가다가 푸른 가을빛이 아름다운 오늘 같은 날, 진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나의 목적지를 문득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삶이라는 인생 항로를 어떻게 설계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늘 돌아보고 자신을 살펴야 한다.행복을 강의하는 필자에게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요? 과연 나는 누구를 만나면 행복할까요?"라고 묻는다. 행복은 극히 주관적이라 수학 공식처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이야기로 대신하곤 한다. "바르게 사는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 당신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화려했던 과거 무용담만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당신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람 말이죠."자극적인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매력은 진정한 삶을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 매력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면 우리 인생은 한결 소확행의 길로 들어가기가 쉬워진다.장성미 작가의 '아내가 화를 자주 내요'를 보면 우울증 환자의 78.8%가 여성이고, 그중에서도 기혼 여성이 다른 집단에 비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즉 주부는 극히 제한적인 사람을 만나기에 새로운 자극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사람은 자극이 없을 때 정체된다. 정체는 때로는 어지러워진 마음 안에서 끊임없는 돌림노래로 정신을 피폐하게도 만든다.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먼저 마음의 창문을 열어야 한다. 기존 틀에 박혀 있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결과주의에서 벗어나 여정을 즐기는 과정주의로 우리 머릿속 센서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 정체라는 그늘 아래에서도 노력하다 보면 온화함과 만나는 순간이 있다. 이러한 순간은 백화점에서 판매되지 않는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나를 바꾸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의 저자 주얼 테일러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민과 아픔 같은 부정적인 요소는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긍정의 씨앗이 된다. 고민하고 아픈 상황에서도 좀처럼 이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겠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불현듯 그때 그 고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납득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다.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9년도 두 달을 남겨두고 있다. 우리가 탄 인생이라는 이름의 비행기가 이륙한 지는 이미 오래다. 목적지가 분명한가? 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가?만약 얼마만큼의 연료가 남아 있는지 모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척 분명하다. 오늘부터라도 주위에 당신을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인간관계를 재정리해보자. 새로움이라는 인간관계의 프레임이 당신을 자극시켜 줄 것이며, 새로운 사람들은 당신에게 신선한 행복의 밑그림을 그려 줄 수 있을 것이다.

2019-10-05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광장으로!

광장(廣場)은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자리이다. 쾌적한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엔 커피숍, 서점 같은 상가가 있으며 바닥엔 잔디나 붉은 벽돌이 깔려 있을 법하다. 둘레엔 드문드문 벤치가 있고 마로니에나 라일락 또는 배롱나무가 서 있을 법도 하다. 한쪽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다른 쪽엔 청소년을 위한 농구대 하나쯤도 마련되어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광장은 우리 시대에 정신적으로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우선 광장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적이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선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남에게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며, 자유롭게 차려입을 수 있지만 풍속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자유와 평등도 소중하기 때문이다.평등하다면 반칙과 특권이 없어야 한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고 결국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놀이를 할 때도 부잣집 아이든 그렇지 않든 똑같이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먼저 온 사람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늦게 온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기다려야 한다.둘째, 광장엔 자정(自淨)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보장하면 평등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이 깨어지는 곳에 불화가 생긴다.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시민들의 협의에 의해 도출된 정의이다. 정의와 양심의 순(順)기능으로 인한 정화(淨化) 작용, 그것이 자정 능력이다. 편향된 이념에 중독된 집단이나 사이비 종교엔 바로 이 자정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끝으로, 광장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신체적 제약, 이념,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그 누구라도 배제되어선 안 된다. 광장에 두 명 이상이 있다면 위의 두 가지 원칙 모두가 지켜져야 한다. 혼자 있어도 스스로 어긋남이 없도록 신독(愼獨)함에 힘써 자정 능력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위의 조건이 맞지 않는 비민주적 공간, 즉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반칙과 특권은 묵인되며, 자정 능력은 실종되고 없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열린 폐쇄적인 공간을 '밀실'(密室)로 규정한다. 밀실은 혼자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정의가 죽어버린 공간이다. 홀로 거(居)해도 바르게 처신하면 그곳은 광장이다. 무리를 지어도 동반 타락하면 그곳은 밀실이 되고 만다.결국 바람직한 삶은 밀실을 떠나 광장으로 가는 쉽지 않은 여행이다. 용기와 지혜로써 불의한 이익을 멀리하고 이웃과 함께 광장에 서고자 하는 지난(至難)한 몸짓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거하는 곳을 광장으로도, 밀실로도 만들 수 있다. 마음을 잘 쓰면 온 누리가 광장이고, 잘못 쓰면 처처(處處)가 밀실인 것이다. 가자! 광장으로! 그곳은 반칙과 특권이 없고, 너와 내가 공정하게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가자!전 정부가 '광장의 밀실화'로 탄핵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러함에도 현 정부는 반칙과 부정을 일삼고 특권은 누릴 대로 누리며 밀실에서 살았던 가정의 가장을 광장의 관리인으로 고용했다. 잘못된 인사다. 계속 국민과 역사에 눈감으면 파국을 부른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본 칼럼의 모티브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얻었다. 그러나 광장과 밀실의 개념은 작품 속의 그것들과 다르며 필자가 내린 정의임을 밝힌다.-

