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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김부겸 총리’의 첫 번째 과제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김부겸 총리’의 첫 번째 과제

# 2020.1.28. 전국 검찰청의 직접 수사 부서를 폐지·축소하는 내용의 검찰 직제 개편안이 시행됐다. 직제 개편으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도 폐지됐다. 취임 한 달도 안 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당시)의 첫 '검찰 개혁' 작품으로 신라젠, 상상인 그룹, 라임자산운용 사건 등을 수사하던 합수단이 공중분해된 것이다.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 명분이었지만 의구심이 많았다. 관련 사건마다 여권 정치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권력형 비리 의혹이 한창 커지고 있을 때였다.# 2020.10.26. 추 장관은 국회에서 "합수단이 증권 범죄에 대한 포청천으로 알려졌지만, 부패 범죄의 온상이었다"고 말했다. 여의도 포청천, 부패 범죄의 온상 중 어떤 게 맞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진실을 반영한다. 합수단 폐지 소식이 전해진 1월 14일, 신라젠은 최고 4.94% 상승했고 상상인과 상상인증권은 각각 최고 11.41%, 24.31% 올랐다.# 2021.1.11. 금융위원회에서 검찰에 이첩하는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건수가 2016년과 2017년 각각 81건에서 2020년 57건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검찰로 이첩된 57건 가운데 검찰이 처분을 완료한 사건은 고작 6건. 51건(89.4%)은 여전히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합수단 폐지 후 자본시장 관련 범죄 대응 역량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1.1.22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이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국민의힘 청주 상당구 지역위원장을 지낸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라임펀드 판매 재개를 위해 우리은행에 청탁한 혐의로 5월 7일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초대형 사기 사건의 로비 통로로 의심되는 대어는 하나도 걸리지 않고 잔챙이(?)만 잡은 그물이 신기할 따름이다.# 2021.4.19. 금융감독원은 신한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 책임에 대해 개인투자자는 40~80%, 법인은 30~80%의 손해배상 비율을 결정했다. 금감원이 우리·기업은행 등의 책임을 인정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금감원의 이런 결정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투자는 자기 책임'이라는 대원칙에 어긋난다. 더 큰 문제는 사라진 엄청난 돈의 행방을 추적할 동력을 잃는 것이다. 은행 돈으로 일단 피해자들의 입막음을 하고 나면 수사기관이 권력 핵심을 건드릴 수도 있는 수사에 열심을 낼 리 만무하다. 이익은 범죄자가 챙기고, 최종 손해는 은행의 주주인 국민이 뒤집어쓰는 꼴이다.# 2021.5.6~7.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라임펀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 후보자의 딸, 사위, 손자·손녀가 12억 원을 투자한 라임 '테티스 11호'가 '특혜성 맞춤 펀드'라는 의혹이다. 매일 환매가 가능하고, 환매 수수료와 성과 보수가 모두 0%인 자체가 특혜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딸과 사위가 손해를 봤다면서도 펀드 구성이 특혜라는 지적에는 "그래 보인다"고 답했다. 야당은 "총리가 되려면 가족 투자 특혜 의혹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여당은 "김 후보자 딸 부부도 피해자"라고 엄호하고 있다.김 후보자는 국회 본회의의 인준 동의를 거쳐야 한다. 야당이 의혹을 해소하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거대 여당이 있는 이상 총리 취임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부하고 싶다. 청문회 과정에서 김 총리의 첫 번째 과제가 자연스레 드러났다고 본다.수많은 피해자를 남기며 경제의 혈맥인 금융 시스템을 좀먹는 증권·금융 관련 범죄를 척결하는 일이다. 총리가 되면 관련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겠다, 문제가 있다면 내 가족부터 책임지게 하고, 유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부동산 투기와 함께 걱정되는 것이 증권·금융 쪽의 전문적인 범죄"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아는 정치인 김부겸은 적어도 범죄에 대해 정파적 시각에서 눈을 감을 인물은 아니라 믿는다. 마지막 공직이어도, 혹시 더 큰 꿈을 가지고 있어도 더욱더 올곧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

2021-05-10 06:21:31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어처구니가 없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자서전을 낸단다. 출간 시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12주기 즈음인 이달 말. 노 전 대통령처럼 자신도 검찰의 무리한 수사의 희생양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머리말이 재미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아니,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그짓을 해?그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표적 수사이자 별건 수사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없는 죄를 뒤집어쓴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가 한만호 씨에게 3억 원을 받은 것은 대법관 13명의 만장일치로 유죄가 인정됐다. 견해가 엇갈린 나머지 6억 원도 8명의 대법관이 유죄로 판단했다.증언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아니다. 결정적 근거는 물증. 한 씨에게 받은 1억 원짜리 자기앞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사용되고, 한 씨의 사업이 부도가 난 후 2억 원을 돌려준 사실 등이 법정에서 확인된 바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증거는 거짓말을 못 한다.이른바 '한만호 비망록'은 이미 1·2·3심에서 증거로 채택해 검토한 결과 신빙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는 한 씨의 진술 역시 강압의 결과가 아니었다.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법원마저 "소환 조사 과정에서 한만호에 대한 강압은 없었다"고 밝혔다.한 씨 자신도 이를 인정했다. "70번이 넘는 출정을 하면서, 허위 진술을 계속 숨기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검사님들이 강압적이지 않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조사받게 해줘서 더욱 죄송하게 생각한다." 법정에서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번복한 한 씨는 위증죄로 처벌까지 받았다.1심에서 한 씨가 검찰 진술을 뒤집자 검찰에서는 2심에서 동료 재소자들을 증인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들은 한 씨가 주위에 '진술을 번복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들이 갑자기 10년이나 지난 지금 자신들이 '위증'을 했다고 자수를 하고 나섰다. 이 패턴은 매우 낯익은 것이다.재소자와 전과자를 증인으로 앞세우고, '민본' 소속 변호사가 법률대리인으로 나서고, 친여 매체들이 허위 보도로 분위기를 띄우면, 어용 검사들이 설치기 시작한다. 한동훈 검사장을 잡을 때랑 동일한 패턴이다. 결론도 똑같다. 대검은 이른바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수사지휘권이 발동된 것도 마찬가지. 박범계 장관은 대검의 무혐의 결론에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대검 부장회의에서 재심의하라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그렇게 대검 부장회의에서도 불기소 10표, 기소 2표, 기권 2표로 이른바 모해위증교사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기로 결론지었다.유죄판결의 근거는 증언이 아니었다. 1심에서 핵심적 증인인 한 씨의 진술이 번복되자, 검찰에서는 물증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증거들이 인정되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것이다. 그러니 위증교사 의혹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사안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이다.'한 전 총리가 검찰의 모해위증교사로 인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들은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창작하려 한다. 대체 왜 그럴까? 재심은 불가능하고, 복권은 물 건너갔다. 그러니 자신이 무죄인 가상현실을 창조해 그 매트릭스 안에 열성 지지자들만이라도 집어넣으려는 것이다.이 또한 낯익다. 부인이 1심에서 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어도, 조국 전 장관은 여전히 '정경심 교수가 무죄'인 가상현실을 운영하고 있다. 상당수 대깨문들은 그의 프로그램을 현실로 착각해 여전히 표창장이 진짜라고 믿고 있다. 그런 식으로 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하지만 그 트릭이 VR 게임 밖에서 통할 리 없다.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은 국민에게 분노를 안겨줄 뿐이다. 어쩌면 저렇게들 뻔뻔할까. 지금이 클라우드 펀딩으로 자서전을 낼 때인가? 그가 내야 할 것은 80%나 밀린 추징금이다. 용을 써 봐라. 그래 봤자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2021-05-03 06:13:56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보수는 또 자멸의 길로 가려 하는가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보수는 또 자멸의 길로 가려 하는가

