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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검찰총장의 현재는 공수처장의 미래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검찰총장의 현재는 공수처장의 미래

검찰총장은 '식물'이 되어 버렸다. 권력의 비리를 캐던 검사들은 손발이 묶였다. 실력 있는 검사들은 줄줄이 한직으로 쫓겨났다. 견디다 못한 이들은 줄줄이 옷을 벗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부하 아래서 서울중앙지검은 '사건 먹는 하마'가 되었다. 비리 사건은 그리로 들어가는 족족 소식이 끊겨 버린다.'식물'도 살아 있는 한 안심이 안 되는 모양이다. 권력은 총장에게 파상 공세를 펼쳤다. 한겨레신문은 윤 총장이 성 접대를 받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허위로 드러났다. MBC는 그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유시민 씨를 잡아넣으려 했다고 보도했다. 이 역시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졌다.본인에 대한 공격이 무위로 끝나고 측근을 통한 공격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가족을 건드린다. 이를 위해 인사청문회 때 자기들이 '문제 없다'고 했던 사안을 다시 끄집어냈다. 하지만 이런 무리수에도 그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엮으려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그런다고 포기할 그들이 아니다.법무부에서 새로 6가지 누명을 씌워 그의 직무를 정지시켜 버렸다. 그가 판사들을 '불법사찰' 했다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이 펼쳐 놓은 이 야바위판을 키우려고 국무총리와 당 대표까지 나서서 열심히 바람을 잡는다. 그런데 그때 하필 조국 전 장관의 7년 전 글이 발견됐다. 거기서 그는 '불법사찰'을 이렇게 정의한다."1. 정당한 직무감찰과 불법사찰의 차이가 뭐냐고? 첫째, 공직과 공무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법이다. 2. 대상이 공직자나 공무 관련자라고 하더라도 사용되는 감찰 방법이 불법이면 불법이다. 예컨대, 영장 없는 도청, 이메일 수색, 편지 개봉, 예금계좌 뒤지기 등등." 너무 명료해 아름다울 정도다.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의원 역시 '불법사찰'의 기준을 제시한 적이 있다. "세평 수집은 일반적인 업무다. 불법이 되려면 미행, 도청 등 불법 수단이 되어야 하고 수집 정보가 개인적인 약점이 되어야 한다." 이들의 정의에 따르면 문제의 문건은 '불법사찰'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말했던 이들이 지금은 딴소리를 한다.권력은 이미 윤 총장을 쳐내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것은 요식행위뿐. 12월 2일에 열리는 징계위에서 추미애 장관은 윤 총장의 면직을 의결할 것이다. 대통령은 아마 못 이기는 척하며 그 요청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윤석열 총장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그들은 검찰이 '과도한 권력'을 가졌다고 비판해 왔다. 그 과도한 권력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무소불위'라는 검찰도 권력이 장관 자리에 앉힌 단 한 사람의 '똘끼'를 당해내지는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곳은 오직 청와대뿐. 그곳은 이제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성역이 되었다.오직 '공수처'만이 구원이란다. 과연 공수처가 권력을 건드릴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떤 인물을 처장에 앉힐지는 안 봐도 빤하다. 추미애 사단이 장악한 서울중앙지검은 공수처의 미래다. 권력 앞에서는 사건 먹는 하마, 정적(?)에게는 잔인하고 집요한 하이에나. 이게 그들이 생각하는 사법의 이상이다.행여 실수로 강직한 인물이 그 자리에 앉아도 어차피 청와대에는 손을 못 댈 게다. 그저 한겨레나 MBC를 통해 음해성 보도만 흘려도 웬만한 이는 꺾이고 말 것이다. 게다가 검찰에도 부족한 실력을 충성으로 때우는 기회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을 동원해 가족을 털어 대면, 누가 견딜 수 있겠는가.그래도 버티는 이는 그냥 날리면 된다. 공수처장은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고? 검찰총장 임기는 보장돼 있지 않은가. 못된 쪽으론 워낙 창의적이라 그들은 어떻게든 쫓아내는 방법을 고안해 낼 게다. 검찰이라는 거대 조직의 장도 가볍게 날리는 이들에게 그깟 공수처장 하나 날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그러니 누가 그 자리에 앉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장을 시켜준 것을 '고위공직자를 수사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총장의 현재는 처장의 미래. 부활한 예수는 반갑다고 달려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만지지 말라."(Noli me tangere) 이게 권력의 메시지다.

2020-11-29 15:14:45

[이른 아침에] 또 신공항? 선거가 두렵다

[이른 아침에] 또 신공항? 선거가 두렵다

2007년 초 학술회의차 베이징의 모 대학을 방문했다. 나는 우리 헌법의 민주주의 모델을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선거와 책임정치 구현, 3권분립과 상호 견제 등을 설명했다. 전쟁 수행 권한을 둘러싼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 사법부에 의한 결정 등 미국의 논의를 원용한 것이었다. 탐탁지 않아 하는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 공법학 교수 혼자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시기상조'가 핵심 요지였다. 약간은 유보적이었지만 발전 방향은 맞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은 당시와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서구 민주주의는 중국의 정치 개혁 노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선거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함께 중국 방식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을 자주 본다. 지도자 자질이 없어도 한 번의 선거로 뽑힐 수 있는 게 선거라 말한다.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백년대계 대신 국민 영합적 정책만 난무할 뿐이라고 한다. 반면 중국은 치밀한 과정을 거쳐 지도자를 양성한다고 자랑한다. 작은 지역부터 국가적 차원까지 철저한 경쟁과 검증, 교육을 거치며 지도자의 사다리를 올라간다는 것이다.중국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그들의 국가주의적 사정을 강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요즘은 관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국민을 대신할 국가 운영자를 선출하는 대의제는 체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필수적 전제이다. 하지만 선거(election)와 선택(selection)은 일치하지 않는다. 선거는 가장 좋은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다. 최선 대신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는 게 선거라고 한다. 세계의 근심거리가 된 미국 대선은 선거의 치명적 단면을 보여준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부터가 그랬다. 정치와 아무 관련 없는 부동산 재벌이 하루아침에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미국 대통령이 된다. 미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한 덕분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가. 함량 미달인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자치의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목격했고, 지금도 보고 있다.느닷없는 가덕도 신공항론은 선거의 또 다른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국가적 과제 대신 지역적 정서와 이해관계를 자극하는 고전적 수법이다. 죽기 살기로 싸우던 부울경과 TK 지자체장들이 승복을 약속한 덕에 수십 년 끌어 오던 갈등을 겨우 매듭지은 사안이다. 가덕도도 밀양도 아닌 김해공항 확장으로 말이다. 가덕도 신공항론이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문임은 다 아는 얘기이다. 정부·여당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데 대해 한마디 설명조차 없다. 선거에서 '재미 좀 보면' 그만이지 애초 변명할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야당이 분열되어 갈피를 못 잡는 걸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야당의 의견을 통일하라는 훈수까지 당당하게 둘 정도다. 갈라진 야당 역시 선거용이라고 폄하할 수만도 없다. 양양, 예천, 청주, 무안 등 숱한 지역 공항들이 현재 야당도 이용한 선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가덕도가 옳은지 그른지 평가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추진하더라도 허접한 논리만은 접어 주었으면 싶다. 김해공항 확장이 별 문제 없다면서도 근본적 재검토를 요한다는 검증위의 결론부터 허접하기 짝이 없다. 산을 깎아야 한다면 깎으면 된다. 지자체 협의가 없어서 문제라면 협의하면 된다. 태양광 설치를 위해 온 산을 깎아 대는 터에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설사 김해공항 확장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곧바로 가덕도 신공항을 정당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검증위가 재검토를 요한다고 했으니 원점 재검토가 합당한 결론이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 신공항이든 아니든 대한민국의 장래에 가장 좋은 선택을 하자는 말이다. 10조원이 든다는 현재 추산은 결국 수십조원이 드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한두 번 경험하는 일도 아니다. 그때 가서 수십조원짜리 빈 공항을 추가한다면 국가적 낭비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솔직히 말해 내년 보궐선거와 후년 대선 후 어찌 될지도 모르는 게 신공항의 운명이다. 다시 말하지만 '김해 백지화'가 아닌 '근본적 재검토'가 올바른 방향이다. 지금 중국 학자들을 만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모델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부터 선거가 두렵기 때문이다.