2019-09-28 02:30:00

이상일 시인, 수필가

[광장]귀곡천계의 습성을 버리자

귀곡천계(貴鵠賤鷄)란 고니를 귀하게 여기면서 닭을 천하게 여긴다는 사자성어로, 멀고 드문 것은 귀하게 여기는 반면, 가깝고 흔한 것은 천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닭은 가까이 자주 접하는 가축으로 자주 볼 수 없는 고니보다는 천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같은 조류(鳥類)라는 측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우리의 문화나 역사의 인식에 있어 이런 귀곡천계의 습성이 남아 있어 안타깝다.지리적 여건으로 대륙인 중국 옆에 있는 한반도의 숙명 때문에 오랫동안 중국의 문화나 영향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현대에 와서도 외세에 의한 개방으로 그동안 내려오던 과거의 전통이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서양의 교육이나 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우리 것 대부분은 부정되었다. 속된 말로 무조건 먼 곳이나 남의 것은 좋은 것이라 여기고, 우리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는 버려야 하고 천하게 여겼다. 이런 오랜 중국의 사대주의 전통이나 맹목적 서양문화의 도입으로 인한 귀곡천계 습성이 우리의 가치관이나 문화에 많이 스며들어 있다특히 고대사 분야가 매우 심하다. 중국의 삼황오제나 제가백가들을 신봉하여 과거시험 과목으로 달달 외울 정도이고, 현대에도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는 수백 권의 책으로 출간될 뿐만 아니라, 도표를 그려가면서 그 어려운 신들의 이름과 계보를 다 외우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의 단군신화나 고대에 대해서는 미신이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무시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현실이다. 고대사는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후대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각색된 신화나 소설이기에 역사적 사실에 바탕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중국이나 서양 것은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신뢰하면서, 정작 우리의 단군신화나 환단고기, 천부경 등 고대사에 대해서는 미신 내지 허무맹랑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 같은 신화이고 그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똑같다. 이는 그동안 우리의 근대교육이 서양 문화에 대해 맹목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단정하고 비판 없이 세뇌 교육을 받은 영향이라고 본다.문화나 역사는 상대성이고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준이나 격을 논할 수 없는 분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 찬란했던 사라진 고대문화도 지금 거꾸로 볼 때,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듯이 오늘날 각자 이어져 온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도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 설사 우리의 고대사가 다소 비현실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 해도, 전혀 근거나 스토리가 없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고 가꾸고 전승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것을 지켜 주리요.오늘날 국제화 시대라지만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말과 문화와 정신을 버리고 후손들이 어떻게 잘될 수 있다고 보는가.그런 의미에서 최근 대구경북지역이 그동안 보수적 전통으로 지켜온 지난날의 문화나 정신적 가치들을 세계인들이 같이 공감하고 지켜야 할 문화와 전통으로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 14곳 중 5곳이 등재되었다.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 그래서 서양과 중국 위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귀하게 여기는 습성을 버리고, 비록 초라하고 볼품없더라도 우리 것을 우리가 사랑하고 지키겠다는 생각으로의 전환과 교육이 뒷받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19-09-21 06: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연귀산(連龜山) 거북바위를 보며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도호부 '산천'(山川)조(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연귀산은 부의 남쪽 3리에 있는데, 대구의 진산(鎭山)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마을을 형성할 때 돌 거북을 만들어 산정부에 머리는 남쪽으로, 꼬리는 북쪽으로 향하도록 묻어 지맥을 통하게 한 까닭에 연귀라 부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연귀산과 거북바위에서 대구의 진산이 연귀산임을 알 수 있다. 진산은 풍수적 용어다. 즉, 마을이나 도읍지 뒤편에서 진호(鎭護)하는 산으로 주산(主山)이라고도 부른다. 연귀산은 현재 제일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조 순조 때는 연귀산에서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를 알리는 포를 쏘았다고 해서 '오포산'으로 불리기도 했다.제일중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학교 건물 앞쪽에 머리를 앞산 쪽(남쪽 방향)으로 꼬리는 팔공산 쪽(북쪽 방향)으로 향해 있는 돌로 만든 거북이를 실제 볼 수 있다. 연한 자줏빛을 보이는 모래 질 암석인 자색(紫色) 사암에 거북 형상을 새겨 놓았다. 거북바위는 타원형을 보이며 여러 곳에 성혈(性穴, cup-mark)도 보인다. 과거 대구지역 선사인들의 무덤인 고인돌의 덮개석이라 전해 온다.연귀산 거북바위는 고문헌에 기록된 대구 최초의 유물로 대구를 상징하는 보물이다. 팔공산과 비슬산(앞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 대구분지는 풍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맥이 단절된 모습이다. 그래서 단절된 지맥을 잇기 위해 작은 언덕에 불과한 연귀산에 거북바위를 묻어 지맥을 연결한 것이다. 더욱 신통한 일은 앞산이 약 7천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화산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불기운이 강한 앞산의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 물의 신에 해당하는 거북이를 만들어 비보(裨補)한 것이다.유럽 여행 중 프랑스를 들를 때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평평한 도시 파리에 있는 해발고도 129m 높이의 '몽마르뜨 언덕'을 어김없이 찾는다. 몽마르뜨 언덕은 군신의 언덕 또는 순교자의 언덕이라 불리는 명소로, 인근에는 유명한 예술인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는 몽마르뜨 언덕보다 더 가치 있고 대구의 정체성과도 같은 연귀산이 있지만 지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대구를 상징하는 동물을 거북이로 하고 거북바위가 있는 연귀산에 대구의 대표 광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달구벌 최초의 성인 달성(達城)보다 시대가 앞서는 연귀산을 중심으로 선사시대의 이야기, 역사시대의 이야기, 근대화 골목의 이야기 등을 풀어나간다면 대구가 보다 매력 넘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역사 관광지로 근대화골목이 지나치게 부각된 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이야기를 간직한 근대화골목이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관광산업 역시 올바른 역사적 토대에서 성장해나갈 때,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감 또한 고취되리라 믿는다.대구 출신 대문장가인 사가 서거정 선생은 그의 한시 대구십영(大丘十詠)에서 연귀산과 거북바위를 읊고 있다. 여기에 서거정 선생의 '귀수춘운'을 소개한다.귀수춘운(龜岫春雲): 연귀산의 봄구름귀잠은은사오잠(龜岑隱隱似鼇岑): 거북 뫼 은은하여 자라 뫼 닮았네.운출무심역유심(雲出無心亦有心): 무심히 피어난 구름 또한 의미가 있네.대지생령방유망(大地生靈方有望): 바야흐로 대지의 생명과 영혼들이 바라듯,가능무의작감림(可能無意作甘霖): 아무 뜻 없이 단비를 내리겠는가?