4·7 재보선 후 보수 진영 분란 조짐김종인-野 중진 설전 눈살 찌푸려져내부 비방·총질 과거 회귀한 모양새역사의 교훈 얻기는 야당 하기 나름 솔직히 조마조마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의 완승을 보면서다. 국민의힘은 서울과 부산 41개 자치구에서 모두 승리하는 기록을 남겼다. 한판승에도 불구하고 불안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오세훈·박형준 시장에 대한 염려가 첫 번째다. 1년 남짓한 임기 동안 인상적인 시정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번 선거가 예비고사라면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본고사라 할 수 있다. 두 도시 주민은 물론 국민 모두 그들을 주목할 것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시장 하나만 바뀌었을 뿐이다. 의회는 말할 것도 없고 박원순 전 시장이 오랜 시간 양성해 온 무늬만 시민단체인 정권 호위 세력들이 안팎을 둘러싸고 있다. 그들의 견제와 방해를 뚫고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서울과 부산의 중간 성적표는 그들의 재당선뿐 아니라 보수 우파 진영 전체의 성적과 연동돼 있다.다른 우려는 야당 내부의 문제다. 고난을 함께하긴 쉬워도 영광을 함께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여당이던 새누리당 시절 2016년 총선 이래 2020년 총선까지 연전연패를 거듭해 왔다. 상대가 강력해서 진 것이 아니라 내부 분열로 인한 자멸이었다. 그러던 국민의힘이 한 번의 작은 승리에 취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이 야당 역할을 잘해서 이겼다는 답은 1.5%, 후보들이 잘해서라는 응답은 1.3%라고 한다. 주호영 원내대표나 초·재선 의원들의 반성문 등 야당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분석이다. 그런데 왜 다시 분열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것일까.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과거에 현재 여당인 민주당이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며 비대위가 일상화되었을 때 패배도 습관이 된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조롱거리를 남긴 2016년 총선이 보수 분열과 자멸의 시작이었다. 적어도 160석, 자칫(?) 180석을 장담하던 새누리당이 122석의 제2당으로 전락한 내막은 친박·친이계의 공천 다툼이었다. 조기 대선을 불러온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분열이 원인이다. 새누리당만 단합했다면 찬성 234표로 탄핵소추안의 국회 가결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41.09%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승패가 정해진 선거 치고는 의외의 결과였다.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세 후보 표를 합산하면 52.2%. 역시 분열의 결과 스스로 승리를 넘겨준 셈이다. 여권이 기획한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등의 대형 쇼가 압도한 2018년 지방선거는 논외로 하자. 2020년 총선은 야당에 유리한 분위기로 출발했다. 대통령 임기 3년 차, 조국 사태, 부동산 정책 실패, 취업난 등 여권에 불리한 소재가 즐비했다. 결과는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 합쳐 103석. 보수 정당 역사상 가장 적은 의석수의 참패였다. 코로나 사태, 재난지원금 살포 등이 야당에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공천 과정에서 스스로 연출한 분열과 추태가 큰 몫을 한 것은 명백하다.4·7 재보선 후 야당과 보수 진영은 다시 분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이겼어야 하는데 대승하는 바람에 긴장이 풀린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원내대표, 당 대표 선거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야당 중진들의 거친 설전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야권 통합,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직 대통령 사면 등을 둘러싸고 야당 내부의 상호 비방과 총질 또한 과거로 회귀한 듯한 모양새다. 한때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제는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보수는 분열로 망하고 진보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로. 보수 야권의 분열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스스로 망친다면 한국의 정치 격언으로 굳어질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함이라고 한다. 역사에서 한 가지 배우는 게 있다면 역사로부터 전혀 배우지 못하는 것이라는 정반대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교훈을 얻기를 바라지만 역사에서 배우는 게 있을지는 야권 스스로 선택할 일이다.

2021-04-26 06:19:59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안티 페미니즘 선동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안티 페미니즘 선동

20대가 오세훈 후보에게 70%가 넘는 몰표를 던진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에서 가장 해괴한 해석은 여야의 몇몇 정치인들의 것으로, 20대 남성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친페미니즘 정책에 반발해 오세훈에게 몰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여론조사나 투표 결과의 분석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 환상이다.분명한 것은 민주당의 우군으로 여겨졌던 20대가 대거 여당에 등을 돌렸다는 것. 언뜻 보면 LH 사태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나, 여당 참패의 결정적 원인은 조국 사태 이후 차근차근 누적되어 온 여당의 폭주와 실정에 대한 심판의 민심이고, LH 사건은 거기에 불을 붙인 성냥불에 불과하다.사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그 전의 여러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20대는 이미 40, 50대와는 다른 성향을 드러낸 바 있다. 즉, 20대의 투표 성향은 꽤 오래전부터 60대의 그것과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당을 지지하는 40, 50대는 20대에게 젊은 시절 자기들의 모습을 투사하나,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그보다 큰 착각은 20대가 60대와 비슷한 투표 성향을 보인다 해서 그들이 60대에 친화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20대에게 4050세대가 조선시대 사람이라면, 6070세대는 고려시대 사람에 해당한다. 지금 국민의힘으로 가 있는 그들의 지지가 장기적·지속적으로 거기에 머물 것이라 착각하면 곤란하다.20대는 두 개의 위대한 이야기, 즉 60대 이상의 '산업화 서사'와 4050세대의 '민주화 서사'를 모두 낯설게 느낀다. 그들은 근대화 2제가 해결된 세상에 태어나 그 안에서 살아 왔다. 그들은 발달한 산업과 민주적 정치체제를 가진 OECD 국가에 사는 것을 자연환경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산업화의 고생담이나 민주화의 영웅담이나 어차피 그들에겐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일 뿐.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취업난과 양극화 속에 처한 자기 자신이다. 생존경쟁의 압박에 시달리는 그들에게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거창한 대의를 위해 일하거나 싸우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질 게다.'주의'나 '이념'과 같은 대(大)서사의 시대는 지났고, 그들에게 허용된 것은 개인적 경쟁의 서사뿐. 그래서 그렇게 과정의 공정성에 목을 매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회의 불평등은 운명이고, 결과의 정의는 부당한 것이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는 신성한 것으로, 국가에서 강제로 수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투쟁이 아니라 경쟁." 이 능력주의가 그들의 대안 서사다. 문제는 그 성과를 골고루 누리는 '투쟁'과 달리 '경쟁'의 승리는 극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것. '헝거 게임'의 승자는 늘 소수이고, 다수는 패자로 남게 된다. 물론 다들 그 소수에 속하기를 원할 것이나, 그 일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경쟁'은 문제를 개인적으로 푸는 방식이다. 그것이 20대 젊은이들 대다수가 당하는 고통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해결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좌파든 우파든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그런데 젊은이들과 함께 문제의 이성적 해법을 모색하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고, 그들의 감정에 편승해 표 받을 궁리나 하는 아주 질 나쁜 포퓰리스트들만 눈에 띈다. 여야가 따로 없다.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등 보수에서 진보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이대남' 표 받겠다고 '안티 페미니즘' 선동을 하고 있다.어떤 선거인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행으로 인해 치러진 선거가 아닌가. 그런데 선거를 통해 얻은 교훈이 안티 페미니즘이란다. 황당하지 않은가? 청년 문제의 해법이 페미니즘 타도인가? 페미니스트들이 사라지면 이대남의 천국이 오는가? 이대남의 것만 표심이고, 이대녀의 것은 표심도 아닌가?정치인이라면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의 진짜 원인을 파악하여, 그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정식화할 의무가 있다. 오로지 대깨문만 바라보고 갈라치기 정치를 하다가 쫄딱 망한 게 민주당 아닌가. 그 선거를 보고 얻은 교훈이 고작 민주당이 했던 짓을 따라 하는 것이라니, 다들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2021-04-19 06:30:00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진보의 위기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진보의 위기