2020-11-22 15:24:03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원전 수사도, 정책 수사도 아니다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원전 수사도, 정책 수사도 아니다

감사원법은 '이 법에 따른 감사를 방해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감사원의 '월성원전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국회감사요구)' 보고서에는 감사방해죄의 모델(?)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조직적 감사 방해 행위는 한 편의 소설로 손색이 없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처음 감사원 요구에 따라 제출한 문서에서 대통령 비서실 보고 문서 등 대부분의 문서를 누락했다. "그 뒤 산업부는 감사원의 추가 자료제출 요구가 2019. 12. 2.(월)로 예상되자, 같은 해 12. 1. 23시 24분 36초부터 다음 날 01시 16분 30초까지 약 2시간 동안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월성1호기 관련자료(총 122개 폴더)를 삭제한 후, 감사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일요일 밤 관련 파일을 무더기로 삭제한 것이다. "산업부에 중요하고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문서는 우선적으로 삭제, 처음에는 삭제 후 복구되어도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 등을 수정하여 다시 저장 후 삭제, 그러다 삭제할 자료가 너무 많다고 판단하여 단순 삭제 방법 사용, 이후에는 폴더 자체를 삭제"했다고 이어진다.범죄 영화의 한 장면이지 공직자들의 행위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영혼이 없다는 비아냥을 듣기는 해도 자칭 타칭 엘리트인 대한민국 중앙 부처의 공무원들이다. 적어도 공직자가 해서는 안 될 짓임을 당연히 인식했을 것이다. 보고서는 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과정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한동안 유행(?)하던 직권남용죄의 증거들이 수두룩하다.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되었다는 감사원의 표현은 가장 온건한 단어이다. 대전지검의 수사는 이런 범죄 행위들을 수사하는 것이다. 범죄의 단서가 드러났어도 모른 체한다면 검찰의 존재를 부정하는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감사원이 고발 조치를 했어야 마땅하다. 고발을 하지 않은 데 대해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다수의 감사위원들이 추가 수사를 하면 범죄가 성립될 개연성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 노골적인 압박 탓에 최 원장이 일정한 타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고서 자체가 말해 주기 때문이다.'정치 수사'라는 검찰 비난도 근거 없는 억지이다. 감사원의 보도 자료 마지막에 주목할 문구가 있다. "참고로, 문책대상자들의 자료삭제 및 업무관련 비위행위 등과 관련하여 수사기관에 수사참고자료 송부 예정"이라는 대목이다. 야당의 고발 이전에 검찰이 수사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감사 자체도 국회의 요구에 의한 것이고 범죄를 수사하는 게 검찰 수사의 성격이다. 감사 보고서도 그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원전 조기폐쇄 추진 정책결정의 당부는 이번 감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음." 따라서 검찰의 수사를 탈원전 정책에 대한 수사, 에너지 전환 정책 수사라고 하는 건 무리한 규정이다. 검찰의 국정 개입이란 말도 있을 수 없다. 경제성 평가 '과정'에서 범죄가 있었는지가 초점이다. 검찰의 수사는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지 않도록 그에 집중해야 한다.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은 그런 점에서 자제해야 마땅하다. 여당의 위기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자칫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까지 부인될 수도 있는 사안에 경고성 메시지를 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이 정책의 타당성까지 검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사는 범죄행위를 밝히기 위한 것일 뿐이다. 정책 수사라는 말로 검찰을 공격한다면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들조차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격앙된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고서를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보고서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 읽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 보고서를 읽고 나서도 검찰의 정치 수사라고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주권자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주권자를 농락하는 공직자들을 단지 우리 편이라고 감싸려고만 한다면 주권자의 자격이 없다. 요설을 퍼뜨리는 정치인도 장관도 '보고서 읽기' 권고 대상에 해당함은 물론이다.

2020-11-08 15:06:14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청와대나 개혁하라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청와대나 개혁하라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머리 나쁜 양들은 줄곧 이렇게 외쳐 댄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돼지 나폴레옹이 불러준 대로 내뱉는 것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외쳐 대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로 네 다리는 무조건 좋고 두 다리는 무조건 나쁘게 보이게 된다.'검찰개혁'이라는 말도 그런 선동구로 전락해 버렸다. 대한농장의 양들도 주야장천 외쳐 댄다. "우리는 좋고, 검찰은 나쁘다." 거기에 토라도 달았다가는 무한 반복되는 또 다른 선동구의 폭격을 받게 된다. "토착 왜구, 토착 왜구, 토착 왜구, 토착 왜구." 가끔은 이 양들의 두개골에 뇌라는 게 담겨 있는지 진지하게 의심한다.선동구를 끝없이 되뇌다 보면 이윽고 검찰 조직 전체가 범죄 조직으로 보이기 마련. 그리하여 '검찰=악마'라는 황당한 명제가 그들의 머릿속에 아예 '공리'로 자리 잡는다. 공리의 정의는 '증명 없이 참으로 통하는 명제'. 이 절대명제를 그들은 모든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 검찰=악마이니 검찰의 모든 행위가 다 사악해 보일 수밖에.표창장을 위조해도 검찰의 잘못이요, 증거를 인멸해도 검찰의 잘못이요, 사찰을 무마해도 검찰의 잘못이다. 나라에서 보조금을 부정 수령해도 검찰의 잘못이요, 치매 걸린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기를 쳐도 검찰의 잘못이요, 업무상 배임과 횡령을 저질러도 검찰의 잘못이다. 그 모두가 "검찰이 창작한 죄"(진혜원)가 된다.물론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위반해도 검찰 잘못이다. 정정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국회를 기만하고 인격을 말살하는 검찰의 권력 행사에 대해 300명의 동료 의원을 대신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검찰=악마이니 범죄의 피의자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걸어가는 선구자 행세까지 하는 것이다.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말이다. "인신이 구속된 상태에서 그 어떠한 방어권도 행사할 수 없으며 검찰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끌려갈 수밖에 없음을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검언 유착의 산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1조6천억원 금융사기의 피의자가 개혁의 투사가 된 것도 '검찰=악마'라는 공리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라임·옵티머스 사건이 터졌다. 수사 인력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문재인 정부는 외려 금융 범죄를 전문으로 하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시켜 버렸다. 인사랍시고 열심히 수사하던 검사들 다른 데로 보내 놓고는 엉뚱하게 서울남부지검장과 검찰총장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이 모두가 그들이 수사를 덮은 탓이란다.법무부 장관은 범죄자와 손잡고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금융 비리 사건을 "검사 게이트"로 둔갑시키느라 바쁘다. 김봉현이 주장하는 검사 술 접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설사 그런 일이 있었어도 검사 한두 명의 개인적 일탈이 검찰 전체가 썩었다고 말할 근거는 못 된다. 일반화를 하려면 최소한 청와대 수준은 돼야 한다.그동안 비리로 기소된 청와대 출신들을 보자. 조국 민정수석, 한병도 정무수석, 전병헌 정무수석, 신미숙 인사비서관, 김종천 의전비서관, 송인배 정무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최강욱 공직비서관. 비록 청와대 재직 시절의 일은 아니지만 윤건영 국정상황실장도 검찰 수사를 기다리고 있다.그뿐인가? 라임 사건으로 김모 경제수석실 행정관이 4년 형을 받았고, 옵티머스 사건으로 이모 민정비서실 행정관과 익명의 민정비서실 수사관이 조사를 받고 있다. 수석부터 비서관, 행정관에서 수사관까지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조직 전체가 썩었다는 일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라스 사태'와 관련해 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래도 끄떡없다. 그들에게는 이 모든 지저분함을 대중의 머리에서 싹 지워주는 마법의 주문이 있으니까. 그것은 바로 '검찰개혁'. 하늘에서 내리는 함박눈처럼 이 주문은 정권과 사기꾼들의 비리를 하얗게 덮어준다. 이 시간에도 양들은 요란하게 울어댄다. "우리는 좋고오오오, 검찰은 나빠아아아."

2020-11-01 15:26:28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차라리 윤석열 해임을 건의하라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차라리 윤석열 해임을 건의하라

장관도 총장도 편들기 싫다. 여당도 야당도 손들어주기 싫다. 꼴 보기 싫고 역겨울 따름이다.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국회의원도 모두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여 나라 일을 보는 사람들이다. 언필칭 공복이라 하지만 한마디로 머슴들이다. 주인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머슴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는데 누구 편을 들고 누구 손을 들어준다는 말인가.문을 닫는 공장과 가게들이 날로 늘어가는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이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공직자들이 밤을 새워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이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하는 일이 시정잡배보다 못한 막말과 삿대질 공방이라니. 꼴 보기 싫고 역겹지 않으면 이상하다.법무행정, 검찰 개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마구잡이 장관에 안하무인 총장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문제된 수사지휘권도 검찰청법에 정해진 대로 행사하면 그만이다.2005년 서울중앙지검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보고 받은 천정배 법무장관은 헌정 사상 첫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천 장관이 김종빈 총장에게 수사지휘서를 보내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김 총장은 천 장관의 지휘를 수용하면서 사직의 변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김 총장은 "역대 장관이 지휘권 행사를 자제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 때문이다. 장관이 구체적 사건의 피의자 구속 여부를 지휘한 것은 심히 유감이다"면서도 "지휘권 행사가 타당하지 않다고 따르지 않는다면 총장 스스로 법을 어기게 된다"고 했다. 수사지휘권 행사의 모범 사례이다.검찰총장이 검찰 수사를 지휘하지만 법무부 장관은 수사와 관련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장관은 검찰총장을 통해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제8조의 정신이 그것이다.추 장관은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과 라임사건 관련 두 번이나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헌정 사상 몇 번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 훼손 우려 때문에 자제해야 하지만 꼭 필요하다면 발동할 수 있다. 문제는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지휘권 행사이다.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는 규정을 볼 때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장관 스스로 사건 처리 방향을 지시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윤석열 총장 역시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위법·부당했다면 따르지 말았어야 한다. 최소한 위법·부당함을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했어야 한다. 본인 스스로 위법·부당한 지시는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뒤늦게 국회에 출석해서 책상을 두드리며 큰소리 치는 걸 작심발언이라고 박수 칠 이유가 없다. 마구잡이 장관에 안하무인 총장이라고 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윤 총장 사퇴 압박은 추 장관만이 아니다. 여당 의원들은 물러나라는 말을 아예 노골적으로 한다. 정의로운 검사라며 윤석열 검사를 칭송해 마지않던 자신들의 발언이 멀쩡하게 존재하지만 말을 바꾸는 데 추호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정치는 그래야 하는지 몰라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이다.적폐청산 과정에서 사갈시하던 인사에 대해 이제 대망론까지 펼치는 야당 역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쨌든 이런 혼란이 지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나라의 기강이 허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 총장의 말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을 재신임한 게 사실이라면 여권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장관도 의원들도 윤 총장 사퇴 압박을 중지해야 한다. 하지만 윤 총장이 도저히 그 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여당은 정식으로 해임을 건의해야 마땅하다.해임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만 할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야당 정치인 수사를 하지 않고, 측근과 가족 수사에 관여한 검찰총장이라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시라도 직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공식적으로 해임을 건의하여 인사권자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언행을 이쯤에서 그치기 바란다. 인사권자는 대통령이지만 궁극적 인사권자는 국민이니까 말이다.