2019-09-07 01:30:00

최경규 경영학 박사, 스트레스 행복강연가

[광장] 마음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세상을 호령한다 하였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고양이를 잡기 위해서는 목을 잡으면 되고, 뱀을 잡기 위해서는 머리를 잡아야 한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목을 잡을 수도 없고 멱살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무엇을 잡아야만 하는가? 바로 마음을 잡아야 한다. 신은 인간에게 세상을 보라 눈을 주셨지만, 오직 사람 마음만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러면 누군가의 마음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오늘 자기 마음을 닦는 일'이라 말하고 싶다.필자가 강연을 하며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지금을 살아야 한다", "一日一念"이라는 말이다. 하루를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 마음을 잘 잡아야 한다고 풀이한다. 생각 '염'(念) 자는 참 의미가 있는 한자이다. 지금을 뜻하는 '금'(今)에 '심'(心)이 합쳐져서 지금의 마음을 뜻한다.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오늘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사람의 눈으로도 다른 이의 마음이 보일 때가 있다. 내일 해야 할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현재 눈앞의 어떤 것도 보이질 않는 사람, 과거 속에 살고 오늘을 원망하며 어둡게 사는 사람들은 눈에 보인다.오늘을 제대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맑고 거침이 없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숨김도 과장도 없다. 왜냐하면 지나간 화려했던 과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 미래의 계획으로 잘난 척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은 향기로운 꽃처럼 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들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을 굳이 알려고 그리고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마치 마음의 문을 지키는 병사가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처럼 타인들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바닥만 보아서는 앞도 옆도 뒤도 볼 수 없다. 그래서 바닥"이라 했던 김별아 작가의 말처럼 과거라는 울타리에 갇혀 사는 사람은 바닥만 보는 사람들과 같다. 날아오는 삶의 기쁨도 바닥만 보아서는 잡을 수 없다. 과학의 발전으로 신선초가 홈쇼핑에 나오지 않는 이상,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제한된 시간이란 물리적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더 이상 과거 속에서 후회로 오늘을 살지 않았으면 한다.또한 필자의 두 번째 책, '나는 행복을 선택했다'에서 말했듯이 내일만을 꿈꾸는 사람은 오늘의 상처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일의 행복만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내일이 된다 하더라도 오늘 자신의 소중한 것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에 자신하지는 못한다. 즉 10년 노력 끝에 얻은 미래의 행복 앞에 이미 무너진 건강이나 가족 관계는 더 이상 행복일 수 없기 때문이다.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남이 아닌 자신의 오늘을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고 나 자신을 항상 아기 돌보듯 사랑해 주어야 한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지 않고 내일의 나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행복도 불행도 타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에 행복하고 불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2019-08-28 11: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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