작년 2월 어느 방송에서 논객은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라고 얘기한 바 있다. 작년 초만 해도 진보 진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내 행동이 그들에겐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그 신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탄 잠수함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중도층은 물론이고, 민주당을 떠받들던 20, 30대마저 등을 돌렸다.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민주당 후보를 앞선다. 심지어 '여론의 섬'이라 불리는 40대에서조차 가끔은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이 박영선 후보를 앞서는 조사 결과도 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성추행 때문에 벌어진 보궐선거에 '피해호소인' 3인방을 캠프의 전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이 구제 불능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제 오류를 수정할 '능력', 아니 그 이전에 그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일단 문제를 '문제'로 인지해야 해법이 나올 텐데, 아예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니 문제다.민심 이반의 기폭제는 결국 부동산 정책. 민주당은 180석의 위력으로 국회 토론 한 번 없이 부동산 3법을 통과시켜 버렸다. 그때 야당과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 처리를 했다면, 정책의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고, 설사 정책이 실패해도 그 책임을 야당과 나누어 질 수 있었을 게다."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큰 방향과 원칙에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진성준 의원) 이 모두가 야당을 대화 상대가 아니라 척결 대상으로 여긴 결과, 즉 '야당=투기 세력'이며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빚어진 일이다.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마인드를 버리지 못했다. "집값 폭등과 투기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집값을 올리려는 토건 투기 세력을 부활시켜서는 안 됩니다."(김태년 대표직무대행) 대체 누가 '토건 투기 세력'일까? 이 나라에 20조 원짜리 신공항을 선거 공약으로 내건 당보다 더 거대한 '토건 투기 세력'이 있는가?수직정원이 세빛둥둥섬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오세훈이든 박영선이든 머리를 '공구리'로 채우고 개발 공약을 남발하기는 마찬가지. 유권자들이 부동산 정책의 '큰 방향과 원칙'마저 불신하게 됐으니, 거기에 영합하려고 두 후보가 경쟁적으로 유권자들의 투기 본능과 욕망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이 깊은 불신의 바탕에는 당정청 인사들의 도덕적 실패가 깔려 있다. 투기로 물러났던 청와대 대변인이 의원직을 승계받았다. 여당의 의원 7명이 줄줄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전월세 인상을 5%로 제한하는 법을 대표 발의한 의원이 제 월세는 9% 올려 받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셋값을 14.5% 인상했다.이번뿐인가? 그 전엔 청와대 인사들의 다주택 보유 사실이 줄줄이 드러난 바 있다. 그 유명한 법무부 장관 가족의 꿈도 강남의 건물 한 채. 자기들은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면서 국민에게는 그것을 자제하라고 하니 국민, 특히 젊은 세대는 그것을 '공정'의 문제로 여기게 된 것이다. 공정하게 투기할 권리?진보가 '도덕주의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단다. 그래, 도덕의 덫에서 빠져나오니 어떤가? 진보적 기획 자체가 불신받는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지금 진보가 두려워할 것은 정권을 한 번 내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환멸과 냉소, 거기서 비롯된 진보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 회의다.민주당은 '진보'를 참칭하며 진보의 도덕적 유산을 탕진해 버렸다. 가치를 내버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회를 진영으로 갈라 제 편을 이념으로 무장시키는 것밖에 없다. 그럼 정책은 정략으로 전락하고, 이는 또다시 문제를 낳을 것이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지금 이 악순환에 빠져 버렸다.중요한 것은 선거의 승리가 아니다. 그놈의 승리는 그동안 충분히 해 오지 않았던가. 필요한 것은 원칙 있는 패배, 그리고 그 패배에 당연히 따라야 할 근본적인 반성과 고통스러운 혁신이다. 하지만 민주당에 과연 그 일을 할 도덕적 역량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의 위기만큼 우리의 회의도 깊다.

2021-04-05 06:10:09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권력에 대한 신상필벌은 국민의 몫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권력에 대한 신상필벌은 국민의 몫

문재인 대통령의 백신 접종 해프닝은 민망하다. 문 대통령의 접종 모습을 공개한 청와대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런 퍼포먼스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려 했을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반대이거나 최소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물론 일각의 백신 바꿔치기 루머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드러나는 건 단지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낮말은 새가 듣는 정도를 넘어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도 숨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원수의 '솔선수범'조차 터무니없는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게 민망하다는 얘기다. 오죽 불신이 깊으면 그 같은 극단적 음모론이 소비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렇다.더 민망한 것은 정부의 좀스러운 대응이다. 국민의 의구심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간호사가 주사액을 뽑은 후 가림막 뒤로 들어갔다 나오는 등 외국 지도자들 접종 장면과 너무도 다른 모습을 연출한 때문이다.정부가 불필요한 가림막과 간호사의 행동을 충실히 설명하고 접종 장소에 설치된 CCTV를 공개했다면 가짜 뉴스는 즉시 사라졌을 것이다. 안개처럼 스멀대는 가짜 뉴스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진짜 뉴스라는 햇빛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대신 수사 의뢰로 대응하면서 CCTV 동영상은 없다는 해명만 내놓고 있다.사실 이런 종류의 불신은 단순히 백신 자체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1호 참관인' 아닌 '1호 접종자'로 담대하게 나섰다면 어땠을까.국민이 박수와 함께 대통령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백신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등 여러모로 긍정적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각각 94세, 99세인 영국 여왕 부부나, 78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뜻 백신 접종에 나선 이유가 그것이다.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문 대통령이 처음부터 나서지 않았을 거라는 게 솔직한 의구심이다.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는 여당 의원의 항변이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을 드러낸 말일 것이다.80%에 육박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단순히 임기 말 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급전직하다. 부동산 관련 민심 이반 등 많은 원인이 중첩된 게 사실이다. 그 같은 요인을 넘어 현 정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는 게 백신 해프닝이다.대통령의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는 흘려 버리고 뒤늦게 진노했다는 메시지를 내놓거나 뒷북 수습에 나서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1년여를 방치한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이어 사퇴가 예고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적기를 놓쳐 버렸다. 장관으로 영이 설 리도 없거니와 조롱의 대상이 되며 대통령의 권위와 지지를 떨어뜨릴 뿐이다. 리더십의 요체인 신상필벌이 작동하지 않는 정부를 국민이 지지할 리 만무하다.국민의 마음이 정권과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은 청와대의 무감각이다. 이미 리더십 발휘 시기를 놓쳤다면 굳이 공개 접종 행사를 할 이유가 없다. 생중계도 아닌 녹화 동영상 제공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할 일도 아니다.질병관리청의 수사 의뢰 역시 만류했어야 마땅하다. 퍼포먼스 기획 실패가 의혹의 원인임을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로 국민에게 상황을 설명했어야 한다. 부동산 관련 국민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부동산 적폐'로 규정하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4년 내내 계속된 적폐 몰이에 신물이 난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당장 문제가 되는 3기 신도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급조된 공급 대책이다. 먼저 관련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범죄를 단죄하는 게 순서다. 전 정권부터 시작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를 파헤치고 제도 개선을 하는 건 그다음이다. 과거 정부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잘못을 물타기하는 수법은 이제 통하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잘 모르는 모양이다.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하는 권력에 대한 심판 방법은 다른 게 없다. 국민의 신상필벌이 따라야 한다. 국지적이지만 마침 선거가 임박해 있다.

2021-03-29 06:08:56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허무 개그로 끝난 수사지휘권 발동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허무 개그로 끝난 수사지휘권 발동