2020-10-25 14:44:57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프레임으로서 검찰개혁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프레임으로서 검찰개혁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은 권력의 공작 정치로 드러났다. 수감 중인 이철 씨는 지난 3월 25일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을 처음 듣고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채널A 기자는 이미 그 3일 전에 취재를 포기하고 그쪽과 접촉을 끊은 바 있다. 그러니 '강요 미수'가 성립하려면 타임머신이 있어야 할 게다.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의 핵심은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한 검사장이 감옥의 이철 씨를 협박하여 유시민 이사장의 비리를 캐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철 씨는 법정에서 (다른 사건으로) 검찰에 불려갔을 당시 유 이사장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사건의 실체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제보자 X는 기자에게 이철 씨가 정치인 로비 리스트를 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철 씨가 그에게 그런 리스트는 없다고 확인해 줬다니,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최강욱 의원은 기자가 이철 측에 "거짓이라도 좋으니 유 이사장에게 돈을 줬다고 해 달라"고 말했다고 썼다. 하지만 녹취록에 그런 발언은 없었다.이 공작에 공중파인 MBC와 KBS까지 동원됐다. 그 덕에 거짓이 졸지에 사실로 둔갑했다. 이 대안적 사실을 근거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되고, 부장검사가 상관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수사심의위원회에서는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중단하라고 권했다. 사건의 실체가 없다는 얘기다.결국 한 검사장은 조작된 음모의 희생양으로 드러났다. 무고함이 밝혀졌으면 이제라도 좌천됐던 그를 원대 복귀시키는 것이 옳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의 법무부는 좌천됐던 그를 외려 더 먼 곳으로 보냈다.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그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용인으로, 용인에서 진천으로 쫓아낸 것이다.법무부 감찰관실이 한 검사장에 대한 감찰에 나섰다고 한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그의 출퇴근 시간과 근무 태도를 캐묻고 다닌단다. 심지어 코로나 방역 권고에 따라 상부의 결재를 받고 재택근무를 한 것까지 캐물었다고 한다. 일국의 법무부가 악덕 기업주나 하는 너절한 짓을 한다.문제의 녹취록에서 한 검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가 다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어. 그런 사회는 없다고. 중요한 건 뭐냐면 국민들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돼.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이야. 적어도 걸렸을 때, '아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성내면 안 되거든."중요한 지적이다. 최소한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된다. 이것이 불완전하나마 우리 사회를 사회로서 유지시켜 주던 최소한의 규율이었다. 그런데 이 정권에 들어와서 이 한 줌의 도덕마저 무너져 버렸다. 지금은 공정한 '척'하는 문화마저도, 공정의 '외관'조차도 사라져 버렸다.수십 만이 서초동에 모여 '내가 조국'이라 외쳤을 때, 그로써 그들은 윤리를 새로 제정한 것이다. 그 도덕은 벌써 통용되고 있다. "언론의 묻지마식, '카더라'식 토끼몰이 당사자가 되어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를 직접 경험해 보면서 대한민국 검찰 개혁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임펀드 김봉현 회장의 말이다.자기도 조국이라는 얘기다. 권력을 향해 자기도 조국처럼 대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조국 사태와 검언 유착 사건의 프레임을 슬쩍 자기에게로 옮겨 놓은 것이다. 검찰의 힘을 빼놓는 데는 그와 권력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러니 권력으로서도 이를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데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것이다.여기서 그동안 정권이 활용해 온 '검찰 개혁' 프레임에 내재된 문제가 분명히 드러난다. "대한민국 검찰 개혁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 사기 사건의 피의자가 '개혁'을 얘기한다. 그동안 권력에서 그 프레임으로 자신들의 비리를 덮어왔으니, 범죄 사건의 피의자마저 그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고, 그의 말이라고 무조건 무시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적어도 공익을 위한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검찰 개혁'의 명분만 내세우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세상. 그러니 엉뚱한 사람이 검찰 개혁의 기수를 자처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뉴노멀이다.

2020-10-18 14:38:33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이 환생 정조?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이 환생 정조?

"정조 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신 뒤로 김대중, 노무현을 빼면 수구 보수 세력이 210년을 집권했다. 그 결과로 우리 경제나 사회가 굉장히 불균형 성장을 했다. 분단 구조, 계층·지역 간 균형 발전 문제, 부동산 문제, 검찰 개혁 문제 등이 그렇다." 이해찬 전 대표가 어느 시사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이 기사를 읽고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현재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려고 2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쾌한 스케일. 그 황당함에 비하면 차라리 "이게 다 친일 청산이 안 돼서 그렇다"는 헛소리가 외려 합리적으로 들릴 정도다. 이런 허황한 역사 판타지로 당을 움직여 왔으니, 민주당이 이상해진 것은 당연한 일.문제의 인터뷰에서 이해찬 전 대표는 작년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2, 3차례에 걸쳐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윤 총장이 사전에 조국 후보에게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발견해 이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려 했으나 인의 장막에 가로막혀 하지 못했다는 풍문이 사실인 모양이다.공직 후보자에게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다면 내가 검찰총장이라도 임명권자에게 알리려 했을 것이다. 공직자라면 마땅히 국가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해야 하니까. 이 전 대표는 인식이 다른 모양이다. 그는 검찰총장의 직보 요청을 '검찰의 저항'으로, 조국의 지명을 '검찰 개혁 의지의 바로미터'로 파악했다고 한다.자기들이 임명한 총장이고, 그는 내내 검찰 개혁에 협조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 그에게 정조 대왕이 돌아가신 뒤로 210년을 집권해 온 '수구 보수 세력'의 낙인을 찍고는, 그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장관 후보자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선(先)판단을 내려놓고 총장이 대통령을 만나는 길마저 차단해 버린 것이다.이는 애초에 그들이 그 후보를 장관이라는 '임명직'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선출직' 후보로 여겼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일단 임명부터 해놓고 그에 따르는 문제는 정치적으로 돌파하려 했던 게다. 그래서 '사실'에 따라 공직자의 윤리적 자격을 판단하는 대신에 문제를 '판타지'와 '음모론'으로 처리했던 것이리라.어느새 조롱의 밈(meme)으로 전락한 '검찰 개혁'만이 아니다. '계층·지역 간 균형 발전 문제, 부동산 문제'와 같은 정책 사안마저 이 전 대표는 철저히 이념의 틀로 해석한다. 한국 사회의 '불균형 성장'이 '수구 세력이 210년을 집권'한 결과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창작한 환상에 빠져 현실감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이다.한국 사회의 불균형 발전은 보수 정권하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소득 격차·도농 격차·부동산 격차는 그가 예외로 제쳐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물론이고 현재의 문재인 정권하에서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여러 지표는 외려 노무현·문재인 정권하에서 불균형 성장이 그 어느 정권에서보다 더 심화됐다고 말해준다.그런데도 그는 이 정책적 실패를 엉뚱하게 순조·헌종·철종·고종·순종·일제·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의 탓으로 돌린다. 순결한 것은 오직 김대중·노무현·문재인뿐. 애초에 이런 황당한 현실 인식을 갖고 있으니, 문제를 판타지로 진단하고 처방은 음모론으로 내리는 버릇을 반복하는 것이다.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니 자기들이 하는 일은 모두 숭고한 개혁이요, 거기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수구 세력의 저항으로 보일 수밖에.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은 전 정권의 적폐 탓이요, 야당의 비협조 탓이요, 언론의 가짜 뉴스 탓이요, 검찰의 무리한 수사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이해찬 전 대표의 맹랑한 환상 속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210년 만에 환생한 개혁 군주 정조 대왕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야무진 착각이다. 조선의 왕들 중에서 굳이 문 대통령에 가까운 인물을 찾자면, 정조가 아니라 차라리 선조일 게다. 이분이야말로 자신의 무능을 '남 탓'으로 돌리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시지 않았던가.