정치가 법치를 무너뜨렸다. 법치의 파괴자들은 모두 법무부 장관. 조국 전 장관은 검찰을 '쿠데타 세력'이라 음해했고, 추미애 전 장관은 억지 누명을 씌워 검찰총장을 징계했고, 박범계 장관은 민정수석까지 내치며 폭주하다가 망신만 당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권'의 꿈을 꾸는 이들이라는 것이다.수사지휘권은 독일에서는 발동된 적이 없고, 일본에선 단 한 번 발동됐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그 일로 법무대신이 옷을 벗었다. 그런 수사지휘권이 1년 사이에 대여섯 번이나 발동됐다. '선출된 권력'을 등에 업고도 법무장관 셋이 스트라이크아웃을 당했다. 그래도 이 나라에 아직 시스템이 살아 있다는 얘기다.한명숙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증언'이 아니라 '물증'으로 입증된 바 있다. '위증 교사'를 했다는데, 애초에 교사할 '위증'의 실체 자체가 없었다. 위증으로 처벌받은 것은 외려 법정에서 증언을 번복한 한만호 씨. 그의 '비망록'은 이미 당시 재판에서 검토되어 신빙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모해 위증을 했다는 사람은 재소자 김모 씨와 최모 씨. 이 중 김모 씨는 위증 교사는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작년 4월 진정서를 낸 최모 씨 역시 정작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 조사에서는 "한만호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말한 걸 들었다"며 위증 교사는 없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10대 2의 압도적 표차였다. 검찰총장 징계를 주도한 한동수·신성식·이종근·이정현 등 친여 검사들 중에서도 기소에 찬성한 것은 둘뿐. 나머지 둘은 기권을 했다. 부장검사가 모두 7명이니, 박범계 장관의 뜻대로 고검장들 없이 회의를 부장들끼리만 했어도 3대 2로 불기소 결정이 나왔을 거라는 얘기다.애초에 대검에서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합리적 의사결정이 아니었다"고 반발했던 임은정 검사. 한명숙 사건 1심의 수사를 담당했던 부장검사의 설명 후에 질문하라고 하자, "없다, 질문할 자리가 아닌 것 같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기껏 하는 소리가 "만장일치가 아닌 데 감사"한단다.위증을 한 이들이 10년이나 지난 시점에 자신이 위증을 했으니 자기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을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누군가가 검찰을 모해하려고 재소자에게 위증을 시킨 것이다. 이 사건 역시 공작으로 드러난 채널A 사건과 함께 민주당 민병덕 의원의 법무법인 '민본' 변호사의 작품이다.황당한 것은 법무부 장관들이 의도가 불분명한 재소자들의 증언(?)만을 근거로 두 번이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사실이다. 법무부가 전과자들과 손잡고 검찰을 때려 대는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두 장관이 발동한 두 번의 수사지휘권의 근거가 모두 정권 측의 자작극으로 드러났다.도대체 왜 그렇게 한명숙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한명숙의 유죄를 무죄로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은 본인들도 잘 안다. 아니, 그 전에 재심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애먼 수사 검사들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이 부조리한 욕망의 정체는 대체 뭘까?일단 대통령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한 전 총리도 검찰 수사의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에 그를 정치적으로 사면할 의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찰 개혁'의 정당성을 말해 줄 가시적 상징을 찾는 여당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정권의 뜻은 분명하다. 무조건 기소를 하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좋다. 일단 기소만 되면 대국민 사기극을 벌일 최소한의 근거가 마련된다. 설사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중이 이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도 남을 시간이다.뭘 얻었는가? 한명숙 구하려다 한명숙의 죄상만 드러냈다.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존재감을 과시하려다 망신만 당했다. 그 과정에서 팔에 권력의 완장을 차고 '검찰 개혁'을 외치는 그자들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 척결해야 할 정치검사임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장관, 옷을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2021-03-22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투기가 아니라 부패 범죄다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투기가 아니라 부패 범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입을 모아 발본색원, 패가망신을 외치고 있다.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격노했다는 소식은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첫 메시지가 나온 지 여섯 번째 언급이었다. 같은 사안에 대해 거의 매일 대통령의 지시나 언급이 있는 것 역시 드문 일이다. 그만큼 국민의 분노 정서를 자극하는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미니 대선이라 불리는 서울, 부산 시장 선거를 앞둔 다급한 상황도 의식한 행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문제의 본질은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단순히 투기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흔히 투기는 필요악이라 한다. 투자와 투기 모두 이익을 추구하지만, 투자는 생산 활동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반면 투기는 생산 활동과 관계없는 이익을 추구한다고 한다. 투자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안정성을 전제로 하지만, 투기는 불확실성을 내포한 위험부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설명도 있다.부동산을 사면서 생산 활동을 할 목적이면 투자, 시세 차익만이 목적이면 투기라고 보기도 한다. 어떻게 설명하든 종이 한 장 차이인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투기가 좋은 일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중요한 것은 투기가 범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한국토지주택공사법은 공사의 임원 또는 직원이 비밀을 누설하거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을 금지(제22조)"하고, "공개되지 아니한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이용하여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 등을 자기 또는 제3자가 공급받게 하는 행위를 금지(제26조)"하는 규정이다. 벌칙도 상당하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22조 위반),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26조 위반)에 처한다. 부패방지법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다.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단순 투기가 아니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적처럼 "공적인 정보를 도둑질한 망국 범죄"이기 때문이다. 광명·시흥에서만 자기 이름으로 땅을 산 LH 직원이 20여 명이라고 한다. 차명이 아니라 단순 서류 대조만 해도 드러날 수 있는 본인 명의 투자를 한 직원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땅 매매가 지금까지 문제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직원들의 배포를 키웠을 것이다. '사내 복지'라는 LH 직원의 언급도 있지 않았는가. 설사 문제 되어도 업무 관련 정보가 아니라고 하면 빠져나갈 수 있거나, 땅으로 얻는 이익이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계산도 섰을 것이다. 국민의 더 큰 분노가 향하는 지점이다.본질이 범죄라면 대책 역시 그에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 정부합동조사단 등 소리만 요란한 채 변죽을 울리는 것은 국민의 분노를 키울 뿐이다. 보궐선거를 의식해서 문제가 더 커지지 않는 데 주력해서도 안 된다. 그야말로 발본색원을 위해서는 국가 수사기관의 역량을 총동원한 제대로 된 수사가 있어야 한다. 경찰을 믿지 못한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지만 검찰 배제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전수조사 주장이 이른바 물타기라 치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지방의원, 국회의원 등도 본인이나 가족이 문제 된 곳에 땅을 산 기록이 나오고 있다. 범죄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면서 이들을 포함, 정부 고위직 땅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할 필요가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재산 공개 파동이 공직자들의 청렴성을 한 단계 높이고 공직자 재산공개법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이번 파문이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까지 이어진다면 망외의 소득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도덕성이 과거 정부보다 나빠졌다"는 응답이 45.2%, "비슷하다"는 응답이 15.3%라는 한 여론조사(10일, 알앤써치)가 있었다.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진영의 유불리를 의식하지 않고 망국의 범죄를 뿌리째 뽑아낸다면 문 대통령은 국민의 박수 속에 퇴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대 여당의 이해충돌방지법 전격 입법 작전 역시 바로 이런 데 쓰여야 한다. 물론 수사 이후에 말이다.

2021-03-15 06:25:36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임은정 검사를 공수처로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임은정 검사를 공수처로

대검찰청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사팀이 재소자들의 위증을 사주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대검은 "한 전 총리 재판과 관련해 증인 2명과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사건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사골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이 반발하고 나섰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과정인지는 알겠다. 감찰3과장의 뜻대로 사건은 이대로 덮일 것이다." 하지만 감찰3과장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발탁한 인물. 게다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산하 인권감독관실도 작년 7월 이미 이 사건에 무혐의 결론을 낸 바 있다.무혐의로 결론이 난 사건을 무리하게 끌고 온 것은 친여 성향의 한동수 감찰부장이었다. 그는 작년 8월 추미애 전 장관의 '원포인트' 인사로 부임한 사골 임은정 검사에게 사건의 검토를 맡겼다. 혐의가 있든 없든 일단 기소는 하라는 권력의 주문이다. 임은정-한동수-추미애의 뒤에는 당연히 권력의 의지가 있었을 게다.대체 이 사건에 왜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물론 친노 대모인 한명숙 전 총리의 신원 및 복권을 위해서다. 그가 별건 수사의 타깃이 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가 검은돈을 받은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생에게 건넨 1억 원짜리 수표 등 그 사실을 입증하는 여러 가지 물증들이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바 있다.따라서 '허위 증언 때문에 누명을 뒤집어썼다'는 시나리오 자체가 애초에 가망이 없는 것이다. 한 전 총리 자신이 재심 청구를 못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한명숙 구하기는 사법적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가진 기획이다. 한명숙은 억울하다는 여론을 조성해 그를 정치적으로 사면 복권해 주겠다는 것이다.그 목표는 이미 물 건너갔다. 한 전 총리 자신이 여권의 구명 운동이 "부담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여권에서 떠들어 봤자 과거에 자신의 범죄 사실만 다시 부각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건은 끝날 줄을 모른다. 왜 그럴까? '검찰 개혁'의 명분을 확보한다는 또 다른 목적이 원래 목적을 잡아먹어 버렸기 때문이다.하지만 저들이 떠드는 '한만호 비망록'이나 위증교사 의혹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 이미 재판 과정에서 다루어졌던 것. 1·2·3심 모두에서 법원의 판단은 "소환조사 과정에서 한만호에 대한 강압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마저도 한만호의 진술에 강압성은 없었다고 인정했다.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계속 반복되는 공작의 패턴이다. 항상 증언을 하는 이들은 사기 전과자나 재소자다. 채널A 사건 때에는 사기죄로 수감 중인 이철과 사기 전과가 있는 지모 씨가 제보자로 나섰다. 라임 사건 때에는 사기죄로 구속된 김봉현 회장이었고, 이 사건의 제보자 역시 재소자였다.이 제보(?)의 배후에는 늘 친여 변호사들이 있다. 한명숙 모해 위증교사를 주장하는 이의 법률대리인은 '민본'의 변호사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이다. 채널A 사건에서도 민본의 변호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라임 사태 관련 김봉현 편지 사건을 맡은 이는 '민변'(민주화를위한변호사회) 출신이다.재소자 둘이 사건으로부터 9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자신들이 위증의 죄를 지었으니 처벌해 달라고 자수를 한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한명숙 재판 1·2·3심,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이어 대검도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이 합리적 의사결정에 이견을 가진 것은 오직 임은정 검사뿐. 그는 '형사 입건과 기소 의견이었지만 대검 감찰3과장은 형사 불입건을 주장했다'며 '공무상 비밀 유출'을 했다. 검사의 직무상 범죄를 다루는 곳은 공수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수처가 이 사건을 맡아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증명하기를 바란다.