2020-09-20 15:00:36

[이른 아침에] 대통령의 메시지

[이른 아침에] 대통령의 메시지

며칠 전 대통령이 SNS에 굳이 안 올려도 좋을 글을 올렸다. "코로나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힘들고 어려울 텐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습니까?" 간호사들을 격려하는 형식이나, 파업 중인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놓는 내용이다.행여 알아듣지 못했을세라(?) 그 아래에 발언의 의도를 더 분명히 해 두었다. "지난 폭염 시기, 옥외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의료진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코로나19의 방역에 의료진 모두가 애를 썼는데, 굳이 대통령이 나서서 노골적으로 갈라치기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나마 사실도 아니다. 지난 6월 1일 누적 기준 코로나19 방역에 임한 의료진은 의사가 1천790명, 간호사·간호조무사 1천563명, 임상병리사 등 기타 인력 466명 등으로 의사가 가장 많았다.이것이 문제가 되자, 문제의 글을 쓴 이가 대통령이 아니라 오종식 청와대 기획비서관이었다는 얘기를 흘린다. 대통령은 그저 간호사를 격려하라 했을 뿐인데, 기획비서관이 그 뜻을 잘못 받들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계정의 트위터 글은 대통령이 직접 쓴다고 밝혀왔다. 이 또한 거짓이었던 것이다.이마저 문제가 되자, 청와대에서는 글의 작성은 기획비서관이 했으나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올린 것이라 재차 해명했다. 대통령 계정의 트위터 글을 누가 쓰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그 글이 대통령 이름으로 나갔다면, 그것은 대통령이 쓴 글이며, 책임 또한 대통령이 져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메시지의 성격이다.오종식 기획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광흥창팀의 멤버다. 정권이 출범하면서 NL 운동권 출신인 이 팀의 멤버들이 대거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국정 운영에 운동권 멘탈리티가 스며드는 것은 당연한 일. 그 결과 대통령의 메시지가 이간질로 적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얄팍한 운동권 전술로 악용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왜 그 메시지가 대통령의 손에서 걸러지지 않았을까? 청와대의 해명과 달리 대통령이 아예 안 봤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참모들이 대통령을 제치고 운동권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반면 대통령이 읽고 게재를 허락한 것이라면, 대통령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어느 경우든 문제다.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윤건영 의원은 청와대 상황실장 시절 대통령에게 조국 임명 강행을 권했다고 한다. 공공선에 입각해 처리해야 할 윤리적 상황을 청와대 참모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파할 군사적 상황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이 정권의 폭주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윤건영 상황실장 역시 광흥창팀 멤버였다.이 사소한 해프닝에서 통치의 패턴을 엿볼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정책의 문제를 이념화한다는 것이다. 정책을 수립해 관철시키는 것을 이들은 '이해의 조정'이 아니라 '선악의 결전'으로 바라본다. 자기들은 선이요, 상대는 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개혁의 '주체'로 놓고, 상대는 그저 개혁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대상으로 전락한 이들의 목소리가 개혁안에 담길 리가 없다. 그러니 격렬한 저항은 예정된 셈. 저들은 이를 '자신들의 실수'가 아니라 '기득권의 저항'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반란의 효과적 진압을 위해 의료진을 반으로 갈라쳐 그중 한쪽을 고립시키려 한 것이다. 이렇게 정책의 수립만이 아니라 관철 역시 군사주의적이다.문제는 대통령 자신이 이 운동권의 논리에 투항을 해버렸다는 데에 있다. 대통령은 한 정당이 아니라 온 국민의 대표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을 통합하는 대통령의 역할이 사라졌다. 이번 SNS 메시지 소동이 보여준 것은 이 나라에 대통령이 부재한다는 민망한 사실이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2020-09-06 15:20:10

[이른 아침에] 원칙주의자 김부겸이 아쉽다

[이른 아침에] 원칙주의자 김부겸이 아쉽다

지난 4·15 총선에서의 미래통합당 패배 원인 중 하나로 '공천 파동'을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평론가들의 비판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나는 방송에서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대구 수성갑 공천에 관해서이다. 수성을 주호영 의원을 수성갑 지역에 공천한 것은 이른바 자객 공천이었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당선이 가능한 주 의원이다. 명분은 차치하더라도 굳이 김부겸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리저리 동원되어야 할 군번(?)은 아니다. 물론 한 석이 아쉬운 게 선거 국면이다. 하지만 주호영도 김부겸도 지역과 대한민국의 소중한 정치 재목이다. 까치밥을 남겨 놓는 여유, 보수 정치의 품격이 아쉬운 대목이어서 비판적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정치인 김부겸의 행보를 새삼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난하게 다선 의원이 되어 안정적인 정치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대구에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큰 꿈을 위해서이건 아니건 그의 길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고 학연, 지연 어느 것 하나 연결고리도 없다. 당파를 떠나 성원하고 싶은 정치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유였다. 지난 2월 비례위성정당 창당이 이슈화되었을 때이다. "비례정당은 소탐대실이다. 국민을 믿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당시 김부겸 의원의 공개적 언급이었다. 야당에 대한 비난은 구색일 뿐 결국 여당 위성정당 창당이 기정사실화되던 시절이었다. 극렬 지지자들의 비난을 자초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런 평소의 모습에 비해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는 실망과 아쉬움 그 자체이다. 내년 4월 예정된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관한 언급이 대표적이다. 중대한 잘못으로 열리는 재·보궐선거의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민주당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게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여당은 후보를 낼 것이다. 명분에만 집착할 수 없는 게 냉엄한 정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부겸 후보가 당헌을 개정해서라도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야 한다고 앞장선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일부 교회가 코로나 방역에 있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다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지지자들의 바이러스 테러'라는 김 후보의 언급은 도를 지나쳤다. 당원들의 표심을 얻어야 하는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라는 구호가 흔들리는 기미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당내 정치를 위해 무리수를 둔 김부겸은 게도 구럭도 놓친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평소처럼 원칙과 소신을 강조했다면 국민의 성원과 지지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지난 1월 19일 자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경선 후보 중 엘리자베스 워런과 에이미 클로버샤 등 두 여성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흥미 있는 부분은 버니 샌더스, 조 바이든 등 선두권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였다. 샌더스 후보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샌더스는 많은 진보적 의제를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샌더스는 트럼프 못지않게 분열적이다. 국민에 대한 편 가르기를 주된 통치 수단으로 삼는 트럼프에 이어 샌더스가 대통령이 될 경우 국민적 분열과 상호 적대감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분열 대신 통합을 추구하는 게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이라는 것이었다."뚜벅뚜벅 국민 통합의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총선 실패 후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 전 의원이 강조한 제목이다. 미국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분열의 정치가 횡행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다. 국민에 대한 편 가르기와 상대에 대한 비난만이 정치의 기술인 듯 보인다. 이번 경선에서 보여준 김부겸의 아쉬운 모습은 어쩔 수 없는 당내 정치의 한계라 대신 변명해 주고 싶다. 의기소침해 있을 김부겸 전 의원에게 당부한다.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 통합의 정치를 다시 시작해 달라고.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 달라고. 스스로에 대한 다짐도 국민이 그에게 바라는 바도 그것이다.

2020-08-30 15:51:58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이상한 나라의 구속영장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이상한 나라의 구속영장

사법부를 존중한다는 생각에서 그동안 채널A 이동재 전 기자에게 발부된 구속영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 왔다. 하지만 검찰에서 증거로 확보한 두 개의 녹취록이 공개되고, 수사심의위에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중단하라는 권고가 내려진 이상, 이제 발부된 구속영장의 정당성을 따져볼 때가 됐다.영장을 내주며 김동현 영장판사는 "검찰 고위직과 연결해 피해자를 협박하려 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자료가 있는 점, 매우 중대한 사안임에도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해 수사를 방해한 점" 등을 사유로 들면서 "실체적 진실 발견, 나아가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이 사유들이 내 눈에는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고작 '미수' 사건에 영장씩이나 발부된 것은 아마도 이 일이 '검찰 고위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 때문이리라. 하지만 '혐의가 소명'된 것도 아니고, 그저 '의심'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게 과연 자유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심스럽다.게다가 검찰이 신청한 영장에는 일단 이 일이 피의자의 단독 범행으로 적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영장에 적시되지 않은 사안에까지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동재 전 기자의 변호인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는 검찰이 청구한 범위 내에서 사안을 판단해야 한다는 '불고불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또 검찰 고위직과의 연결을 의심할 '상당한 자료'가 있다고 했으나, 정작 수사심의위에서 '상당'하다는 그 자료들은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대체 그는 무슨 '자료'를 본 걸까? 녹취록엔 공모 혐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한동훈 검사장의 명시적 언급이 등장한다. 이 견고한 사실을 뒤집을 만한 '자료'란 대체 뭘까?취재원 보호를 위해 핸드폰을 초기화한 것을 증거인멸로 본 것은 그렇다고 치자. 도대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인식론적 필요가 인신을 구속할 사유가 되는가? 더 황당한 것은 그 다음이다.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이 판단의 바탕에는 검찰과 언론이 유착되어 있다는 선입관이 깔려 있다. 논리적으로 '선결 문제 전제의 오류'에 해당한다. 그런 판단이 가능하려면 먼저 두 사람의 '공모'가 사실로 입증돼야 한다. 아울러 그와 유사한 사례가 다수 확인돼야 비로소 '검언 유착'이라는 일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검언 유착'이라는 것이 작년 조국 사태 이후에 여당 측에서 검찰의 예봉을 꺾으려 만들어 낸 정치적 프레임이라는 것을 안다. 검찰과 언론은 그 사태의 전이나 후나 늘 똑같이 행동해 왔다. 하지만 검찰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그 행태를 '검언 유착'이라 비난하지 않았다.'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이라는 말은 한 기자와 한 검사의 개별적 일탈에 관한 언급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상황에 대한 어떤 '일반적' 판단, 즉 검찰 집단과 언론 집단이 모종의 유착 관계에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그 판단은 보편성을 결여한 것으로서 명백히 정치성을 띤다. 그래서 이 사태는 심히 우려스럽다.이 우려는 좀 더 넓은 지평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정권은 자신들이 세운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공격하며, 이제 사법부마저 개혁하겠다고 공언한다. 검찰과 감사원에 이어 사법부마저 저들 식으로 '개혁'당하면 이 나라에 권력을 견제할 기관은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한다.사법부는 정의의 최후의 보루다. 조국, 윤미향, 박원순 사태를 거치면서 이 사회의 '윤리'는 진영의 희생물이 되었다. '무죄 추정의 원칙' 운운하며 그들은 윤리의 문제를 모두 법원에 떠넘겨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사법부뿐인데, 법마저 진영에 가담한다면 이 나라에서 '정의'라는 말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2020-08-02 15:44:42

[이른 아침에] 수도 이전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다

[이른 아침에] 수도 이전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론, 행정수도 완성론 등이 무성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운을 띄우고 정부·여당에서 일사불란하게 논의를 끌고 가는 형국이다. 충청 표를 의식한 미래통합당은 어정쩡한 자세지만 본격적인 논란이 불거지면 가만히 있기는 불가능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개헌론까지 들고나오는 마당에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 부동산 정책 실패의 역풍, 단체장들의 연이은 성 추문 등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수 있는 '이슈의 블랙홀'이 현실화하기 전에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우선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것은 수도 이전이라는 사실부터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을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은 수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라고 했다.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가 수도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를 옮기는 것은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도를 이전하는 것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거나 완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적 선택이다. 헌재가 "이 사건 법률에 의한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고 못 박은 것도 그 때문이다.헌재의 '관습헌법론'을 비판하며 국회에서의 특별법 제정으로 수도 이전이 가능하다고 하는 견해도 문제가 있다. 관습헌법론의 논거에는 개인적으로도 동의하지 않는다. 성문법 국가에서, 그것도 엄격한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헌법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관습헌법'은 인정하기 어렵다. 수도가 서울인 '사실'이 수백 년간 이어져 왔다고 해서 수도가 서울이어야 한다는 국민의 확신이 헌법적 차원의 '규범'으로 격상되었다는 논리도 수긍할 수 없다. 하지만 헌재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과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은 헌재에 의해 명시적으로 변경되기 전까지는 존중되어야 할 선례이다. 일단 법으로 밀어붙이고 헌재의 위헌 심판을 받아 보자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최종 결정 시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를 혼란도 그렇고, 현재의 헌법재판관 구성으로 보아 정부·여당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도 헌재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관으로 당연시하는 불편한 의견이다.정치적 목적의 수도 이전론 역시 마땅치 않다. 당장은 심각한 부동산 문제의 해법으로 제기된 행정수도론이지만 비판이 일자 국가균형발전 명분을 덧붙이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그 자체로 엄중한 민생 문제이고 반드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사안이다. 수도 이전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엉뚱한 해답일 뿐이다. 행정수도론이 나오자 세종시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론 역시 합당한 논거가 되기 어렵다. 국토균형발전은 헌법에서 요구하는 국가의 의무이다. 정권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공공기관 이전 등을 통해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등의 이전을 재차 추진하겠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간의 정책 성과를 면밀히 검토한 후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이전한 공공기관과 그 직원들이 해당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발전에 기여해 왔는가. 소요된 비용과 노력에 비해 성과가 크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 졸업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하여 해당 기관의 취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균형발전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대한민국의 수도가 반드시 서울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필요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실패의 시선을 돌리려 하거나 선거에서 '재미 좀 보기 위해' 던지는 화두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국가의 백년대계와 통합의 상징성 그리고 미래지향성을 염두에 둔 곳이어야 한다. 만약 수도를 이전한다면 개헌이나 국민투표 등 국민적 합의를 위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020-07-26 14:23:31

[이른 아침에] 부동산 정책 실패의 교훈

[이른 아침에] 부동산 정책 실패의 교훈

우격다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른바 7·10대책이 특히 그렇다. 정부는 3주택 이상의 경우 취득세율은 최고 12배로, 종합부동산세율은 2배 혹은 거의 2배로, 양도세 최고 세율은 최고 20%포인트를 한꺼번에 인상하기로 했다. 부동산을 사고, 팔고, 보유하는 모든 단계의 세금을 대폭 올리겠다는 것이다. 주택 임대사업자 혜택을 소급해서 없앤다는 대책도 나왔다. 법치주의와 예측 가능성 무시 등 세계 10위권 나라의 정책이라고 믿기 어렵게 거칠다. 국민에 대한 징벌이나 화풀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다주택 공직자의 집 팔기 강요 역시 우격다짐이다. 가뜩이나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상실한 마당이다. '반포 말고 청주' '아니 반포까지'로 이어진 블랙 코미디는 정부 정책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일단 정부의 조급함을 이해하려 해본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지만 정부 정책은 백약이 무효다. 정책 발표 때마다 집값이 오른다.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동반 하락 중이다. "부동산은 자신 있다"던 문 대통령의 공언이 역풍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여권에 비상이 걸린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 해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문제가 많다. 22번째인지 5번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6·17대책 발표 한 달도 되지 않아 새로운 정책이 나온 사실 자체가 이전의 정책이 모두 실패했음을 방증한다. 과거의 문제점을 반추하지 않은 채 서둘러 내놓는 정책은 실패를 예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일차적 관점은 규제 강화이다. 지난 2017년 6월 19일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부터 규제 정책이다. 조정대상지역 추가 지정, 민간택지 전매 제한 강화, 조정대상지역 대출 강화 등이 내용이었다. 규제 지역을 확대하고 기존 규제책을 강화하는 8·2대책, 투기과열지구를 확대 지정하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용이하게 한 9·5조치 등이 이어졌다. 주택 관련 대출 규제인 10·24대책도 나왔다. 정책의 실효성은 논외로 하고 규제 일변도 정책이 주는 신호만은 분명했다. 앞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들고 집 사기가 어려워질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수요 공급의 원리상 값이 오르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인사 실패도 한몫했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기용부터 실책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한 과거 동료에게 문 대통령이 개인적 명예 회복의 기회를 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역량의 한계가 명확했지만 모두가 상처를 입은 뒤에야 물러나게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긴급 호출을 통해 특별 지시를 내려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그럼에도 김 장관은 누구에겐가 화난 표정으로 5번째 정책을 스스로 발표한다. 정치인 장관의 강점도 있지만 그 단점도 분명하다. 정책 실패의 원인을 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리는 '정무적 감각' 때문이다. 현 정부는 전 정권과 달리 "부동산을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민생 자체의 해결이 아니라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목표로 한 민주화 투쟁식 정책의 한계가 단적으로 드러난 게 부동산이다.부동산 가격 폭등은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 서울과 수도권, 수도권과 다른 지역 사이의 격차를 부채질한다. 집값이 오른 지역 주민 역시 불편하다. 시세 차익을 손에 쥔 것도 아닌데 세금만 다락같이 오른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보유세 강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거위가 비명을 지르게 해서는 깃털을 뽑기 어렵다. 우선 실패를 실패로 인정해야 길이 열리는 법이다. 현재의 진용을 그대로 둔 채 규제와 징벌적 세금 강화 일변도로는 해결책이 보일 리 만무하다. 부동산 자체에만 관심을 두어서도 안 된다. 지역 균형발전, 일자리 정책, 교육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정책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그에 앞서 투쟁식 정책, 국민과 싸우는 정책, 국민을 벌하려는 정책은 실패가 예정된 정책임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공약'임을 내세워 무리하게 밀고 나가는 다른 정책 역시 다시 돌아볼 수 있다면 부동산 정책 실패의 교훈은 쓴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0-07-12 15:15:35