2021-03-08 06:22:18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공항"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공항"

대한민국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을까. 대통령과 여당이 사활을 건 역점 사업에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반대하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관련 부처 모두가 우려를 표한 걸 두고 하는 말이다.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부터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사업비가 부산시 주장처럼 7조5천억원이 아닌 28조6천억원에 이른다는 추산을 비롯해 안전성과 경제성, 접근성 등 7가지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신공항 추진을 위한 주무 부처의 사전타당성 검토를 거친 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해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사전타당성 조사를 간소화하고 필요하면 예타도 면제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에 반대 입장을 보인 것이다. 법무부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적법절차와 평등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다른 국책사업과의 형평성 문제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일부의 지적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일 수도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애먼 공무원들만 책임을 떠안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의 여파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문제점을 알고도 이를 지적하지 않으면 '성실의무 위반'과 '직무 유기'로 처벌될 수도 있어 알리바이를 만들어 둔 것일 수도 있다.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공무원들의 일관된 반대 의견 표명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특별법을 만들어 일사천리로 추진하는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그만큼 후폭풍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공직자들이 인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 설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졸속으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처리하고 말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경실련의 지적처럼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공항"이 될 게 뻔하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표 외에는 보이는 게 없는 법이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질주하는 그들에게 역사와 국민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2016년 영남권 5개 시도는 '동남권 신공항' 논란을 김해공항 확장으로 귀결 지은 용역 결과에 승복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이 수행한 용역 결과 가덕도 공항 건설안은 가장 낮은 점수로 백지화된 바 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세계적 전문가 집단이 내린 결론과 대국민 승복 다짐을 뒤집은 결과이다. 가덕도 신공항이 선거용으로만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4월 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대선용으로도 가덕도 신공항은 살아 있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여당이 공항 건설에 속도를 낸다면 반대할 수 없는 야당은 다시 곤궁한 처지에 몰리게 된다. 국가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최선의 방안은 내년 대선까지 가덕도 신공항 논란만 벌이다 흐지부지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공허한 약속인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정치권이 선거에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 무승부로 끝낼 수 있는 방안이다. 차선책은 지금부터라도 사전타당성 검토와 예비타당성 조사를 꼼꼼히 진행하는 것이다. 가덕도 공항을 건설하려면 전체의 80%를 인공 매립해야 한다. 바다 수심이 깊고 가파른 산을 깎아야 한다. 건설 과정의 어려움과 비용이 40조원 가까이 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이다. 환경 파괴는 물론 지반 침하를 방지하기 위한 유지 비용으로만 매년 10조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한다.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되면 바다 위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항공기 이착륙 시 위험이 가중된다는 문제부터 부각될 것이라고 한다. 2030년 항공 수요 역시 희망 사항일 뿐이다.선거 국면이 지나면 결국 국토부의 지적과 같이 안전성과 경제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올 게 분명하다. 차악은 건설을 시작하더라도 중단 시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희망 고문을 당하는 부산 시민에게는 미안한 꼼수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 차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서 그나마 정상 참작이라도 받으려면 말이다.

2021-03-01 06:30:00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피노키오 대법원장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피노키오 대법원장

녹취록이 공개된 지 보름 만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온갖 변명으로 가득 찬 면피성 사과문. 그마저 국민에게 공개한 것이 아니라 법관들만이 볼 수 있는 내부망에 올렸다. 법원 안팎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나 보다. 심지어 그의 거짓말은 사과문에서까지도 이어진다.그의 사과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거짓말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부주의한 답변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하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여기서 그가 한 거짓말은 두루뭉술 '부주의한 답변'으로 처리되어 있다. 자신이 주의가 좀 부족했을 뿐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사안 자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제가 해당 사안에 대하여 정치권과의 교감이나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하여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녹취록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녹취록에서 그는 자신이 살펴야 한다는 그 '정치적인 상황'이 무엇인지도 노골적으로,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결국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탄핵 얘기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 두려고 임성근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얘기.그의 거짓말은 이어진다. "해당 법관의 사직 의사 수리 여부에 대한 결정은 관련 법 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고 부인하나, 녹취록에서 그는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법률적 조치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법률적인 것은 차치'해 두었다던 그가 이제 와서 '관련 법 규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법적 근거는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사표를 반려한 그 조치가 대체 어떤 '법 규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밝힐 수도 없을 게다. 왜? 그런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결국 형식이나 내용 모두 진정한 사과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외려 사과의 형식을 빌려 뻔뻔한 거짓말로 자기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상습적인 거짓말쟁이가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최종적 진실을 가리는 기관인 사법부의 수장 노릇을 하는 나라에 살게 됐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거짓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켜야 할 대법원장이 정치적 고려에서 몇몇 얼빠진 국회의원들의 영향력을 사법부에까지 끌어들였다. 이거야말로 신판 '사법 농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명 당시에도 그는 자신이 내친 그 판사들을 이용해 야당 국회의원들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정치 판사가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나고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그의 '개인적'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고로 그의 사퇴 거부는 그의 의지를 넘어 이 정권의 의지로 봐야 할 게다. 즉, 사법부가 자신들의 불법·위법·탈법·초법에 계속 제동을 거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수장에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을 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그 효과는 당장 법원 인사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낸 가운데, 정권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온 판사들은 관례를 무시하고 계속 자리를 지키게 했다. 물론 재판 결과 하나하나가 정권 교체기에 갖는 비상한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일종의 예방조치라 할 수 있다.검찰에 이성윤이 있다면 법원에는 김명수가 있다. 좌성윤 우명수, 한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두 기관을 권력이 모두 장악했다. 이 환상의 복식조에 법무부 장관이 가세했다. 정의란 곧 공정을 의미하는데, 그 정의부의 장관이 민정수석에게 '우리 편'이 되라고 종용했단다. 문재인 정권 아래서 '정의'는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2021-02-22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황당한 2·4 부동산 대책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황당한 2·4 부동산 대책

"여러분 집 앞에 길이 있지요? 지금은 없지만 이 길 어딘가에 앞으로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만들 예정입니다. 길을 건너는 분들은 언제인지 몰라도 장차 생길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감안해서 거기에 맞게 보행해야 합니다. 무단횡단을 하는 분들은 CCTV로 녹화해 놓았다가 나중에 과거의 보행 기록을 사후 적용해서 과태료를 물릴 것입니다."'여러분'이 이런 고지를 접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황당해하거나 아니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할 게 분명하다. 누구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정책의 내용이라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4 부동산 대책은 바로 그 같은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 전에 나올 부동산 대책을 예고했다.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한 문 대통령이 "부동산 안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며 주택 공급 정책을 밝힌 것이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는 자세에서 인식의 전환을 보인 건 긍정적 신호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언급했던 '특단의 대책'을 넘어 "국민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자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서 "저도 기대가 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기대를 더 크게 했다.2·4 부동산 대책은 이런 기대 속에 탄생한 획기적 작품이다.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어서 주택 공급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처지는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2·4 대책이 현 정부 정책의 여러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권은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여러 구설과 의혹에도 '주택 공급 전문가'라는 명분으로 임명을 강행했다. "청문회에서 시달린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청문회에서 얻은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는 길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내는 것"이라고 당부했을 정도다.이처럼 무리한 장관 임명이 문제 있는 정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다. 장관이 국민 대신 대통령 혹은 여권의 눈치만 살피느라 무리수를 두기 십상이다. 국정을 블랙홀에 빠뜨린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에서 익히 목도한 바 있다. 이번에도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관념이 황당한 부동산 정책으로 귀결된 것이다.솔직히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구체적 장소도 없이 공공 주도로 전국에 총 80만 가구, 서울에 32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낯선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발표일 이후 '사업구역 내'에서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우선 공급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한다는 내용은 더 이상했다. 어떤 지역에 어떤 사업을 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곳에' 집을 사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앞서 소개한 횡단보도 비유를 들어 설명한 지인의 글을 보고 문제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위헌 논란이 불거져도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강변으로 버틴다. 현 정부 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인식이 드러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부동산 투기 방지라는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헌법과 법률은 장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 공약인 월성 원전 폐쇄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성 조작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무엇이든 정부가 하겠다는 과욕 역시 중요한 문제점이다. 빵이든 집이든 만드는 것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민간이 해야 할 일이다. 심판인 정부가 선수로 뛰는 순간 낭비와 비효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정부는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민간인 선수들의 반칙을 시정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민간이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일에만 정부가 나서야 한다. 허탈하지만 이런 종류의 고언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언론을 통한 비판과 지적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시정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이다. 현 정부는 다른 의견을 개혁 저항 세력의 틀린 의견으로 적대시해 왔다. 남은 1년여 기간도 지금까지 견지해 왔던 자세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측이 틀렸으면 하는 한 가닥 기대는 있다. 2·4 대책을 시작으로 정부가 비판에 귀를 기울여 정책을 보완하는 기대 말이다.

2021-02-15 05:00:00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나쁜 농단과 착한 농단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나쁜 농단과 착한 농단

임성근 판사가 사표를 수리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김명수 대법원장은 '탄핵' 운운하며 그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문제가 되자 그는 그런 발언을 한 적 없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됐다.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하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 사표를 수리하면 탄핵 얘기를 못 한다."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여당에서 총반격에 나섰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심부름센터도 하지 않는 '불법 도청'을 해 폭로했다는 게 정말 충격적"이란다. 그런데 본인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도청'이 아니며, 그것을 공개하는 것도 '불법'이 아니다.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은 아예 "인성이나 인격도 탄핵감"이라며 인신공격을 퍼부었다.상대 모르게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비열한 일이다. 하지만 임 판사가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일을 하기로 했을 때에는 '인성'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게다. 즉, 그는 김 대법원장이 자신의 사표를 수리해 주지 않는 이유가 정치적 성격의 것임을 이미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녹음으로 그 증거를 확보해 둘 필요를 느낀 게다.녹취록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탄핵이라는 제도 있지.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이 대화를 나누던 작년 4월에는 '탄핵'이 현실성이 없었다. 결국 임 판사는 탄핵을 피하려고 사표를 낸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그는 암 치료로 체중이 30㎏이 준 상태였다.현 정권에서 세운 대법원장이 임 판사가 "탄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탄핵이 현실성도 없고 정당성도 없다고 믿으면서 대체 왜 그는 암 투병을 하는 판사의 사표를 수리해 주지 않은 걸까? 그 이유가 황당하다.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결국 임 판사를 여당 의원들이 탄핵 '얘기'를 할 '꺼리'로 남겨두려 한 것이다. 이 서비스의 대가로 그는 위험한 발언을 하고도 전재수 의원에게 외려 칭찬을 들었다. "오히려 징계하기 전에 사표를 내고 책임을 회피하는 공직사회의 오래된 관행을 대법원장이 막은 것으로 국회의 위상, 삼권분립을 굉장히 존중해 주는 발언이다."김 대법원장은 거짓말을 했다. 자기가 한 발언에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규정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장에게는 임 판사가 낸 사표의 수리를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판사 출신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제 존재감을 만끽하도록 서비스해 줄 정치적 필요뿐.김 대법원장은 임 판사가 탄핵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뭐라고 떠들든 그 소신에 따라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했어야 한다. 그리고 예상되는 의원들의 질타에는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며 당당히 제 소신을 밝혔어야 한다. 그것이 독립된 기관으로서 사법부의 수장이 할 일이다.요즘 여당 의원들은 '선출된 권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삼권분립이란 그 잘난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자율성을 말한다. 법원이 선출된 권력인 행정부나 입법부의 입김에 놀아나는 것을 우리는 '사법 농단'이라 부른다. 결국 사법 농단을 단죄한답시고 또 다른 사법 농단을 벌였으니, 어처구니없는 역설이다.지난 정권에서는 적어도 사법 농단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이라도 했다. 그런데 이 정권의 특징은 제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다 "삼권분립을 굉장히 존중해 주는" 장한 일이었단다.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면 김 대법원장이 왜 거짓말을 했겠는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제 선행을 감추려고?결국 같은 사법 농단이라도 지난 정권에서 하면 나쁜 농단이고 자기 정권에서 하면 착한 농단이라는 얘기다. 절망스러운 것은 이런 헛소리를 듣는 정신적 고통을 앞으로 3년은 더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절망감이 그저 나만의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라 전체가 정신적 고문실로 변한 느낌이다.

2021-02-08 06:22:56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법관 겁박용 탄핵 안 된다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법관 겁박용 탄핵 안 된다

우리 헌법은 법관이 탄핵 소추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 법관은 징계 처분으로 파면할 수 없도록 한 대신 국회 탄핵으로 견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때 나는 법관 탄핵 추진이 정도라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검찰 수사 대신 법원의 조사로 진상 파악을 우선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법원 징계나 국회가 탄핵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나쁜 선례가 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법원의 재판 과정이 검찰 수사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 의뢰를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의 기대(?)대로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숱한 법관들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되었다. 현재까지 결과는 신통치 않다. 기소된 법관들이 대부분 무죄로 판명나고 있다. 당연히 사법 적폐 청산을 외쳤던 여권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이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오늘 탄핵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한다. 법관 탄핵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 과반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야당은 존재가 없고 반대 여론은 무시하면 그만이다.그러나 같은 편의 환호와 박수가 요란할수록 반대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을 다시 탄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임 판사를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문에서 '헌법 위반' 사실을 적시했다는 게 탄핵 추진의 명분이다. 탄핵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 있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감안할 때 판결에서 말한 대로 경미한 헌법 위반은 탄핵 사유가 되기 어렵다. "탄핵 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는 헌법 조문을 보아도 실익이 없다. 2월 말 예정된 임 판사의 퇴직 전 헌재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탄핵을 강행하는 것은 다른 이유를 의심케 한다.최근 여권에 불리한(?) 판결 때마다 여권 지지자들의 법관 탄핵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탄핵이라기보다 판결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최강욱 의원의 유죄 판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판결, 정경심 교수 유죄 판결 등이 그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대해 잇따라 제동을 건 법관들도 이들에게는 사법 적폐의 대상이다.멀리 가면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유무형의 압력도 마찬가지다. 김 지사 유죄 판결 후 법정구속한 성창호 판사를 기소하여 법정에 서게 한 것이 오비이락인지 의구심이 든다. 실익이 없는 임 판사에 대한 탄핵 추진이 다른 법관들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게 아닌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검찰개혁'이 '사법개혁'으로 옮겨가는 것도 이상 조짐이다. 지난 재판들보다 향후 예정된 재판을 더 의식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국 전 장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 등이 대기 중이다. 어떤 명분에서건 법원과 법관에 대한 겁박을 위한 탄핵 추진은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 씨 등에 중형을 선고한 것은 현명한 법관들이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하는 경우는 적폐 판사들이란 말인가.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상원의원 결선 투표를 앞둔 조지아주를 방문하였다. 지지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개혁 추진을 뒷받침하기 위해, 혹은 공화당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민주당 후보를 뽑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충성하도록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충성할 것은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조지아주 연방상원 2석을 모두 민주당이 석권한 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지원 덕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의원들이 충성할 대상이 대통령도 정당도 아닌 국민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탄핵을 추진하는 우리나라 의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그것이다. 당신들이 충성할 대상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도 지지자들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그리고 전체 국민입니다.

2021-01-31 21:30:00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유시민의 사과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유시민의 사과