[이른 아침에] 권언유착과 공작정치

[이른 아침에] 권언유착과 공작정치

"물론 조국을 자랑스러워할 이유야 수천 가지가 넘지. 그런데 막상 대려고 하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 독일에서 들었던 노래 가사다. 요즘 '검찰 개혁'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가사가 떠오른다. 나도 검찰 개혁에 찬성했다. 아니, 지금도 찬성한다. 검찰을 개혁해야 할 이유도 수없이 많다. 근데 정작 대려고 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 왜 그럴까?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대통령은 그에게 "산 권력에도 칼을 대달라"고 당부했다. 그 말이 빈말이 되는 데에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정작 그의 검찰의 칼이 조국을 향하자, 당정청은 물론이고 어용 언론과 어용 지식인, 광신적 지지자들이 일제히 검찰을 공격하고 나섰다. 그들의 '검찰 개혁'은 애초에 공정이나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검찰총장을 향한 공세는 파상적이었다. 1차 공격은 정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자들과 한겨레신문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검찰총장에게 성 접대의 누명을 씌우려 했다. 본인을 향한 공격이 불발로 끝나니, 주변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2차 공격은 그의 장모를 향했고, 한창 진행 중인 3차 공격은 그의 측근을 향하고 있다.발단은 채널A 기자의 무리한 취재였다. 그가 빌미를 제공하자, 그들은 곧바로 '윤 총장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A 기자와 짜고 수감 중인 이철 씨를 협박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캐내어 4·15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MBC의 함정취재를 활용해 이 허구를 현실로 만들려 했다.채널A 기자가 유시민을 낚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한 검사장은 "유시민에는 관심 없다. 신라젠 사건은 다중 피해가 발생한 서민·민생 금융범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를 반박한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이 발언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 검사장은 애초에 유시민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총선 얘기도 마찬가지다. 녹취록을 보면 총선 얘기는 제보자 지모 씨가 꺼낸다. 하지만 채널A 기자는 미끼를 물지 않고 '선거 전이든 후든 상관 없다'고 대답한다. 기자는 선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검사와 기자가 짜고 유시민의 비리를 캐서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스토리의 골격이 무너진 셈이다. 이 음모론, 누구의 작품일까?단서는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의 SNS에서 찾을 수 있다. 제보자 지모 씨와 채널A 기자가 세 번째 만나던 날, 황희석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최강욱 의원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갑니다"라고 썼다. 이것으로 보아 문제의 음모론이 최강욱-황희석이 "작전"을 위해 작성한 시나리오라고 추정하는 게 합리적일 게다.제보자 지모 씨가 거짓말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언론에 나와 자신이 이철 씨의 "오랜 지인"이라고 했으나, 실은 그와 전혀 면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를 이철 씨와 연결시킨 것은 여당 의원의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변호사였다. 또 지모 씨는 이철 씨가 로비를 한 정치인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이철 씨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단다.문제의 지모 씨는 사기·횡령·협박죄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 또한 처음이 아니다. 조국 사태 때는 언론플레이에 수상한 금융 브로커들을 활용했고, 한명숙 복권운동에도 역시 전과를 가진 이들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황당한 것은 사기 전력이 있는 이가 거짓말까지 해가며 연출한 음모론 시나리오가 법무부 장관의 머리에까지 입력됐다는 데에 있다.진상도 밝혀지기 전에 장관은 사건의 성격을 '검언유착'으로 규정하고 들어갔다. 왜 그러는 걸까? 문제의 한 검사장은 이미 좌천되어 쫓겨나 있던 상태이니, 윤석열 총장을 노린 공작이라고 봐야 할 게다. 사상 두 번째로 이루어진 지휘권 발동 사태. 그 시작에는 사기꾼을 동원해 벌인 사기극이 있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다. 이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이다.

2020-07-05 15:36:15

[이른 아침에] ‘볼턴 회고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른 아침에] ‘볼턴 회고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태평양을 사이에 둔 한미 양국을 흔들고 있다. '그 일이 일어난 방'이라는 제목처럼 볼턴의 책은 당대에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운 백악관 내부 모습을 폭로하고 있다. 미국 정가는 볼턴의 책이 오는 11월 대선에 미칠 영향력에 관심을 쏟는 듯하다. 우리는 볼턴이 밝힌 북핵 협상 관련 기록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김여정의 언어 폭탄에 이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군사적 도발 예고, 김정은의 군사 행동 보류 지시 등으로 모두 예민해진 시점에 회고록이 공개되어서일까. 볼턴의 책은 본토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관심 대상이 된 것 같다. 청와대와 전·현직 참모들도 말을 보태고, 정치권과 언론도 한마디씩 거든다.이른바 진보 진영은 볼턴이 일본과 함께 "한반도 통일의 역사적 전환이 될 천재일우의 기회"를 방해한 존재라고 본다. "존 볼턴 스스로 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눈물겹게 애쓰는지 말하고 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의 말이다. 반면 소위 보수 진영에 볼턴은 구세주다. 트럼프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 채 영변 핵시설 파괴와 제재 해제를 교환할 수도 있었던 재앙적 선택을 볼턴이 막았다는 것이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분식평화, 남북 위장평화 쇼와 관련된 여러 의문에 대해" 국정조사라도 하겠다고 한다. 언론의 시각도 진영에 따라 극단으로 나뉜다. 아쉬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늘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초당적 대처를 주문한다. 하지만 실제는 대개 구두선에 그치고 만다. 이번 사안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외교 비사가 공개된 마당에 '토착분단세력' '대국민사기극'으로 상대 진영 비난과 험담만 주고받을 뿐 진지한 성찰과 대안 모색에는 관심이 없다.국제 정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식견과 경험 부족, 참모들의 분열이 초래한 백악관의 외교적 난맥상은 사실 새롭지 않다. 볼턴 회고록은 그에 관한 자세한 실상을 밝힌 것뿐이라는 게 6월 25일 자 미국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평가이다. 포린 폴리시의 분석은 우리 청와대와 진보 진영의 평가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볼턴은 이란 문제와 관련, 미국 국익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익을 앞세운 인물이다. 볼턴은 트럼프가 이란과의 협상 결정을 내리면 즉시 그만두려고 두 줄짜리 사직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반면 북한과의 협상은 큰 불만이 없었다. 볼턴은 김정은의 북한에 대해 '용인할 수 있었다'(can stomach)고 한다. 사실이라면 북핵 협상 실패는 볼턴의 방해보다 '완전한 핵 폐기'라는 미국의 원칙에 북한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이를 포함해 볼턴 회고록은 다방면에서 우리에게 큰 과제를 안겼다. 볼턴이 새로운 비밀을 폭로하진 않았어도 미국 외교의 깊숙하고 내밀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외교문서 해제 시에나 알 수 있는 일들을 시차를 두고 중계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자신의 관점에서 본 사실관계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왜곡이 있을 수 있다. 이를 놓고 보수·진보가 진영에 따라 아전인수만 해서는 우리가 얻을 게 없다. 이념을 떠나 모든 전문가들을 모아 상황과 맥락을 덧붙이며 볼턴 회고록을 분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미래의 지침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북핵 해법은 미국에만 맡길 수도 없고, 볼턴만 없으면 만사형통일 수도 없다. 한반도 평화가 우선인 대한민국. 체제 생존이 당면 과제인 북한. 국민과 언론에 비치는 모습이 가장 큰 관심사인 미국 지도자. 그 사이에서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놓고 벌이는 협상이 수월할 리 만무하다. 트럼프가 재선이 되든,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든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피지기라고 백전백승할 수는 없지만 지피지기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최근 북한 도발에 직면하여 민주당과 통합당은 외교안보 연석회의를 가진 바 있다. 다시 한번, 아니 여러 번 정치권이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볼턴 회고록을 놓고 지피지기를 위한 분석과 대안 모색이 있어야 한다. 북한 핵 문제는 보수·진보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0-06-28 14:39:57

[이른 아침에] 라스트 댄스

[이른 아침에] 라스트 댄스

대구시는 억울한 게 많다. 코로나19로 그 고생을 하고도 자꾸 욕을 먹는다. 심지어 지난 민선 6기 때는 하는 게 없다는 소리도 들었다. 대구 혁신, 특히 산업의 구조를 바꾼다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특히나 통합신공항은 칭찬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비난에 시달렸고 급기야 가당찮은 이유로 시장이 고발을 당하기까지 했다. 다 억울한 일들이었다. 굳이 말을 하자면 대구시가 이뤄낸 성과는 많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 현대로보틱스, 롯데케미칼을 대구로 유치했다. 국채보상운동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2·28민주운동은 국가지정기념일이 되었으며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도 선정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15년 동안이나 끌어온 신청사 문제를 해결했고 대구의 동서 균형발전을 위해 서대구역세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잘 알아주지 않는다. 대신 대구시의 잘못은 작은 것도 크게 다룬다. 긴급생계자금 부정수급 논란도 그렇다. 대구시가 마치 엄청난 죄라도 지은 것처럼 성토를 하지만 사실은 좀 억울하다. 3천900여 명의 부정수급자 중 대구시 공무원은 74명이었고 그중에서도 본인이 직접 신청한 경우는 5건이 전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푼의 돈이라도 시민에게 더 나눠주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물론, 대구시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그렇다면 대구 시민은 괜찮을까? 애석하게도 시민의 입장에선 그런 노력들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 IT 기업들은 대구시가 예전보다 더 불공정하고 편파적이 되었다고 한다. 긴급생계자금 지원도 그렇다. 좋은 뜻에서 그랬다지만 왜 그렇게 매사에 시민과 공무원을 구분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코로나19, 그 혹독했던 '대구살이'를 치르고도 단지 동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계자금을 못 받은 시민이 많았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남의 집에서 사는 것일 뿐, 건강보험, 가족관계 등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정부보다 대구시가 더 세심히 챙겨줄 거라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의 제기 신청도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한 방송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묻자 '어차피 기준이 바뀌면 그에 따라 또 못 받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러면 시민이 억울해진다. 너희들의 사정이야 어떻든 우린 총합만 맞으면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에서 주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갔더니 5부제가 해제되었는데도 해당 요일에 맞춰 다시 오라고 한다. 심지어 대기자가 한 명도 없는데 그런다. 재난지원금 선불카드 지급 방식도 개선한다고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현장에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민은 자꾸 억울하다. 어떨 땐 대구에 살아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미 프로농구 NBA 1997-98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의 일이었다. 시카고 불스 구단은 시즌이 끝나면 필 잭슨 감독을 해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선수들에게도 팀 해체 수준의 리빌딩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제리 크라우스 단장은 필 잭슨이 82승 무패, 즉 시즌 전승을 달성한다고 해도 그를 자를 것이라고까지 했다. NBA 우승컵을 무려 다섯 번이나 가져온 감독과 선수들이었다. 팀 전체가 술렁거렸고 마이클 조던을 비롯한 선수들과 팬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시즌이 시작되자 감독과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필 잭슨은 이번 시즌의 주제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핸드북을 나눠주었고, 그 표지엔 '라스트 댄스'(Last Dance)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해, 시카고 불스의 선수들은 구단이 아니라 팀을 위해, 자신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팬과 관중을 위해 뛰었다. 그들의 플레이는 현란하고 창의적이었으며 아름답고 격렬했다. 마치 춤을 추듯 그들의 농구에는 그들만의 리듬이 있었다. 그리고 필 잭슨 감독은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카고 불스는 여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대구시가 대규모 조직 개편과 인사 혁신을 단행할 것이라고 한다. 시민을 위하는 마음과 용기가 그 기준이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는지, 그런데 그게 왜 잘 안 되었는지 권영진 시장은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대구 혁신이 제대로 되려면 그래야 한다. 민선 7기, 남은 날들이 '라스트 댄스'처럼 되기를 바란다.