유시민 씨가 사과를 했다. 언뜻 보기에는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동기야 어쨌든 사과를 한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요하는 일. 그 용기를 냄으로써 그는 적어도 자신이 김어준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과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상한 안도감까지 느꼈다. 그 사과문을 읽고 나는 그를 거의 용서할 뻔했다.하지만 아직 화가 안 풀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누군가 조만대장경에서 기어이 2010년 조국 교수의 말을 찾아내 SNS에 올렸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내 말을 추가하자면, 파리가 앞발 비빌 때는 뭔가 빨아 먹을 준비를 할 때이고, 우리는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다."사과를 했는데도 왜 많은 이들이 그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것일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사과의 범위가 너무 좁다. 조국 사태 이래로 그는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해 왔다. 그가 유포한 그 많은 '대안적 사실들' 중 사과한 것은 검찰의 계좌추적 건뿐. 다른 거짓말에 대해서 그는 여전히 침묵 중이다.가령 조국 사태 당시에 그는 '검언 유착'의 프레임으로 애먼 기자들을 검찰 받아쓰기나 하는 '기레기'로 싸잡아 매도한 바 있다. 그로 인해 많은 기자들이 대깨문의 양념 리스트에 올라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KBS 법조팀이 날아가고, 기자가 대낮에 테러를 당했으나, 이에 대해 그는 아직 아무 말이 없다.그가 계좌추적 건만 꼭 집어 사과를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것과 달리 이 거짓말에는 명확한 검증의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서 계좌추적을 할 경우 금융기관에서 늦어도 1년이 지나기 전에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체스에 비유하면 '체크메이트'에 걸린 셈이다.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과 달리 이 거짓말이 법적 처벌이 예상될 정도로 수위가 높았다는 점이다. 그의 거짓말로 한동훈 검사장은 온갖 수모를 겪으며 한직으로 좌천됐고, 채널A의 이동재 기자는 고작 '강요 미수' 혐의로 구속까지 당했다. 이 모두가 그가 유포한 검찰 음모론이 배경이 되어 발생한 피해다.적어도 이 점에서 그는 사과 없이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중형을 선고받은 조국 일가보다는 현명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사과를 한 것은 '용기'의 발로라기보다는 유난히 많다고 그 스스로 인정하는 '겁'의 산물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사과문은 그 나름 치밀한 법적 검토를 거쳐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예를 들어 그는 제 거짓말을 '확증편향'의 탓으로 돌리며 그것을 단순한 오해로 치부한다. 허위 사실이라는 인식이 없었음을 강조하여 미리 위법성 조각 사유를 만들어 두겠다는 얘기. 하지만 그는 대검과 한동훈 검사장의 거듭된 해명에도 같은 주장을 계속해 왔다. 즉 그 거짓말은 명백히 의도된 것이었다.그것은 확증편향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실수가 아니었다. 행여 있을지 모를 자신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그는 '검찰 개혁'이라는 권력의 프로젝트에 편승해 어용 매체 및 극성스러운 지지자들과 함께 그 허구를 현실에 아예 '사실'로 등록시키려 했다. 즉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탈진실의 '전략'이었던 것이다.게다가 사과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피해에 대한 복구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의 사과문에는 그저 '검찰 관계자'라는 막연한 표현만 있을 뿐, 정작 그에게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개인이 아닌 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은 법정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결국 그의 사과는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로 국한되어 있고, 그마저 도덕적 책임만 인정하는 가운데 마땅히 져야 할 법적 책임은 교묘히 피해 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 글은 감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놀랍지 않은가? 과연 유시민이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유시민이 쓴 사과문이 유시민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2021-01-25 05: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질문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질문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최장수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 기록을 가진 고(故) 헬렌 토머스 기자의 말이다. 토머스는 "대통령에 관한 한 기자들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기자회견은 국민을 대신해서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추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라고도 했다.그의 말처럼 생중계되는 백악관 기자회견 장면에선 긴장감이 흐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1월 기자회견 석상에서 CNN 짐 아코스타 기자와 말싸움을 벌였다.이민자 배척, 러시아 스캔들 관련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폭발한 것이다. "가짜 뉴스" "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삿대질에 이어 마이크를 빼앗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적대적 언론 환경'이라서 벌어진 일만은 아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의 옷에 묻은 액체는 대통령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오바마 케어에 대한 말이 수시로 바뀐다" "지지율이 최저인데, 올해가 최악의 해인가요?"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됐다.기자들이 악의로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백악관이 아코스타 기자에 대해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자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성명을 발표했다."기자들은 업무 수행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고, 기자단은 회원들이 대통령을 포함한 힘 센 공직자들에게 하는 질문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이런 상호작용은 불편해 보이지만 우리 국가기관들의 힘을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자들이 어렵고 불편한 질문을 하는 것은 대통령이 힘을 남용하지 못 하도록 견제하는 구실을 한다는 말이다. 자기 검열 없는 기자의 질문이 필요한 핵심적 이유이다.1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다. 연례행사인 기자회견도 문제지만 내용 면에서도 미국과 같은 질문은 언감생심이다. 후속 질문은 물론 추궁성 질문도 없다. 조금만 불편하거나 날카로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무례' 운운하는 극렬 지지자들의 표적이 된다. 기자들 탓만이 아니라 바탕이 되는 문화가 판이한 것이다."대통령께서는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에 관해 사과하셨습니다. 하지만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거나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는 말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과거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의 장밋빛 보고서였는지, 국토부 장관의 장담인지, 그걸 포함한 여러 경로로 청취한 의견을 종합한 결과인지 궁금합니다.""추미애·윤석열 갈등이 국정의 블랙홀이 되어도 대통령께서 전혀 언급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국 대통령께서 사과할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임무를 포기한 게 아닌가요? 윤 총장에 이어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여권의 비난 공세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 총장, 최 원장 모두 우리가 임명한 공직자들입니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감사원은 감사원의 일을 하도록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맙시다'라고 당부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북한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대통령 개인과 대한민국을 모욕할 때 대통령님의 생각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특등 머저리라는 김여정의 비난이 과감히 대화하자는 요구라는 해석에 동의하시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북한의 조롱과 모욕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우리의 국민적 자존심이 구겨지는데도 못 들은 체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부동산 문제, 추·윤 갈등, 남북 대화 등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과 대처는 실망스러웠다. 국민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정책 방향은 국민 모두의 삶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벼슬의 높고 낮음에 근거하여 의견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 의견만 참고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한비자)라는 경고를 상기할 필요도 있다. 대통령직에 대한 존중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왕이 아닌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질문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기를 바란다.

2021-01-17 20: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윤석열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윤석열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새해 벽두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30%대 지지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뒤를 따른다. 이 지사가 선두인 다른 조사도 있다. 윤 총장, 이 대표 순서인 경우도 있고, 이 대표와 윤 총장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 조사기관마다 다른 수치와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일반 국민의 생각을 어떻게 읽을지가 보다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특히 '윤석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올해와 내년을 관통하는 우리 정치의 화두이다. 본인의 말처럼 윤 총장이 '국민에 대한 봉사' 방법으로 정치를 선택한다면 일단은 야권의 대선 주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마다 정권 유지보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윤 총장의 지지도와 정권 교체 민심이 결합할 경우 예상외의 폭발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반면 윤 총장이 대선 정국의 어느 순간 명단에서 사라지거나 탈락하는 때가 온다면 야권은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윤 총장을 제외한 이른바 야권 주자들은 한 자릿수 지지율로 지리멸렬한 상태다. 야권이 뒤늦게 단일화를 하더라도 도토리 키재기일 게 뻔하다. 윤 총장의 거취는 그런 점에서 단순 화젯거리를 넘어 대한민국의 장래와도 직결되는 셈이다. 새해 벽두 윤석열 현상에 대한 의견을 공론장에 올리는 이유이다.우선 윤 총장 지지율은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지지가 아닌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권 교체와 윤 총장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보수 혹은 중도층 국민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지도의 허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현재 정부·여당을 외면하는 국민도 야당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투쟁력도 없고, 전략 전술도 부재한 야당이 여당의 최대 원군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아냥이 아니다. 반면 단기필마로 대통령과 거대 여권에 맞서는 윤 총장에게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야당에 없는 용기와 배짱을 갖춘 듯하고 현 정권에 결여된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상식을 강조하는 윤 총장에게 이른바 반문 정서가 투영된 결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경제·외교안보·코로나·부동산·저출산·일자리 문제 등 복잡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의 문제를 풀어나갈 적임자여서가 아닌 것이다.윤 총장이 정치에 나선다면 검찰총장으로서 그간의 행적이 모두 정치적으로 해석될 위험도 있다.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적폐 청산' 문제도 걸림돌이다. 조국 수사,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권력층 연루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등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나같이 본격적인 재판 혹은 수사가 기다리고 있다. 윤 총장의 공언처럼 명명백백히 헌법정신과 법치주의가 관철되어야 할 사안들이다. 검찰 수사가 흐지부지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아무리 강단 있는 검사라도 정치적 공방 속에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수사를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이처럼 현직 검찰총장의 '대선 주자'론은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 윤 총장은 직무 배제 후 업무에 복귀할 때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징계 처분 후 두 번째 복귀할 때는 '상식'이 추가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상식적이지도 않다. 특정인과 연관된 현상이 정치적 화두가 되었던 경험은 여러 차례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방송으로, 글로 그분들이 착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견을 밝혔다. 일종의 현상과 개인적 지지를 동일시하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윤 총장의 출마를 부추기는 의견들도 진영 논리에 따라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 것일 뿐이다. 지금 윤 총장이 할 일은 명확하다. 정치적 행보를 공개적으로 단호히 배격하고 권력형 비리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과거 '여론조사 배제' 의견을 밝혔다는 것만으로 외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만에 하나 윤석열 현상을 지지율로 착각하고 정치적 행보를 할 경우 본인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의견 표명이 늦어질수록 야권이 낭패를 볼 가능성은 커진다. 윤석열 총장의 빠른 결단을 촉구한다.

2021-01-03 16:35:31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민주주의 위기와 사법부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민주주의 위기와 사법부

"나는 오늘 밤, 어떠한 두려움이나 편향됨 없이, 또한 정치적 기관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성향으로부터도 온전히 독립하여 주어진 직무를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지난 10월 2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선서식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 신임 연방대법관이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배럿 대법관 탄생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인준 과정에서 배럿 대법관이 속한 소수 기독교 종파에 대해 제기된 우려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치적 역풍을 무릅쓰고 임기 말 대법관 지명을 강행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셈 역시 비판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 투표에서 질 경우 소송전을 벌일 것이고, 2000년 선거처럼 연방대법원 판결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던 시기였다. 배럿 대법관 임명은 '그때'를 대비하여 대법원의 6대 3 보수 우위를 확실히 다져 놓은 트럼프의 묘수로 여겨졌다. '나 자신의 성향'(my own preferences)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특이한 다짐은 그런저런 우려를 의식한 것이라 할 수 있다.12월 11일 미 대법원은 대통령 선거 후 거의 한 달여 계속된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전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텍사스를 비롯한 18개 주가 조지아, 위스콘신 등 4개 경합주 선거인단 투표를 무효화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을 각하한 것이다. 간단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 절차는 개별 주법이 정하고 있고, 다른 주는 그에 대해 다툴 자격이 없다는 법리를 재확인한 결정이었다. 광범위한 선거 조작이 있었고, 연방대법원에만 가면 승리할 수 있다고 공언해 온 트럼프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배럿 대법관은 임명 초기 일부 정치적 판결에서 스스로 회피한 바 있지만 11일 대법원의 심리와 결론에는 동참했다. 취임 때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배럿뿐 아니다. 고서치, 캐버너 등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 모두 이견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면서 "지혜도 용기도 없다"고 비난했다. 대법원보다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대법관들을 향한 분노였을 것이다. 트럼프 재임 시절 망가지고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질 뻔하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대법원의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 덕에 그나마 회복의 계기를 잡은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를 집행했다. 설마하던 사상 초유의 일이 현실화한 것이다. 무도(無道)하고 어이없고 비겁한 조치다. 민주주의의 본질인 절차적 정의를 숱하게 무시한 점에서 징계는 무도하다. "과거의 윤 총장이라면 이러했을 것이다"며 "소설 쓰시네" 소리를 들을 만한 내용으로 일국의 검찰총장 징계를 결정한 것은 어이가 없다. '판사 사찰'이란 엄청난 불법을 인정하면서 정직 2개월 결론을 내리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수사 대상 운운하는 것은 비겁하다. 징계에 대한 많은 분석이 나오고 있기에 더 이상 첨언은 생략한다.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은 다름 아니다. 사법부가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행정부와 한 몸이 된 입법부는 말 그대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북한의 짜증 한 번에 표현의 자유, 재산권 등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협하는 법률들이 마구잡이로 통과되고 있다. 통제 장치가 고장난 권력의 독주가 현실화 된 것이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권력층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능해질 게 분명하다. 검경의 권력층 비리 수사를 공수처에 이첩하라는 조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라고 배우고 가르치는 지식이 아무 쓸모없어질 판이다.이런 민주주의의 위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법원이다. 내일 윤 총장의 징계 처분 집행정지 요청을 심리할 예정인 서울행정법원에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이다. 법관이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떠한 두려움도 편향됨도 없이, 정치적 압력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으로부터도 온전히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한 처음의 뜻을 되새기기만 하면 된다.

2020-12-20 16:48:58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의 두 얼굴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의 두 얼굴

그냥 검찰총장을 향해 "물러나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임명권자의 의사를 존중해 총장도 군말 없이 자리에서 물러날 게다.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물론 촛불 대통령의 이미지 때문이다. 명색이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대통령이 임기가 보장된 총장을 미리 내쫓는 반(反)민주적 폭거를 자행할 수는 없지 않은가.결국 착한(?) 대통령을 대신해 손에 피 묻히는 못된 짓은 부하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 험한 일을 시켜 놓고 청와대의 인권변호사는 본디오 빌라도처럼 대야에 제 손을 씻었다. 그의 부하들은 보통 사나운 게 아니다. 검찰총장에게 난도질을 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고마 해라, 마이 무구따."조국 사태 이후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바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말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정권은 거의 매일 사상 유례가 없는 희한한 일을 벌이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역시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왜 그러는 걸까? 무리수를 둔다는 것은 그들이 극도의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만도 하다. 지금 대통령은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을 제거하는 데 '손타쿠'(忖度)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근데 이게 처음이 아닐 게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스산하게도 그 사건의 공소장에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보다 더 불길한 것은 '명시적 지시' 없이도 직권남용이 성립한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의 판례다. 그 사건은 권력의 수사 방해로 인해 관련자들이 기소된 지 몇 달이 넘도록 윗선에 대한 수사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도 발단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를 삭제하는 데 가담했던 두 사람은 이미 구속이 됐고, 검찰 수사는 청와대 비서실로 향하고 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청와대의 지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말할 수 있나."수상한 것은 당시 청와대 상황실장이었던 윤건영 의원. 그는 "월성 1호기 폐쇄는 19대 대선 공약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이라며 "선을 넘지 말라"고 검찰과 감사원에 '경고'를 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이 그 정책을 '위법적인'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까지 지지하는 것은 아닐 게다.더불어민주당에선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바보들은 자기들이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 말대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과 이를 은폐하기 위한 자료 삭제가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면, 그 모든 범죄가 대통령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얘기. 엉겁결에 천기누설을 한 것이다.법무부 차관에 이용구 변호사가 임명된 것도 심상치가 않다.그는 차관 임명 직전까지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변호인을 맡고 있었다. 그는 당연직으로 윤석열 총장 징계위에 참여하고 있다. 피의자의 변호인이 수사 최종 책임자에 대한 징계를 맡은 셈이다. 이게 그저 우연이겠는가.백 전 장관이 뚫리면 당연히 검찰의 수사는 청와대를 향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라 변명하는 것을 보니,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에 대통령이 연루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니 수치고 염치고 다 버리고 법률과 절차를 무시해 가며 검찰총장을 내치는 데 목숨을 거는 것이리라.법무부 감찰위는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러니 대통령이 나서서 명분을 잃은 징계위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그 덕에 우리는 탁현민의 뛰어난 화장술에 가려져 있던 대통령의 일그러진 민낯을 보게 됐다. 봤는가? '촛불 대통령'도 결국은 권력자였던 것이다. 어쩌면 전임들보다 더 냉혹한.

2020-12-13 16:00:38

[이른 아침에] 법이 아닌 정치로 풀어야 할 윤석열 문제

[이른 아침에] 법이 아닌 정치로 풀어야 할 윤석열 문제

나는 검찰개혁론자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 한 기관이 독점하는 것은 과도한 권한 집중이다. 따라서 검찰 개혁의 방향 역시 명백하다. 정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3권을 분립하듯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검찰의 제 자리를 찾아주자는 주장이기도 하다.검찰은 본래 수사의 법률적 통제기관으로서 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숱하게 많은 글과 말을 남겼으니 증거는 차고 넘친다. 현 정권이 이런 검찰 개혁의 정도(正道)를 걸었다면 지금 벌어지는 검찰발 난맥상은 없었을 것이다.정권 초기부터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로 분리하고, 수사에 대한 법률적 통제는 강화하는 원칙으로 수사권 조정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 정권 역시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 패착의 시작이었다.2017년 5월 19일 청와대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초임 검사장인 윤 지검장 임명을 위해 고검장급인 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낮추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누가 보아도 위인설관이었다. 청와대는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관련 사건 공소 유지를 원활히 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지속적인 '적폐 수사'가 윤 지검장의 임무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른바 사법 농단까지 수사하면서 윤 지검장은 박영수 특검부터 시작, 현 정권 탄생과 유지에 결정적 공헌을 해 온 셈이다.2019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강행한 것도,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시기를 바라고…"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도 그런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멱살잡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한마디로 '어리둥절'이다. 현 정권이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총애하던 '우리 윤 총장'이 적폐 세력의 대명사로 등장한 배경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국 수사,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수사, 옵티머스 펀드 의혹 수사,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수사 등이 권력층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그렇다면 국민에게 솔직히 말하는 게 좋다. 윤석열 제거 작전은 법적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라고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당연히 정치적 책임을 당당히 진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아직도 이 문제를 검찰 개혁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도 없고 문제를 푸는 방법도 아니다. 국민들 생각도 다르지 않다. 지난 3일 4개 여론조사 기관의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검찰 개혁 추진 방향에 대한 평가는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라진 것 같다'는 의견이 55%,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당초 취지에 맞게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 28%로 나타났다.문 대통령이 법무부 차관 후임으로 월성 원전 수사 변호인을 선임하는 순간 이 문제는 추미애 대 윤석열의 차원을 벗어났다. 문 대통령 혹은 정권과 윤석열의 대립으로, 법률 문제가 아닌 정치 문제로 바뀐 것이다. 징계위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윤 총장 측은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 이어 대통령과 검찰총장이 법정 다툼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아야 하는가. 우리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기록될 초유의 사태라는 말만으로 국민의 부끄러움을 다 표현할 수도 없다. 조국 수사가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한다면 그때 결단했어야 했다.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해임할 수 없다는 말은 초점이 잘못됐다. 법률적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정무적 판단, 정치적 결단을 말하는 것이다.윤 총장은 '인사권자의 신임'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인사권자의 불신임이 있다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징계위 결정을 단순 확인하는 데 불과하다는 설명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해법은 단순하다. 지금이라도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철회하고 문 대통령이 윤 총장 불신임 의사를 밝혀야 한다. 그 후의 정치적 후폭풍 역시 정치적으로 견뎌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윤석열 문제가 검찰 개혁이라는, 설명과 내용물이 다른 잘못된 포장지부터 벗겨내야 한다.

2020-12-06 1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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