2020-06-21 16:09:05

[이른 아침에] 그 모든 순간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른 아침에] 그 모든 순간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1963년 박정희 혁명정부의 '의료보험법' 제정은 우리나라 의료보험(건강보험) 도입의 최초 시도였다. 시범사업이던 의료보험은 박정희 정권이 1977년 공무원과 대기업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강제 가입 방식의 직장의료보험을 실시하면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1986년 전두환 정권이 도입 계획을 발표하였고, 1989년 노태우 정권 때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직장·지역별 조합과 재정 통합으로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을 완성한 것은 2000년 김대중 정권이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게 단기간에 도입됐다고 한다. 독일은 100년, 일본은 36년 걸린 일을 한국은 1977년 기준으로 불과 12년 만에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기 때문이다.건강보험의 역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역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본격적인 의료보험 시행을 결정할 당시 각료들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였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무상 의료를 제공받는다는 선전이 박 대통령의 결단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신 말기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유화적 조치이기도 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걸쳐 실시한 전 국민 의료보험도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평가도 그 때문이다. 건강보험 통합 역시 시대적 산물이다. 2000년 통합 전까지 227개 지역의료보험조합, 139개 직장의료보험조합 등이 난립해 있었다. 직장과 지역, 부유한 조합과 가난한 조합 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이들의 통합은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한 김대중 정부의 공이 크지만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상황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전 국민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우리 의료체계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일부의 주장처럼 박정희 대통령만의 공도 아니고 과거 정권의 기여를 무시한 채 문재인 정부의 치적으로만 내세울 일도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과 역대 정권이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한마디로 이른바 보수와 진보 정권을 통해 완성된 대한민국의 총체적 역량이다. 수십 년간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2020년의 우리가 '방역 선진국'을 자랑하며 의료 한류를 외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정치적 약점을 들어 특정 정권 혹은 지도자를 폄하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우리의 방역과 보건의료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했다. 사스와 메르스 때 경험을 살려 대응체계를 발전시켜온 결과다"라고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연설도 그런 맥락이다.'포용과 협치'를 내세운 문재인 정권이 3년을 넘어섰다. 범여권이 190석을 석권한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21대 국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대만으로 그친 포용과 협치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현충원에 있는 이른바 친일파 묘소 '파묘'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다짐한다. 과거 왕조시대에나 들어온 '부관참시형'의 재연인 듯 섬뜩하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모순과 문제가 '친일파' 때문이라는 단순한 역사 인식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백선엽 장군이 서울 현충원에 안장될 경우 묘소가 뽑혀 나갈지 모른다는 말로 대전 현충원을 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곳곳에서 박정희, 전두환의 이름과 이미지를 없애고 지우는 작업에 분주한 것도 마찬가지다. 극한 가난을 물리치고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어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우리의 목표"라는 대통령의 다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낸 역사를 부정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호승 시인은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알지 못했음을 "가끔 후회한다"고 노래했다. 과거를 부정하고 묘소를 파묘해야 역사가 전진하는 게 아니다. 설사 부끄러운 역사라 해도 관련 유적을 부정적 유산(negative heritage)이란 이름으로 일부러 보존하는 게 선진국이다. 새로 시작하는 정치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순백의 역사에 대한 집착보다 미래를 향한 징검다리 돌 하나 놓는 일에 천착해야 한다. 의료보험의 역사에서 보듯 그때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꽃봉오리였음을 나중에라도 알 수 있게 말이다.

2020-05-31 16:02:34

[이른 아침에]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이른 아침에]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달 7일, 기자회견을 끝내며 이용수 할머니가 한 말이다. 파장은 컸다.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단체에 이용만 당해'라는 제목의 뉴스가 줄을 이었다.보통의 경우라면 뭐 이런 나쁜 사람들이 다 있냐며 화를 냈을 법도 한데 이번엔 좀 달랐다.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그랬다. 그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30여 년을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피해자 할머니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반인륜적 범죄의 진상을 밝힘으로써 더 나은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래서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있고 나서도 감히 윤미향 당선자를 함부로 의심할 수가 없었다.오히려 정의연을 악의로 대하고 사태를 정쟁으로 몰고 가려는 듯해 보이는 몇몇 언론의 태도와 저의가 더 의심스러웠다. 그들은 왠지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정의연을 공격하는 단체들도 볼썽사나웠다. 소녀상 철거 주장에 이어 윤미향 당선자가 수요집회를 통해 성노예, 매춘 등의 개념을 청소년들에게 주입했다며 그를 청소년보호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고발하는 대목에 이르면 정의연에 대한 없던 호의도 생길 지경이었다.그런데 정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가 의심스럽다.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의혹이나 비난의 목소리 때문이 아니다. 검찰 수사 또한 지켜보면 될 일이다. 정작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가 뭔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 건, 그리고 그게 갈수록 심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해명' 때문이다.이를테면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 날, 정의연은 이용수 할머니에게 성금 1억원을 전달한 영수증을 공개했다. 피해자 할머니와 자신들이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라면서 말이다. 이건 낯설고 삭막하다. 설사 부모가 돈 때문에 화를 냈기로서니 돌아서기 무섭게 그 부모에게 얼마를 줬다며 영수증을 공개하는 자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그 태도로만 보면 그들에게 이용수 할머니는 이미 '저쪽 사람'이었다. 쉼터 관련 해명은 더 이상하다. 굳이 경기도 안성까지 간 이유, 건물을 비싸게 사서 싸게 되판 이유 등이 말은 될지 몰라도 납득이 안 된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어쩜 그렇게 연달아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자신의 부친을 쉼터관리인으로 고용한 것에 대한 윤미향 당선자의 해명은 좀 기가 막힌다. 우리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는 건 시민운동 단체의 대표가 할 소리는 아니다.그리고 한나절 만에 말을 바꾼,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사게 된 경위에 대한 해명도 이해가 안 된다. 적금 3개를 깨고 가족들로부터 돈을 빌려 집을 샀던 겨우 8년 전 일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도무지 있을 것 같지가 않다.그들의 말처럼 정의연의 활동이 피해자 지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건 맞다. 하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은 정의연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시작이며 끝이다. 할머니들의 마음이, 할머니들의 생각이 당연히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만큼 윤미향 당선자는 출마하기 전에 먼저 이용수 할머니에게 허락을 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자고 했으면 그랬어야 했다. 그는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쉼터 관련 해명에서도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라고 했다. 앞으로 그 '급박한 상황'이 얼마나 더 생길지 모를 일이다.정의연은 국회로 가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다른 시민운동단체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활동 이력은 금배지를 달기 위한 경력이 아니다. 이번 논란으로 친일파가 준동하는 것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왜곡하던 사람들이 정의를 떠벌리는 것도 문제지만 먼저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피해자 할머니가 가슴 아파 한다.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그리고 하나만 덧붙이면 윤미향 '당선인'이 아니라 윤미향 '당선자'가 맞다. 후보일 때는 '자'(者)였다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인'(人)이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헌법에도 당선자가 있을 뿐 당선인은 없다.

2020-05-24 15:52:11

[이른 아침에] 위안부 문제는 정쟁 대상이 아니다

[이른 아침에] 위안부 문제는 정쟁 대상이 아니다

"고무신이 벗겨진 채 소녀는 끌려갔네/ 부를수록 집은 멀고 총칼은 목에 닿고/ 악문 채 몸을 봉해도 군홧발에 녹아갔네/ 총을 물고 울었건만 목숨은 욕(辱)을 넘어/ 헐은 몸 닦고 닦아 옛집 앞에 섰건만/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네."(정수자, '슬픈 고무신')시에서처럼 '고무신이 벗겨진 채 끌려간 소녀'였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제는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는 줄 알았다. '정의연'(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주최 수요 시위 덕분에 위안부 문제는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후원금 등을 통해 그분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곤 한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피해 할머니들이 여전히 마음고생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정의연 관련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는 크게 두 가지다. 후원금 사용과 지금까지 정의연의 운동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우선 회계 문제에 대한 여러 지적은 정의연이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의연은 '공익'재단법인이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정의연은 기부금과 국고보조금을 받고 세금 혜택이 부여된다. 대신 모든 활동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무관청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 공개된 기록만 보아도 회계 기준에 비추어 엉성하고 투명하지 않은 돈의 쓰임새가 드러난다.이런 상황을 방치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세무 당국의 감독과 함께 정의연은 외부 감사 등을 통해 의혹에 대해 성실하게 해명해야 할 도덕적·법률적 의무가 있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게 정의연 활동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회계에 대한 비판이 그간 정의연의 활동과 성취를 부인하는 게 아님은 당연하다. 따라서 '친일파' '보수세력' 운운하는 여권 일각의 대응은 어처구니없다. 생뚱맞은 프레임 전환 시도는 의구심을 키우는 일이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의 개인적 의혹을 여권이 정쟁으로 확대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권력형 비리 등 야당이 거들어야 할 사안도 아니다.정치권은 오히려 이용수 할머니의 다른 지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의연 활동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그것이다. 이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증오만 키우는" 수요 시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용당할 만큼 당하고 참을 만큼 참았다는 이 할머니의 증언에서는 피해자들의 진정한 의견이 배제된 활동가 중심의 운동에 대한 서운함이 드러난다. 그간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해 온 여러 인사들이 국회와 행정부 요직에 진출한 바 있다. 윤 당선인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는 이 할머니의 발언은 그간 많은 이들이 위안부 문제를 출세(?)의 관문으로 삼아온 데 대한 피해 의식의 발로라 생각된다.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의연 활동에 대한 반성과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할머니의 발언처럼 위안부 관련 운동이 미래지향적이 되려면 실질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2011년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 등의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강국 재판관 등은 반대의견을 남겼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된 후 인간으로서의 삶을 송두리째 박탈당하고 그 가해자인 일본국으로부터 인간적 사과마저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 사건 청구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한다면…어떻게든 우리 정부가 국가적 노력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우리 모두 간절하다…청구인들이 처해 있는 기본권 구제의 중요성, 절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헌법이나 법령, 기타 헌법적 법리에 의하여도 발견해 낼 수 없다면, 결국 이들의 법적 지위를 해결하는 문제는 정치권력에 맡겨져 있다…."친일·반일 논쟁을 떠나 정치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원도 하기 전에 정쟁부터 시작하는 21대 국회라면 그 전도는 보나 마나다. 여야는 정치적 드잡이를 그치고 위안부 할머니들 생전에 발에 꼭 맞는 고무신을 신겨드리는 일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2020-05-17 15:58:27

[이른 아침에] 보수 세력·정당에 미래가 있으려면

[이른 아침에] 보수 세력·정당에 미래가 있으려면

지난주 초까지 계속된 미래통합당의 내홍은 총선 참패 후 질서 있는 퇴각으로 후일의 전쟁을 대비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곧 물러날 지도부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정하고 김종인 위원장을 모시기 위해 애면글면한 게 사달의 시작이다.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지, 비대위로 간다면 누구를 대표로 내세울지, 조기 전당대회로 새 지도부를 꾸릴지는 21대 국회 새로운 당선인들이 결정하도록 맡겼어야 한다. 반성과 수습은 고사하고 내부 총질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고 보수의 미래가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비대위 문제 등 당의 진로는 8일 선출되는 원내대표를 포함해 21대 당선인들에게 맡겨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했으니 당연히 새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당선인들이 우선 고민해야 할 것은 보수 정당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다. 개혁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다. 벌써 40대 대선 주자 운운하는 것은 당내 갈등부터 부르는 성급한 김칫국이다. 난파된 배를 수리하기도 전에 선장부터 내정하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향후 그려야 할 보수의 청사진은 한마디로 "정체성 확립은 분명하게, 정책적 대응은 유연하게"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 보수당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영국 보수당은 1945년 7월 총선에서 노동당에 참패한다. 1935년 총선에서 얻은 432석의 절반도 안 되는 213석에 그쳤다. 보수 대학살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2차 대전 전쟁영웅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이었지만 국민은 이들을 외면했다. 전쟁 후 국민의 요구가 달라진 사실을 주목하지 못한 결과였다. 먹고사는 문제, 생존의 문제에 봉착한 국민을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의 비전이 제시되었지만 보수당은 그에 필요한 사회개혁을 사회주의로 터부시했다.선거 참패 후 보수당은 비로소 시대의 흐름을 수용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1947년 발표한 '산업헌장'에서 보수당은 산업에 대한 국가 개입, 노사 간 협력 인정, 국가보건서비스(NHS) 설립 등 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을 대폭 수용하는 개혁 방안을 발표한다. 청년보수운동과 재정 및 당 후보 충원 구조 개혁을 통해 젊고 유능한 청년들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중·하류층 출신이지만 나중에 쟁쟁한 보수당 총리가 된 에드워드 히스,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등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도 과거의 귀족적 정당에서 탈피한 보수당의 개혁 덕분이었다. 향후 20년은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자조했던 보수당은 1951년 정권 탈환 후 1964년까지 장기 집권 시기를 구가하게 된다.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이 가야 할 길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가. 여당의 실정이 두드러짐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야당을 외면한 것은 시대 흐름과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보수 세력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현 정부 일자리 정책에 문제가 있지만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수정당의 대안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긴급재난구호금 얘기가 나왔을 때 재정건전성을 들고 나온 것은 당장 굶고 있는 국민에게 나중에 있을 잔치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안도 공감 능력도 부족하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보수주의란 모든 변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곧 사라져버릴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이나 사고방식에 저항하며 사회적 균형을 잡는 것이다." 영국 보수당이 경제·사회정책 등 현안에 대해 최대한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노동당과 거의 차이가 없었던 데는 이 같은 인식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영국 보수당은 정책적 유연성과 별개로 보수주의의 이념적 정체성만은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 통합당을 비롯한 우리나라 보수 정당이 말하는 이념적 정체성은 완고한 고집으로 느껴지기 쉽다. 국민들에게 왜 보수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한지 한마디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국민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보수주의자들은 국민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영국 보수당이 밝힌 보수의 정체성이 우리나라 보수의 정체성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2020-05-03 18:30:00

[이른 아침에] 우린 이미 선진국이다

[이른 아침에] 우린 이미 선진국이다

1970년대 말 즈음이었나 보다. 대통령이 그랬다. 세계가 알아주는 부자 나라, 1980년이면 우리도 선진국이 된다고 했다. 그래 봤자 고작 몇 년 뒤지만 그땐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순순히, 의심 없이 믿었다. 우리가 미국처럼, 일본처럼 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 대망의 서기 1980년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선진국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밖에 못 되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가끔 TV나 라디오에서 우리 국민들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할 뿐이었다. 안타까웠다.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만 안 당했더라도 착착 계획대로 선진국이 되었을 성싶어 더 아쉬웠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듯 선진국은 우리의 소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쉼 없이 우리를 나아가게 했다.1990년대, 나라에선 한층 '선진국 되기'에 박차를 가했다. 시대는 포스트 모던했어도 방법은 같았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함께 노력하는 것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아 기업은 나날이 성장했다. 국민소득 1만달러도 달성했다. 그러나 20세기 막바지에 찾아온 외환위기가 그 성과를 앗아갔다. 선진국이 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한국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해외발 뉴스가 전해지자 국민들은 마치 내 탓처럼 여겼다. 유력한 인사들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해외여행 간다고 할 때 알아봤다'며 그런 마음에 가책을 더했다. 이른바 지식인들은 이로써 우린 또다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했다며 판정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선진국 문턱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자리매김되었다.2000년대, 인터넷이 열어젖힌 새로운 세상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IT 강국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산업의 지평이 넓어지고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었지만 우리가 위치한 곳은 변함없이 선진국 문턱이었다. 심지어 IMF가 우리를 선진국이라고 해도 우린 아니라고 했다. 각계의 유력 인사와 전문가, 그리고 언론과 '사회의 어른'들이 나서서 그랬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일 때는 적어도 2만달러, 2만달러를 넘기면 다시 3만달러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3만달러에 이르자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낮아서 아직은 선진국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는 30여 년 전 부모 세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자식 세대에게도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했다. 혹시라도 정부에 따라 이런 태도와 정책 기조가 바뀔라치면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해, 한 원로 경제학자는 소득주도성장과 근로시간 단축을 가리켜 '우리가 무슨 선진국이라도 된 줄 아느냐?'며 정부를 질책했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을 때도 선진국과 싸워서는 절대 못 이긴다는 논리로 청년들을 타일렀다.돌아보면 선진국 문턱에서 보낸 세월이 어언 40여 년이다. '선진국에선 이렇게 한다더라'며 무엇이든 선진국을 따라 했다. 논쟁을 벌일 때도 선진국을 예로 들었고 정책을 수립할 때도 먼저 선진국의 사례부터 찾았다. 그렇게 선진국은 모든 것의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했다. 현실에선 미국과 유럽의 주요 나라, 그리고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관념적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신기루나 이상 같은 것이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상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자 '한국은 이렇게 한다더라'며 우리를 배우고 따라 하려 든다. 그리고 도와달라고 한다. 한 국가의 총체적 역량과 정부의 실력은 위기 시에 드러난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일찍부터 신종 감염병을 인류에게 닥칠 중대한 위협으로 꼽으며 선진국들의 선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우리다. 요즘 같아선 오히려 우리나라가 미국 같지 않고 일본 같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의 길이 세계의 길이 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몰랐다 해도 우린 이미 선진국이다. 선진국 문턱을 진즉에 넘어섰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에 찬사를 보내든 말든 우린 정부를 마음껏 비난하고 옥죄어도 되니 더욱 선진국이다. 소망은 이루어졌다. 그동안의 간절함은 좀 줄이고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찾아보자. 선진국은 결국 그런 것이니 말이다.

2020-04-26 15: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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